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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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내가 보기에 플롯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플롯 구조에 집착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나는 플롯을 마법의 공식처럼 떠받든 탓에 간혹 요즘의 이야기가 가볍고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플롯만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플롯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인물에게로 돌려야 한다. 우리는 자연히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결함이 있고 매력적이고 구체적인 누군가의 역경을 보면서 응원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소파 쿠션에 머리를 박기도 한다. 플롯 표면에 드러난 사건도 물론 중요하고 플롯 구조가 제 기능을 다하고 규율을 따라야 하지만 플롯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그 안의 인물을 위해서다." "나는 강렬하고 심오하면서도 독창적인 플롯은 주요 원칙을 나열한 목록이 아니라 인물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다. 풍성하고 진실하며 서사적 놀라움이 가득한 인물을 창조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아보는 것이다."(18-20)


1장 만들어진 세계


"진화론에서는 우리의 목적이 살아남아 번식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성에게 좋은 짝이라는 확신을 주려면 매력이나 지위, 명성, 구애 의식과 같은 사회적 개념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결국 뇌의 궁극적인 사명은 상대를 통제하는 일이다. 뇌는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지각하고 그 사람들을 '통제'해야 한다. 세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뇌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계한다. 뜻밖의 변화가 위험을 불러오고 우리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인데, 한편 그런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뜻밖의 변화라는 우주의 갈라진 틈새로 미래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변화는 희망이자 약속이고 더 나은 내일로 가는 굴곡진 여정이다. 삶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와 맞닥뜨릴 때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예상 밖의 변화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이야말로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독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31)


"예기치 못한 변화만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뇌가 세계를 통제하려면 우선 그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진다. 태어난 지 9주 된 아기도 이미 한 번 본 이미지보다 낯선 이미지에 더 끌린다. 2세에서 5세 사이의 아이들은 보호자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약 4만 개나 던진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에게 그 세계에 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서 정보에 대한 갈증을 자극한다." "호기심은 소문자 n 모양의 그래프를 그린다. 질문의 답을 전혀 모르면서도 안다고 확신할 때 호기심이 가장 적다. 호기심이 가장 큰 구간(작가가 개입하는 영역)은 조금은 알 것 같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다. 뇌 스캔을 해보면 호기심이 생길 때 뇌의 보상체계가 약간 자극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야기에서 답을 궁금해하거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마약이나 섹스나 초콜릿을 갈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37-8)


"뇌는 외부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받아서 신경계 모형으로 변환한다. 책의 글자를 눈으로 훑으면 글자에 내포된 정보가 전기 파장으로 변환되고, 뇌가 그 파장을 받아 글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모형을 생성한다." "독자의 뇌는 작가가 원래 상상한 모형의 세계를 각자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베르겐에 따르면 우리가 단어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형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한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형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작가가 단어를 배치하는 순서가 중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제인이 새끼고양이를 아빠에게 주었다Jane gave a Kitten to her Dad'와 같은 타동구문이 '제인이 아빠에게 새끼고양이를 주었다Jane gave her Dad a Kitten'와 같은 이중타동구문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작가는 독자의 마음에 상영되는 영화를 만들어주는 셈이므로 영화와 같은 순서로 단어를 배치하면서 독자의 머릿속 카메라가 문장의 각 요소를 발견하는 과정을 상상해야 한다."(48-50)


"뇌는 외부 세계의 모형을 구축하듯이 마음의 모형도 만든다. 우리의 사회생활 무기고에 들어 있는 중요한 이 기술을 '마음 이론mind theory'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며 어떤 모의를 하는지 그들이 앞에 없어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능력을 극단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인간의 행동을 수치로 정확히 수량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20퍼센트만 정확히 판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와 연인 사이라면? 기껏해야 35퍼센트다. 사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때 발생하는 오류가 인간 드라마의 주된 원인이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통제하려 할 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잘못 예측하는 순간 불행히도 반목과 싸움과 오해가 싹터서 인간관계에 예기치 못한 변화의 파국적 소용돌이가 일어난다."(58-60)


"신경과학자들은 은유가 인지 차원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우리의 뇌가 기본적인 방식으로 사랑과 기쁨, 사회와 경제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한다고 설명한다. 추상적 개념을 물리적 속성이 있는 개념, 가령 생기가 돌고 따뜻하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개념과 결부시키지 않고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뇌 스캔 연구에서는 더 강력한, 은유의 두 번째 용도가 드러난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이 〈그는 거친 하루를 보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그는 힘든 하루를 보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보다 촉감과 관련된 신경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는 〈그녀는 막중한 짐을 짊어졌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그녀는 부담을 느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보다 신체 운동과 연관된 신경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는 이렇게 표현된 문장을 읽을 때 짐을 짊어지는 무게와 긴장을 '느끼고' 거칠고 고단한 하루를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68-70)


"현실에 관한 심오한 질문에 대해서도 인간의 뇌는 이야기로 향한다. 정교한 신피질에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론과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면 현대의 종교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종교는 단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심오한 질문에 답해준다.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악인가? 나의 모든 사랑과 죄책감과 증오와 욕망과 질투와 공포와 애도와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나를 사랑해줄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의 답은 당연히 데이터나 방정식으로 나오지 않는다. 주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고 의지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누군가는 영웅이고 누군가는 악당이지만 모두가 의미가 있는 뜻밖의 사건으로 구축된 극적이고 변화무쌍한 플롯의 공동 주연이다." "인과관계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간이며 뇌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76-7)


"하지만 모든 작가는 어떤 독자를 타깃으로 정하든 간에 서사를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방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은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설명에 빈틈을 남겨둬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독자의 예상과 가치관, 기억, 연결, 감정을 이야기에 끼워 넣는데, 이들 요소가 모두 스토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도 자기 머릿속 세계를 타인의 마음에 완벽하게 이식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두 세계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독자가 작품에 푹 빠지기만 해도 오직 예술에서만 가능한 힘의 공명이 일어날 수있다."(81-2)


2장 결함 있는 자아


"이야기가 시작될 때 결함이 구체적으로 정의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세계에 관해 갖는 오류를 보면서 우리는 그에게 공감하고, 오류의 원인에 대한 암시나 단서가 나오는 동안 주인공의 약점에 흥미를 느끼며 그가 벌이는 싸움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주인공이 플롯의 극적 사건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동안 우리는 그를 응원하게 된다. 문제는 사람이 변하기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서 그 '이유'를 정확히 통찰하기 시작했다. 결함은, 특히 우리가 인간 세계에 관해서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범하는 실수는 단지 우리가 이런저런 일들에 관해 생각하고 간단히 공감하거나 무시하기로 선택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결함은 우리의 환각 모형에 스며들고 지각의 일부와 현실에 대한 경험을 이루므로 우리 자신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깊은 차원의 변화를 거부하는 마음과의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89-90)


"누구도 모든 것에 대해 옳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스토리텔링 뇌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옳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의 편향과 오류와 편견에 관한 불길한 사실은 그것들이 진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남들은 다 '편견'에 치우치고 우리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순진한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그렇다. 우리의 환각 모형이 틀렸다고 해도 우리는 뇌에서 우리를 위해 만든 현실에 거의 의문을 품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환각에는 나름의 기능이 있다. 우리의 신경 모형을 구성하는 작은 신념 하나하나는 우리의 뇌에 외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작은 지침과 같다. 〈꽉 잠긴 잼 뚜껑은 이렇게 따라. 경찰한테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라. 상사에게 유능하고 분별력 있고 정직한 직원으로 보이고 싶으면 이렇게 처신하라.〉 이런 지침이 우리의 환경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91-3)


"문화는 현실과 허구의 인물들이 결함이 있고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는 또 하나의 경로다. 흔히 '문화'라고 하면 오페라나 문학 혹은 패션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떠올리지만 사실 문화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신경 모형에 깊숙이 녹아있다. 문화는 현실에 대한 환각을 구축하는 신경 기제의 일부를 형성하며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렌즈를 왜곡하거나 좁히는 식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도덕 원칙을 목숨 걸고 준수하게 하거나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지각하는지 결정하는 식이다." "이와 같은 문화 규범은 유년기의 신경 모형으로 통합된다. 유년기는 뇌가 특정 환경을 가장 잘 통제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신속하게 찾아가는 시기다. 0세에서 2세 사이에는 뇌에서 1초에 약 180만 개의 뉴런 연결이 생성된다. 이런 높은 유연성(혹은 '가소성')의 상태는 청소년기 후기나 성인기 초기까지 이어지며 어느 정도 놀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환경의 규범을 습득한다."(108-9)


"우리는 머릿속 환각 모형이 정확하다고 우리 자신을 설득하면서 삶을 체계화한다. 우리의 신경 모형과 일맥상통하는 예술과 미디어와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어긋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거슬리게 받아들이거나 거리감을 느낀다. 우리의 신경 모형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문화 지도자에게 갈채를 보내며 우리와입장이 반대인 사람을 만나면 일단 부정하고 본다. 불안을 느끼고 화를 내고 복수심을 느끼면서 그 사람이 실패하고 수모당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옆에 두려고 한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논쟁거리에 대해 함께 같은 생각을 나누면서 '유대'를 형성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지키려고 싸우는 신념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과 통제 이론을 이루는 믿음이고, 따라서 이 신념에 대한 공격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자체를 공격하는 셈이 된다. 이야기에서는 이런 신념과 이런 공격이 가장 중요한 스토리를 이끌어낸다."(119-21)


"우리가 현실과 이야기에서 접하는 갈등은 주로 이런 신경 모형과 세계 모형을 방어하는 행동과 연관된다." "좋은 이야기에는 발화점이 있다. 독자는 이야기를 읽다가 발화점이 오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집중한다. 감정이 증폭되고, 호기심과 긴장감이 살아난다. 발화점은 결국 주인공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사건들 중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주인공의 결함 있는 통제 이론의 중심부에 진동을 일으키고 이 진동이 결함의 핵심을 건드리므로 주인공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과잉 반응을 보이거나 이상해 보이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인물과 플롯 사이에 격렬한 불꽃이 튄다는 무의식적 신호다.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통제 이론이 검증받고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야기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그리고 사건에 의해 촉발된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결정을 요구한다. 결함을 수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121-2)


"뇌의 영웅 만들기 장치는 자동적이고, 대개는 잠재의식 차원의 직감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세계 모형에는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 신념이 들어 있다. 그래서 흑인이나 백인, 여자나 남자를 만날 때 미묘하게 부정적인 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영웅 만들기 장치는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하고 주어진 임무를 잘 해낸다.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도덕적 우월성은 사실 '유난히 강력하고 보편적인 긍정적 착각의 한 형태'다." "연구자들은 폭력과 잔혹성의 네 가지 일반적인 원인을 찾아냈다. 탐욕(야망), 가학증, 높은 자존감, 도덕적 이상주의다. 대중적인 신념과 진부한 이야기에서는 탐욕과 가학증을 주된 원인으로 잡는다. 그런데 이들 원인은 극히 사소하다. 알고 보면 높은 자존감과 도덕적 이상주의가 대다수 악행의 원인이다."(127-9)


"물론 이야기 유형마다 강점과 심리적 복잡성이 다르지만 인물이 없는 플롯은 그저 빛과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바로 그 순간에, 바로 그 사람에게, 바로 그 변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의미가 발생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물의 갈등은 그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일어난다. 인물은 머릿속에 든 세계 모형 속에 살면서 그 모형을 현실이라고 경험하는데, 모형 자체에 결함이 있으므로 실제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능력이 손상된다. 혼돈이 일어나고 인물의 세계 모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인물은 서서히 통제력을 잃고 그 결과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나 사건들과 더 극적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인물이 외부 세계와만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므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인물은 자기 자신과도 전쟁을 치른다. 주인공은 자신의 잠재의식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가담한다. 결국 모든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핵심이다."(136-7)


3장 극적 질문


"'우리'는 우리의 신경 모형 속에 있다. 우리의 화자는 단지 우리의 행동을 비롯해 머릿속의 통제된 환각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할 뿐이다. 모든 현상을 연결해서 우리가 누구이고 왜 그렇게 행동하고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에 관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엮는다. 우리가 흥미진진한 신경계의 쇼를 통제한다고 느끼게 해준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이를 작화증作話症이라고 하는데,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리사 보르톨로티 교수는 우리가 작화할 때는 〈허구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고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항상 작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뇌의 화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하는 행동을 (혹은 누구에게 묻는지에 따라 전적으로) 통제하는 신경 구조에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 화자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의 진정한 원인인 회로와 동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고 왜 그런 상황에 있는지에 관해 들려줄 만한 그럴듯한(대개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급조해야 한다."(144-6)


"인간 조건에 관한 무섭고도 흥미로운 진실은 누구도 극적 질문의 답을 모른다는 것이다. 질문 자체가 우리 자신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다. 왜 우울한지 가설을 세우면서, 도덕적 신념을 정당화하면서, 음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의 자아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그래서 인생이 그렇게 골치 아픈 싸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 같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극적 질문이 그렇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주인공이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시시각각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사이에 극에 압력이 생기고, 플롯이 전환되는 사이에 주인공은 대개 의도치 않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147-8)


"우리 머릿속에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모형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다양한 모형도 들어 있어서 각각의 모형은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싸운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형이 전면에 나서고, 그 모형은 화자 역할을 맡아서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고 대개는 논쟁에서 이긴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 교수는 우리의 의식 아래 차원에서는 지배권을 두고 〈끊임없이 싸우는 작은 자아들의 시끌벅적한 민주주의가 구현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행동은 '그 싸움의 최종 결과일 뿐'이다. 그사이 작화를 담당하는 화자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일상에 논리를 짜 넣는다. 가령,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여기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은 〈뇌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뇌는 민주주의의 다채로운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한다는 확고한 목표에 따라 이야기를 만든다.〉" "좋은 이야기에서 인물은 이런 특징은 반영하며 그의 성격은 '3차원'이 넘는다."(151-4)


"영화에서는 생애 전체를 약 90분 안에 전달하면서도 어느 정도 완결된 느낌을 준다. 이때 흥미로운 대화의 비결은 압축에 있다. 인물이 쓰는 단어는 진실하게 들리면서도 의미를 가득 담고 있어야 한다." "대사에 심오한 진실이 가득 담겨 있어야 독자나 관객이 대사에서 진실을 깊이 흡수하고 고도로 사회적인 뇌를 작동시켜 인물의 마음 모형을 신속히 구현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모든 원칙이 대화의 기술로 통합된다. 대화는 변화무쌍해야 하고 무언가를 원해야 하며, 인물의 개성과 관점을 풍부하게 담아야 하고 의식과 잠재의식 두 차원 모두에서 작동해야 한다. 대화는 우리가 인물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정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인물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고,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인물의 사회적 배경, 개성, 가치관, 지위에 대한 감각, 진정한 자아와 겉으로 드러난 거짓 사이의 긴장,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서사를 전개시키는 은밀한 고뇌를 알려준다."(172-4)


"소문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알려주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대부분 도덕규범을 위반한 내용, 집단의 규율을 깨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도덕적 분노를 자극해서 소문 속 인물을 공격하든 방어하든지 간에 어떤 식으로든 행동하게 만듦으로써 집단에 우호적인 행동을 유지한다. 우리가 좋은 책이나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책이나 영화에서 이런 원시적인 사회 정서를 자극하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보이드 교수는 〈이야기는 사회 감시에 대한 강렬한 관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우리가 사회 정보에 주목하게 만들고〉 소문이나 시나리오나 책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감시하는 행동의 과장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우리의 생존에 중요했다. 우리의 뇌는 지금도 여전히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소문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이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약 3분의 2가 사회적인 주제에 관한 것이다."(179-80)


"도덕적 분노만이 스토리텔링의 즐거움을 더하는 원시적 사회 정서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가 두 가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부족민으로 여기게 만들려는 욕망이고, 다른 한 가지는 사람들을 '앞질러서' 우리가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인간은 소통하고 지배하고 싶어 한다. 두 가지 욕망은 양립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앞지르고 싶은 마음은 부정직과 위선과 배신과 마키아벨리적 묘책처럼 들린다. 이런 두 가지 욕망의 갈등이 인간 조건과 우리가 인간 조건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출세란 지위를 얻는 것으로, 인간의 보편적 갈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폭넓은 목표 지향적 활동'에 참여한다. 다시 말해서 삶의 지극히 고상한 플롯과 활동의 기저에는 지위를 향한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185-6)


"흔히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심리적 진실에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연구되고 있는 마음의 과학에서 이 말이 놀라울 정도로 입증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항상 '심리적으로든 신학적으로든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회의적인 태도가 전적으로 옳았다는 사실이 현대의 과학으로 입증된 것이다. 사실 누구도 자신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잘 모른다. 리어 왕도 이아고도,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관객이 그 이유를 짐작할 여지를 남겨서 관객의 가축화된 뇌를 훌륭하게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인간 행동의 원인과 결과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없다. 셰익스피어는 극적 질문의 답을 모호하게 제시함으로써 타인과 그의 기묘함에 대한 우리의 무한한 호기심에 접근한 다음, 인물과 작품에 경이롭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또 우리가 이야기에 끼어들 여지를 남겼다."(218)


4장 플롯과 결말


"목표는 삶에 질서와 가속도와 논리를 부여하며, 현실에 대한 환각에 서사적 구심점을 제공한다." "우리가 행동하고 싸우고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우리의 영웅 만들기 뇌는 끊임없이 우리가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사고하기를 바란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낙관주의와 운명이라는 착각으로 삶의 플롯을 밀고 나간다." "목표 지향성은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낳는다. 주인공이 목표를 추구하는 사이 우리는 그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함께 느낀다. 주인공이 상을 거머쥐면 그의 기쁨에 공감하고 주인공이 실패하면 함께 좌절한다. 이야기 이론가 크리스포터 부커는 탄탄하게 구축된 플롯에 흐르는 '수축'과 '이완'에 관해 설명한다. 부족적 사회 정서가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의 죽음을 갈망해야 할지 말해준다면, 목표에 대한 우리의 이런 반응은 이야기라는 롤러코스터에서 꼭대기와 밑바닥을 이루고, 언어 이전에 수백만 년 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생명체의 보편적인 언어를 쓴다."(232-5)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도록 태어났다. 힘들지만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번창한다. 뇌의 보상 기제는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이 아니라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승한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들이 쌓여서 인생이 되고 플롯을 만드는 것이다." "위협적이고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의 목표는 그 변화를 다루는 것에 있다. 목표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통제해야 하는 세계가 좁아진다. 일종의 인지적 터널로 들어가서 해야 할 일만 보인다. 우리 앞의 모든 것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이거나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된다." "극에서 반응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고, 어떤 식으로든 혼돈을 통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인물은 진정한 주인공이 아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의 답이 사실상 달라지지 않는다. 인물은 자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긴 하지만 서서히 지루하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238-9)


"나아가 플롯은 변화의 교향곡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상위 차원의 인과관계는 이야기 사건과 그 여파의 영향을 받고 하위의 잠재의식 차원에서는 인물이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의해 놀랍고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할지 말해주는 부족적 정서에 변화가 일어나고, 서사의 정상과 바닥을 이루는 수축과 해방의 목표 지향적 정서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뿐 아니라 인물이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인물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우는 계획도 달라질 수 있고 목표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수 있으며 관계에 대한 이해도 바뀔 수 있다.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극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 바뀔 수 있다. 두 번째 주요 인물(그리고 세 번째 인물)도 달라질 수 있고 정보의 격차가 벌어지고 좁아졌다가 완전히 닫힐 수도 있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247)


"모든 이야기가 변화라면 당연히 변화가 멈출 때 이야기도 끝날 것이다. 주인공은 발화점부터 외부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면 그 과정이 성공적인 셈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뇌의 모형과 통제 이론이 갱신되고 향상될 것이고, 주인공은 마침내 혼돈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보았듯이 통제는 뇌의 궁극적인 사명이다. 우리의 영웅만들기 뇌는 항상 우리가 실제보다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더 많이 가진 것처럼 느끼게 해주려고 한다." "우리는 통제력을 잃으면 적극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라는 자아 감각을 잃고 결국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각한 상태로 치닫는다. 뇌는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 영웅적인 우리 자신에 관한 설득력 있고 교묘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252-3)


"이야기는 진실한 위안을 준다. 고도로 사회화된 종인 우리가 받은 저주는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가 타인과 잘 어울리고 성공하고 싶어하므로 우리는 거의 항상 상대에게 조종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환경은 가벼운 거짓말과 절반의 미소가 뒤섞여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즐겁게 만들고 타인과 외부에 순응하게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통제하기 위해 잘못과 실수와 고통을 열심히 위장한다. 사교성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킬 수 있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소외당할 수도 있다. 오직 이야기에서만 온갖 가면이 벗겨진다.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결함 있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우리만 갈등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다."(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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