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 오늘의 경험


"사물(혹은 사태)은 원래 사람 쪽의 자의적인 의도를 넘어선 독립적인 타자인데, 현대의 '선험주의'는 사물의 그러한 타자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모두 사전에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물건이나 일에 대한 가공할 만한 전체주의!)이므로 그러한 의식의 틀 내에서는 사물과의 사이에 경이에 찬 그리고 고통을 수반하는 상호교섭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그러한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지의 통제 불가능한 것과의 만남 그 자체가 예측 능력의 부족을 나타내는 부끄러운 사태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만능 계측기'를 지향하는 태도에서는 경험의 기회 그 자체를 자진해서 거부하며 경험을 쌓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그 대신 경험보다 뛰어난 것으로 간주된 완전합리적인 '상정(想定)'이나 '프로젝트' 제작으로만 몰려가는 경향이 생겨난다. 거기에는 설계된 '경험의 대용품' 쪽이 경험 그 자체보다도 더 비싸게 매겨지는 이상하고 불손한 가치관이 존재한다."(20)


"그러나 선험적인 '설계도'의 완벽한 합리적 체계성을 뽐내려 하면 할수록 그 '설계도'가 사물과의 접촉에 의해 부딪쳐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작용하게 된다. 여기서 다시 경험회피를 향한 동력을 획득한다. 그 능동적 회피의 귀결은 소속기관의 보육기화를 점차 '주체적'으로 촉진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사물의 위협을 받지 않고 '계측능력'이 높음을 계속해서 뽐내며 이를 통해 허위의 자기확인을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안정과 조그만 풍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상태는 어떤 사회학자가 말한 '안락에의 자발적 예속' 바로 그것이다(R. 세네트).인류가 걸어온 갖가지 예속정신의 역사 속에서 노예주라든가 기타 인간적 대립자와의 관계를 통하지 않고, 경험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현재의 안락상황에 대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예속을 행하는 것은 미증유의 새로운 형태의 예종(隸從)이다. 그러한 상태는 사회적으로 혈색 좋게 죽어있는 상태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20-1)


"이에 반해, 자신을 초월한 절대적인 타자인 사물과 대면하여 고통을 수반하는 그것과의 교섭을 기피하지 않는 정신은 지배성이나 영략감(領略感) 및 침략성과는 반대되는 '자유'의 튼튼한 기초가 된다. 자유의 근본적인 성질은 자신이 시인하지 않는 사고방식의 존재를 수용하는 데 있겠지만, 자신을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되돌려놓는 절대적인 타자와의 상호교섭조차도 꺼려하지 않는 태도가 그같은 상대적 타자에 대한 자유로 귀결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유가 동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그때 자유의 정신이 거기서 스스로를 확복하고 재생산하는 기지는 절대적 타자인 사물과의 상호교류의 장이다. 다시 말하면 양보할 수 없는 대항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에도 그 상황 자체를 경험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사태로 간주하는 안목을 버리지 않는다면 전면대립을 거쳤을 때 초래되기 쉬운 경직된 후유증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22-3)


"이처럼, 경험의 중시와 자유의 정신은 떼어내기 어려운 하나의 정신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해나가면서 생기는 것은 자유의 정신만이 아니다. 인간존재의 기본적 특질인 역사성의 인지 또한 거기서 생겨난다. 추상적인 자의가 사물과의 만남과 교류를 거치면서 의도대로 통하지 않게 될 때, 바로 그 의도와 결과의 차이에서 '역사의 간지(奸智)'가 구체성을 띠면서 발견된다. 이리하여 만사가 예측대로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장으로 간주하는 기계의 세계와 인간행위의 세계 사이의 질적인 차이가 여기서 비로소 충분히 의식된다. 기계나 기구로 화한 세계에는 자동적인 회전이 있을 뿐 역사는 없다. 거기서는 낡아지는 것은 있어도(다시 말해서 비능률화는 있어도), 의도와 결과의 차이라는 사극(史劇)을 통해서 끊임없이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내부로부터 가치를 재생해나가는 갱신(更新)의 경험은 있을 수 없다."(23)


▶ 나르씨시즘으로부터의 탈각


"현존하는 자아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방법서설』이 일찍이 논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학교'나 지배적 사회로부터 '내가 받아들인 것'들에 의해 내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일체의 허위나 편견을 의심과 사고를 통해 '제거하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하였다. 그 결과, 아니 오히려 그러한 행위 자체로서 이미 그 자아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즉물적(卽物的)으로 식별하는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의문의 도마 위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아는 정신의 드라마의 핵심이며 거기서 발생하는 '사물에 입각한' 식별행위는 허위를 듬뿍 품은 현존세계로부터 허위를 하나하나 벗겨내고 사물의 자연스럽고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어 드디어는 '자연학'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은 돌다리를 두드려 건너듯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 진행이 완만했던 만큼 단번에 이루어지는 폭발적인 속단과는 달리 한층 더 근본적인 세계상의 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28-9)


"그러나 '대중적 규모에서의 자아의 시대'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문명사회'에서 일반적인 자아에의 수렴은, 그와 같은, 세계의 재구성을 향한 정신의 드라마를 내포하지 않는다. 거기 있는 것은 의문의 대상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자아이며, '허위를 내포한 자아를 부정하는 자아'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자아를 소중히 여겨 그대로 긍정하면서 가능하다면 어디까지나 그것을 연장시켜가려는 자아인 것이다. 허위에 가득 찬 자아를 무의 상태로 환원함으로써 '자연이성'의 자아를 확립해가는 대화적인 자아가 아니라 오로지 기존의 자아를 진위가 한데 얽혀 있는 그대로 소중히 보존할 수만 있다면 그 형태를 유지한 채로 조금이라도 더 확장시키기를 바라는 그런 자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욕구의 충족을 일삼는 심리학적 자아이며 거기서 작용하는 '이성'이란 주로 충족 면의 손익을 산정하는 계산이다. 손익계산서가 오늘날의 '이성'이란 말인가!"(29)


▶ '안락'을 향한 전체주의


"오늘날의 사회는 불쾌감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정면에서 대결하려 하지 않고, 불쾌감의 근원 그 자체를 추방하려 한 결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로서의 '안락', 다시 말해서 어디까진 괄호 속에 든, 단지 일면적인 '안락'을 우선적인 가치로 추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불쾌감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생명체 내에서 불쾌감과 공존하고 있는 쾌락이나 평안과는 전혀 이질적인, 불쾌감의 결여태인 것이다." "이 능동적인 '안락에의 예속'은 ('안락' 상실에 대한) '초조한 불안'을  뗄 수 없이 내포한 채 오늘날의 특징적인 정신상태를 만들어냈다. '평안을 상실한 안락'이라는 미증유의 역설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니힐리즘'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심연과 같은 포용력으로 타자를 참고 받아들이는 평정스런 허무정신과는 반대로 다른 모든 가치를 자신의 수하에 지배하면서 일종의 자연반응 '결여상태'를 끝없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능동적 니힐리즘'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37-8)


"필요한 물건의 획득이나 과제 또는 목표의 달성 등을 위해서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길이 있는 것이고 그 길을 걷는 과정은 많든 적든 불쾌하거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과 같은 시련을 포함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어느 정도의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시련을 견디고 극복하여 그 과정을 벗어났을 때, 그때 획득한 그것은 단순한 물건에 그치지 않고 성취의 '기쁨'까지 수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물건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어떤 관계를 지닌 것으로서 자각된다. 다시 말하면 상호교섭 상대로서 경험을 갖게 하는 물질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지 한 가지 효용만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의 물질은 평면적이고 단일한 모습과 단 한 가지 성질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 "그것과 상호교섭을 가질 여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완성된 제품에 의해 영위되는 생활권이 경험을 낳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성격에 연유한다 하겠다."(38-9)


"모든 불쾌감의 근원을 무차별적으로 말살시켜버리려 하는 현대사회는 이렇게 하여 '안락에의 예속'을 낳고 안락 상실에 대한 불안을 낳고 분절된 찰나적 향수의 무한연쇄를 낳고 그리고 그 결과 '기쁨'이라는 감정의 전형적인 부분을 상실케 하였다. 그러한 인생 도정은 산과 골짜기를 잃어버린 평평한 시간의 경과일 뿐이다. 그 '기쁨'이 사물의 성취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극복하는 데서 생기는 감정인 이상, 그것의 소멸은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극복과정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일정한 '인내', 갖가지 '궁리', 그리고 우여곡절을 뛰어넘은 '지속' 등과 같은 몇가지 덕목이 한꺼번에 상실되는 것이다. 극복의 '기쁨'이 정신생활 속에서 중시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이와 같은 제반 덕성을 내포하는 종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쁨'의 소멸은 복합적 통합태로서의 정신, 다시 말해서 정신구조의 해체와 무산(霧散)을 가리키는 것이다."(40-1)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 전체주의의 세 가지 형태

1. 전쟁 형태의 전체주의 : 전쟁의 종말 형식

2. 정치지배 형태의 전체주의 : 정치의 종말 형식

3. 생활양식에서의 전체주의 : 생활양식의 종말 형식


"칼 폴라니가 '의제상품'이라고 명명한 세 가지 요소, 즉 화폐와 토지 그리고 '생산'적으로 움직이는 인간(노동) 등 판매 목적을 위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들이 중심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는 상품세계가 오늘날의 '시장경제'다. 존재와 기능은 완전히 분리되고, 끊임없이 진행되는 매매에 의해 '대상의 분할' 또는 '성격의 소멸'에 그치지 않고 대상과 성격 자체까지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지금의 달러가 한 시간 뒤에는 엔이 되어 있으며, 조금 전의 달러는 빵이 될 예정이었는데 지금의 엔은 파찡코 게임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비물이 무수히 많고 소비자 또한 무수히 많을 경우 무엇이 무엇에 상당하는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거기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현상은 끊임없는 변화와 무궁한 변동뿐이다. 이는 무한(endless) 그 자체이며 그 무한궤도를 조금이라도 움직여보려고 하는 것이 화폐의 매매, 노동력의 흡수·방출, 그리고 토지 매매였다."(73-4)


"특히 현대의 '시장 경제 사회'에서는 직접적인 화폐이익에 대한 일의적인 집착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다. 부는 다른 무엇으로도 체현되지 않는다. 유동(유통)을 존재의 근본형식으로 하는(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역설인가!) 화폐(currency)에 모든 '부'가 직접적으로 집중된다. 유동 그 자체가 모든 가치물, 모든 부를 대표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의 특질 바로 그것 아닌가? 운동이 곧 기구이고 제도이며, 또 바로 불안정을 존재를 위한 불가결의 기초로 삼은 것이 다름아닌 1930년대(정치지배 형태의) 전체주의의 특질이었다. 이렇게 하여 전체주의의 특질을 추출해보면, 그것은 격렬하고 끊임없는 유통·유동이 모든 형태, 대상, 사물을 삼켜버리는 세계이며 그와 같은 특질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한 그 사회는, 외견적인 깃발이 무엇이든지간에 파국의 1930년대를 '창립기'로 하는, '창조적'인 고전적 전체주의와는 차원과 형식을 달리 하는 새로운 전체주의가 아닐까?"(74-5)


"일본의 전체주의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하면 '장대하고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사상 최신의 악까지도 선으로 생각해 추구·모방·가공하거나 '고능률화'함으로써 자기 사회 속에 전체주의를 구축했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일본 전체주의는 제3형태의 현대 전체주의에서 마침내 세계 최첨단이며 유력한 것, 즉 전형적인 것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체란 여러 부분의 상호관계의 전국면을 가리키며 또 '상호관계의 전국면'을 하나의 물건이나 제도, 인물, 집단 등으로 대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분에는 부분 나름의 불가침의 존재근거가 있고 상호성은 어디까지나 상호성으로서, 관계는 어디까지나 몇몇간의 관계로서, 단일화될 수 없는 채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전국면'은 영구히 탐구과정 그 자체로서 남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부분은 부분이다'라는 이 간단한 상식을 망각하는 데에 전체주의 시대의 최악의 질병이 잠복하고 있을 것이다."(77-80)


▶ 현대 일본의 정신


"개인으로서의 자기애라면 그것은 에고이즘이 되며 따라서 자각이 있지만 일본사회의 특징은 자신의 자기애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헌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낸다. 따라서 본인의 자각 수준에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헌신의 대상이 국가일 때 국가주의가 생겨나고 회사일 때는 회사인간이 태어나며 그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나르씨시즘이며 자기비판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착각된 자기애, 나르씨시즘의 집단적 변형태로서, 소속집단 없이 그 자기애를 사람들 앞에 내놓을 만큼의 윤리적 배짱은 없다. 정말 기묘한 상태다. 흔히 외국의 비평가가 일본인은 집단주의라고 말하는데, 일본인의 집단주의는 상호관계체로서의 집단, 다시 말해서 사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을 극도로 사랑하며, 이를 지나치게 사랑함으로써 자기애를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근본적인 자기기만이 있는 것이다."(82-3)


"일본사회는 압도적으로 동질성이 강해서 동질적인 것을 선호하고 이질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 점이, 일본인이 이웃이나 소수인 또는 자연을 대수롭지 않게 파괴해버리는 근본적인 동기 중의 하나다. 이질적인 것, 타자를 싫어한다는 것은 자신 이외의 것을 알려고 하는 의욕이 결여되어 있음을 말한다." "일본에서 민주주의라고 하면 처음에는 다수결만이었다. 그후 점차 다수결만으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일본의 정치학자들도 알게 되어 소수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바뀌어왔다." "일본 국내에서 말하자면, 그 대표는 재일 한국·조선인이며, 그 다음으로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이 걸린 것으로, 극소수가 되어버린 아이누 사람들이며 그 다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오늘날의 '풀뿌리 배타주의'는 바깥에 쫓아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처박아넣는다. 최하층 노동의 장으로 밀어넣고 거기에 벽을 쌓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풀뿌리 배타주의의 실상이다."(95-7)


2 / 천황제


▶ 천황제


# 천황제의 다의성(多意性)

1. 단순히 군주로서 천황이 존재한다는 의미

2. 근대 일본의 정치구조, 곧 레짐(regime)을 의미

3. 천황제 지배양식의 특징을 갖춘 특정한 사회적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우


"천황제 성립의 특질을 살펴보면, 첫째, 근세 유럽의 절대왕제가 법왕·교회와의 격렬한 투쟁을 거쳐서 종교적 '권위'로부터 왕의 정치적 '권력'이 분리 독립함으로써 성립하였고 따라서 거기서 독자적인 의미에서의 '정치'가 생겨난 것과는 정반대로, 천황제는 종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권위를 이용함으로써 이른바 '권위적 권력'으로써만 성립할 수 있었다. 둘째, 최대의 봉건영주가 다른 많은 영주들을 압도·정복하여 민족적 규모로 그 지배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왕권을 대내적으로 확립한 고전적 절대왕제와 달리, 일본의 천황제는 봉건적 권위인 천황이 자신과 관계없는 정치적 제반 요소의 상황변화에 의해 권력주체로 전화당한 것이므로 정치적 투쟁을 거쳐 도야된 본래적인 절대주의 군주의 정치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천황이 고대에 권위와 권력을 한 몸에 가진 전제군주였다는 역사적 사정은 천황의 전신(轉身)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118-9)


"이후 천황제는 제반 정세에 변화에 극단적으로 순응하면서 지배형태의 분식을 거듭해왔다. 자유민권 바람이 불 때는 입헌군주의 외관(schein)을 입고 제국주의 열강의 대열에 들어서고자 할 때는 법치국가의 외모를 갖추며 하부구조에 있어서도 반노농제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를 최고도로까지 육성하였다. 천황제 파시즘도 이렇게 하여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정치적으로 무력한 '인간 천황'이기 때문에, '천황 친정(親政)'이라는 슬로건 자체가 실질과 내용 사이에 엄청난 괴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혁명운동을 제외한 모든 정치적 분쟁은 언제나 적대자에 대해서는 '반국체(反國體)'라는 욕설로, 자신에 대해서는 '천황 친정'이라는 미화를 통해 전개되어 지배기구를 관통하는 파벌성은 한층 강해진다. 본래 대외·대내적 위기에 대처할 필요성에서 성립된 절대주의적 집권이 거꾸로 권력작용의 능률적 집중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기현상이 천황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120)


▶ '쇼와'란 무엇인가


"'쇼와'가 '50년'이나 된 것은 '전후'의 처리 방법의 결과에 불과하다. 전후 처리는 해부되어야 할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사건인데 '쇼와 50년' 쪽은 그 자체 속에 아무런 활력도 포함하지 않은 타성으로서의 현실에 불과하다. 그것은 30년 전에 없어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정신사적 '부재'인 것이다. 그 정신사적 부재를 역사적 타성으로서 지속시키는 바탕이 된 전후 처리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 해답은 천황제를 폐지할 수 없었다는 점, 또 하나는 현 천황을 퇴위시킬 수 없었다는 점 두 가지로 집약된다. '부재'의 존재이유는 이 둘 중의 어느 경우에도 '할 수 없었다'는 부정형의 사실 속에 있었다. 천황제 폐지라는 과제가 실현되었더라면 '쇼와'가 없어졌을 것임은 물론 '원호' 자체가 일본 달력에서 사라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퇴위라는 과제가 실현되었더라도 '원호'를 남길 것인지 없앨 것인지가 적어도 문제시되었을 것이고, 남겼다 하더라도, '원호'가 바뀌어 '쇼와'가 없어졌을 것임은 확실하다."(153)


"그런데 메이지 이후 천황제가 천황이라는 칭호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형태의 제도로 개조되고 이른바 '특수하게 근대화'되어 '1대(代) 1원호'화함으로써 사태에 대한 '원호 감각'은 천황제 지배자 속에서 먼저 없어졌다. 원호는 통치체제 상징의 하나라는 측면이 없어지고 현행 천황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신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교통신호와 같은 존명(存命)신호가 온 일본 속에 오직 유일하게 하나 성립됨으로써 한 사람의 존명신호에 의해 전국민의 달력과 그리고 시간감각이 결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천황은 국민의 상징'이라는 명제가 '전후'에 남겨진 사회 사실적 전제는 이렇게 하여 형성되었던 것이다. 천황제의 일각을 이루어온 '원호'를 존명신호화함으로써 살아 있는 천황만이 '일본'이라는 '국호'와 동일시되게 되었던 것이다. 원호는 여기서는 현존 천황 개인의 '성(姓)'처럼 되어버렸다. 이리하여 새 천황 즉위 이외에, 독자적인 '개원'은 있을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157-8)


"습관 그 자체는 사회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핵심적 요소인데, 어떤 습관이 습관으로서 정착되는가는 그 사회의 정신구조를 결정하는 최대의 계기가 된다. 일본에서의 시간 척도로서의 '쇼와'는 원호이기는 하면서도 좋든 나쁘든 과거의 원호가 지니고 있던 사물에 대한 교감적 대응을 포기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무기적 신호로 화하면서 게다가 무기물이 지니는 건조한 물리성에 철저하지도 않고 마치 원호 감각의 '살아있는 전통' 속에 있기나 한 것 같은 겉모습을 가지고 '실증주의'적 시간척도가 지니는 각박함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은밀하고도 부단히 수행해내고 있다." "우리들은 '쇼와'에 관해서도 일상적으로는 나라의 습관에 따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매일 사용하고 있는 사이에 인습이 되고 인습이 사물을 자명한 것으로 만듦에 따라 어느덧 인습의 근본적인 성질을 성찰의 울타리 밖에 두고 잊어버리고 마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164)


3 / 전후 논의의 전제


▶ 전후 논의의 전제


"전후 사고(思考)의 전제는 경험이었다. 어디까지나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경험을 한 당사자에게서조차 경험이 유리되어 하나의 '물질'로서 인간 밖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도리어 그것은 하나의 범주로서 자립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사물과 인간 간의 상호교섭으로서의 경험으로부터 인간의 요소도 사물의 요소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교섭 결과만이 다른 '물질'이 되어 남았을 때 그 소외태에는 체취나 비린내가 제거되고 물적 소재로서의 성질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의적으로 미화하는 것도 가능하고 폄하하는 것도 가능한 '허위의식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인식(과 이해의 상상력)이 자기 위신을 걸고 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이런 때인 것이다. 경험이 소외태가 되어 '이용의 소재'가 되어 있을 때, 그때에 '태고의 화석'으로서의 소외태 가운데서 태고의 살아 있는 모습을 재형성하는 것이 인식에 부여된 영광스런 임무인 것이다."(169)


"전후 경험의 첫째는 국가(기구)의 몰락이 묘하게도 밝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전후의 밝음은 결코 단순한 밝음이 아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비참과 결핍과 불안이, 일일이 서술할 필요도 없이 갖가지 형태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불타버린 참상 가운데서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원시적인 텅 빈 자유가 느껴지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비참함이 그 어떤 전향적인 확산을 내포하고, 결핍이 도리어 공상의 리얼리티를 촉진하며 불안정한 혼돈이 거꾸로 코스모스(질서)의 상상력을 안으로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후 경험의 제2의 핵심은 모든 것이 양의성(兩義性)의 부피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었다. 하나의 요약만을 말한다면, 사실로서의 상황이 혼돈 그 자체일 때 거기서 발상(發想)되는 질서는 모두 유토피아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그 유토피아성이 밝음을 보증하고 있었던 것이다."(170-1)


"전후의 혼돈이 낳은 유토피아는 그럼 어떤 규준에 따라 조형된 것일까?" "전후의 경험을 사고를 통해 조형할 때 거의 대부분의 영향을 미친 것은 '또하나의 전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또하나의 전전'이 잇따라 모습을 나타내고 하나씩 하나씩 발견되어가는 과정이 전후사(戰後史)였던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발견이 현재를 모양짓고 미래의 존재형식을 구상하게 한다는 동적인 시간감각의 존재와 작용이 거기에 있었다. 거기서 과거는 단순히 기존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발견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영위이며, 내일에도 또한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래이기도 하였다. '또하나의'라는 말의 의미가 거기에 있으며 복합적인 시간의식과 '미래를 포함한 역사의식'이 거기서 약동하고 있었다. 이 시간의 양의성과 가역(可逆)관계가 전후 경험의 또하나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그와 같은 시간감각은 오늘날의 일상생활 속에는 이미 없다."(172)


4 / '논단'에서의 지적 퇴폐


▶ 일본의 두 가지 회의


"이 나라에서는 결정을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회의'는 사실은 '방과후'에 이루어지고 공식 '회의'는 그와 같은 '기능을 하는 회의'를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서 설정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실정적인 의회제도는 그 자체로서는 실효성을 갖지 못하지만 그러나 제도 속에 내포되어 있는 비제도적인 회의에 실효성을 부여할 기회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機=chance)이지 법이 아니며, 불교철학 속에서 교의(敎義)화되어 있는 것처럼 오히려 법에 대립하는 것이다." "더욱이 법의 지배에 대한 원리적인 반대물에 해당하는 명령의 지배도 아님은, 위에서 말한  '쉬는 시간의 의논'에 의해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정이 사전에 양해되며 따라서 결정은 명령자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결단'도 아니고 각자가 유보조건을 가진 채 이루어지는 타협도 아니면서 그것이 처음으로 '공식화'되는 순간에는 이미 전체의 것이 되어있거나 최소한 당파 전체의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212)


"이 '휴식시간의 의논'이야말로 일본사회를 규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본래의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일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거기서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력(靈力)이 배어 있다'는 철학이 그대로 운영원리가 되어 있어서 '의논'은 말 그대로 '의논'일 뿐 문자나 그밖의 객관적 기호로 공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속기를 하게 하지도 않으며 의사록 같은 것을 남겨서도 안된다. 의사록이 없는 것은 귀찮아서나 태만해서가 아니라 '의논'이기 때문이다. 문서로 남기면 그것은 '의논'이 아니라 공식적인 지상(誌上) 토론이 되어 버린다. 무릇 영력이 내재하는 말이란 무형식으로 번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논'은 소리이니 형상화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논'으로 실질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정식 회의는 단순히 그것을 확인·공표하는 의식이 된다. 물론 이러한 구조는 의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다. 대립하는 의견과 입장을 객관적인 경로에 올린다는 이념이 전무하기 때문이다."(212-3)


▶ 현대에서의 '이성'의 회복


"이데올로기가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진다는 것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서 있는 지점이 존재함을 예상케 한다. 그러한 지점이 없이는 애당초 자주적 선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그 지점을 규범적으로 확보하는 운동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이데올로기와 제도관이 자유로운 경쟁하에 놓이는 것이 사실상 보장되며, 또 자유로운 경쟁하에 놓여야 한다는 규범의식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었을 때에는 이에 대한 권력의 개입이 엄격히 차단된다. 설사 그 권력이 '관리'라는 이름 아래 전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재량'의 형태를 띠고 발동되는 경우라도 이 규범의식이 확고할 때에는 개입이 성공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려 하는 것은 그리함으로써 좀더 나은 자기규제 체계를 권력에 부과하기 위해서다. 즉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갖는 권력에 대한 충동 제어 기능을 항구적으로 진화시켜나가기 위해서인 것이다."(223-4)


"그럼 '인권'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당사자 우위의 원칙이다. 그것은 일본에서는 때때로 '사권'(프라이버시)과 동일시되지만 양자는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프라이버시는 자유주의와 관용의 원리이며 인권은 민주주의의 원리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부단한 조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상호모순되는 지점에 도달하곤 한다. 그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든지 간에 내적 갈등의식과 부단한 통합에의 의욕을 잃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양자는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쪽이 완전히 없어져버린 상황에서는 다른 한쪽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인'의 자유로운 판단이 허용되지 않을 때 어떻게 그 개인이 그 당사자로서의 보편적 권리와 책임을 자주적으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인권의 규범의식이 없는 데서 사인의 자유는 '국가'의 틀을 넘기 어렵고 거의가 국가에 의해 '주어진 생활'의 자유로운 향수(생활의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머물게 될 것이다."(234)


▶ '논단'에서의 지적 퇴폐


"현대 일본에는 기묘한 '전문가'가 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모든 문제에 대해 즉각 '해설'을 곁들인 '의견'을 발표한다.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어쩌면 하나님 이상 가는 존재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리 이쪽에서 요구해도 때로는 대답을 '보류'하여 발표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묘한 '전문가'인 '유식자'는 어떤 경우에는 '대학교수'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도 어떤 경우에는 '평론가'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문학자'의 명함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묘한 '전문가'는 일편단심 궁리의 결과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도 아니고 보고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고 예술도 아닌, 그 어떤 종류의 '리뷰'를 되풀이함으로써 이 세상의 표층(表層)에 떠오르고 또 그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 '리뷰'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리뷰'에서는 절대로 자진해서 발을 빼는 일이 없다."(243-5)


"이러한 기묘한 '전문가'는 지금 일본사회의 좁은 표층에 넘쳐흐르는데, 그는 '논단'이라는 가공의 단을 마치 실재하는 것인 양 좇고, 현실에 대해서는 하등의 긴장감도 없는 말만 산더미처럼 모으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얼마 안되는 숫자의 세력이라도 나타나면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취하며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주제에 사회주의 국가의 관료주의나 개인숭배라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또 일본 민주주의자들의 저항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친다. '숫자'만 갖추면 머리를 숙이는 그들에게 어찌 그런 자격이 있겠는가? 사실에 대한 긴장을 결여한 '낱말의 집합'을,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그건 없는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실에 대해 아무런 적극적인 (방법적) 기능조차 가지지 않으므로 그것은 비(非)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유식자'는 그의 언론이 비존재라고 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위에 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245-6)


5 / 신품문화


▶ 신품문화


"'이성 없는 합리화'는 인간의 이성이 조직규약이라는 형태의 실체가 되어 사회활동 전영역을 관료제화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필수품이 제품이라는 형태의 합리적 물체가 되고 모든 생활영역까지도 콘크리트화가 완료된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 이성이 인간 속에 있을 때에만 유지되는 이성 고유의 제반 특징은 소실된다. 다시 말하면 '아직 형태를 취하지 않은' 풍부함(그것을 원초적 추상성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될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그것은 탄력적 복원력과 조형적 변형력의 양극에 걸친 확산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의 폭넓음으로 확보된 보편성, 비합리적 감정에 대해서도 통찰을 통해 그것과 양립하며 더 나아가 결합까지도 할 수 있는 관대함 등의 고유한 특징이 지금은 이성 자체로부터 박탈당해 이성은 하나의 고체적인 형태로 특수화되고 그와 같은 콘크리트화를 통해 '물적 장치'와 제품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것은 이성의 폐문이며 감금이다."(293)


"경험이란 물질(혹은 사태)과 인간 간의 상호 교섭이므로 상대인 물질의 재질이나 형태, 장소적 환경 등의 여하에 따라 이쪽에서 사전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제멋대로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면 인간은 이를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그럴 경우에는 물질로부터의 저항이나 물질에의 접근에 있어서의 우회 등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즉 '매개'를 반드시 경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은 고안과 설계와 주형(鑄型)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작하는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 일방적 제작은 그 직선성(直線性)에서 관료제와 닮았고 군사적 처치와 통한다. 이에 대해, 경험의 결정(結晶)은 사물과의 교섭의 개별적인 형태에 따라 생겨나는 일회적 고유성을 어딘가에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상호성의 흔적이며 사회적인 것의 씨앗이다. 무수한 복제 부품을 무수한 직선의 복합적 배선으로 합성하는 오늘날의 신품에는 그러한 상호교섭의 흔적이 없다."(295)


6 / 그 자세


▶ 이론인의 형성


"전향이라는 말이 사상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 것은 1920년대 중반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방향전환'이 논의되는 과정에서였다. 이때는 전향이라는 말이 입장을 바꾸어서 지배권력의 동향에 굴복한다든가 입장을 변경하여 동조하게 된다든가 하는 의미로 쓰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때의 전향은 전적으로 주체적인 개념이다. 즉, '객관세계의 법칙' 외에 상황과 변혁주체 간의 관계를 가능한 한 정확히 법칙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주체적인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을 가지고 상황을 변화시켜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 자체를 법칙화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운동법칙은 '객관세계'의 법칙과 대응하여 변증법의 정식에 맞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노력을 실행할 때 전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무법칙적 운동으로부터 법칙적 운동으로 법칙적으로 전화하려고 하는 능동적인 행동이다."(305-6)


"후쿠모토 카즈오(1894~1983, 일본공산주의운동의 이론적 지도자)가 '전향'이라는 기호로써 '역사의 보편법칙'에서의 변증법적 '전화(轉化)'의 원리에 능동적 주체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적합화시켜가는 행동을 표현했을 때 '후쿠모토주의'라는 말은 하나의 범주로 성립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후쿠모토주의에서 형성된 전향의 사고방식이 국가권력 또는 일본의 지배체제에 의해 거꾸로 이용되어, 일본의 체제에서 정통적인 국민철학을 잊어버리고 실현불가능한 〈순 공상이라고나 해야 할···외국 사상에 현혹된〉(1928년 6월 27일 공산당 검거에 관해 하라 原 법무상이 행한 담화) 자가 자기비판을 하고 다시 체제에서 인정받는 국민사상의 소유자로 복귀하는 것을 '전향'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때, 현대 일본사상사에 특수한 기초범주의 하나로서 전향이 생겨났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비국민적 행동'(1928년 하라 법무상의 말)을 그만두고 천황제 일본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따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306-7)


▶ 맑스주의의 대차대조표


"악을 받아들이면서도 꼭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 다시 말해서 무관심의 공모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은 최악의 경우에도 너를 죽일 뿐이다. 친구는 최악의 경우에도 너를 배신할 뿐이다. 무관심이 밑받침하고 있는 것에 말려들면 학살과 배신이 횡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불행의 해결은 노력, 그것도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적 행동으로서의 노력이라고밖에는 말로 정의가 안된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경향이 맑스주의 역사 속에서 강해져갔습니다. 일종의 변질이지요. 사회주의의 비정통적인 산물로서 전체주의(totalitarianism)적인 것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종의 돌연변이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전혀 안 닮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깊이 잘 들여다보면 닮았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이것이 시작되었는가는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럼 처음에는 다 좋았던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맑스 자신도 어떤 과정 속에 있는 것이므로 말입니다."(365)


"칼 뢰비트는 『근세철학의 세계개념』이라는 책의 첫머리에서 '애초에 예수가 나타나서 그가 모든 가치를 독점하는 순간에 이 세계는 무가치한 단순한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적인 태도는 그 순간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데카르트가 등장하는 것이 늦은 것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매우 과감한 말이기는 하지만 경청할 만한 의견입니다. 가치의 독점자가 나타나면 그 이외의 것은 단순한 물체로 화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작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철학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옮겨서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경제체제에 있어서의 중앙집권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독점의 문제입니다. 발레리의 말처럼, 데카르트의 최대 공적은 자신을 의문의 존재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 절대주의로 가서 그것이 정치체제가 되면 독재가 생겨날 수 있으니까요. 자기를 내쳐 도마 위에 올린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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