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미래 - 새로운 불안에 맞서다
폴 콜리어 지음, 김홍식 옮김 / 까치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부 위기


1장 새로운 불안


"지리적인 위치, 곧 대도시와 지방 간의 불평등 확대가 불만이 일어나는 새로운 차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활발한 대도시 안에서도 이처럼 대단한 경제적 성취는 심하게 치우쳐 있다. 새롭게 성공을 구가하는 사람들은 자본가도 평범한 노동자도 아니다. 그들은 잘 교육받은 고학력자들로, 새로운 숙련 기능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학이 주관하는 회합에서 서로 만나고 능력으로 존중받는 새로운 정체성을 육성하여 그들끼리 공유하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했다. 그들은 심지어 소수 민족이나 성적(性的) 지향과 같은 특징들을 피해자라는 집단 정체성으로 치켜세우는 독특한 윤리 규범도 만들어냈다. 피해자 집단들을 배려하는 그들의 남다른 관심사를 바탕으로 그들은 교육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지배 계급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이 고학력자들은 정부는 물론 그들 서로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신뢰한다."(12-3)


"공리주의, 롤스주의, 자유 지상주의는 모두 개인을 강조했지, 공동체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리주의 경제학자들과 롤스주의 법률가들은 모두 집단 간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전자는 소득을 기준으로, 후자는 불리한 처지를 기준으로 차이점을 부각했다. 두 이데올로기는 모두 사회민주주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두 이데올로기 모두 정상적인 윤리적 본능인 호혜와 응분(이를테면, 공정한 상벌)을 무시한 채, (서로 다르기는 해도) 가장 현명한 전위대가 강요하는 단 하나의 이성적 원리를 치켜세운다." "좌파와 우파의 새 이데올로기들은 서로 정면 대치하는 양상으로 등장했지만, 개인에 강조점을 두고 능력주의를 애호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둘의 대결은 윤리성의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엘리트와 생산성의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엘리트의 경쟁이었다. 좌파 쪽 슈퍼스타들은 아주 좋은 사람들이 되었고, 우파 쪽 슈퍼스타들은 아주 부자가 되었다."(29-31)


"우파가 새로 동원한 자유 지상주의는 생각 외로 큰 피해를 유발한 데다가 효율까지 떨어뜨렸음이 입증되었다. 그 덕분에 좌파가 다시 권좌로 복귀했지만, 그들은 공동체주의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번창하는 대도시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국가를 경영했으며, 그들이 가장 절박한 처지의 집단이라고 판단한 이른바 〈피해자들〉을 지원할 표적으로 정했다. 새로운 불안은 그러한 〈피해자〉의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그럼에도 더 인기를 누리는 피해자 집단보다 실은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처지가 더 악화되고 있던─사람들을 타격하고 있었다. 〈피해자〉라는 지위에 따라다니는 부수적인 특권은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개 피해자의 지위는 백인 노동 계급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명백히 모두 평등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한 사람들이 존재한다."(33-4)


제2부 윤리의 회복


2장 윤리의 토대: 이기적 유전자에서 윤리적 집단으로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경제적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정육업자와 제빵업자들 단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으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윤리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로 생각했다. 컴퓨터는 경제적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때에 합리적 이기심의 공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육업자와 제빵업자의 행동을 예측할 때에 우리 자신이 그들의 처지에 놓이는 상황을 상상한다. 이것은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알려져 있다. 스미스는 우리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배려하고 동시에 그의 윤리적 인격을 가늠하게 된다고 인식했다. 스미스는 이렇게 공감하고 판단하는 감정이야말로 윤리성의 토대이며,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의무' 사이에 쐐기를 박는 경계가 생긴다고 보았다. 윤리성은 우리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성에서 나오지 않는다."(50)


"가장 강력한 의무는 친밀함에서 나온다. 이러한 의무는 우리의 아이들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느끼는 가장 포괄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인데, 우리가 아는 사람들로도 확장된다. 가장 약한 의무는 어려운 처지에 처한 먼 관계의 사람들에 대해서 느끼는 '구조의 도리'이다." "친밀함과 구조의 도리 사이에 스미스가 같은 책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수치나 존중과 같은 감정인데, 이러한 감정들이 유발하는 온화한 압력 덕분에 우리는 의무를 교환한다. 즉, 〈당신이 도와주면 나도 도우리다〉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서로 의무를 주고받는다. 그에 필요한 신뢰를 뒷받침하는 것은 위반할 의욕을 억제하는 감정들이다. 사람들은 왜 그러한 감정을 느낄까? 그 답은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말이 '사회적 인간(social man)'이라는 데에 있다." "사회적 인간은 합리적이다. 그 역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효용을 소비에서뿐만 아니라 존중에서도 얻는다."(50-1)


"이야기가 수행하는 세 가지 기능─즉 소속과 규범 그리고 인과(관계를 형성하는)─은 상호 보완적으로 조합되고, 그 결과 서로 얽히고설키는 호혜적 의무들의 관계망을 만든다. 규범에 관한 이야기는 공정과 의리의 가치를 불어넣어서 우리가 왜 호혜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가를 일러준다. 소속감의 공유에 관한 이야기는 호혜적 의무에 누가 참여하는가를 일러준다.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하는 호혜성은 당연히 그 의무를 수용하는 사람들로 정의되는 집단 내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인과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수행해야 할 행동이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가를 일러준다. 이 이야기들이 합쳐져서 '신념 체계'를 형성하여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신념 체계는 무질서의 지옥을 공동체로 바꾸어놓고, 〈역겹고, 잔인하고, 단명한〉 삶을 〈만개하는〉 삶으로 바꾸어놓는다. 이야기는 현생 인류를 구분하는 독특한 특징이다. 우리는 그저 유인원이 아니다."(62-3)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하기 마련인데다가 개인의 선택으로 형성되는 인터넷상의 네트워크 집단은 순식간에 온라인 〈반향실(echo chamber)〉로 진화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네트워크 안에서 누가 말하면 다른 누가 맞장구치는 메아리만을 듣는다. 이야기들은 우리의 신념을 형성하는데, 이 반향실들이 바로 그 프로세스를 작동시킨다. 이것이 갈수록 더 생활하는 장소의 공유와 단절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적 단위(즉, 정치체)들은 여전히 우리가 생활하는 장소로 정의된다. 선거에서 우리가 행사하는 투표는 장소별로 집계되고, 우리의 정치 과정에서 생겨나는 공공 서비스와 정책도 장소별로 시행되고 전달된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규범이 크게 달라지는 사태가 서로 장소가 다른 정치체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의 디지털 연결성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규범이 크게 달라지는 사태가 정치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70)


"조직의 지휘부가 자신의 네트워크에 이야기를 활용한 아주 최근의 모범적인 사례가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이다." "소속감을 창출하는 ISIS의 이야기들은 정체성이 서로 다른 청년들을 〈믿는 자들(The Faithful)〉이라는 단 하나의 새로운 공동 정체성으로 바꿔놓았다. 호혜적 의무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는 동료 존중의 압력으로 그들을 얽어매서 무자비한 행동으로 몰고 갔다. 새로운 진술들의 이야기로 퍼져나가며 그들의 험악한 행동을 〈칼리프 국가〉라는 중요한 목적과 연결했다. ISIS는 이 인과적 의미를 구축하여 구성원들의 준수에 목적을 부여했다." "하나의 신념체계로서 ISIS는 내적인 정합이 탄탄하고, 따라서 안정적이다. 그 신념 체계의 각 항목을 따로따로 보면 그 하나하나가 대단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들의 집단과 그밖의 모든 사람을 갈라놓지만, 그로 말미암은 그들 집단의 정체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ISIS는 사회를 12세기로 돌려놓기 위해서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76-7)


3장 윤리적 국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한 대공황 탈출은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소속과 상호 의무의 이야기들을 매개로 이루어진 막대한 공동의 노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를 커다란 공동체, 즉 정체성을 공유하고 의무와 호혜성을 수용하는 의식이 탄탄한 사회로 바꿔놓는 커다란 유산이 생겼다." "(이 덕분에 국가의 역할을 크게 확장했던) 사회민주주의의 붕괴는 이중의 악재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호혜적 의무가 야금야금 무너지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구조의 변화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니 호혜적 의무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 절실해진 것이다. 이 기간의 극적인 경제 성장에 동반된 대가는 복잡성이 대단히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복잡성의 증대는 더 전문적인 숙련 기능을 요구했고, 그로 인해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필요해졌다. 이것이 전례가 없을 만큼 고등 교육의 팽창을 촉진했다. 이 육중한 구조 변화의 물결이 사람들과 사회의 정체성에 충격을 초래했다."(88-9)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상황을 보면, 임금 불평등은 소소하고 나라의 위세와 품위도 높다. 그래서 최상위 고임금 노동자들조차 존중에서 얻는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으뜸 정체성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복잡성이 증폭됨에 따라서 특출난 교육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특출날 일자리를 얻으며, 높은 생산성에 상응하는 특출난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고숙련 집단의 최상층은 그들의 으뜸 정체성을 나라에서 그들의 숙련 기능으로 바꾼다." "이제 고숙련 집단이 국민 정체성에서 이탈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출발점에서보다 존중을 더 많이 획득한다. 반면에 국민 정체성을 으뜸 정체성으로 고수한 저숙련 집단은 존중을 상실한다. 가장 많이 존중받는 사람들이 국민 정체성을 으뜸으로 선택하는 집단에서 이탈한 탓에 이 집단에 소속함으로써 얻는 존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92-3)


"국민정체성이 인기를 잃으면서 가치를 중시하는 정체성의 세가 강해졌는데, 그 결과는 추악하다. 이른바 〈반향실〉 현상에 동반하여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기가 대단히 쉬워졌고, 그 덕분에 가치 중심 정체성의 세가 더욱 강해졌다. 이 가치 기반의 반향실들은 사회의 결속을 회복하는 길이 되기는커녕 구미권 사회를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결국 가치가 민족이나 종교와 다를 바 없이 공유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다면, 그밖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장소에 대한 소속감이다." "2장에서 보았듯이,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소속된 장소를 단지 현 상태의 순간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지금이 모습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겪어온 겹겹의 변화를 이해할수록 장소에 대한 애착은 깊어진다. 이 기억은 그곳에서 성장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지식이고, 그곳 사람들의 공통 정체성을 보강해준다."(114-7)


"소속감을 공유하는 심리적 토대는 장소이지만, 이를 목적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완할 수 있다. 나라는 공공정책의 거반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단위인 만큼, 나라 차원의 공공정책을 통해서 추구하는 공통의 목적에서도 우리의 공유 정체성이 생긴다. 그러한 목적이 호혜적인 행복 증진의 행동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목적의식적인 행동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면 어떻게 우리 모두의 후생이 점차 향상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서로에 대한 의무의 이행이 전제하는 바는 당연히 그러한 호혜성의 영역을 정의하는 공유 정체성의 수용이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적대적인 정체성을 가지도록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그러한 정체성들은 사회에 독소로 작용한다. 서로 적대적인 이해관계의 이야기들은 따로따로 보면 모두 옳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이 자꾸 누적되면 사회를 좀먹는 폐해가 너무 커져서 집단적인 행복을 퇴보시킨다."(119-20)


4장 윤리적 기업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내놓은 사람들에게 기업의 소유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의 원리는 위험을 떠안은 사람들이 기업을 통제할 필요를 가장 절실히 느낄 뿐만 아니라 경영자들을 꼼꼼이 따져볼 동기도 가장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갈수록 더 심하게 괴리되었다." "현대의 공급망에서는 기업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의존하기 때문에 한 회사가 파산하면 바이러스처럼 그 충격이 세계 경제 곳곳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의 장기적인 성과를 중시할 동기가 있는 사람에게 설명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경영의 오류를 포착할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식 소유가 고도로 분산된 상황에서는 무임승차의 문제가 생긴다. 이는 산산이 흩어진 주주들 가운데 아무도 경영진의 장기 전략이 과연 훌륭한지 들여다보려는 동기가 별로 없다는 문제이다."(131-2)


"그동안 최고 경영자의 보수가 갈수록 단기 성과 지표에 더 긴밀하게 연동되는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기업의 보상 위원회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집단이다. 그러한 집단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그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점차 신념 체계를 형성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는 국민 정체성이 갈라지면서 숙련 기능 중심의 정체성들로 분열되었다. 이 커다란 과정의 축소판 중 하나가 최고 경영자의 동료 집단이 자사의 노동자들로부터 다른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로 바뀐 것이다." "〈그는 500만 달러를 버는데, 나는 고작 400만 달러밖에 벌지 못한다. 이건 공정하지 않다.〉 이러한 인식의 핵심에는 탐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최고 경영자들의 다수는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의욕이 넘치는 일 중독자들이다. 그 핵심은 정체성이 새롭게 정의됨에 따라서 그것에서 비롯되는 동료 존중의 근원도 달라졌다는 것이다."(134-5)


"(통상적으로 주주가 아닌) 장기근속 피고용자들과 고객들은 회사 이사회에 대표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집단 중 어느 쪽이든 그들을 이사회에 대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가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한 회사를 〈상호 회사(mutuals)〉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이러한 구조를 갖춘 회사들이 많았지만, 이 구조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단 하나의 유혹이 있었다. 그것은 현재 시점에서 소유와 통제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회사의 존재 형태를 바꿀 법적인 권한을 누린다는 점이다. 즉, 그 권한으로 그들의 회사를 상호 회사로부터 소유주들이 금융 시장에서 회사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 상장 회사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회사의 형태를 그렇게 바꾸면, 현 세대의 〈소유주들〉은 미래의 수익을 모두 포괄하는 회사의 자본 가치를 통째로 획득한다. 따라서 앞으로 등장할 모든 후속 세대의 참여자들은 그로 인해서 소유와 통제권을 물려받을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다."(143-4)


"호혜적 의무를 이행하는 기업 행동의 재구축은 정부가 이룩해야 할 막대한 공공재요, 공익이다. 우리는 최소 임계 규모에 도달하는 '윤리적 시민들'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 시민들은 기업의 목적을 이행하고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러한 목적이 함축하는 규범을 인정하면서 존중과 불신의 두 가지 압력을 통해서 기업이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고무한다." "돌이켜보면, 1945-1970년 시기에 서구 대다수 정부의 정치 지도자들은 새로운 호혜적 의무를 많이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기억할 것으로, 그 시절의 최고 경영자들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던 급여의 20배 만을 자기 급여로 챙겼다. 지금의 최고 경영자들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급여의 231배를 자기 급여로 챙긴다. 윤리적 기업은 사라지고 흡혈 오징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대는 계속 변해왔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162-5)


5장 윤리적 가족


"1945년의 윤리적 가족에서 중간 세대를 이루는 부부는 그들의 위아래로 부모와 아이들 두 세대를 돌보는 일을 호헤적인 의무로 수용했다. 이는 보통 상당히 큰 부담을 뜻했지만, 누구나 세 세대를 다 거치게 되므로 그것을 당면한 시기에 책임으로 수용해야 할 의무로 생각했다. 그러한 구조는 대단히 안정적인 신념 체계였다." "이제 대다수 고학력 가정에서는 예전의 이 규범이 부부가 개인적 성취를 통한 자아실현을 서로 격려해주는 새로운 규범으로 바뀌었다. 동거와 동류 교배(또는 동질혼) 덕분에 고학력자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부부로 자리를 잡아갔고, 그 덕분에 그들의 이혼율은 낮아졌다. 성취도가 높은 부모들은 자신의 성공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예전의 양성 간 교육 불균등을 반영했던 성별 위계질서는 사라지고, 고학력층 부모 양쪽이 합세하여 자식의 조기 영재 교육에 달려드는 조류가 나타났다."(168-71)


"한편 경제적인 이유로 주로 하류층을 타격한 가족 해체 문제에 대처하고자 나선 가부장적 국가는 윤리적 가족이 뒷받침하던 아이들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어린이의 권리〉라는 명분으로 개입했다." "〈어린이의 권리〉를 위한 국가의 의무는 아이가 학대받고 있다고 볼 근거가 있으면 오히려 아이를 친부모로부터 격리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결과는 격리는 되었지만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상태(limbo)〉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상태〉의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 양육은 육아에 필요한 중요한 기준에서 모두 실패한다. 그처럼 아이와 맺어지는 관계는 상거래와 유사한 반면, 아이들에게는 분명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한 관계는 임시적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데에 반해, 아이들에게는 영구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더욱이 그러한 관계는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한다."(176-8)


"학력 수준이 낮은 인구층에서는 많은 가정이 빈 껍데기로 해체되고 있는 반면, 학력 수준이 높은 인구층에서는 왕조 가족이 번창하고 있다. 새로운 영재 교육 모형을 도입한 고학력자 가정에서는 부모가 양육에 들이는 공이 극적으로 늘어났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고학력자의 아이들은 부모가 분명한 목적의식하에 조성하는 집약적인 상호 작용의 혜택을 누린다." "로버트 퍼트넘은 인지 능력별로 아이들의 집단을 분류해서 대학교에 입학할 승산을 분석했다. 당연히 부모의 높은 인지 능력을 물려받을 공산이 큰 고학력 계급의 아이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승산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퍼트넘은 인지 능력이 미국에서 '최하위 집단에 속하는' 고학력 계급 아이들의 대학 입학 승산이 인지 능력이 미국에서 '최상위 집단에 속하는' 저학력 계급 아이들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 자리잡은 조기 영재 교육은 전리품 아이뿐 아니라 〈위장된 바보〉도 길러낸다."(179-81)


6장 윤리적 세계


# 윤리적 세계의 핵심 원리

1. 호혜성과는 무관하게 다른 사회에 대한 의무를 인정한다. 이것은 구조의 도리에 해당하고, 난민, 대규모의 절망, 기초적인 사법질서를 결여한 사회에 대한 의무를 포함한다. (국제난민기구UNHCR,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

2. 더 많이 공헌하고자 하는 나라들은 그들끼리 더 광범위한 호혜적 의무를 건설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3. 이렇게 건설되는 호혜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한 집단에 공동으로 소속한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목적을 의식하는 공동 행동을 통해서 각 참여자의 승화된 이기심을 고무한다.


제3장 포용적 사회의 회복


7장 지리적 분단: 번영하는 대도시, 망가진 도시


"전문화가 극도로 심화되면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가까이 있어야만 생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전문화가 심화될수록 서로 보완적인 전문가들이 밀집하는 더 커다란 군집체가 필요해지고, 그만큼 잠재적인 고객들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갖가지 전문 인력이 군집을 이루려면 뛰어난 연결성을 제공하는 대도시가 필요하다." "국제무역의 장벽이 제거됨에 따라서 잠재적 시장이 국내 시장에서 세계 시장에서 확대되었고, 그로 인해서 고도로 전문화된 인력의 군집 형성으로 얻는 이득이 한층 더 커졌다. 런던에 군집한 서비스들의 주된 시장은 예전에는 영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이다." "따라서 대단한 고소득자들이 많이 상주하면서 이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서비스 시장이 생긴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서비스들이 생겨서 군집을 형성하므로 세계의 갑부들이 몰려드는 새로운 유입이 일어난다. 이것이 번영하는 대도시이다!"(215-6)


한편 1960년대의 셰필드처럼, 기업 군집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도시들은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노동 생산성과 임금 경쟁력이 우월한 타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도시 기반이 급속도로 무너져내렸다. "이런 도시들에 남은 경제 활동은 국지적 권역의 창고라든가, 부동산 비용이 아주 저렴한 조건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저생산성 제조업, 아니면 저렴한 부동산과 저임금, 비정규 노동에 의존하는 콜센터이다. 도시가 그러한 활동들로 채워짐에 따라서 부동산 가격과 임금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내 더 발전할 여지가 없는 막다른 길에 가로막힌다. 이러한 활동들은 숙련도가 낮고, 따라서 그 노동력은 복잡한 전문화에 의한 지속적인 생산성의 상승에 더는 참여하지 못한다. 대도시에 있는 슈퍼스타급 기업들은 계속 테크놀로지의 최전방을 달리고, 따라서 대도시 인구는 소득이 계속 상승하는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대도시의 테크놀로지와 소득은 망가진 도시로는 흘러내리지 않는다."(218-9)


"집적 이득에 대한 과세는 윤리성과 효율성, 두 가지 근거 모두에서 영리한 정책이다." "윤리성 측면에서 보면 소득(집적의 이득)과 응분(공과 분별) 사이의 괴리를 개선하는 방안이며,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근로 소득으로 포장된) 경제적 지대 추구를 억제하는 방안이다." "집적 이득은 토지주와 고숙련 도시 노동자들에게 나뉘어 돌아간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합당한 출발점은 토지와 건물(토지에 부착된 지상의 모든 정착물 재산)의 가치 상승을 과세 대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의 가치와 건물의 가치에 대하여 일정 백분율의 세금을 해마다 부과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도시의 고숙련 집단이 획득하는 집적의 지대를 과세 표적으로 잡는 대도시 가산세가 따라붙는다. 고숙련자 중에서도 최상위 집단에게 돌아가는 집적의 이득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가산세는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누진적으로 높아져야 한다."(238-42)


"대도시에 과세하는 목적은 망가진 도시의 주민들을 위한 복지 급여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들을 생산적인 노동의 군집체로 복원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어느 군집체가 해체되면 시장은 그것을 새로운 군집체로 바꿔놓지 않는다. 그 대신, 도시는 점차 생산성이 낮은 활동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시장의 작용은 왜 새 군집체를 창출하지 못할까?" "우선 다른 기업이 따라붙지 않으면 개척 기업은 파산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다른 기업들이 따라붙더라도 개척자는 나중에 진입하는 기업들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인다. 개척 기업은 필요한 숙련 노동자를 구하려고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을 개연성이 낮다." "따라서 개척 기업은 다른 곳에서 숙련 노동자들을 데려와서 그들을 통해서 그 지역의 피고용자들을 점차 훈련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후발 기업은 필요한 숙련 노동자를 채용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달리 말해서, 군집의 개척자는 이른바 선발주자의 불리에 직면한다."(243-9)


# '선발주자의 불리'를 보완하는 공공 대책

1. 군집체 구축에 투자하는 개발은행 제도 활용

2. 사회간접자본을 마련해주는 기업 단지 조성

3. 투자 유치에 적합한 산업들을 연구하는 투자진흥청 설립

4. 지식 군집을 마련할 지역 대학교와 전문 대학 지원


8장 계급 분단: 모든 것을 누리는 가정과 해체되는 가정


"앨리슨 올프 남작은 〈지금까지 알려진 인간 사회들 가운데 아무런 질서도 없는 난장판 성생활을 운영한 사회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와 반대로 모든 형태의 인간 사회는 두루 존중받는 결혼제도를 두었다······세월이 흐르며 사회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계속 유지된 규칙은 아이의 아버지가 그 아이의 어머니와 결혼하게끔 강제하려고 설계된 것들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규칙을 두어야 할 근거는 충분하다." "텔로미어는 DNA 맨 끝에서 보호 역할을 하는 뚜껑인데, 그것의 길이가 짧을수록 세포가 손상을 더 많이 입고 건강도 나빠진다. 어머니가 불안정한 부부관계에 있으면, 그 어머니의 아이는 9세이 이를 시점에 텔로미어의 길이가 40퍼센트 짧아졌다. 이 파괴 작용이 얼마나 큰지 이해하기 위해서 가족 소득의 두 배 향상이 아이의 텔로미어 길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자. 고작 5퍼센트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활 참여가 결핍됨에 따른 피해는 다른 보상 요인으로 상쇄될 수 없을 만큼 크다."(260-1)


# 사회적 모성주의 접근법

1. 취학전 아동 돌봄 서비스 : 육아에 필요한 직접 자금 지원, 실업 충격을 완화해줄 취업 보조, 10대 부모의 정신건강 관리, 은퇴자를 활용한 돌봄 서비스 등

2. 학교 생활 지원책 : 학생간의 사회적 혼합을 높여 계층화 현상 완화, 신뢰할 만한 조언자 그룹이 열악한 사회 관계망을 보완, 학위보다 숙련 기능 육성 등

3. 장기적 안정성 : 노동자들이 미래 소득을 감안하여 사회적 책무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 안정성 확대, 애착과 소속감을 안겨주는 사회적 자본 확대 등

4. 사회적 불평등 억제 : 주거 수요보다 자본 소득에 민감한 주택 가격, 고소득 창출에만 초점을 맞춘 일자리(혁신적 재능의 낭비), 제로섬경쟁 제도 제한 등


"노동은 삶의 중추를 이루는 시기에 사람들에게 목적을 부여해야 한다. 지금, 형편이 좋은 사람들 중에는 노동에서 목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얻을 기회가 너무 적은 직무에서 일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일에서 자부심을 얻을 만한 숙련 기능이 불충분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내면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단지 급여 봉투의 격차가 아니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실패이다." "사회적 가부장주의에서는 고집스럽게 엇나가는 가정들을 국가가 감시하고 규율하지만, 사회적 모성주의에서는 국가가 실용적인 지원을 통해서 그러한 가정이 겪는 충격을 덜어준다."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 살든 자존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건설하려면, 그러한 접근이 상류층과 하류층 둘 다에 대해서 필요할 것이다."(319-20)


9장 세계적 분단: 승자와 뒤처진 자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무역은 상호 이득을 가져오기 때문에 각 사회 내부의 '재분배를 통해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의 형편이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전문가 집단으로서 우리 경제학자들은 이 올바른 진술을 명백히 잘못된 진술, 즉 사회 내의 모든 사람의 형편이 '나아진다'고 스리슬쩍 바꿔버렸다. 게다가 무역을 다루는 국제 경제학은 지금껏 사회 내부의 보상 메커니즘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무관심은 단순한 모형들이 무시하는 두 가지 특징적인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하나는 무역에 따르는 손실이 대개 노동 시장을 통해서 파급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손실이 지리적으로 집중된다는 것이다. 셰필드가 흥성했던 철강 산업을 상실했을 때, 셰필드 실업자들의 소비 위축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영국의 다른 곳에서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별 위안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322-3)


"무역과 노동자의 국제적 이동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무역은 '비교우위'를 동력으로 작동하지만, 노동의 이동은 '절대우위'를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물론 표준 교과서에 등장하는 가정들을 전제할 때에는 이민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절대우위로 작동하는 이민이 이민자 유입국이나 유출국 모두에 이롭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이민에서 분명한 이득을 누리는 유일한 주체는 이민자들이다." "이민으로 집적의 지대가 늘어나면 대도시의 고숙련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내국인 시민들은 이득을 보지만, 대도시의 고숙련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시민들은 이민자들이 유입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취득했을 지대를 상실할 것이다." "또다른 양상으로 이민이 초래하는 비용이 있다. 그것은 사회에 계속 축적되어온 호혜적 의무를 이민이 보통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은 그 사회의 공유 정체성과 호혜적 의무, 승화된 이기심의 이야기들을 알지 못한다."(327-31)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하면, 시장과 이기심이 주도하는 사적인 결정으로 유발되는 이민의 유입량이 사회적으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이민자 본인뿐 아니라 이민 유입국과 유출국 모두에 이롭게 작용할 이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민 문제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 좌파는 시장이 주도하는 프로세스에 본능적으로 회의적인데도 예외적으로 이민에는 찬성한다. 반면에 시장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열광하는 우파가 예외적으로 이민에는 반대한다. 실용주의와 실용적 추론은 이데올로기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고려한다. 즉, 어느 정도 규모의 이민이 사회에 이로울 것인가를 물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일 것인가도 묻는다." "이민으로 손해를 보는 집단에게는 그 손실에 상응하는 보상을 공공정책이 마련해야 한다. 또한 쉽게 보상할 방법이 없는 재분배를 유발하는 요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공공정책이 억제해야 한다."(332-3)


제4부 포용적 정책의 부활


10장 극단을 파괴하기


"실용주의의 적(敵)은 (사회민주주의가 무너진 정치적 공백을 메운) 이데올로기와 대중 영합주의 두 가지인데, 그 각각이 자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좌우파의 이데올로기 모두 어떤 목적에라도 이용할 수 있는 만능의 분석을 활용함으로써 상황의 맥락, 신중한 접근, 실용적 추론을 전부 건너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만능의 분석으로부터 상황과 시대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타당한 진실이 술술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대중 영합주의는 다른 방식으로 건너뛰는 우회로를 제시한다. 그것은 금세 손에 잡힐 만큼 명백한 해결책을 훤히 알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다. 이데올로기와 대중 영합주의가 합쳐질 때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효과는 더욱 강력해진다. 한때 신뢰를 잃은 이데올로기들이 새로운 매혹적인 해결책을 팔러 다니는 열정적인 지도자들을 만나서 새롭게 단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들에게 환호하는 함성이 인다."(338-9)


"공리주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소비로부터 효용을 창출하고, 총효용 합산의 거창한 윤리적 산술에 동등하게 포함되는 독자적인 개인이라고 이해하지만, 이와 달리 현실의 사회를 형성하는 원자는 사람들끼리 맺는 인간관계이다. 사회적 가부장주의는 사이코패스와 다름없는 경제적 인간의 이기심을 플라톤적 수호자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간주하지만, 이와 달리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인간관계가 의무를 낳는다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삶의 목적의식에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플라톤적 수호자와 경제적 인간을 짝짓는 결합이 그동안 공공정책을 장악했고, 그로 말미암은 불가항력의 독소 작용이 사람들에게서 윤리적 책임을 걷어내버렸다. 덩달아, 의무는 가부장적 국가로 넘어갔다. 이를 중세 종교에 빗댄 괴상한 풍자극으로 나타내면, 평범한 사람들은 죄인 역을 맡아서 특출난 사람들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351)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가가 획득한 책임은 국가의 능력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업과 가족만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의무감이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가부장적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마련해주는 온갖 장치보다 월등하다. 그리고 훌륭한 기업은 피고용자들에 대한 의무감이 노사관계의 장기적인 호혜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가부장적 국가가 마련해주는 온갖 훈련 프로그램들보다 월등하다. 국가가 수행할 역할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가정과 기업의 의무가 본연의 그 자리에서 이행되도록 복원해주는 정책의 정책(meta-policy)을 고안하는 것이다." "소속감의 공유로 실현되는 호혜적 의무를 촘촘하게 일구어가면 더 신뢰받고 따라서 더 효과적인 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 "자발적으로 실현되는 호혜성은 공리주의적 가부장주의가 성취한 것보다 더 행복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351-3)


"앞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사람들이 정체성을 공유하면 아주 멀리까지 내다보는 호혜성의 토대가 갖춰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 체계를 잘 구축하는 사회는 개인주의나 복고판 이데올로기들을 중시하는 사회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개인주의적 사회는 공공재라는 광대한 잠재력을 포기한다. 복고판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사회의 다른 일부에 대한 증오를 저변에 깔고 있어서 갈등으로 치닫는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는 사람들이 호혜적 의무의 관계망을 수용하도록 길러진다. 삶이 잘 풀리는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와준다. 성공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의무에 부응하는 이유는 의무의 이행에서 생기는 자존감과 동료 존중으로 보상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소수에 대해서는 좀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도 합당하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가 길잡이로 삼아야 할 윤리적 실용주의이다."(35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