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상사 한길그레이트북스 152
루이스 코저 지음, 신용하.박명규 옮김 / 한길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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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오귀스트 콩트


"콩트는 인류의 발전과정을 설명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진행과정도 예견할 수 있는, 일종의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을 만드는 일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를 지배해온 운동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이와 함께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사회적 안정성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할 여러 조건도 공식화해보려 노력했다. 사회운동과 사회정학─진보와 질서, 변동과 안정─은 그의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두 핵심을 이룬다. 인간사회도 자연계를 연구하는 것과 똑같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 연구되어야 한다고 콩트는 생각했다. 인간사회가 우주의 다른 영역보다 훨씬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긴 하지만, 기본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도 단지 이론적 관심만을 갖는 데서 벗어나 인간에게 궁극적으로는 구체적인 유익을 가져다주어야 하며, 인간조건의 개선에 중대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27-8)


"사회의 기본법칙을 발견하게 되면 인간의 오만한 자부심을 고칠 수 있게 된다. 즉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 순간에서도 사회적 행위는 사회유기체의 적절한 기능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을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인간은 사회적 법칙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경시킴으로써 주어진 한계 내에서 행동의 신중함을 얻을 수도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영역에서도 〈과학의 임무는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시키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그 법칙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과학적 정신이 일단 어느 정도 확산되고 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절대적 개념들로 사고할 수 없고, 사회의 특수한 조건과 관련시켜 사고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행위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목표를 말할 수는 없게 된다." "그는 영원히 타당한 율법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인간 이해의 끊임없는 발전과 과학적 작업의 자기수정적 성격을 강조했다."(29)


"콩트는 사회체계의 구성요소를 다루는 데서 개인을 기본적 요소로 보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과학적 정신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사회를 개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진정한 사회적 단위는 가족이다. 필요하다면 가족의 기반을 이루는 부부에게로 환원시킬 수는 있다. ······가족은 종족을 이루고, 종족은 국가를 형성한다.〉 개인의 행위와 성향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사회과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해 있는 것임이 밝혀진〉 인간의 사회성을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도출하려는 것은 특히 잘못된 것이다." "콩트는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하여 파악했지만, 그러한 비유적 사고가 초래하는 곤란함도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생물유기체는 피부로 둘러싸여 있어서 물리적 경계를 분명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단위체는 물리적인 수단으로 묶일 수 없고, 단지 정신적 결합에 의해서만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콩트는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36-7)


2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란 긴장과 갈등을 통해 사회변동을 야기하는 대립된 세력들 간의 동적 균형을 의미한다. 그의 견해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에게 진보의 추진력은 평화로운 성장이 아니라 갈등이었다. 즉 긴장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사회적 갈등은 역사과정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대부분의 18세기 사상가의 견해와는 대립되고, 대부분의 19세기 사상과는 보조를 같이한다." "마르크스는 상대주의적 사상을 지닌 역사주의자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상체계는 물론 인간 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조차도 각 역사적 시기에 특수하게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사상과 범주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는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일시적인 산물이다.〉 예를 들면 고전경제학자들이 지주, 자본가, 임금노동자를 사물의 자연적 질서 속에 영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 데 반해, 마르크스는 그러한 범주들을 특수한 역사적 시기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으로 간주했다."(83-4)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체계의 변화는 지리나 기후 같은 비사회적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요인들은 중요한 역사적 변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사상의 출현과 관련하여 설명될 수도 없다. 사상의 발생과 수용은 사상 이외의 요인에 달려 있다. 사상은 주된 동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물질적 이해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반영인 것이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상호연결된 전체로 간주하는 마르크스의 전체적 접근방식은, 물론 몽테스키외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지만, 주로 헤겔에게서 배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에게는 전체의 어떤 부분도─그것이 법조문이든 교육 제도든 종교나 예술이든─그 자체로서는 이해될 수 없기도 하다. 사회란 구조화된 전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발전해나가는 총체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공헌은 헤겔의 체계에서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던 변수, 즉 경제적 생산양식을 독립변수로 확정시킨 데 있다."(85)


"마르크스가 보기에 지배적 사상의 영원한 진리성이란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상의 지지자들의 계급이익이 직접적·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사상을 그것의 기능이란 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개개인의 생각을 사회적 역할과 계급적 위치와 관련시키려 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지배계급의 사상을 지배계급 그 자체와 분리시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한다면, 그 사상의 산출자와 생산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느 시대에는 이런 사상이, 어느 시대에는 저런 사상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리하여 개인과 사상의 원천이 되는 전체 조건과의 관계를 무시한다면〉 결코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마르크스는 어떤 개인들은 꼭 계급이익에 따라서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꼭 그가 속한 계급에 의해 모든 행동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과는 구별된, 범주로서의 인간은 계급이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95-7)


3 허버트 스펜서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스펜서에게도 관념은 부수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스펜서는 〈모든 시대와 나라에서의 보편적 의견은 그 시대와 나라의 사회구조와 함수관계에 있다〉고 했다. 스펜서에게 진화란 〈상대적으로 불확정적이고 응집성이 없으며 동질적인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확정적이며 응집력이 강한 이질적 상태로의 변동〉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보편적인 과정이라 여겨졌다." "생물학적 유추가 스펜서의 모든 사회학적 추론에서 특권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스펜서의 생물학적 유추가 가져온 가장 유용한 결과는, 진화적 성장은 모든 단위의 구조와 기능에 변동을 가져온다는 생각과 양적 크기의 증가는 분화(differentiation)를 심화시킨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그가 생각한 것은, 쉬운 예를 들면, 만일 인간이 갑자기 코끼리만 한 크기로 성장한다면 그의 신체구조에 중대한 수정이 있어야만 살아 있는 유기체로 존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148-9)


"스펜서는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사회적 법칙이 작용한다는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콩트와 일치한다." "그러나 콩트가 사회의 법칙을 발견하려는 목적이 사람들이 사회 세계 안에서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 데 반해, 스펜서는 연구의 목적이 집합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종교 지도자 같은 정신적 힘을 통해 사회를 인도하려 했던 콩트와는 달리, 스펜서는 사회학자는 사회가 정부나 개혁가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확신시켜야 한다고 정열적으로 주장했다." "스펜서가 국가가 지녀도 좋다고 생각한 유일한 힘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외의 모든 일은 계약을 맺거나 서로 간에 합의를 보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 스펜서의 견해에 따르면, 좋은 사회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 간의 계약에 기초한 사회다."(160-1)


"스펜서의 이론은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설명이란 점을 만족시켜줌과 동시에 그것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독선적인 요구도 만족시켜주었다. 이제 사회가 진화하면 할수록 그 사회는 도덕적으로도 우월한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것처럼 보였다." "스펜서의 학설이 널리 호응을 얻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의 주된 측면 중 하나는, 다수의 비교적 단순한 수공업이 사라지고 산업적 생산형태에서 나타나게 된 '소외'를 수반한 훨씬 복잡한 분업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점진적인 기능분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스펜서는 당시 일반적인 공리주의적 설명도식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진화적 필연성이란 생각은 도덕적으로 불안해 보이던 것들을 지적인 구미에 맞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이전의 사람들, 즉 현대 산업세계의 매력과 그것이 지금까지 환영받던 생활양식에 미친 파괴적 영향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던 사람들의 인지적 불협화음을 감소시켜주었다."(194-5)


4 에밀 뒤르켐


"뒤르켐은 사회현상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이며, 바로 이것이 사회학의 주된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라 보았다.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현상은 생물학적인 실체라 할 수 있을 개개인들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초기의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을 외재성과 구속성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성숙기의 뒤르켐은 특히 도덕적 원칙 같은 사회적 사실은 개인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의식 속에 내재화되어 있는 경우에만 개인의 행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인도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공식화에 따르면, 구속성이란 단순히 개인 의지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강압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에 복종하려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와 유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란 〈우리를 초월해 있는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어떤 것〉이다. 이 시기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을 사물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현상만이 아니라 행위자와 사회과학자가 의식을 통해 알게 되는 어떤 현상으로도 연구하려고 했다."(203-4)


"뒤르켐은 여러 종교집단 또는 직업집단 간의 자살률이 늘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집단들의 성격을 연구했고, 그 성원들 간에 응집력이나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집단 차원의 특징적인 방식들을 연구했다. 그는 높은 자살율을 나타내는, 즉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비교적 약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무규칙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구조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뒤르켐에게서 통합의 주된 요소 중 하나는 여러 성원 간의 상호작용 정도다. 유형화된 상호작용의 빈도는 가치통합의 정도, 즉 가치나 신념에 대한 성원들의 공유 정도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고도의 합의가 존재하는 집합체는 합의 정도가 낮은 집합체보다 일탈 행동이 적다." "성숙기의 뒤르켐은 사회의 모든 성원이 공통의 상징적 표상체계와 주변세계에 관한 공통의 가정을 공유할 경우에야 비로소 도덕적 통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것들이 없이는 사회는 쇠퇴하고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205-7)


"뒤르켐은 종교란 사회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신성화된 사회 자체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포이어바흐처럼 뒤르켐도 사람들이 함께 섬기는 신이란 사회가 갖는 힘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종교란 명백히 사회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신성한 것을 찬양할 때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사회가 갖는 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힘은 그들 자신의 실존으로부터 너무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형상화해보기 위해서 그들은 이것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종교가 그 본질에서 사회가 갖는 힘의 초월적 표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전통적 종교의 소멸이 꼭 사회의 와해를 뜻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전에는 종교적 표상이라는 중개를 통해서만 인지해오던 사회의 의존성을 이제는 직접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214-5)


5 게오르그 짐멜


"짐멜은 콩트나 스펜서처럼 사회를 하나의 사물이나 유기체로 보지도 않았고, '실질적인' 존재가 없는 편의적 명칭에 불과한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란 일정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개인들 간의 복합적 관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관계망으로 구성된다. 즉 〈사회는 상호작용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개인을 지칭하는 이름에 불과하다.〉 더 큰 초개인적 구조들─국가, 종족, 가족, 도시, 노동조합 등─은 비록 그 나름대로의 자율성과 영속성을 지니며 외부에 존재하는 권력으로서 개인에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국은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를 연구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영역은 사회성(sociation), 다시 말해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고 상호작용하는 특수한 유형이나 형식을 다루는 일이다." "대체로 그는 거대한 사회적 구성체의 바탕에 작용하는 개인들 간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의 유형(오늘날 '미시사회학'이라 불리는)에만 그의 관심을 제한했다."(268-9)


"짐멜은 개인과 사회 간에 널리 존재하는 변증법적 관계를 강조한다. 사회적 관계망에의 참여는 인간생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것은 또한 자아실현에 방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개성이나 자율성의 출현을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의 여러 형식은 각 개인에게 자신을 강요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그것은 자발적인 자유 활동을 억압함으로써 인간의 개성을 형태짓기도 하고 무력하게 하기도 한다. 제도적인 형식 속에서만, 또한 그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유를 얻을 수 있으나 그의 자유는 바로 이 제도적 형식 때문에 영원히 위협받게 된다." "짐멜은 전적으로 조화로운 집단이란 경험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성이란 언제나 두 범주─피상적으로 보면 대립 관계에 있는 '갈등'과 '합의'라는─의 상호작용이 가져오는 결과다. 다시 말해 둘 다 긍정적인 성분이며 모든 관계를 구조화시켜 주고 그들에게 지속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힘인 것이다."(276-7)


"짐멜이 보기에 현대사란 모순적인 두 과정, 즉 인간이 창조한 문화적 산물이 오히려 인간에 대한 지배력을 점차로 증대시켜가지만, 동시에 개인들은 철저한 속박과 종속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어가는 과정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분화란 동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균일적인 것에서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전통적인 조그만 세계의 일상적인 일에 대한 몰두에서 다양한 모습의 참여와 개방된 기회가 존재하는 넓은 세계로의 참여로 이행함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율성을 획득하고 그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 과학, 종교, 법률 등을 필요로 한다. 그는 이것들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문화적 기차들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애당초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그것들은 이제 객과적 형태를 지니게 되며 내적인 발전논리를 따라 그들의 근원이나 목적으로부터 점점 소외되어간다는 독특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283-6)


6 막스 베버


"베버는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에 대한 종합적인 과학으로 파악했다. 그는 분석의 초점을 개별 인간행위자에게 두었다는 점에서 사회학을 사회구조적인 학문으로 생각했던 이전의 학자들과는 달랐다. 스펜서는 유기체에 비유할 수 있는 '사회체'의 진화에 관심을 두었다. 뒤르켐의 주된 관심은 사회구조의 '통합'을 유지시키는 제도적 장치에 있었다. 사회를 보는 마르크스의 전망은 변화하는 사회구조와 생산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계급' 간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과는 반대로, 베버의 주된 관심은 인간행위자가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상호작용하는 동안 자신의 행위에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에 놓여 있었다." "그는 현대 서구인들의 특징은 사회적·역사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인간행위의 성격 변화라는 측면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역사의 '유물론적' 해석이나 '관념적' 해석에 몰입하지 않은 채 구체적으로 궁극적인 분석단위를 활동하는 개인으로 삼았다."(321-2)


"베버는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적 행위에 대한 '해석적 이해'를 추구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해석적 이해라는 개념은 역사학자 드로이젠과 딜타이 같은 학자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 그들에게 이 개념은 합리적-인과적 설명보다도 직관을 더 찬양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는 반대로, 베버는 이 개념 속에서 인과적 관계 확립의 첫 단계를 발견했다. 베버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행위의 주관적 의미는 분석대상에 대한 감정이입(Einfuehlung)과 추체험(Nacherleben)을 통해 더욱 잘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해석적 설명도 그것이 과학적 명제라는 위엄 있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과적 설명이 되어야 한다. 사회과학에서 '해석적 이해'와 '인과적 설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의미에 대한 즉각적 직관이 타당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과적 설명을 목표로 한 이론적 구조 속에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325)


"베버는 역사적 인과성과 사회학적 인과성을 모두 확신했다. 다만 인과성이란 말 대신 개연성이란 말을 사용했다." "베버는 인간의 행위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란 행위자가 미쳐 있을 경우뿐이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우리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행위들과 결합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유롭다는 주관적 감정은 예측불가능성이나 비합리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면밀히 살펴보면 합리적으로 예측될 수 있고 통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연성이나 우연이라는 베버의 개념은 자유의지론 같은, 일종의 형이상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벽한 인과적 연관을 설정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사회탐구에서 객관적이고도 경험적인 확실성을 얻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최선의 방법은 탐구대상이 된 현상을 결정짓는 데 참여한 다양한 인과적 연쇄를 추적해 보는 것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다."(330)


7 소스타인 베블런


"베블런은 고전경제학이 구성해놓은 '법칙'이란 개념은 시간성이 없는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배격하고, 대신 인간의 경제행위도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형성된 사회적 맥락에 입각해 분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경제행위가 모든 인류의 타고난 성향, 즉 공리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성향에서 나타난다고 보는 입장을 거부했다." "초역사적 일반법칙과 공리주의적 또는 쾌락주의적 계산을 중시하는 진부한 경제학과는 달리, 베블런은 새로운 경제학, 즉 역사적인 또는 그의 용어대로 진화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인간개념에 기초한 경제학을 주장했다." "개인에게 경제생활이란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수단들을 적응시켜나가는 누적적 과정이다.〉" "베블런에 따르면, 역사적 진화는 헤겔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방향도, 어떠한 최종단계도, 어떠한 완성도 있을 수 없는 맹목적인 누적적 인과관계의 체계〉이다."(382-3)


"현대에 관한 베블런의 핵심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가 피할 수 없는 대립, 즉 기업과 공장, 소유권과 기술, 금융형 직업과 제조형 직업─돈을 버는 자와 상품을 만드는 자, 판매기술과 제조기술 간의 대립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블런은 이 구분을 당시 미국에 널리 퍼져 있던 사고방식이나 진화론적 견해를 공격하는 주무기로 사용했다. 그의 동료 진화론자, 예를 들면 이전 스승의 섬너 같은 사람은 성공한 기업가나 대기업은 경쟁적인 투쟁에서 '최적자'임이 판명된 자들이므로 현대문명의 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블런은 금융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진화과정에서 적자생존한 사람이기는커녕 다른 사람이 수고한 기술과 혁신 위에서 자기 살을 찌운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유한계급은 산업조직 내부에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그것에 빌붙어서 살아가고 있다.〉 '산업계의 지도층'은 실제 산업활동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며, 오히려 이들은 진화를 지연시키고 왜곡시킨다는 것이다."(385)


"베블런은 인간사에서 경쟁의 사회적 원천에 대한 복잡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자존심은 동료에 의해 부여되는 평가의 반영에 불과하지만 경쟁의 원천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자기 동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쟁 문화 안에서는 누구나 익시온의 수레바퀴에 매이게 된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이웃을 능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베블런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경쟁과정에서 자신들이 독점한 높은 지위를 상징화시킴으로써 이익을 얻는 여러 수단을 분석했다. 과시적 소비, 과시적 유한,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의 과시적 표현 등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웃을 능가하여 그들로부터 높은 자기평가를 얻어내려는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베블런은 보았다." "각 계급은 그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까지 자기보다 나은 지배계급의 생활양식을 본받는다. 이것이 현대의 가난한 자들이 물질적으로는 이전 선조들보다 더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387-9)


# 익시온(Ixion)의 수레바퀴 : 익시온은 라티파이의 왕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에 매달리게 된 인물이다.


8 찰스 쿨리


"쿨리는 〈자아와 사회는 쌍둥이다〉라고 썼다." "쿨리는 사회세계의 대상이 주체의 정신과 자아를 형성하는 구성요소가 된다고 보았다. 쿨리는 데카르트적 사고가 만들어놓은 개인과 사회 간의 개념적 장벽을 제거하고 대신 양자의 상호교류를 강조하려고 했다." "쿨리는 개인의 자아는 타자와의 교제 속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개인 생활의 사회적 기원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교제에 있다.〉 쿨리에게서 자아는 처음에는 개인적이었다가 나중에 사회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제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정신에다 귀속시키는 자신에 대한 반영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고립된 자아라는 것이 있을 여지가 없다. 〈당신, 그, 그들에 대한 의식과 관련되지 않은······ '나'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아의 반영적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서 쿨리는 이를 거울에 비유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비추는 상대방에 대한 하나의 거울.〉"(439-40)


"쿨리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스펜서식의 생물학적 유추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과정의 체계적 상호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라 말할 경우 우리가 뜻하는 것은······여러 형태의 과정이 연결된 하나의 복합체이고, 그 각각의 과정은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을 얻고 성장할 뿐만 아니라 이 전체가 너무 잘 통합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에서 일어난 일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유기적 사회관을 바탕으로 쿨리는 고전경제학과 스펜서 사회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던 공리주의적 개인주의에 반대했다. 〈미국과 영국에는 개인주의 전통이 너무나 강해 이상적인 사회를 직접 논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개별화된 공식, 예를 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같은 것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공식은 인간본성에는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상적인 사회는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유기적 전체여야 한다.〉"(441-2)


"쿨리는 (가족, 아이들의 놀이집단, 이웃 등과 같은) 일차집단이 실질적으로 인간적 협동이나 친교를 생성시키는 보편적인 기반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려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떠나 동정과 사랑으로 동료들과 영원한 결속을 맺게 된다." "쿨리의 사상에서는 거울자아의 개념과 일차집단의 관념이 밀접하게 서로 얽혀 있다. 타자의 사상에 대한 민감성─쿨리가 성숙한 인간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했던 타자의 태도, 가치, 판단 등에 대한 감응성─은 일차집단의 가깝고 친밀한 상호작용 속에서만 배양되고 자라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집단은 특별히 인간적인 성장이 일어나는 산실이다. 성숙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던 사람이 일차집단 내에서 점차 타인의 요구나 바람에 물들어가면서 성숙한 사회생활의 상호작용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게 된다. 일차집단은 개개인에게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타자에 대한 민감성을 불어넣어 이기적 고립에서 벗어나게 한다."(443-4)


9 조지 미드


"미드에게 사회심리학은 〈사회과정 내에 놓여 있는 개인의 활동(activity)과 행동(behavior)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 개인의 행위는 오직 그가 구성원으로 되어 있는 전체 사회집단의 행위와 관련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의 개인적 행위는 그 자신을 초월하고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을 의미하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행위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초기 사회심리학이 개인심리학적 견지로부터 사회적 경험을 고찰했던 반면, 미드는 개인적 경험이 〈사회의 견지에서, 적어도 사회질서에 불가결한 의사소통의 견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시사했다. 미드의 사회심리학은 '개인의 견지로부터 경험에로의 접근'을 전제 조건으로 했으며, 따라서 존 왓슨의 행동주의(behaviorism)와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회심리학은 〈무엇이 이 경험에 속하는 것인가를 특별히 규정하려고 기도했다. 개인 그 자신이 하나의 사회 구조, 하나의 사회질서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다.〉"(478)


"미드는 몸짓(gesture)에서 사회적 행위가 실현되는 핵심적 메커니즘을 보았다. 그러나 미드는 동물적 수준에서 발견되는 무의미한(nonsignificant, 비자의식적인unself-conscious) 몸짓과 인간 상호교섭의 대부분을 특징짓는 유의미한(significant, 자의식적인self-conscious) 몸짓을 엄격하게 준별했다." "유의미한 몸짓은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대체로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는 언어의 상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에서 인간은 유의미한 몸짓을 사용하고, 상호 간에 서로의 태도를 해석하며, 그러한 해석에 의해 산출된 의미에 기초해 행동한다. 블루머의 말처럼, 〈상징적 상호작용은 해석, 즉 행위의 의미의 획득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정의(definition), 즉 다른 사람에게 그가 어떻게 행위해야 할 것인가의 지시 전달을 포함한다.〉 인간의 의사소통과정은, 정의와 재정의, 해석과 재해석을 통한 행위 노선의 반복된 결합으로서,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자아의식적 적응을 포함한다."(478-9)


"미드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의식과 자아의 발생에 대한 설명이다. 미드는 다른 사람의 역할을 취득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의 행위수행을 보는 능력을 유년기에 점차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의식과 자아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간의 의사소통은 오직 〈다른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상징이 자신 안에서 [일어날] 때〉만이 가능하다." "자아의 본질은 그의 성찰성(reflexivity)이다. 개인적 자아는 오직 그의 타자와의 관련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다. 상상력으로 타자의 태도를 취득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개인의 자아는 자신의 성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주체임과 동시에 객체인 자아는 사회적인 것의 본질이다. 각 자아의 특수한 개인성은 일반화된 타자를 형성하는 타자들의 태도의, 결코 두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은 특수한 조합의 결과다. 그러므로 개인성이 사회성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할지라도, 각자는 사회적 과정에 대해 개별적 공헌을 하게 된다."(480-3)


10 로버트 파크


"파크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는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전통과 규범의 체계에 의해 통제되는 개인이라는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좋다. 사회적 통제─적대, 갈등, 투쟁 등의 과정들을 질서짓는 데 이바지하는─는 〈사회의 핵심적 사실이자 핵심적 문제인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사회라는 것은 하나의 통제조직이다. 그것의 기능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존재하는 에너지를 조직하고 통합하며 지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학이란 〈개인들이 우리가 이른바 사회라 부르고 있는, 일종의 집단적인 존재 속으로 유도되고 또한 거기에 참여하도록 권유 받는 과정을 탐구하는 시각과 방법〉을 말한다." "하지만 사회적 통제는 결코 사회의 항구적 균형상태를 이루어내지는 못한다. 적대적 관계가 통제 메커니즘에 의해 조절된다고 하는 사실은 그것들이 근절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단지 잠재적인 것이 된다는, 즉 사회적으로 용인된 통로를 통하게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514)


"파크는 사회변동의 과정을 세 가지 단계의 연속, 즉 일종의 '발달사'로 이해했다. 이런 발달사는 불만에서 출발하여 소동이나 사회적 불안을 낳고, 이는 대중운동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새롭게 재구성된 제도적 질서 내에서 새로운 화해로 끝나게 된다. 사회적 불안은 〈기존방식의 붕괴를 나타냄과 동시에 새로운 집합행동의 준비를 나타낸다.〉 불안의 수행자인 군중은 파크가 말한 대로, 〈어떤 사건 때문에 일어난 우연한 흥분 때문에 모이게 된 단순한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낡은 질서에 대한 충성이 무너져버린 해방된 대중〉이다. 파크의 관점에서 보면, 군중이란 하나의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사회적 형성체(social formation)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군중이 (사회적 통제를 거쳐) 반성적인 공중(public)으로 변화하게 되면 거기서 새로운 사회적 실체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조건만 갖추어지면 관습의 굴레를 깨뜨리고 새로운 사회질서에 특징을 부여하는 새로운 화해의 길을 준비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519-20)


"파크에게 자아는 개인의 자기 역할에 대한 개념으로 구성되며, 이 역할은 다시 사회 내의 다른 성원이 이 역할의 근저를 이루는 지위를 인정해주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에 대한 개념이 자기 지위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고립된 개인이다. 완전히 고립된 사람, 즉 자신에 대한 개념이 자기 지위 속에 조금도 적절히 반영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파크의 주변인(marginal man) 개념은 자아개념을 한 개인이 집단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는 그의 견해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다. 아메리카의 물라토나 아시아의 혼혈족, 유럽의 유대인들처럼 주변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집단에 몸담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파크는 이러한 극단적 주변성이 고통과 함께 이익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문명과 진보의 과정을 가장 훌륭히 연구할 수 있는 길은 이런 주변인의 정신─문화의 변화와 융합이 진행되고 있는─을 통하는 것이다.〉"(523-4)


11 빌프레도 파레토


"물리-화학체계는 물이나 알코올처럼 개별적인 요소들이 모인 하나의 독립된 집합체다. 이 체계를 특징짓는 요인들은 상호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체계의 한 부분이 변하면 다른 부분들에도 그에 적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파레토는 사회체계를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혼합된 화학적 합성물들과 마찬가지로〉 이해관심, 충동, 감정 등이 뒤엉켜 있는 개인을 〈분자〉로 간주했다. 파레토의 일반사회학은 인간행위를 결정하는 수많은 변수 간의 상호의존적 변화상을 분석하는 틀로서 사회체계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거기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있다." "그는 경제학 특히 현대경제학은 인간행위의 특정한 하나의 측면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그것은 희소 자원을 얻기 위한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행위만을 다루고 있다. 파레토는 인간행위의 상당 부분이 경제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사회학으로 전향했다."(553-4)


"파레토는 사람이란 종종 논리적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자신의 행위를 '논리화'하려는, 다시 말해 일련의 관념체계의 논리적 결과로 보이게 하려는 강한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행위를 설명해주는 것은 그것을 합리화하거나 '논리화'하는 데 사용되는 신념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마음 상태,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인 것이다." "그의 주된 관심 중 하나는 비논리적 행위를 정당화·합리화시켜주는 비과학적 이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었다. 그는 형이상학적·종교적·도덕적 체계들을 낱낱이 부수어 분석했고, 그 결과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과학적 이론과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자유'니 '평등'이니 '진보'니 '신의'니 하는 개념들은 모두가 야만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던 신화나 주술적 마법만큼 해로운 것이라 했다. 그 어떤 것도 검증될 수 없으며 모두가 인간의 행위에 옷을 입히고 그것을 존경스럽게 꾸미는 데 봉사하는 허구라 주장했다."(555-6)


"파레토는 특히, 사람들이 자신은 논리적 행위라 생각했으나 외부에서 볼 때는 전혀 논리적 목표가 없는 그러한 행위에 참여하는 경우나, 행위자 자신이 추구한 것과는 다른 어떤 결과에 도달해버린 경우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의식이나 관행을 통해 폭풍우를 진압하거나 비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객관적으로 자연현상이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에 참여함으로써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현재 당하고 있는 실존적 고난과 재난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도취적인 힘이 생겨남을 경험할 수 있고,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체계의 유대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명백히 허구적인 신념체계도 고도의 개인적·사회적 유용성을 지니게 된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한 이론의 실험적 진리성과 그것의 사회적 유용성은 별개의 것이다.〉 〈경험과 합치되는 이론이 사회에 해로울 수 있고 경험과 맞지 않는 이론도 사회에 유익할 수 있다.〉"(563-4)


12 카를 만하임


"만하임은 문화적 대상 내지 지적 현상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을 구분했다. 즉 하나는 이들을 '안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내재적 의미를 연구자가 파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상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지식사회학의 방법으로, 사상가가 불가피하게 가담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의 한 성찰로서 '밖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지식은 존재구속적(seinsverbunden)이며 실존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만하임은 〈철학을······실재와의······관련 속에서 연구한다〉는 마르크스의 실용주의적 연구 방향을 일반화하려고 시도했으며, 사상의 체계가 그 제안자의 사회적 위치─특히 그 계급적 위치─에 의존하는 방법을 분석하려고 했다. 만하임은 마르크스가 그의 부르주아 적대자에 대한 논쟁적 공격의 도구로 주로 사용했던 것을 마르크스주의의 연구에도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분석도구로 전환시켰다."(613)


"만하임은 지식사회학을 사상의 사회적·존재적 조건화의 이론이라고 정의했다. 만하임에 따르면, 모든 지식과 사상은 사회구조와 역사적 과정 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떤 위치에 구속되는'(bound to a location) 것이다." "사상은 그 제안자의 역사적 시간과 사회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상이한 위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망적일 수밖에 없다." "만하임에 따르면, 지식의 존재구속성이란 명제는 이러한 존재적 요인들이 〈사상의 발생에만 관련될 뿐만 아니라 사상의 형태와 내용에도 침투해 들어가서 우리의 경험과 관찰의 범위와 강도, 즉······주체의 '전망'을 결정적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측면만이 편견으로 채워질 가능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특수적 개념'으로부터, 사상의 전체 양식과 전체 형태, 전체 내용이 모두 그 제안자의 사회적 위치에 구속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의 전체적 개념'으로 이행한 것이다."(614-5)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후, 영국으로 망명한 만하임은 사회계획 및 사회재건의 사회학 연구에 몰두했다." "대중사회의 조직 내에서 〈기능합리성─즉 고도로 계산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으로의 행동을 조직화하는─은 장족의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바로 이 진보가 실질합리성, 즉 사건들이 상호 관련성 속에서 지성적 통찰력을 드러내는 사상의 작용〉의 쇠퇴를 가져왔다." "만하임이 보기에 목적의식적 계획에 의존해 전체적으로 재건된 사회체계만이 서구문명을 구제할 수 있다." "〈미래의 심리학적·사회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는······조율되지 않는 대중(masses)과 군중(crowds)을 여러 형태의 집단(groups)으로 어떻게 조직화 하는가이다.〉 미래 시민의 물질적 복지만이 계획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의 정신적 복지까지도 더 이상 우연에만 맡겨둘 수 없다. 이것이 본래 자유주의자였던 만하임이 왜 해체에 대한 하나의 방파제로서 종교의 부흥까지도 옹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이다."(621-4)


13 피티림 소로킨


"소로킨은 인간의 상호작용과정이 세 가지 핵심 요소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1) 상호작용의 대상인 행위자로서의 인간, (2) 인간의 품행과 행동을 지도하는 의미, 가치, 규범, (3) 의미와 가치들을 일련의 행동으로 객관화시키고 통합시키는, 견인차이자 지휘자 역할을 담당하는 '물질현상' 등이 그것이다. 소로킨은 베버와 마찬가지로 의미, 가치, 규범에 대한 이해 없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므로 소로킨은 사회학적 사고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가 사회적 행동을 결정하는 초개인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상호작용하는 사람(인격)들과 이들로 구성된 총체적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 문화란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 가치, 규범의 총체다. 또한 소로킨은 문화는 제의적 대상이나 예술작품 같은 물리적 매개물에 의해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661-2)


"자신의 저서 『사회문화적 동학』에서 소로킨은 인간사회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탐구하는 것 이상으로 일련의 일반 명제들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구조 속에 존재하는 역사적 다양성을 조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소로킨은 인간의 진화에 대한 단선적 설명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슈펭글러처럼 반(半)생물학적 유추를 통해 문화에 일정한 주기가 있다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대신 그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비교적 일관성 있고 통합적인 총체로서의 문화적 세계관─그가 문화심성(mentalities)이라 부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전반적인 인류 역사에서 특정 기간에 그 의미를 제공해준다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찾으려던 것은 문화의 〈모든 요소를 관통하는 핵심[원리]〉다. 이 핵심원리는 〈파편들의 혼돈을 질서 있게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소로킨은 어떠한 문화도 완벽하게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문화란 언제나 완전히 조화될 수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663)


"소로킨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역사의 파도는 무작위적이거나 신들의 변덕이 아니라 특징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주요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어떤 문화도 실상은 이런 내적 필연성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한 운명에 종속된다. 하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화심성'의 사고유형은 자신의 전제를 스스로 파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소로킨이 명명한 '내적 변화'의 원리인데, 사회변동이 외부의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이다. 소로킨은 〈특정한 문화심성이 만개한 상태에 도달하면 그것은 '적응의 도구'로서 작동하는 데 점점 부적합해진다. 즉 사회구성원들과 전반적인 사회와 문화생활에 진정한 만족감을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문화체계는 이 지점에서 자신을 탄생시킨 전제에 제한당하며 문화의 관성을 넘어선다. 이 과정을 통해서 옛 문화는 스스로 사멸의 길로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체계가 생겨나는 것이다."(664)


14 윌리엄 토머스, 플로리안 즈나니에츠키


15 미국사회학이론의 최근 동향


"'기능주의분석'은 일반적으로 사회현상이나 구조 속에 배태되어 있는 특정 요소가 발생시키는 결과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이론적 관점을 말한다. 파슨스의 저작 『사회적 행위의 구조』는 194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이론적 발전을 주도한 기능주의분석의 이정표와 같다." "파슨스에게 인간행동의 핵심적 특성은 다음의 기본 틀을 근간으로 한다. (1) 결코 외부자극에 단순반응하거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닌, 자기선택과 판단이 가능한 행위자들, (2) 이 행위자들이 달성하려는 목표, (3) 행위자들이 목표추구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과 이들 간의 선택, (4) 목표의 성취와 대안의 선택에 제약을 가하는, 생물학적이거나 환경적인 조건에서 오는 상황적 제약, (5) 행위자들이 목표와 방법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규범과 가치 등이다. 즉, 인간행위자들은 일련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으나, 이 선택은 생물학적·환경적 조건과 가치와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에 의해 제약된다."(790-3)


"파슨스의 두 번째 주요 저작 『사회체계』는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이 행위를 제약하는 체계에 주목한다." "『사회체계』에서 파슨스는 제도화된 가치와 규범, 차별화된 지위에 맞는 차별화된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체계 또는 그 하위 체계의 바탕에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안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행위자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할, 충분히 동기부여가 된 행위자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체계에서 특정 지위에 있는 역할수행자들은 그들의 기대와 부정적·긍정적 규제를 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다른 행위자를 제어한다. 체계의 주요 가치와 규범이 유지되려면 적절히 사회화된 행위자들이 역할 요구를 수행할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다른 행위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러한 제도화된 요구를 수호하고 방어할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파슨스의 체계이론에서 가치와 규범이 이처럼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을 '규범적 기능주의'라고 부르는 데 큰 무리는 없다."(793)


"머튼은 이전의 기능주의이론이 가진 편협함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기능 못지않게 역기능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모든 사회현상은 필연적으로 기능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말리노프스키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의 모든 요소는 사회구조의 작동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는 보수적인 경향도 비판했다. 머튼은 기능적 대체물과 역기능이라는 쌍둥이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능수행을 위해 최적화된 것이라는, 한없이 낙천적인 생각을 타파하는 데 공헌했다. 그는 사회의 무질서, 사회문화적 모순, 다변화된 가치가 오히려 특정한 사회구조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머튼에게서 사회적 행위자들은 항상 사회학적 양면성, 모호함, 충돌하는 기대, 선택의 딜레마를 마주하는 존재다. 사회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가 아니다. 오히려 구조라는 틀로 사회를 명백히 통합된 하나의 전체로 보려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불일치와 부조화가 바로 사회의 특징이다."(7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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