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성찰하다 -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다니엘 코엔 지음, 김진식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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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20세기가 낳은 세 번의 좌절

1.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경제성장이 실종되자 단조로운 노동과 빈곤한 소유를 떨쳐버리고 풍요로운 부를 만나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2. 레이건 당선은 도덕성에 기반한 절제된 자본주의를 수립하겠다는 '구호'의 승리였지만, 그 실상은 무절제한 부의 불평등과 '탐욕'의 승리였다.

3. 후기산업사회를 지나면서 경제적 풍요도, 도덕적 기반도 잃어버린 시민들은 모든 형태의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1부 떠나다, 돌아오다


"20세기 초에 나온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기업의 성서로 통했다. 그는 작업 시간 단축을 위한 엄밀한 시간 관리를 위해 '작업장 스톱워치' 도입을 권한다." "테일러는 자신의 시스템이 인간적 비극을 낳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 스스로 〈우리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이 보인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새로운 생산 방식 덕분에 더 부유해진 노동자들이 작업장 밖에서는 번영의 결실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의 헨리 포드는 재빨리 이를 깨우쳤다. 노동자들을 힘든 연속 작업에 붙들어두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생하는 시간이 있지만 즐기는 시간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소비하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산업사회 밑바닥에 녹아들어 있는 이런 정신분열증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생겨나는 피로뿐 아니라 예상치 않았던 권태와 무기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소비 때문이었다."(21-2)


"(소비사회가 소시민들에게 '계산과 질서'로 된 행복을 약속해준다고 말한) 롤랑 바르트에게서 영감을 얻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는 근본적으로 긴장이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소비사회는 안락도 원하지만 동시에 비범함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그 자체의 수동성과 본질적으로 행동과 희생에 들어 있는 사회적인 도덕〉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미디어를 통해 삶을 각색, 극화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보여주는 평온함은 파렴치한 시장 거리를 간신히 빠져나온 대단한 위업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폭력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폭력을 본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온함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소비사회는 풍요롭지만 위태롭게 포위된 예루살렘 같은데, 이게 바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다. 베트남전의 공포 앞에서도 긴장을 풀고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이데올로기 또한 바로 이것이다.〉"(23-4)


"보드리야르의 분석을 보완한 앨버트 허시먼은 소비사회 인간의 무기력은 바로 번영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고 있다고 여길 때는 좋은 경제 상황으로 풍요가 기대치를 뛰어넘을 때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더 큰 만족과 더 큰 비범함, 더 많은 관대함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번영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이미 도달한 풍요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 만족이 끝나는 순간 소비 욕망은 재빨리 되살아난다. 저성장 시대에는 우선권의 본말이 전도된다. 위기를 접하면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이해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면서 경제적 불황과 정신적 불황이라는 두 방향의 불황이 전개된다. 허시먼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경제 사이클에 역행한다. 인간 욕망은 호경기에는 진정성을 원하고 불경기에는 물질적인 부를 원한다. 이 이론을 통해서 허시먼은 1960년대를 해석하고 또 경제 위기로 인해 소시민적인 안락의 요구가 강해지는 1980년대의 보수주의 혁명을 예상할 수 있었다."(24)


"1973년 10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욤키푸르 전쟁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 감축을 결정하자 유가는 급등한다. 갑자기 선진국의 경제성장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오일쇼크가 실은 더 깊은 파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난 뒤였다. 전후의 눈부신 성장기는 오늘날의 중국처럼 유럽이 미국을 따라잡던 시기였다. 유럽인의 생활 수준이 미국인의 생활 수준에 가까워질수록 성장은 조만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사실을 예측한 경제학자는 거의 없었다.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 향상은 미국에서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갤브레이스의 『풍요로운 사회』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영광의 30년은 생산 증가가 분배를 대신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지배보다는 시스템 조절 기구에 가까웠다. 경제 위기와 함께 노동자의 보루나 막강한 노동조합 권력 같은 것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노동계급은 괴멸하고 있었다."(52)


"탈공업화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말하자면 공업은 자기 성공의 희생물이라 할 수 있다. 예전의 농업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생산 이익은 마침내 그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조 비용을 절감한 기업은 처음에는 이익을 보았다. 자동차나 전자시계가 저렴해지자 누구나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세는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100퍼센트 가까이 자동차를 소유하면 높은 생산성으로 인해 재고용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산업이 쇠퇴하자 거기에 맞춰져 있던 사회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산업과 함께 기업 지도자와 엔지니어와 중견 간부를 거쳐서 현장의 노동자를 연결하던 견고하고도 연대감 있던 회사 조직도 사라진다. 전기와 내연기관이 제공해준 이점을 모두 소진한 자본주의는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임금 인상의 약속은 해고와 실업의 위협으로 바뀌고 회초리가 당근을 대체하게 된다."(53-4)


"68혁명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0년이 지난 1978년 5월 9일, 68혁명이 꿈꾸던 해방의 유토피아는 폭력으로 기울어졌다. 그날 이탈리아 정치인 알도 모로의 시체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되었다.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극좌 조직인 붉은여단에 납치된 지 55일째 된 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집권한 정당인 기독교민주당 대표였던 모로는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 사이의 '역사적인 타협'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정치 폭력은 치명적인 이념 속에서 길을 잃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기존 규범을 대체한 비공식 문화의 유행과 약물 사용 확산 같은 훨씬 더 일반적인 현상과 연관된 것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프랑스 혁명의 방향을 잘못 틀었던 것처럼 1970년대의 범죄와 폭력은 결과적으로 1960년대의 반문화를 망가뜨렸다. 외형적으로는 도덕적 질서의 복귀와 경제 위기의 해결책이라 천명하는 보수의 반혁명을 유발한 것이 바로 이런 범죄 폭력이었다."(66, 70-2)


"네오콘, 즉 새로운 우파는 〈시장을 정부 간섭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무관심과 쾌락주의와 도덕적 혼돈으로 빠지는 추세를 끝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힘을 얻었다." "레이건의 강점은 하나의 정책으로 월가의 엘리트와 백인 서민층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이 구원이다'라는 간단한 생각을 중심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는데, 이런 생각은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해야 한다'던 20년 후의 니콜라 사르코지의 말로 이어진다. 많이 일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가난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레이건은, 빈곤층이 빈곤한 원인은 빈곤층에 대한 원조 때문이라며 비난한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곧 '흑인'을 의미했다." "토머스 소웰과 월트 윌리엄스는 흑인들을 돕고 싶다면 흑인을 위한 긍정적인 차별 정책은 포기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불행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불행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유지시킨다는 것이다."(76-8)


"2008년 금융 위기는 보수 혁명 초기부터 누적되어온 불균형의 결과였다. 콘드라티에프 주기가 맞닥뜨린 큰 장애물은 상부 부유층의 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레이건이 주장하던 트리클다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는 탐욕이나 돈에 대한 열망이 특징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탐욕은 중동 지방의 페니키아 상인이나 향신료 무역으로 부유해진 베네치아에서 발전된 것이리라. 그러나 탐욕은 영국 그리고 미국과 북유럽에서 활개쳤다. 탐욕이 인간 활동의 기본 동인 중 하나임을 인정하면서 베버는 자본주의가 신뢰와 계약 관계를 구축하고 규칙, 법 책임 '윤리' 전체를 재조정하면서 탐욕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 혁명이 약속한 회복은 자본주의의 근본 가치인 청교도적 가치의 회복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수주의 혁명은' 탐욕의 승리'라는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92-7)


제2부 타락한 시대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승리의 축배를 들 때 서구에는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유령이 배회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89년 붕괴된 공산주의의 자리를 이 유령이 점령했다. 산업계의 다른 종교였던 공산주의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좌파는 서민을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위기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도덕 회복 정책으로 선출된 우파는 서민들을 탐욕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 서민들은 산업사회 붕괴의 피해를 정면으로 받았다. 산업사회는 결점도 지녔지만 적어도 사회 통합 환경을 제공하는 이점은 있었기 때문이다. 원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셸러에 따르면 원한의 완벽한 표현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셸러는, 그것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갑자기 참을 수 없게 되는 권력, 교육, 지위와 유산의 뚜렷한 차이와 함께 개인들은 똑같다는 형식적 평등성이 공존하는 오늘날 사회의 특별한 현상이 바로 원한이라고 분석한다."(103-4)


"〈뿌리깊게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모든 정책이 펼쳐지는데, 이상한 것은 그런 정책이 이런 불평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르펜, 헝가리의 오르바, 이탈리아의 극우 정파 리그당과 오성운동의 연정과 같은 유럽 포퓰리즘의 특징으로 도미니크 레이니에는 '자산 포퓰리즘'을 지적한다. 이 포퓰리즘은 유권자들에게 '그들을 위한' 복지국가와 '그들의' 도시와 '그들의' 일자리를 약속한다. 유럽 포퓰리즘은 그들이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라 주장하는 두 계층, 즉 위로는 사회 엘리트와 아래로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응집시킨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운동에는 엘리트 혐오라는 위를 향한 증오, 즉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는 성향은 있었지만, 외국인 혐오라는 두 번째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에서 우파에 뒤졌다. 스웨덴의 '민주당', 덴마크의 '인민당',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PO', 그리스의 '금빛 새벽당', 이탈리아의 '북부 리그당'은 모두 외국인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106)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원자화된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기존 질서를 증오하면서 응집된 감정적 반응이라 보고 있다. 경제 위기로 몰락한 중산층들, 즉 이전에는 그 안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서 그 자리를 상실하게 된 사람들이 원한의 무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심리학』에서 군중의 감정적인 충동을 따를 때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아렌트는 르봉의 자료를 참조하여 자신의 세대를 〈계급사회가 군중사회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세대라고 규정한다." "계급과 달리, 군중은 공동 이익을 의식하고 묶인 것이 아니다. 군중에게는 제한적이며 실현 가능한 정확한 목표 같은 특별한 논리가 없다. 〈군중은 정당이나 시의회나 직장 조직이나 노조 같은 공동 이익에 바탕을 둔 조직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 다른 정당들은 모두 포기했던 이런 군중 속에서 지지자를 모았다는 것이 나치의 부상 과정의 특징이다.〉"(120-1)


"사회학자 로베르 카스텔은 사회적으로 성공해 스스로 사회적 관습을 극복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지나친 개인주의'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서민 계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부족한 개인주의'를 구분한다. 카스텔의 이 구분은 오늘날 정치의 양극화를 잘 설명해준다." "이들을 가르는 기준은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더 이상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자와 어떤 빈자를 가르는 대각선이다." "르펜의 지지자들은 '고등 교육을 받지 않는 백인'이라는 트럼프의 지지자들과 닮은꼴이다. 사회의 능력주의를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의구심은 국가가 그들을 도와준다는 것마저 의심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가 그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부의 소득 재분배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재분배 없는 보호 정책'을 주장하는 역설적인 요청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벽'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 이들의 요청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123-4)


"원주민들이 이민을 꺼리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무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이민족에 대한 지속적인 증오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자 샬롬 슈바르츠는 수많은 나라를 연구하면서 이런 기질의 영향이 시공간에서 놀랍도록 충분히 분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말하면, 언제 어디에나 이상주의자가 4분의 1 정도 있고, 파시스트 또한 4분의 1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인간의 열정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열정이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이 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민 혐오에 대해 말하자면, 경제 위기 이전에는 없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위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위기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다른 세력과 동맹해 아무런 거리낌이나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다른 세력과 동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은 아주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140-1)


제3부 미래로 돌아가기


"산업사회와 이 사회를 지탱하던 하부 구조가 무너지면서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디지털 사회의 거대 서사가 기대고 있는 신화는 1960년대의 이상에서 나온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스스로를 '19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네오 펑크 해커의 후계자'로 소개하길 즐긴다. 정보혁명 개척자들에게 1970년대 문화는 자신들 이상의 지평에 실체를 부여하는 자유의 공간으로 비쳤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저항 문화 속에서 자란 대학생들이 부모 세대가 만든 세계의 표준화를 깨뜨릴 방법을 찾았던 것도 바로 1970년대가 열어준 그 지평 위에서였다. 〈대학은 확산과 사회 혁신의 핵심 요인이었다. 대학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행동과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하고 택한다.〉 역사학자 프랑수아 카롱은 〈1970~1980년대 사회의 기술화가 달성한 것은 바로 1960년대의 반체제 쾌락주의다〉라고 말한다."(157-8)


"오늘날의 현실은 컴퓨터 혁명이 꿈꾸었던 이상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실망은 새로울 것도 없다. 처음 전기가 발명되었을때, 그때까지 산업 생산의 혈액 역할을 하던 수많은 소규모 작업장이 전기로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동력원을 갖고 있지 않던 소규모 작업장들은 증기엔진을 장착한 '대규모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기는 생산 공정을 좀더 편리하게 조절하고 세분화함으로써 라인 생산을 하는 '대규모 공장' 회사를 탄생시키면서 소규모 작업장의 결정적 쇠퇴를 가져왔다. 디지털 사회에 대한 실망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규모의 경제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약속은 다시 한번 배신을 안겨주었다. 구글, 애플, 아마존은 과거의 일류 기업인 GM, 크라이슬러와 비교해보면, 주식 시가총액은 9배나 높지만, 직원 숫자는 3배 더 적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두려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 수의 감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182)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쟁은 종종 쳇바퀴를 돌 때가 많다. 비관론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계를 파괴한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나 리옹의 견직공처럼 항상 과거의 실수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이 실수를 되풀이하게 하는 일도 아주 쉽다. 인간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제방은 모두 허물어졌다. 로봇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복잡한 움직임으로 간주되던 운전도 곧 자동화될 예정이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봤던 공감도,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일본의 노인을 돌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디지털화가 일자리에 궁극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19세기 전반이 노동계급에게 특별히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경제사가들은 산업화 과정에는 오랜 임금 정체기가 동반됐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을 조엘 모키르는 '생활 수준의 역설'이라는 말로 설명했는데, 이때는 마르크스가 공장 생활에 대해 종말론적인 글을 쓰던 시절이다."(184)


"경제학자들은 어떤 기술이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특징짓기 위해서 '일반 목적의 기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증기기관이나 전기는 최초 발명가의 의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방식으로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증기기관은 탄광의 물을 펌프질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지, 승객을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를 이동시키는 데 사용될 예정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전기세탁기나 텔레비전이 발명되기 전에 전기가 나왔다. 원래 발명자가 자신의 발명이 어떻게 쓰일지 몰랐다고 해서 흠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에디슨은 축음기가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을 기록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기술 혁신들은 모두 일련의 후속 발명을 통해 성장했다. 컨베이어 벨트 같은 라인 작업은 전기가 작업 구성을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인간 노동의 미래는 사회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새로운 보완성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186-7)


"아이폰 세대는, 한 프랑스 영화에서 집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아 부모의 분노를 유발하는 주인공 이름에서 나온 탕기 효과의 희생자다." "'안전'은 이 세대의 강박관념을 말해주는 키워드다. '트라우마'는 자주 사용되는 또 다른 용어인데, 구글 도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트라우마라는 말은 1965년보다 2005년에 4배나 더 많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밀레니얼과 그다음 아이폰 세대의 차이가 생겨난다. 밀레니얼 세대는 낙관적이고 스스로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지만, 10년 후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은 아이폰 세대는 더 불안해져 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가령 교실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들은 자신의 연구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자신의 '소유'와 '박탈' 사이의 커다란 단절에 대해 마음 깊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은 또 예술이나 정치 참여와 같이 스스로의 활동에서 나오는 '본질적' 가치보다는 성공과 돈이라는 '비본질적' 가치에 더 관심이 많다."(196-7)


"아이폰 세대와 정치의 관계는 이상하다. 무관심과 극단적 참여라는 정치적 양극화를 오가는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는 어떤 사람의 사진을 수백만 번이나 돌아다니게 하고 또 날카로운 증오의 표현도 너무나 쉽게 전파시키고 있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54퍼센트)는 스스로를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를 '극좌'나 '극우'로 여기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역사적 시간과의 관계에도 변형이 일어난다. 프랑스의 젊은이들 가운데 13퍼센트만이 미래에 살고 싶다고 선언하고 있다. 엄청난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은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역사적 감각'이 온전히 자리잡고 있던 1960년대의 전망에 대한 엄청난 반전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현재는 더 이상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긴장의 순간이 아니고, 영원한 현재라는 일종의 늪지대와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전 세대의 역사주의를 오늘날의 '현재주의'가 대체한 것이다."(198-200)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 태어난 신세대의 역설은 인간이 이만큼 스스로를 많이 드러낸 적도 없지만 이만큼 가면을 사용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전통의 상속자로 자처하는 디지털 문화는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의 혼합체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어떤 이벤트를 경험하기보다는 널리 알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유비쿼터스라는 말처럼 동시에 어디서나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똑같은 약속을 하는, 친구 찾기 서비스인 틴더나 다른 소프트웨어가 제시해주는 것처럼, 하나의 대화에서 다른 대화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스크롤해서 넘어가기만 한다. 그래서 에스캉드-고키네와 네벵은 〈소셜 네트워크는 즉발적인 것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초자아와 자기 통제가 발현될 가능성은 차단하고 인간의 모든 충동이 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놓는다〉라고 결론짓는다. 호모 디지털리스, 즉 디지털 인간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오로지 〈우리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라〉고 위협하고 있다."(207-8)


결론: 딜런에서 딥 마인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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