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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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안과 밖


"시진핑은 중국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비전을 내놓으며 자신만만한 지도자로서 등장했지만, 공산당 내부를 향해 발신한 메시지는 전혀 달랐다. 2012년 12월 첫 지방 시찰로 광둥성을 찾아가 열었던 당 내부 회의에서 그는 〈왜 소련이 해체되었는가? 소련공산당은 왜 붕괴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념과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패와 이단적 이데올로기, 군부의 불충성이 지배당의 붕괴를 가져왔다. (···)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조용한 말 한마디와 함께 그 위대한 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아무도 저항하려 나서지 않았다.〉 시진핑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시진핑 리더십은 처음부터 외부로는 강력한 자신감, 내부로는 불안감의 두 얼굴로 등장했다. 시진핑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공산당 지도부를 향해 현재 당이 처한 불안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했고, 자신이 그위기를 돌파할 비전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임을 강조하며, 시진핑 1인 체제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왔다."(24)


"왜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엘리트들은 이에 동의한 것일까? 물론 '부패와의 전쟁'으로 당내 다른 파벌들의 영향력이 약화된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권력 강화가, 공산당이 권력을 잃고 소련공산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 중국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공산당 지도부의 위협 의식이 빚어낸 합의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두려움의 정치〉로 설명한다.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는 그의 권력욕 같은 개인적 요소보다는 통치 엘리트들의 집단적 위협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공격적 본능보다는 방어적 본능이 시진핑으로의 빠른 권력 집중과 공산당의 영도 강화를 추동했다〉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지배연합으로부터 배제된 대중과의 갈등과 지배연합 내부의 권력 갈등이 엘리트들이 느끼는 위협 의식의 뿌리〉라는 것이다."(26-7)


"빈부격차를 원망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마오쩌둥 시기의 평등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가운데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빌려서 듬직한 아버지의 이미지, 공산당의 이상주의적 뿌리를 회복시키고 외세에 단호히 맞서는 강력한 지도자상을 구축해왔다.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고 부패와의 전쟁으로 인기를 얻는 것은 시진핑의 라이벌인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실험했던 방법인데, 그를 숙청한 시진핑도 이를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다." "시진핑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공산당 내에서 개혁을 모색하는 목소리들, 더 나은 삶과 공정함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각성, 시민사회의 성장 등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포용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길을 만들어갈 여지도 있었다. 미국의 '트럼프 난장극'에 실망한 전 세계에도 중국 모델은 훨씬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권력은 그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29-31)


2부 설계자들


"왕후닝은 장쩌민 주석에게 발탁되어, 후진타오 시절과 시진핑 시대까지, 최고지도자 세 명의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보좌한,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인물이다. 중국공산당 당헌에 명시된 지도 이념인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공산당이 노동자·농민, 지식인과 함께 자본가의 이익도 대변하다는 이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성장 추진), 시진핑의 신세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싱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시대의 비전인 중국몽과 일대일로 정책에도 왕후닝의 전략이 주요하게 반영되었다." "1986년 무렵 왕후닝은 사상계에서 (중국은 서구와 다른 고유한 정치 모델, 강력하고 중앙집권화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신권위주의를 처음으로 주창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공평한 기회의 땅이며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서구식 민주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기득권 집단이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46-9)


"왕후닝과 함께 중국 신권위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인 샤오궁친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덩샤오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1.0, 시진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2.0의 시대로 구분한다. 샤오 교수는 덩샤오핑이 구축한 중국식 신권위주의1.0은 공산당의 강권통치를 기초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공산당의 통치 지위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체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다원성을 내포한 유연한 신권위주의였다고 평가한다."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2.0은 강경 신권위주의라고 볼 수 있다. 공산당의 전통 조직과 이념을 강화해 지도자와 당의 중앙에 권력을 고도로 집중시키고,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 등) 보편가치, 삼권분립 같은 민감한 용어는 아예 거론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강화해 사회의 다원성을 억제하고 통치질서의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고 개혁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51-2)


"트럼프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허물고 소프트파워를 스스로 파괴하는 동안 중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지만, 돈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거친 외교를 벌이면서 스스로 기회를 망쳤다. 중국의 경제 채찍 외교는 분명 즉각적인 효과를 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중국에 대한 깊은 반감을 확산시킨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에 '민주주의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은 중국의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중국의 약점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국제사회를 이어주는 공동의 이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적 힘으로 반감을 누르고 미국의 전략에 맞대응하려는 전략에 더욱 집중한다." "일각에서는 중국 외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고, 시진핑 지도부도 외교 고립을 돌파해야 할 필요성을 알고 있겠지만, 여전히 강력하고 위대한 중국을 과시해야 할 국내 정치적 수요가 큰 상황이다."(64-7)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왕후이, 자오팅양 같은 학자들은 중국이 중화제국의 조공 체제를 긍정적으로 되살려 서구식 근대 국제질서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서구의 근대적 국제질서는 국가 간의 경계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과 구별되는 적을 분류하고 파괴하려 하지만, 중국의 천하체계는 모든 국가와 민족에 경계를 두지 않고 분류할 수 없는 '하나'로 인정하기에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진핑 시대 외교의 주요 구호인 '인류 운명 공동체' 그리고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에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은 새로운 천하체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충성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이, 불충하는 국가에는 보복이 주어지는 21세기 조공 질서다. 공유할 가치는 희미하고 돈의 힘으로만 유지되는 '인류 운명 공동체'를 세계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67-8)


3부 중화의 꿈 아래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틀을 가져다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강제로 한족화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2013년부터 시진핑 지도부는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해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구상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주요 길목인 신장을 안정화시키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당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중동·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에너지 공급 통로인 신장에 대한 통제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6년 8월 천취안궈가 신장 당서기로 부임했다. 티베트에서 초강경 탄압 정책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신장에 부임한 뒤 1년 동안 경찰 9만 명 이상을 새로 채용하고 7300여 개의 검문소를 세웠다. 중국 당국의 종교 사무가 통일전선부 산하로 들어갔고, 소수민족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한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102-3)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전 일어난 티베트인들의 봉기, 2009년 한족-위구르인 충돌을 계기로 중국공산당과 관련된 학자들은 소수민족의 전면적 동화에 초점을 맞춘 '제2세대 민족 정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은 신장에서 극단주의·분리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목할 점은 신장 모델이 다른 소수민족 지역으로 확대되는 현상이다. 2018년 무렵부터 신장에 가까운 간쑤성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후이족 무슬림들의 기도와 예배가 제한되고, 모스크의 돔과 첨탑이 철거된 뒤 중국식 지붕으로 바뀌었다. 네이멍구(내몽골)에선 2020년 9월 1일 새 학기를 맞아 몽골어 교육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몽골어로 가르쳐온 주요 과목을 중국어로 수업하라는 정책에 맞서 몽골인 학부모·교사·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시위를 벌였고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확산되었다. 일부 조선족 학교에서도 한국어 부분이 빠지고 중국어로만 된 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다."(118-9)


"2020년 5월 28일 중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 국가보안법(국가안전법)을 통과시켰다. 6월 4일에는 톈안먼 31주년 추모 시위도 당국에 의해 금지되었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범민주 진영 전면 탄압에 이어 2021년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당국은 '애국자의 홍콩 통치'라는 새로운 구호를 내놓고, 홍콩의 선거제도를 전면 개편해 민주 진영의 민의가 선거에 반영되는 길을 전면 차단했다.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 후보자의 자격을 사전에 심사할 위원회를 신설하고,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친중파의 비율을 더욱 늘렸다. 중국공산당에 비관적인 이들을 비애국자로 규정해 행정장관이나 입법회 의원으로 당선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한 '홍콩인의 홍콩 통치'를 기본으로 하는 일국양제 원칙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홍콩의 완전한 중국화를 서두르려는 중국 지도부의 조바심이 두드러졌다."(138-40)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중국 모두 대만 카드를 요란하게 이용했다. 미국은 대만을 활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 중국을 흔드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선 대만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제1열도선'(쿠릴열도-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잇는 개념)의 전략적 요충지이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인 반도체 전쟁에서도 대만의 향방이 중요하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몽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치가 미-중 갈등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1월 2일에 〈대만은 중국의 내정이고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국 인민의 민족 감정 문제〉라면서 〈어떤 외부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력 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151-2)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대만 정책과 관련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미-중이 맺은 세 개의 코뮈니케, 대만관계법, 그리고 6대 보장이다. 닉슨 대통령의 1972년 방중 이후 미-중이 발표한 세 개의 코뮈니케의 핵심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고 베이징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1982년 세 번째 미-중 코뮈니케에서 미국은 중국에게는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줄이겠다고 하면서 대만에는 '6대 보장'을 해주었다. 6대 보장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대해 중국과 협의하지 않으며, 대만의 주권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과거 미국 정부에서는 부각되지 않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때리기에 나서면서 강조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6대 보장'을 대만에 대한 주요 정책으로 강조함으로써 대만을 활용하는 대중국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했다."(155-6)


4부 변혁의 불씨


"2015년 7월 9일 새벽, 여성 변호사 왕위와 남편, 열다섯 살 아들이 검은 옷의 남성들에게 끌려가 실종된 것은 긴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709 대체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시진핑 시대 중국이 공산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하고 강력한 불호령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실종 상태였던 왕취안장은 지방정부와 부동산 회사들에 억울하게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파룬궁 수련자 등을 변호해왔다. 2015년 8월 3일 체포된 그는 2019년 1월 24일까지 1300일 넘게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채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왕취안장은 끝까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어떻게 국가전복죄가 되느냐〉고 따졌다. 2019년 1월 24일, 방청이 금지된 재판에서 톈진 제2중급인민법원은 그에게 국가정권 전복 선동 혐의로 4년 6개월 형과 정치권리 5년 박탈을 판결했고 3개월 뒤 톈진 고급인민법원이 판결을 확정했다."(161-3)


"인권변호사들은 2000년 이후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고 성장해온 중국 사회의 풀뿌리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전국에 흩어진 운동들을 이어주는 그물 같은 존재였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관영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소식을 전하려던 시민기자들, 탄압받는 소수민족들, 공산당이 금지한 지하교회(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조직에 속하지 않은 교회)와 파룬궁 신자들, 토지를 빼앗긴 이들을 변호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렸다. 이렇게 인권변호사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중국 전역에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시민운동 조직들도 이들을 통해 연대할 수 있었다.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 이후 중국 당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탄압이었던 '709 대체포'는 인권변호사들의 네트워크를 궤멸시킴으로써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의 암흑시대를 예고했다."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영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면서 인민의 주체성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166-7)


"한국에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있다면, 중국에는 메이퇀과 얼러머가 있다." "21세기 중국 청년들은 한국의 청년들과 나란히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통제 속에 갇힌 동지다. 많은 기업들이 동남아 국가 등으로 이전하면서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음식배달, 택배 등 플랫폼으로 통제되는 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업·서비스업 중심으로 일자리 구조가 바뀌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권리 의식 성장을 사회불안정 요소로 판단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고, 2016년 자선법, 2017년 해외비정부조직관리법을 시행해 시민 단체들이 정부 승인 없이는 모금을 할 수 없고 홍콩이나 외국의 지원도 받을 수 없게 했다.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국가가 원하는 형태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로 변모해야 했다. 국가가 허용하는 만큼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노동자가 변화의 주체가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당근과 채찍'이다."(180-5)


"코로나19의 위험을 최초로 알렸다가 공안에 끌려갔던 우한중심병원의 의사 리원량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2020년 2월 7일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병상에서 한 마지막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회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유언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전 세계에서 중국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높아진 가운데, 중국은 '우리는 세계에서 코로나19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는 성과를 과시하면서 초기 방역 실패의 교훈은 망각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 중국의 코로나 대응은 극과 극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발병 초기에 정보를 은폐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통제국가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한 봉쇄 이후 강력한 국가 권력의 힘으로 효율적으로 상황을 통제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실을 지우려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외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고, 중국 내에서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을 억압한다."(199-201)


5부 영합과 저항


"시진핑 시대 중국은 파업, 토지 분쟁, 소수민족 저항 등 사회불안에 대응해 감시·통제를 전면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주도로 도시에서는 '톈왕', 향촌지역에서는 '쉐량' 공정을 시작했다. 톈왕은 도시 말단의 행정단위인 사구社區를 좀더 작은 규모의 격자로 나누어 각각 관리인을 배치하고 관할 지역의 모든 상황을 관리·감시하게 한다. 〈군중의 눈은 눈(雪·설)처럼 밝다(亮·량)〉는 마오쩌둥의 말에서 따온 쉐량 역시 각 지역 주민들이 이웃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메그비의 페이스++안면인식 알고리즘은 톈왕과 쉐량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 화룡점정의 기술이었다." "메그비의 창업자로 2021년 33세가 된 인치는 2019년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은 아름답고 명료하고 우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장에서 인권 탄압에 그 기술이 사용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술은 결코 잘못이 없으며, 책임은 사람이 져야 한다〉고만 답했다."(225-7)


"감시카메라, 안면·홍채인식 등 바이오 감시 기술과 관련해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 기업은 530건의 특허를 출원해 미국의 96건을 월등히 앞섰다. 중국 밖에서 퉁팡이라는 중국 기업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드물지만, 이 회사의 자회사인 눅텍Nuctech은 100개국 이상의 공항과 국경에 보안 검색 장비를 판매했다. 하이크비전은 2010년에는 매출 기준 세계 10위의 감시카메라 제조업체였지만 2016년에는 1위 업체가 되었다. 2018년 세계 20대 감시카메라 업체 가운데 여섯 개가 중국 기업이다. 더 철저히 감시하면 더 많은 빅데이터가 모이고, 기술과 산업은 더 급속도로 성장한다. 감시와 산업, 돈이 하나로 얽힌 위대한 신세계다. 2019년 저장성 항저우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안면인식 기술로 학생 개개인의 표정을 분석해 얼마나 수업에 집중하는지를 감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많은 공장에선 노동자들의 표정과 동작, 작업량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얼마나 열심히 근무하는지를 감시한다."(229)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시장경제의 길로 나아간 이후 국가와 기업, 국유경제와 민영경제의 관계는 계속 민감하고 복잡했다." "특히 마윈은 금융 서비스 이용자의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을 전방위로 확대해갔다. 중국인 약 10억 명이 알리페이로 결제를 한다. 마이그룹은 2000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과 약 5억 명의 개인에게 대출했다. 여기서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마이그룹은 14억 거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수요와 물류 흐름을 꿰뚫어보면서 새 사업의 영토를 계속 넓혀갔다." "중국 당국의 경계심은 커졌다. 당국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과도하게 자금을 끌어들여 폭풍 성장한 마이그룹의 소액 대출 사업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중국판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일개 민영기업가인 마윈이 14억 중국인들의 금융 생활과 정보를 과도하게 지배하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여겼다. 마윈의 금융 사업에 돈과 영향력을 빼앗긴 국유은행들도 마이그룹에 대한 공격에 가세했다."(237-41)


"왕리쥔 (망명) 사건으로 반 시진핑 정변 음모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시진핑의 길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야심가 보시라이, 저우융캉, 링지화, 쉬차이허우 4인방이 손잡고 공산당 지도부의 공식 결정을 뒤집어, 시진핑을 끌어내리고 보시라이를 최고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것은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렸다. 저우융캉은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공안·정보·사법·무장경찰 기구를 관할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무장경찰 병력 일부를 움직였다는 소식이 있었다. 쉬차이허우는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링지화는 후진타오 주석의 비서실장 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권한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권력을 분점해 한 명이 야심을 품으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집단지도 체제의 부작용과 불안정을 경고하며 최고지도자인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서 공산당이 직면한 위기를 헤쳐가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275-6)


"2020년부터 중국에선 '네이쥐안內卷'(involution)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원래 중국 근대 역사에서 아무리 노동력을 투입해도 1인당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상태, 노동량을 무한 투입해도 생산성이나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상태를 설명하는 학술 용어다.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노동)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치솟는 집값과 불평등에 절망하는 젊은 세대에게 네이쥐안은 절박한 현실의 화두가 되고 있다. 충칭 모델과 이를 활용한 시진핑식 통치는 기득권층의 부를 줄여 보통 사람들의 몫을 늘리는 근본적인 개혁 대신, 대중의 불만과 분노, 강력한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결합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Make China Great Again)을 외치고, 트럼프는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쳤던 것은, 두 제국의 포퓰리즘이 충돌하는 기묘한 광경이었다."(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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