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에서 롤스까지
사카모토 다쓰야 지음, 최연희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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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회(society)'의 의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면면히 구축되어온 인간의 사회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는 근대사회,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즉, 거기에는 같은 유럽이라 해도 고대·중세 사회는 포함되지 않으며 같은 근대라 해도 유럽과 북미가 아닌 방대한 영역들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의 '사회'는 첫째로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를 말하며, 둘째로는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사회'는 인류역사상 근대 이후의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펼쳐질 사회사상의 역사는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며, 각 시대에 각 지역에 살았던 사상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출현한 국가 및 시장에 관한 문제들과 씨름한 역사이다."(12-3)


"이 책에서는 사상가들의 사상이 주로 두 가지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본다. 첫째는 사상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문맥'이며 둘째는 각 사상가가 과거로부터 계승한 '사상의 문맥'이다." "각 시대의 사회사상의 단면을 살펴보면, 같은 시대의 문맥 내부에서 사고하면서도 다른 사상 전통에 뿌리내린 이질적 사회사상의 경우가 있고, 다른 시대에 살며 전혀 다른 문제와 씨름한 듯 보이지만 같은 사상 전통에 뿌리내린 동질적 사회사상의 경우도 있다. 전자의 예로서는 18세기 유럽에 살며 문명사회의 위기라 일컬어진 동질의 문제와 씨름한 스미스와 루소, 19세기 유럽에 살며 자본주의의 위기와 사회주의의 발흥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 밀과 마르크스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후자의 예로서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이성주의라는 같은 사상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18세기 유럽과 20세기 영국 및 미국이라는 다른 세대와 사회의 문맥 속에서 사고했던 흄과 하이에크, 칸트와 롤스의 조합을 들 수 있을 것이다."(21-2)


"이 책은 근대 이후 사회사상의 전개 과정을 '자유'와 '공공'이라는 두 개념의 관계를 통해 추적한다. 그것은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련을 둘러싼 사상가들의 사색의 궤적을 탐구하는 작업의 최종 목적이기도 하다. … 근대 사회사상 속에서도 '사私'의 입장을 관철시킨 듯한 사상가의 계열(홉스, 스미스, 벤담 등)과 '공公'의 사상 계열(루소, 헤겔, 마르크스 등)은 언뜻 보아도 확연히 구별된다. 그리고 벌린의 『자유론』에 나오는 '자유의 두 개념'의 구별에 관한 유명한 논의(위의 두 계열에 대응시켜 말하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별)는 거의 이 구별에 대응한다. 그러나 벌린 자신이 이 구별의 엄밀한 적용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듯이 사회사상사에서 '사'의 사상가와 '공'의 사상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근대 사회사상의 전체를 되짚는 시도이며, 오늘날까지 '사'의 사상가로 여겨져온 이들에게 '공'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려는 시도이다."(26-9)


제1장 마키아벨리의 사회사상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농업 생산력 증가와 원격지 무역의 출현, 지대의 금납화로 농노의 신분전환 촉진(자치도시의 시민, 독립 자영농), 영주권력의 몰락과 국왕 권력의 강화, '단일한 영역을 단일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선구적 형태들 등장

2. 사상의 문맥 : 르네상스의 전성기로서, '한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근대국가 사상 출현, 새로운 학문 기관인 '대학'에서 인문주의 교양교육 실시, 그리스·로마 고전 연구를 바탕으로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정치가와 관료를 양성하는 기반 구축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사고방식을 계승해 자유로운 시민이 공통의 룰(법)에 기초해서 서로 결합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공화제에 의한 '법의 지배'라고 생각했다. '법의 지배'는 군주제(일인에 의한 지배)로도 귀족제(소수자에 의한 지배)·민주제(다수자에 의한 지배)로도 실현될 수 있지만, 군주제는 개인의 재능이나 이해관계에 좌우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공화정체(귀족제·민주제)에서야 진정한 '법의 지배'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그 기본적 견해였다. 그의 과제는 이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근대사회의 현실(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의 공통된 주제가 바로 자유로운 국가의 조건으로서의 '법의 지배' 실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군주론』은 '법의 지배'를 주체적으로 담당하는 정치 지도자의 '덕(비르투)'을 그린 인간론이며, 『로마사 논고』는 '법의 지배'를 객관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기구론·제도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45-6)


#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법의 지배'는 훗날 로크나 루소의 그것과 같은 정밀한 이론이 아니라 위정자가 인민을 통치·지배하는 기술이라는 소박한 성격을 지닌다. 


"『로마사 논고』에서 다루는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공화국에서도 탁월한 지도자의 '덕'은 불가결하며 지도자는 법률과 제도의 형식적 해석과 운용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적절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공화국을 떠받치는 것은 탁월한 지도자의 덕만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국민 대중의 덕 역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리비우스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들〉의 민중관을 비판하고 〈가령 법률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군주와 법률에 구속되는 인민을 비교해보면 군주보다 오히려 인민에게서 보다 많은 덕(비르투)을 찾아볼 수 있다〉(제1권 58장)고 말한다. 그는 민중을 이성을 결여한 동물적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로 보는 전통적 우민관을 거부하고 민중을 군주 못지않게 '법의 지배'에 복종할 수 있는 존재로서 새로이 파악한다. 이것이야말로 공화국에서의 국민의 '덕'이며, 현명한 지도자의 덕은 국민의 덕과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써 그 나라의 '법의 지배'를 확고하게 한다."(51)


"마키아벨리의 공화국 구상은 그 내부에 중대한 균열을 배태하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근대적 개인이라는 인간상과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최우선시하는 정치가·국민의 '덕'의 모순이며, 둘째로는 그러한 '덕'과 당시 출현중이던 시장경제의 모순이었다." "그가 이러한 모순과 대립을 자각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그려낸 자기 이익을 대담하게 추구하는 인간은 군주든 일반 국민이든 사치나 부의 향수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긍정하는 자기 이익의 추구는, 그가 공화국의 조건으로서 '청빈'을 옹호한 것이 상징하듯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공공'의 선(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적 인간에 의한 권력과 명예의 추구였다. 따라서 그는 중세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던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권력과 명예의 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합리적 수단을 냉철히 계산하여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군주)를 모델로 삼아 정식화했던 것이다."(55-6)


제2장 종교개혁의 사회사상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종교개혁은 유대교·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로의 회귀를 통해 봉건사회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려는 운동으로 귀결, 평범한 농민, 상인, 직인 같은 '직업인'의 광범위한 운동에 불을 지펴 르네상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학적 형성력'을 가짐

2. 사상의 문맥 : 절대왕정 확립이 영국보다도 뒤늦은 유럽 대륙에서 모어의 유토피어보다 훨씬 뒤처진 사회적 현실을 마주하여, 성서의 학문적 연구 성과를 대담하게도 로마교회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 직결시킴으로써, 인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사상을 전개


"루터는 성직자의 특권과 권위를 부정하고 신앙의 자유에 기반한 만인평등 사상을 내세웠다. 이때 루터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내면의 자유이며 그것은 외면적 세계에서의 부자유와 일체를 이룬다. 외면적 부자유는 첫째로 물리법칙에 지배되는 자연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부자유를 의미하며 둘째로는 현실 사회의 부자유를 의미하므로 루터의 사상에는 전통적 사회질서를 바꿀 수 없다고 보는 정치적 보수주의의 경향이 불가피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루터는 신앙에 의해 자유로워진 영혼은 곧장 육체를 부린 사회적 실천으로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식이나 근행(勤行) 등과 함께 세속적 직업의 실천인 '노동'을 중시한다. 여기서의 '노동'은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니며 신에게 의로움으로 여겨지기(구원받기) 위한 활동도 아니다. 사람은 이미 신앙에 의해 의로움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그가 종교적 의의를 인정하는 노동은 민중이 스스로의 신앙을 표현하는 활동으로서의 그것이다."(70-1)


"칼뱅 이전의 개혁자들은 세속의 정치 질서에 적극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노력은 로마교회('보이는 교회') 비판과 진정한 그리스도교회('보이지 않는 교회')의 확립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 결과 루터의 경우에는 현존하는 정치 질서에 대한 보수적 태도가 명확히 드러났다. 이와 달리 세속의 국가나 정치기구가 종교개혁 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보았던 칼뱅의 경우에는 종교개혁의 이념에 적합한 국가나 교회의 제도 설계가 주된 사상 과제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신의 의지와는 상반되는 현실의 정치 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혁명)의 정당화론을 포함해 전제 지배에 대한 저항권과 혁명권 사상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원천이 된다. 프랑스의 '폭군방벌론자(暴君放伐論者, 모나르코마키)'나 스코틀랜드의 인문주의자 조지 부캐넌을 거쳐 잉글랜드의 존 로크가 쓴 『통치론』(1690)으로 흘러드는 정치적 급진주의의 주요한 원천은 칼뱅주의 정치사상이었다."(76)


"마키아벨리가 개인의 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덕'이라는 정치적 공공성의 개념으로 결합시키려 했던 것과 달리 루터와 칼뱅은 부패한 국가나 교회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신의 '은총'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고독한 내면세계로의 일시적 퇴행을 우선 요구한다. 이것은 신의 절대성과의 관계에서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확립하는 방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귀결로서 '직업'이나 '영리'가 새로운 사회적 의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칼뱅의 비인간적인 이웃 사랑─'예정설'을 받아들인 신자가 구원의 불안에서 오는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영리 활동에 진력하는 가운데, 고객이나 동업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베푸는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굴절된 사회화의 논리이며, 17~18세기 후대의 도덕적 공공성과는 동떨어진 세계이다. 바꿔 말하면 종교적으로 자립하여 가톨릭 지배의 속박에서 해방된 개인들을 다시금 현세적 사회의 결속으로 재결합시키는 데에 종교개혁 이후 사회사상의 과제가 있었다."(77-8)


제3장 고전적 '사회계약' 사상의 전개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30년전쟁 이후 종교가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 원리에 입각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권국가들의 등장, 경제적 권익이 국익의 중심이 되면서 '세력균형' 원칙에 의거하여 가톨릭 국가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의 합종연횡이 다수 발생

2. 사상의 문맥 : '과학혁명'의 영향 아래, 베이컨은 반복 '실험'과 '일반 명제' 수립을 되풀이하는 '경험'적 학문론을, 데카르트는 감각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이성'적인 학문론을 주창. 그로티우스는 자연법에 기초한 사회계약설의 선구적인 모델 제시


"홉스와 로크가 제기한 사회계약설의 공통 과제는 현실의 사회질서를 일단 논리적으로 해체한 다음 그것이 역사의 특정 단계에 출현한 필연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 사회의 기원을 역사적 혹은 인류학적 의미에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회와 정부(국가)의 정통성을 원리적으로 되묻는 작업을 의미했다. 이렇게 보면 '사회계약'의 논리에는 현존 정치체제의 권위와 권력을 논리적으로 해체해 그것의 성립 근거와 정통성을 되묻는 비판적·혁명적 측면과, 그렇게 재구성된 현존 질서를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보수적 측면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극적 요소가 '사회계약'의 논리에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역사상 출현한 '사회계약' 사상의 성격과 역할을 좌우하기도 했다. 홉스가 절대왕정의 지지자로 여겨져 고단한 인생을 보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로크가 명예혁명 체제의 자유의 상징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사회계약'의 논리가 수행한 대조적인 역할 때문이었다."(96)


"홉스가 보기에 전쟁상태를 벗어나 국가(commonwealth)를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라는 정념이다. 이 경우에 국가 주권은 절대적인 것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주권을 수립하는 개인들의 의지가 주권자의 의지와 동일하다는 주권 수립의 논리 자체에 국가 주권의 절대성의 근거가 있다.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에 반대하기가 불가능한 이상, 그런 무수한 의지가 떠받치는 주권자의 권위와 권력은 절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반면 로크의 '사회계약'은 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정치사회 수립을 서로 '동의'하는 '결합 계약'과 ② 정치형태(정체)를 확정하고 특정한 개인 혹은 단체에 개인들의 자연권을 '신탁(trust)'하는 '지배 복종 계약'이라는 두 단계로 나뉜다. 홉스에게 주권자는 사회계약의 주체도 당사자도 아니었지만, 로크의 경우 자연권을 신탁받은 위정자는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국민에게 책임을 지며, 신탁 위반이 있으면 국민에 의해 비판·고발되는 관계에 있다."(100, 107)


"이러한 차이의 배경에는 두 사람이 전제로 하는 사회상의 큰 차이가 있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가 발달한 문명사회를 선취한 로크의 자연 상태와 영국의 피비린내나는 내전이나 아메리카 신대륙의 미개사회와 오버랩이 된 홉스의 자연 상태는 언뜻 보아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었다. 홉스는 경제 질서를 정치 질서(절대 주권)의 확립을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었지만, 로크는 경제 질서라는 기반 위에서 정치 질서(자유로운 정부)의 형성·확립을 전망했다. 게다가 로크의 경우에 정치와 경제라는 두 질서는 '신의 법'으로서의 '자연법' 논리에 의해 관철된 것이었다. 자연법이 없으면 자연 상태에서의 평화로운 생산 활동은 없으며 이중의 사회계약도, 권력자의 신탁 위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나 혁명이라는 정치 행동도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로크 사상은 종교개혁 사상의 전통 속에 있었다. 로크의 자연법은 기계적인 에고이즘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보존과 양립하는 한에서 각자의 자기보존을 명하는 것이었다."(110-1)


제4장 계몽사상과 문명사회론의 전개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영국의 명예혁명(1688)에서 프랑스혁명(1789)까지의 '계몽의 시기', 당대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안정과 착실한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좀더 진전된 근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그 목표는 바로 '문명사회(civil society)'의 실현

2. 사상의 문맥 : 계몽은 절대왕정하의 프랑스에서는 급진적 정치사상으로, 입헌군주제하의 영국에서는 기존 체제의 틀 안에서 자유와 부를 키워드로 한 점진적 개혁의 입장으로, 독일에서는 칸트의 철학이나 레싱의 문학 등에서 관념적·이념적으로 표현


"17세기의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 사상이 그 시대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평화로운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정치사회(civil society)'의 이론으로서 전개되었다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기조로 하는 18세기 사회사상은 기본적으로 '문명사회(civilized society)'의 이론으로서 전개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사상은 '종교'와 '정치'에서의 근본적 대립(가톨릭 대 프로테스탄드, 공화제 대 군주제)을 일단 보류해두고 주된 관심을 '도덕'과 '경제'로 옮겨갔다." "종교·정치에서 도덕·경제로 중심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규준을 묻는 도덕상의 기본 문제나 국부의 본질과 원인을 묻는 경제학의 문제가 정치체제나 종교 신조의 차이를 뛰어넘은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 문제이자 '문명사회'의 기본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주된 문제는 정치와 종교의 질서에서 상대적으로 독립한 도덕과 경제 질서의 해명이었다."(120)


"정치사회론에서 문명사회론으로 문제가 바뀐 것에 상응하여 인간 본성론에서도 17세기로부터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특히 영국에서 현저한 경향을 보여, 사회사상의 논의의 중심이 '이성(reason)'에서 '정념(passion)' 혹은 '감정(sentiment)'으로 이동했다." "17세기의 이성주의에서 18세기의 정념(감정)주의로의 전환이라는 계몽사상의 큰 흐름은 영국의 섀프츠베리와 네덜란드 출신의 맨더빌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반사회적 정념을 이성이 통제한다는 전통적 도식을 비판하고 '정념'이나 '감정' 자체에서 인간의 사회적 결합의 원리를 발견하려 했다." "두사람은 상이한 사상 계보를 지니면서도 홉스와 로크에게 마지막까지 찾아볼 수 있었던, 이기심의 반사회성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사회질서 이론을 넘어 이기적 정념 자체가 사회화됨으로써 문명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이 성립되는 메커니즘을 탐구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이 새로운 사상의 전개는 18세기 문명사회론의 기초가 된다."(121-3)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에게 자유는 사회계약 사상이 자연 상태의 가설을 통해 이상화한 것과 같은 원리적·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문명사회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장하는 사회적·경제적 자유였다. 이러한 현실적 자유를 정당화하려고 한 선구가 맨더빌의 '사악은 공익'이라는 사상이었다." "맨더빌 본인은 개인들의 이기적 정념을 국부 증대와 공공성 확대로 절묘하게 이끄는 정치가나 입법가의 존재를 대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그는 단순한 자유방임론자도 자생적 질서론자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가·입법자의 영지와 판단력에 이끌리면서도 일반 대중의 이기적 정념을 추진력으로 하는, 말하자면 시장적 공공성의 이론이었으며 18세기 문명사회 사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맨더빌 이후 계몽사상의 전개 과정은 맨더빌의 역설의 핵심을 계승하면서 그 역설성을 갖가지 방법으로 극복하고 개인의 자유를 정치적·경제적 공공성으로 매개하려는 다양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137-8)


제5장 루소의 문명비판과 인민주권론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미국의 독립선언(1776)과 프랑스혁명(1789)은 인류의 야만(빈곤)에서 문명(부유함)으로의 진보라는 계몽사상의 역사적 한계─당대의 문명사회가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의 불평등을 본질로 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라는 사실─입증

2. 사상의 문맥 : 루소는 문명사회의 불평등을 '자연법'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부不정의로 단정, 자연법학이 현실의 국가·사회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질서와 타협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한다고 지적


"로크와 같은 자연법학자에게 사유재산을 둘러싼 정의·부정의의 관념은 신의 명령으로서의 자연법에 근거하는 것이며 인류의 이성에 선천적으로 각인된 것이었다. '생명·자유·재산'이 일체적인 '프로피티(property)'로 여겨졌으며, 그 정당한 기원은 노동에 의한 획득이었다. 이 원리에 근거해 로크의 자연 상태에서는 사유재산과 계약에 기초한 평화로운 질서가 확립되며, 사회적 분업(시장 사회)도 발달한다. 로크의 경우에 정부의 출현이 불가피했던 것은 화폐의 도입에 의한 빈부 격차의 발생 때문이며, 사유재산의 성립과 정부의 출현은 별개의 사건이었다. 이와 달리 루소의 경우에는 정치권력(국가)이나 경제권력(재산) 모두 농업 생산과 함께 나타나는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의 산물이며, '자연법'과도 '정의'와도 무관한 것이었다. 최초의 국가는 '법의 지배'를 따르는 군주제 국가이며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피치자의 '동의'에 의한 지배를 가장하지만, 이는 '강제된 동의'에 불과하다."(149)


"그런데 루소에 따르면 이 단계는 '동의'의 개관을 가장하고 있는 만큼 차라리 나은 것이었다. 문명사회의 좀더 진전된 발달은 사회 전체의 부를 크게 키우는 한편 그 분배를 더욱 불평등하게 하여, 외견상 부와 번영을 구가하는 문명사회의 현실은 공공연한 전제 국가가 된다. 이제까지의 정치적 지배·피지배라는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던 정치적 관계는 마침내 전제적 폭력에 의한 주인·노예 관계로 바뀌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온 선이나 정의의 관념이 완전히 소멸하여 사회는 사실상의 무법 지대가 된다. 바로 이것이 프랑스를 비롯한 동시대 유럽의 현실이었다." "루소는 이렇게 해서 사회적 불평등이 인간의 자연(본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의 어느 발전 단계에서 비롯된 역사적인 것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그는 이런 인류 진보의 역사를 단순히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적 창조 행위로서의 '사회계약'에 의한 국가와 사회의 재건을 꾀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사회계약론』에서 다룬 근본 문제였다."(149-50)


# 루소의 '일반의지'

1. 일반의지는 인간의 '영혼'에 해당하며 국가 '주권'의 본질이다. 일반의지 혹은 주권에 구체적 형태를 부여한 것이 바로 '입법권'이다.

2. 일반의지는 인민 전체의 의지이며 인민 전체의 이익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별 의지의 집합체인 '전체의지'와 구별된다.

3. 일반의지는 '분할 불가능'하며 '대표 불가능'하다. '인민' 이외의 집단─가령, 입헌정치 시스템─이 '인민'의 의지를 대행할 수는 없다.


"홉스든 로크든 인간 본성이 사회계약을 전후로 근본적 변화를 겪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이론에서 변화를 겪는 것은 개인의 외적 환경, 즉 그들이 사는 사회의 상태와 제도이며, 그들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의해 사람들이 본래의 인간 본성을 좀더 평화로운 정치사회 속에서 실현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달리 루소는 '사회 계약'에 의한 정치사회의 확립이 개인들의 외적 환경을 바꿔놓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그들의 성격과 감정을 변화시키며, 그 결과 그들의 생활양식마저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고 생각했다." "자연법학자들의 논의에서는 정치사회 수립의 최대 목적은 생명의 보존(홉스)이며 사유재산권의 확립(로크)이었다. 그러나 루소의 새로운 정치사회에서는 개인들의 신체와 재산은 보호되지만, 그 보호는 개인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보호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 실현의 일환일 뿐이다. 루소의 경우에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의 관계가 말 그대로 '역전'되는 것이다."(158)


제6장 스미스에게서의 경제학의 성립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영국의 중상주의적 경제체제─북미와 인도를 축으로 하는 식민지들을 값싼 원재료 공급지이자 자국의 상품을 판매할 거대한 시장으로 삼는─가 안고 있는 약점, 곧 문명사회의 번영이 식민지 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모순이 점차 부상

2. 사상의 문맥 : 스미스의 도덕철학은 ① 자연신학(자료 소실), ② 윤리학, ③ 자연법학으로 구성되며, 이 중 윤리학이 『도덕감정론』의 모체가 되고, 자연법학에서 '정의(justice)' 부문이 아니라 '편의(expediency)' 부문이 발전해 『국부론』의 토대를 형성


"스미스가 보기에 맨더빌의 (사악은 공익이라는) '역설'과 루소의 (자연으로부터의) '타락' 비판은 언뜻 정반대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개인은 공공이나 타인의 이익을 그것 자체를 위해서 추구하지 않는다. 맨더빌의 '허영심'도 루소의 '사교성'도 문명사회의 초기 단계에 간사한 정치가나 입법자에 의해 도입된 인위적 정념이며 인간 본래의 자연적 원리가 아니라고 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은 암묵적 전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미스는 이의를 제기한다. 스미스의 입장은 인간 본래의 자연적 정념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것이며, 그 자체에서 문명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올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인간 본성 안에 〈사회를 이루고 타인과 결합하게끔〉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어떤 원리가 존재함을 입증하는 것이며, 자연의 정념에 의한 문명사회 발전의 메커니즘을 '역설'도 '타락'도 아닌 것으로서 설명하는 것이었다."(173-4)


"『도덕감정론』에는 인간 본성(인간의 자연)에 관한 스미스의 기본적 아이디어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첫째로, 인간은 홉스나 맨더빌이 상정한 것처럼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둘째, 그 증거로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심과 함께 '동류 감정'이 존재하며 이는 '공감(sympathy)'과 같은 것이다. 셋째, '공감'은 루소의 '연민'과는 다르며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타인의 기쁨이나 쾌락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이는 명백히 스미스가 '서간'에서 맨더빌과 루소에 대해 행한 양면 비판의 귀결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쾌락이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한에서 홉스나 맨더빌은 옳았지만, 인간의 동기를 전부 이기적인 것으로 환원하려고 한 것은 그들이 범한 오류였다." "틀림없이 인간 본성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이기심이지만, '공감'에는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한계 내로 억제하는 힘이 있다고 스미스는 생각했다."(178)


"스미스는 『국부론』 첫머리에서 '분업'의 발전이 바로 국부 증대의 원동력이라고 선언했다. 그러한 문명사회의 밝은 전망을 보여준 스미스가 제5편에서는 분업의 원리를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는 〈인간으로서 될 수 있는 한 바보가 되며 무지해진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인간이 가령 공장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다 해도 시민으로서의 적절한 판단력을 행사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으며, 특히 스미스가 우려했듯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중대하고 광범위한 이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스미스가 무엇보다도 우려한 것은 그들이 시민으로서의 기개나 책임감을 상실하여 국방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미스가 주장한 공교육 사업은 지적·기능적 측면에서의 건전한 서민 육성뿐 아니라 문명사회의 개인을 국가가 체현하는 '공공성(나라의 안전과 독립)'에 붙들어놓는, 최후의 생명선으로서의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197-8)


# 스미스가 생각한 정부의 정당한 역할은 ① 국방, ② 사법, ③ 공공사업(시장친화적인 사회기반시설 조성과 시장친화적이지 않은 공교육 사업)이다.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보수에서 개혁으로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프랑스혁명의 공화주의 이념이 공포정치로 변질되자 영국의 급진주의자들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입헌군주제의 틀 안에서 선거권 확대를 통한 의회 개혁 추진, 한편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전으로 토지·노동·자본의 조화라는 자유경쟁 원리 붕괴

2. 사상의 문맥 : 보수주의(버크, 맬서스)는 산업혁명이 야기하는 변혁에 맞서 전통적인 정치와 사회 제도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 개혁주의(벤담, 제임스 밀, 리카도)는 전통 사회의 기본 구조가 크게 바뀌더라도 정치적 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


"제레미 벤담, 제임스 밀, 데이비드 리카도 세 사람이 직면한 근본 문제는 영국의 구사회, 즉 1688년 이후 명예혁명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었다. 이 체제는 영국을 근대적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킨 획기적 체제였지만, 이제는 균열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미스는 정부의 본래 역할을 재정의함과 동시에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함으로써 명예혁명 체제의 현실에 근본적 비판을 가했지만 그 비판은 체제의 경제정책 비판에 머물 뿐, 과두제적이며 비민주적인 정치 구조 자체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철학적 급진주의자들은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버크가 국왕이나 정부의 북미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며 '경제개혁'에 의한 정치의 쇄신을 외치면서도 의회 개혁 자체에는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달리 '철학적 급진주의'는 명예혁명 체제의 지배 구조를 민주화하고 선거권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국정의 중심에 좀더 광범위한 국민의 이해와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218)


"그들은 자연법이나 자연권에 근거한 이론이 현실의 사회 개혁에는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벤담은 과거의 여러 사상이 표현은 제각각일지언정 하나같이 주관적인 권리 개념에 머물러, 어떤 권리를 객관적이고 '외적(external)인' 규준에 의해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주관적 이론으로는 산업혁명의 진전 속에서 현실로 나타난 불안정한 사회질서나 치안 악화에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다. 특정 범죄나 사건이  재판에 처할 경우 관습법의 전통에 따라 재판관이나 배심원의 판단에 의해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통례인데, 그것은 결국 그들이 과거의 판례를 참고하여 주관적·감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기득 권익의 옹호로 시종할 뿐이다. 버크가 상찬한 관습법의 논리와 결별해, 관습법을 떠받치는 주관적 권리론과는 다른, 정치적 권리의 객관적이고 '외적'인 규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성과가 벤담과 제임스 밀의 공리주의 철학과 그에 기초한 입법론·정치론 및 교육론이었다."(220-1)


"개인이 스스로의 행동을 그 활동 범위와 책임 속에서 '최대 행복 원리'에 의해 자기 규제하는 결과로서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이 산출되는 법체계를 확립하는 것, 바로 이것이 벤담의 입법자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오늘날에도 공공사회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 분명한 대사업이나 개혁을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얻어 추진하려는 경우에 '신의 의지'나 '이성의 법'을 들고나올 수 없다고 한다면, (국가권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사회통제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벤담 등의 '최대 행복 원리' 이외에 최종적인 정치적 정당화의 근거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전히 반성해야 할 것은 ① 현대사회의 '최대 다수' 중에서 암묵적으로 배제된 이가 있는지 여부, ② 정책 목표인 '최대 행복'의 실현은, 자유와 권리가 간과되기 십상인 소수자의 극심한 고통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여부이며, 무엇보다도 ③ 이들 문제에 대해 위정자·권력자의 행동이 최대한의 정보 공개에 의해 국민의 엄중한 감시하에 놓여 있는지 여부다."(235)


제8장 근대 자유주의의 비판과 계승: 후진국에서의 '자유'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대륙 국가들에서는 프랑스혁명의 정치 이념(자유·평등·사유재산)과 각국의 사회적·경제적 현실(봉건제의 잔존과 자본주의의 미발달)의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에, 급진적인 개혁에 대한 열망과 근대화 자체에 대한 회의와 굴절된 비판이 등장

2. 사상의 문맥 : 이성적 법칙이 세계에 내재한다는 독단론과 경험적 인식은 불확실하다는 회의론을 모두 비판한 칸트, 자아(개인, 주체)와 세계(국가, 객체)의 통일을 설파한 피히테, 보편 이상에 대한 반동으로 비합리적 감정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등장


"헤겔에 따르면 근대 자연법이나 사회계약의 이론은 소유권과 계약, 이를 보호하는 국가의 확립을 이기적인 개인들의 동의를 통해 설명했다. 그것은 일정한 설명력을 갖지만, 한편으로는 왜 우리가 정의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지, 그 도덕적 근거를 설명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즉, 칸트는 정부의 성립을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한 '사회계약'으로 설명함과 동시에 도덕의 문제를 '정언명령'이라는 선험적 이성의 명령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헤겔은 이러한 편의적 해결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헤겔 법철학의 진정한 과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근대사회에서의 법의 객관성과 도덕의 주관성의 분열, '정의'의 객관성과 '선'의 주관성의 분열이라는 근대사회의 근간과 관련된 모순을 사상적으로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 답이 『법철학 강의』 제3부의 '인륜'론이다. 그것은 '가족' → '시민사회' → '국가'라는 세 단계로 구성되며, 인류 사회가 가족적 단계에서 국가적 단계로 발전하는 역사적 필연의 분석이다."(253-4)


"헤겔은 '가족'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 정신적·물질적으로 독립한 개인을 단위로 하는) '시민사회'로의 발전을 루소와 같이, 본래 무구했던 인류가 사회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부패·타락하는 역사로 그리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성립은 개인의 독립과 자유 획득의 프로세스인 한편, 사랑의 공동체로부터 자립한 개인은 그 온기나 애정 넘치는 관계를 잊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근거해 시민사회에서의 좀더 높은 통일, 자유로운 정신에 기초한 통일을 열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의 역사적 내실은 자본주의이며, 그 본질은 만인이 만인을 스스로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부리는 '욕구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과잉 및 빈곤의 무대가 되며, 양자에 공통된 육체적·정신적 퇴폐의 광경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시민사회의 현실에 〈격분한 나머지 루소 등 깊은 사고와 감정의 소유자들은 시민사회를 거부하고 다른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하면서 동시대의 낭만주의자를 비판한다."(254-5)


"헤겔의 국가는 ① 군주권, ② 통치(행정)권, ③ 입법권이라는 3층 구조를 이루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군주권'의 위치이다. 홉스, 로크, 루소 등 헤겔 이전의 대표적 정치 이론에서는 입법권과 통치(행정)권이 국가 제도상의 두 기둥으로 여겨졌으며, 군주의 존재는 두 권한을 인격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헤겔은 군주권을 입법권과 통치(행정)권 위에 군림하는 독자적 권력으로서 파악해 국가의 의지를 체현하는 최고의 존재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때의 군주가 절대왕정 등의 전근대적 군주는 아니다." "헤겔의 '군주'는 〈자기 결정하는 의사(意思)〉이며 '자유의 이념'과 '법의 지배'의 인격화이다. 이렇듯 헤겔은 '자유의 이념'의 인격화로서의 근대적 군주가 인류사에 출현하는 필연성을 『역사철학 강의』에서 상세히 고찰하고 있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은 이성적인 군주제 국가의 지도에 의해서만 진정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헤겔이 최후에 도달한 세계사 인식의 입장이었다."(257-61)


제9장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산업혁명에 따른 1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와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의 공존, 대자본가층이 전세계로 진출하여 '자본의 문명화 작용'을 꾀하는 동시에, 반체제적 집단 역시 국경을 넘어 자본주의 타도와 사회주의 실현을 내걸고 상호 교류 확대

2. 사상의 문맥 : 생시몽은 조직된 과학자와 산업가의 이성적 관리에 기반한 이상적 산업사회 구상, 푸리에는 이기심과 이성이 아니라 정념과 협동에 기반한 농업 사회 구상, 오언은 환경결정론에 기반한 공동체 운동 구상(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의 아버지)


"스미스 이래의 경제학은 가격 결정이나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임무로 해왔을지언정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자본주의의 대전제는 사유재산 제도이며 지주, 자본가, 노동자라는 세 계급은 토지, 자본, 노동이라는 신성한 재산의 소유자로서 등장한다. 그들은 사유재산의 소유자로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각기의 사유재산을 자신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시장에서 판매하여 그 성과를 신성한 사유재산으로서 획득한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으로 시작해 사유재산으로 끝나는 시스템이다. 루소처럼 사유재산 제도 자체를 의문시한 사상가도 있었지만, 경제학자들에게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자 현실로서, 그들의 경제학은 하나같이 이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자본가의 지배 아래서 노동자가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재된 메커니즘이라는 인식을 마르크스는 뚜렷이 가지고 있었다. 이 현실을 그는 '노동 소외'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277-8)


# 자본주의가 낳는 소외의 형태

1.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가 만들어낸 생산물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의 재산이 된다.

2.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 본래 자유로운 목적의식적 활동이어야 할 노동이 부자유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3. 유적 본질(존재)로부터의 소외 : 2의 결과로서 자유롭고 의식적인 인간의 '본래적 노동'의 본질이 부정된다.

4. 인간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 인류 동포로부터의 소외로서, 대표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인간의 '유적 본질(존재)로부터의 소외'를 자연발생적 분업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분업이 인간의 외부에서 강제력을 발휘하여 '소외'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소외'에 대한 논의에서 마르크스는 네 가지의 소외로부터 자유로운 본래적 노동의 모습으로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하나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노동'이라는 노동관이고, 또하나는 '사회적 노동'이라는 노동관이다. 인간 노동의 이 두 측면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수고』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설명은 반드시 명확하지만은 않다. 인간의 노동이 본래는 '자유롭고 의식적'이라는 것을 마르크스는 다른 동물과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다. 꿀벌이나 비버는 변변찮은 건설 노동자보다 훨씬 집을 잘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본능에 따른 활동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노동은 본능이나 육체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이 행해지며 대상에 '미의 법칙'을 부여하는 것조차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노동의 본래 모습은 첫째, 둘째, 셋째의 소외의 현상 형태 속에서 '소외'라는 부정적 형태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지만, 넷째의 소외 형태인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는 '사회적 노동'의 부정으로서 나타난다."(279-80)


"마르크스 사상의 원점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이념이 존재하며, 마르크스 사상은 그 유토피아적 성격으로 인해 영속적인 생명력을 획득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노동력의 상품화에 의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자본주의의 본질인 한 거기서 유래하는 여러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한에서 시장과 선거라는 한정된 경제활동, 정치활동 이외에 무언가 진정한 '자유인의 연합'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아가 그것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지배와 착취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항축을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며,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것이 항상 마르크스 사상의 계승이라는 스타일을 취하리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가 아무리 영속하고 마르크스 사상이 훗날의 사상가들에게 아무리 비판당해도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 한 마르크스는 죽지 않는 사상가로 남을 것이다."(294-5)


제10장 J. S. 밀에게서의 문명사회론의 재건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제2차 선거법 개정(1867)으로 상층의 숙련 노동자들이 체제 내로 편입, 언론 자유의 신장과 초등교육 보급 등으로 국민의식의 동질화, 국민 여론의 획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 다수의 의견이 정치의 동향을 결정하는 대중민주주의가 등장

2. 사상의 문맥 : '최대 대수의 최대 행복' 원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깊이 바라게 되지는 않는다는 '철학적 급진주의' 비판, 사유재산을 부동의 사실로 보는 고전경제학은 일시적 유효성밖에 갖지 못한다는 비판, 여성인권(특히 참정권) 옹호


"밀과 토크빌은 동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대사회의 두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생활양식과 여론의 획일화·평준화, 나아가 그 최종적 귀결인 '다수의 전횡'이라는 문제였다. 토크빌은 유럽의 전통 사회와는 달리 시민 간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미국 사회 속에서 근대사회의 순수배양 과정을 목격하고 그 우월성과 함께 우려할 만한 문제 역시 일찌감치 지적했다. 밀은 그런 문제 제기에서 큰 시사를 얻어 토크빌적 분석을 통해 미국 사회와 공통된 문제를 낳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고찰하게 된다." "그러한 밀의 사고법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이나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론과도 달랐으며, 자본주의 문명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다수의 전횡'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위기를 자본주의 문명의 발전 자체가 준비하는 새로운 정치적·경제적 가능성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었다."(312-3)


"인간이나 사회의 역사적 가변성을 경시하고 그 가변성이 가져오는 사회의 다양성이나 발전 가능성에서 눈길을 거두는 보수적 정신이야말로 유럽 문명사회의 새로운 개량과 변혁을 가로막고 있는 원흉이라고 밀은 생각했다. 〈여러 가지 분명한 증거를 무시하려 하는 현대 일반의 경향이야말로 큰 사회문제들을 합리적으로 다루려 하는 태도에 대한 주요한 방해물의 하나요, 인류의 개선에 대한 가장 큰 장애의 하나라는 사실〉(『자서전』)이야말로 그가 단순한 '역사주의'와는 구별되는, '역사적 방법'에 기초한 사회과학의 혁신을 통해 호소하고 대항하려 한 것이었다." "밀이 〈여러 가지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는 노동자나 여성의 참정권, 종속으로부터의 여성해방이라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 일반의 〈편견은 오직 철학에 의해서만 타파될 수 있으므로, 편견이 자기편에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편견을 이겨내고 전진하기는 요원〉하다는 것이 밀을 지탱한 신념이었다."(315-6)


"밀은 로크에서 벤담, 아버지 밀에 이르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 설정 자체가 그의 시대에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밀의 시대, 즉 선거권이 국민의 다수에게로 확대된 시대에는 정치가가 겉으로는 국민 다수파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한편, 그들이 다수파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소수파를 희생시킨다는, 과거와는 정반대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벤담이나 아버지 밀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리는 이러한 귀결을 적극적으로 추인하는 것으로도 여겨졌다. 다수파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치권력의 존재는 소수자의 '고통'을 크게 웃도는 다수자의 '쾌락'을 실현함으로써 정당화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은 '소수 의견(minority)의 존중'과 '개성(individuality)의 존중'을 현대 '자유'론의 핵심으로서 설정한다." "강한 개성의 소유자는 동질화된 사회에서는 눈에 띄고 부각되어 배제된다. 바로 이것이 밀이 가장 우려하며 경고한 '다수의 전횡'이 끼치는 해악이었다."(326-7)


제11장 서구 문명의 위기와 베버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대량 소비 사회의 출현,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급증 등으로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화 진행, 이는 제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확산에 기여하는 한편, 반대 세력들 역시 사회개량주의 노선으로 선회하도록 자극(페이비언협회, 수정주의 논쟁)

2. 사상의 문맥 : 콩트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응용한다는 의미에서 '실증주의' 사회학을 주창, 실증주의는 제국주의와 대중화시대의 주요 사회사상으로 자리매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사상가들은 실증주의의 지배에 맞서 각자의 사상 확립

※ 사회과학의 자연과학화는 '물리학화(수리적 방법 중시)'와 '생물학화(다윈의 진화론 중시)'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베버는 유럽의 합리화 과정을 '세계의 탈주술화'라 부르고 그 본질을 '주지주의적 합리화'로서 파악한다." "이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우리의 삶의 조건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삶에 어떤 신비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작동할 까닭은 없다는 것, 오히려 모든 사물은─원칙적으로─예측을 통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다양화되고 개인화되어도 그 가치나 이념은 그 사람에게는 절대이자 '신'이다.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을 섬기면서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고 그 실현을 위해 희소한 경제재(화폐)나 정치재(권력)를 놓고 다툰다. 거기서는 필연적으로 '신들의 투쟁'이라는 아수라장이 출현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전쟁이나 혁명이 발발한다. 당시의 실증주의적 과학이 자본주의적 경제 경쟁과 제국주의적 권력투쟁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학이라는 것을 베버는 인식하고 있었다."(352-3)


"베버에 따르면 과학(학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직접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조건 아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칠 수는 있다. 즉, 어떤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떤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를 오직 과학만이 진정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가르쳐줄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 무한히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가치가 공존·경합하는 현대 세계는 제임스 밀의 '다신론'이나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임스 밀이나 보들레르의 정신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치를 믿고 학문에 종사하는 경우에 학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각자가 믿는 가치(신)의, 과학적 정합성에 기초한 실현을 돕는 것이며, 각자의 궁극적 가치와 그 실천적 선택이나 행동 사이에 모순이 있는지 여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나아가 모순이 있는지 여부, 사람이 어떤 행위를 선택할 것인지 여부는 학문이나 과학이 책임질 수 없는 궁극의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다."(352-4)


"러시아나 독일의 혁명주의자들은 타오르는 정열과 숭고한 목적('심정 윤리')에 휘둘려 정치운동으로 나아가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리즘에 호소하는 등 본래의 목적과는 모순되는 행동을 한다. 혁명 지도자에 의한 운동 참가자의 '영혼의 프롤레타리아화' 역시 불가피하다. 혁명가를 포함한 정치가는 이 모순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가('책임 윤리') 하는 것이 두 윤리 사이의 〈심연과 같이 깊은 차이〉이며 바로 그것이 베버의 최종적 문제였다." "불타는 정치 신념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모든 행동에 대한 일체의 결과책임을 한몸에 떠안고 게다가 필요하다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자기의 신념·심정에 따라 대담한 결단과 행동을 감행하는 인간이 바로 베버가 생각하는 이상적 정치가상이었다." "이러한 베버의 정치가론은 비단 직업적 정치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의회민주주의라는 전형적인 관료제적 조직에 의해 성립된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360-1)


제12장 '전체주의' 비판의 사회사상: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케인스, 하이에크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두 차례 세계대전의 전간기(戰間期)로서, 러시아혁명(1917), 세계 대공황(1929), 나치 독일의 성립(1933)이 발생, 세가지 사건 모두 19세기에 계속 성장·발전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그 질서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는 공통점

2. 사상의 문맥 : 자본주의 비판과 옹호라는 양극단의 입장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케인스, 하이에크를 한데 묶는 사상적 공통항은 '전체주의 비판', 이때의 전체주의는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헐거운 개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몽의 변증법』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본주의 문명은 부와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왜 ('문화산업'과 '반유대주의'라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 하는 문제이다." "'계몽'이 낳은 서구 문명의 궁극적 모습은 현대의 자본주의이다. 그것은 특히 '문화 산업'에서 집약된다. 거기서 목적과 방향을 잃은 '계몽'의 이성과 주체성은 '신화'의 '모방' 원리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미디어나 광고로 보급되는 유행에 따르기를 소비생활 속에서 강제당하며, 그 강제가 '강제'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지므로 거기에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는 이가 외려 '부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돌출된다." "반유대주의의 병리 역시 고도 대중 소비사회의 병리로서 파악해야 한다. 자본이 대중매체나 광고를 통해 만들어내는 획일적인 '자연'의 질서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에 대한 '모방'에 빠지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차별적인 낙인찍기의 대상이 되고 사회적 배제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383-4)


"『계몽의 변증법』의 전체주의 비판이 '좌우의 전체주의' 문제를 자본주의 문명의 병리적 현상으로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유럽 문명의 원리(노동에 의한 자연의 억압과 소외) 자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답하려고 한 것이라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전체주의 비판은 눈앞에 펼쳐지던 전체주의의 현실을 자본주의 문명의 사수라는 공통된 목적의 범위 안에서 해명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좌우의 전체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자본주의 문명을 지켜내면서도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적 부패 혹은 타락의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며 그 근원에 다가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공통된 틀 안에서도 두 사람의 사상적 입장은 대극적으로 달랐으며 이는 케인스의 '새로운 자유주의'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각각의 의미에서 '자유주의'의 변혁(케인스)이나 부흥(하이에크)을 주장했다. 요컨대 둘 모두 각각의 의미에서 엄연히 '자유주의자(리버럴)'이었다는 사실은 강조할 만하다."(384-5)


"케인스가 자유로운 사회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문명사회의 핵심 원리인) '개인주의'는 하이에크의 '참된 개인주의'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둘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된다. 개인의 자유롭게 다양한 삶을 옹호하기 위해 '전체주의'와 대결하는 자세도 그들 사이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케인스가 마지막까지 자유당의 입장을 견지하고 마르크스주의자, 국가사회주의자를 중추에 품은 영국 노동당의 체질을 엄중하게 비판한 것 역시 하이에크의 노동당 비판과 공명하는 성질을 갖는다. 거기서 남겨진 차이는 자유로운 사회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을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이며 그 정책적 구체화로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장려할 것인지 하는 문제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참된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로운 문명사회의 옹호라는 근본적 가치관을 공유하면서도 그 구체적 실현방법에 대한 견해를 (경우에 따라서는 180도) 달리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396-7)


제13장 현대 '리버럴리즘'의 여러 흐름


# 시대적·사상적 문맥

1. 시대의 문맥 : 종전 후 수립된 '냉전' 체제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냉전' 체제의 붕괴, 고르바초프는 정치적 민주화에 초점을 맞춰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촉발, 덩샤오핑은 정치적 자유·민주화 없는 경제개혁을 추진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수립

2. 사상의 문맥 : 인간의 상호 승인 욕구(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를 억압하던 사회주의 세계의 붕괴를 '역사의 종언'으로 판단한 후쿠야마, 소련·동유럽 붕괴 후에 세계가 크고 작은 여러 종교·민족 분쟁에 노출되는 '문명의 충돌'을 예상한 헌팅턴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승자(주인)는 노예의 노동에 의존해 점차 인간으로서 열악해지고, 패자(노예)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여 점차 주인과 대등해진다는, 상호 승인을 추구하는 인간상을 제시한 변증법


"하버마스의 제안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18세기의 '계몽적·커뮤니케이션적' 이성─시민적 공공권(public sphere)에서 귀족주의적인 공적 정치 세계에 맞서 형성된 자유로운 '여론'의 바탕─을 민주화하여 현대에 복권시키자는 것이다. 즉, 그는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치적·도덕적으로 승인할 수 있는 조건을 계몽적 이성의 민주화에 의한 '시민적 공공성' 혹은 '시민사회'의 현대적 재생이라는 전략으로써 재검토한 것이다. 그가 '화폐'와 '행정권력' 양쪽을 싸워야 할 상대로 명시한 것은 국가가 자본주의의 반사회적 양상을 관리·억제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입장을 자신이 기본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러한 국가가 관료제에 의한 '시민사회'의 억압 장치로 전화할 위험성도 강하게 의식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공공성'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연대')이 불가결하며 바로 그것이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자유와 정의를 실현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421-2)


"하버마스가 계몽 시대의 시민적 '공공권'으로 돌아가 '커뮤니케이션적 이성'의 복권을 제기한 것처럼, 롤스는 로크, 루소, 칸트의 '사회계약설'의 전통으로 돌아가 '공정으로서의 정의' 사상을 부활시키려 했다." "롤스는 고전적 공리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개인 간, 계급 간의 사회적·경제적 대립과 불평등의 존재를 전제하여 이를 사후적으로 '시정'한다는 기본적 사고방식에 입각해 있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평등·불공정한 사회의 현실을 정치와 정책의 힘으로 조금이라도 평등·공정하게 하려는 발상이다. 이에 대해 롤스는 고전적 사회계약설의 논리에 따라 법도 정부도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 상태'를 논리적으로 상정하고 거기서 전원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사회를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로서 구상한다. 현실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불평등·불공정이 발생할 수 없는 사회 구조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 근본적 원리가 바로 '정의의 두 원리'이다."(422-4)


# 롤스의 정의의 두 원리

1. 자유 원리 : 기본적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2. 평등 원리 :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고〉(차등 원리),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하에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도록〉(기회균등 원리) 편성되어야 한다.


"노직은 롤스와 마찬가지로 로크적 사회계약론을 기초로 논의를 전개했지만, 로크 이론에 좀 더 충실한, '노동에 의한 소유'의 논리를 기축으로 하는 '권원(權原) 이론'을 전개했다. 그것에 따르면 노직이 '최소 국가'라 부른 정당한 정치권력의 기원은 ① 무주물(無主物)을 획득한 결과로서의 소유물의 보호, ② 동의에 의한 소유권 양도의 보장, ③ 앞의 두 가지에 대한 부정행위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세 가지뿐이다. 이에 비해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공통선'의 사상 전통으로 돌아가 '올바름'이 '선'보다 우월하다는 롤스의 기본적 견해를 비판한다. 개인은 본디 다양한 정치적·종교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공동체 속에서 나고 자라며 거기서 살아감으로써 저마다의 자아를 확립한다. 공동체는 종교적·문화적으로 규정된 '공통선'의 세계이며 사람들은 '공통선'을 갖춰나가는 가운데 그 공동체 고유의 '정의'를 갖춰나간다. 따라서 '선(the good)'이야말로 '올바름(the right)'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430)


종장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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