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 인간의 권리를 탐하는 거대 기업의 음모
톰 하트만 지음, 이시은 옮김 / 어마마마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서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싸움


"미국의 헌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 관습법에 기반을 둔다. 관습법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여러분이나 나와 같은 '자연인natural person'과 정부, 교회, 기업을 포함한 '법인artificial person'이 그것이다. '법인'이란 범주가 따로 있었던 것은 정부, 교회(및 기타 비영리단체)와 영리기업에 법과 과세 제도의 효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범주가 따로 없다면 이들 기관이 계약에 참여하거나 법적인 책임을 지거나 무엇보다 세금을 납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대부분의 법에서는 '자연인'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정부, 교회, 기업에만 해당하는 법에서는 각각의 명칭이나 '법인'으로 통칭하여 해당 범주를 특정하곤 했다. 그러나 수정헌법 제14조에서는 '인간'이란 용어를 사용할 뿐 '자연인'인지 '법인'인지를 명시해놓지 않았다. 기업 변호사들이 이 점을 꼬투리 잡아 단순한 사업 조직 방식에 불과하던 기업을 오늘날과 같은 초국가적 초인으로 탈바꿈시켰다."(17-8)


#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 

미국에서 출생 또는 귀화한 인간, 미국의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인간은 미국 및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떠한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인간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인간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 1886년 5월, 〈산타클라라 카운티 대 서던퍼시픽철도 사건〉을 다루는 연방대법원 심리에서 철도회사의 변호인들이 제기한 주장


# '법인'이라는 용어 사용은 16세기 영국에서 동인도회사의 변호인들이 그 회사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어떠한 인간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시작하는 영국의 형법에 따라 유죄를 선고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에 대응하여 입법부는 기업을 '법인'으로 규정하는 법령을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법인'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입법부가 기업을 규제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론 기업이 인간과 공유하는 바가 있음을 인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세금을 내고, 법에 따르며,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식으로 말이다. 147)


"사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 그 자체가 권리장전이라는 해밀턴의 의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로지 인간만이 선천적으로 권리를 가진다는 데 전혀 이견이 없었다. 정부부터 교회와 회사에 이르는, 인간이 만든 모든 기관은 권리 대신 특권(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지정된 특정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적 권리)을 갖고, 이것은 권리가 있는 인간을 대표하는 정부가 기업에 명시적으로 부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점차, 특히 19세기 초반의 〈다트머스 대학 이사회 대 우드워드 사건〉 판결 이래로 기업에 인권과 유사한 특권을 부여해왔다. 그리고 1886년을 기점으로 기업에도 권리장전을 명시적으로 적용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정부의 어떤 산하기관도 지금껏 기업의 법인격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국민도 기업의 그 권리에 대해 투표한 적이 없고, 어떤 입법부에서도 그 권리를 법으로 제정한 적이 없으며, 어떤 연방대법원 판결도 지금껏 그 권리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적이 없다."(22-3)


part 1: 기업의 점령


"1886년 5월 10일, 웨이트 연방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본 법정에서는 수정헌법 제14조의, 어떠한 주도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인간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이런 법인에도 적용되는지 여부에 관한 변론은 청취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 조항이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이 사건 조서에 법원 서기는 이렇게 적었다. 〈주는 관할권 내의 어떠한 인간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1항의 취지에 따라, 이번 소송의 피고인 기업도 인간이다.〉 이 진술은 법정의 공식 판결이 아니라 단지 법원 서기가 연방대법원장의 말이라며 기록해놓은 내용에 불과했다. 결국 기업이 자연인과 동등하고 법인이 아니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웨이트의 판결 이후부터 1910년까지 수정헌법 제14조와 연관된 연방대법원 사건 307건 중에서 288건이 자연인의 권리를 노리는 법인들이 제기한 소송이었다."(39-40)


"일단 물꼬가 트이자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 얻은 권리에 수반되는 새로운 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① 수정헌법 제1조. 기업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는 모든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며 정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정치인 및 정치인 후보에 대한 기업의 매수와 로비를 금지한 법들을 폐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② 수정헌법 제4조. 이전 법에서는 기업이 설립 인가를 받는 조건으로 미국 정부에 모든 기록과 시설을 공개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수정헌법 제4조의 사생활 보호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벌여 그런 법들을 폐지하는 데 성공했다. ③ 수정헌법 제14조.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 J.C. 페니는 플로리다 주에 맞서 수정헌법 제14조상의 평등한 보호를 요청한 소송에서 승리하여, 지역의 소규모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상점보다 외부 체인에 더 높은 사업 허가 수수료를 부과한 주 법률을 폐지시켰다."(67-8)


"남북전쟁 이후에 통과된 수정헌법 제14조는 모든 '인간'에게 정당한 법 절차를 보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조항의 초안이 작성되던 1866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수전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이 이 조항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때 처음으로 헌법이나 수정헌법에 '남성male'이란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제14조 초안은 2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는 모든 인간에게 정당한 법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원의원 할당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바로 이 두 번째 조항에 〈그러한 남성 주민의 수가 그 주의 남성 주민의 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란 문구가 들어 있었다." "기업은 인간으로서 완전한 법적 실체와 헌법상의 권리를 보유하지만, 여성은 오로지 남편을 통해서만 이런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가 명시적으로 '인간'이라고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71-3)


"연방대법원에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라 인간으로 인정해달라고 청원한 두 번째 집단은 이 조항이 본래 보호하려던 주요 대상인 해방 노예와 그들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1896년 〈플래시 대 퍼거슨 사건〉 판결에서 흑인 피가 '8분의 1' 이상 섞인 모든 사람은 '인간'인 백인과 대등하게 교류할 법적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헨리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대중교통수단에서 흑백 분리를 인정하거나 요구하는 이 법(짐 크로우법)이,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별도 학교를 요구하는 법이나 기타 그에 상응하면서도 합헌성 시비가 없는 주 법률에 비해 특별히 수정헌법 제14조에 더 위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 공보관 뱅크로프트 데이비스는 판결요지문에서, 이 사건이 〈승객 플래시가 철도회사의 담당 직원이 정해준, 그가 속한 인종이 타야 할 열차 칸에 타지 않고 다른 인종이 타는 열차 칸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발생했다고 요약했다."(73-4)


part 2: 민주주의의 탄생부터 기업 법인격의 탄생까지


"사업은 수익을 내기도 하고 본전치기를 하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만일 개인회사나 (한 명 혹은 몇 명이 소유한) 조합에서 자산 가치보다 더 많은 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소유주나 투자자는 개인적으로 채무를 책임져야 하고, 채무액은 본래 투자액을 크게 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액이 곧 '책임 한도'인 유한회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분이 10,000달러를 투자한 유한회사가 50,000달러의 부채를 지고 파산하면, 초기 투자액인 10,000달러는 손해 보더라도 나머지 40,000달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할까? 기업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나 환경이 파괴된 지역사회이다. 기업은 이들에게서 재화나 용역을 취하고, 비용도 지불하지 않은 채 청구서만 남기고 떠난다." "만약 기업이 파산을 선언하고 해산해버리면, 채권자는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어진다. 이것이 기업의 핵심적인 특징이다."(89)


"식민지 아메리카에는 월간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거대한 차 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 시장을 대부분 네덜란드 무역회사나 아메리카인 밀수업자들─동인도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영업하던 사략선 선원들─이 헐값으로 차를 공급하며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보스턴 차 사건의 발단이 된 차 조례를 단순히 식민지 아메리카인의 차 세금을 인상한 법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차 조례는 본래 영국이 동인도회사에 아메리카 차 시장에 대한 무제한적 지배권을 부여하고, 아메리카에 수출한 차에 대해 영국 세금을 면제해줄 요량으로 도입되었다. 심지어 이 회사에서 판매하지 못해 재고로 남은 수백만 파운드의 차에 대해서는 세금을 환급해줄 정도였다. 차 조례의 목적은 동인도회사가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익을 증대시키고, 식민지의 조무래기 경쟁자들을 일제히 문 닫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가뜩이나 동인도회사가 못마땅하여 독립을 원하던 식민지인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95)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은 당시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과세하는 법을 통과시킬 입법부를 직접 선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개했다고 생각한다. 〈대표 없는 과세〉가 그들이 내세운 구호였던 것이다. 휴이스에 의하면 이런 이유도 있었지만, 식민지 주민들을 정말로 화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영국이 오로지 초국적 동인도회사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미국 노동자와 소상인을 희생시키는 세법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 없는 과세〉란 일반 주민과 소상인에게는 과세를 늘려 타격을 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기업에는 세금을 면제해주었다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정부가 오직 한 기업을 후원하기 위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쳐준 셈이었다. 또한 식민지 주민들이 동인도회사와 영국 정부의 약탈에 거세게 저항할수록, (반동적이고 억압적으로 변해가던) 영국은 세금과 밀수금지법을 이용해 미국 소상인의 경쟁력을 사실상 원천 봉쇄했고, 1773년 차 조례는 그 결정타였다."(106-7)


"150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기업은 그 소유주와 설립 인가를 내준 주 의회의 인위적 창조물로 간주되었다. 기업은 주에서 인가를 받아야만 탄생하고 법에서 '법인'이라 지칭되는 인위적인 법적 실체였으므로 해당 주의 주민들, 즉 대의정부를 통해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들에게 통제받는 것이 당연했다. 미국의 공화민주주의에서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를 위협하는 국내외의 모든 포식자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기업 활동의 통제도 그런 역할에 포함되었다. 1886년까지 기업은 상당 부분 오늘날과 유사하게 운영되었으나, 지방·주·연방 입법부는 미국 거대 기업들이 성가시게 여기던 규제를 선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1815년에 매사추세츠 주 대법관 조지프 스토리는 〈테렛 대 테일러 사건〉 판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에 의해 탄생한 민간 기업은 주에서 부여한 독점사업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남용할 경우 그 권리를 상실할 수 있다.〉"(126-7)


"남북전쟁기에 (전쟁 물자 운송을 담당했던) 철도회사들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들로 부상했다. 링컨은 이들의 〈거대한 사업〉과 이들이 주와 연방의 규제에 반발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 갈등에 대해 언급했다." "철도회사의 입김이 점점 거세지면서, 법원과 의회는 이들의 사업에 거슬릴 만한 걸림돌을 하나둘씩 제거해나갔다. 의회는 1864년에 계약노동법을 통과시켜, 기업이 외국 노동자에게 미국으로의 이민과 뱃삯을 제공하는 대가로 1년간 저임금 또는 무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입법의 주된 취지와 효과는 노동력 풀을 확대하여 구직 경쟁을 가열시킴으로써 노동자 파업을 막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법원은 기업 간의 계약이 파기된 경우에는 파기당한 기업이라도 이미 제공받은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인간과 기업 간의 계약노동법상 계약이 파기된 경우에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그간의 노동에 대해 한 푼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143-4)


"1889년 12월 4일 오하이오 주의 상원의원 존 셔먼은 상원 법안 제1호로 '거래와 생산을 제한하는 트러스트 및 기업결합 불법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의 통과를 추진하면서, 셔먼은 국민이 〈이런 기업결합의 세력과 지배력을 인식하고 있고, 모든 입법부와 의회에 이런 폐단에 대한 시정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트러스트들은 정치인과 선거운동에 자금을 '기부'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공격에 대응했다. 이에 맞서 공화당 출신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6년 12월 3일 연두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모든 기업이 어떤 정당에도 선거자금을 기부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법을 권장합니다······. 개인은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기부하게 합시다. 그러나 기업은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도 직간접적으로 기부하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차단합시다.〉" "그 결과가 1907년의 틸만법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기업 자금이 선거운동에 투입되지 못하도록 막은 최초의 법이었다."(162-3)


"루스벨트는 셔먼법을 공격적으로 시행하여 대통령 임기 동안 40개 이상의 거대 기업을 해체함으로써, '트러스트버스터trustbuster'라는 찬사를 받아가며 이 법을 추진했다. 1909년부터 1913년까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트러스트를 33개 기업으로 분할하고 아메리카 토바코도 강제로 분리함으로써 전임 대통령의 치적을 이어갔다." "그러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취임하던 해에 기업들은 노동조합을 불법화하는 데 바로 이 셔먼법을 끌어들임으로써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공모하거나 독점을 형성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인간이 조합의 형태로 같은 행위를 하는 것 역시 불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과도한 기업 세력으로부터 일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의 정신을 거역하고 오히려 노동조합을 분쇄하는 데 셔먼법을 적용하자, 미국 의회는 1914년에 클레이튼 반독점법을 통과시켰으며,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설립을 명했다."(164)


"2000년 12월 12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기업 세력에 또 하나의 선물을 안겨주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관에는 또 하나의 못을 때려 박았다." "(부시 진영은 재검표를 막기 위해) 플로리다주가 각 카운티마다 서로 다른 투표 체계와 기준으로 유권자의 의사를 파악하고 있으므로 무엇보다 법 앞의 평등한 보호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4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마침 연방대법원의 공화당 5인방이 기다리던 바였다. 이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면 연방의 모든 주가 헌법을 위반하는 셈이 되어 당장 전국적인 선거 기준을 도입해야 하는 논리상의 부담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화당 5인방은 이 주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만 이것은 2000년 플로리다 주 대선의 '오직' 이 사건에만 적용될 뿐 판례를 구성하지는 '못한다'고 판결했다. 한술 더 떠서 공화당 5인방은 그들이 플로리다 주의 재검표를 중지시키지 못한다면, 조지 W. 부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것이므로 그렇게 판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205-6)


"2008년 예비선거 기간에 한 우익 단체는 힐러리 클린턴을 비방하는 90분 분량의 영상물을 제작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에서 TV 방송으로 내보내려 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한 소위 '다큐멘터리'의 광고가 사실상 '선거 광고'에 해당되므로 메케인-페인골드법의 선거비용 제한 규정에 저촉된다며 광고 방송을 제재했다. 그러자 이 우익 단체 시민연합은 우파의 해결사이자 레이건 행정부의 법무차관 출신인 시어도어 올슨─〈부시 대 고어 사건〉에서 부시 측을 변론했다─을 수석 변호사로 내세워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시작된 〈시민연합 대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사건〉은 대법원장 로버츠를 포함한 공화당 성향 대법관 5인이 다수를 점령한 연방대법원에 미국 정치사를 완전히 새로 쓸 절호의 기회─기업들의 무제한적인 선거 개입을 가로막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를 제공하였고, 결국 미국을 1907년 이전의 강도귀족 시대로 복귀시켰다."(222-3)


# 매케인-페인골드 법 : 2002년에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과 민주당 상원의원 러스 페인골드가 이전까지 액수, 경로, 사용처 등을 일체 규제받지 않던 정당 기부금(소프트머니)을 제한하여 선거자금과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공동 발의하고 그 해에 바로 통과시킨 법으로, 공식 명칭은 초당적 선거개혁법Bipartisan Campaign Reform Act(BCRA)이다. 222)


"2010년 1월 21일에 공화당 성향의 대법관 5인방이 또다시 승리를 거둔 5대4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정치인, 선거 진영, 당에 직접 기부되는 자금이 아닌 한, 의회나 대통령이 기업의 정치자금 지원 '권리'를 규제하는 어떤 법도 통과시키거나 서명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케네디는 〈정부 권력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수정헌법 제1조는 특정한 대상이나 관점에 불이익을 주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분명히 못 박는다. 〈법원은 이렇게 기업이나 다른 단체의 정치적 발언이 단지 그들이 '자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정헌법 제1조 하에서 다르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부인해왔다.〉 케네디는 기업과 그들의 동업자 단체가 1907년에 틸만법이 통과된 이래 100년 넘게 미국 의회로부터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는지를 개탄하면서, 로버츠의 이 법정이 이 판결로 보호하려고 애쓰던 〈불이익을 받는〉 기업 '인간'들을 옹호했다."(229-30)


part 3: 불평등한 결과


"수정헌법 제4조는 본래 정부요원의 가택 난입과 부당한 압수수색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기업들은 이 조항을 주로 정부기관의 규제를 피하는 데 이용해왔다. 연방대법원은 1967년과 1978년 사건에서, 기업도 인간으로서 부당한 수색에서 자유롭고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불시 점검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은 1886년 〈산타클라라 사건〉의 판례를 기초로 1906년에 기업에게 수정헌법 제4조의 사생활 보호의 권리를 부여했다. 셔먼법이 통과된 지 불과 16년 만이었다." "수정헌법 제5조는 무엇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당하거나 동일한 범행으로 재차 기소당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권력의 균형이 명백히 정부 쪽으로 기울어 있어 정부가 국민을 쉽게 처형할 수 있고, 또 실제 그러던 시기의 법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기업은 이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고도 여전히 정부의 범죄 수사를 회피하기 위해 법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251-2)


"규제에는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이면이 있다. 예컨대 〈수은을 10ppm 이상 배출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10ppm 미만의 배출은 합법화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단 1ppm만 배출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인근 주민, 다른 주, 심지어 연방 정부로부터의 소송을 각오했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이처럼 규제법은 본질적으로 기업 행위를 합법화하는 측면이 있다. 좋은 세상에서야 그래도 별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지금처럼 기업의 대리인들이 직접 법을 만드는 상황이라면 광범위한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공익을 해치는 행동도 규제를 통해 합법화된다. 레이건 정부 시절, 로버트 몽크스와 넬 미나우는 '규제 완화를 위한 대통령특별위원회'에서 일했다. 몽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업의 대리인들이 끊임없이 규제 완화보다 규제 강화를 추구하고, 그들의 법적 책임이나 경쟁이 줄어들 때는 특히 더 그렇다는 것을 발견했다.〉"(253-4)


"1800년대 후반의 '설립 인가 장사' 시대에는 여전히 많은 주에서 주주, 고위급 관리, 이사, 경영진에게 그들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기업의 행위와 파급효과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당시 기업이 주에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법은 주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이런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변호사협회가 모범회사법(MBCA)이라는 표준 기업규제법을 제안했다." "이 법은 기업 주주들에게 그들이 소유한 기업의 행위나 채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주주들은 법적 위험 없이, 오직 재무적 위험만 지고 투자할 수 있다. 투자액으로 기업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건, 악의적인 의사 결정으로 어떤 죽음을 초래하건 간에, 주주는 투자액 자체는 손해 볼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기업에 운영자금을 대는 사람들이 기업이 성공하면 그 수익을 나눠가지면서도 기업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칠 때는 아무 책임도 공유하지 않는 이 논리성에 의문을 제기한다."(261-2)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기 어린 킬러나 분노가 극에 달한 배우자의 손에 죽기보다는 기업 활동의 결과로 사망한다." "기업들은 인간의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로 거의 틀림없이 이득을 얻는다. 예를 들어 각종 발암물질이 포함된 플라스틱이나 농약을 판매하여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반면에 이런 죽음의 비용은 해당 제품의 단위원가로 반영되지 않으므로, 기업으로선 독성이 적거나 무해한 대체제를 개발하거나 더 비싸고 안전한 다른 원료를 사용할 경제적 유인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이익은 내재화하고 비용은 외부화하는〉 과정이다. 기업은 유독성 물질을 생산해 이익을 챙길 뿐, 아프거나 죽어가는 노동자의 생산성 감소나 의료비 명목으로 암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그런 가장 쉬운 방법 중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거나 유발하는 공장 또는 공정을 환경보호법과 노동법이 미비한 나라로 이전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외부성 처리 비용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낮추는 것이었다."(287-8)


# 그 외의 기업편향 조치들

1. 죄수를 고용하여 무보수에 가까운 노동시장을 창출한다.

2. 물이나 전기 같은 공공자원을 민영화하여 이윤을 창출한다.

3. 특허를 활용해 경쟁을 피하고 자산을 안전하게 가두어둔다.

4. (조세회피 등을 목적으로) 하루아침에 국적을 바꿀 수 있다.

5. 세금우대와 보조금을 받으면서 세부담은 사회에 전가한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현대의 민주국가에서 폭정이 실시된다면 그것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될 것 같다. 즉 보다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유연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인간을 가혹하게 다루지는 않으면서 품위를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썼다." "토크빌은 이어서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고 동일한 군중의 생활 속에서 싫증이 나도록 겪게 되는 사소한 쾌락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각자는 서로 분리되어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들에게는 자녀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전체 인류에 해당한다. 그 외의 다른 동료 시민에 대해서는 가까이서 생활은 하더라도 알지는 못하며, 접촉은 하더라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요컨대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해 있으며 혼자의 힘으로 생활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친척은 존재할 수 있어도 국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343-4)


"방송 전파는 미국 헌법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생동하는 민주주의와 계몽된 시민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언론의 자유의 일부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내내 미디어기업들이 국가의 방송 전파가 더 이상 국민의 공유자산이어서는 안 된다는 성공적인 로비를 벌였다. 이들은 방송 전파와 채널을 지역과 주파수에 따라 분할하여 경매를 통해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정말 그들의 요구대로 공동자산인 방송 주파수를 경매에 붙여, 이미 인간에 비해 가뜩이나 불평등한 혜택을 누리고 있던 기업의 손에 넘겨버렸다." "방송 주파수 경매에는 낙찰자가 거대 기업이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차적 문제가 있었다. 이 기업들은 국민이 방송 전파를 팔아치울 때 전파 사용에 참견할 권리까지 팔아치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방송이 언로사 사주나 광고주의 비위를 맞춘다는 문제뿐 아니라 어떤 취재 내용이 전파를 타느냐하는 필터링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352-3)



part 4: 시민의 법인격 회복


"기업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기업의 이사와 주주는 물론 시민에게도 중대한 사안으로, 앞서 셔먼 반독점법을 비롯한 여러 입법적 노력에서 보았듯이 기업이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그 근간을 둔다. 1800년대 이래로 사실상 모든 입법 심의회에서 기업의 행위를 규제하거나 통제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어왔다. 그 시초는 권리장전을 통해 인간을 〈독점기업〉으로부터 보호하려던 토머스 제퍼슨이었으나 그의 주장은 끝내 관철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도의 대부분은 실패하거나 무산되었는데, 그 주된 원인은 기업의 법인격이라는 근원적인 이슈를 건드리지 못한 데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업을 통제할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필요한 조치는 살아있는 인간과 '기업' 등의 살아있지 않은 법적 의제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것이다. 기업이 자신을 인가한 주체, 즉 인간과 정부의 통제하에 다시 들어갈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382-3)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는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철학적 입장 차이가 있었다." "보수주의자는 정부의 공익 관련 개입이 경찰과 군대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부분은 심지어 공립학교와 소방서까지 경계하며, 이런 기능을 기업에 위임하는 쪽을 선호한다. 반면 자유주의자는 공익에 경찰과 군대는 물론 의료서비스와 교육, 기아와 홈리스를 면할 권리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이 모든 기능이 정부의 의무에 속하므로 사기업보다는 정부가 직접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3의 길 정치학은 1980년대에 등장할 때부터 '모든' 정부 기능을─심지어 군대와 경찰까지도─정부보다는 사기업이 더 잘 수행할 수 있고, 정부는 본질적으로 어떤 선善도 제공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이거나 최소한 어떤 일을 해도 비효율적이라는 특이한 신념을 내세웠다. 그러므로 우편사업도 민영화해야 했고, 사회보장제도, 메디케어, 공립학교도 마찬가지였다."(430-1)


"제3의 길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책임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적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이들은 정부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 기업에서 실제 이런 모든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3의 길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선출직도 아닌 대법원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국민과 기업의 역사적 관계를 변화시켰는지를 감안할 때, 제3의 길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에 충분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무리 윤리적인 민주당원이라도 이 지독한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산타클라라 사건〉 판결을 무효화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고,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업과 인간이 동일하지 않다고 명문화한 수정헌법을 꼽는 것이다. 인간은 '권리'가 있지만 기업은 오로지 우리 인간이 그들에게 부여하기로 결정한 '특권'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업이 가질 수 '없는' 권리 중 하나가 바로 '언론의 자유'이다."(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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