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을 읽다 - 우리의 헌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유유 서양고전강의 6
양자오 지음, 박다짐 옮김 / 유유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문


1 연합에서 연방으로


"1776년 7월 4일, 13개 주는 명확하고 강경하게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지위를 주장했고, 역시 각각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입장을 지닌 채 독립선언서(전체 제목은 'The 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에 조인했다. 그렇기에 문서에 '만장일치', 즉 13개의 정치적 조직이 전원 동의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만약 이 13개 주가 이미 하나로 결합해 새로운 국가를 설립했다면 '만장일치'는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1777년, 독립선언서에 연서한 13개 주는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을 체결해 13개 주의 공동 행동 강령을 제정했다. 연합규약의 제정은 당시의 현실조건에 쫓겼다고 할 수 있었다. 영국왕 조지 3세는 독립선언서에 대응해 한 발 물러나기는커녕 강경하게 영국군 2만 명을 북미로 파견해 무력으로 반역자를 진압하는 쪽을 택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아 13개 주는 더욱 힘을 합쳐 눈앞의 무장 충돌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30-4)


"연합규약에는 대통령이 없다. 13개 주에서 각각 파견한 대표로 구성된 'Congress'가 있을 뿐이다. 'Congress'의 본래 뜻은 '대표회의'에 지나지 않는다. 연합규약에서는 '연합'의 최고 권력 기구를 13개 주의 '대표회의'로 정하고 있다." "북미 식민지와 영국 사이의 군사 충돌은 1776년부터 1783년까지 계속되었다. 1783년 영국은 마침내 한 발 물러나 정전 평화 조약을 내밀었다. 평화 조약은 연합의 최고 권력 기구인 연합대표회의에 도착해 체결을 기다렸으나 이런 역사적 대사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회의를 성사시킬 대표들을 모으지 못했다. 몹시 공을 들여서야 각 주의 대표가 모였고 그제서야 평화 조약도 발효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주는 끝까지 영국과 연합 사이의 평화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고, 단독으로 영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남부맹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한 남부의 선택은 명백히 연방보다 먼저 역사에 존재했던 조직인 연합을 근거로 한다."(35-8)


"느슨하게 조직된 '연합'과 '연합대표회의' 그리고 그 지침이 되는 '연합규약'은 13개 주가 함께 영국에 맞서도록 했지만, 13개 주 사이의 분쟁은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다." "작은 주는 아무리 작아도 연합규약의 테두리 안에서 큰 주와 동등한 권리를 지녔다. 큰 주는 자연히 이러한 구조에 불만을 품었다. 큰 주의 불만을 모를 리 없는 작은 주에서는 이 동등한 구조를 바꿔 규모에 따라 세력을 확대하려는 큰 주의 시도를 막고자 연합규약 개정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회의는 훗날 역사에 '제헌 회의'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바로 이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회의가 준비되고 개최되던 역사의 순간에는 누구도 이 회의가 그 중대한 '제헌 회의'가 될 줄 몰랐다. 회의 결정 당시에는 연합규약을 검토하자는 제시조차 없었다. 다수의 회의 참가자는 자신이 '각 주 사이의 상업 및 무역 관계'를 토론하고 협상하러 왔다고 믿었다."(40-1)


"필라델피아 회의에 비교적 큰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극소수였는데,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제임스 매디슨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매디슨은 필라델피아 회의 전에 미리 버지니아주의 모든 대표를 소집해 사전 회의를 열었고, 그 회의에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새롭게 조직하자는 건의서의 초고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훗날의 역사에서 '버지니아 플랜'Virginia Plan이라고 불린다." "회의 6일째 되는 날, 메디슨은 버지니아 플랜을 제출했고, 온 회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성공적인 기습이었다. 거의 모든 대표가 버지니아 플랜에 격렬한 의견을 표출했다. 물론 그중 대다수가 반대 의견이었다. 하지만 찬성이든 반대든 이러한 의견들은 하나의 효과를 낳았다. 그 이후로 회의는 버지니아 플랜을 떼어 놓고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버지니아 플랜은 미국 헌법의 기본 골격이 되었으며 연합규약 검토에서 하나의 새로운 조직에 대한 탐색으로 회의의 방향을 이끌었다."(51-2)


2 '우리'를 '미국 인민'으로 정의하다


"미국 헌법에는 '전문'前文이 없다. 간결하고 짤막한 '서언'序言이 한 구절 있을 뿐이다. 영어 원문에서는 이를 'Preamble'이라고 부른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establish Justice, insure domestic Tranquility, provide for the common defence, promote the general Welfare, and 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 do ordain and establish this Constitution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우리들 합중국 인민은 더욱 완전한 연맹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이 누릴 자유의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합중국을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하고 확립한다.〉 이 대목 첫 구절은 비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문장의 주어이자 헌법의 주체는 바로 이들이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우리들 합중국 인민〉."(59-60)


"미합중국 헌법은 '미합중국 인민'이 제정하고 확립하였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고였다. 인류 역사상 그때껏 인민이 스스로 제정하고 확립한 헌법은 나온 적이 없었다." "몽테스키외와 루소가 말한 '민주'는 역사성을 띤 개념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와 제국이 되기 전의 로마 공화제에서 왔다. 몽테스키외가 정리한 역사 사실을 보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관할하게 하는 민주 법규는 현군이 발명하고 제정해서 인민에게 하사하는 것이다. 아테네에는 솔론이, 스파르타에는 킬론이 있었다." "루소는 '정부가 인민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먼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민주 법규를 만들고 정부가 민주 법규를 실시한다면, 인민은 이러한 구조 안에서 서서히 민주 시민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코르시카의 요청으로 헌장 초안을 만든 루소는 인민이 주체가 되어 제정한 민주 규율을 상상할 수도, 이에 동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61-2)


"각 주마다 정해진 제헌회의 양식이 없었던 덕에 헌법 인가 회의가 열리는 2~3년간 모든 주가 미국 헌법을 둘러싼 열정적이고 시끌벅적한 토론에 몰두했다." "신문과 잡지에 각양각색의 정치 의견이나 헌법에 대한 주장이 게재되었다. 다수의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 의견을 발언했다. 이 시기의 집단 정치사상의 대약진을 입증하는 문헌이 하나 남아 있다. 85편의 글로 이루어진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s다. 『연방주의자 논고』는 세 명의 저자 매디슨, 해밀턴, 존 제이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3인은 'Publius'라는 하나의 필명으로 글을 썼다. 'Publius'는 '평민'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그들이 '평민'을 대표해서 발언한다는 의미다. 85편의 글에 담긴 공통 의도는 각 주의 사람들이 헌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가, 새로운 연방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세 저자는 연방 제도의 가장 열성적인 옹호자였고, 나아가 연방 제도를 가장 명석하고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해석자였다."(74-5)


"루소는 저작에서 헌법이란 '주권을 규범화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했다. 루소의 정치 이론은 주권재민의 실현이 인민의 입법권에 달려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군주 혹은 소수자의 의견에 따라 어떤 정부를 세울지, 정부와 인민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결정됐다. 새로운 주권재민의 국가에서는 정부 조직 그리고 정부와 인민의 관계가 군주나 소수자의 주관적인 의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입장에서 세워진 근본법의 규제를 받는다. 이때 비로소 인민의 주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오직 이 규범에 따라 권리를 지니고, 또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주권재민을 검증하는 가장 주요한 척도다. 18세기, 루소의 사상과 학설은 북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루소식 헌법은 북미 식민지에서 제정한 자치 조항에 가장 먼저 채택되었고, 이 조항이 면면히 이어져 독립 후 각 주의 주 헌법으로 바뀌었다."(82-3)


"연방주의자는 연맹과 결합이 좋은 것이라 여기며 더욱 완전한 연맹을 추구했다. 반면 주권주의자는 다시 얻기 힘들 독립과 자유를 몹시 아꼈다. 이들은 연맹과 결합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채 안전과 번영을 염두에 둔 최소한의 연합을 원했다. 상반된 가치관이었다. 어느 한쪽도 상대를 설득하거나 압도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탄생한 헌법이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 사이에서 주저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예증이 있다. 연방은 자신의 헌법을 보유하게 되었고 우리 인민들로부터 주권主權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 헌법이 각 주의 주 헌법을 파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제6조에 주 헌법이 연방 헌법에 저축될 경우, 해당 부분은 무효가 된다고 규정할 뿐이었다. 루소와 상통하는 정치 이론에서 바라보면, 미국은 위계가 나뉜 두 개의 주권, 즉 이중 주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와 연방이 모두 주권을 지니고, 주권의 형식을 규범화하는 헌법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88-9)


3 가장 좋은 시스템, 삼권분립


"지금 우리는 삼권분립을 민주의 주요 요건으로 여기며, 삼권분립을 보면 곧 민주를 떠올린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와 루소의 시대로 되돌아가 보면, 그들은 민주가 가장 좋은 정치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 제도를 논의할 때면 그들은 각기 다른 제도의 유익과 폐단, 득과 실을 분석했고, 나아가 어떤 사회에 어떤 제도가 적합한지 내놓았다. 귀족제가 군주제보다 좋을 것이 없었고, 군주제라고 민주제보다 못하다고 볼 수 없었다. 관건은 귀족제, 군주제, 민주제 가운데서 가장 좋은 한 가지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 조건을 헤아려 저마다의 국가와 사회에 맞는 제도를 들이는 것이다." "루소가 생각한 가장 좋은 조합에는 여러 제도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이는 민주제를 입법권의 원칙으로, 군주제를 행정권의 원칙으로, 귀족제를 사법권의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필라델피아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이 두루 잘 알고 있는, 심지어는 신봉하는 바였다."(96-8)


"상원은 주를 기초로 조직된다. 이는 이해하기도 실행하기도 쉽다. 하지만 하원은? 존 애덤스가 내놓은 대표의 조건 한 가지가 훗날 연방 하원의 구성과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민이 뽑은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 하원은 미국의 축소판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 하원의 구성 요소는 가능한 한 미국을 구성하는 사람을 그대로 본떠야 했다." "이는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중요한 민주 이념이다. 민주제와 귀족제는 이런 점에서 긴장 관계, 심지어 대립 관계에 놓여 있다. 하원은 인민을 대표하여 가장 핵심적인 주권인 입법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하원을 구성하는 의원은 반드시 인민 총체에 가장 근접한 이여야 한다. 하원은 '엄선'이 아닌 '표본' 개념이어야 한다. 100만 명 가운데 가장 뛰어난 100명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1만 명에 1명씩 무작위로 뽑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을 대표해 주권을 행사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소수 엘리트여서는 안 된다."(116-8)


"연방 상원은 전체 의원을 3개의 조로 나누어 2년마다 3분의 1을 새로 뽑는다. 대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자신의 입장과 자신이 대변해야 하는 주의 입장을 혼동하기 쉽기 때문에 분할 개선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6년이라는 임기가 긴 만큼 상원은 대표일 수 없었고 대표여서도 안 되었다.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는 모든 의회 의원이 '만의의 대표'이지만, 미국 헌법에서 구상된 바는 달랐다. 상원의 역할은 자문이나 고문에 가까웠다. 그들은 각 주에서 파견된 이로, 한편으로는 연방 정부가 정무를 잘 처리하도록 힘을 보탰고, 한편으로는 하원이 적절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도왔다. 하원은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이들이므로 사회의 순박함과 우둔을 지니기 마련이며, 사회의 선善을 지니듯 사회의 악惡 역시 품기 마련이었다. 상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하원의 우둔과 악이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특히 상원 자신이 속한 각 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했다."(120-1)


4 권리장전이 있기에, 헌법은 지지할 만한 것


"필라델피아 회의에서는 새로운 연방에 군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이를 실현하고 헌법에 써 넣으려면 먼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연방 군대가 각 주를 억압하는 데에 쓰이지 않으리라는 점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육군과 해군을 구별해서 해군에는 장기적으로 경비를 조달하고, 육군의 경비 조달 유효기간을 최장 2년으로 제한한 것이 이를 보장하는 조치 중 하나이다. 각 주를 통제하는 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연방 육군은 반드시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 했다. 또 한 가지 조치는 각 주의 민병 무력을 유지한 것이다." "연방과 각 주 사이의 무력 균형을 맞추려는 뜻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크나큰 영향력을 지니는 헌법 제2조 수정 조항에 아직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통제가 잘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소지하는 인민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조항이 오늘날 미국을 전 세계에서 총기를 소지한 개인이 가장 많은 나라로 만들었다."(140-2)


"미국 헌법 수정 조항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를 말하는 권리장전에는 특수한 역사 배경과 의의가 있다. 1789년, 미합중국의 제1대 의회가 가동되고 처음 한 일이 권리장전에 대해 토론하고, 3분의 2라는 압도적인 표수로 이를 통과시킨 것이었다. 10개의 수정 조항이 하나로 묶여 권리장전이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여기에 인민의 권리 보장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수정 조항은 의회의 권력을 제한하고 축소한다." "주 헌법은 '권리장전'으로 첫머리를 시작했다. 인민이 어떤 절대적 불가침의 권리를 지니는지를 또렷하게 적고, 뒤이어 정부 조직에 관한 나머지 규정이 나온다. 반면 미국 헌법에는 짤막한 서언이 한 단락 있을 뿐, '권리장전'이 없었다. 이는 무척이나 허전하게 보였고, 사람들은 도무지 안심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새로운 제헌 의회를 열 필요가 없음을 납득시키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제1대 의회에서 가능한 한 빨리 권리장전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146-50)


"의회 입법에 대한 또 하나의 명확한 제한은 소급 적용법과 사권 박탈법 통과 금지 조항으로, 이 역시 영국에서 이미 형성된 기본 법률 관념을 글로 나타낸 것이다. 영국의 법률에는 두 가지 기본 규범이 있다. 첫 번째는 비밀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법률은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두 번째는 지나간 일에 소급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오늘 통과된 법률은 오늘 이후부터 발효될 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 이전에 있었던 행위를 규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의회가 법적으로 성립되는 근거가 인민 주권에 있기 때문에 의회의 주인은 이치상 인민이다. 따라서 의회는 인민 주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인민의 정치 권리를 박탈하는 사권 박탈법은 의회가 인민 주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으므로, 이 수단을 의회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특별히 제거한 것이다."(155-6)


"미국 헌법에는 연방이 성립되면 주와 주 사이의 무역 및 재무 관련 충돌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기약이 담겨 있다. 주와 주 사이의 수출입 세금은 의회에서 제정하고, 주와 주 사이의 재무 거래에는 연방이 주조한 화폐만 사용할 수 있다. 각 주의 의회도 다른 주에 대한 계약 의무 이행을 더는 일방적으로 거부하지 못한다. 동시에 연방의 성립으로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는 비로소 어떻게 미국과 경제 무역 교류를 터 나갈지 알게 될 것이며, 각 주의 불합리한 관세 규정으로 미국에 수출입 제한 보복을 가하는 일도 없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비교적 견실한 조직인 연방을 믿고, 기꺼이 건국 초기의 미국이 필요로 하는 방대한 자금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미국 헌법의 이런 기약은 연방의 성립에 동의하고 연방에 합류했을 때 어떤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각 주에 분명하게 알려 주었고, 훗날 각 주의 헌법 심의 회의에 큰 영향을 발휘했다."(159-60)


5 헌법이 공직자의 종교다


"미국 헌법 제2조 제1절 첫머리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행정권은 미합중국 대통령에 속한다.〉" "당시 북미는 아직 독립전쟁 후의 불안정한 상태였다. 필라델피아 회의의 대표들은 13개 주가 혼란을 면하고 안정을 찾으려면 수시로 작동 가능한 정부가 필요하며, 13개 주 안팎의 정세 변화에 언제든 대응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존의 연합은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이 되지 못했다. 연합에는 지속적이고 고정된 행정 역량이 없었다. 북미의 정세는 정해진 시간에만 회의를 여는 정치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큰 권력을 부여한다. 대통령이 군사, 행정, 검찰에 대한 권한을 가지며, 의회가 휴회하는 동안 현존 법률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회에는 회기가 있지만 대통령은 언제나 재위 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임시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다."(163-5)


"13개 주의 식민모국이었던 영국은 국왕이 취임할 때 반드시 〈의회가 동의한 법령에 의거해〉 정치를 시행할 것을 선서하고 다짐한다. 이에 반해 미국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 선서문은 대통령에게 '의회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선서문에는 〈최선을 다하여 합중국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또는 확약)한다〉라고 되어 있다. 대통령 권력의 궁극적 원천은 하느님도 아니고 의회도 아니며 인민 주권을 대표하는 헌법이다. 물론 대통령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위배할 수 없다. 대통령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대통령은 의회가 휴회할 때 '임시 입법권'을 가진다. 둘째, 의회가 내미는 법률을 대통령이 무조건 받아들이고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부결권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헌법에 의거해 판단했을 때 위법인 법률은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166)


"1787년은 모두에게 〈연례 선거가 끝나는 곳에서 폭정이 시작된다〉라는 구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였다. 그런 시점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삼자는 주장을 제기하는 일은 고도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는 연방 대통령에게 군주처럼 폭정을 할 권력을 주겠다고 공공연하게 표명하는 것이 아닌가? 각 주가 헌법 초안을 심의할 때,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한다는 이 대목이 반대자에게 가장 강하고 설득력 있는 언질을 제공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필라델피아 회의 대표들이 연방 행정 수장을 'President'라고 칭한 전략의 효과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Governor'가 아닌 상대적으로 권력이 작고 지위가 낮은 'President'를 선택함으로써 각 주 인민의 경계와 적의를 누그러뜨렸다. 또한 'President'라는 칭호는 사람들에게 당시 미국 전역에서 가장 저명한 'President'였던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의장을 맡은 조지 워싱턴이다."(174-5)


"우리는 종종 헌법이 인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제하는 문건이라고 오인하는데, 그렇지 않다. 적어도 미국 헌법의 정신과 절차에 한해서는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인민이 제정한 것이다. 루소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본디부터 침범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주권'을 지닌다. 그러나 개인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적인 일을 해결해 줄 정부를 세우기 위해 인민이 결집하여 일부 권리를 정부에 양도하기로 동의한다. 헌법은 인민이 주권을 양도해 정부를 조직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계약 발의의 주체는 인민이다. 중요한 점은 본래 인민에게 속하던 권리를 정부에 부여해, 정부가 행사하는 공권력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건의 목적은 정부가 본래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인민의 동의하에 양도된 권리를 오용 및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요구하는 것으로, 일종의 차용증과 같다. 인민의 의무는 헌법이 간여할 바가 아니다."(193-6)


6 대통령제를 시행하려면 준법 사회가 필요하다


"'executive Power'와 번역어인 '행정권'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오늘날의 기업 조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직위 중에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있다. 'CEO'는 경영을 '집행'하는 사람이지 '행정'을 맡은 사람이 아니다. 즉 '행정권'보다는 '집행권'이 미국 헌법에서 말하는 'executive Power'에 더 가깝다. 또한 회사의 소유자는 이사회이며 'CEO'는 경영 및 관리를 책임진다. 그렇다면 'CEO'는 누구의 뜻을 집행하는가? 이와 같은 조직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이사회의 뜻을 집행한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입법권이 부여하는 임무를 집행한다. 대통령 손에 있는 권력은 '집행권'이다. 미국 헌법 제1조에서는 먼저 입법권에 대해 말하고 그다음에 행정권을 말한다. 입법권을 모두 규범화해야 행정권을 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법권이 인민 주권을 구현하고 인민의 뜻을 대표한다면, 행정권 혹은 집행권은 인민 주권의 뜻을 집행하는 데에 쓰인다."(211)


"〈다만 상원 의원이나 하원 의원 및 합중국 정부에서 위임직 혹은 유급직을 맡고 있는 자는 선거인으로 지정될 수 없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제한이 있지만 연임 횟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종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후보 가운데 연임을 위해 출마한 현임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은 당연히 현임 대통령을 잘 알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현임 대통령이 지나치게 우세를 점하게 된다. 선거인단과의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 다른 도전자는 애초에 경쟁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만일 현임 대통령이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이 장차 그의 연임 여부를 결정할 선거인단임을 안다면, 이는 정치를 시행하는 데에 반드시 왜곡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 헌법이 제정되던 당시에는 현실 여건상 '간접 선거'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으나, 대통령 선거가 소수 사람의 손안에 장악되거나 이익 교환이 결정의 고려 요소가 되는 것을 저지한다는 내용이 조문에 분명하게 드러난다."(213-4)


"선거인단 제도에 상식적으로 엉망으로 보이는 점이 많다고 할지라도 이 제도는 헌법적 근거를 가진다." "우선, 선거인단 제도는 간접 선거가 아니다. 갖가지 규정들이 선거인단으로 하여금 각 주의 유권자 투표 결과에 맞게 표를 행사하도록 강제하다시피 한다." "선거인단 제도는 형태를 달리한 직접 선거다. 직접 선거의 '형태를 달리'한 것은 주권州權을 위해서였다. 단순한 직접 선거를 채택하면, 미국 연방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이 선출한 대통령이 된다. 그는 주의 구분을 넘어서서 인민에게 직접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각 주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입법권에는 명백하게 각 주를 대표하는 상원이 있다. 대통령이 각 주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유권자가 어느 주에 속하든 상관없이 직접 선거의 득표수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된다면, 상원도 폐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국은 더 이상 연방이라고 할 수 없다."(217-8)


"이어서 미국 헌법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을 규정한다. 〈출생에 의한 합중국 시민이거나 이 헌법이 시행될 때 이미 합중국 시민인 자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자격을 가진다. 연령이 만 35세가 되지 않은 자, 합중국 내에 거주한 지 만 14년이 되지 않은 자는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 "이 또한 미국 헌법의 파격적인 진보 정신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일정한 재산이나 토지가 없으면 주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능력 있는 가난뱅이는 자신이 속한 주에서 기본적인 투표권조차 갖지 못하지만, 합중국의 대통령은 될 수 있다. 합중국의 모든 행정권, 즉 집행권을 주관하는 이는 집에 재산이 많고 배경이 든든한 세도가여야 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만 35세가 되었다면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다른 조건은 필요하지 않다." "이는 정치 분야에서 분발하고자 하는 후생들의 열정을 북돋았고, 그 영향으로 머지않아 링컨 같은 '가난한 대통령'이 탄생했다."(226-31)


"미국 헌법 제2조 제1절 6항의 내용이다. 〈대통령이 면직되거나, 사망 혹은 사임하거나, 그 권한과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상실한 경우, 대통령의 직권은 부통령이 수행한다. 의회는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두 면직되거나, 사망 혹은 사임하거나, 직무 수행 능력을 상실한 경우 어떤 사람이 대통령 직무를 대항할지 법률로 규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 사람은 대통령의 능력이 회복되거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 "대통령 신분은 선거에서 당선되기만 하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신분은 고정불변의 자격이 아니라 대통령의 능력과 연방, 헌법, 인민에 대한 복무에 따르는 것이다. 대통령제는 군주제와 확연하게 다르다. 군주가 즉위하면 신분은 그와 하나가 된다. 그가 곧 국왕인 것이다. 대통령은 즉위한 후에도 권력과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거듭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민과 의회는 그에게서 대통령직을 박탈할 수 있다."(237-8)


7 입법과 행정, 두 권력의 긴장 관계


"미국 헌법 제2조 제2절이다. 〈대통령은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조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출석한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외교 문제를 처리할 때 주로 상원, 즉 각 주의 대표들에게 보고한다.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려면 대통령은 먼저 상원에 의견을 자문해야 하며, 조약을 체결한 후에는 조약 내용을 상원으로 보내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 내용은 연합규약에서 계승한 것이다. 연합이 결성되기 전에는 물론 연합이 결성된 후에도 각 주는 독립과 자주의 원칙에 기반해 다른 국가와 조약을 체결했다. 연합규약은 각 주의 외교 활동을 통합하고자 했으나 각 주의 독립과 자주를 우선시해야 했다. 따라서 연합이 대외 조약을 체결할 때는 13개 주 가운데 반드시 9개 주의 찬성을 얻도록 규정했다. 한 주 한 주에 부결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3개 주 가운데 9개 주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비율의 근거다."(263-4)


"임기가 있는 직위는 의회의 동의를 얻으면 주어진 임기 동안 직위를 보장 받는다.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의회에서 동의한 이상 규정된 임기 내에는 대통령이 그를 면직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지명할 수 없다. 이렇듯 임기 제도가 있는 기관을 '독립 기관'이라고 부른다. 대통령 행정권의 주관적인 뜻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연방준비제도FED나 연방통신위원회FCC 같은 독립 기관들은 인사에 대한 대통령 행정권의 직접적인 간여로부터 '독립'해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인 헤아림에서 상대적으로 독립해 있는 만큼 자신의 전문분야에 맞게 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소수 독립기관의 수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행정 부문의 수장은 임기가 없다. 이들에 대해서는 의회의 동의권이 제한된다. 의회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 임기 없는 수장이 대통령의 도우미 자격을 갖추었는지 심사할 수 있을 뿐이다.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 사람도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다."(270-1)


"미국 헌법은 미국 헌법을 참고하고 모방하고 약간의 수정을 했다는 수많은 다른 국가의 헌법보다 훨씬 완전하고 뛰어나다. 미국 헌법에서는 삼권에 선후 순서가 있다고 명시한다. 입법권은 가장 앞에 놓이는 1순위 권력이다. 행정권은 입법권의 뒤에 놓인다. 어떻게 행정을 펼치고, 어떻게 행정 기구를 조직할지를 입법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입법권에서 법률을 제정해야 행정권에서 이를 집행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권은 행정권 앞에 있고 행정권 위에 있다." "행정권과 입법권의 관계는 미국 헌법의 구조에서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입법권은 놀이의 규칙을 정한다. 행정권은 놀이의 규칙에서 벗어나 농간을 부릴 수 없다. 하지만 이 놀이 규칙 안에서라면, 행정권은 재량껏 집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입법권은 행정 처리에 간여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면, 놀이 규칙을 검토하고 개정한다."(275-6)


"누구든지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사법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 부통령 및 모든 공직자 역시 그러하다. 예외는 없으며, 신분과도 무관하다. 하지만 헌법은 공직자에게 인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률 책임 외에 한 가지 책임을 더 얹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탄핵'이 그 정치적 책임을 심판하는 제도다. 정치적 책임을 확인해야 하는 안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의회는 '탄핵 법정'으로 변한다. 이곳에서 대통령, 부통령 혹은 어떤 공직자가 정치적으로 명백히 부당한 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만일 부당 행위가 인정되면, 이 사람은 즉시 사퇴함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의회가 탄핵 법정으로 변하면, 하원은 임시 검찰관이 되고 상원은 임시 배심원이 된다. 탄핵의 대상이 대통령일 경우에는 정식 상원 원장, 즉 부통령은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만약 대통령이 탄핵으로 사퇴하게 되면 부통령은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287-8)


8 헌법 해석으로 사법권이 부상하다


"삼권 분립에서 사법권은 제3위로, 입법권과 행정권 다음이다. 이는 연방 정부의 성립 순서에 따라 정해졌다. 삼권 이전에 인민 주권이 있다. 미국 헌법의 서언으로 대표되는 인민 주권이 헌법을 제정하고 통과시켜 헌법이 성립하게 되면, 먼저 의회를 설립해야 한다. 제1대 의회가 열려야 제2조 제1절 규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고, 그제야 행정권을 의탁할 곳이 생긴다. 또한 의회가 조직법을 제정해야 행정 부문이 조직법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의회가 각종 법률을 세우고, 행정권이 맡은 바대로 법률 규범을 집행하여 시스템이 운용되기 시작하면 그제야 법률의 시비와 가부를 관할하는 사법권의 능력을 펼칠 터전이 마련된다. 이 밖에도 법원의 조직 역시 의회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운용이 가능해지고, 법관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심사 및 동의를 거쳐서 부임한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정상적으로 운용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사법을 관리할 법관도 없다."(297-8)


"미국 헌법에서 사법권은 다른 두 권력에 비해 확연히 지위가 낮다. 대통령은 행정권에 속하는 관료를 지명할 수 있으며, 의회가 이에 심사권 및 동의권을 행사한다. 사법 기관에는 대통령처럼 사법권을 대표할 수 있는 최고 직위가 없다. 사법 체계의 인사를 지명하는 권한은 사법권 내에 포함되지 않고 행정권을 주관하는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이런 점에서 사법권은 행정권만 못하다. 하지만 훗날 설립된 최고 법원은 한 가지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바로 '헌법 해석'이다. 연방 최고 법원은 사실상 '헌법 재판소'로 헌법의 뜻에 대한 질문을 품은 상소 안건만 수리한다. 'supreme'이라는 단어는 대문자로 쓰인 뒤부터 특정한 뜻을 갖게 되었다. 모든 법률의 근원인 헌법을 처리하기 때문에 '최고'인 것이다." "(서로 상이한 헌법 해석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최고 권력을 갖게 되면서, 최고 법원은 미국 정치에서 헌법이 부여한 적 없는 강대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3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