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라이더가 말하는 한국형 플랫폼 노동
박정훈 지음 / 빨간소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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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랫폼에 로그인하시겠습니까


"플랫폼을 우리말로 옮기면 '정거장'이다. 정거장 경제, 정거장 혁명, 정거장 노동으로 부르면 뭔가 다른 느낌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경제나 노동 앞에 플랫폼을 붙였을까? 지하철 정거장을 우선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어딘가를 가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정거장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린다. 만약 '직업'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정거장이 있다면 어떨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입장료를 내고서라도 '일감'이라는 열차를 기다릴 테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거장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 사람들이 마치 구름처럼 모여 있다고 해서 플랫폼 노동을 '클라우드(cloud) 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이번에 도착한 열차에 모두가 타지 못할 수도 있다.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 이러한 플랫폼 노동의 과정을 요약하면 '로그인-대기-일감 탑승-수행-대기 또는 로그아웃'이다."(17-8)


# 정규직─1~2년짜리 비정규직─(주 단위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극단적 비정규직─(필요할 때만 쓰는) 플랫폼 노동자


"비 오는 날 배달 산업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상여금을 줘서라도 좀 더 많은 이들이 앱에 접속해 일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봄가을처럼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에는 주문은 적고 일하려는 라이더들은 많다. 쓸데없이 상여금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 이렇게 극단적인 임금 유연화가 필요하므로 근로자로 쓸 수가 없다. 게다가 디지털 세계에는 퇴근이 없다. 서버는 잠을 자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로부터 일감과 업무 지시를 받는 노동력도 노동법에서 정한 노동시간의 제한을 받으면 안 된다. 놀고먹는 노동자가 없는 '꿈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탄생한 플랫폼에서 노동자는 반드시 사용자여야 하며, 발전된 기술을 통해서든 자기 착취를 통해서든 끊임없이 감시당해야 한다. 그래서 플랫폼자본주의를 감시자본주의라고 부른다. 플랫폼은 노동법을 절대로 펼칠 수 없도록 노동법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노동법이 펼치는 낡고 구태의연한 모든 시도는 플랫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23)


"플랫폼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이 산업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문제와 비용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난다.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이 던져버린 책임을 누가 떠맡을까? 오롯이 개인이다." "배달, 청소와 숙박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도 개인에게 돌아간다. 생산수단을 일하는 사람이 가졌으니 책임도 일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디지털 세계의 플랫폼은 이론상 무한대로 노동력을 소유할 수 있다. 생산수단을 버리는 대신 데이터를 소유함으로써 얻은 성과다. 상상해보라. 중국의 플랫폼 기업이라면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는 순간 억 단위의 플랫폼 노동력에 대한 데이터를 소유할 수 있다. 근로자로 고용할 경우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이는 오래된 자본의 꿈인 무한 축적을 가능케 한다. 심지어 노동력 관리와 책임의 위험에서도 해방한다. 진정한 공유경제라면 책임과 이윤도 공유하겠지만, 그런 자선 사업을 누가 하겠는가."(25-6)


"플랫폼 자본주의는 태생부터 독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이 독점이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플랫폼 기업은 네트워트 효과를 바탕으로 카카오뱅크 같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낸다. 플랫폼의 원래 뜻인 정거장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과 열차를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 하지만 플랫폼 자본은 중개만 하지 않는다. 정거장을 청소하는 사람, 관리하는 역무원, 정거장 주변에 좌판을 깐 장사꾼, 우동과 김밥을 파는 깔끔한 프랜차이즈, 렌터카 회사와 관광 안내소, 택시를 떠올려보라. 카카오 가입자 숫자를 바탕으로 카카오뱅크를 만들고 카카오택시와 카카오카풀까지 뛰어든 것처럼, 플랫폼 자본은 데이터 독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본 축적이 아니라 데이터 축적이야말로 플랫폼자본주의의 원리다. 그래서 적자 운영 중인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데이터 독점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투자를 받는다."(32-4)


# 네트워크 효과 : 어떤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도 똑같은 상품을 쓰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


2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배달의민족이 만든 '혁신'이란 무엇일까? 배달의민족은 전국에 있는 수백만 장의 전단을 스마트폰 앱 속에 집어넣었다." "전단 찾느라 거실을 활보하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편리함을 소비자에게 제공한 것은 배달의민족이 만든 커다란 혁신이다." "음식점에도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준다. 무엇보다도 장사하는 사람의 영원한 숙제인 좋은 장삿목과 비싼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오프라인 가게는 잘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심지어 홀 손님을 아예 받지 않고 배달만 한다면 매우 좁은 곳으로 가도 된다." "오프라인 손님을 버리고 배달만으로 성공하려면, 배달 수요가 충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예측까지 가능해야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손님들이 접속하게 만드는 것, 곧 최강의 독점적 플랫폼이 탄생해야 한다. 배달의민족은 바로 이것을 해냈다."(58-61)


"손님이 배달의민족에서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때마다 약 3퍼센트의 수수료가 음식점에 부과된다. 요기요도 3퍼센트를 부과한다. 배달의민족은 손님이 음식점을 검색하면 가까운 동네 음식점이 노출되게 만들었다. 음식점은 노출 비용을 내야 하는데, 이것을 '깃발'이라고 부른다. 가령 망원동에 사는 손님이 '치킨'을 검색했을 때 내 음식점이 노출되게 하려면 망원동 깃발을 사야 한다. 이 임대료가 월 8만 8천 원이다. 깃발을 하나만 꽂으면 디지털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목인 앱 상단 노출이 잘 안 된다. 하지만 몇 개의 깃발을 꽂아야 자기 음식점이 위에 노출되는지는 사장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이용자들끼리 깃발 꽂기 전쟁을 하는데, 월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을 쓰는 음식점도 있다. 배달의민족이 광고 노출 알고리즘을 알려주지 않는 한 얼마의 광고비를 써야 노출이 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정보 독점을 바탕으로 한 수수료 정책은 플랫폼의 전형적인 수법이다."(62-3)


"플랫폼 회사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해 앱을 깔 수 있도록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달 할인 쿠폰'까지 뿌린다. 이 효과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초복, 중복, 말복에 뿌려지는 치킨 할인 쿠폰이다. 이날 밤 동네 치킨집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새벽까지 오토바이의 불빛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다. 소비자 시장을 쿠폰으로 자극해 반대편 시장인 공급 시장을 터뜨리는 것이다. 쿠폰을 통해 소비자가 자주 플랫폼을 사용하다 보면 디지털 단골이 만들어진다. 소비자에게 앱을 여러 개 까는 건 너무나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사용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출근길에 익숙한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정류장을 계속해서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교차보조금 사용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줄이다. 이 자금은 어디서 왔을까? 배달의민족의 지분 대부분은 국제 투기자본이 갖고 있다."(64-5)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의 형태는 양자 또는 3자 중개다. 손님-음식점-라이더(3자)를 연결하거나, 클라이언트와 노동자(양자)를 중개한다. 그런데 한국은 주문 중개 플랫폼과 배달 대행 플랫폼이 나뉘어 있다. 여기에는 동네 배달 대행사가 끼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플랫폼 산업은 2개의 플랫폼(주문 중개, 배달 대행)이 손님-음식점-동네 배달 대행사-라이더, 4자를 중개한다. 여기에는 배달 대행 플랫폼 사와 동네 배달 대행사의 독특한 관계도 있다. 배달 대행 플랫폼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위탁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이 동네 배달 대행사는 라이더와 '알선 계약'을 맺는다. CU 편의점 알바가 CU 본사의 직원이 아니고 동네 편의점의 직원인 것처럼, 플랫폼 회사는 라이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게다가 CU 편의점 알바가 가맹점의 직원인 것과 달리, 라이더는 배달 대행사의 직원도 되지 못한다. 두 번 멀어지는 셈이다."(74-5)


3 우버이츠는 왜 한국에서 철수했을까


# 배달 산업의 플랫폼 형태

1. 우버이츠형 : 2019년 10월 한국시장에서 철수

2. 배민라이더스(배달의민족), 요기요플러스(요기요)

3. 프랜차이즈형(부릉, 바로고, 생각대로)


"우버이츠는 라이더가 일하고 싶을 때 스마트폰의 앱에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음식점의 배달 주문을 연결하는 서비스다. 스마트폰으로 온 배달 주문을 수락한 뒤 음식점에서 음식을 받아 손님에게 전달하면 된다. 이때 주문이 들어온 음식점 위치만 알려주고 최종 목적지인 손님의 주소는 알려주지 않는다. 라이더가 음식점에 도착해야만 손님의 주소를 알 수 있다. 주거 밀집 지역이고 상점이 별로 없어 다음 주문을 받기 힘든 소위 '똥콜'을 거절하고, 상점이 많아 다음 콜이 뜰 확률이 높은 소위 '꿀콜'만 잡아서 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정보를 통제하고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플랫폼의 또다른 특징이다. 결제는 모두 앱에서 미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라이더가 카드 결제기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 오토바이가 있다면 오토바이로, 자전거가 있다면 자전거로,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없다면 도보로 할 수 있다."(89-90)


"수많은 정보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힘과 권력이다. 당연히 기존의 대기업들도 이런 힘을 사용해왔다. '영업 비밀'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산재를 은폐하고, 경영상의 위기를 과장해서 정리해고를 하거나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플랫폼은 정보의 배타적 독점 자체가 기업의 수익 모델이자 가치라는 점이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이 만드는 효과는 역설적이게도 '불신'이다. 라이더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선택 상황에 놓인다. 자기 자신을 불신하거나 플랫폼을 불신한다." "더욱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본인의 판단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라이더는 자연스럽게 플랫폼이 좋아할 만한 태도로 열심히 일하거나, 플랫폼이 불공정하다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불신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플랫폼 노동의 화두다. 나는 이것을 노동과정의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비통제의 통제', '마음에 대한 지휘'라고 부른다."(96-7)


"그래도 우버이츠는 전투콜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강제로 배차한 배달 주문을 라이더가 수락하거나 거절하면 된다. 게다가 한 건씩만 배달하면 된다. 따라서 여러 건의 배달을 묶기 위해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전투콜을 잡기 위해 1초 단위의 싸움을 할 필요도, 좀 더 빠르게 콜을 잡기 위해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살 필요도, 주행 중에 스마트폰을 바라볼 필요도 없다. 안전하다. 그런데 배달을 한 개씩만 하면 돈이 안 된다. 음식 픽업하는 데 10분, 배달하는 데 10분, 다음 콜을 기다리는 데 10분이 걸린다면 한 시간에 2~3개 정도 배달이 한계다. 이러면 최저임금도 안 나온다. 우버이츠는 이 문제를 높은 배달 단가로 해결한다." "우버이츠는 초기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무료 배송 마케팅을 했다. 그러다 우버이츠가 손님에게 배달료를 받자 콜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소비자는 쿠폰 할인과 저렴한 배달료만 부담하면 되는 다른 배달 플랫폼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98-9)


"(우버이츠 시스템을 모방한) 쿠팡이츠는 우버이츠보다 긴 계약서를 갖고 있었다. 쿠팡이츠의 계약서는 플랫폼 노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꼼꼼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4조 회사 및 배송사업자 간 관계 1항 회사와 배송사업자 또는 일체의 제3의 제공자 사이에는 ①자회사 또는 계열사 ②파트너십, 고용 또는 대리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회사와 라이더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을 명확히 써놓았다." "〈제8조 배송사업자에 대한 평가 1항 물품 수령인은 쿠팡이츠 사이트 등에 배송사업자의 배송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2항 배송사업자에 대한 배송 서비스 평가 결과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는 배송사업자의 회사 배송 프로그램(앱)의 접속 권한을 상실·제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물품 수령인은 손님을 말한다. 손님의 별점 평가를 통해서 앱 접속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약관에 집어넣었다. 회사는 그 기준을 구체적으로 공지하지 않는다."(101-4)


"〈제14조 면책 2항 배송사업자가 배송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배송사업자의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하여야 하며, 회사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의 욕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조항이다. 배송사업자이기 때문에 사고 나면 오롯이 사장인 네가 책임지라는 뜻이다. 과연 라이더가 사장일까?" "계약 내용만 보면 책임은 회피하고 경제적으로는 종속시키는 독소 조항이 가득하다. 계약서엔 회사의 책임과 의무에 관한 사항이 거의 없다. 서로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진행되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서명해야 하는 계약은 결코 자유로운 계약이 아니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규정하는 법률이 자유로운 계약을 기반으로 한 민법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법인 이유를 쿠팡이츠 계약서가 잘 보여준다. 플랫폼이라는 간판을 붙인다고 해서,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약관'을 쓴다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107-9)


4 개인사업자인가, 근로자인가


"(요기요플러스의) '배송 업무 위탁 계약서'라는 제목의 계약서 '제6조 을의 지위'에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나온다. 〈'을'은 '갑'의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의 지위로서 '갑'에게 종속되지 아니하며, 위탁 계약 업무는 '을'의 재량과 책임하에 수행하되, 본 계약에서 약정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의무를 부담한다.〉" "'제4조 위탁 계약의 이행 방법'에는 음식의 배송 순서, 배송 시간, 배송을 위한 고객과의 연락 등 배송 업무 수행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을의 재량과 책임으로 결정한다고 적혀 있다. 이 계약서만 보면 배송 업무 일체를 을인 라이더에게 맡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기요플러스는 용산에 사람이 부족하면 성북에서 일하던 라이더를 용산으로 이동시켰다. 식사 시간에는 아예 조를 편성했다. 1시와 2시는 철수와 영희, 2시와 3시는 재덕과 정훈, 3시와 4시는 윤정과 미정 등으로 조를 짜서 공지했다. 당연히 근태 관리와 강제 배차가 이루어졌다. 라이더에게 배송 업무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한은 없었다."(127-9)


"배민라이더스는 2019년 여름, 라이더를 모집하기 위해 입사 4주 안에 200건 이상의 배달을 하면 100만 원의 보너스를, 그다음 4주 안에 또 200건 이상을 하면 100만 원의 보너스를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8주 일하면 총 20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고가 나면 보너스를 못 받는다. 라이더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는다. 라이더의 잘못이 없어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프로모션 조건이 사라진다. 프로모션 때문에 무리하게 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지각, 무단결근, 무단 조퇴 등에 대해 단 1회라도 근무 건당 300원씩 차감한다는 페널티 제도였다." "이 공지는 카톡으로 하는 임의 조치가 아니라 서면 계약 조항이었다. 플랫폼 기업이 그렇게 강조한 '우리 라이더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예요'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계약이다."(139-41)


# 2019년 11월 6일 라이더유니온 기자회견 이후 페널티 제도 폐지


"배민라이더스는 안정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업으로 일하는 '라이더스'라는 이름의 라이더를 모집했고, 순간순간 급증하는 배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부업으로 일하는 '배민커넥터'라는 이름의 라이더를 따로 모집했다." "2019년 7월, 배민커넥터를 모집하면서 회사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배민커넥터는 '일반인'이므로 전업 라이더인 '라이더스'와 같은 조건에서 전투콜을 수행하면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배민커넥터로 새로 들어온 라이더에게 15초 먼저 배달 콜을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 라이더스는 15초 동안 배민커넥터가 가져가고 남은 배달을 처리하는 신세가 됐다." "(한동안 이런 사정을 모르던) 라이더스들은 콜이 급감한 이유를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었다. 이는 라이더가 앱의 알고리즘에 따라 디지털과 1:1로 관계를 맺고 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과 달리 앱은 일그러진 표정, 격앙된 어조, 적절하지 않은 단어와 욕설, 말실수 등을 하지 않는다. 애플리케이션에는 표정이 없다."(145-7)


"중요한 것은 (라이더의 근무 환경을 실험해서 얻은) 데이터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속도와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화된 속도와 숫자라는 점이다. 가령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에 나온 도착 예정 시간이 15분인 곳을 배민 라이더가 신호 위반과 과속, 자기만이 아는 지름길과 골목길을 통해서 7분 30초 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20명쯤 필요한 일을,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배민 라이더 10명이면 충분하다는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화·알고리즘화된 노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만든다." "회사 측도 이게 정말로 괜찮은 시스템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돌려봐야 안다. 많이 돌려보고 데이터를 축적하면 할수록 서비스는 나아진다. 게다가 배달이 덜 발전한 나라로의 진출을 노린다면, 배달에 최적화된 한국에서의 끊임없는 실험은 합리적인 경영 전략이다. 그래서 배민라이더스 라이더들이 자신을 '실험용 쥐'라고 부르는 것이다."(148-9)


"라이더들 간의 갈등이 단순히 배달료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배달료뿐 아니라 오토바이 임대료, 배달 개수 등이 기존 라이더, 배민커넥터, 신규 라이더 사이에 모두 달랐다. 그 결과 라이더들 사이에 위화감이 커지고 갈등이 생겼다. 단결은커녕 원수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보인다. 배민라이더스는 이 갈등을 잘 활용했다. 배민커넥터에 대한 우대 정책으로 라이더스의 불만이 고조되자 배민커넥터에게 20시간 근무 제한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라이더유니온이 매일 바뀌는 프로모션에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프로모션을 없애버렸다. 일부 라이더들은 라이더유니온이 설쳐서 근무 조건이 불리하게 바뀌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라이더들은 출근하는 공장도, 함께 밥을 먹는 식당도 없기 때문에 노조가 이에 관해 해명하는 전단 한 장 뿌릴 수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갈등을 악용해 노조를 탄압했던 대기업들이 한 수 배워야 할 판이다."(150-1)


5 부릉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9년 3월 28일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은 라이더 4명의 애플리케이션 접속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약이 되어 있는 것도 없는데 그러면 저희가 계속 이거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본사가 거짓말한 건 아니다. 플랫폼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동네 배달 대행사는 다시 라이더와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라이더와 플랫폼 회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본사와 전 지점장이 갈등을 빚은 원인은 배달료였다. 전 지점장 김 씨는 1.5킬로미터 이내의 배달 한 건당 3,700원의 높은 배달료를 라이더에게 지급했다. 부릉 본사는 이것이 시장 가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500원을 인하하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거부했다. 지점장이 갑자기 교체되고 배달 단가가 일방적으로 내려갔다." "부릉 본사가 배달 단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배달 단가는 프로그램 사가 정하지만, 라이더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게 부릉의 입장이다."(163-5)


"배달 대행 플랫폼은 백가쟁명이다. 춘추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달 대행 프로그램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음식점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배달 한 건당 프로그램 사용료를 가져감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지역 배달 대행사와 음식점을 늘리는 게 핵심이며, 이를 통해 디지털 지대를 가져가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배달 대행 프로그램 사들이 프랜차이즈화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전략도 각양각색이다. 이 책에서는 부릉처럼 배달료, 음식점 영업 등에 상당히 개입하는 배달 대행 플랫폼을 '관리형 배달 대행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위탁 계약한 동네 배달 대행사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사용료만 받는 플랫폼을 '디지털 임대형 배달 대행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건물의 출입 통제부터 세입자까지 직접 관리하는 건물주고, 후자는 임대만 주고 세입자는 신경 안 쓰는 건물주라고 보면 된다. 전자에 비교해 후자가 영세한 편이다."(171)


"동네 배달 대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초기 자본주의'와 닮았다는 점이다. 배달 세계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있지만, 우리 사회가 만든 근로자 보호, 사고 예방과 치료, 보호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네 배달 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할 때 대부분은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흔히 라이더를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라이더가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배달 일 한다고 사업자를 내는 라이더는 없다. 세무적으로 따지면 인적용업사업소득자다. 그럼 실제로는 어떻게 일할까? 그냥 일한다. 심지어 면허를 확인하지 않는 예도 있다. 무보험 오토바이를 태우는 지역 회사도 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계약서도 안 쓰는데 산재보험에 가입할 리 만무하다. 반면 규칙은 빡빡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 주말 필수 근무 등 출퇴근에 대한 지휘·감독이 엄격하다. 휴무도 마음대로 못 쓴다."(175-6)


"2009년 11월 〈OBS〉에서 동네 배달 대행업체 약 30곳을 조사했다. 이 중 4곳은 산재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당당히 했고, 25곳은 모두 원하면 가입이라고 안내했다. 단 한 개 업체만이 법이 규정한 대로 의무 가입이라고 답했다. 의무 가입이라고 답한 곳도 라이더로부터 산재보험료로 매일 1,200원을 걷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라이더가 한 달에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는 15,630원이다(2019년 기준, 2020년은 14,030원이다). 나머지 절반의 산재보험료 15,630원을 업주가 부담해야 하지만, 라이더에게 전가했다. 즉 30곳 모두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라이더가 원하면 가입시켜준다는 업체들 가운데 산재보험료 명목으로 매일 1,600원을 걷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월 4만 원, 심지어 매일 3,000원을 걷는 업체도 있었다. 산재보험료를 종사자와 업주가 5:5로 분담하는 경우는 23퍼센트에 불과했다. 무법천지라고 할 만하다."(181-2)


6 플랫폼 산업의 진짜 '혁신'을 위한 조건


"근로기준법은 그 이하로는 근무 조건을 후퇴시키지 말라는 최후의 보루이다. 문제는 이 보호에 울타리가 있다는 점이다. 누구는 들어오고 누구는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이 '종속성'이다. 근로자에게는 반드시 자신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사장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최근에 근로자 개념을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장이 여러 명이거나 사장을 찾기 힘든 플랫폼 노동자에게 어울리는 대안이다. '경제적 종속성' 개념을 대입해서, 비록 그 회사에 출근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을 위해 일하고 이를 통해 소득을 얻는다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본사로부터 물건을 납품받고, 가격, 영업시간, 마케팅 등의 관리를 받는 편의점 사장도 근로자로 해석할 수 있다. 근로자 개념의 확대를 통해 기존 근로기준법으로 플랫폼 노동자뿐 아니라 프랜차이즈의 지휘·감독을 받는 위장된 자영업자를 보호할 수 있다."(207-8)


"(이런 조치 후에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정말로 개인사업자로 일하기를 원하는 라이더들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의 적극적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플랫폼 노동자가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신고하고 대처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최소한 현재의 노동청과 노동위원회 근로감독관 제도만큼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인해 플랫폼 노동자의 손해를 입증할 수 있는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가 소를 제기하고 대응하기란 매우 힘들다. 새로운 계약에 동의하지 않으면 앱 접속 자체가 막히기 때문이다. 자료를 확보하기도 힘들다. 앱에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데 접속을 막으면 어떻게 증거 자료를 확보하겠는가? 따라서 증거를 중시하는 송사에 휘말리면 정보가 없는 플랫폼 노동자가 일단 불리하다. 플랫폼이 가진 정보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209-10)


"이런 법제도들의 활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조합 할 권리다. 다종다양한 산업 형태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일률적 적용이 어렵다는 고민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를 박탈하는 논의로 흐른다면 곤란하다." "이 문제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을 비준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결성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가 전교조를 하루아침에 법외노조라고 통보하듯이 법적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 또 종속성이 약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조 할 권리는 노동청의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기존 근로기준법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낡았다고 하는데, 낡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노조법이다. 일단 전 세계의 상식인 ILO 핵심 협약 비준으로 누구나 노조할 수 있게 만들자. 핵심 협약을 비준하기 싫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면 된다."(212)


"강력한 정보 독점과 속도도 문제다. 과거의 기업이라면,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중간 관리자가 노동자 한 명 한 명을 만나 술도 마시고 회유도 하고 보너스도 돌릴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수만 명이든 수백만 명이든 간단한 앱 공지와 문자 하나로 모든 노동자에게 즉각 선전할 수 있다. 배민라이더스는 배민커넥터의 노동시간을 20시간으로, 라이더스의 노동시간을 60시간으로 줄이는 발표를 하면서 민주노총과 협의했다는 문장을 붙여 노동자들 간 불화를 조장했다. 또한 매일 바뀌는 수수료에 대한 라이더유니온의 문제 제기에 프로모션 폐지로 맞섰다. 이렇게 되면 라이더들은 자신들의 불리한 처우가 압도적인 힘을 가진 플랫폼이 아니라, 거기에 힘도 없이 맞선 노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노조는 이에 대응할 수단이 많지 않다. 동료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과 소통 창구의 독점은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무력화한다."(214-5)


"식상하지만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거리에 돈을 뿌리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배달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길거리가 아니라 사람과 안전, 시스템에 돈을 뿌려야 한다. 이 돈을 함께 지급하는 것이야말로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 낸 난폭 운전과 수많은 사고에 대한 해결책이다. 사실은 이 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탄생한 것이 플랫폼 산업이다. 플랫폼 산업은 고정급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또한 소비자의 수요와 라이더의 공급, 계절적·문화적 요인에 따라 배달료는 물론이거니와 근무 방법과 시간 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노동력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것들이 플랫폼의 존재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명령이 듣고 잊어버릴 수 있는 욕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AI가 정한 근무 조건은 신의 심판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빌려 사람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인간이다."(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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