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성찰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02
조르주 소렐 지음, 이용재 옮김 / 나남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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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1장 계급투쟁과 폭력


"나는 우선, (부르주아들이 그리 가혹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화평론자들의 이론과 행동은 의무라는 관념에 토대를 두는데, 법이란 엄밀한 규정을 추구하는 것임에 반해 의무란 전혀 결정되지 아니한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이러한 차이는 법이 생산의 경제 속에 실질적 기반을 갖는 데 반해 의무는 체념, 선의(善意), 희생 따위의 감정에 토대를 둔다는 점과 관련된다. 그런데 의무감에 따르는 자가 충분히 체념했는지, 충분한 선의를 가졌는지, 충분히 희생했는지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경제영역에서 사람들은 일정한 이익을 포기해야 할 때 느끼는 거부감의 정도에 따라 자신의 의무에 한계를 설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용주가 늘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자부할지라도, 노동자는 정반대로 생각할 것이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옳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다. 고용주는 자신이 영웅적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믿을 것이며, 노동자는 이른바 이 영웅심을 파렴치한 착취로 받아들일 것이다."(97-8)


"만일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강요를 아무 저항 없이 참아냈다면, 이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의지가 경제적 불가피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좌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이 끝나고 나면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아래로부터 강한 압박을 가했다면 고용주로서는 이른바 경제의 속박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단을 스스로 찾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이 애당초 어떤 양보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이 무지하거나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는 (실질적 한계 내에서) 구속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사실상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자유로운 것인 양 추론한다. 그들이 보기에 이러한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경쟁에 따른 필요가 아니라 기업주의 무지이다. 이리하여 맑스 사회주의에 담긴 계급투쟁 이론의 정식 중 하나인 '생산의 무한성'이라는 관념이 도입된다."(102)


"나는 여기서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클레망소가 보여준 성찰을 인용하고자 한다. 〈적으로 하여금 더 많이 요구하도록 하는 데, [항구적 양보정책보다] 더 나은 수단은 없다. 인간이든 권력이든 그저 양보만 한다면 결국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사는 자는 저항한다. 저항하지 않는 자는 산산이 깨질 것이다(〈여명〉, 1905년 8월 15일).〉 폭력위협 앞에서 늘 양보하는 식의, 말하자면 부르주아지의 비겁성에 기반을 둔 사회정책은 부르주아지가 사형언도를 받았으며 부르주아지의 소멸은 이제 시간문제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마련이다. 따라서 폭력을 동반하는 개개 투쟁은 일종의 전위전이 되어버리며,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비록 대규모 전투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파업노동자들은 그것이 곧 나폴레옹 전투(섬멸전)의 시작이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파업관행으로부터 파국적 혁명이라는 관념이 생겨난다."(107-8)


제2장 부르주아지의 쇠퇴와 폭력


"맑스에 따르자면, 자본주의는 그 본성에 따른 내재적 법칙에 의해 마치 유기체의 진화에 나타나는 극도의 엄밀성을 띠고서 현재세계를 미래세계의 문턱으로 이끄는 길에 접어들게 된다. 이 흐름은 자본주의가 구성되는 오랜 단계를 거치게 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몫으로 남겨진 자본주의의 신속한 파괴로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가 얻게 될 유산, 즉 현 체제를 전복시킬 인간들과 이러한 파괴를 낳을 수단들을 창조하게 되나, 그와 동시에 이러한 파괴작업은 생산과정에서 획득된 결과들을 보존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게 된다. 자본주의는 노동하는 새로운 방식을 낳는다. 즉 자본주의는 임금에 가해지는 압박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혁명조직으로 몰아넣게 되며, 기업주들을 끊임없이 파산으로 몰고가는 경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위축시킨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는 노동의 조직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해결한 연후에 결국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게 될 원인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123)


"자본주의는 역사의 진전을 위해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현 사회로부터 끄집어낸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이 떠맡은 혁명적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만 하면 된다. 줄기찬 비판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조직들을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의 역사에서는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들을 구축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 고용된 생산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에서 연유할 뿐 부르주아적 사유에서는 아무것도 빌려오지 않은 자신만의 사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나아가 오늘날 부르주아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유의 습속이 몸에 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저항조직들에서 출현하는 맹아적 구성체들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열과 성을 다해 자본주의적이 될수록,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정신으로 충만하고 자신의 혁명적 힘을 신뢰하면 할수록, 운동의 성공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124-5)


"노동자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의 선의에 대해 우리의 배은망덕으로 보답하는 것, 인류의 박애를 호소하는 자의 설교에 욕설로 맞서는 것, 사회평화를 주창하는 자의 제안에 주먹질로 답하는 것, 이러한 일들은 물론 조르주 르나르 부처가 내세우는 사교계 사회주의의 규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부르주아들에게 그들 자신의 일에, 아니 그들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라고 알려주는 아주 실제적 방안이다. 폭력의 성격에 대해 누구도 환상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정치의 설교자들이나 정부의 대표자들을 세차게 몰아붙이는 것이 아주 유용하다고 나는 믿는다. 폭력은 그것이 계급투쟁의 노골적이고 명확한 표현일 때에만 역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가 어떤 수단을 부려서든, 사회과학의 도움으로서든, 아니면 숭고한 감정에 충만해서든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너그러운 환대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여기게끔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127-8)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예상치 못한 하나의 새로운 사실에 직면해 있다. 즉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힘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맑스주의의 개념이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회평화가 갈등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에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이 무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미래의 혁명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박애주의에 얼이 빠져 있는 유럽의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옛 활력을 되찾도록 해주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인다. 이러한 폭력은 자본주의로 하여금 자신의 물질적 역할에만 전념케 하며, 예전에 지녔던 자본주의의 전투적 특질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날로 막강해지고 견고한 조직을 갖춘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이 산업투쟁에서 강인한 적대자로 남도록 밀어붙일 수 있다. 정복욕에 굶주리고 부유한 부르주아지에 맞서서 하나로 뭉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일어선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 역사적 완성형태에 도달할 것이다."(129-30)


제3장 폭력에 대한 편견들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이 지난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가령 프랑스대혁명 중 벌어진 1793년의 공포정치 같은─들추어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그저 약간의 관찰만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혁명감찰위원회, 거칠고 의심 많고 공포에 질린 경찰들의 폭력, 단두대의 비극 따위를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은 다정다감한 목자(牧者)이고, 폭력에 대한 증오라는 한 가지 열정만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의 심장은 선행의 감정으로 충만해 있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설득하려고 왜 그리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기꺼이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에 맞선, 부르주아지의 보호자라고 자처한다. 그리고 그들은 박애주의자로서의 자신들의 위엄을 고양할 요량으로 아나키스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그들은 비겁과 위선도 서슴지 않으면서 한순간에 그 관계를 끊어버린다."(146-7)


"구체제의 근본사상 중 하나는 왕권에 장애가 되는 모든 권력체들을 일소하기 위해서 형사소송 절차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원시사회들에서 형법은 애당초 지배자와 그의 은총을 받은 특권자들에게 부여된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법의 힘이 주민들 모두의 인신과 재산을 아무 차별 없이 보호해주게 된 것은 훨씬 나중에 와서의 일이다. 중세는 고래(古來)의 습속으로 회귀하고자 했던 만큼, 재판과 관련된 아주 케케묵은 사상들이 다시 등장했으며 재판소의 임무가 군주의 위대함을 인식시키는 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한 역사적 사건이 이러한 형법체제의 놀라운 발전을 촉진했다. 종교재판소는 당국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빈약한 증거만으로도 가혹하게 벌하고 다시는 당국에 대들지 못하게 만드는 법원들의 모델이 되었다. 군주정은 종교재판소에서 많은 절차들을 빌려왔으며 거의 항상 그 원칙들을 따랐다." "즉, 재판의 목적은 법률이 아니라 국가였던 것이다."(152-3)


"섬너 멘느는 18세기 말 이후에 정부와 시민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옛날에 국가는 항상 선량하고 현명한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국가의 운용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중범죄로 취급되었다. 반면에 자유주의 체제는 자유로운 시민이 최선의 방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제 주인에서 종복으로 변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시민의 권리들 중 으뜸가는 권리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멘느는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내가 보기에 그 원인은 우선 경제적 차원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아마도 1793년에 활약했던 인물들보다 더 훌륭하지도 더 인간적이지도 않으며 타인의 불행에 더 민감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아마도 그 당시보다 더 비도덕적이리라는 것도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많은 희생제물을 갖다바쳤던 국가라는 신에 대해 우리 선조들만큼 미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156-7)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정적(政敵) 숙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순수한 전쟁행위 그 자체인바, 군사적 시위의 효과를 갖고 계급간의 분리를 확보하는 데 이바지한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어떠한 증오도 복수심도 없이 진행된다. 전쟁에서 패배한 자는 살해당하지 않으며, 군대가 전장에서 겪었을 허망한 일들을 비전투원들로 하여금 감내하게 하지도 않는다." "생디칼리슴이 구체제와 교회에서 나오는 낡은 미신들을 버리고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적 갈등들은 더욱더 교전 중인 군대와 유사한 순수한 투쟁의 성격을 띨 것이다. 우리는 미래로 향한 사법권이라는 고도로 이상화된 무언지 모를 어떤 영장을 집행하라고 인민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을 아무리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다. 계급투쟁의 관념에 의해 폭력의 관념이 새롭게 정의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1793년의 온갖 유혈극을 낳았던 국가에 대한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163-4)


"(국가권력을 쥐고자 하는) 의회사회주의자들은 반애국주의가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타협 불가능한 것을 타협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많은 혜택을 약속해주는 소중한 국가를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혁명적 생디칼리슴과 국가 사이에 어떤 절대적 대립관계가 존재한다는 데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립은 프랑스에서 반애국주의라는 특히 신랄한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는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혼동을 불어넣기 위해 온갖 지식을 다 동원했기 때문이다. 애국주의의 지평에서는 어떤 타협도, 중도적 위치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온갖 부류의 부르주아들이 사회주의를 타락시키고 노동자들을 혁명사상에서 떼어놓기 위해 모든 유인수단을 다 동원할 때, 생디칼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확실히 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이 애국주의의 지평이다."(166-7)


제4장 프롤레타리아의 파업


"온갖 부류의 야심가들이 만들어낸 이 시끄럽고 수다스러우며 위선으로 가득 찬 사회주의, 몇몇 어릿광대에게나 재미를 주고 타락한 자들이나 찬미하는 이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어떤 것도 모호하게 남겨두려 하지 않는 생디칼리슴이 서 있다." "생디칼리슴이 지향하는 바를 따르려면, 대립점들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야 한다. 서로 투쟁하는 집단들을 가능한 한 뚜렷한 모습으로 고착시켜야 한다." "이러한 결과들을 확실히 얻어내는 데는 언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사회에 맞서 사회주의가 벌이는 전쟁의 다양한 양태들에 대응하는 감정의 덩어리를, 모든 세밀한 분석에 앞서서 한 덩어리로서 그리고 단 한번의 직관으로 일깨울 수 있는 총체적 이미지들에 호소해야만 한다. 생디칼리스트들은 사회주의 일체를 총파업이라는 드라마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다. 모든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며 따라서 사회주의에 대한 한 가지 해석만이 남을 뿐이다."(174-5)


"신화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화들을 역사의 흐름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모든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의 신화 자체이다." "설사 혁명가들이 총파업에 대한 환상적 청사진을 품음으로써 완전히 오판했다고 할지라도, 그 청사진은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차적 힘의 요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총파업 이념의 의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치가와 사회학자 또는 학문의 실용성을 내세우는 자들 사이에 오가는 모든 토론방식을 접어두어야만 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논박할 수 있다고 믿는 테제의 가치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입증하고자 애쓰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즉, 총파업이 부분적으로 현실성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대중적 상상력의 소산인가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 교의가 기대하는 모든 것을 총파업이 포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180-1)


"이러한 문제를 풀려면, 우리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해 현학적으로 추론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철학, 역사학, 경제학 등에 대한 고매한 성찰에 빠져서는 안 된다." "총파업이란 사회주의의 모든 것이 담긴 신화, 달리 말하자면 현대사회에 맞서서 사회주의가 벌이는 전쟁의 다양한 표현들에 부합하는 모든 감정을 본능적으로 일깨울 수 있는 이미지들의 총화이다. 파업은 프롤레타리아에게서 그들이 가진 가장 숭고하고 가장 심원하며 가장 역동적인 감정을 일깨웠다. 총파업은 이 감정들 모두를 하나의 조감도 안에 결집하며, 이렇게 결집함으로써 그것들이 제각기 가장 강렬한 색체를 띠게 한다. 개별 투쟁들의 쓰디쓴 기억에 호소하면서 총파업은 의식에 주어진 모든 지엽적 투쟁들을 활기찬 생명력으로 채색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언어로는 충분히 명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사회주의에 대한 직관을 얻는다. 요컨대 우리는 순간적으로 포착한 전체 속에서 직관을 얻는 것이다."(181-2)


제5장 정치적 총파업


"우리가 정치적 총파업을 혁명적인 동시에 의회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핵심전술로 간주한다면, 이들과 생디칼리스트들 사이의 명확한 차이를 식별해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선 우리는 정치적 총파업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를 공격하는 싸움터에 집중된 계급투쟁을 결코 전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여기서는 두 적대진영으로의 사회분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유형의 폭동이란 사실 어떤 사회구조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대다수 혁명들은 여러 불만집단들 사이의 동맹의 결과였다. 사회주의 저술가들은 흔히 가난한 계급들이 봉기하더라도 결국 새로운 지배자의 수중에 권력을 쥐어주는 것 외에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학살당하고 마는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낡은 권력체들에 맞선 인민들의 일시적 불만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223-4)


"정치적 총파업의 개념에서 보자면, 프롤레타리아의 조직 일체가 혁명적 생디칼리슴 안에 포괄되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생디칼리스트의 총파업이 더 이상 혁명의 전부일 수 없으므로, 노동조합들과 나란히 별도의 기구들이 조직될 것이다. 파업은 때맞추어 터뜨려야 할 많은 여러 사건들과 절묘하게 결합되는 보급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들은 정치위원회들의 추진력을 받아들여야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사회주의 운동의 지적 상층부를 대변하는 위원회들과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어나가야만 할 것이다." "정치적 총파업은 아주 다양한 사회집단들 모두가 국가의 마술적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믿음은 쇠퇴하는 집단들에게서 특히 잘 나타나는데, 달변가들이 마치 만능인 양 처신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믿음에 기대서이다. 정치적 총파업은 박애론자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큰 도움을 얻는데, 이러한 어리석음은 대개 부유한 계급들의 쇠퇴에 따른 결과이다."(224-6)


"나는 절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는 혁명의 특성을 줄곧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특성이야말로 사회주의에 그 숭고한 교육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 널리 기여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추구하는 이 진지한 과업은 우리 정치인들을 따르는 한량 고객님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총파업은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정치인들은 부르주아지들을 안심시키고자 하며, 인민이 자신의 아나키즘적 본능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부르주아지에게 약속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로서는 결코 거대한 국가기구를 폐기할 생각이 없으며, 따라서 현명한 사회주의자라면 두 가지를 원한다고 부르주아지에게 설명한다. 그 하나는 국가기구를 장악해서 그 기능을 완벽하게 다듬고 자신의 친지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운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부의 안정성을 확보해서 사업가들에게 더 많은 이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227-8)


"소위 말하는 절제된 사회주의(socialisme sage)를 연구한 저자들은 누구나 이 절제된 사회주의라는 것이 두 집단으로 나뉜 사회를 전제한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 하나는 정당으로 조직된 엘리트 집단이다. 이 집단은 사고력을 지니지 못한 대중을 대신해서 몸소 사고하는 사명을 떠맡으며, 대중에게 자신들의 높은 지식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짐짓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다른 하나는 생산자 전체이다. 정치 엘리트는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는 것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가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금욕생활자와는 전혀 닮은 점이 없는 자신들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을 본원적 정의(그들만이 이 정의의 소유자이다)의 원칙에 부합되는 일로 여긴다. 이러한 분리는 아주 명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관변 사회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정당에 대해 마치 그 자체가 고유한 생명을 지닌 유기체인 양 말한다."(229)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모든 활동은 대중을 자본주의 경제의 조건들에 복속시키는 데,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하는 데 집중되어 온 반면, 혁명활동은 자유로운 인간들을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통치자들은 프랑스의 도덕적 통합을 실현한다는 사명을 자임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통합이란 생산자들을 우월한 지성을 지닌 지도자들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일하도록 만드는 기계적인 기율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생디칼리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바로 민주주의를 모방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생디칼리슴으로서는 부르주아지의 정치형태를 모방하는 노동조합들의 지배를 받느니보다, 차라리 당분간 허약하고 무질서한 조직들로 만족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은 이 점에서 판단을 그르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을 부르주아지를 모방하는 길로 몰아넣고자 하는 부류는 바로 생디칼리스트의 총파업의 적이며, 또 그들 스스로 적이라고 자백했기 때문이다."(250-1)


제6장 폭력의 윤리성


"법전(法典)들은 폭력에 대한 온갖 대비책들을 담고 있고 교육은 우리의 폭력성향을 한껏 누그러뜨린다는 목적 아래 이루어지는 까닭에, 우리는 폭력행위란 야만으로의 후퇴의 한 표현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온화함의 미덕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폭력은 경제적 진보를 저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설 경우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보가 여기서 제기하는 이론에 대한 반대논거로 이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폭력을 단지 그 이데올로기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자들로 하여금 경제적 투쟁들을, 미래를 결정지을 위대한 전투의 축소판 이미지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유혈이 동반된 잔혹행위가 대규모로 발현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거리낌 없고 충직한 반동적 태도가 프롤레타리아의 폭력만큼이나 계급들 간의 분리에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255-8)


"옛날의 위험한 계급들은 아주 단순한 위법행위, 가장 쉽게 저지르는 위법행위, 즉 오늘날 경험도 판단력도 없는 젊은 부랑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위법행위를 저지르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난폭성의 행위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만일 난폭성이 엄청날 경우 우리는 피고인이 과연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인가를 묻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명백히 범죄자가 도덕적으로 교화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이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행동양식을 바꾸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옛날의 잔혹성은 지능적 수법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대개 금전적 손실은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인 만큼 쉽사리 회복될 수 있는 사건인 반면에 신체적 위해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지능범죄를 흉악범죄보다 훨씬 덜 위험한 것으로 여기게 되며, 범죄자들은 재판에서 반영되는 이러한 변화를 이용한다."(269-71)


"노동조합을 민주주의 정부의 보조기구 역할을 하는 정치 범죄죕단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1884년 이후 발덱루소가 추진한 계획이었다. 노동조합은 프리메이슨 단(團)이 떠맡았던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 후자가 관료들에 대한 사찰기능을 했듯이, 전자는 행정당국에 비협조적 고용주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역할을 맡았다. 프리메이슨 단은 훈장으로 포상을 받았으며 그 측근들도 많은 혜택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에게서 더 많은 임금을 얻어낼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 체제가 순조롭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들이 온순하게 처신해야만 한다. 폭력은 눈에 띄지 않게 뒤로 물러서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욕구도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에게 제공되는 뇌물의 원칙, 즉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적당한 선에서 조절할 줄 아는 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눈감아준다는 원칙과 동일한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되어야 한다."(286)


"우리는 사상사가들이 고매한 격률이라고 이름 붙인 격률이 대개 아무런 효력도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스토아학파의 경우에 명백한 사실이었으며 칸트철학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타당한 사실이다." "인간이 윤리성에 어긋나는 여러 성향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인간 내부에 어떤 강력한 원동력, 즉 모든 의식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성찰된 타산이 정신 속에 스며들기 전에 활동하는 어떤 신념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윤리적 확신은 결코 의지적 개인의 추론이나 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며, 또한 명료한 신화들 속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전쟁상태에 의존한다. 가톨릭 국가들에서 수도사들은 세상을 제압하고 자신들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악의 제왕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는 군소 광신종파들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바로 이러한 전쟁터가 기독교 윤리로 하여금 어떤 숭고성의 특징을 가지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해준다."(292-5)


"많은 식자들의 견해에 따르자면, 영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파업들에 나타난 폭력에서 간계로의 이행은 아무리 예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조합들은 외교적 언사로 치장된 협박을 구사할 권리를 얻어내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노동조합들은 조합대표가 조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지침을 따르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하면서 공장을 돌아다닐 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기 원한다."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폭력이 모든 혁명적 성격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직업적 이익을 주먹다짐을 통해 추구하든 간계를 통해 추구하든, 이 두 방식 사이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영국 노동조합의 평화적 전술에는 선량한 나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는 편이 나을 어떤 위선이 담겨 있다. 총파업 관념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파업 중에 노동자들과 부르주아 대표들 사이에 주고받는 다툼은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아주 원대한 결과를 가져오며 숭고성을 낳을 수 있다."(299-300)


제7장 생산자의 윤리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들을 지배한 미몽(迷夢), 곧 선거 민주주의는 여러 면에서 주식거래소의 세계를 닮았다. 두 경우 모두 대중의 순진함을 이용해야만 하고, 거대신문의 협조를 매수해야만 하며, 온갖 간계를 다 동원해서 행운의 도움을 요청해야만 한다. 몇 년 안에 거덜날 시끌벅적한 사업을 시장에 들여오는 금융자본가와, 실행방안도 없고 결국 의회 서류뭉치로만 남을 온갖 개혁안들을 동료 시민들에게 남발하는 정치인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점이 없다. 이 두 부류는 생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생산을 통제하려 하고, 생산을 잘못 인도하고 있으며,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생산을 이용하려 한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현대산업의 경이적 발전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세계는 부가 넘쳐흐르므로 그중 상당한 몫을 훔쳐내더라도 별로 생산자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 것으로 쉽사리 단정한다. 납세자들을 폭동으로까지 내몰지는 않으면서 짜내는 것, 유력 정치인이나 금융자본가가 가진 기술이 바로 이것이다."(313)


"무엇이 과연 규율(規律)이라는 후대에 생긴 관념을 대신했는가를 승전을 거듭하던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당시에 병사들이 말단 졸병의 가장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전체의 승리와 모든 전우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따라서 병사들이 그 확신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라고─말할 수 있다. 이것은 병사들이 승리를 가져오는 요인들의 상대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것을 질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 고려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이와 유사한 기백을 우리는 총파업에 열중하는 노동자 단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동자들은 사실상 혁명을 개인주의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거대한 봉기로 생각한다. 각자는 가능한 최고의 열정을 가지고 진군하고,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움직이며, 자신의 행동을 정교하게 조합된 어떤 총괄적인 원대한 청사진에 종속시키려 하지 않는다."(340-1)


"프롤레타리아는 민주주의의 비속한 본능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는 고위관료로 변신한 옛 동지 앞에서 네 발로 기기를 결코 원치 않으며, 장관님 댁 사모님들의 화장실 앞에서 안락에 빠져들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혁명적 대의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늘 아주 겸허한 삶의 조건 속에 머물러야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남의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조직활동을 계속한다." "만일 아무 불평 없이 투쟁하고 아무 이익도 구하지 않으면서 역사의 원대한 과업을 성취하는 인간들의 자기헌신을 역사가 포상한다면, 우리는 사회주의의 도래를 확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주의는 지금껏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숭고한 윤리적 이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땅 밑에서,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도움 없이 만들어질 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다. 탄생할 것은 미덕, 즉 부르주아 지식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덕, 하지만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미덕이다."(320-2)


옮긴이 해제


# 소렐의 사상 편력

1. 제1기(1893~1897년) : 1891년 파나마운하의 개발이권을 놓고 권력과 재벌이 야합한 부패스캔들이 터진다. 부르주아 정권의 탐욕과 기만을 목도한 소렐은 부르주아 지배체제에 대한 단호한 비판자이자 맑스주의 이론가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2. 제2기(1898~1902년) : 드레퓌스 사건에서 중도적 또는 방관적 입장을 취한 프랑스 노동당과 달리 공화정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공화주의 세력과의 연합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 소렐은 베른슈타인의 뒤를 이어 개량적 사회주의의 길로 접어든다.

3. 제3기(1903~1908년) : 1902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친드레퓌스 진영의 부르주아 급진 정부가 부패와 권력다툼으로 물들어가자, 소렐은 이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즉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4. 제4기(1909~1913년) : 소렐은 (아마도) 1909년의 대규모 노동자 파업이 빚은 폭력사태와 정부의 유혈진압을 계기로 혁명적 생디칼리슴에 대한 신뢰를 점차 거두었고, 극우 왕정주의 노선을 이끌던 샤를 모라스 같은 이와 친교하기 시작한다.

5. 제5기(1915~1921년) : 전쟁의 참상을 접하면서 극우파 진영으로부터 등을 돌린 소렐은 돌연, 서구사회의 쇠락을 치유할 마지막 희망이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선구자로서 러시아의 레닌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게 마음을 의탁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폭력이라는 말을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난폭한 힘〉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회학적 문맥에서 고찰해볼 때, 우리는 폭력을 한편으로 기성 지배체제가 휘두른 제도적 강압이나 강자의 약자에 대한 물리적 강제와 같은 억압의 폭력과, 다른 한편으로 지배체제에 대한 탈법적 항거나 생존을 위한 방어적 저항과 같은 해방의 폭력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소렐은 전자의 경우는 '무력'(force)으로 후자의 경우는 '폭력'(violence)으로 구분해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무력이 소수 지배자의 통치질서를 강제하는 힘이라면, 폭력은 기존 질서의 파괴를 지향하는 힘이다.〉 그는 프랑스대혁명 당시 강압적 공포정치를 이끈 부르주아의 무력과, 총파업을 통해 지배체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을 명확히 구별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부르주아의 무력과는 달리 〈어떤 증오도 복수심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영웅적으로 표출된 〈계급투쟁 감정의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일 뿐이다."(408-9)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이 순수한 계급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총파업이다. 생디칼리슴은 사회주의 일체를 총파업의 틀 안에서 생각한다. 소렐이 총파업 테제를 승인한 것은 그것이 한편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투쟁하는 구체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의회정치, 특히 의회사회주의를 거부한다는 실천적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소렐이 프롤레타리아의 혁명무기인 총파업을 궁극적으로 맑스주의의 본질을 구현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을 고양시킬 사회적 '신화'(mythe)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맑스주의를 과학적 진리인 양 받아들인 정통 맑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소렐은 맑스주의를 인간의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의 신화적 표현, 즉 일종의 '사회시(社會詩)'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사회주의란, 우선 직접 행동을 통해 인간의 완전한 해방에 이르는 윤리적 원칙이자 정신적 상태를 의미했다."(409-10)


"맑스주의를 과학적 명제이기에 앞서 사회적 통찰력으로 받아들인 소렐에게 맑스의 계급투쟁과 혁명이론의 핵심을 현대세계에 구현한 것이 바로 총파업 신화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소렐의 독창적 면모는 그가 생디칼리슴의 총파업 신화를 통해서 맑스주의에 프롤레타리아 행동의 신화적 조직화라는 역할을 부여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맑스주의가 진정으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이론이 되려면, 그 혁명적 신화로서의 차원, 즉 노동자계급을 결집하는 행동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20세기 초에 제도권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의 덫에 걸려 있는 맑스주의는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비전과 결합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이념으로서의 진정한 혁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렐이 묘사한 혁명적 생디칼리슴은 바로 총파업 신화로 단련된 프롤레타리아의 생명력을 얻어 쇄신된 맑스주의에 다름 아니었다."(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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