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과학 -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 브론스테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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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의지냐 운명이냐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뇌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장애에 기여하지만 직접적인 방식으로 장애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조현병이 생길 위험 중 80퍼센트는 결국 갖고 태어난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여기에 관여하는 180개 정도의 유전자가 서로 서로, 그리고 사람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아직 완전히 풀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음식의 선택, 사교성 같은 성격의 한 가지 측면인 친구관계 스타일, 혹은 신념 같은 문제로 오면 여기에 기여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아주 미묘하고, 서로 서로, 그리고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또한 대단히 교묘해진다. 그렇다고 이 영역에서 한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자신의 의식적 통제를 벗어난 선천적인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운명이라는 개념에서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비극적인 암시를 덜어내고, 도달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종착지라는 개념으로 운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22-3)


"과학은 인간 모두가 신경생물학에 크게 휘둘리며,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보이기 쉬우며,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주장한다.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한 수준에서 보면 모두는 아무리 고유의 복잡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인간이라는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주 목적은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교환하여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에 기여하고, 운이 좋다면 자신의 유전 물질을 후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깊은 욕구가 작동 중이고, 이런 욕구들은 대체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심지어는 행동 중에서 좀 더 개성적인 측면이라 생각하는 부분, 직감적으로 느끼기에 분명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인 산물이고, 그래서 의식적 통제 아래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대단히 추상적인 의견이나 성격적 특성들 같은─도 사실은 우리가 갖고 태어나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강화된 선천적 요인에 의해 깊숙한 수준에서 형성이 된다."(35)


"뇌의 지도가 점점 더 분명하게 밝혀짐에 따라 자유의지가 차지하는 공간이 실제로 줄어들고 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상상했던 것만큼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위험이 따라온다. 개인의 수준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정하게 한다.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권한이 약해져서 사회적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한다면 사회에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경과학은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생각만큼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빠져들 필요는 없음을 설득하는 논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은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과학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한동안은 자유의작 착각에 불과해도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37-8)


2 발달 중인 뇌


"아이의 처음 몇 년이 그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때는 인지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인 시기다. 심리학에서 언어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수십 년 치의 연구를 보면, 이른 아동기의 환경 및 경험의 영향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평생 지속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을 설명해 줄 타당한 해부학적 이유가 존재한다. 뇌의 정보 처리의 기본 구성 요소인 뉴런, 즉 신경세포는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는 동안에 주로 만들어지지만 모든 뉴런들을 연결하는 복잡한 과정은 대략 처음 3년 동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열 달을 다 채우고 태어난 아기의 뇌는 부피는 성인 뇌의 2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인과 비슷한 수의 뉴런이 들어 있다. 아이가 만 3세가 될 즈음에 아기의 뇌는 평균적으로 성인 뇌의 80퍼센트 정도 크기로 발달한다."(46-7)


"아기와 어린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도약은 바로 기존의 뇌 구조물에서 일어나는 '배선wiring up' 때문이다. 뇌의 서로 다른 영역들은 서로 다른 기술을 학습하는 특별히 민감한 시기가 따로 있다. 이때는 새로운 배선이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가령, 언어 습득과 청각 기관hearing system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의 발달 과정을 보면 아기들이 어떻게 자신의 특정 환경에 맞게 미세하게 조정된 선천적 기술을 갖고 태어나는지 알 수 있다. 청력에 장애가 없는 아기들은 모두 성숙한 달팽이관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음의 높이와 크기를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모든 언어를 아우르는 세계 시민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떤 언어에서 사용되는 음소phoneme라도 듣고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국어에 노출됨에 따라 아기는 자신의 환경에서 나타나지 않는 음소를 듣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50-1)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거나,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자각함에 따라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신경 연결이 강화되어 학습이 기억으로 응고된다. 그 기억을 되풀이해서 끄집어내면 그 기억은 뇌 속 전기 신호의 기본 설정 경로가 된다. 이렇게 해서 학습된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사용되지 않는 신경 연결은 결국 가지치기를 통해 소실된다.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은 대부분 전기 신호에 반응해서 모양을 바꾸는 '가지돌기가시dendritic spine'라는 극소의 구조물에서 일어난다. 학습이 일어남에 따라 가시돌기가지는 이웃의 활발한 신경세포와 접촉하기 위해 가지를 뻗는다. 가지돌기가시가 부풀어 오르다 결국 두 개의 딸가지daughter spine로 쪼개지면서 회로 연결이 두 배로 늘어난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이런 과정을 통해 10,000개까지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대략 100조 개 정도의 연결이 만들어진다. 이런 연결들을 통틀어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부른다."(53-4)


"청소년기가 시작될 즈음 뇌는 이미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잘 확립된 신경 고속도로가 가동 중이지만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과 동시에 잘 사용되지 않는 신경로를 더 많이 가지치기하기 시작한다. 가지치기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데 10대의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은 그런 시냅스 가지치기가 대량으로 일어나는 장소다. 이 뇌 영역은 자기가 배워 왔던 내용을 가다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해 나가는 일을 동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대단히 역동적인 시기에는 앞이마겉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과 보상회로를 비롯한 다른 심부 영역의 정보 처리 방식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결과로 청소년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에 대단히 예민해지지만 충동 조절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평균적으로 10대들은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황홀감을 좇아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64)


"청소년의 뇌 발달에서 중요한 측면이 한 가지 더 있다. 10대 시절에는 뇌의 회백질grey matter이 줄어든다. 앞이마겉질에서는 무려 17퍼센트나 줄어든다. 회백질은 중추신경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곳은 시냅스 접합이 일어나는 대량의 수상돌기 가지와 신경세포의 세포체, 그리고 거기에 동반되는 지지세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우리 뇌의 대부분을 형성하며 척수를 타고 아래로도 이어진다." "회백질의 일부는 백질white matter의 확장으로 대체된다. 백질은 신경세포의 긴 회색 실린더 모양 구조물인 축삭돌기axon 둘레를 감싸서 코팅하고 있는 지방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코팅은 축삭돌기의 절연을 도와주어 전기 신호가 뉴런에서 뉴런으로 더 빠르고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게 해 준다. 10대의 뇌 발달 과정에 일어나는 다양한 과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청소년 커넥톰의 개선을 도와 자잘한 수많은 가지로 구성되어 있던 시스템을 그보다 숫자는 적지만 고속의 신경로를 갖춘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 준다."(64-5)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므리강카 수르는 뉴런들 사이의 연결이 일단 어느 단계까지 강화되면 이웃한 연결을 녹이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뇌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회로를 최적화하여 효율성을 유지한다. 뇌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미 시도를 통해 검증이 된 이런 신경로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나이 든 뇌는 귀, 눈, 기타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되는 새로운 정보보다는 기존의 경험과 예상을 더 중시한다. 이 경우에도 이런 전략은 역시나 말이 된다. 외부 세상으로부터의 정보를 수집하는 시스템들은 어느 시점에 가서는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뇌는 이미 경험을 구축하고, 기억을 저장하고, 정신적 전략을 검증하고 연마하는 데 엄청난 인지 에너지cognitive energy를 소비한 상태다. 나이 든 뇌는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보다는 과거의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지혜와 경직된 사고는 정반대의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72-4)


3 배고픈 뇌


"과거에는 사람들의 비만을 멈추어 줄 유전자 압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의 칼로리 섭취를 낮추게 만드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떨어졌다. 음식이 귀하고 음식을 사냥하거나 채집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환경에서 이런 돌연변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번식의 기회를 얻기 전에 죽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의 환경에서는 비만을 야기하는 돌연변이들이 인구 집단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지금은 환경이 아주 달라져 있지만 문제는 진화의 시간 척도가 아주 길다는 점이다. 환경이 이렇게 변한 것은 불과 한 세기 동안의 일로 포유류의 진화 시간에서 대략 0.00004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자기가 원하는 것은 언제라도 먹을 수 있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진화가 지금의 음식 배달 환경을 따라잡으려면 2천 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97-8)


"전 세계 인구 중 절반이 FTO 유전자(체지방량 및 비만 관련 단백질)를 비만의 확률을 25퍼센트 높이는 버전으로 갖고 있었다. FTO의 이 유전자 변이를 2개 갖고 있는 사람(전 세계 인구의 1/6이 여기에 해당한다)은 원래 나가야 할 체중보다 3킬로그램 더 무거울 것이고 비만이 될 위험은 50퍼센트 더 높다. 이 유전자는 보상체계를 구성하는 회로가 아니라 시상하부에서 발현된다. 하지만 이것은 몸에게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는 지시를 내려서 보상체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것은 사람이 계속 깨어 음식을 먹게 만든다." "개인적 식욕은 대체로 고유의 유전자 꾸러미를 물려주기 위해 오랜 세월 진화한 회로에 의해 프로그램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고지방, 고당분 음식을 추구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개인별로 이런 욕구가 얼마나 강력할지는 그 사람이 타고난 유전자와 뇌의 배선에 달려 있다. 체중 감량이 그토록 어려운 경우가 많은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99-101)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환경적 요인이 맡는 역할은 근래에 들어서야 발견되었고, 이것을 후성유전학적 조절epigenetic regulation이라고 한다. 후성유전학은 세포들이 똑같은 유전 암호를 갖고 있음에도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식욕의 후성유전학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동안에 태어난 네덜란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에서 형태가 잡혔다." "연구 결과 수정 당시 영양 상태가 심각하게 불량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나중에 비만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즉, 아이가 먹을 것이 귀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에는 그 아이의 대사가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환경이 가혹해도 이런 환경에 의해 변화를 겪은 것은 DNA 암호가 아니다. 변화한 것은 유전자의 행동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전달된다."(108-9)


"이런 연구 결과들은 환경과 유전적 운명을 살짝 비틀어서 음식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바꿈으로써 더 건강한 음식 선택으로 이끌고,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 이득이 되도록 유전적 반응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알코올을 이용한 의미 있는 연구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런 연구 결과를 적용해서 중독성 행동이나 강박적 행동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수백만 명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호도와 식욕이 어떻게 미리 결정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정해져 있는 운명을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으로 보인다. 후성유전학은 또한 유전적 변화가 더 이상 기나긴 진화적 시간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며, 물려받은 회로와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 대단히 복잡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은 이제야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잠재력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111-2)


4 보살피는 뇌


"미국에서 재현이 이루어진 한 흥미로운 실험에서는 여성들이 짝을 평가하는 기준 중,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선호하는 파트너의 냄새 맡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여성들이 면역계가 자기와 아주 다른 남성의 체취를 훨씬 선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주조직적합성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로 알려진 100개 정도의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 MHC는 면역계가 병원체를 비롯한 외부 이물질을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단백질 정보를 암호화하고 있다. 이 유전자들은 당신 몸에서 나는 체취를 결정하고, 당신의 면역계 구성을 결정하는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과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거기서 나온 자손은 감염에 대해 훨씬 광범위한 저항능력을 갖게 되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여성들은 말 그대로 자기와 유전자 궁합이 제일 잘 맞는 남편감을 냄새로 알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와 뇌에 새겨진 완전히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인다."(128-9)


"뜨거운 초기 연애 시절 이후로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몇몇 신경화학 물질이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부드러운 손길은 피부에 있는 신경말단을 자극해서 뇌의 시상하부 영역으로 전기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이 영역에서는 프로호르몬pro-homone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엄마와 신생아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서 특히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옥시토신은 대단히 강력한 물질이며 알코올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해서 앞이마겉질과 둘레계통limbic system(동기, 감정, 학습, 기억을 지배)의 억제신경세포를 활성화한다. 이 억제신경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스트레스와 불안을 약화시키고 (사회 구성원들이 거부감을 느낄 만한 행동을 제약하는) 사회적 억제social inhibition에 브레이크를 건다. 이렇게 하면 행복, 긴장 완화, 신뢰 등의 느낌을 강화하기 때문에 성적 절정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133)


"코델리아 파인이 인용한 한 연구는 필요야말로 발명의 이버지임을 입증한다. 수컷 쥐는 보통 새끼를 돌보는 일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지만 만약 수컷 쥐가 새로 태어난 새끼와 함께 굴속에 남아 있고 그 새끼를 돌볼 어미가 없다면 수컷 쥐는 새끼의 털을 고르고, 돌보고, 심지어 둥지를 짓는 일까지도 완벽한 능력을 보여 준다. 시간이 이틀 정도 걸리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수컷은 마치 새끼를 돌보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새끼에게 착 달라붙어 지낸다." "양쪽 성 모두에서 육아 행동은 애착과 돌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깊숙하게 자리 잡은 선천적 욕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호르몬, 환경이 모두 중요하며 이런 것들을 모두 함께 평가하지 않고서는 행동에 대해 신뢰할 만한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 "애착은 번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보상회로를 통해서도 동기가 부여된다. 육아는 생존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145-7)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고 함께 교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진화심리학 교수 로빈 던바는 이 주제와 관련한 연구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 연구는 심장마비 이후의 회복 여부를 말해 주는 최고의 예측인자는 하루 한 갑씩 태우는 흡연 습관을 끊느냐, 혹은 콜레스테롤이 뚝뚝 떨어지는 감자튀김을 끊느냐 등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을 뒷받침해 주는 인적 네트워크와 우정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주었다. 포옹, 걱정의 표현, 웃음 등 애정이 담긴 신체적 접촉은 엔도르핀의 생산을 촉진해 준다. 엔도르핀은 면역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회복 속도와 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주고, 기분도 좋아지게 해 준다." "로빈은 인류가 눈확앞이마겉질orbital prefrontal cortex(눈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뇌 영역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관여한다)을 발달시키던 것과 때를 같이해서 든든한 우정을 구축하고 가꿈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이러한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믿고 있다."(148-9)


5 지각하는 뇌


"'버전'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리적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살짝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뇌의 독특한 왜곡, 내재된 필터와 인지편향 등, 자기만 갖고 있는 뇌의 특성 덕분에 자기만의 맞춤형 '현실'에서 살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정확한 스냅사진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전에 무엇을 보고 살았는지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당신이 매일 매일 경험하는 하루는 모든 감각을 통해 뇌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는 당신이 기존에 세상을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색안경을 통해 처리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자기가 예상한 것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165-6)


"거대하고, 정교하고, 강력한 뇌가 어째서 세상의 근사치를 제공하는 데서 만족하는 것일까? 만약 지각이 다른 수많은 인지 기능이 의존하는 플랫폼이 맞다면 지각을 바로잡는 것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뇌가 환상을 다루지 않고 정확한 현실을 다룬다면 재앙을 낳을 수 있는 판단 오류의 가능성이 더 낮아지지 않을까? 그 대답은, 그러기에는 뇌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게다가 지각은 뇌가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사실상 무한히 많은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잠정적인 버전의 현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뇌는 귀, 눈, 코, 그리고 다른 감각 기관에서 유입되는 신호들을 전하를 띤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으로 변환해서 그 이온들을 신경세포 안팎으로 펌프질해야 한다. 또 뇌는 그 결과로 생기는 전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회로판인 커넥톰 여기저기로 시속 400킬로미터의 속도로 내보내야 한다."(168)


"안타까운 일이지만 뇌가 현실에 대해 일관되고 안정적인 착시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 때로는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2천 5백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그 예다. 이들은 망상이나 환각 같은 증상을 통해 심각하게 왜곡된 지각을 경험할 수 있다(정신병)." "이런 사람들도 눈으로는 나머지 사람들과 똑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하향식으로 그 정보를 해석하고 가정을 세우는 과정이 바뀌어 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뇌를 분석해 보면 학습, 기억, 추론, 유연성. 고등 인지 조절에 관여하는 회로(해마의 눈확앞이마겉질)에 신경 연결이 더 적은 것으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조현병 환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걸러 내고 이 지식을 이용해서 자기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하드웨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172-4)


"병든 신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각 결함을 완화하는 손쉬운 방법은 바로 밖으로 나가 자신을 새로운 경험, 혹은 새로운 의견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어떤 수준에서 보면 뇌는 이런 문제 제기에 저항하는 습성이 있다. 세상의 작동 방식에 대한 기존의 가정을 재평가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보는 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변화에는 에너지와 관심이라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뇌는 그런 문제 제기를 걸러 내는 데 아주 능숙하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가 그리도 힘든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뇌가 선천적으로 보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과 균형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경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바로 새로움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싶은 욕구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개념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도록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이것은 인간이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을 형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181-2)


6 믿는 뇌


"우리가 믿는 내용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입력되는 내용과 함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것은 지각의 메커니즘으로부터도 유래한다. 신념은 자기만의 독특한 현실감sense of reality을 통해 형성되고 또 그와 동시에 압축된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 초기에 습득한 신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인간은 정치나 축구에 대한 의견을 갖기 오래전에 이미 세상의 본질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어린 유아기에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어서 자신이 고통받을 때면 어디선가 보호자가 나타나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을 형성한다면 그 신념은 자기강화적self-reinfocing 경향을 가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세상은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적대적이라는 신념도 자기영속적self-perpetuating일 수 있어서 가끔은 한 개인의 인생에 비극적인 결말을 갖고 오기도 한다."(199-200)


"뇌를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로부터 지속적으로 의미를 추출해 내려 애쓰는 '신념 엔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뇌는 자기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입력을 분류하고 상호참조해서 패턴을 생성함으로써 이것을 해내고 있다.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이 작업의 목표는 의식적 인지conscious cognition로 하여금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능력이기는 하지만 항상 결함 없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뇌는 특정한 사실로부터 일반화하는 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보통 일단 누군가가 똑같은 맥락에서 똑같은 경험을 두세 번 정도 겪게 되면 그 사람은 이것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기꺼이 주장하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현실을 모형화한다. 그리고 이 예측 과정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도와준다. 이것은 '직접 경험 경로direct-experience pathway'라는 것을 통해 행동을 빚어내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201)


"직접 경험 경로에 덧붙여 사회적 경로social pathway도 존재한다. 이 경우 정보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평가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세계관에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경로가 대단히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세상에 대해 숙고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언어를 통해 개인적 신념을 소통할 능력을 가지고 진화해 왔다. 언어는 오래도록 인간 인지능력의 정점으로 여겨져 왔고, 이론을 만들고 소통하는 능력에서 언어가 담당하는 역할은 대단히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문제는 일단 뇌가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구축하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더라도 새로 고칠 생각을 않는다는 점이다." "뇌는 오히려 이런 신념에 빠져들어 그와 모순되는 정보들을 무시하고 그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만 찾아다니면서 강화해 나간다."(202-4)


"이 모든 신념 구축에는 분명 사회적 효용social utility이 있지만, 늘 그렇듯이 진화를 통해 보존된 보상체계가 그런 활동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만드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신념이 없었다면 바퀴, 배, 위생시설, 소설, 오페라, 현대무용, 무균 외과 수술 기법 같은 것들을 발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놀라운 결과에 더해서 신념은 무형의 자산도 제공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크게 증진시켜 준다는 뜻이다. 신념은 자부심과 목적의식을 부여해 준다. 신념은 엄청난 보상의 느낌을 부여할 수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무수히 많은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 왔다. 예를 들어 성적 지향 같은 문제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적 신념은 그런 부분을 지지하는 사람의 안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뇌 활동의 한 범주로서 신념은 전체적으로 이롭게 작용해 왔다."(208-9)


7 예측 가능한 뇌


"생체지표biomarker란 한마디로 생물학적 상태나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표지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혈구세포에 항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염의 생체지표다. 그리고 BRCA1이나 BRCA2 유전자의 특정 돌연변이는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정도를 말해 주는 유전체 생체지표다. 신경과학의 발달 덕분에 이제는 특정 행동을 하는 성향이 있을 때 특정 정신질환에 걸릴지 여부, 그리고 특정 치료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점점 더 세밀하고 선택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생체지표들이 확인되고 있다. 기존에는 미신과 미스터리로 바라보았던 질병들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환자에 따라 맞춤형 치료가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지 여부를 증상이 발현되기 최고 30년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진단 검사들이 나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선천적 요인을 후천적 요인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237-41)


"건강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면 도덕적 고려뿐만 아니라 정치적 고려까지도 그림에 넣어야 한다. 에든버러 대학교의 통계유전학자 데이비드 힐 박사의 연구는 높은 지능과 연관된 유전자가 장수, 행복,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연구가 말하는 대로 인생에서 중요한 이런 측면에 작지만 의미 있는 유전적 요소가 들어 있다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빈곤을 줄이기 위한 대책에 대해 논의할 때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낮은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신경발달에 불리하다는 것은 이미 연구를 통해 시사된 바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새로운 유전학 지식이 그런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위험한 부분은 정치가와 다른 사람들이 생물학을 불개입non-intervention의 논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247)


"우리는 일부 정신질환에서 환경과 생물학의 상호작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 가고 있지만 누가 이런 질환에 걸리고, 또 누가 안 걸릴지 예측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예를 들어 어째서 어떤 형제는 아동 시절의 정신적 외상으로 만성 우울증에 걸리고 어떤 형제는 기적처럼 마음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을까?" "회복력이란 역경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인생관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회복력은 복잡한 현상이지만 유전적 요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유전자 중 하나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다. 이것은 기존 뉴런의 생존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고, 뉴런들 사이의 연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단히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한다. 이 유전자의 한 변이인 Val66Met은 BDNF가 아주 높은 농도로 발현되도록 지시한다. 이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뇌가 아주 튼튼하다."(264-6)


"하지만 잠시 유전적인 기여 요인에만 국한해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회복력에 관여하는 특정 BDNF 변이를 단일 유전자로 찾아내면 그만인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르게 반응하고, 반응의 크기도 환경의 촉발 요인에 따라 커지고 작아진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듯이 회복력처럼 복잡한 특성의 경우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물학적 개념으로 이해해 보자면 회복력은 고난에 반응하는 수많은 서로 다른 행동을 아우르는 대단히 복잡한 현상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테마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불행하게도 사회적 불안, 충동성, 취약한 감정 조절의 성향을 갖게 만드는 유전자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데 학대, 부상, 질병, 유기 등의 심각한 스트레스 요소도 경험한다면 당신의 정신건강을 더욱 손상시킬 일련의 강력한 환경적, 사회적 요인을 촉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당신의 유전자 성향을 영속시키게 된다."(266-7)


# 다유전자성polygenic :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 데는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의미


8 협동하는 뇌


"실수투성이 뇌가 일반화하기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인간의 본성은 주요 대상 중 하나다." "나는 생물학이 인생 궤적을 좌우한다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는 자기가 바라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관점이 아무리 매력적일지언정 그 관점 역시 옹호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은 진정한 제약과 타고난 재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런 개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인간의 본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종의 전체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수준에서는 생물학이 상당히 결정론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이 전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나친 단순화 모형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수십 개의 고유한 현실 모형인 뇌가 서로와 마주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장엄한 복잡성과 유연성, 수십억 명이 제각기 찾고 있는 고유한 현실 모형들이 부정되어 버린다."(285-6)


"개인적으로 보면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행동에서 끝없이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유의 신경생물학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먹고, 지역 선거에 투표를 하고,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면 발끈하는 것도 다 그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법률 제정, 개입, 정책 입안 등을 통해 환경을 바꿈으로써 거시 수준의 변화가 만들어진다면 특정 행동 쪽으로 우리를 집단적으로 유도하고 유지해서 집단 수준에서 큰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항상 패스트푸드 대신 케일 샐러드를 선택하고, 지역 민주주의 활동에 참여하고, 철창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충분히 다스린다. 반면 어떤 사람은 도넛을 입에 달고 살고, 선거일에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보고, 옆 차선에서 바보같이 운전하는 사람에게 주먹을 날린다.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은 이 중간 어디쯤에 해당해서 맥락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맥락에 따라 이런 성향이 북돋아질 수도, 약화될 수도 있다."(288-9)


"사회 전반에서 더욱 폭넓게 그런 접근 방법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려면 자기 자신과 타인 안에서 연민, 협동, 호기심, 그리고 비판적이지 않은 마음가짐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개념(혹은 밈, 아이디어, 행동)의 전파를 가속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녁에 마을을 거닐며 이웃과 나누는 대화, 모닥불 주변으로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 시각 미술 전시나 음악 연주,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 가기 등 모든 사회적 모임과 예술 표현은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통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도 흡수할 수 있다. 신경촬영 기술은 이런 '밈 전염' 방식에 대한 노출이 증가하면 뇌 속에서 극적이고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사람이 그런 활동에 많이 참여할수록 뇌의 연결성도 증가한다."(307-9)


"인생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신경과학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라고 대답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에 더 큰 힘이 실린다. 우리는 방대하고 복잡한 행동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배어들고, 놀라운 메커니즘을 통해 세대를 거쳐 전달되고, DNA 암호 속에 새겨지고, 또 유전자 볼륨 조절 다이얼을 통해 정신을 구성하는 회로의 구축을 지시하는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과 현실감은 본질적인 정보 처리의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안고 있는 운명을 믿게 만든다. 반면, 뇌의 또 다른 특성인 가소성, 활력, 유연성은 행동, 나아가서는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개개인의 습관을 깨뜨리려면 인내심과 함께 자아성찰,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능력도 필요하다. 우리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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