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이해하기 1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66
욘 엘스터 지음, 진석용 옮김 / 나남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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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1장 설명과 변증법


1.1. 방법론적 개체론


"방법론적 개체론이란 모든 사회현상의 구조와 변화를 원칙적으로 오직 개인만 포함하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학설을 말한다." "첫째, 이 학설은 개개인의 행동 수준에서 이기심을 전제하지 않으며, 합리성을 전제하지도 않는다. 개개인의 행위에 이러한 특징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우에도, 오로지 방법론적 고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지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둘째, 방법론적 개체론은 오직 외연적 맥락에서만 사용된다. 〈자본가들은 노동계급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감정에 관한 진술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 계급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말은 개별 노동자들이 취한 행동의 결과에 관한 복합적인 진술로 환원될 수 있다. 셋째,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많은 속성들, 예를 들면 '강력하다'와 같은 속성들은 본질적으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며, 한 개인에 관한 정확한 기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언급을 포함할 수 있다."(21-3)


"반면 방법론적 전체론에서는 설명 순서상 개인에 우선하여 존재하는 초개인적 실체가 있다고 가정하고(이러한 가정 자체가 방법론적 전체론이 설명을 시도하는 목적이다), 그러한 더 큰 실체들의 자기규제의 법칙, 혹은 발전의 법칙으로부터 설명을 진행한다. 여기에서 개인의 행동은 집합유형으로부터 도출된다. 이것은 종종 (둘 사이에 논리적 연관이 없는) 기능적 설명의 형태를 띠게 된다. 어떤 행동들이 집합적으로 이익을 낳는다면, 바로 그 객관적 이익이 그 행동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주장할 경우에 그렇게 된다." "방법론적 개체론은 사회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관한 학설이지, 사회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학설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그러나 공산주의 단계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그리고 일관되게 개인을 설명의 중심에 놓지는 않았다."(24-6)


1.2. 의도적 설명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소비자 선택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요강》의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노동자는] 특별한 대상에 구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요, 특정한 욕구충족 방식에 구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소비영역은 질적으로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 오직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소비자로서의 노동자가 가진 선택의 자유는 그를 자율적인 존재, 책임 있는 존재로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는 《자본론》에서 노동력의 가치라는 개념이 전제하는 '고정된 소비계수' 가정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고정된 소비계수'는 본질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그대로 답습해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화가 유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그쳐야지, 그것이 방법론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32-3)


"마르크스는 경제학에서 의도적 설명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특히 자본가는 자본주의적 과정의 〈의식적 조연〉일 뿐이며, 그것을 규제하는 법칙들을 제정할 뿐이다. 자본가의 소비조차도 〈자본의 재생산비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노동자가 능동적 인간, 예컨대 더 큰 소비집합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의 소비집합의 수동적 구현자일 뿐이라는 견해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종종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자본가는 그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시장에서 생존의 필요에 의해 '강제'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떤 의미로 보나 도저히 선택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길을 따라간다. 현재 가는 길이 임계 수준 이하로 이윤의 하락을 가져올 때, 오직 그때에 이르러서야 능동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그 대안을 현상(status quo)과 비교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생산자 행위에 대한 합리적 선택 모형으로부터의 근본적인 결별이다."(34-5)


"마르크스는 국제정치 연구에서 행위자가 공식적으로 공언한 동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을 확대했다. 첫째, 그는 종종 그 행위가 기여하게 된 역사적 목표의 관점에서 정치적 행위를 설명했다. 예를 들면 터키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러시아가 〈무의식중에 현대의 '숙명'인 혁명의 마지못한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인도 지배도 아시아에서 근본적인 혁명을 야기할 〈역사의 무의식적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그 의도와 목적을 가진 구체적인 행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기능적 설명이다. '역사'라는 허공에 떠 있는 행위자가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그의 저작에는 음모론적 설명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즉 겉으로 드러난 의도 외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방식은 경우에 따라 과장된 견해를 가져온다. 예를 들면 파머스턴 경은 영국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러시아의 가신〉이었다는 식이다."(41)


1.3. 인과분석의 두 종류


# 인과분석의 두 종류

1. 준의도적(sub-intentional) 인과설명 : 선호를 비롯하여 신념, 정서 등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인과설명

2. 초의도적(supra-intentional) 인과설명 : 다수의 개인적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집합적 사회현상에 대한 인과설명


"신념 형성 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는 내 생각으로는 이런 것이다. 즉 경제 행위의 주체들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견해를 전체적으로도 타당한 것처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일 조건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인과관계가 무한정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면, 노동자는 '누구든' 최저 생계수준의 노동자로 간주될 수 있지만, '모든' 노동자가 최저 생계수준에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인식적 실패를 가져오는 국지·전역 오류이다. 이것은 행동의 실패를 초래하는 국지·전역 혼동과 관계는 있지만 서로 다른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의 가장 강력한 부분일 것이다. 즉 마르크스는 분권화된 경제에서는 자동적으로 합성의 오류─어떤 집합에 속하는 원소들의 성질과 그 집합 전체의 성질이 동일하다고 판단하는 오류─가 발생하며, 그 결과 이론과 실천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44)


"근대 사회과학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일군의 개념들이 있다. 맨더빌의 〈개인의 악덕, 공공의 이익〉,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헤겔의 〈이성의 간지(奸智)〉, 머턴의 〈잠재기능〉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개념의 공통적인 생각은, 개인들은 자기 자신의 목표를 위해 행동하지만, 이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어떤 결과들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일군의 행동과 그 행동들의 집합적 결과 사이에 성립할 수 있는 관계는 다음 중 하나이다. ① 행위자들이 알고 있는 결과가 산출된다. 각자는 다른 사람의 행위 및 관련된 목표와 수단 간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가정 아래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② 행위자는 의도한 결과를 산출하지만, 그 일은 의도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다." "③ 행위자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일어난다. 이것은 다른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그릇된 가정(이 상호 간에 존재하는 경우)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관련된 기술적 문제들을 오판하여 생길 수도 있다."(49-50)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연발생적인 위기를 체계적으로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위기에 대한 기업가들의 대응행동이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집단적으로는 재난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조안 로빈슨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역설〉이다. 그 역설이란 이런 것이다. 각 자본가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야 고이윤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자본가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는 고임금이 지급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가 생산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역설의 밑바탕에는 케인즈가 연구한 유효수요의 위기가 깔려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종류의 위기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경제체제에서 노동자의 두 가지 역할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각 자본가에게,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를 제외한 전체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것〉이다."(54-5)


1.4. 마르크스의 기능적 설명


"의도적 설명은 행위의 '의도된' 결과들을 설명으로 제시한다. 기능적 설명은 '사실상의' 결과들을 설명으로 제시한다. 특히 행위를 기능적으로 설명하는 일에는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혹은 어떤 것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논증이 포함된다.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이 설명 형식에 들어 있는 명백한 역설 하나를 제거해야 한다. 그 역설은,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 일어난 일로써 어떻게 그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피설명항이 개별적인 사건이어서는 안 된다. 오직 지속적인 행위유형이어야 한다." "이 설명들은, '단순히' 그 사건이 어떤 행위주체(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행위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르크스는 이런 종류의 설명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런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다."(57-8)


"마르크스는 역사가 공산주의의 도래라는 목표를 향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행위의 유형들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사건들까지도 그 목적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를 가져오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해야 했고', 이리하여 노동자는 공산주의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신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의 역사철학은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도래에 유리한 결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한다. 다른 곳에서는 사회제도와 행위양식들은 계급지배에 미치는 안정화 효과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마르크는 두 개의 음역(音域)에서 연주한다. 즉 때로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촉진하기 때문에, 또 때로는 자본주의의 존속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일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결과론'적 요소도 가미되는데, 여러 형태의 기능주의적 마르크스주의들이 여기에 감염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유형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현저하게 나타난다."(60)


1.5. 변증법


"마르크스에게서 발견되는 헤겔적 추론은 세 가닥으로 되어 있는데, 셋 중 어느 하나도 변증법적 방법(the dialectical method)이라는 이름을 '독점적으로' 가질 수는 없지만, 각각 '일종의' 변증법적 방법(a dialectical method)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가닥은 준연역적 절차로서 《요강》의 주요 부분과 《자본론Ⅰ》의 앞부분에서 이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헤겔의 《논리학》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둘째 가닥은 엥겔스가 정식화한 변증법으로서 부정의 부정 '법칙'과 양질 전화의 '법칙'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가닥은 사회적 모순들에 관한 이론으로서 주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끌어온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지적인 가치가 거의 없고, 두 번째 것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지적 가치가 있고, 세 번째 것은 사회변동 이론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좀더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식에서는 변증법적 방법이 일상적인 '분석적' 언어로 진술될 수 있다."(71-2)


# 마르크스 변증법의 세 갈래

1. 변증법적 연역 : 헤겔의 존재론적 논의의 잔해들에서 경제적 범주를 이끌어낸 것인데, 경제적 범주들(생산-상품-교환가치-화폐-자본-노동)의 역사적 등장 순서를 논리적 연쇄로 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2. 변증법의 법칙

  2-1. 부정의 부정 법칙 : 연속되는 과정 p-q-r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셋 중 어느 두 가지도 양립할 수 없다. (2) p에서 직접 r로 갈 수 없다. (3) q에서 p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예)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2-2. 양질 전화의 법칙 :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에 불연속적 함수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물이 얼음이 되는 경우)와 비선형 함수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두 명의 마멜루크 인[중세 이집트의 노예 기병]은 세 명의 프랑스 인을 물리치지만, 1천 명의 프랑스 병사는 1,500 명의 마멜루크 인을 물리친다)가 있다.

3. 모순론 : 여러 사람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믿음은 그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각각 진실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볼 때 모두의 믿음이 다 진실일 수는 없다. 예) 개별 자본가가 이윤을 높일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 집합적으로는 이윤율의 하락을 가져오는 경향


제1부 철학과 경제학


제2장 철학적 인류학


2.1. 인간과 자연


"외부 세계는 인간의 존재와는 관계없이, 인간의 존재에 앞서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다." "그렇지만 《신성가족》에 나와 있는 유물론의 언급에서도, 혹은 《경제학·철학 원고》에서 그가 실재론, 자연주의, 인간주의라고 부른 것들에 대해 정력적인 반론을 제기한 논의에서도 일관성 있는 이론은 찾을 수가 없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은 '물질'에 설명적 우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유물론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이 어느 의미로 보더라도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한다고 보는 견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이나 언어도 기술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생산력이며, 사회변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코헨의 말처럼, '물질어'의 대응어는 '사회적'이지 '정신적'이 아니다. 생산력을 '전체적으로' 물질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회적 생산관계와 대립하는 것이지 정신의 산물 및 활동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98-9)


2.2. 인간의 본성


"인간의 '욕구'(needs)는 마르크스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욕구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이 대상은 일반적인 대상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어떤 특정한 책이 아니라 (일반적 대상으로서의) 책을 욕구할 수 있다. 특정한 책에 대한 심리적 태도 같은 것은 욕망(a desire)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어법에 따른 것이다. 마르크스는 각각의 욕망이 〈욕구의 기초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모든 욕구는 욕망의 충족을 통해 충족된다. 그러나 그 반대는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적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은 욕망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체물이 없는, 특별한 대상을 향한 욕망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특정한 옷에 대한 욕망이 옷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른 욕구, 예를 들면 위신에 대한 욕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시계가 있어도 동일한 위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시계가 바로 대체물이 될 수 있다."(119-20)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소외는 마르크스 저작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이다." "《경제학·철학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정신적 소외의 측면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면, 노동의 소외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노동이 노동자들에게 '외적인' 것이라는 사실, 즉 노동이 노동자 자신의 내적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 (···) 그러므로 노동자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자기를 느끼고, 일을 할 때는 자기가 없다고 느낀다. 일을 하지 않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일을 할 때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노동자가 일을 할 때 〈자기가 없다고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가? 부정적인 느낌의 존재인가, 아니면 긍정적인 느낌의 부재인가?" "두 상황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외적 부정과 내적 부정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현재 문맥에서 이러한 혼동은 치명적이다. 소외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야 할 집단적 행동 간의 관계는 어느 문장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129-30)


"소외 문제는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소외가 증가하면 소외된 사람들이 점점 불행해지고 불만을 느끼고 반항하기 쉬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외가 증가한다 해도 불만은 증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현실적 욕구가 일정할 경우, 욕구충족의 객관적 가능성이 커진다고 해도 빈곤이 증대되지는 않는다. 욕구충족의 가능성이 증대해도 욕구가 감소한다면, 소외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빈곤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외는 현실적 욕구의 미충족 상태에서도 발견될 수 있고, 혹은 충족 가능한 욕구의 비충족 상태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소외는 집합행위를 야기하지만, 후자의 경우 오히려 집합행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노동자들의) 욕구 역시 팽창하는데 욕구충족의 수단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좌절을 느끼고 불행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주관적, 정신적 의미에서의 소외이다."(132-3)


"나는 물화(reification)라는 말을 욕구와 능력이 자신의 인격 전체에 통합되지 못하고, 고정되고, 고립되고, 독립되어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특수한 용어로 사용하겠다." "욕구(혹은 그에 상응하는 욕망)가 물화된다는 것은 〈그것이 추상적, 고립적 성격을 지닐 경우, 낯선 힘으로 나와 대립할 경우, 따라서 하나의 정념이 편향적으로 충족되는 형태로 만족이 올 경우〉를 말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의 (진정한) 욕구는 하나같이 소비의 욕구이며 수동적 향락의 욕구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는 일은 질식되고 만다. 이러한 진단은 일종의 고발이다. 이 고발의 전제는 좋은 사회에서는 일 그 자체가 하나의 욕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좋은 삶은 (근무시간이든, 근무 이외의 시간이든) 능동적인 창조의 삶이지 수동적인 소비생활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상으로 삼았기에 (그리고 그 실현 가능성을 믿었기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편향적인 '소비자 경제'라고 비판한다."(134-6)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옹호한 이유는 공산주의 사회야말로 중요한 면에서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훌륭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성과 정의의 문제는 마르크스에게 부차적인 문제다. 물론 그러한 고려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체제 전복에 나서도록 하는, 그렇게 해야 할 아주 좋은 이유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난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주로 인간적 발전과 자아실현을 좌절시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즉 전인적(全人的) 창조자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완전히 실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부산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적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생산성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분배 정의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혹은 해소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142-3)


"공산주의 사회의 특징은 창조와 생산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창조적 과정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즐겨 쓸 것들을 생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대립은 없으며, 양자가 완전한 보완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 논의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 들어 있다. 창조를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가 '남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비에 기대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창조에는 소비에 부여된 더 낮은 가치가 함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전적으로 활동적·창조적 개인들로만 구성된 사회에서는 아무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을 즐기거나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타주의와 타인을 위한 행동을 강조하는 모든 사회운동에 이러한 문제가 들어 있다. 이타적 행위는 적어도 한순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149-50)


"마르크스는 타락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간 개개인의 무조건적 자율성을 굳게 믿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이론이 가진 주요한 약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그는 보편개념으로서의 인간과 인간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인간이 가진 재능의 완전한 발전을 보장하는 체제에서는 그 부산물로 반드시 성공하지 못한 개인들의 좌절이 나타난다. ② 마찬가지로 그는 개인의 객관적 자아실현과 주관적 행복감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③ 그는 또한 개인의 전면적 발전과, 하나의 활동에 대한 편향적인 몰두─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특징인─가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④ 마지막으로 그는 과도한 충동의 문제를 간과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만든 장치들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완고한 성격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공산주의에서 개인은 이드(id)도 없고 슈퍼에고(superego)도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155-6)


2.3. 사회적 관계


"마르크스가 말하는 상품물신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대상들의 (자연적) 속성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자본론Ⅰ》에 나오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상품형태는 인간의 노동 속에 들어 있는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에 들어 있는 대상적 성격으로 보이게 만들고, 총 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관계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노동생산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물신숭배는 인간 간의 관계가 사물 간의 관계로 형태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지, 사물들의 속성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텍스트에서는 사물들의 속성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상품물신은 사물들에 각인된 사회적·경제적 관계가 생산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사물들의 물질적 성격에서 유래하는 자연적 속성으로 형태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언급도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에 참여하는 자들은 마법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 자신의 관계가 사물들의 관계로 보인다〉는 언급도 있다."(161-2)


"자본물신은, 코헨에 따르면, 〈생산에서 발휘하는 자본의 힘이 노동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본 그 자체에 들어 있는 능력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사용가치의 생산에 대해서도, 잉여가치 혹은 이윤의 생산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자본에 들어 있는 관계들의 외면적 성격과 물신적 성격은 대부자본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화폐가 생산과정과 무관하게 증식되고 과실을 낳는다면, 그것이 신비하게도 생산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진다. 사실은 그것이 생산과정에 투자되어 생산적으로 사용될 때에만 생산적이지만, 금융자본가의 눈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금융자본가는 〈모든 자본가가 자신의 돈을 빌려주기만 하고, 아무도 그것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화폐자본이 이자를 낳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처럼 화폐에 대한 환상은 상품에 대한 환상보다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166-7)


"《경제학·철학 원고》에서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하에서 인간의 생산물이 독립적인 존재를 얻고서 생산자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세 가지 있는데, 종교, 국가, 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적 영역에 한정하여) 노동자가 소외되는 대상을 두 종류(소비재와 생산수단)로 나누어보면 뜻이 좀더 명확해진다. 마르크스도 초기의 원고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한 적이 있다. 〈노동자는 생활에 필요한 대상도 빼앗기고, 일에 필요한 대상도 빼앗긴다.〉 이 문장에서 소비수단이 먼저 강조되고, 그 다음 생산수단이 언급된다. 15년쯤 후에 쓴 글에서는 강조 순서가 바뀐다. 〈노동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대상적 요소들은 그에게 낯선 것으로 나타난다. 생계수단도 생산수단도 모두 자본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후기 경제학 저작들에서는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소외가 훨씬 더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168, 172-3)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소비재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은 정신적 소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비재의 생산은 동시에 욕구의 창출을 가져오지만, 이 욕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하에서 종종 좌절된다. 이것은 확실히 투명한 연관관계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이 왜 노동자를 좌절하게 하는지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노동자에게 소비재가 필요한 것과 동일한 의미로 생산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과거 노동의 산물인)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소외는 외견상 명백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소외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곧 소비수단으로부터의 소외를 낳는 구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는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생산물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노동과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도 가질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173)


"산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지배는 착취 현상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다. 사유재산만 보호하면 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의 소유가 합법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 즉 노동자들이 현재 사용된 생산수단이 과거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현 세대 자본가들의 재산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좀더 그럴듯하게 말하면, 생산수단이 과거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현재 자본가의 소유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이전 세대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생산했고, 그 생산수단은 이전 세대 자본가들의 합법적인 재산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소외와 착취는 서로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176)


2.4. 역사철학


"라이프니츠의 역사철학에 따르면 역사에는 목적도 있고, 창조자도 있다. 물론 이 둘은 함께 간다. 그러나 헤겔의 경우 불행하게도 역사에 목적은 있지만, 이 목적에 따라 행위를 일으키는 의도적인 행위 주체가 없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세속적 신정론인데, 이것은 말이 안 된다. 그의 《역사철학 강의》와 《정신현상학》(정도는 약하지만)은 실체 없는 의도, 행위자가 결여된 행위, 주어 없는 동사에 의존한다. 그의 '이성의 간지'는 맨더빌의 '개인의 악덕, 공공의 이익'이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관계가 있지만, 같지는 않다. 헤겔은 행위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의미나 목적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라이프니츠는 신유학 철학자들에 대한 논평에서, 그들이 질서 있는 우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창조자로서의 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현자(sage)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현명(sagacity)을 논하는 공허한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헤겔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182)


"마르크스의 목적론적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진술은 종의 이익이 항상 실현된다는 전제이다. 마르크스의 '인류'는 헤겔의 '정신' 또는 '이성'이다. 둘 다 초개인적인 실체로서 이들의 완전한 발전이 역사의 목적이다. 이들은 의도를 가진 행위주체가 아니면서도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 "모든 사건을 두 번씩, 한 번은 목적론적으로, 또 한 번은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목적론적 전통의 특징이다. 〈작용인의 왕국과 목적인의 왕국 중 어느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신이 창조했을 때 그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인과의 사슬을 만들어놓았고, 따라서 어떤 사건이든지 인과사슬에서의 선행사건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그 사슬 자체를 최적으로 만드는 사건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역사관이 어떻게 세속적인 형태로 살아남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헤겔의 역사관이 그러했고, 마르크스에게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192)


"일반적으로 미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신념에 근거하여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그러한 신념의 불확실성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신념이 총체적인 확실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거리낌 없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 바탕에 역사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연관성'을 정당화하는 기능적 설명까지 있으면, 그러한 신념은 더욱 강화된다. 스탈린으로부터 홍위병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세계관은, '방법론적으로'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것을 훨씬 넘어 개인을 경시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므로 '전진을 위한 후퇴'에 바탕을 둔 사변적인 역사철학에 반대하는 이유는 실천적인 것이지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지적 결함은 그 이론이 가져올 정치적 재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서 개인은 핵심적인 위치에 있고, 이 개인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오기 전까지의 개인을 희생양으로 여기는 역사철학은 버려야 한다."(194-5)


제3장 경제학


3.1. 방법론


"마르크스는 경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제 모형으로 만들어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제 모형을 만들려면 신중하게 단순화하면서 또한 수량적인 가정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성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정확성을 얻기 위한 것이다." "물론 부분균형 이론에서 이끌어낸 결론, 혹은 다른 조건들이 같다고 가정한 이론에서 이끌어낸 결론을 모두 모으면 일반균형 이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를 하려면 어느 지점에서든 시작을 해야 하고, 그러한 국지적인 연구가 지니는 한계를 아는 한, 모형은 지식의 진보에서 매우 가치 있는 도구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풍의 학습 때문에 가끔 빗나가기도 했지만,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기본 주장들을 대수적으로 또는 기하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이 분야에서의 수학의 힘을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서툴러 보이지만 말이다."(199-200)


"마르크스는 경제적 생활에 대해 논의하면서 '본질'(Wesen)과 '현상'(Erscheinung)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 두 용어는 헤겔에게서 가져온 것인데, 마르크스는 헤겔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현상의 반대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감추어진 것, 명상에 의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반대말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와 가격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대체로 이와 같다. 노동가치는 가격과는 다른, 가격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서이지만, 경제주체에게 나타나는 것은 가격뿐이다." "둘째, 현상의 '국지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타나는 것은 항상 특정한 지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관점에서 관찰하는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주어진 현상의 반대말은 특정한 지점에 얽매여 있지 않은, 현상들의 '전체적인 연결망'이 될 수 있다. 헤겔이 말하는 본질은 '상호 관련된 현상들의 전체성'이지, 그 현상들의 '이면'에 있는, 그 현상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인 질서가 아니다."(205-6)


3.2. 노동가치설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시간의 증가 혹은 감소는 생산가격을 상승 혹은 하락시킴으로써 가격의 움직임은 가치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문장에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 변화가 가격 변화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하는데, 동시에 필요조건이기도 하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리카도를 따라 단기가격과 장기가격(또는 균형가격)을 구분했다. 수요가 증가하여 소비자들이 현행 가격에서 생산된 것보다 더 많은 재화를 원하면 가격은 올라가고 그것을 생산하는 부문의 이윤율도 올라간다. 이윤율이 높아지면 다른 상품을 생산하던 자본가들도 그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하고, 이 부문의 이윤율이 다른 부문의 이윤율과 같아질 때까지 자본이 유입되고, 시장이 다시 균형에 이르면서 재화의 가격은 수요가 이동하기 이전과 같아진다. 이것이 바로 리카도의 해석에 따른 노동가치설이다." "이때 수요의 이동이라는 견해는 노동자가 화폐임금을 받는다는 가정을 할 때에만 유효하다."(222-3)


"그런데 마르크스는 일반적으로 화폐소득보다는 노동자의 소비집합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특성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는 있었다.) 이러한 전제에서 '노동력의 가치'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으로 서로 다른 소비집합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 그 개념은 쓸모가 없어진다. 서로 다른 소비집합이란 가격은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가치는 서로 다른 경우를 말한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가치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절차로 인해 그는 리카도식 노동가치설의 확고한 기초를 확보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의 견해와 달리) 가격과 이윤율을 유도하는 데 가치는 필요하지 않다. 가치는 부속물(appendix)일 뿐이고, 막창자꼬리처럼 거의 쓸모가 없다. 노동가치의 개념이 비록 잘 정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225)


3.3. 축적과 기술변혁


"자본가는 두 가지 기술이 주어지면 더 높은 이윤을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을 선택할 것이다. 그 기술들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선택기준이 사회적으로 하위최적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생산물을 얻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기준이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이유는 '필요의 영역'을 줄이고, '자유의 영역'을 넓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개별 자본가의 동기는 더 높은 이윤이다. 마르크스는 《요강》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주어진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은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이것은 최대한의 수량에서 최대한의 노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 측면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자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노동, 즉 에너지의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동이 해방되었을 때 도움이 될 것이며, 노동 해방의 조건이다.〉"(239)


# 하위최적 : 대량 생산 시대의 분업화로, 하위 조직인 개별 시스템의 성과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향. 시스템 전체 성과를 극대화하는 전체 최적화와 반대되는 개념


"1861~1863년의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이 견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하의 기술진보는 문명의 발전을 위한 자유시간을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이윤극대화에 따른 우연한 부산물이며, 이로 인해 가능한 것보다는 작은 규모로 기술변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부르주아 생산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이 생산력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 둘은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히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충돌의 한 측면은 계속되는 위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위기는 노동 계급의 한 부문에서 전통적인 직업이 쓸모없어진 것을 알아차릴 때 터진다. 그 바깥 한계는 노동자들의 잉여시간이다. 사회가 얻는 절대적인 잉여시간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생산력의 발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물질적 생산 일반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240)


3.4. 자본주의적 위기 이론


# 자본주의적 위기의 성질

1. 체제 내 위기 : 위기는 외부 충격이나 독점, 기타 피할 수 있는 과실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적인 것이어야 한다.

2. 미시적인 기초 : 개별 행위주체들의 국지적 합리성이 총체적으로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3. 불가역성 :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정치적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

4. 정치적 행동의 동기 제공 : 자본주의 체제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촉발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세 가지 주요한 결점, 곧 착취와 소외 및 이윤율의 하락에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모순'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여기서 이윤율의 하락과 연결되는 역사적 유물론은 모든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때문에 종말을 고한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없을 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내재적 한계로 인해 그 이상의 진보를 가로막을 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자본주의의 한계이지 자본주의의 무능이 아니다. 이 한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항구적인 속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그러한 한계를 갖지 않는 다른 생산양식의 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는 스스로 파멸의 조건을 창출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힘을 위축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다른 체제의 수립을 촉진함으로써 이루어진다."(252-3)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모든 잉여노동의 원천, 따라서 이윤의 원천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산 노동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계속 살리는 것이 자본가 계급의 집합적 이익이다. 그러나 또한 산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즉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개별 자본가의 이익이다. 좀더 생산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개별 자본가는 초과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가 도입한 혁신으로 말미암아 (심지어 이 혁신이 일반화되어) 평균이윤율이 하락한다 하더라도, 이 하락분은 너무 미미하여 이 때문에 기계도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모든 산업분야에서 모든 사업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경우, 이윤율이 꾸준히 침식되는 심각한 결과가 나타난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본방정식이 보여주듯이, 착취율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기계가 도입되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이윤율은 하락한다. 이 주장의 근본적인 약점은 산 노동이 이윤의 궁극적인 원천이라는 가정이다."(254)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 대한 세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마르크스는 혁신이 사전적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노동절약형이라는 가정을 당연시하면서, 이에 대해 별도의 논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폭약이나 무선 같이 자본을 극적으로 줄여주는 혁신도 있다." "둘째, 사전적 의미에서 노동절약형 진보가 많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들이 모두 일정할 때 주어진 혁신이 노동절약형이라는 사실로부터, 모든 혁신이 집합적으로 노동절약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추론한다면, 이것은 합성의 오류에 해당한다." "셋째, 기술변혁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산업에 영향을 줄 경우, 잉여가치율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실질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그러나) 발명이 노동절약적일수록 노동에 대한 총수요가 줄어들어 실질임금의 상승폭은 작아질 것이고, 잉여가치율의 상승폭은 커질 것이 분명하다. 즉 노동절약형 진보와 고정 잉여가치율 가정은 함께 할 수 없다."(255-6)


제4장 착취, 자유, 정의


4.1. 착취의 본질과 원인


"모든 계급 사회의 공통점은 잉여노동의 추출이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잉여노동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넘어선 노동을 말한다." "잉여노동은 소수의 비생산자 계급이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가능하게'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차일드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계급의 등장과 착취를 잉여를 가능하게 한 기술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생산자는 동일한 소비수준에서 일을 덜 할 수도 있고, 일을 더 해서 잉여를 창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한 선택이 사회적 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잉여가 있는 한 계급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계급 사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잉여의 가능성이다. 경제가 잉여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268-9)


"로머의 노동시장 착취 모형에서 우리는 행위자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① 가진 재산의 금전적 가치는 얼마인가? ② 자영인가, 노동력의 판매자인가, 노동력의 구매자인가? ③ 자신의 수입으로 구매 가능한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노동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경제행위자의 '부'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계급'에 관한 것이고, 세 번째는 '착취' 지위에 관한 것이다. 로머는 이들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최적화를 위해 노동력을 고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착취자이며,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사람들은 착취당한다. 자영이 최적인 사람들에는 착취자도 있고 착취당하는 사람도 있고, '회색지대'에 속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수입으로 구매 가능한 상품묶음 중, 그 묶음에 구현되어 있는 노동시간이 구매자의 노동시간보다 많은 경우도 있고,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격과 가치의 불비례 때문이다."(275)


# 로머 모형(자본주의적 축적모형)의 특징

1. 착취와 계급은 양상(樣相)으로 정의된다. 자본가는 단순히 노동을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최적을 위해 '반드시' 노동을 고용해야 하는 사람이다.

2. 착취는 개인들의 속성이 아니라 전체 경제체제의 속성이다. 관계 또한 아니다.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거나 둘 중 하나의 속성을 가진다.

3. 착취가 완전히 정태적인 개념이다. 개인재산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그 수익의 미래가치를 무시한다. 축적과 기술변혁에 대해서도 설명력이 떨어진다.

4. 완전한 경쟁 구도에 한정된다. 착취가 완전 경쟁의 '부재'에서만 일어난다면서 마르크스를 공략한 신고전파 착취 이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착취율의 결정 요소

1. 개별 자본가와 그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간의 적대(특히, 노동강도)

2. 경쟁적 노동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산업예비군의 존재)

3. 조직된 노동자와 조직된 자본가 간의 단체협상

4. 기술진보의 간접적 일반균형 효과(노동자의 소비집합을 구성하는 상품의 가치가 하락하면 착취율은 증가한다)

5. 국가의 개입

6. 정치적 동맹의 형성(자본가는 지주들과의 싸움에서 노동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일정 부분 양보하기도 한다)


4.2. 자유, 물리적 강제, 경제적 강제


"두 개념을 명시적으로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는 소극적 자유를 〈형식적 자유〉라 하였다. 예를 들면 노동자는 고용주를 떠날 형식적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적극적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아실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율로서의 자유의 개념인데,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적극적인 능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시장에 있어서 형식적 자유의 부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완전한 자아실현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낯선 사람들과의 거래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 또한 형식적 자유는 노동자가 진정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형식적 자유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어느 정도 노동자를 자율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이것은 소비자로서의 자유, 생산자로서의 자유, 그리고 노동시장에서의 자유에 모두 해당된다."(321-4)


"공장문을 나서면 어느 누구도 노동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그는 원하는 물품을 자신의 임금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구매할 수 있다. 일자리가 있으면 고용주를 바꿀 수도 있다. 심지어 자영업자가 될 수도 있고, 고용주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자유는,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위험한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유용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한다. 특별한 자본가로부터는 물론 자본 그 자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고용주를 바꿀 수 있는 자유는 그 이전의 생산양식에서는 없었던 자유라는 생각은 마르크스 시대의 상식이었다. 그 스스로 랭게와 에드몽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토크빌도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이 사실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단서를 단다. ① 노동자는 개별 자본가에게 종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과, ② 개별 자본가로부터의 독립성이 자본에의 실질적 종속을 가린다는 것이 그것이다."(326)


"고용주를 바꿀 자유와 스스로 고용주가 될 자유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낳는다. 그것이 환상인 이유는 구성의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한 노동자가 '특정' 고용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모든' 고용주로부터, 즉 자본 그 자체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후자의 경우 '특정' 노동자가 자본 그 자체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모든' 노동자가 그런 독립성을 얻을 수 있다고 추론한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노동자가 고용주를 바꿀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원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반면에 자본가 계급으로 진입할 자유는 그가 '남달리 영리하거나 기민한 사람'일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할 수 있다'는 말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형식적 자유를 가리킬 뿐 실제로는 소수에 불과하다."(330-1)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도록 강제되고 있는가? 나는 강압(force)과 강제(coercion)를 구별하고자 한다. 강제는 강제하는 행위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말이지만, 강압은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제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마르크스가 비시장 착취의 '직접적 강제'와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져오는 '상황의 압력'을 구별한 이상, 그가 후자는 강제로 보지 않았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그는 '경제적 관계의 둔탁한 강요'와 '경제적 조건 외부에 존재하는 직접적인 강압'을 구별했는데, 이러한 구별은 경제적 관계 내부의 직접적 강압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마르크스도 부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가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비인격적·경쟁적 시장을 통해 매개된다는 사실이었다. 독점의 존재를 가정하기보다는 자본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 방법론적으로도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31-4)


# 임금노동과 관련한 착취, 강제, 강압의 개념

1. 노동자가 자기 몫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퇴장했을 때 형편이 더 나아진다면, 그는 '착취당하고' 있다.

2.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퇴장했을 때 형편이 더 나아진다면, 그는 '노동력을 팔도록 강제된(coerced)' 것이다.

3.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퇴장했을 때 형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열악해진다면, 그는 '노동력을 팔도록 강압된(forced)' 것이다.


4.3. 착취는 부당한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이상(理想) 담화를 배격한다. 〈공산주의는 확립되어야 할 상태, 현실이 그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이상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현재 상태를 폐기하는 '현실의' 운동이다.〉 이것은 단순한 '당위'(Sollen)에 대한 헤겔 식의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공상가들이 비판을 받은 이유는 이상의 설교가 곧 실현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이상 그 자체를 믿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상은 그대로 가져왔고, 〈오직 수단이 다를 뿐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인식, 즉 노동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믿음'과 같은 주관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식'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면, 불의가 자본주의에 관한 '사실'이라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의 지각이 최소한 자본주의의 폐기에 동반되는 것이며, 자본주의를 폐기하고자 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340-3)


"마르크스는 〈어떤 제도든 일반적 규칙에 따라 적용되면 불공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 규칙은 개인차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두 사람도 같은 사람은 없다." "다른 한편 개인 간의 차이를 완전하게 반영할 수 있는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는 일정한 재화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진술하는 모든 원칙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 간에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증은 명백한 내적 일관성의 결여 때문에 실패했다. 그는 기여 원칙의 '폐단'을 언급하면서 더 높은 정의의 원칙을 암묵적으로 상정한다. 그것은 바로 필요에 따른 분배이다. 이 원칙을 제시하면서 그는 추상적인 정의 이론을 훌륭하게 논박했다고 믿었겠지만, 이로써 그가 폐기하려고 했던 그런 종류의 이론을 자신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산문으로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을 산문으로 하고 있다."(346-7)


"《고타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분배의 원칙이 공산주의의 첫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서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첫 단계의 원칙은 노동기여에 비례하여 분배하는 것이다. 이때 투자분과 공공재 및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등은 분배대상에서 제외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기여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즉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의 차이를 잴 수 있는 공통의 척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보다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우월하여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더 오랫동안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내포된 문제점을 여기에서 따지지는 않겠다. 그러한 환원이 가능하다고 가정한다면, 그와 유사한 작업이 자본주의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만 지적하고자 한다." "즉 기여 원칙은 (분배의 두 번째 원칙인) 필요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적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차선책으로 적용하는 기준인 것이다."(358-9)


"필요 원칙은 평등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기여 원칙에 따르면, 자녀가 많은 노동자와 적은 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받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했으므로, 일 인당 소득 혹은 복지의 측면에서 가족 간 불평등이 발생하는 결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결함은 불평등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체제가 창출되면 제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바라지는 않는 그런 체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상적인 해석이다. 혹은 평등한 분배 원칙에 의해 제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의 평등인가? 마르크스의 좋은 삶 이론에 비추어보면,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필요 원칙이 자아실현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가치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Man)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men)의 자아실현이라면, 개개인 모두에게 최고 수준의, 동시에 다른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자아실현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361-2)


"드워킨은 '값비싼 욕구'의 문제 때문에 그 이상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아실현의 방법 중 어떤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보다 비싸다. 시를 짓는 일은 물질적 자원이 거의 들지 않지만 대작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유로이 갖되, 비용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한을 둔다면, 값비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 일부만 충족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자아실현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자원의 희소성은 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자아실현의 방법을 모르면 좌절할 수도 있다. 자원의 결핍으로 인한 좌절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재능의 결핍으로 인한 좌절을 방지해주는 순기능이 있다고 쉽게 말할 일만은 아니다. 전자의 제약에 직면하는 사람과 후자의 제약에 직면하는 사람이 그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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