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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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냉전의 종식으로 한국전쟁의 실체를 또다른 시각과 차원에서 바라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내전이자 국제적 분쟁이라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한국전쟁의 성격 외에 탈식민의 한반도에서 또다른 종류의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캐나다 역사학자인 스티븐 리에 따르면 1950년대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은 주요하게는 사회를 상대로 한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마을의 전쟁'이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시기를 〈난데없이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때〉라거나 〈천륜도 인륜도 없었던 때〉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표현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 배타적 정치주권의 정치, 즉 내전의 성격을 띤 한국전쟁이 야기한 사회적 혼란의 강도와 극단적인 인간조건을 말해준다. 천륜에 대한 언급은 도덕성의 위기를 보여준다. 현대 내전이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얼마나 철저히 유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서로 어울려 사는 일상적 삶의 규범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말이다."(18-9)


"헤겔의 체계 안에서는 국가의 도덕적 요구와 가족의 윤리적 요구가 둘 다 배제적이다. 국가는 무가치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를 배제하고, 가족은 자체의 본성에 따라 자신과 관련이 없는 자의 기억에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 두 유형의 배제 사이에서 포용의 강력한 도덕적 실천이 일어난다. 상호 부정과 조직된 상호 간 폭력이라는 두 갈래 길로 몰아감으로써 포위된 하나의 공동체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내전이라는 배경이 주어지면 특히 그렇다. 가족의 애도와 기억 행위는 그 윤리적 지향에 충실하기 위해 친구 대 적이라는 지배적 대립구도를 넘어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치공동체의 외적 존재로 여기는 정체성에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 가족은 더 넓은 시민사회적 행위로 발전해나가지 않고서는 이런 도덕적 목표를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없고, 이 시민적 행위가 보편화되면 국가의 배제적 정치학이 지닌 기존 척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24-5)


1장 코리아의 학살


"한국전쟁에서는 비인격적 폭력과 사적 폭력이 모두 만연했다. 각 지역의 현실 속에서 두 폭력은 너무나 서로 얽혀 있어서 때로 집단기억 내에서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최근에 접할 수 있게 된 많은 증언을 보면 공동체 차원의 사적 폭력과 비인격적 정치폭력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적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여전히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폭력의 세부사항을 알아내기도 힘들다. 그런데 비인격적 폭력과는 좀 다르게 사적 폭력의 세부사항이 공동체에서 특히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환경일수록 한편으로 이웃들과 먹을 것도 나누고 아이들도 함께 보았던 전쟁 이전의 먼 기억과, 다른 한편으로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했을 때 이웃들이 등을 돌렸던 아직도 생생한 기억 사이의 급격한 단절 때문에 주민들이 괴로워한다. 그 이웃이 혹 친척이기도 해서 제삿날에 모이거나 하면 그런 배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48)


# 비인격적 폭력 : 국가나 다른 정치조직의 권력이 자행한 폭력 // 사적 폭력 : 지역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난 폭력


"1950년 6월 28일에 공포된 대통령령에 따라 국가안보와 관련된 범죄에는 사법절차가 유예되었다. 긴급명령은 적에게 물질적 원조를 하거나 적의 군대와 적 당국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자발적 협력을 하는 행위라고 그 범죄를 특정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령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 1950년 7월 8일에 공식적인 계엄령으로 선언되기도 전에 이미 경찰과 헌병은 잠재적 부역자라는 혐의로 수많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합당한 재판절차도 없이 처형했다." "이 불운한 수감자와 소위 사상 전향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전쟁 이전에 남한의 예외상태 정치에서 생존한 사람들이었다." "1950년 6월에 공포된 비상계엄은 형식상으로는 이 계엄령과 예전의 다른 비상조치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실제 반역행위라기보다는 부역 추정자(〈반역이 의심되는 자〉)를 겨냥함으로써 주로 선제적 폭력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전쟁 이전의 다른 계엄령과 뚜렷이 구별된다."(51-2)


"한국전쟁 동안 민간인에 대한 테러행위는 가해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에서 유동적이었고 그 성격도 예방적 폭력과 징벌적 폭력 사이를 계속 왔다갔다 했다. 전선이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쪽의 북중 국경 근처까지 올라가며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조직된 테러행위가 새로이 민간인을 덮쳤다. 양 진영 모두가 그것을 해방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역공동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 해방은 전혀 경사로운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전세가 역전되고 또 역전되면서 양쪽의 폭력적 권력에 노출된 양민들은 이념적으로는 대립되지만 제로섬 논리를 억지로 강제한다는 점에서는 구조적으로 동일한 두 세력 사이에서 생존의 공간을 찾을 수 없는 형편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간을 찾아야만 했다. 양쪽이 공히 상대편을 불법적 권력이자 '반민족 세력'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 권력을 받아들이거나 존재를 인정하기만 해도 민족공동체를 배반하는 범법행위가 되었다."(63-4)


2장 불온한 공동체


"한국의 전쟁세대라면 〈빨갱이 집안〉이라는 말이 아주 익숙할 것이다. 집안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때 체제 전복적 공산주의자였거나 공산주의 동조자였던 사람, 북한으로의 망명자가 있는 사람에게 〈빨갱이 집안〉은 즉결처분이나 대량학살의 기억, 남은 가족들에게 들씌워진 사회적 오명과 시민권의 제약 등을 환기시키는 무서운 표현이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비규범적인 지위가 그들에게 강요되는 이유는 그들이 규정된 정치질서와 법질서에 반하는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가족관계의 차원에서 어떤 특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친족관계란 단지 도덕적·물질적 차원에서 의지할 수 있는 우호와 상호부조의 영역이 아니다. 그들에게 친족의 영역은 오히려 현대사의 진행과 함께 그 중요성이 더해져서, 바깥세상에 만연한 정치적 적대관계가 미시적 형태로 현실화되는 장이면서 또한 사회적 낙인과 존재적 짐의 근원이 되었다."(95-6)


"개별 가족은 자신들에게 강요된 이러한 위태로운 삶의 조건을 여러 임기응변으로 대처했고, 때로는 혈연과 지연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가족이 가까운 친족집단 내에서도 차별과 고립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 설사 가까운 친척이라도 잠재적으로 위험한 정치적 요소와 연루되는 걸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차별은 때로 친밀한 가족집단 내에서도 존재했고, 한 세대의 곤경이 다음 세대의 삶과 전망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들의 비규범적 정치지위는 가계 내의 심각한 문젯거리가 되었다. 따라서 전후 한국의 비국민 가족에게 친족이라는 전통적 세계와 현대 시민적 삶의 세계는 너무 얽혀 있어서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분리할 수가 없었다." "이는 전후 한국에서 특히 그러했는데 이런 특정한 조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정치적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공동체 관계로부터 생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96-7)


"한 개인이 정치권력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규정된 사람과의 친족관계로 인해 공적 세계에서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못할 때, 그 개인에게 민주적 삶이 가능하려면 그 친족관계의 규범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맥락에서 불온한 공동체라는 개념이 사회에 미치는 장악력이 사라지려면 그 개념이 현대 정치적 삶에 설 자리가 없음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정치적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과거에는 모두 정치적으로 혼재된 관계망을 공유했다는 인식에 이르러야 한다. 다시 말해 총체적 내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는 어떤 공동체도 순수한 정치적·이념적 계보를 주장할 수 없다는 인식 말이다. 극단적인 냉전의 이념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려면 공동체마다 근대 개인주의 사회의 이상을 추구하는 식으로 그 편협한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을 넘어서 각자의 역사적 계보를 보다 진실하게 사고하는 일이 긴요하다."(100)


3장 분쟁 중의 평화


"'월북자 가족'이란 전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위험한 낙인이었다. 그 범주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가족 사이에 모종의 연결이 있고, 그것이 친족관계에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친족 간 우호라는 순수한 개념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주 정치적인 개념이고 또한 극도로 정치화된 것이다. 육친애에는 어떤 진정성이 있고 이 진정성은 정치적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가정되지만, 동시에 그 의미가 왜곡되어 이념적으로 순수하고 일률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유된다. 이런 맥락에서 친족 간 우호는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현대 정치권력이 아무리 집요하더라도 그 지배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어떤 인간관계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공동체적 영역이 현대 정치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누린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정치적 개입과 통제의 중요한 표적이 되는 것이다."(126)


"반공주의 정치 체제의 이상적 시민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치적 존재의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는 개인이다. 이 이상적 개인에게는 정치적 원칙이 친족의 우애보다 중요하고 필요할 때는 그 우애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적을 이롭게 할 수도 있는 불온한 육친애는 끊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원칙이 유효성이 있으려면 훈육해야 할 대상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고, 따라서 이 정치체의 시민이 정치적으로 물든 친족영역과의 유대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한마디로 이 정치체의 이상적 시민은 공동체적 유대에서 자유롭다고 가정되는 근대적인 의미의 개별주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중적 의미의 공동체적 존재로서, 전통적 친족공동체와 국민국가사회라는 근대 공동체 양쪽과 관련되며 전자를 후자의 이미지로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126-7)


4장 연좌제


"연좌제라는 유사법제도에서 특히 놀라운 점은 이 정치관행의 규율권력이 친족조직 자체에 맞서 작동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작동할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데 효과적인 훈육기술인 것이다. 하지만 이 현대 규율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개채화되고 자율적인 주체보다는 관계적이고 상호구성적인 인격체가 필요조건이 된다. 곧 기존의 사회학과 인류학 문헌에서 일컫는 근대적 개인이라는 철학적 개념과 구별하여, '도덕적 인격'(moral person)으로 일컫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제도이자 형벌제도인 연좌제의 저변에 깔린 사고방식은 근대 사회사상의 전통에서 생소하지 않다. 제도가 규율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가 개별화되지 않고, 주변의 친밀한 도덕적 관계망에서 개념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선물 같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를 마주하는 자아는 철학적 의미의 주권적인 단독자가 아니라 사회관계에 근거한 관계적 주체가 된다."(137-8)


"하지만 사회학에서 많이 언급되는 도덕적 인격이라는 개념과 연좌체 체제에 포위된 도덕적 주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들이 있다. 원래 근대 입헌주의는 집단책임제와 같은 관행을 형법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데 그 토대를 두고 있는데, 냉전시대의 한국의 연좌제는 근대 법치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근대법의 환경에서 국가의 권력이 도덕적이고 관계적인 인격을 전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연좌책임의 정치는 개인의 책임 원칙을 시금석으로 하는 근대법의 환경에서 그것을 무시한 채 만개했다. 국가가 훈육하는 대상이 (형식면에서) 개인이고 (실제로는) 도덕적 인격이라면, 이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 역시 정치적 영역이나 인간관계적 영역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이중적 성격을 지닐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관계적 주체가 그 존재 그대로 자율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투쟁은 그 자체가 개인의 자유와 이에 근거한 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과 동일한 것일 수 있다."(138-9)


"푸코의 후기 저작에 나오는 다루기 쉬운 개인, 또는 근대 생명정치(biopolitics) 질서 속의 인간존재는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생명을 좌우하는 국가의 생명정치적 권력의 벡터에 무력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무지한 한에서만 자신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환영적인 자율주체이다. 이 환영적인 인간주체성이 어떤 역사적·사회적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가 푸코의 주요 관심사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서구의 의학과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근대 생명정치와 근대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의 길잡이로 푸코의 이론을 많이 원용한다. 하지만 푸코가 근대 개인주체는 근대 권력의 기술적 체계가 수월하게 다루는 존재라는 점에서 근대 개인 주체의 신성함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이 전근대와 근대의 규율체계 사이에 결정적인 단절이 있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158-9)


"푸코의 논지를 따르면 우리는 근대 사회체계 내에서 개인이 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할 수 없다. 반대로 근대 규율체계 내에서 의미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환영으로든 혹은 실재로든 먼저 개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존재는 (자유와 자율성 같은 고유하고 양도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개인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에게 근대의 형벌과 규율체계는 공동체적 관계망에서 해방된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아직 관계적 세계 안의 삶을 국가권력의 벡터 공간에 갇힌 삶으로 대체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자율적인 인간주체라는 개념을 역사적 구성물이자 사회적 허구로 보고 이런 환영적 개념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즉. 푸코의 이론은 근대로의 이행기에 유럽 형벌체계에 급격한 단절─영혼의 통제에서 신체의 통제로, 사람-공동체의 결합에서 개인-국가의 결합으로─이 있었다는 생각에 기초한다."(158-61)


"전후 한국의 반공주의 정치는 전지구적 '격리'의 최전선에 있었고, 역시 사회적·정치적 관계에 대해 전염병식 견해를 전개했다. 이런 식의 정치는 냉전의 은유적 색 구분(빨강과 빨강이 아닌 색)을 말 그대로 실체적 존재로 밀고 나갔다." "이런 환경에서 반공정치는 이념적으로 순수하고 도덕적으로 규율 잡힌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치적 통일체 내부에서 〈이질적 존재의 위협〉에 대응하려고 했다. 이 정치적 과정에서 내부의 적이면서 이질적 이념의 전염병 보균자에게 부여된 구체적 형태는 개인이 아니었다. 규율과 처벌의 대상은 홀로 존재하는 개인의 몸이 아니라 그 개인을 도덕적 인격으로 만드는 촘촘한 관계망이었다. 처벌이 관계 자체와 관계 속의 몸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피의자의 몸은 홀로 될 수가 없었다. 따라서 피의자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염된 관계적 몸에서 자신을 떼어내던가, 아니면 관계적 몸 전체를 결백하게 만들어야 했다."(164)


5장 도덕과 이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유럽의 정치적 근대성을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유럽에 의미 있는 유산으로 이해하는) 〈지방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식민주의를 제도적 질서와 문화영역이라는 개념적으로 다른 두 영역으로 분리하고, 제도적 질서로서의 식민주의가 종식된 후에도 문화로서의 식민주의가 지속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탈식민 문화 개념은 2차대전의 종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시기를, 과거 식민지 세계가 1950~60년대에 걸쳐 형식적·제도적 통제에서 벗어난 후 이어서 식민주의의 문화적·정신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던 연속적인 투쟁으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다. 그 시기에 전지구적 권력구도가 식민주의 구조에서 냉전의 구조로 전환되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탈식민 세계의 국가건설 과정에 첨예한 문제가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탈식민 과정에서 경험된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와 그로 인해 공동체적 삶이 당면한 위기에 무관심하다."(178-9)


"최근의 근대 민족주의 연구는 근대사회가 장소 기반의 '기계적' 연대에서 관계망 중심이 '유기적인' 연대감으로 일방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근대사에서 이 두 유형의 사회성 중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서로를 강화하며 뒤얽혀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탈식민 냉전기를 내전의 형식으로 경험한 사회에서는 가족과 민족의 상징적 유사성이 긍정적인 융합이라기보다는 분열과 왜곡이라는 부정적 조건으로, 또한 미래에 극복해야 할 조건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는 '자연적'(natural) 또는 전정치적(prepolitical) 형제애를 별개의 토착적 단일체로 상상하고 그다음에 서구 정치사상에 나타나는 정치적 우애와 대비시키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정치현실과 떨어져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이상화된 토착적 친족이라는 이미지는 탈식민 내전의 위기 속에서 분투하는 친족의 운명에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176-9)


"냉전기의 광범위한 정치적 문화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이 국제입양의 정치이다. 크리스티나 클라인은 20세기 초국가적 이동의 역사가 냉전의 지정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관련성이 애초에는 특정한 친족의 관행을 통해 인종적·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형태를 띠었다고 논의한다. 클라인은 20세기 중반의 정책문서와 중산층 대상 대중교육 자료를 중심으로 1950년대에 어려움에 처한 아시아 지역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주목할 만한 지정학적 실천이 된 과정을 추적한다. 미국이 전지구적 공산주의 봉쇄정책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우는 중에 자유세계 내 미국의 주도권에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이 결핍되었다는 우려가 있었다. 반공주의란 기본적으로 반작용이지 그 자체로 진정한 이념은 아니고, 아시아 대중들에게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나 온정주의적 자본주의란 서구 식민지 지배와 결부되어 이해되었으므로 호소력이 없었다."(182)


"그런 연유로 1950년대 주요 교육매체에는 친족의 확장이 아시아의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주요 전략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미국 가정에 콜카타와 뭄바이의 집 없는 아이들, 일본의 버려진 〈지아이(GI) 아기들〉 그리고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입양하라는 권유가 쏟아졌고 〈우리에게는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이 원자폭탄보다 더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전파했다. 자애로운 미국이 온정주의로 돌봐주지 않는다면 억압받는 이 아이들이 〈공산주의자의 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클라인은 위의 변화를 〈냉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하는데, 이는 미국이 탈식민 세계에서 그들의 〈자애로운 패권〉을 형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문화와 조우하면서 그 이질적 세계가 국제공산주의에 맞선 전지구적 이념투쟁의 전선에 참여하도록 새로운 정치─서구에서 유일하게 인종 평등 사상을 옹호하는 미국이라는─를 발명해내는 일이었다고 본다."(183)


"전후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재현은 친족의 우호(amity of kinship)와 정치영역의 적대감 사이의 모순을 핵심 구성요소로 삼았다. 때론 양극화된 바깥세상의 정치현실에 심하게 흔들리기는 해도 친족의 우호가 그것을 견뎌내고 결국 규범적 주체성을 회복하면서 그 자체가 자율적 영역임을 대표했다. 하지만 때론 이 영역이 바로 내전의 포악한 역사가 가장 첨예하게 구현되면서 인간관계의 규범적 구조를 산산조각내는 바로 그 현장으로 제시되었다." "여기서 형제애라는 개념은 서구 철학 전통에서 정의하는 근대 정치적 우애라는 이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동시에 서구의 정치적 우애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되는 소위 자연적이고 천부적인 형제애 개념과도 다르다. 극단의 이념을 수반한 총체적 국민동원의 현대 내전의 경험은 가족과 친족의 영역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서 천부적 형제애 자체를 고통스럽도록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201-2)


"피가 이념보다 진할까? 그에 대한 답은 애초에 혈연의 영역과 이념의 영역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럴 가능성을 상상하려면 혈연의 영역을 따로 떼어낼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현대 이념의 힘에서 독립된 그 자체의 고유한 규범적 삶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친족의 영역은 현대 정치의 힘과 따로 떨어질 수 있는 독립체가 아니라 바로 그 힘에 의해 이미 난도질된 세계였다. 한국전쟁 서사에서 나타나는, 원초적이고 전(前)정치적인 가족공동체의 이미지는 압도적인 국가주권의 정치의 세계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둘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공동체와 국가 사이에 놓인 어떤 화해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한국전쟁사의 친족이 긴 냉전시기 내내, 1950년 내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깊은 상처를 입은 존재라는 사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204-5)


6장 소리 없는 혁명


"전후 공동체들이 전쟁이 초래한 위기에 대처하여 실행했던 가족문화로는 미혼으로 사망한 젊은 남녀의 영혼을 맺어주는 사후 혼례식, 신랑의 집안 내에서 입양한 아이가 두 사람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후 입양, 시신이 없는 무덤을 조성하고 돌보는 헛묘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대중적인 수단으로는 무엇보다 굿을 들 수 있다. 굿이 가족단위로 이루어질 경우, 망자의 넋두리는 죽음의 순간과 그 끔찍한 상황을 울면서 설명하고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망자의 혼이 그렇게 탄식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조금 진정이 되면 굿판의 주변과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내 속 끓는 이야기 들어주어서 고맙수다〉 인사치레를 하고, 그러면서 건강이나 경제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망자의 혼이 살아 있는 자들의 일에 관심을 돌리면, 드디어 망자가 자신을 옥죄던 슬픔에서 벗어났다는, 한국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한을 풀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진다."(223-4)


"하지만 한이란 완전히 풀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다음번에 굿을 할 때도 〈영계울림〉(혼령의 울음)은 반복되는데,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울음의 강도가 조금씩 누그러지기는 한다. 망자가 넋두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이 굿의 공간도 대개 그것을 주최하는 사람과 친족관계인 망자의 혼을 청배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일종의 조상에 대한 제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굿판에 나타나는 조상은 제사에 찾아오는 조상과는 다르다. 그 범위에서 굿의 조상은 제사의 조상보다 광범위하다." "과거에 굿이 (부계의 계보만을 의미 있는 친족질서로 간주하는) 유교적 도덕질서의 지배적인 이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면, 20세기 후반에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인 국가 반공주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제주 4·3사건의 증언집인) 『이제사 말햄수다』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무속의 독특한 구조적 조건이 여기서 역사 증언의 길닦이 역할을 한다."(224-5)


"제주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1990년대 초는 상전벽해의 시기였다. 그 이전에 유족회의 공식명칭은 '제주 4·3사건 민간인 반공희생자 유족회'였고, 무장대에 희생된 공무원이나 민보단원 등의 특정한 범주의 희생자와 관련된 유족이 주로 참여했다. 현재 추정하기로는 이 범주의 희생자는 전체 민간인 희생자의 20퍼센트 정도라고 알려진다. 나머지 대다수는 군과 경찰, 청년단에 의해 희생된 주민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다수를 이루는 범주의 희생자 유족들이 점점 많이 참여하면서 유족회 내에서 다수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유족회 활동을 오랫동안 한 어느 분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소리 없는 혁명〉이었고, 유족대표들이 오래도록, 때로는 열띤 토론과 협상을 벌여온 결과였다." "유족회가 모든 차원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의 모든 피해자를 대변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 덕에 그러한 갈등으로 인해 조직이 해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228-9)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주민들의 추모행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관찰되었는데, 이 두 영역의 변화가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이끌어갔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조상의례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제주의 많은 지역사회에서 예전에 정치적으로 비규범적인 존재였던 조상들이 공동체의 행사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소위 '정상적인' 조상들과 함께 추모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말 이전에는 우익과 좌익이 자행한 폭력의 희생자를 모두 아우르는 추모행사를 한다는 발상은 대부분 지역에서 생소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지역 여론은 그런 생각을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발상은 반공의 정치사를 떨쳐버리는 측면뿐만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서 지역 공동체의 온전함과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들의 기억을 함께 불러오는 일은 살아 있는 자들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230-3)


결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우애의 개념에 현재 사회과학 학계가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급변하는 정치적 우애의 지평이 있다. 서로 아무 관련 없는 개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애에 기초한 연대와 동지적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다시금 공적 담론과 학계에서 두드러진 주제가 된 것이다. 정치이론에서 우애를 민주주의 정치질서의 핵심적 규범으로 내세우면서 공적인 공공선의 덕목과 호혜의 실천으로 규정되는 우애가 서로를 타인으로 여기는 개개의 시민들을 묶어주는 끈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인간주체가 내재적으로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하는 공리주의 철학 전통이 옹호하는 사회질서를 비판하기 위해 우애의 이론을 개진하기도 한다. 다른 편에서는 우애라는 개념으로 현대사의 유산, 특히 민족주의 시대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데 더 관심을 보인다."(254)


"국제관계 이론에서 우정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홉스 식의 힘겨루기 시각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애의 정치를 둘러싼 이러한 논의는 예전처럼 친구와 적이 확실하지 않은 냉전 이후 세계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다른 중요한 특성도 있지만 냉전은 전지구적으로 친구 대 적의 구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예를 들면 식민주의 같은 근대사의 다른 주요 정치형태와 구별된다. 전지구적으로 영토에 기초한 정치체와 민족들 사이에 분할된 양편에서 전례 없이 광범위한 초국가적 연대를 장려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편으로는 적개심 정치의 보편화, 다른 한편으로는 우애의 정치의 전지구화로 세계가 양분되었는데, 이런 조건을 두고 코젤렉은, '세계내전'이라고 칭했다. 현재 우애의 정치와 우애의 도덕에 쏟아지는 관심은 탈냉전시대에 이제는 실제의 적이건 상상의 적이건 공동의 적이라는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우애의 지평을 그려나가야 할 절박한 필요를 반영한다."(255-6)


"친족은 전근대 집단사회의 도덕적·정치적 질서에서 핵심이었는데, 개인의 삶과 대인관계의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 우애는 근대 개인사회의 친밀한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곧 전통사회에서 친족이 차지했던 자리에 그 대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전통적 공동체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친족의 타당성도 감소하고, 친족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생겨난 그러한 빈자리를 우애가 메운다는 것이 근대 사회사상사의 지배적인 생각이다. 비록 이러한 지배적 가정이 근대사에서 실제로 친족관계가 이해되고 실행되는 방식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족관계의 후퇴는 여전히 근대의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이념의 핵심적 구성요소다. 이렇게 보면 근대정치의 합리성은 단지 우애의 정치가 아니라 친족에 대항한, 친족을 배제하는 정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애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근대 공적 세계의 구성적 공간에서 추방된 친족에 대해 재고할 것을 필요로 한다."(256-7)


"인간의 친족이라는 환경이 정치적 사회의 공적 구조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자리를 지니지 못하는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근대 정치에서 지속되어 온 신화이다. 이 신화는 심지어 친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근대사회와 정치의 지평이 드러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산 자들에게 자유로움은 정치적 두려움 없이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을 의미한다. 죽은 자와 실종된 이에게는 자신이 속해 있다는 이유로 친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걱정 없이 친족세계에 귀속될 수 있는 권리이다. 코리아에서의 학살 이후 친족의 정치적 삶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친근한 존재로 기억할 수 있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한 길고 지난한 싸움이었다. 뒤르켐이 정의한 '영혼의 권리'란 죽은 이에게는 친족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이고, 살아 있는 이에게는 정치적 사회 내에 시민권의 회복과 동일한 의미이다. 여기서 친족의 평화는 평화로운 사회의 이상과 동일하다."(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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