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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평점 :
머리말
"당시 독일 국방군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예상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지금과 달랐으며, 따라서 타인에게 자랑하여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만한 일들도 지금과 달랐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언뜻 보기에는 아주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다만 우리가, 인간은 그저 자기 '태도'에 따라서 행동하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런 태도가 이념, 이론, 거대한 신념과 결합되어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사람들이 기대한다고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추상적 '세계관'과 관련이 있기보다는, 그들이 놓인 구체적 장소, 목적,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독일 군인들이 왜 그처럼 잔혹하게 5년 동안 전쟁을 수행했으며 5000만 명을 희생시키고 대륙 하나를 모조리 황폐하게 만들 만큼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전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알아야 한다."(13-4)
1 / 군인의 눈으로 전쟁 보기: 프레임 분석
"인간들이 행하는 해석과 행위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즉 어떤 해석 틀과 표상과 관계 안에서 그 상황을 인식했고 그 인식한 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프레임 분석 방식을 도입한다. 프레임을 고려하지 않으면 과거 행위에 대한 학문적 분석은 규범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로 현재의 규범적 척토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쟁과 폭력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종종 그저 '잔인하게' 보이곤 한다. 그러나 사실 '잔인하다'는 것은 다만 도덕적인 범주일 뿐이다. 또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종종 아예 비정상적이거나 병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들 시각에서 이 세계를 재구성해 본다면 이해할 수 있거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 분석을 활용하여 도덕 중립적이고 비규범적인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행해진 폭력을 바라보아야 한다."(19-20)
"1차 프레임은 각 시대의 인간이 배경으로 행동하는 폭넓은 사회·역사적 구조들을 포괄한다. 그러나 보통은 아무도 1차 프레임이 지니는 정위(定位) 기능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2차 프레임은 역사·문화·지리적으로 1차 프레임보다 좀 더 구체적인 프레임이다. 이는 우리가 대부분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경계를 그릴 수 있는 사회 문화적 공간을 말하는데, 가령 어느 정권의 통치 기간이나 어느 헌법의 효력 기간 같은 것이 있고, 제3제국 같은 사적(史的) 구조의 역사 등도 이에 속한다. 3차 프레임은 더욱 구체적이다. 이는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사건들로 이루어진 맥락들이며, 특정 인물들이 그러한 맥락 안에서 행동하게 한다. 예컨대 전쟁은 군인들이 전투를 수행하게 한다. 4차 프레임은 한 개인을 어떤 상황 안으로 밀어 넣는 그 개인의 특성, 인식 방식, 해석하는 관점, 의무감 등이다. 이 차원에서는 심리학이 중요하며, 개인적 특성과 개인적 결정 방식 등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2차 프레임과 3차 프레임을 분석할 것이다."(20-1)
# 프레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1. 문화적 결속 : 문화적 결속이나 의무는 종종 자기 보존 욕구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게 작용하며, 종종 어떤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을 택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낳는다.
2. 무지 : 역사는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변화하는 사회·심리적 환경을 대개 인식하지 못하고, 사후에 조정한다.
3. 예상 :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기존의 프레임으로 파악하려 한다. 그런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절멸 과정의 치명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4. 시대별 맥락 :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것과 '정상성'에 대한 그 시대의 관념이 무엇인가, 무엇이 일상적이고 무엇이 극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가는 프레임의 중요한 배경 요소이다.
5. 역할 모델과 역할 요구 : 평범한 일상이라면 다원적 역할들에 따른 선택 가능성과 행동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전시의 사건 맥락들에서는 이런 가능성과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6. 해석 틀 : 해석 틀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상황들을 유형화하고 자동으로 분류하는 틀이어서, 우리 삶을 구조화한다. 해석 틀은 체험된 일을 분류할 때 일종의 선해석을 제공한다.
7. 공식적 의무 : 평범한 일상에서는 완전한 예속부터 완전한 자유에 이르는 연속적 단계들이 있지만, 군대에서는 계급과 직책에 따라 운신의 폭이 정해져 있고, 명령에 종속되어 있다.
8. 사회적 의무 : 인간은 인과 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동한다. 이런 사회적 의무는 꼭 의식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내면화되어 있다.
9. 상황 : 어떤 사람의 인격적 특성보다 그가 처한 특정한 상황이 그 사람의 행위에 훨씬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다음에는 모든 일이 경로 의존성을 보인다.
10. 개인적 성향 : 국가사회주의가 보여준 홀로코스트와 섬멸전을 보면,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인 태도가 친사회적 성향에 가까웠다. 개인적 편차는 비교적 하찮은 의미만 가질 뿐이다.
2 / 군인의 세계
"2차 프레임의 구성 요소들은 대개의 경우 당사자에게 의식된다. 예를 들어 1935년 독일인들 대부분은 제3제국 사회의 특징을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때 바이마르공화국과의 차이를 강조했을 것이다. 가령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고 치안과 질서가 강화되었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되찾았고 총통과의 일체감이 생겼다는 등 여러 가지 차이를 언급할 것이다. 이런 2차 프레임은 바로 ('체제 시대(Systemzeit)'라 경멸적으로 불린) 직전 시기와의 근본적 차이 때문에 매우 명료하게 의식되었다. 당대의 인터뷰에서도 이제 〈새롭고〉 〈좋은〉 때가 시작되었다는, 〈다시 위로〉 올라가고 〈무엇인가 행해지는〉 때가 시작되었다는, 〈청소년들이 길거리를 방황하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때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자주 강조하곤 한다." "그것은 아주 새롭고 중대한 어떤 것이 등장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경험, 한마디로 말해 '위대한 시대'의 현장에 있다는 강렬한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52)
"제3제국에서 발전한 프레임에서 군인들의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특별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유대인 문제(Judenfrage)와 더불어 차츰 뿌리내린 생각, 즉 인간은 그 범주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다. '범주에 따라'라는 표현이 뜻하는 것은,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 가령 '아리아계' 독일인 집단 구성원이 어떤 개인적 노력이나 실패를 통해 다른 집단에, 가령 '유대계' 독일인 집단으로 옮겨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은 국가사회주의의 일상이다. 이제까지 여러 연구들은 사회적 활동의 상징 형식들, 가령 '이데올로기', '세계관', '강령' 등을 주로 탐구했으며, 그래서 일상생활의 사회적 활동들이 (무엇보다도 반성적으로 의식되지 않기 때문에) 상징 형식들보다 훨씬 강력한 구성력을 지닌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적인 것들이 지닌 구성력이야말로 제3제국 프레임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이다."(53)
"페터 롱게리히의 관찰에 따르면, 독일 사회의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탈유대화(Entjudung)'는 〈개인적 생활 영역들로 점진적으로 침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바로 이를 통해서 도덕적 기준들을 재편성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정상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이라고, '선하다'거나 '악하다'라고, '점잖다'거나 '괘씸하다'라고 여기는 기준에 확연한 변화가 생겼다. 국가사회주의 사회는 비도덕적이지 않다. 집단 학살조차도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국가사회주의 도덕'이 놀랍도록 빠르고 심대하게 뿌리내린 결과였다. 이 도덕은 민족과 민족 공동체를 도덕적 행위의 준거 집단으로 정의하고, 가령 전후 민주주의 시대와는 다른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정착시켰다. 이런 도덕적 규준에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불평등이라는 가치가 속했고, 개인의 가치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민족'의 가치가 속했으며, 보편적 연대가 아니라 일부의 연대가 속했다."(61)
"사회적 범죄의 한편에는 범죄를 계획하고 예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가해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런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방관자나 관객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이런 범주들로 나눌 경우, 결국 전쟁과 집단 학살과 섬멸로 사람들을 이끌어 갔던 행위 맥락을 적절하게 서술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행위 맥락에서 실은 관객이나 방관자는 없다. 모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즉 어떤 사람은 더 강력하고 열성적으로, 어떤 사람은 좀 더 회의적이고 무관심하게, 공동의 사회적 현실을 함께 만들어 낼 뿐이다." "여기에서 본질적 부분은 일상의 실천적인 변화이다. 반유대주의 정책에 대한 공개적 항의는 그 어디에서도 없었고, 유대인들이 겪는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다시 말해, 정치권의 주도뿐 아니라 개인들이 이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사회주의 프로젝트가 놀라울 만큼 단기간에 그렇게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70-1)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에 따르면, 순수 군사적 가치들이 독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1866년과 1871년의 승리가 전통적 귀족 엘리트층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민적 도덕규범의 이상들이 포기되고 그 대신 전통적 상류층의 명예 규범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인본주의적 이상과 평등의 관념이 규범적 측면에서 격하되었던 것이다. 〈명예 문제는 높은 위치를, 도덕 문제는 낮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본주의의 문제나 인간 평등의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이러한 과거의 이상들은 전반적으로 사회적 하류층들이 지닌 허약함의 특징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엘리아스는 이를 독일 시민 계층에서의 '게슈탈트 전환(Gestaltwandel)'이라고 부르는데, 19세기 후반의 이런 변화를 통해 명예 문제, 인간의 불평등성, (결투 등에 의한) 명예 회복 문제, 민족 문제 등이 계몽과 인본주의 이상보다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74)
3 / 전투, 죽음과 죽어 감
〈폭탄 투하가 내게는 욕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짜릿합니다. 기분이 상쾌하지요. 총살만큼이나 기분 좋아요.〉(공군 중위, 1940년 7월 17일)
"사람들은 말한다. 전쟁이 사람을 야만스럽게 만든다고. 그리고 군인은 폭력을 경험하면서, 절단된 신체, 피살된 동료, (섬멸전에서처럼) 집단 학살 당한 남자, 여자, 아이들을 보면서 포악해진다고." "폭력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회심리학적인 연구들에서도 이런 야만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틀렸을 수 있다. 첫째, 이런 생각은 폭력 사용이 매력적 경험이라는 사실, 예컨대 '짜릿한 일'일 수 있음을 처음부터 간과한다. 둘째, 극단적 폭력을 저지르러면 먼저 이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쩌면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함을 처음부터 간과한다. 극단적 폭력 사용을 위해서는 어쩌면 어떤 무기 하나, 비행기, 아드레날린, 평소에는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 정도면 족할지도 모른다." "군인들은 폭력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야만화' 같은 토포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이야기들에서 극단적 폭력에 적응하는 사회화는 종종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91-2)
"군인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총격을 뚜렷하게 보이고 입증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또 자주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신의 총격 수와 자신이 소속된 비행전대와 적의 총격 수를 매우 정밀하게 헤아렸다. 의외가 아니다. 이 총격 수에 의거해 포상과 진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비행장에 몇 차례 성공적으로 착륙하고 그 작전에서 가한 총격 수를 면밀하게 합산하고 나서 뒤늦게 1급 철십자훈장이나 기사철십자훈장도 수여되곤 했다. 조종사들은 (특히 육군 병사들과는 달리) 전공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적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불타거나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지상의 건물이나 기차나 다리가 터지고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성공을 거두었는지 그리고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공중으로부터의 살인에는 이를 미적 체험으로 인식하고 감지하도록 만드는 두 측면이 있다. 첫째는 바로 가시성이고 둘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113)
"해군들도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미리 사회화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적국 상선의 승무원들이 해전에서 죽어 가는 것에 대해 누구도 회의를 가지지 않았다. 이는 늦어도 1917년에는 거대한 해군력을 지닌 나라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불문율로 수용되었다. 해전에서는 개별 군인들이 개인적 능력에 기초해 자신의 용맹함과 탁월한 조종 실력 덕에 살아남을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제대로 맞으면 우리가 침몰하고 적을 제대로 맞히면 그쪽이 침몰한다. 그러므로 격침과 익사 이야기를 과시하면서도 감정적인 면이 드러나지 않음은 의외가 아니다. 게다가 해전에서는 비교적 먼 거리에서 어뢰를 쏜다. 그래서 특히 잠수함 승조원들은 비행기 조종사들과는 달리, 대개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 수상 공격 시에는 상갑판에 네 명만 있고, 수중 공격 시에는 지휘관만 잠망경으로 목표물을 본다. 나머지 승조원은 기껏해야 침몰하는 배의 소음을 들을 뿐이다. 그래서라도 이들에게 연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130)
〈뮐러: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빨치산이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마을을 초토화 시켜야죠.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말이에요. ······ 우리 부대에 브로지케라는 사람이 있었죠. 베를린 출신이었어요. 그는 마을에서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집 뒤로 끌고 가서 목덜미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죠. 그때 이 녀석 나이가 스무 살인가 열아홉 살인가 그랬어요. 이 마을에서 남자의 10분의 1을 총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병사들은 〈애걔, 대체 10분의 1이 뭐야? 이 마을 놈들 씨를 말려야 하는데〉라고 말했죠. 우린 맥주병에 휘발유를 채워서 테이블 위에 세워 두고 밖으로 나오면서 아주 느긋하게 뒤로 수류탄을 던졌죠. 그러면 모조리 활활 타올랐죠. 초가지붕들이었거든요. 여자고 아이고 모조리 쏴 죽였죠. 그중에 빨치산은 아주 적었어요. 저는 빨치산이라고 확신하지 않으면 절대 총을 쏘지 않았어요. 하지만 많은 동료들은 그런 걸 무지무지 재미있어했지요.〉
"뮐러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그가 자기 이야기 안에 베를린 출신 브로지케라는 준거 인물을 심어 놓고 자신은 긍정적인 의미로 그자와 구별한다는 사실이다. 브로지케의 행동은 분명 범죄적이었고, 살인을 저지르면서 〈무지무지하게 재미있어〉하던 〈많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비교해 뮐러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군인들이 법률적으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즉 가해자가 범죄적 행위의 전체 테두리 안에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더라도, 이처럼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은 부당한 일에 가담했다는 도덕적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집단 학살과 이른바 유대인 작전에서 가해자들은 내부에서 여러 집단으로 구별되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요구를 이처럼 각자 다르게 해석한다는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학살이 전체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한다."(141-2)
〈디크만: 우리는 간첩 년 하나를 우리 부대에서 처형한 적이 있어요. 스물일곱 살인가 그랬죠. 그 여자는 전에 우리 부대 주방에서 일했어요.〉
〈브룬데: 그 마을에 사는 여자였나요?〉
〈디크만: 마을에 사는 여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전에 마을에 산 적이 있었죠. 보병대가 아침에 그년을 끌고 왔죠. 오후에 참호 앞에 세우고 처형했어요. 그년은 영국 정보부 소속이라고 자백했죠.〉
〈브룬데: 처형 명령을 누가 내렸나요?〉
〈디크만: 사령관이 명령했죠. 저는 총을 쏘지는 않았어요. 그냥 처형을 지켜봤지요.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서른 명 잡았는데, 여자와 아이들도 있었어요. 지하실에 처넣었다가 벽에 세우고 방아쇠를 당겼지요.〉
"디크만의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아이들까지 테러리스트로 간주해서 가차 없이 〈벽에 세우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을 적으로 보는 환상 역시 독일의 전쟁 범죄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점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광기라기보다는 프레임 변화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적을 정의할 때 어느 집단에 속하는가가 중요하지, 예컨대 나이와 같은 그 외의 속성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범주상 적으로 정의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것이 전쟁의 실천적 규범 구조에 속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법률에 따라 수사할 경우 이를 예외적으로 일어난 일로 간주하는 모순을 범하곤 한다. 그래서 이를 오판하게 된다." "즉, 자기 목적적 폭력 역시 전쟁의 구조적 폭력이 아니라 다만 바람직하지 않은 예외일 뿐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폭력의 장이 일단 열리면, 다른 사람의 어떠한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를 사살하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151-2)
〈놈들은 우리를 '독일 돼지들'이라고 부르죠. 우리에겐 바그너, 리스트, 괴테, 실러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는데, 놈들은 우리를 '독일 돼지들'이라고 불러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독일인들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그래요. 이 인간적인 면을 놈들이 악용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렇게 우리를 욕하는 거라고요.〉(1942년 1월 27일)
〈암베르거: 어느 상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토할 것 같아. 이런 방식으로 유대인을 집단 총살하는 것 말이야. 이런 식으로 죽이는 건 무슨 사명 같은 게 아니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야.〉
"프레임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자신과 다르게 볼 때 느끼는 당혹감이다. 그래서 다른 민족이 자신들을 '독일 돼지들'로 볼 때 느끼는 깊은 분노는 유대인 섬멸이라는 끔찍한 범죄가 군인들의 생활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니까 유대인 섬멸은 적어도 그들에게 문화 민족이라는 자화상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게 만드는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대화는 유대인 섬멸이 어떤 한계를 넘어선 짓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사회주의 윤리는 많은 군인들에게 너무도 지당한 신념을 부여했다. 유대인이 객관적으로 문제이며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사건들을 배치하는 프레임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군인들은 대개의 경우 정말로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한 방식을 비판하는 것이다."(192-3)
〈로트키르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유대인들이 그래도 몇 사람은 빠져나와서 늘 떠들고 다니겠지요. ······언젠가 보복을 당할지도 몰라요. 유대인들이 권력을 잡아 보복을 한다면 끔찍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유대인이 권력에 접근하게 할지가 문제이지요. 왜냐하면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 등 외국의 대다수 국민들도 유대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죠. 그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우리를 이기기 위해서요. 우리가 당시 볼셰비키와 계약을 맺었던 것과 다르지 않지요. 한동안 그랬잖아요. 그들도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계에서 대세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지요.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들을 또다시 자극할 일은 모두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에게 보여 줘야 하죠. 이봐, 우리는 이성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참여하기 원한다고.〉
"반유대주의 정책이 지닌 의의를 분명히 인정하는 사람이 그것의 실행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다. 또한 그 실행 방식이 어마어마한 분노를 불러일으킨 실수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계의 미래를 책임지는 국가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면, 반유대주의 정책 실행 방식이 부적합하다고 느껴도 로트키르히의 논리가 뿌리내린 인종주의적 세계관이라는 프레임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니고, 독일이 국제 정치에서 예나 지금이나 동등한 자격으로 신뢰받을 수 있다는 자화상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만하거나 순진하거나 그저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지만 이는 당대의 프레임을 이루는 것이며, 로트키르히 같은 당대의 사람들은 이 프레임 안에 자신의 행동을 배치한다. 종전 후 독일 사회의 1970년대까지도 그들은 자신이 저지르거나 묵인한 일이 틀렸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프레임에 기인하는 것이다."(205-6)
〈특임대의 행동도 모두 역시 특이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작전이 끝나면 자신도 같은 인종인 수천 명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했고, 나는 이것이 늘 놀라웠다. 그들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그들에게 결코 누설하지 않았으며, 희생자들이 옷을 벗을 때 아주 자상하게 거들어 주었고, 반항하는 자에게는 폭력을 사용했다. 또 불안에 떠는 사람을 인도해 가거나 처형 때 옆에서 붙드는 일도 했다. 그들은 희생자들을 잘 인도해서 총을 들고 기다리는 친위대 부사관을 못 보도록 하고 이 친위대원이 희생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목덜미에 총을 댈 수 있도록 했다. 가스실로 데려갈 수 없는 병들고 허약한 자들까지도 유혹해서 데려갔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했다. 마치 자신이 가해자에 속한다는 듯이.〉
"'희생자에게 책임 돌리기'가 잘 작동할 때는, 희생자가 처한 여건을 염두에 두지 않고 희생자의 인성이 바로 그 행동을 야기했다고 보게 된다. 특히 열등시되거나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오만 가지 편견들에 이런 메커니즘이 나타난다." "이는 마치 실험용 동물을 가지고 실험할 때 그 실험 조건은 언급하지 않고 그 동물의 태도만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희생자의 행동을 이야기할 때 가해자 자신이 창출한 조건들을 '배제'할 뿐 아니라 애초부터 인식조차 하지 않는 고찰 방식을 갖게 하는 것 또한 저 근본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에서 '유대인'은 화자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영역에 속한다. 희생자가 죽어 간 실험 조건들을 자신이 만들었기에 가장 명료하게 알고 있었을 루돌프 회스조차 자서전에서 이런 관점을 취한다. 예를 들어 이른바 '특임대' 구성원들, 즉 희생자들을 가스실로 데리고 가고 그들이 살해당한 뒤 다시 끌어내는 수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회스는 이런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213-4)
"국가사회주의에서 〈점잖음〉의 윤리가 생기는 동기는 특히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거나 살인, 강간, 약탈 등의 각종 범죄들을 저질러도 거기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드높은 이상을 위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잖음의 도덕 덕분에, 서양의 기독교 윤리 관점에서 보면 절대적으로 극악한 일들까지 정당한 일로, 나아가 불가결한 일로 여기면서 자신의 도덕적 자아상에 통합시킬 수 있었다. 또한 살인까지 저지르며 그 〈추잡한 일〉을 실행하면서 고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국가사회주의 도덕 덕분에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윤리적으로 악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힘러 같은 유대인 섬멸 이론가들, 루돌프 회스 같은 실제 수행자들, 그리고 또 다른 무수한 사람들은 인간을 섬멸하는 일이 자기 '인간성'에 반하는 불쾌한 업무지만, 바로 그러한 감정을 이겨 내고 살인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그 가해자의 탁월한 인격을 보여 준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하곤 했다."(233-4)
"도청 기록은 일반적으로 나치 정권 지도급 인사 개개인이 민족 동지들로부터 각각 어느 정도 주목을 받았는지 보여 준다. 이런 대화를 훑어볼 때 두드러지는 부분은 총통 신앙에 대한 언급이다." "총통 신앙은 계급과 직위를 망라하여 철두철미한 확신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된 많은 발언은 마치 화자가 히틀러와 개인적 관계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대중 스타가 닿을 수 없을 만큼 저 멀리 있고 남다른 특징을 지니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친밀하고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로파간다에서 철저한 계산을 통해 총통을 디자인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모든 자기 연출과 마찬가지로 실상 매우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다. 처칠이 히틀러처럼 연서를 수천 통 받는다거나 괴링처럼 딸이 태어났을 때 전보를 10만 통 이상 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리라. 제3제국의 지도급 인사들은, 아니 적어도 이 두 인물은 대중 매체의 전문적 연출로 나타나는 대중문화 현상을 이미 보여준다."(318-20)
〈볼게초겐: 아, 우리가 진다면! ······ 저는 절대 전쟁에서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러시아에서는 상황이 안 좋지만요. 아돌프는 결코 포기하지 않아요! 그에게 최후의 1인이 남아 있는 한,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다면 어떻게 될지 그는 알거든요! 그는 마침내 가스를 쓸 거예요.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에게는 상관없지요.〉
"이런 류의 발언은 총통 신앙이 지닌 두 가지 기능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편으로는 자기 운명의 희비가 그에게 위임된다. 총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승리를 위해 충분한 수단과 냉혹함을 가지고 있다.(〈그는 알거든요!〉) 좀 더 흥미로운 다른 측면은, 전능한 총통이라는 이미지가 의심을 물리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볼게초겐 하사는 전쟁에서 정말 승리할 것이라는 데 의심을 품고 있다.(〈러시아에서는 상황이 안 좋지만요.)〉 하지만 총통의 이미지를 상징처럼 불러들임으로써 의심을 제거할 수 있었다." "총통 신앙을 간직하는 것은 인지 부조화를 줄이는 수단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이런 신앙에 대해 점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전망이 의심스러울수록, 총통 신앙은 더 굳건해져야 한다. 총통의 능력과 힘을 의심한다면 앞서 투자한 이런 감정들까지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총통의 운명은 곧 독일 국민의 운명이다."(325-6)
"군인의 덕목은 특히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군인들이 내면의 신념으로 〈최후까지〉 싸우게 만들었다. 〈마지막 총알까지〉 싸우는 것이 군인의 모범적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어 가면서, 정치 지도부와 군 수뇌부는 〈최후까지〉 싸울 것을 더욱 철저하게 요구했다. 그리하여 전쟁 말기가 되면 이처럼 끝까지 싸우는 것이야말로 국방군의 상징이 되었다. 1941~1942년 모스크바 근교에서의 동절기 위기에는, 전술적으로 전투가 결판날 때까지 싸우라는 요구가 마침내 '열광적으로' 싸우다 죽으라는 요구로 변하기 시작했다." "장군들은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부하들이 전장에서 죽는 것이 어떠한 군사적 가치도 가져올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고집스럽게 현지 사수 명령을 고수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부대 지휘관들을 교체해 버렸다." "히틀러는 병사들의 희생이 고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으며 그것이 국가 통합의 대전제라고 보았다."(360-2)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운다는 토포스는 해군에서는 매우 특이하게 나타났다. 1918년의 수병 반란(Matrosenrevolte)이라는 오점이 있는 해군 지휘부로서는 2차 세계대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런 잘못을 갚는 일이었다. 해군 참모총장 에리히 레더는 1939년 9월 3일 이미 절망적 열세에 처한 해군은 〈명예롭게 죽는 법을 안다〉는 사실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소망과 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묻게 된다." "강경한 말은 말에 그쳤다. 자기희생은 단지 소규모 전투 부대에만 요구되었다. 이런 소규모 전투 부대에는 임기응변으로 급작스럽게 만들어 기술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무기들을 주었다. 인간 어뢰, 폭탄선, 1945년부터는 2인승 잠수함까지 있었다. 인간 어뢰를 조종하는 병사들의 손실은 어마어마했으므로 수지 타산이 전혀 맞지 않았다. 젊은 병사들의 희생정신은 일본 대사 오시마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는 이런 태도를 가미카제 조종사 정신에 견주었다."(379-82)
"독일군 병사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이든 제대로 완수해 내는 것이었다. 민간인일 때 훌륭한 회계사, 농부, 목수였던 것처럼, 잠수함 기능사로서도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공병으로서도 잘 싸우고자 했다. 물론 열악한 노동 조건, 잘못된 생산 방식과 노동 과정과 지시 등에 대한, 모든 공장에서 흔한 비판이 군대에도 있었다." "파국적인 전체 상황의 맥락 안에서 유독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는 이야기 모델은 군인들의 대화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는 일상에서 '회사', '연구소', '상관' 등에 대해 나누는 대화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훌륭한 노동'이라는 이상이 행위자의 인식과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러한 '전문성'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스스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직업 노동과 전쟁 노동이 지니는 구조적 공통점이자 심성적 공통점이다."(401-3)
"우리는 군인들이 가진 프레임이 민간인의 프레임에서 전쟁의 프레임으로 이동하는 것이 그들의 행동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며, 이런 요소가 그 어떤 세계관이나 성향,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후자는 기껏해야 군인들이 어떤 것을 예측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여기며 어떤 것을 놀랍거나 화나는 일로 보는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뿐, 그들이 실제 행동하는 데에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말은 이 군인들이 저지른 일을 볼 때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은 평소 여건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건 및 행동의 맥락을 형성한다. 이런 맥락 안에서 군인들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유대인을 죽이고 국가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나라를 '열광적으로' 수호한다. 이제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과대평가하는 일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전쟁을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군인들이 왜 사람을 죽이고 전쟁 범죄를 범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460)
4 / 국방군의 전쟁은 얼마나 국가사회주의적이었는가?
"전쟁 상황에서 행동의 일반적 특징 중 하나는 적이라고 정의(定義)하는 것이 이 정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적'으로 정의된 사람의 행동은 그가 적이라는 증거로 인식된다. 이런 점은 독일 국방군의 전쟁에서나 다른 전쟁들에서나 차이가 없으며, 국가간 전쟁이나 비대칭전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적이 아닌지는 언제나 군인들이 내리는 정의에 달려 있다. 적에 맞서, 적의 세계 지배 야욕과 폭력에 맞서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흔해 빠진 논리는 전범 재판이나 인터뷰나 증언들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래야만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폭력이 일어났다면 그런 정당화 자체가 불필요해진다." "역사적·문화적·정치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눈앞의 상황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그다음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프레임을 형성한다. 그다음에는 집단 사고와 폭력의 역학의 작용으로 인해 거의 언제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470-3)
"정의에 의거한 살인─즉, 자기방어로 정의된 살인─이라는 이런 해석은 인종 학살에까지 확장할 수 있다. 적어도 인종 이론 창시자들과 홀로코스트 조직자들에게는 유대인 살해 역시 자기방어로 정의되었다. 또한 그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였다. 그들이 살해할 유대인들은 때로는 빨치산, 즉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비정규 적군으로 간주되었다. 한 독일군 병사가 말했듯, 〈유대인이 있는 곳에 빨치산이 있다.〉 자기방어로 정의된 살인은 문화적·역사적 맥락에도 존재한다. 1990년대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한 것은 어떤 인식 및 해석 방식 때문이었는데, 미국의 역사가이자 인권 운동가 앨리슨 데스 포지스는 이를 〈거울 보고 규탄하기(accusation in a mirror)〉라고 표현했다. 이는 인종 학살의 환상에 빠져 상대편이 자기편의 절멸을 꾀하고 있다고 억측하는 것이다." "살인을 목적으로 한 모든 형태의 공격과 조직적 학살은 필연적인 자기방어 행위로 인식된다."(473-4)
"모든 전쟁에는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전우애이고 집단의 중요성이다. 군인들은 결코 혼자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사회적 환경은 그들이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며, 어떤 기준들에 의거해 행동하고 그 행동을 평가하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은, 그 집단이 자기를 본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본다. 어빙 고프먼이 '낙인'에 대한 저서에서 발견한 것처럼, 이를 통해 집단에 순응해야 할 가장 강력한 동기가 생긴다. 전시의 군인은 극단적 여건 속에서, 자신이 당분간 떠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모르며, 자기 마음대로 조직할 수도 없는 집단의 한 부분인 것이다. 민간인과는 달리, 누구와 함께 지낼지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기가 속하고 자기가 함께 형성하는 집단을 고를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집단은, 특히 생사가 오가는 전쟁 중에는 규범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481-2)
"독일 국방군이 저지른 폭력이 가령 영국군이나 미군이 저지른 폭력보다 '일반적으로 더 국가사회주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리 악의로 바라보아도 군사적 위협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학살한 경우에만 그 폭력이 국가사회주의 특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련 전쟁 포로 학살, 그리고 무엇보다 유대인 학살이 이에 해당한다. (모든 인종 학살에서 그러하듯이) 전쟁은 이를 위해 문명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한 새로운 장을 제공했다." "폭력을 단지 일탈로 정의하기를 그칠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지닌 자기 환상을 벗어나서 우리 사회에 대해,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생존을 위한 인간 공동체의 사회적 행위 가능성들 중 하나로 이해할 때, 이 생존 공동체가 곧 살인 공동체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스스로 비폭력적이라는 현대의 믿음은 망상이다. 여러 이유에서 인간은 서로를 죽인다. 그리고 군인은 그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죽인다."(48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