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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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역사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기로 인도되었다. 내가 '필연의 정치학politics of inevitability'이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는 미래는 단지 더 많은 현재이고 진보의 법칙이 밝혀졌으며, 다른 대안은 전혀 없으므로 실제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다. 이 이야기의 미국 자본주의식 판본에서는 자연이 시장을 낳고, 시장은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는 행복을 낳았다." "필연의 정치학의 붕괴는 '영원의 정치학politics of eternity'이라는 또 다른 시간 경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필연성은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해 주는 반면 영원성은 한 민족을 피해자라는 되풀이되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앉혀 놓는다. 이제 시간은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똑같은 위협을 끝없이 되돌리는 원이 된다." "영원의 정치인들은 정부는 사회 전체를 원조할 수 없고 다만 위협으로부터 막아 줄 수 있을 뿐이라는 신념을 퍼뜨린다. 진보는 파멸의 운명에 길을 내준다."(29-31)


"역사는 필연성과 영원성 사이의 틈을 벌림으로써 우리가 필연성에서 영원성으로 표류하는 것을 막아 주고, 우리가 변화를 야기하는 순간을 보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정치사상이며 정치사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필연성에서 벗어나 영원성과 다투는 가운데 해체의 역사는 수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제도는 일정한 선善 개념을 육성하게 마련이며, 또한 그런 개념에 의존한다. 제도가 번성하려면 덕이 필요하고, 덕이 육성되려면 제도가 필요하다. 공적 생활에서 선악에 관한 도덕적 질문은 구조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덕을 무의미하고 심지어 우스운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이다. 필연성이 선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예상대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약속한다면, 영원성은 악은 언제나 외부에 존재하고 우리는 영원히 악의 순결한 희생자라고 안심시켜 준다. 우리가 선과 악에 관한 더 나은 설명을 갖기를 바란다면, 역사를 소생시켜야 할 것이다."(37-8)


1장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1883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이반 일린은 러시아가 법으로 통치되는 국가가 되기를 바랐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경험한 뒤, 일린은 반혁명주의자이자 혁명에 대항하는 폭력적 방법의 주창자가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볼셰비즘을 극복하기 위한 기독교 파시즘의 창시자로 변신했다. 1922년 소련이 탄생되기 몇 달 전 그는 고국에서 추방되었다. 베를린에서 글을 쓰면서 그는 신생국 소련에 대항하는 일명 백군 세력에게 강령을 제공했다. 이 세력은 오랜 기간에 걸쳐 피를 부른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맞서 싸운 뒤 일린처럼 유럽으로 정치적 이주를 한 사람들이었다. 일린은 후에 소련이 해체된 뒤 집권하게 되는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저술을 정식화했다. 그리고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2010년대에 푸틴은 일린의 권위에 의존해서 러시아가 유럽 연합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41-2)


"우리 시대의 필연의 정치학은 일린 시대의 필연의 정치학을 반영한다. 1980녀대 말부터 2010년대 초의 시기처럼, 1880년대 말부터 1910년대 초까지의 시기도 세계화의 시대였다. 두 시대의 전통적인 지혜는 수출 주도 성장이 계몽된 정치를 가져오고 광신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낙관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 뒤를 이은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 깨졌다. 일린 자신이 이런 추세를 보여 주는 초기의 본보기였다. 그는 젊은 시절 법치의 지지자였지만 극좌파에서 구사하는 전술에 경탄하는 한편 극우파로 이동했다. 일린은 파시즘이야말로 다가올 세계의 정치라고 생각했다." "일린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쇠퇴기에 접어든 서구가 순결한 러시아에 가한 형벌이었다. 언젠가 러시아는 기독교 파시즘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신과 다른 나라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스위스의 한 평자는 그의 저작들을 〈서구 전체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민족적〉이라고 규정했다."(44-5)


"이 철학자가 자기 눈을 가렸을 때 본 것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민족이었다. 순결함은 독특한 생물학적 형태를 띠었다. 일린이 본 것은 흠 하나 없이 순결한 러시아의 신체였다. 당대의 파시스트들을 비롯한 권위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일린은 러시아 민족은 하나의 피조물, 〈자연과 영혼의 유기체〉이자 원죄를 짓지 않은 채 에덴동산에 사는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러시아라는 유기체에 속하는지 여부는 개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세포들이 어떤 신체에 속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화는 러시아의 힘이 미치는 곳 어디에나 자동적으로 〈형제애적 결합〉을 가져다준다고 일린은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 인용 부호를 붙였는데, 러시아라는 유기체를 넘어선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된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입에 올리는 것은 러시아를 해하려는 적이 되는 셈이었다. 일린은 소비에트 이후의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49)


"일린은 '대속적'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spasitelnii'를 사용함으로써 정치에 심대한 종교적 의미를 풀어놓았다. 다른 파시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일린 역시 시독교의 희생과 대속 개념을 새로운 목적으로 돌렸다. 히틀러는 세상에서 유대인을 없애 버림으로써 멀리 있는 하느님을 위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전능한 조물주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믿는다. ······ 유대인들을 억누르는 한 하는 주님의 과업을 행하는 것이다.〉 정교회 신자는 대개 그리스도가 갈보리에서 희생해서 신자들을 구원한 것을 러시아어 'spasitelnii'로 말한다. 일린이 말하고자 한 것은 러시아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 타인의 피를 흘리는 〈용감한 희생〉을 하는 대속자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파시스트 쿠데타는 〈구원 행위〉, 즉 세계에 전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세계가 갈라져 있는 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상의 신성한 질서를 해치는 적들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51-2)


2장 계승인가 실패인가


"푸틴의 홍보 전문가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선구적으로 개척한 민주주의의 무대 연출은 수수께끼 같은 후보자가 조작된 위기 사태를 활용해서 실제 권력을 손에 넣는 방식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푸틴이 처음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치르는 동안 수르코프는 인기를 얻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 관리 가능한 갈등을 활용했다. 러시아 보안 부대가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한 극장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수십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인 2002년, 텔레비전 방송은 국가의 전면 통제를 받게 되었다. 2004년에 지방의 한 학교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포위된 뒤, 선출직 주지사 직책이 폐지되었다. 수르코프는 일린의 말을 인용하며 러시아인들은 아직 투표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는 〈현대 민주주의의 조건 아래서 살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르코프는 러시아가 (국가를 형성할 능력이 없는) 다른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에 비해 주권에서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78)


"민주주의는 통치자를 바꾸는 절차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인민 민주주의〉, 그 후에는 〈주권 민주주의〉처럼 민주주의에 형용사를 붙여 한정하는 것은 그런 절차를 없애려는 시도다. 처음에 수르코프는 과감하게 양다리를 걸치려고 하면서 올바른 사람을 권좌에 앉힘으로써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정치 문화에서는 인물이 제도라고 말하고 싶다.〉 일린도 똑같은 술수를 부린 적이 있다. 자신의 대속자는 인민을 대표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적 독재자〉라고 부른 것이다. 수르코프가 러시아 국가를 떠받히는 기둥이라고 말한 것은 〈중앙 집권, 인격화, 이상화〉였다. 국가는 통일되어야 하고, 국가의 권위는 한 개인에게 부여되어야 하며, 그 개인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수르코프는 일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러시아인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는 만큼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일린이 말하는 '자유'란 개인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집단에 자신을 내던질 자유였다."(79-80)


"2000년에 푸틴이 허구의 영역에서 나타난 신비로운 영웅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면, 2012년에는 법치를 짓밟는 복수의 파괴자로 돌아왔다. 자신이 주목을 받는 가운데 선거를 도둑질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 덕분에 러시아 국가는 지옥의 변방으로 떨어졌다. 2012년에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따라서 승계 위기의 발단이었다. 집권자가 또한 미래를 없애 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영원해야 했다. 1999년과 2000년에 크렘린은 체첸인들을 없어서는 안 될 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체첸은 패배했고, 체첸의 군벌 카디로프는 푸틴 체제에서 중요한 성원이 되었다. 2011년과 2012년의 부정 선거 이후 국내에서 정치적 비상사태가 항구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외부의 적도 항구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영원의 정치학은 허구적이기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을 필요로 하고 만들어 낸다. 2012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를 파괴하려는 유럽 연합과 미국의 계획이 그런 허구적인 문제가 되었다."(84)


"푸틴의 막역한 친구인 블라디미르 야쿠닌이 2012년 11월에 장문의 논설로 발표한 견해에서 보면, 러시아는 영원히 적들의 음모에 맞서고 있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줄곧 역사의 경로를 좌지우지하는 음모였다. 전 지구적인 이 집단은 러시아의 출산율을 떨어뜨림으로써 서구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동성애 선전을 유포했다. 동성애자 권리의 확산은 러시아인들을 자본주의의 글로벌 지배자들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무리'로 뒤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정책이었다. 2013년 9월, 러시아의 한 외교관이 중국에서 열린 인권 회의에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다. 동성애자 권리는 러시아나 중국 같이 고결한 전통 사회를 손쉽게 착취하기 위해 글로벌 신자유주의 음모 세력이 선택한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쯤이면 이미 러시아 의회에서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부정할 것을 주창하는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통과된 상태였다."(85-6)


"크렘린이 처음 보인 충동적 반응이 민주적 반대파를 글로벌 남색과 결부시키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반응은 시위대가 외부 강대국, 그것도 여성을 외교 수장으로 내세운 미국을 위해 활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항의 시위가 시작되고 3일 뒤인 2011년 12월 8일, 푸틴은 힐러리 클린턴 때문에 시위가 시작되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클린턴이 신호를 보냈다.〉 12월 15일에는 시위대가 외부 세력에게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증거가 아니었다. 일린이 주장한 것처럼, 만약 투표가 외국의 영향력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푸틴이 할 일은 외국의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그것을 활용하여 국내 정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요구에 안성맞춤으로 들어맞는 적, 국가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는 적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현실의 적을 논하다 보면 실제적 약점이 드러나고 예비 독재자들의 불완전성이 발각될 것이기 때문이다."(88)


"2011년과 2012년 시위에 대해 푸틴이 세 번째로 보인 반응은 일린식의 영원의 정치학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전파하면서 외국의 침투라는 위협으로만 고통을 받는 순결한 유기체로 러시아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2005년 푸틴은 비밀 국가 경찰이 대공포 시기에 처형한 러시아인 수천 명의 사체를 화장한 수도원에 일린의 주검을 이장했다." "일린의 몸과 영혼은 자신을 쫓아낸 러시아로 돌아왔다. 분명 일린은 소비에트 채제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체제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 그것은 역사였다. 그리고 일린에게 과거의 사실들은 순결의 신화를 축조하기 위한 원료에 불과했다. 일린의 견해를 조금만 수정하면 소련을 그가 목도한 대로 러시아에 가해진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순결한 러시아로 보는 게 가능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체제를 세계의 적대에 맞서는 순결한 러시아의 대응으로 상기할 수 있었다. 러시아 통치자들은 소련의 적을 이장하는 식으로 소비에트의 과거를 기렸다."(92-5)


3장 통합인가 제국인가


"제국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유럽 통합은 충분히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정치적 모델들의 반향과 힘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언제나 다른 대안들이 등장한다. 2013년 러시아 연방은 〈유라시아〉라는 이름 아래 통합의 대안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제국으로 만들고 다른 모든 나라는 민족 국가로 두자는 것이었다." "2013년, 더 커다란 유럽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유럽 각국 역시 점점 해체될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해체의 한 형태인 유럽 연합의 해체는 또 다른 해체, 즉 유럽 각국의 해체로 이어질 공산이 컸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러한 점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유럽 지도자들과 달리 그들은 1930년대에 관해서 공공연하게 논의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 기획은 1930년대에 그 뿌리가 있었는데, 당시는 유럽의 민족 국가들이 바야흐로 전쟁으로 빠져들던 때였다."(103-4)


"후기의 일린은 법치를 거부하고 그 대신 파시즘의 자의성proizvol을 선호했다. 러시아가 법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무법성proizvol을 애국적 덕목으로 제시했고, 푸틴도 같은 궤적을 따랐다. 2000년에 처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법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과 독재라는 개념은 서로 모순되었고,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2012년에 대통령에 출마할 때는 유럽의 러시아라는 개념을 거부했는데, 법치를 선호하는 외부의 유인을 무시한다는 뜻이었다. 그 대신 'priozvol'이 대속적 애국주의redemptive patriotism로 제시될 것이었다. 오늘날 러시아어로 표현되는 작동 개념은 'bespredel', 즉 무경계성인데, 지도자가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 자체가 범죄자들의 은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 논리에서 보면, 푸틴은 실패한 정치인이 아니라 민족의 대속자였다. 유럽 연합의 시각으로는 통치의 실패가 될 수 있는 현상이 러시아에서는 순결함으로 경험될 것이었다."(119-20)


"2011년과 201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푸틴은 러시아를 일반적 기준에서 해방시키고 러시아의 특이성을 다른 나라들에까지 확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러시아를 다른 나라들이 잃어버린 문명적 가치의 원시적 원천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러시아 도둑 정치의 개혁이라는 문제는 무의미해질 것이었다. 러시아를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인도하는 횃불로 찬미해야 한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이 유럽 통합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싶었다. 이제 유라시아로의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 2011년과 2012년에 민주적 절차를 포기한 것은 유럽 연합 가입의 기본 기준을 조롱한 셈이었다." "그리하여 대외 정책이 국내 정책을 대신해야 했고, 외교는 안보보다는 문화를 중심에 두어야 했다. 사실상 이는 러시아의 질서를 운운하면서 러시아의 혼돈을 수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해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121-2)


"유라시아주의에 레프 구밀료프가 기여한 것은 그의 종족 기원 이론, 즉 민족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구밀료프는 인간의 사회성은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몇몇 인간 유기체는 남들보다 공간 에너지를 흡수해서 다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특별한 지도자들은 푸틴이 2012년 연설에서 언급한 '열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족 집단의 창건자가 되었다. 구밀료프에 따르면, 각 민족의 기원은 따라서 우주 에너지의 폭발로 추적할 수 있다. 이 폭발에서 1000년 이상 지속되는 순환이 시작되었다. 서구 민족들에 활기를 불어넣은 우주선은 먼 과거에 방출되었기 때문에 이제 서구는 목숨이 다했다. 러시아 민족은 1380년 9월 13일 우주선 방출에서 생겨났으며 따라서 젊고 활력이 넘쳤다. 구밀료프는 또한 유라시아 전통에 특별한 형태의 반유대주의를 추가했는데, 이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유대인과 서구 양쪽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125-7)


"알렉산드르 두긴(1962년생)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소련의 반체제 젊은이로 기타를 치면서 수백만 명을 오븐에 넣어 구워 죽이자고 노래했다. 그의 필생의 사업은 러시아를 파시즘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두긴은 전형적인 훈계조 서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서구는 루시퍼가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는 문어발의 중심부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문명의 한 요소로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유라시아에 관해 말하기 한참 전에 두긴은 독립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유라시아적 운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규정했다. 2005년 두긴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해체와 러시아화를 촉구하는 청년 운동을 창시했다. 두긴이 보기에, 우크라이나의 존재는 〈유라시아 전체에 거대한 위험〉을 나타냈다." "일린의 기독교 전체주의, 구밀료프의 유라시아주의, 두긴의 〈유라시아〉 나치즘에서 나온 개념들은 푸틴의 담론에서 그대로 나타난다."(128-31)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는 2013년 여름, 그러니까 러시아가 이성애의 수호자 역할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비난을 자초한 그 순간에 푸틴을 지지한 두 번째로 유명한 미국인이었다(첫 번째는 러시아가 〈세계에서 유일한 백인 권력〉이라고 말한 백인 우월주의자 리처드 스펜서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미국에서는 정치인으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인터넷 사업가로서 후에 수르코프와 가까워지는 인물인 콘스탄틴 리코프는 이미 트럼프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당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는 그릇된 주장을 펼치면서 자기 나라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장기 캠페인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2013년 6월 18일, 트럼프는 푸틴이 〈새롭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것인지 궁금해 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는 2016년 6월, 러시아측으로부터 자신들과 협력해서 클린턴 선거 운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렇게 대꾸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145-7)


# 러시아의 유럽연합 해체 공작

1. 인터넷 토론장이나 국제 텔레비전 네트워크 RT 조직을 생성하여 유럽 연합의 쇠퇴를 강조하는 여론 조성

2.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코틀랜드의 분리주의,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극우파 지원

3. 인터넷 트롤troll들, 트위터 봇bot들을 활용하여 사이버 상의 정치적 논의들(특히 브렉시트)에서 분열 조장


4장 새로움인가 영원인가


"신생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신생 우크라이나에서도 1990년대는 소비에트 자산의 탈취와 영리한 차익 거래 계획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신흥 올리가르히 계급이 내구성 좋은 파벌들로 뭉쳤는데, 그중 어느 파벌도 한 번에 2, 3년 넘게 국가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이 바뀌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 상대적인 호시절에 경제 개혁을 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럽 연합이 사회 진보와 공평한 부의 분배를 가로막는 부패의 치료책으로 여겨졌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적어도 말로는 유럽 연합 가입을 일관되게 장려했다. 2010년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맡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유럽적 미래의 가능성을 갉아먹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그런 미래 개념을 장려했다."(168)


"우크라이나 정치 체제의 결함이 무엇이든 간에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은 폭력 사태 없이 정치 논쟁을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2000년 인기 있는 탐사 보도 기자 게오르기 곤가제가 살해된 것처럼 예외적 사건이 생기면 그때마다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세기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폭력을 목도한 나라에서 21세기의 시민적 평화는 자랑스러운 성취였다. 정기적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전쟁이 사라진 것과 나란히 평화 집회의 권리는 우크라이나인들 스스로 러시아와 자기 나라를 구별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따라서 2013년 11월 30일 전투 경찰이 마이단 광장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이 구타를 당했다는 뉴스가 키예프 전역에 퍼졌다. 〈첫 번째 핏방울〉이 흐르자 이에 자극 받은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2013년 12월의 항의 시위에서 주목한 것은 유럽 문제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적절한 정치 형태, 〈품위〉나 〈위엄〉의 문제였다."(171)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마이단 광장의 역사는 차가운 돌바닥에 몸을 던진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인데, 시위를 진압하려 한 실패한 시도의 역사와는 다르다. 전에 우크라이나 내의 시위대에게 유혈 사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유혈 사태가 벌어진 뒤에야 이 나라에 주목했으며, 또 모스크바는 이 사태를 논거로 삼아 러시아군을 보내 훨씬 많은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마이단 광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들이 벌인 시위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 즉 우크라이나의 번듯한 미래를 지키는 문제였다. 그들에게 폭력은 참을 수 없는 한도의 표지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폭력은 몇 초 혹은 몇 시간의 분출로 일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몇 초나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마이단을 찾았고, 그들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는 스스로를 조직하는 새로운 시간 감각, 새로운 형태의 정치로 드러났다."(174-5)


# 마이단 광장에서 피어난 새로운 형태의 정치

1. 자기 조직화와 연대감으로 무장한 시민 사회의 출현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광장에서 이루어진 증여의 경제

3. 이례적인 증여의 환대를 넘어선 자생적인 복지 국가

4. 공통의 시련을 겪으면서 형성된 마이단 광장의 우정


"2014년 2월 초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에서 회람된 한 비망록은 〈야누코비치 정권은 완전히 파산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러시아 국가가 외교, 재정, 선전 차원에서 이 정권을 지원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군산 복합체와 나라 전체에 있는 〈가스 수송 시스템에 대한 지배권〉으로 정의되었다. 러시아의 주된 목표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해체〉가 되어야 했다. 제안된 전술은 폭력 사태를 통해 야누코비치와 반정부 집단 양쪽 모두를 불신하게 만드는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를 침공해서 국가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망록에는 러시아의 이런 개입에 대해 구실을 제공하기 위한 선전 전략 세 가지도 들어 있었다. (1)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억압받는 소수 러시아계를 위해 연방 국가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2)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이들을 파시스트로 규정한다. (3) 침공을 서구가 부추긴 내전으로 규정한다."(185-6)


"2014년 2월 24일을 시작으로 1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특수 부대원들이 표식 없는 군복 차림으로 크림반도를 관통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기지를 나서는 순간 그들은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을 벌이는 셈이었다. 키예프는 지휘 계통이 불분명하고 추가적인 폭력 사태를 피하는 데 집중하던 바로 그 순간 기습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는 크림반도에 있는 군에 저항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2월 26일 밤에 이르러 러시아 병사들이 심페로폴에 있는 주의회 건물을 장악하고 러시아 국기를 내걸었다. 기르킨에 따르면, 동시에 벌어진 심페로폴 공항 접수 작전은 그가 지휘했다. 2월 27일, 푸틴의 유라시아 고문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가 크림에 전화를 걸어서 신정부 수립을 조율했다. 조직범죄와 관련된 세르게이 악시오노프라는 이름의 사업가가 크림의 총리로 선포되었다. 2월 28일, 러시아 의회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 연방에 통합하는 것을 승인했다."(189-90)


"크림반도의 함락에 용기를 얻은 러시아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도 똑같은 시나리오를 되풀이했다. 3월 1일, 글라지예프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남부의 각 주도에 있는 동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쿠데타 계획을 도와주었다. 푸틴의 유라시아 고문은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에서도 크림반도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도네츠크주에서는 5월 1일에 파벨 구바레프라는 러시아 네오나치가 〈우크라이나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을 '인민 주지사'로 선포했다. 크림반도에 파견된 말로페예프 부하 이인조인 이고르 기르킨과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4월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보로다이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자신이 상상한 새로운 인민 공화국의 총리를 자임하게 된다. 그가 내세운 논거도 비슷했다. 〈이제 우크라이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기르킨은 전쟁장관을 자임하면서 러시아에 돈바스를 침공해서 군사 기지를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195-6)


5장 진실인가 거짓인가


"크렘린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첫 번째 인력으로 러시아 침공의 선봉에 선 이들은 정치 기술자들이었다. 수르코프가 지휘하는 전쟁은 실제가 아닌 영역에서 진행된다. 그는 2014년 2월에 크림반도와 키예프에 있었고, 그 후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문제 고문으로 일했다. 러시아의 정치 기술자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홍보 책임자였다. 2014년 여름,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새롭게 창안된 두 '인민 공화국'의 '총리'는 러시아 언론 관리자들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에 이어 동남부를 침공한 러시아의 행동은 전쟁 역사에서 가장 정교한 선전 캠페인을 수반했다. 선전은 두 수준에서 작동했다. 첫 번째는 사실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서 명백한 사실, 심지어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무조건적인 순결 선포로서 러시아가 어떤 악행에 대해서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전쟁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고, 이런 주장은 철저하게 정당화되었다."(217)


"푸틴은 이 포스트소비에트 세계의 사람들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아니라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당연히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는 자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았고, 따라서 군사력으로 대항하는 대신 국제적 대응을 촉구했다. 푸틴이 추구하는 목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인들과 함께 자발적인 무지의 유대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인들도 푸틴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게 아니라 어쨌든 그를 믿어야 했다. 기자 찰스 클로버가 레프 구밀료프에 관한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푸틴은 거짓말이 러시아의 정치 계급을 분할하기는커녕 오히려 통일시킨다고 제대로 가정했다. 더 크고 명백한 거짓을 말할수록 국민들은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성을 보여 주고, 크렘린 권력의 거대하고 신성한 수수께끼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한다.〉"(218)


"사실성을 겨냥한 푸틴의 직접적 공격은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서구 언론사 간부들은 2014년 2월 말과 3월 초 며칠 동안 러시아의 침공에 관한 보고를 입수했지만 푸틴의 열렬한 부인을 대서특필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서사는 미묘하지만 심대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보다는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관해 무슨 말을 하기로 선택했는지의 문제가 되었다. 실제 전쟁은 리얼리티 방송이 되었고, 푸틴이 주인공 노릇을 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 드라마에서 조연 역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구 언론사 간부들이 비판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들의 비판은 크렘린의 주장을 자신들이 의심한다는 큰 틀 안에서 존재했다. 후에 푸틴이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인정했을 때, 그의 발언은 서구 언론이 자신이 벌인 쇼에 배우로 참여했음을 입증해 주었을 뿐이다."(219-20)


"러시아 텔레비전은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의 도구였다. 방송은 러시아 특수 부대, 첩보 기관, 사령관, 지원병, 무기 등의 존재를 부인했다. 기르킨이난 보로다이, 안튜페예프 같은 저명한 러시아인들이 방송 화면에 나와 〈노보로시야〉 활동가나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행정가라고 소개되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사실 우크라이나 지원병들이라고 주장한 바로 그 방송 채널들은 이 남자들이 러시아의 것이 확실한 첨단 무기 시스템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영상을 내보냈다. 해외에 판매되지 않아서 러시아 바깥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최신식 러시아 탱크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나타났다. 러시아인들은 자국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그런 사실적 질문의 답을 찾아서는 안 되었다. 만약 해설자의 목소리가 러시아인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그 지역의 것이라고 설명하면, 이제 그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야 했다."(238)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유럽,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밑바탕에 깔린 논리는 '전략적 상대주의'였다. 러시아 특유의 도둑 정치와 상품 수출 의존을 감안할 때, 이 나라의 국력은 커질 수 없었고, 기술 역시 유럽이나 미국과의 격차를 메우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약화시키면 상대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유럽과 떼어 놓기 위해 침공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일으킨 정보전은 유럽 연합과 미국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가진 것 중 러시아인들에게 없는 것은 통합된 무역 지대와 승계 원리가 존중받는 예측 가능한 정치였다. 이 두 가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러시아가 손실을 입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적의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략적 상대주의에서 관건은 국제 정치를 (이득보다 비용이 커서 전체적으로 손실이 누적되는)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으로 변형시켜 능숙한 선수가 다른 모든 이들보다 손해를 덜 보게 만드는 것이다."(260)


"한편, 시리아 전쟁 난민과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이민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메르켈은 예상치 못한 입장을 취했다. 독일은 많은 수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웃 나라들보다도 많고, 독일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많은 수였다." "2015년 9월 28일 유엔에서 한 발언에서 푸틴은 유라시아를 유럽 연합과 '조화'시키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난민을 발생시키기 위해 시리아에 폭격을 가한 뒤 유럽인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갈 것이었다."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메르켈의 결정에는 나치 독일이 자국의 유대인 시민들을 난민으로 내몬 1930년대의 역사가 동기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대응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메르켈이 난민을 원한다면, 우리가 제공해 줄 것이며 이 문제를 활용해서 메르켈의 정부와 독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작정이다. 러시아는 난민 자체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와 강간범이라는 이미지까지 난민들에게 덧씌웠다."(263-4)


"2014년과 2015년 영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존재하는지 여부,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인지 여부에 관한 토론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다. 그와 같은 정보전의 승리는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의 주된 승리는 전장이 아니라 유럽인과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거둔 것이었다. 극우 정치인들은 러시아의 메시지를 퍼뜨렸고, 좌파 언론인들은 극우 정치인들을 중앙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유럽 연합과 미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에서 드러나는 파시즘과 허위는 트럼프의 선거 운동도 아우르는 것이었는데, 좌파로서는 익히 간파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6년에 좌파에서 트럼프와 그의 정치적 허구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패배하고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며, 공화당은 눈이 멀고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정치적 허구를 제공한 건 러시아인들이었지만 그것을 요청한 것은 미국인들이었다."(283-4)


6장 평등인가 과두제인가


"영원의 정치학은 허구적 인물을 권력으로 이끄는 봇과 트롤, 유령과 좀비, 사자를 비롯한 비현실적 존재들의 환등상phantasmagoria으로 가득하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영원의 정치학에서 불어 내리는 바람인 구속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러시아의 영원의 정치학에서 피어오르는 탄화수소 연기인 도둑 정치적 권위주의kleptocratic authoritarianism와 만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환상이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생명체〉를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트럼프는 혼돈과 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사이버 무기의 탄두였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트럼프의 정체를 잘 알았다. 미국인들은 다른 꿈을 꾸었겠지만, 모스크바의 주요 인물 가운데 트럼프가 유력한 거물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서 돈을 대 준 덕분에 원래 그만큼 실패한 기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상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287-8)


"첩보는 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반면 방첩은 상대방이 보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가공의 인물을 위한 작전 같은 '적극적 조치'는 상대로 하여금 그 힘을 자기 약점에 가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이 2016년 사이버전에서 러시아에 유린당한 것은 러시아의 '적극적 조치' 실행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술과 생활의 관계가 완전히 바뀐 탓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은 이런 말을 듣는다. 〈당신은 텅 비게 될 거야. 우리가 당신의 내면을 모두 쥐어짜 공허한 존재로 만든 다음에 우리 자신으로 당신의 속을 채울 테니까.〉 2010년대에는 냉전 시기처럼 소비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마음속에 조성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를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졌다. 러시아 경제는 물질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은 인격의 조작을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지자 러시아가 승리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293-4)


"십중팔구 대다수 미국인 유권자가 러시아의 선전에 노출되었다. 2016년 11월 선거 직전에 페이스북이 가짜 계정 '580만' 개를 폐쇄한 사실은 인상적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페이스북의 계정 100만 개 정도가 수천만 개의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구를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대개 허구인 특정한 기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인들의 뉴스피드News Feed에 밀어넣을 수 있었다. 러시아가 가장 분명하게 개입한 한 사례는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가 페이스북 페이지 470개를 개설하고서도 미국 정치 단체나 운동 집단이 만든 것처럼 위장한 것이었다. 이중 여섯 개가 페이스북에 올린 각 콘텐츠에 대해 3억 4000만 개의 '공유'를 받았는데, 전부 합치면 수십억 번이 공유된 것이었다. 미국인 1억 3700만 명이 투표를 했는데, 1억 2600만 명이 페이스북에서 러시아 콘텐츠를 보았다. 나중에 페이스북은 투자자들에게 무려 '6000만' 개의 계정이 가계정이라고 털어놓았다."(299-300)


"러시아는 이미 미국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를 해킹했기 때문에 투표율 모델을 입수할 수 있었고, 이를 한 러시아 활동가에게 전달했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러시아의 선전에 무작위로 노출된 게 아니라 인터넷 사용 습관으로 드러난 정보 수용성에 따라 노출되었다. 사람들은 맞는 것처럼 들리는 내용을 신뢰하는데, 일단 이렇게 신뢰하면 조작이 가능해진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한층 더 강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러시아가 이미 프랑스와 독일에서 써먹은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주제는 미국에서도 전개되었다. 미시간과 위스콘신같이 결정적인 주에서 러시아는 반무슬림 메시지에 화들짝 놀라서 투표장으로 가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광고를 내보냈다.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에 표를 던질 만한 유권자들은 미국 무슬림 사이트를 표방하는 곳에서 친클린턴 내용의 메시지에 노출되었다. 러시아의 친트럼프 선전 또한 난민이나 강간범과 연결되었다."(300)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서 트위터 봇을 활용해서 탈퇴 투표를 부추긴 바 있는 러시아는 이제 미국에 봇들을 풀어 놓았다. 최소한 수백 건의 사례에서 유럽 연합을 겨냥해 활동해 효과를 거뒀던 바로 그 봇들이 이번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했다. 해외 봇 트래픽의 대부분이 클린턴에 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선전이었다. 2016년 9월 11일 클린턴이 병에 걸리자 러시아 봇들은 사건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증폭시키면서 트위터 상에서 #힐러리와병#HillaryDown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하나의 추세를 형성했다. 이 트롤과 봇들은 또한 여러 결정적인 시점에 트럼프를 직접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러시아 트롤과 봇들은 트위터에서 도널트 트럼프와 공화당 전당 대회를 칭찬했다." "트럼프가 승리한 몇몇 중요한 경합 주를 보면, 선거를 며칠 앞두고 봇 활동이 강화되었다. 선거 당일에는 봇들이 #민주당과의 전쟁#WarAgainstDemocrats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불을 뿜었다."(302)


"(이메일 해킹 등을 통해) 사적인 통신 내용을 '선별해서' 공적으로 공개하는 행위는 전체주의적 함의를 갖는다. 전체주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선을 지워 버린다." "확실히 숨겨진 것일수록 궁금해지며, 폭로의 짜릿함은 해방감을 준다. 일단 모든 게 당연시되면, 토론은 공적인 것과 알려진 일에서 비밀스러운 것과 알려지지 않은 일로 탈바꿈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다음에 폭로될 것을 호시탐탐 노린다. 분명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공직자들은 우리가 그들에 관해 속속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인물이 된다. 그렇지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지탱 불가능한 압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 까발려 봐야 효과가 없는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 같은 가공물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306)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직접 우정훈장Order of Friendship을 받은 사람이 미국 국무장관이 된 것은 전례가 없었다. 렉스 틸러슨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공직을 그만두기 전에 틸러슨은 대대적인 미국 외교관 축출을 감독했다. 대상이 된 집단은 푸틴이 적으로 간주하는 이들이었다. 틸러슨은 국무부를 혼돈에 몰아넣음으로써 대외적으로 힘이나 가치를 투사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상당히 축소시켰다." "트럼프 본인은 자신의 선거 운동과 러시아 사이의 연계에 대한 모든 설명을 거듭해서 〈날조〉로 규정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현실로부터 날조 자체를 보호해야 했다. 그리하여 트럼프는 2013년에 트럼프타워 불시 단속을 지시한 연방 검사 프릿 바라라를 해임했다. 마이클 플린을 발탁하지 말라고 경고한 법무장관 권한 대행 샐리 예이츠도 해임했다. 그리고 미국의 주권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연방수사국장 제임스 코미도 해임했다."(318-9)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대방보다 수백만 표를 많이 얻은 후보가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모스크바의 시각에서 보면 이 체계는 활용할 수 있는 취약 지점으로 나타난다. 소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과 소수당이 정부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면, 다수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 참정권을 한층 더 제한해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의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체제의 대표성을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외국 정부는 바로 그런 유혹을 강화하면서 체제를 권위주의로 끌고 간다. 러시아가 2016년 미국 선거에 개입한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당선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구조에 압력을 가하는 행동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승리했다는 사실보다 체제 전반이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것이다."(330-2)


"공화당원들이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당파성의 격정은 필사적인 부정과 무대응의 공모로 바뀌었다. 그해 9월 맥코넬은 러시아가 벌이는 사이버전에 관한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보고를 들었지만 과연 사실인지 의문을 표명했다. 정보기관 수장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성명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을 지시했다고 판단합니다. 러시아가 추구하는 목표는 미국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손상시키고, 클린턴 국무장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맥코넬은 공화당으로서는 러시아의 사이버전에 맞서 미국을 방어하는 것을 힐러리 클린턴을 도우려는 시도로 여기리라는 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 순간 러시아는 1년 넘게 미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335-6)


"허구의 영역에서 등장한 지도자는 양심의 가책이나 사과가 없이 거짓을 말한다. 그에게는 비非진실이 생활 양식이기 때문이다. 허구의 창조물인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비진실로 공적 공간을 채우고 거짓말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면 진실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처음 99일 중 91일 동안 트럼프는 적어도 한 번씩 거짓임이 뻔한 주장을 했다. 처음 298일 동안 그는 1628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한번은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24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인터뷰어가 발언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1분당 한 번씩 한 셈이다. 모든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는 진실을 말하는 게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는 공직에 출마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통치했다. 정책 입안자보다는 분노 유발자로서 통치한 것이다."(349-50)


에필로그


"덕은 그것을 바람직하고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로부터 생겨난다. 제도들이 파괴될 때 덕은 스스로 드러난다. 상실의 역사는 따라서 복원의 제안이 된다. 평등, 개인성, 승계, 통합, 새로움, 진실 등의 덕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 모든 덕은 인간의 결정과 행동에 의지한다. 하나를 공격하면 모든 것이 공격받는다. 하나를 강화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확인함을 의미한다." "오직 집단적인 공공 정책만이 개인을 확신하는 시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각자 개인인 우리는 함께, 그리고 따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투표한 적이 있고, 투표를 할, 다른 사람들과 민주주의 안에서 손을 맞잡으며, 이 과정에서 승계의 원리와 시간 감각을 창조한다. 이러한 것이 보장되면, 우리는 우리 나라를 여러 나라 중 하나로 보고,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그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조화든 새것으로 엣것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인간의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움이 없으면 덕은 소멸한다."(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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