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2 - 지리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세계의 분쟁을,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2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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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오스트레일리아,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곳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땅에는 전 세계에 내다팔기 좋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있다. 양모, 양, 육류, 밀, 그리고 와인 산업은 세계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우라늄은 전 세계 매장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아연과 납은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 텅스텐과 금의 주요 생산국이며, 은과 석탄도 만만치 않은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화석 연료가 촉발한 기후변화를 여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2020년 1월 4일 시드니의 기온은 섭씨 48.9도라는 어마어마한 고온을 기록했다." "웬만한 주마다 광산이 있고 수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석탄(산업)은 이 나라가 확실한 에너지원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원에 대한 접근은 오스트레일리아에게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 나라의 위치와 지리를 감안할 때 이는 곧 안보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42-5)


"지리적 여건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침공하기에 어려운 곳이다. 침공군의 대부분은 수륙양용 작전을 펼쳐야 하며 동쪽과 북쪽의 섬들 때문에 공격 가능한 범위도 좁다. 일단 상륙한다 해도 대륙 전체를 장악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요충지들을 확보하려면 맹렬한 저항을 뚫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크기와 인구, 중위권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자국의 해안으로 접근하는 모든 세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 그저 가장 가까운 바다를 순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대륙 해안선 길이만 해도 3만 5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데다 덤으로 2만 4천 킬로미터의 도서 지역 해안선까지 감시를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가 봉쇄와 차단에 속수무책이 될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수출입 상품들이 북쪽의 해협들을 통해 드나들고 있는데 혹시 분쟁이 벌어져 이들 해협이 봉쇄된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순식간에 에너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말라카 해협, 순다 해협, 롬복 해협이 여기에 해당한다."(45-7)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관계는 영국과 맺었던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띠어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군사력 일부를 제공하고 있고, 미 해군은 국제 해상 항로를 열어두게 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다윈항에 주요 기지를 설치했다. 여기에는 2천 5백 명의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수호할 의지가 충분하다는 신호를 주는 것 이상은 된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에게는 딜레마가 생겼다.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선택을 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자국의 뒷마당이라고 여기는 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밀어붙이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고, 그 지역에서 납득할 만한 세력 범위를 형성할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아예 소극적이 되어서 캘리포니아 쪽으로 길고 느리게 후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거기부터 중국 해안까지는 1만 1천 킬로미터의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49-50)


"중국은 남중국해의 80퍼센트가 지리적, 역사적으로 자국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타이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까지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지도를 힐끗 보기만 해도 그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지 알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신속한 군사적 행보의 대부분은 이른바 지역 거부권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중단기적 야심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적군이 지리적으로 정해진 반경 내로 들어오거나 머무는 것은 물론 아예 지나가게도 못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눈부시게 증강한 화력을 앞세워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은 미국 또는 다른 나라들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밀어내고 일본부터 필리핀까지 내려가는 섬들이 일렬로 늘어선 제1열도선 밖을 타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이 궁극적으로 지역 거부권을 행사하는 지역을 더욱 확대해서 인도네시아 남부와 필리핀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52-3)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와 함께 1956년에 결성한,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정보 수집망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열성적인 회원국이기도 하다. 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국 정보 수집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 파인 갭Pine Gap 군사기지를 자국의 앨리스 스프링스 부근에 설치하도록 허락했다." "여기에 더해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고 있는 쿼드Quad는 동맹체라기보다는 미국, 인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 나라의 해군이 태평양에서 협력하는 전략적 협의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대놓고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늘 해상 항로를 열어두고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데 힘을 합치자는 명분에 뜻을 함께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베이징과 건설적인 대화를 이끌어가고 미국과는 방위를 비롯한 여러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힘든 경기를 치러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58-61)


2 이란, 전 세계와 기싸움을 벌이며 신의 과업을 수행 중이다


"이 나라의 지형은 미래의 침략자와 정복자에게는 엄청난 장애물이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따라 해안에서 시작되는 장장 1천 5백 킬로미터의 자그로스 산맥이 버티고 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만나는 이라크 접경지대의 샤트알아랍강 주변 지대는 상당 부분이 습지대로 천혜의 요새이다. 동쪽 국경에도 엘부르즈 산맥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다. 내륙으로 들어서면 카비르 사막과 루트 사막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지리는 역으로 이란의 힘을 제약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산악지대에서 내려와 주변으로 세력을 넓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산악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산을 가로질러 오가며 교류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에 인구가 밀집된 산악지대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문화를 발전시켜온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은 현대 국가로서 국민의 단결이나 화합정신을 발전시키는 데 한층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68-71)


"1966년 카이로에서 처형당한 과격파 이집트 지식인인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긴 했지만 그가 쓴 글들은 이란의 시아파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중요한 저작인 『시금석들』은 파르시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이슬람이야말로 무슬림 세게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라는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쿠틉의 영향력은 군주제,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세속적 독재 체제 등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한 아랍 국가들에서 훨씬 강하다.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했던 것은 무슬림형제단의 쿠틉 추종자들이 10년 이상을 전파해온 바로 그 말이었다. 쿠틉은 십자군과 시온주의자(유대인 민족주의자)를 물리치기 위해 폭력적인 지하드를 신봉했다. 이란의 시아파 문화에서 순교 정신과 융합된 이 신념은 혁명기와 그 이후에 신앙심 깊은 대중을 사로잡은 광신주의의 핵심이 되었다."(86)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1989년에 사망했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경제 발전은 더딘데 이슬람 성직자들은 국민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슬람 혁명 정신을 심겠다는 각오로 사회 전반에 철권 통치를 행사했다. 그렇게 하여 다음과 같은 정치 시스템이 고착됐다. 먼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 위원회의 절반은 최고지도자가 지명한다.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들의 면면은 어떻게 해야 표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 가운데는 투쟁하는성직자연합Militant Clerics Society과 이슬람혁명의지도자모임Society of Pathseekers of the Islamic Revolution도 포함돼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보면 개혁주의자들과의연정Pervasive Coalition of Reformists이 제 길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우선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90-1)


"2020년에 들어서자 새로운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권력이동을 빗댄 〈왕관에서 터번으로〉에 비견되는 〈터번에서 부츠로〉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부츠는 바로 군, 특히 혁명수비대를 뜻한다. 이란의 국회는 전직 혁명수비대 출신들로 채워져 있고 대기업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고경영자들은 혁명수비대에 탑승하면 계약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거나 엘리트 군대는 유력한 장군들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혁명수비대는 아예 자체 미디어 기업까지 소유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모든 매체에서 다음의 세 가지 논조를 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다. 먼저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자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며 이들을 거스르려는 자들은 몹시 나쁜 사람들이다. 또 경제적 및 정치적 실패 또는 안보 과잉은 개혁 정부의 잘못이다. 그리고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에도 외세는 위대한 이란을 파괴하려는 공작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107-8)


"이란 정권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양태 가운데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혁명적인 〈신정神政 국가〉(지배자를 신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는 국가)일 거라는 점이다." "1979년의 이란 혁명을 경험한 세대는 시간과 인구 통계학적 변화가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러 카드가 있다. 핵 이슈는 아직도 살아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비좁다. 또한 정치와 테러리즘 영역에서 써먹을 다양한 대역 배우들을 그들이 부를 수 있는 지역에서 보유하고 있다. 안팎에서 조직화된 내부 전복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 정권은 훨씬 무시무시하고 무자비한 보안 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볼 때 선뜻 타협하는 것은 죄악이며, 저항이야말로 신성한 행동이다. 종교를 내세운 이들 혁명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혁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110-2)


3 사우디아라비아, 한 가문의 성이 나라 이름이 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운송과 통신 기술을 통해 20세기에 만들어진 국가다. 이 나라의 지리로만 보면 각 지역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으며 그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이 나라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많다. 어쨌거나 강이 없는 나라 중에서 이만큼 큰 나라도 없고 내륙은 두 개의 광활한 사막이 장악하고 있다. 네푸드라고 하는 북쪽은 보다 작고 좁은 사막의 통로를 통해 남쪽의 엠프티 쿼터(Empty Quarter, 〈공백의 지역〉이라고도 한다) 지역과 연결된다. 남부 끝인 이 지역을 공식적으로는 룹 알 할리라고 하는데 물론 그 지역에 사는 얼마 안 남은 유목민인 베두인족은 그저 모래라는 뜻인 알 람라라고 부른다. 이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모래로만 이루어진 가장 넓은 지역이다." "엠프티 쿼터 지역은 남쪽에서 오는 지상의 위협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주는 완충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웃한 남쪽 국가들과의 교역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곳을 건너기란 남극을 가로지르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118-9)


"1945년 2월, 이븐 사우드와 루스벨트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에 정박해 있던 미군 전함 위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에게 보장해 주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자신들의 국경 안에 머물 것이며 미국은 그런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 이븐 사우드에게는 꽤 많은 적들이 있었는데 특히 그 중에는 이라크와 요르단을 통치하고 있는 하심 가문이 있었다. 그가 이들을 메카와 메디나에서 쫓아낸 것은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만약 그들의 세력이 강했고 적절한 제안만 있었다면 그들은 헤자즈를 탈환해 보려 했을 것이고 그러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븐 사우드도 종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세계 최강국을 새로운 친구로 삼는 것이 적들과 강화를 맺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된다. 특히 하심 가문의 뒤를 밀고 있는 영국 정부로서도 이제는 그들이 영토를 점유하는 것을 섣불리 지지하지 못할 터였다."(130-1)


"1965년에 개시된 텔레비전 방송은 이 나라를 종교적 극단주의로 내모는 단초가 되었다. 이 신문물이 사람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 거라는 두려움에 이슬람 교단의 보수주의자들은 1965년에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텔레비전에서 코란을 읽어주는 방송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왕의 조카 한 명은 아예 방송국 스튜디오에 대한 공격을 이끌다가 나중에 치안부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들을 달래기 위해 파이살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세속주의 정권으로부터 도망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와서 제도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찍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교단에는 외국인 혐오적인 성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파이살 국왕의 이 조치는 그 경향을 더욱 강화한 셈이었다. 21세기에 준동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많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은 이때 들어온 극단적 원리주의 학자 세대에게서 배운 바가 컸다."(132-3)


"전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몇 년간은 미국에 밀착할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만과 홍해는 비좁은 데다 하나같이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자국 해군력이 없다면 적대 세력은 인도양이나 수에즈 운하로 가는 이 나라의 수출로를 봉쇄할 것이다. 그런데 안보 면에서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도 중국과의 경제적 끈은 더욱 단단해질 것 같다. 중국은 이곳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팔았으며 지난 몇 년간 이 나라의 원유 수입을 급속도로 늘렸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화웨이가 중동 지역에서 성사시킨 12건의 5G 계약 가운데 한 건에 서명했다.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자국과 거래하는 나라들의 인권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중동 정치 분석가인 미나 알 오라이비의 말이다. 〈국가 자본주의라는 중국 중국 모델에 대다수 아랍 지도자들은 매료됐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별개로 경제적 자유주의는 대다수 이 지역 정부들이 추구하는 것이어서 지난 20여 년간 중국은 성공한 모델로 칭송받고 있지요.〉"(157)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약칭 MBS)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사회 계약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들은 부패가 덜하고 보다 덜 관료적인 나라, 석유시대가 슬슬 종말을 고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 현대 세계의 대다수가 누리는 여가생활을 자유롭게 즐길 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일을 해야 하며 그동안 받아왔던 보조금의 일부는 사라질 것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이슬람 교단의 보수적인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결정한 종교 생활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한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나라가 현대화된다면 자신들이 사회에 미치는 위력 또한 약화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와하비즘의 수출 역시 축소될 수 있다." "왕세자의 조부인 이븐 사우드는 국민들이 복종한다면 오일 머니는 그들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할 것이라는 계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왕세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21세기형 모델에서는 오일 머니의 역할이 한층 축소될 것이다."(160)


4 영국, 지리에서 파생된 분리의 정서가 남아 있다


"영국을 에워싸고 있는 바다는 계속해서 이 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영국은 바다 덕분에 유럽 본토의 과도한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이는 왜 이 섬나라가 유럽이라는 공동의 집에 대한 소속감이 덜한지 얼마간 설명해 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발생한 대학살도 유럽 본토만큼 영국을 크게 뒤흔들지는 못했다. 계량화하는 게 쉽진 않지만 이러한 〈분리의 정서〉가 브렉시트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영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이 급성장한 것은 1707년의 연합법(Acts of Union,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합병할 것을 결의한 법)으로 단일 국가가 성립한 뒤부터였다." "그로부터 3세기가 흐른 현재, 브렉시트로 인해 이 나라는 위험에 빠졌다. 이제 영국은 프랑스의 침공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따른 경제적 및 군사적 여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167-8)


"지리적으로 북쪽과 남쪽을 가르는 특징을 살펴보면, 산은 주로 섬의 서쪽 절반에 대부분 있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지대도 점점 더 높아진다. 스코틀랜드에서도 고지대의 대부분은 북서쪽에 치우쳐 있다. 사회 기반시설은 평지에 건설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이러한 분리는 발전의 측면에서 차이를 낳았다. 북동쪽에는 리즈, 셰필드, 뉴캐슬, 요크셔, 북서쪽에는 맨체스터, 리버풀 같은 산업혁명으로 유명해진 도시들이 포진해 있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날씨, 평평한 강, 농사에 적합한 토양, 수도와 가까운 것 등은 남부가 북부보다 더 발전한 이유가 된다. 땅덩어리의 절반 정도인 잉글랜드에 인구의 84퍼센트가 모여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도 인구와 산업 대다수가 잉글랜드 국겨와 가까운 남부에 몰려 있다. 스코틀랜드의 인구를 전부 합쳐도 잉글랜드의 5천 6백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550만 명에 불과하며 웨일스는 3백만, 북아일랜드는 2백만 명을 밑돈다."(171-2)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이 지불한 대가 중 일부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들의 제국이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영국은 우선 미국의 최고 우방이 됨으로써 제국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은 대영제국을 좋아한 적도 없었으며 함께 싸워야 할 냉전시기에도 그들이 별반 유용할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 다음은 제국의 몫은 없지만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미국의 최고 우방으로 남는 방법이다. 이 또한 잘 풀리지 않았다." "딘 애치슨은 오히려 영국이 유럽 대륙에 전념할 때가 왔다고 조언했다. 이제 영국의 새로운 역할은 일종의 이종 혼합이었다. 한쪽 발은 미국 진영에, 다른 한쪽 발은 EU의 전신에 담는 것으로 이 역할은 40년 이상 지속된다. 훗날 EU에 관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도 영국은 미국과는 별개로 나토의 그 어느 회원국보다 월등히 앞선 국방력을 구축해갔다. 영국은 미국이 부를 때면 언제든 동등한 비중으로 국방력을 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188-9)


"영국은 워싱턴과의 기나긴 작별 인사를 늦추거나 어떻게든 되돌리려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 구세계의 유산을 되새기는 영국계를 포함한 미국인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의 지정학적 우선순위도 변하고 그 관심 또한 태평양 지역으로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양국을 묶고 있던 정서적 끈도 느슨해져 가고 있다. 이런 경향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부터 그 징후가 보였다. 영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다면 때로 경제적, 외교적 또는 군사적 측면이 될 수도 있을 초강대국의 대전략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라크에서 봤듯이 이런 관게가 늘 최상의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체스 용어로 말하자면, 왕은 여전히 미국일 터이고 여왕은 체스판 주변에서 움직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될 것이다. 영국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주요한 결정은 미국의 게임 전략에 어떻게 조응하느냐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194-5)


"(스코틀랜드의) 현대적 독립 시나리오는 브렉시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2014년에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했는데 55퍼센트가 영국에 남는 것을 지지했다. 단 영국이 EU에 남아 있다는 전제에서였다.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도 EU를 지지하는 표가 잉글랜드보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찬반이나 경제적 찬반 논쟁이 아니다. 스코틀랜드가 떠난다면 영국의 국제적 위상에 미치는 악영향은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에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이 절교에 두 손 벌려 크게 환영할 나라는 아마 러시아일 것이다. 유럽의 2대 강국 중 하나인 영국의 군사력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놓고 반길 나라들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파리와 베를린 정부는 유럽연합군을 창설하려는 계획에 늘 훼방을 놓았던 영국의 경제력이 축소된다는 점에는 주목할 것 같다."(206)


5 그리스, 그 위치 때문에 고대부터 현재까지 열강들의 게임의 대상이 되다


"6천 개가 넘는 섬들을 품고 있는 그리스는 그 어느 곳도 바다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발칸 반도의 남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나라는 북쪽으로는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터키와 접하고 있다. 국경 길이는 총 1,180킬로미터에 이르지만 대부분의 국경은 해안선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 본토는 에게해, 지중해, 이오니아해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고대에는 이 바다들이 문명과 문명을 이어주었지만, 오늘날 이 바다들은 그리스가 유럽 못지않게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다. 고대부터 그리스의 지리는 이 나라를 제약하기도, 열강들의 게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유럽의 남동쪽 귀퉁이에서 에게해를 맞대고 있는 이웃이자 숙적인 거구(터키)와 대결 태세를 취하고 있는 그리스는 이제는 EU, 러시아, 나토, 어수선한 중동, 그리고 난민들이 야기한 위기의 교차점에 서 있는 처지가 되었다."(213-5)


"그리스야말로 〈전략적 깊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응용하기에 딱 좋은 경우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침략군과 이 나라의 산업 중심지대 같은 일종의 핵심 지역 간의 거리를 일컫는다. 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방어할 기회는 더 많아진다. 이와 관련해 가장 좋은 사례가 러시아일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침략군이 중심부까지 도달하려면 기나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방어하는 측은 극한 상황에서도 후퇴할 수 있는 상당히 방대한 전략적 깊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의 황폐한 지형─북부의 척박한 산악지대─은 그리스 사람들을 유능한 뱃사람으로 만들었다. 본토 안에서도 육상 무역은 쉽지 않았던 터라 (지금도 그렇지만) 상인들은 해안선을 따라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이 의미하는 바는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한 그리스는 바다 위 교역로를 반드시 지켜야 했으며 그 결과로 강력한 해군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정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다."(216-7)


"금세기 들어 EU와의 관계는 EU 내에서 남동쪽 모퉁이를 차지하는 그리스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삐걱대었다. 그리스는 발칸 루트(그리스와 발칸 반도를 거쳐 서유럽으로 들어가는 길)를 통해 부자 나라들로 가려는 이주민과 난민 행렬에 대해 EU는 물론 다른 회원국들의 지원이 없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터키와 그리스 섬들 사이 에게해의 짧은 구간을 건너는 위험한 모험에 뛰어들고 있다. 일부 섬들은 터키 해안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사안은 그리스와 터키 간에 발생하는 큰 갈등의 원천이 됐다. 그리스는 터키 정부가 그리스에 불안정을 초래하려는 의도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이주민들과 난민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국경을 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터키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터키 당국이 이주민과 난민의 이동을 EU 국가들에 영향을 주는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233-4)


"동부 지중해에서 대규모 가스전들이 발견되면서 가뜩이나 갈등의 소지가 많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를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하고 있다. 가스전은 이집트, 이스라엘, 사이프러스, 그리스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자신들의 독보적인 위치가 위협받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터키의 움직임에는 자국을 위한 자원 확보 못지않게 그리스의 안정을 해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다." "구제금융을 받는 그리스에게는 군사적으로 대응할 자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키는 그 기간 동안 해군력을 증강했지만 나토의 두 회원국인 이들의 힘은 아직은 막상막하다. 그리스 해군은 잠수함 전력에서는 확실히 우세하지만 터키도 대잠수함전에 꽤 많은 투자를 해오고 있다. 게다가 터키는 가용 인력이 훨씬 많다. 그리스가 여전히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있다."(240-2)


"그리스는 이 지역에서 미국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동맹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세워두고 있다. 미군이 이 지역에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 점을 이용해서 터키가 믿을 만한 나토의 파트너로 다시 서도록 압박하고, 시리아 국경 가까이 있는 터키의 인시르리크 공군기지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재정 붕괴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방비를 계속 지출해야만 하는 그리스는, 터키와 서구의 관계가 너무 악화돼 터키 정부가 나토를 떠나게 된다면, 동맹의 최남단을 담당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여기서 러시아는 양쪽을 왔다갔다하면서 게임을 펼치려고 애쓰고 있다. 때로는 터키랑 손을 잡다가도 그리스 지도자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것이 큰 모험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시리아에 있는 작은 기지를 보완하기 위해 지중해에서 쓸 만한 해군기지를 얻을 수 있다면 러시아의 전략적 야심에서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246)


6 터키,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 친구는 별로 없다


"터키에는 광대한 평야나 물자를 옮길 만한 길고 평탄한 강들은 없을지 모르지만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비옥한 땅과 깨끗한 물이 있다. 그리고 호수나 다름없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교역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이런 조건은 이스탄불이라는 핵심 도시가 해상에서 공격을 받더라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마르마라해를 중심으로 서쪽 끝단에는 다르다넬스 해협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에게해로 진입할 수 있다. 반대로 동쪽 끝단에는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다. 터키가 이 두 관문을 지배하는 것은 방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이점이 된다." "현대 터키는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면서 동과 서를 잇는 교차로에 또다시 서 있는 입장이다. 터키는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난민 행렬이 통과하는 관문 중 하나로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문지기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쥔다는 뜻이기도 하다. 터키의 야심은 〈신오스만주의〉의 분명한 신호다."(252-4)


"오스만은 먼저 세력을 굳힌 다음에 확장해야 했다. 따라서 투르크인들은 우선 전리품으로 빼앗았던 길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아나톨리아의 넓은 내륙 지역을 평정했지만 사실상 전략적 깊이 말고는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그 땅은 대부분이 메마르고 울퉁불퉁한 산지라서 작물을 재배할 만한 곳도 제한돼 있다. 또 남쪽 해안 상당 부분도 땅이 무른 데다 교역에 적합한 항구들조차 거의 없다. 게다가 비좁은 해안 평야는 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오스만 제국은 내륙 지역을 개발하고 거주지로 만드는 것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지역 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당시에도 지속적으로 진압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현재에도 자주 신경을 써야 할 불안정한 세력 기반으로 남아 있다.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의 역사에서 아나톨리아의 반란 세력을 누르느라 애를 썼다. 현대의 터키가 물려받은 유산 중 쿠르드족의 봉기도 이 문제에서 비롯됐다."(256-7)


"1952년, 터키의 나토 가입은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냉전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가입시키면 가까운 미래에 터키가 도박을 걸거나 모스크바에 의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맹의 남쪽 측면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을 터였다. 1952년에 그리스도 같은 이유로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비록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나토의 선택지와 화력을 증강시켰다." "그렇기에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 나토 동맹국들은 애써 못 본 체했다." "그러나 터키가 EU에 초대받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일단 경제적으로 터키는 EU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인권지수 또한 그 요구 조건에 한참 떨어진다. 게다가 EU 내에 수치화할 수는 없어도 인식 가능한 어느 정도의 편견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터키가 충분히 〈유럽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터키는 새로운 지도자 아래에서 조금씩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265-7)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서구가 쇠락해 가는 상황에서 터키가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운명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오스만주의자다. 현대 터키 역사에서 그가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의 집권은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나라는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설립된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나토에 대해 미온적이며 이전의 오스만 제국 땅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것에 분노하는 이슬람 이념에 뿌리를 둔 정당이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었다." "터키 정부는 중동에 자국의 힘을 투사할 공간이 있을 거라 느꼈지만 늘 그렇듯 올라탈 말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이 지역에 힘을 보여줄 만큼 막대한 부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이집트도 신오스만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269-72)


"다극화된 세계에서 터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수많은 배우들 가운데 주역으로 올라서고 있다. 이러한 변환의 시대에서 터키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졌던 상징적인 순간이 2020년 7월 12일에 찾아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34년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제정한 법을 뒤집고 하지아 소피아 박물관을 원래 용도인 이슬람 사원으로 되돌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에르도안은 오스만/터키 역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네 개의 전투도 다시 끄집어냈다. 〈하지아 소피아의 부활은 바드르로부터 만지케르트까지, 니코폴리스부터 갈리폴리에 이르는 우리 역사의 좋은 시절에 대한 충만한 기억을 상징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는가? 나토 동맹국이자 가치 있고 믿을 만한 현대 민주국가로서의 터키는 지난 얘기인가?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터키가 아무리 멀리가려 해도 늘 그 여정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나라의 지리다."(285-90)


7 사헬, 테러와 폭력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사헬Sahel이라는 단어는 해안 또는 해변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나왔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건조한 사하라 사막을 건너려던 초창기 여행자들이 이 지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해안에서 모래바다를 건너 또 다른 해안, 즉 유럽으로 가려고 한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을 떠나고 싶어 한다." "대다수 유럽인은 이 지역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 문제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유럽은 이미 이주민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유럽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주민과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른바 〈유럽 요새〉를 구축하자는 호소도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물결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하지만 양쪽 지역을 모두 안정화시키려면 북쪽이 아니라 지중해 남쪽을 봐야 한다."(294-5)


"수십 년 동안 지도에 표시돼 오던 서구 열강의 세력권은 주로 행정 구역처럼 관리되다가 나중에는 사실상의 국경선이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탈식민지화를 거친 지역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다. 1964년에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의 회원국 수장들은 지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구 열강이 임의대로 지도에 표시한 기존의 국경선을 고수하는 게 낫다는 데 마지못해 합의했다." "현상유지든 재협상이든 위험은 수반된다. 일례로 1960년대에 나이지리아 정권은 나라를 단결시키겠다는 의지가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이보족이 지배하던 석유 자원이 풍부한 비아프라 지역과 전쟁을 일으켰다. 이 시도는 성공을 거뒀지만 대신 1백만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 "국경을 지도 위에 표시할 때는 잘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기후변화, 지하디스트, 지역 내 식민지 이전의 분열주의 등이 결합하여 〈갈등의 시대〉를 만들면서 이 지역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303)


"폭력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따라다니는 주제들이 있다. 일단 가뭄으로 땅이 말라서 소나 양을 치기 어려워지면 유목민들은 새로운 도시나 시골을 찾아 들어온다. 여기서 그들은 〈외부인〉으로 취급받고 그 지역 농민들과 이해가 충돌하면서 여기저기서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태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후변화다." "일례로 20세기 후반의 40년 동안 차드호수의 물이 90퍼센트나 줄면서 엄청난 물고기들과 일자리가 사라졌고, 이 호수의 물에 의지하고 살던 차드와 그 인근 나라 수백만 명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이 지역 전체에서 3천만 명이 식량 불안 상황에, 1천만 명 가량이 기아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인구 통계학적 변화가 진행되는 곳이다. 지금부터 2050년까지 이 대륙의 인구는 12억 명에서 24억 명으로 곱절이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헬이라고 다르지 않다."(321-4)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알고 보면 천연자원 측면에서는 엄청난 부자다. 니제르에는 우라늄과 원유와 인산염이, 모리타니에는 철광석과 구리가, 차드에는 석유와 우라늄이,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는 금광이 있다. 하지만 그 나라 모두에는 통치 구조와 부정부패, 불투명한 자금 운용, 산업의 경제적 모델에 대한 우려 또한 있다." "안정된 산업 국가라면 당연히 당국이 산업을 관리하고 보다 많은 수입이 정부의 재정에 편입될 것이다. 하지만 사헬 지역 나라들은 너무 많은 전선에서 감당키 어려운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법적인 산업을 통제할 수도 없을 뿐더러 부패한 관리들이 허술한 국경을 넘거나 공항 밖으로 막대한 양의 금을 빼내 밀수하는 데 조력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는 국가에 도전만 하지 않는다면 지역 무장단체들이 광산을 장악하고, 비공식적인 경찰력이 되는 것을 아예 용인해 준다. 뇌물 수수죄, 고문에 의한 자백과 투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324-9)


"식민주의에 이은 탈식민지 경제와 정부 기관의 부패는 국내외 극단주의자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만연한 실정, 빈곤, 사회적 균열의 틈을 파고들게 했다." "지역적 차원에서 유럽 세력은 사헬 지역 사태로 그들의 국내 정치가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1백만 명에 이르는 난민과 이주민이 유럽으로 몰려왔던 2015년 이후에 유럽 나라들에서는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었고 극단주의 성향의 정치 세력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 무엇이든, 갈등을 격화시키는 기본적인 문제들과 씨름할 의사가 없는 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분쟁에는 군사적 해결 방안이 없다〉라는 말은 대개는 상투적인 문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헬에서는 이 말이 사실이다. 여기서는 이른바 미국의 두더지 잡기 개념이 적용된다. 만약 한 나라에서 어떤 반정부 단체를 누르면 또 다른 나라에서 튀어나온다. 비록 안정적인 나라라도 이웃 국경이 허술하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332-5)


8 에티오피아, 그래도 지리는 에티오피아 편이다


"에티오피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중요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물이다. 이 나라의 강점이 담수라면, 해수는 이 나라의 약점이다. 에티오피아에는 12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고 9개의 큰 강이 있다. 덕분에 이웃 나라들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보니 에티오피아는 그들에 대해 큰 정치적 영향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 나라에 부족한 것은 해안과, 직접적으로 해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담수 덕분에 중동에 대한 영향력과 홍해에 대한 접근성을 키워가면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 또한 내전, 국경 분쟁, 극단주의, 해적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군사 및 경제 전략 못지않게 교역에서 잠재적인 이익을 바라보는 터키, 중국, 걸프 국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관심까지 불러들이고 있다."(341-2)


"금세기에 수단, 남수단,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는 모두 내전을 겪었다. 케냐는 대규모 민족 분쟁과 더불어 소말리아에 근거지를 둔 알샤바브(소말리아 극단주의 테러 조직)가 자행하는 테러 공격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웃 나라들이 경제 계획을 세우고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데 있어 에티오피가 도울 수 있다면 지역 안정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강력한 국경과 국내의 안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 강국이라고는 해도 에티오피아에 산적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사실 에티오피아는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만큼 잠재력이 높은 나라다. 농업은 에티오피아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가뭄에 시달리고, 삼림의 남벌, 과도한 방목, 군사 독재, 빈약한 인프라 등이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운항에 적합한 강이 바로강 하나뿐이라는 점도 국내 교역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344-6)


"에티오피아가 직면한 우선적인 과제는 내부 경계선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외부 국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이후 들어선 모든 정권은 하나같이 동일한 지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바로 〈해양으로의 접근〉이 힘들다는 것이다. 현대 에티오피아가 살아남고 번영을 이루려면 확실하고 믿을 만한 교역로를 확보해야 한다. 에티오피아 수출입 상품의 대부분이 이웃 나라의 영토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수출과 수입의 대략 90퍼센트가 바다를 통해 이뤄지는데 화물 대부분이 지부티의 심해항을 통과한다." "이러한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는 지부티 항구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소말리아 베르베라항의 지분 19퍼센트도 획득했고, 수단의 포트수단과 케냐의 라무항 지분도 확보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오고 있다. 또 에리트레아의 항구로 가는 도로들도 다시 개통시키고 있다."(363-4)


"청나일강(Blue Nile)은 수단의 수도인 카르투에 도달해서 백나일강(White Nile)과 합쳐져 비로소 나일강이 되어 이집트로 흘러간다.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과 저수지는 수단과의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수년동안 에티오피아의 국민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 왔으며 그 나라 미래의 중심에 있다. 이 댐에서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생산될 것인데 에티오피아는 그 여분을 수단에 공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집트에게 그 댐의 건설은 사실상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는 곧 한 나라가 지리의 감옥에 갇히는 극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나일강은 이집트와 그 국민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나일강이 없으면 이집트도 없다. 청나일강에서 시작된 나일강의 85퍼센트가 이집트로 흘러들어 오는데 에티오피아가 여기에 손을 대려는 것이다. 물론 그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겠다는 것이지만."(367-9)


"나일강 수계에 의존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게 물은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다. 우간다, 부룬디, 콩고, 이집트, 케냐,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르완다, 남수단, 수단, 탄자니아는 하나같이 그들의 국경을 통과하는 강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만큼 불안한 나라도 없고, 에티오피아만큼 덜 불안한 나라도 없다." "에티오피아에게 그랜드 에티오피아 댐은 수세기 동안 지속된 빈곤과 부족 간 분쟁의 악순환을 끊게 할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기술 발전은 에티오피아로 하여금 지리라는 감옥의 철창을 구부려서 열어젖히게 한다. 다른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이 나라도 비교적 짧은 강들에만 배를 띄울 수 있다. 이 나라의 강들은 고지대에서 너무도 급격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배를 띄울 수 없어 교역에 이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물은 이제껏 에티오피아에게 일정 수준의 정치력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제는 에너지 측면에서 권력이 되고 있다."(371-2)


9 스페인, 지리의 방해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스페인은 한마디로 거대한 요새다.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시작하는 좁은 해안 평야는 이내 거대한 산맥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중부 지역 전체는 높은 고지대와 깊은 골짜기들로 이뤄진 고원지대다." "16세기에 마드리드가 수도로 선택된 것은 스페인의 한복판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산악지형과 면적(영국보다 2배나 큰!)은 늘 교역과 강력한 정치적 통치력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으며, 각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및 언어적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다. 이런 상이함이 낳은 복잡다단함과 열정은 아직도 스페인의 국가國歌에 가사가 없다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할지 서로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들은 현대에 들어서도 최북단의 바스크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르는 테러를 수반한 분리 독립운동부터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는 카탈루냐의 정치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378-9)


"스페인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에도 이 나라의 지리는 부의 창출과 정치적 통합을 방해하고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은 외부의 침입자에게는 장벽이 되지만 교역 측면에서는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또한 산악지대에 가까이 붙어 있는 좁은 평야는 농업이 발전하는 데 공간적인 제약이 된다." "프랑스나 독일과는 달리, 스페인에는 넓은 평야지대를 따라 끊기지 않고 흐르는 큰 강이 없다." "스페인의 주요 다섯 개 강 중 네 개가 대서양으로 흐르고 에브로강만 지중해로 흘러든다. 대다수 강들은 (길이가 짧고 수량이 적은데다) 배를 띄우기 어려워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지름길로 이용하지 못하다 보니 물자를 실어 나르거나 전쟁 중 군대를 이동시키는 데도 별반 쓸모가 없다. 유일하게 운항이 가능한 내륙의 하천은 과달키비르강이다. 이것은 이 강이 지나는 세비야가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해양을 운항하는 선박들이 오갈 수 있는 내륙 항구라는 얘기다."(382-3)


"스페인은 독립을 원하는 바스크와 카탈루냐를 가만히 앉아서 잃을 생각이 없다. 이런 입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국가의 위신과 경제 문제도 있지만 때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지리적 문제다. 스페인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쪽의 침략자들은 대개 피레네 산맥 양측에 좁게 펼쳐진 나지막한 땅을 통해 이 나라로 진입했다. 그곳이 바로 북서부의 바스크 땅과 북동부의 카탈루냐 땅이다. 북쪽에서 스페인이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이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카탈루냐나 바스크가 분리 독립해 버린다면 스페인에게는 끔찍한 저주가 될 것이다. 이 두 지역이 스페인 중앙 정부에 적대 세력이 된다면 악몽이나 다름없다.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스페인의 주요 지상 보급로로 연결되고, 카탈루냐와 바스크 두 지역은 바르셀로나와 빌바오를 포함한 스페인 주요 항구의 본거지가 되기도 한다."(414)


"분리 독립 세력과 기나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스페인의 최근 사례에 다른 나라들도 예의주시하며 주목하고 있다. 만약 독립한 카탈루냐가 EU로부터 배척당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필시 카탈루냐와 새로운 우호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하러 나설 것이다. 러시아는 그리스에 발판을 마련하려고 20여 년 동안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지중해 서쪽에서도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스페인으로서는 구매력을 앞세워 바르셀로나 항구로 밀고 들어와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투자와 교역을 제안하는 베이징 측의 이야기가 훨씬 솔깃할 수 있다. 중국은 EU의 경제적 영향력과 개별 무역 거래에 반대하는 규정에 따라 EU 권역에서는 거의 차단된 상태라 할 수 있는데, 만약 카탈루냐가 하나의 독립된 국가가 된다면 스페인은 카탈루냐의 EU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며 그러면 중국의 전략이 먹혀들 여지가 생길 수 있다."(415)


"(18세기 초반에 영국에게 빼앗긴) 지브롤터와 모로코 사이의 지역은 사람은 물론이고 마약 밀매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분주한 항로가 된 이곳이 아프리카와 접한 EU 국경인 것을 알고 있는 수천 명의 이주민들과 난민들은 해마다 모로코와 스페인 사이의 담장을 넘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짧은 거리임에도 이 길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훨씬 적다. 그 이유는 리비아는 실패한 국가이고 모로코 정부는 스페인과 협력하는 행정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모로코 모두 사헬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고, 만약 사헬 지역 국가들이 분열될 경우 모로코도 불안해져서 세우타와 멜리야는 물론 스페인 본토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은 말리를 비롯한 여러 사헬 지역에서 정부군을 훈련시키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419-20)


10 우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일본,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는 2020년 10월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한 첫 번째 우주 탐사국이었다. 달 탐사와 자원의 추출을 관장하는 이 협정에 서명한 국가들은 협정의 효력이 지속되는 한에서 2024년까지 달에 최초로 여성을 착륙시키거나 13번째 인간을 착륙시키는 활동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2028년까지 채굴을 위해 달에 기지를 설치하려는 인류가 딛는 거대한 발걸음으로 계획된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미 다국적 위성통신 기구인 인말새트(Inmarsat, 국제해사위성기구)와 인텔샛(Intelsat, 국제통신위성기구)을 설립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참여한 나라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를 나누고 오염이 심한 지역을 찾는 일에도 협력한다. 실제로 남극 지역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하고 확인한 것도 이 위성기술 덕분이었다. 이것은 인류가 최고 수준으로 합동 작업을 펼칠 때 상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427-33)


"1967년에 만들어진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 달 및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 개발과 사용을 규제하는 국제 조약)은 다시 쓰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조약은 우주 공간의 이용을 통제하는 대다수 규범들의 근간이 되어 왔다. 이 조약에서는 〈우주 공간은 주권 주장, 그 사용이나 점령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것일지라도 한 국가가 전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협정은 우주 개발 과정에서 유발되는 법적, 정치적, 군사적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르테미스 협정에 관해 러시아와 중국이 특히 우려하고 있는 조항은 달에서 한 나라가 작업하고 있는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서명국들이 안전지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한 부분이다. 각 나라는 해가 되는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그 지대를 존중하도록 권고받는다. 이는 곧 러시아 우주선이 그 지대에 착륙하는 것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 기지 곁에 무언가를 차리는 것, 또 새로 도착한 나라들의 활동 시나리오 자체를 차단한다는 얘기다."(436-7)


"강대국들이 상업적,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주 공간을 점할 것이라는 가정을 내세운 입장이 이른바 〈우주 정치학〉이다." "군사 우주 전략가들은 이 이슈 한복판에 있는 지형을 4개의 범주로 구분하려 한다. 먼저 지구를 뜻하는 테라Terra가 있다. 지구와 그에 가까운 영공, 비행체가 연료를 재공급받지 않고 지구 주위의 퀘도로 들어갈 수 있는 한계까지를 말한다. 그 위에 지구우주Earth Space가 있다. 이 공간은 최저 지구궤도에서 지구 자전과 궤를 같이하는 지구정지궤도까지를 지칭한다. 그 위로 달의 궤도를 말하는 달우주Lunar Space가 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태양계로 들어간다. 태양계 내의 모든 것은 달퀘도 너머에 있다. 향후 몇십 년 내에 미래의 우주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지구우주, 특히 저궤도다. 통신위성과 군사 분야로 확대돼 가고 있는 우리의 위성들이 자리 잡은 곳도 여기다. 이 벨트를 통제하는 나라들이야말로 지구 표면 전체에서 거대한 군사적 이점을 얻어갈 것이다."(439-41)


"이제 인공위성은 더 이상 전화나 TV 방송을 중계하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위성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현대전에서도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위성을 떨어뜨리거나 방해하면 자동차의 GPS 시스템이 먹통이 되고 신용카드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려고 텔레비전을 켜도 깜깜한 화면만 나온다. 며칠 지나면 슈퍼마켓의 배달 시스템까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GPS가 없다면 선박과 비행기들이 제 길을 찾는 데 고생하는 것은 차치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력망이 다운되는 것이다. 일기예보를 듣는 것 같은 일은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선진국은 정보와 감시 활동을 위성에 의지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군사 위성이 타격을 입는다면 그 나라의 최고사령부는 그 즉시 그것을 지상 공격의 전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핵공격 조기 경보 시스템도 망가질 수 있어서 차라리 먼저 공격을 감행하자는 결정을 촉발시킬 수 있다."(447)


"땅과 바다의 위대한 발견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경쟁, 힘겨루기, 승자가 규칙을 정하고 선을 긋는 것 말이다. 이 장면을 우주로 옮긴다면, 이제껏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현재는 쫓겨날 소유주가 없고 위험을 부담하면서 모험을 감행하고 투자하는 측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펼칠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지구에서의 모든 분쟁과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바로 기후변화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주는 그 무한대 속으로 우리 인간의 정신이 뻗어나갈 기회를 주고 있다. 인간은 늘 위를 바라보았고 깜깜한 밤하늘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어왔다. 실제로 우리는 높은 곳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높이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서로 힘을 합친다면 훨씬 빨리 도달할 수 있다. 우주에는 한계가 없으니까."(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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