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유 한길그레이트북스 138
마르셀 그라네 지음, 유병태 옮김 / 한길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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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중국사회체제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연속성에 있다. 학파 여부를 떠나 모든 중국철학자는 오랜 지혜의 전통에서 비롯된 범국가적 상징체계는 필시 그 적합성과 효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철저히 믿었다. 상징체계에 대한 중국인의 믿음은 이성(理性)에 대한 서구인의 믿음에 비견된다." "모든 중국범주들은 체험을 조직화하기 위한 장기간에 걸친 시도의 산물이다. 따라서 중국범주들이 모든 점에서 잘못 설정되었다는 선입견은 경솔한 태도의 소치이다." "중국사유체계를 이끈 사상들에 따르면, 인간사유는 단순한 지식습득이 아닌 문명화를 위한 활동에 그 기능이 있었다. 사유의 역할은 효율적이면서 총체적인 질서를 점진적으로 자리잡아주는 데 있었다. 그러기에 하나의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 개념은 없으며, 하나의 삶의 지침과 일치되지 않는 학설은 없다. 중국인의 사유체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중국인의 태도 전반을 특징짓는 것과도 같다."(44-6)


1부 사유의 표현


1장 언어와 문자


"중국어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고, 극히 구체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작용력을 갖춘 언어로, 교묘한 여러 저의가 충돌하는 설전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고의 명료한 표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국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의도가 은연중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전달되기를 바랐다." "언어는 무엇보다도 행동을 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언어는 행동을 분명히 알리기보다는 행동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표현은 말에 효력을 부여한다.〉 상대보다 우위를 원하거나 친구나 손님의 행동에 압력을 가할 때면, 하나의 단어나 말을 여러 문구 속에 반복 주입시켜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는 것으로 족하다. 중국단어는 관념을 가리키기 위한 기호와는 무관하며, 추상성과 일반성이 최대한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는 개념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단어는 먼저 개별형상들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형상을 보여주면서, 그 형상들이 형성하는 하나의 미묘한 복합체를 상기시킨다."(52-3)


"중국인들은 명료한 표현수단, 즉 기호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그 자체로는 무감각한 표현수단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언어가 각 단어를 통해 말은 곧 행동임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이다. 생명과 운명을 뜻하는 중국어 ming(명命)은 소리 또는 문자로 만물을 지칭할 때 쓰는 ming(명名)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두 존재의 이름이 혼돈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닮았다 한들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이름들 각각은 개별적 본질을 총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름이 개별적 본질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름은 개인의 본질을 호명하고, 개인의 본질을 현실로 불러낸다. 따라서 이름을 아는 것, 단어를 말하는 것은 곧 존재를 취하는 것이자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나의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곧 하나의 지위, 하나의 운명, 하나의 표상을 부여하는 것이다."(56-7)


"공자는 개의 형상기호인 견(犬)은 하나의 완벽한 소묘라고 천명했다. 이 기호와 함께 공자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의 묘사는 굳이 대상의 모든 특성을 재현하지 않아도 적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묘사의 적절성은 바로 어떤 유형의 행동이나 관계를 특징짓거나 함축하는 하나의 태도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이는 형상관념에도 공히 적용된다. 친구나 우정의 관념은 맞잡은 두 손을 도상화한 단순글자인 우(友)로 형상된다. 씨족간의 결속을 다지는 협약(혼약, 군사동맹, 제휴)은 손바닥으로 맺어졌다. 문자기호는 먼저 일련의 양식화된 여러 동작을 상기시키면서 일반적인 가치를 지닌 한 관념을 지시한다." "문자표상은 양식화된 동작을 간직(하고자) 하며 또한 의례적 의미의 동작을 형상화(하려고) 하기에 정확한 상기력을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문자표상은 일련의 상(象)의 흐름을 촉발하여 개념의 어원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한다."(65-6)


2장 문체


"우선 중요한 사실은 중국고대의 시는 유형상 경구시(警句詩)에 속한다는 점이다. 고대 시는 잠언 속에 깃들어 있는 지혜와 권위를 즐겨 차용한다. 고대 시는 참신한 표현, 새로운 조합, 독창적인 은유에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매양 동일한 시상(詩想)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이 시상들 또한 아주 유사한 영감에 속하는 것들로서 극소수의 전범에서 따온 것들이다." "가령, 〈꾀꼬리가 노래하네!(有鳴倉庚)〉, 〈서로 응답하며, 사슴들이 외치네!(유유鹿鳴)〉 같은 시상들은 달력의 금언들로서 특히 (인간과 자연이 화합하는) 봄과 가을에 관계되는 말들이다." "이러한 전통적 즉흥을 통해 고무될 수 있는 제재는 참신한 발견이면서 복원된 전고(典故)로서 경구의 형식으로 지속되면서 자유로이 다시 창안되었고 또 그 완벽한 적절함으로 선호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노래로 화답하며 전통적 앎과 창의력을 견주는 동안 제재는 축제 속의 자연이 되풀이되고 창안해내는 신호와 적절하게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72-4)


"중국인은 지혜로운 시인들이나 충성스러운 신하(이 둘은 서로 다를 바 없다)에 의해 시연(詩聯)들로 재구성된 시적 제재와 달력의 경구가 교화의 힘을 지녔음을 극히 당연시한다. 이미 관례화된 모든 비유는 우화적 경구로서 자연의 질서를 일깨우며, 운명을 예시하고 나아가 운명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한결같이 잠언을 빌려 말하려는 이유는 그들의 생각이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생각을 돋보이게 하는 합당하면서도 가장 교묘한 방식은 바로 입증된 문구 속에 자신의 생각을 흘려넣는 데 있기 때문이며, 또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은 그 문구의 신빙성을 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고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한없이 적용될 수 있는 일종의 중립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가장 특이하게 적용되는 경우에도 행동으로 유도하는 실질적인 힘을 잃지 않은 채 말이다."(76-8)


"작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전통에 의거하여 각색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소화가 삽입되어 있는 전개들의 의도가 서로 다른 것만으로도, 하나의 소화는 각각 상이한 사유운동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상투적인 일화들은 가장 독창적인 작가들에게는 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우화가 널리 선호된 것은 바로 그것이 제공하는 중립적인 힘 때문이었다. 단순한 문구나 단어처럼, 우화의 중립적인 힘은 우화가 외견상 평범해 보일수록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사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우화를 빌려 여러 생각을 일일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화의 권위를 빌려 전개 전반에 걸쳐 권위를 부여하는 데 있다." "우화는 어떤 암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자세를 마련해준다." "독자는 세부와 체계의 분석적인 검토를 경유함으로써 생각의 수용을 종용받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하나의 종합적인 암시에 휩싸인 채 일거에 개념체계 전체에 사로잡히게 된다."(84)


"운율상의 유사성은 표상들의 힘을 강화하는 효력이 있다. 이 유사성에 의해 표상들간의 친화성과 표상들의 환기력은 배가된다." "중국작가들은 (현학적 산문의 이상인 고문체의 특징이기도 한) 어떤 확고하고도 안정된 균형감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고상함과 설득력을 얻고자 하는 모든 형식의 글뿐만 아니라 심지어 산문을 쓸 때조차도, 간략한 경구들이 운율의 유사성에 따라 상호 엄격한 균형과 연계하는 구성방식을 취한다. 그들은 때로는 과도한 반복에 구애됨이 없이 간략한 경구들을 중첩시키기도, 때로는 작품주제가 되는 (서구의 글에서는 주요명제에 해당하는) 중심문구를 하나의 후렴처럼 반복하기도 한다. 또 그들은 주제와 관계되는 문구들을 교묘히 병행해 주제를 대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 경우, 다양한 제재들의 전개는 작가의 생각을 분산하기보다는 오히려 촉진함으로써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게 한다."(90-1)


2부 주개념(主槪念)


"고대중국의 어느 현자의 경우도, 우리에게 수(數)·시간·공간·원인 등에 관한 서구의 추상적 관념과도 같은 개념들에 의거할 필요성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 모든 '학파'의 현자들은 한 쌍의 구체적인 상징(음陰·양陽)을 빌려 시간·공간·수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면서 상호관계를 인식하게 해주는 율동을 감성적으로 전하고자 한다." "서구주석가들은 대부분 이 개념들을 추상적으로 정의되거나 규정될 수 것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우선 서구철학자들의 개념어에서 이 개념들에 상응하는 것부터 찾아 나선다. 통상 그들의 개념들을 교리적 실체처럼 제시한 다음, 이 개념이 비합리적인 것 또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결론에 머무르고 만다. 그들의 관점에서 이 개념들은 실로 중국사유가 (완전히 수용되고 있는 유행어를 빌려 말하면) '전 논리적' (前論理的) 또는 '신화적' 정신임을 입증해주는 방증에 지나지 않는다."(96-7)


1장 시간과 공간


"중국의 시간관과 공간관은 비개인적인 것으로서 곧 범주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하지만 중국인이 시간과 공간을 중립지대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과 공간에 추상적 개념들을 설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자도 시간을 획일적인 운동에 따라 질적으로 유사한 순간들이 연속되는 단조로운 기간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또 어떠한 철학자도 공간을 등질적 요소들이 병립된 하나의 단순한 넓이나 또는 모든 부분들의 중첩이 가능한 하나의 넓이로 간주하지 않았다. 중국의 모든 철학자들은 시간에서는 일체의 절기와 시기, 즉 일체의 시대를, 공간에서는 기후와 방위의 복합체, 즉 지방이라는 복합체를 보고자 했다."(99) "시간의 고유한 효능성은 순환하는 데 있다. 시간은 이 순환성에 의해 원형(圓形)으로서의 특질을 지니게 됨으로써 공간의 일차적 특성인 정방형(正方形)과 상반된다. 원형과 정방형은 곧 시공상의 순수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103)


"사회활동이 거의 쉴 틈 없이 줄기차게 이행되는 문명에서 기간의 주된 성격은 연속성에 있는 것 같다. 고대중국인들의 사회생활은 겨울 농한기에 절정을 맞는 반면 세속적인 일들이 재개되어 사람들이 다시 분산될 때면 이내 소강상태로 돌아간다. 시간(그리고 공간) 역시 오직 집회와 축제의 시간(그리고 장소)에 한해 완전히 응축된다. 이렇게 충만한 공간의 번성기와 공허한 공간의 쇠퇴기는 교대했다. 사회감각을 주기적으로 복원해야 하는 필요에 따라, 중국인들은 시간과 공간에 공통되는 하나의 율동구도를 생각했다. 분산시기와 응집시기의 상반성에 원칙을 두는 이 율동구도는 애초 대립과 교대라는 두 단순개념으로 표현되었으며, 시공간은 처음부터 시공의 특성들 사이에 효능성의 차이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었다." "한편, 주기적으로 재창조되어야 하는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중앙이 있기에 사회적 기능성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123)


# 중앙의 수장을 중심으로 정방형 배치를 이루는 사회구조


2장 음양(陰陽)


"음양의 상반관계는 두 실체, 두 힘, 두 원칙의 상반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 관계는 어떠한 표상보다도 암시력이 풍부한 두 대표적인 표상들의 관계일 뿐이다. 음양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모든 표상들을 짝패로 상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강력한 상기력으로 다른 표상들 사이의 짝짓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음양에 한 쌍의 으뜸항목으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부여하게 되며, 바로 이 권위에 따라 한 쌍으로서의 음양은 모든 상반관계의 토대이자 우주를 구성하는 대조양상들의 주재자인 조화, 즉 일체성과 협동성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음양은 표상작용을 통해 구체적인 양상들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양을 실체나 힘 또는 원칙으로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음양은 실로 무한하고도 총체적으로 상기시키는 힘을 지닌 표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36-8)


"중국인들은 음양의 대립에서 자연의 산물을 율동적으로 분배하는 원칙을 보았다. 그러기에 우주의 일체성이 바로─음양이 서로 맺어지면서 성적으로 소통하는 동안에, 사람들이 제반 장소와 제반 기회, 제반 활동과 제반 직무, 제반 표상들을 일관되게 분배하면서 집단성혼을 거행하기 위해 하나의 대동질서를 복원하던─이 성스러운 순간만큼 그토록 완벽하고 총체적으로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 사회와 우주가 성의 범주에 따라 이항(二項)식 질서체계를 갖게 되었지만, 이는 조금도 이원론적 실체론에 근거하는 형이상학적 경향의 소산이 아니다. 쌍의 개념에 소통의 개념이 결부되어 있으며, 총체의 개념이 양분의 질서를 통솔하고 있다." "음양의 대립은 (존재와 무 같은 절대적인 대립이 아니라) 번갈아 직무를 수행하며 차례로 전면에 나서는 두 성의 집단처럼 상보적인, 즉 경쟁적이며 연대적인 두 집단의 상대적이며 순환적인 대립이다."(153-4)


3장 수(數)


"모든 현자는 수를 표상과 동일시했으며, 다양한 조작에 따라 다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인류의 배태기간이 열 달임을 알게 된 한 철학자(회남자)는 자신의 지식을 앎의 전반에 결부시킨다. 〈하늘은 1, 땅은 2, 사람은 3에 해당하고, 3을 3번 하면 9이고, 9를 9번 하면 81이고 [80과 1], 1은 태양을 다스리며, 태양의 수는 모두 [1(십 단위)=] 10이고, 태양은 사람을 다스린다. 따라서 사람은 임신 10개월만에 태어난다〉고 역설했다. 이어 〈[9×8은 (70과) 2인 까닭에] 2에 해당하는 달이 다스리는 말(馬)은─[2(+십 단위)=] 12태음월(太陰月)에 준하여─12달의 배태기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히 9를 7, 6, 5 등으로 곱해 가면서) 개는 [9×7=(60과) 3] 3달, 돼지는 [9×6=(50과) 4] 4달, 원숭이는 [9×5=(40과) 5] 5달, 사슴은 [9×4=(30과) 6] 6달, 호랑이는 [9×3=(20과) 7] 7달을 배태기로 취한다〉고 했다."(160)


"하나의 수-상징은 많은 실상과 표상들을 불러오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등가물로 주어지는 여러 수들이 결부되기도 한다. 수는 중국인들이 간과하는 개별화된 양적 가치가 아니라 더욱 흥미로운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상징가치는 조작재능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아, 수들을 일종의 연금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수들은 그들의 주된 기능에서 파생되는 다각적인 효능성에 따라 변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수들은 표상항목으로서의 의미와 기능을 가진다. 수는 사물의 분류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경우의 분류는 단순한 순번부여나 수량의 양적인 규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해진다. 중국인들은 단지 순서를 위한 순번 부여나 양적 측면에서의 산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특정집단의 특성이나 위계질서를 표현하는 데 수를 사용한다. 수는 분류기능과 이에 연관된 의례기능도 겸한다."(160-1)


# 수가 특정한 상징으로 형상화된 대표적인 경우 : 십간(干)과 십이지(支) 그리고 십진수


"점술가들은 시공에 관련된 사회적 표상들을 비롯하여 상호연관된 분류체계들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 모든 관습이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해야 했다. 그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기하와 산수의 상징들을 사용했다. 이 상징들은 다른 부류의 표상들처럼 형상력과 작용력을 발휘했다. 다른 표상들에 비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추상적이었던 이 상징들은 각별히 신뢰받았던 것 같다. 이 상징들은 조작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해 가장 다양한 분류들을 연계짓는 데 사용되었으며, 그 조작이 임의적인 경우에조차 그 조작에 통제를 기했던 것 같다. 중국인들이 이 상징들을 통해 우주질서를 형상화할 때면, 세계의 형상은 이들로부터 어떤 필연성을 확보하는 듯이 보였다. 세계형상은 조작의 효능성을 보장하면서도 조작을 용이하게 했다. 점술은 세계를 인식하고 안배하려는 열망을 반영한다."(212-3)


"수의 기능은 크기를 표현하는 데 있지 않다. 수는 구체적 규격들을 우주상의 비례전반에 부합시키는 데 운용된다. 하나의 수-표상이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다음 두 사항을 표현하고 내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나는 세계의 항구적 구조를 상기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질서나 문명의 전범(典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가장 의미심장한 수-표상은 3과 2, 3과 4, 5와 4, 10과 8, 9와 6, 8과 7, 64와 80, 63과 81, 144와 216, 108과 72 등이다. 이 수들은 총수 360(=5×72=6×60)에 의해 그 운용이 통솔되는 까닭에 우주의 형태와 생태를 명확히 드러낸다." "수는 측정보다 대립과 상관관계를 제시하는 데 사용된다. 중국인들은 우주가 형성하는 체계 속에 사물의 통합을 기하기 위해 수를 사용한다." "우리는 중국의 수 사상 속에 가장 엄격한 순응성, 양식에 대한 집착, 기발한 착상, 개인성에 대한 애착 등이 경이롭게 화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76-8)


"1(하나)은 언제나 완전함 그 자체이며, 2(둘)는 쌍일 따름이다. 2는 음양의 교대(와 총합이 아닌 결합)를 특징으로 하는 쌍 그 자체다. 그리고 1, 즉 완전함은 음도 양도 아닌 축 그 자체로서 음양의 교대를 바르게 한다. 다시 말해, 1은 중앙의 정방형이다. 즉 (도가에서 말하듯 그 자체는 비어 있기에, 바퀴를 돌게 하는 차륜의 가운데 구멍처럼)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공간 전체를 상징하는 큰 정방형을 분할하는 네 직사각형에 의해 형성되는 만자의 회전을 통솔하는 중앙의 정방형이다. 1은 가산될 수 없는 불가분함이다. 왜냐하면 1은 홀수와 짝수의 종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1은 총체인 까닭에 수치 1로 될 수 없는 일체다." "이렇듯 일체(하나)이면서 한 쌍이며, 수의 용어로는 정수(整數)라 할 수 있는 완전함 그 자체는 모든 홀수 속에서, 그리고 제일 먼저 3(1+2) 속에서 구현된다. 우리는 3이 만장일치의 완곡한 표현임을 확인할 수 있다."(280)


4장 도(道)


"도가의 저자들은 '기법, 방법, 규칙'의 의미를 지니는 술(術)과 법(法)에 도를 대립시킨다." "'도가의 시조들'은 용어 도를 언제나 덕(德)과 함께 병용했다. 그들에게 단어 덕은 개별화될 때의 효능성을 지칭한다. 이중적 표현인 도-덕은 일상 언어에서는 줄곧 덕성을 뜻하는 말로 상용되었으나, 사실 덕성은 단순히 윤리적인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덕은 '매력', '군주의 영향력', '유능한 권력'을 의미한다. 덕은 신화에서는 가장 완벽하고 특출한 여러 천재들의 자질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덕이 '특수한 덕목'을 나타내며, 현동화(現動化) 과정에서 개별화되는 효능성을 가리키는 철학어로서 사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마도 원칙상 거의 구별되지 않는 두 개념을 대립시켜 분석하려는 의도에 따를 것일 터이다. 그리하여 덕은 특히 개별적 차원에서의 성취를 의미하는 반면, 도는 실현된 일체를 통해 드러나는 총체적 질서를 나타낸다."(305-6)


"도는 음과 양, 두 양상의 총합이 아니라, 이 둘 간의 교대를 조율하는 장치다. 『계사』에 제시된 도의 정의에서 볼 때, 도는 교대하고 순환하는 하나의 총체로서 간주될 수 있다. 양태마다 동일한 총체가 재현되며, 모든 대조는 빛과 그림자의 교대와 대립의 관계를 그 준거로 하여 형성된다. 도는 음양보다 상위의 범주로서, 지대한 능력과 총체와 질서를 총괄한다. 음양이 그러하듯, 도 또한 하나의 구체적인 범주다. 즉 도는 어떤 기본적인 대원칙이 아니다. 도는 실제 여러 집단의 현동하는 사물들의 운행을 관장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실체와 힘은 아니다. 도는 조율 기능을 행한다. 그러기에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할 따름이다. 도는 사물의 율동을 조절한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갖는 시공상의 각 위치에 따라 규정된다. 요컨대 실재하는 모든 것 안에 공간-시공의 율동인 도는 존재한다."(327)


"우주뿐만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각 집합적 개체들은 본래 순환하는 것이기에 교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신념이 사유를 완전히 지배하면서, 연속성보다는 상관성이 언제나 사상적으로 우선되었다." "중국인들이 기꺼이 기록하려 했던 것은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출현순서가 중요하지 않기에 비록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함에도 제각기 특별한 것으로 간주되는 여러 양상들이다. 이 양상들은 모두 똑같이 묵시점임에 따라 상호대체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메마른 강물, 무너진 산, 여자로 변한 남자 등은 임박한 왕조의 몰락을 알려주는 동일한 징표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네 양상으로, 하나의 질서는 그 효력이 다하면 새로운 질서에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짐을 알려준다. 이렇듯 모든 것은 하나의 전조나 하나의 기호 (또는 일련의 기호들)의 확인으로서 마땅히 기록되어야 하는 반면, 그 어떠한 것도 작용인으로서 중시되지 않는다."(330-1)


3부 세계체계


1장 대우주


"중국인들은 정치에 각별한 위상을 부여했다. 그들에게 세계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 이전에는 시작되지 않았다. 중국의 세계역사는 창조설화나 우주론적 사변에서가 아니라 바로 군주들의 전기(傳記)에서 시작된다. 고대 영웅들의 전기에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상당수 담겨 있다. 하지만 어떠한 우주 생성론적 제재들도 각색을 거치지 않고는 문학 속에 포함될 수 없다. 모든 전설은 인간역사의 사실들과 그 정치철학들을 반영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국가문명의 거룩한 창시자들에 의해 구현된 조화(和)에 힘입어 영위되고 존속되며, 인간과 존재물들 각자는 이 창시자들의 지혜에 힘입어 자신의 본질(物)과 부합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운명(命)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현자들의 공덕에 의한 사회조화는 크나큰 평화(太平)와 더불어 대우주의 완벽한 균형을 가져오며, 이 균형은 모든 소우주의 조직 속에도 반영된다."(343)


"중국인들은 신(神)들이 괴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신구(新舊) 모두의 전설들을 역사의 외부인 신화의 시대, 즉 어렴풋하고 요원한 시대에 묶어두지 않았다. 모든 시간은 인간과 역사에 속한다. 우주는 현자들이 국가의 운명을 건립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실재적으로 존재한다. 이 문명은 구주(九州)의 전체에 걸쳐 군림한다. 유기적인 공간과는 무관한 야만인들의 사해(四海)는 성인들에 의해 안배된 공간에 테두리를 형성해주면서 공간 너머로, 아울러 시간 너머로 펼쳐진다. 실재적인 세계의 이 어렴풋한 주변들은 야만인들뿐만 아니라 괴물 그리고 신들에게 적절한 곳이다. 인간의 대지는 중국인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과 수장들만의 영역이다. 중국의 군주들은 전답을 정방형으로 분할하고 신전(明堂)을 건립하여 자신들이 집정하는 성역과 군영과 도시의 9구역에 적합한 방위를 부여했다. 실재적인 우주의 안배와 그에 따른 진정한 우주관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분류들은 이 신성한 관례들에서 파생되었다."(360-1)


2장 소우주


"좌우(左右)에 관련된 제반 사상들, 관습들, 신화들만큼이나 중국인의 소우주관을 적실하게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중국에서 좌와 우는 절대적으로 대립되는 양상을 띠지 않는다. 존재와 무, 순수와 비순수의 관계와는 달리 음양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사물들을 선과 악으로 분할하도록 강요하는 종교적인 격정은 중국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천덕(天德)과 지덕(地德)은 상호보완적이다. 이 두 덕은 교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더욱이 이 두 덕은 차례로 가장 완벽한 현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가장 완벽한 현자들은 처음에는 재상의 위치에서 자신의 임무수행을 위해 활약하며, 지상에서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자신의 역량을 떨친 후 군주의 위치에 오르면 오직 하늘의 일을 탐문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럴 때 그들의 삶의 유일한 목적은 어떠한 세부적인 효율성(德)도 능가하는 지대한 효능성(道)을 자신 속에 응집시키는 데 있다."9363-4)


3장 예법(禮法)


"중국인들은 인과관계를 가늠하기보다는 조응관계를 찾아내어 그 목록을 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주질서는 문명질서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구적이고 필연적인 일련의 상관성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전통예법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좀 더 정교한 기술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의 중요성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앎은 곧 권능이다. 현자인 군주는 문명의 수액을 분비한다. 현군(賢君)은 만물의 위계질서 전반에 일관된 태도체계를 확립하여 문명을 유지하고 파급한다. 현군은 법의 구속력에 기대지 않는다. 그에게는 전통적 규범의 권위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람은 단지 본보기만을 필요로 할 뿐이며 사물 또한 사람처럼 본보기만을 필요로 할 따름이다." "중국인들은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지 않는다. 영혼개념, 즉 육체와 물체 전반에 대립하는 정신적 본질에 대한 사상은 중국사유와는 전혀 무관하다."(391)


"귀(鬼)들과 신(神)들은 육신을 떨쳐버린 영혼들이 아니다. 혼(魂)과 백(魄)은 하나는 정신적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두 영혼이 아니다. 혼과 백은 하나는 숨결과 모든 신체기관의 발산물에 속하며, 다른 하나는 피이면서 모든 체액(體液)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두 군(群)의 생명의 원천을 가리키는 항목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들 중 한 군은 양(陽)으로서 마치 숨결과 이름을 제공하는 아버지와 같으며, 다른 한 군은 음(陰)으로서 마치 피와 음식을 제공하는 어머니와도 같다. 전자는 다독여 온기를 불어넣는 하늘과 유사하며, 후자는 보듬어 양육하는 땅과 유사하다. 술을 부어 흥건한 땅은 육체의 분해에 따른 생성물로 비옥해지는 반면, 제물들의 더운 연기는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생명은 죽음과 교대하며, 하나의 순환질서와 5를 단위로 하는 율동이 계절의 회귀나 윤회를 관장하여 모든 것이 죽음으로 돌아가듯 모든 것은 생명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403)


"중국인들은 실체와 힘을 거의 구별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인들의 모든 개념을 지배하는 것이 율동과 사회적 권위에 대한 사상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의례와 음악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들은 의례와 음악을 예법의 상호보완적인 두 양상으로 대립시킨다. 사람들의 구분과 그 일들의 구분은 의례로 확립되는 반면, 모든 존재가 조화 속에 영위되는 것은 음악에 의해서다."(410-1) "의례와 음악은 예법을 따라 자신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우주를 형성하는 거대하고도 율동적인 동태체계 속에 합치되리라는 느낌을 고무시켜준다." "의식(과 음악)이 지니는 큰 효력은 규칙적인 율동을 주입하는 데 있다. 존재방식이 예법의 통치를 따를 때, 존재는 격상하고 지속적으로 영위될 자격을 얻는다. 이 상징체계를 자기화하는 개인은 국가의 문명을 자신의 몸속에 간직하게 된다. 그럴 때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며, 하나의 개인성도 얻게 된다."(415-7)


4부 교파와 학파


1장 통치술(統治術)


"『관자』나 『한비자』에 나오는 사상들은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두 단어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비결·방법·기교를 의미하는 글자 술(術)이며, 다른 하나는 여건·상황·정세·힘·영향력을 의미하는 글자 세(勢)다." "당시 전제군주들은 항상 혁명적 시기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천자의 지위를 찬탈할 준비를, 즉 문명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으며, 최소한의 변화의 징후를 포착하는 것은 총체적 변화를 가져올 기회를 잡는 것과도 같았다." "전제군주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정치고문으로 기용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징후를 살피도록 했다. 그들로서 기회를 놓치게 되든가 제때에 구하지 못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나 죄를 범하는 것과 같았다." "정략가들은 결코 통치를 운에 맡겨야 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통치술은 운명을 타진하고 운명을 이용하는 것이었다."(432-3)


"고대의 학파 가운데 가장 교파성이 짙으면서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던 학파는 묵가(墨家)다. 서구에서는 흔히 이 묵가를 피압박자들을 구원할 책무를 자임한 기사단원(騎士團圓)들에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 묵가를 설교사제단(說敎司祭團)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인다. 묵가의 구성원들이 지향한 목적은 야망으로 지혜를 저버린 군주들을 다시 지혜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학파의 원조가 작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설법용 기본 훈시문을 소지한 채 군주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능란한 삿된 고문(顧問)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적어도 기원전 4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들 중의 일부는 별도의 집단(묵자에서 분리된 제자들인 별묵別墨)을 형성하여 논법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논법을 창시하거나 논변가(辯士)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초의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는다."(437)


"중국어에는 시제나 성수(性數)가 없다. 이 중국어의 특성은 어떤 역설들을 재미있는 문구로 표현할 수 있게도 했으나 모든 개념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중국어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러한 조건에서 중국인들이 유사관계 속에 언급된 용어들의 관계를 분석하려는 생각을 한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며, 이러한 분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흰색과 고체, 말과 흰색, 명명(命名)과 대상(事) 또는 그 상징(形)에 관한 여러 토론들은 그 의외성과 혁명성으로 인해 놀라운 면모를 보인다. 이 토론들은 숭상되어왔던 기존의 분류와 조응체계의 붕괴를 불러왔다. 변증사상가들은 예법을 그 토대부터 뒤흔들었기에 심한 반대에 봉착한 끝에 미미한 호응을 얻는 데 그쳤다. 그들은 오랜 기간 토착화된 논리의 추종자들을 극복하지 못했다."(450-1)


"정명론(正名論)은 질서에 대한 학설이다. 정명론의 득세는 예법이 누렸던 권위를 통해 설명된다." "봉건질서와 예법이 지배하는 동안 정확한 말과 논리는 올바른 행동과 윤리와 불가분했다. 따라서 우주의 제반 동태는 군주의 행위에 좌우된다는 명제에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될 수 없었다. 사물과 사유의 질서는 그 누구보다도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 군주가 어느 것 하나 경솔히 명명하지 아니하고 누구 하나 의례에 부합되지 않게 임명하는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리 잡게 된다. 모든 귀족과 현자들은 군주처럼 행실이 자신의 위상, 즉 자신이 부여받은 지위와 이름에 걸맞도록 노력해야 한다. 명(名, 개인의 이름)은 개인의 지칭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돌아오는 명예와 수명, 유산(分), 재산과 직분의 지칭에도 사용된다.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직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는 의례의 원칙이기도 하다. 〈예법이 모든 것에 퍼져나가면, (만물의) 직분도 고정된다(定).〉"(455-6)


"흔히 행정에 관여했으며 군주의 이상적인 위인됨을 이상으로 삼았던 작가들을 법가(法家)라는 이름의 항목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정론가(政論家)들과 구별된다. 정략가들이 특히 외교적 제휴를 성사시키는 데 전념한 반면, 이 법률가들은 국가가 내부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었다. 이들의 주된 관심영역은 영토와 군대의 조직화, 경제와 재정, 사회의 번영과 규율이었다. 일체의 전통체계를 거부한 궤변가들이 정략가나 외교가들에게 최상의 보조자로 보였던 반면, 행정가들이나 법률가들은 안정된 질서를 사유의 관건으로 삼았던 논리학자(名家)들에게 공조를 구했다. 궤변가들이 봉건세계를 전복시켜 그들의 군주가 패권을 장악하도록 도왔던 것과는 달리, 이 법률가들은 행정의 혁신적인 시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사상으로서 군주와 법의 존엄성을 주장하게 되었다."(463)


"법가의 군대식 위계질서는 완전히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상벌제도에 근거를 둔다. 통치에는 부정적 또는 긍정적 평가를 적용하는 권력으로서의 형(刑)과 덕(德)이라는 '두 주먹'이 있다. 군주는 두 양상을 지닌 이 권력의 어느 부분도 위임하지 않는다. 승진과 강등은 관리나 영주가 자의에 따라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승진과 강등은 법의 권한이다. 군주는 공시된 법만이 통치할 수 있는 행정에는 개입할 수 없다. 반대로 어떠한 신하도, 재상도 군주의 소관 사항에 개입할 수 없다. 국가의 최고 지침은 군주의 결정 사항이다. 정치는 오직 군주의 권한이다. 권(權, 기회마다 운명의 무게權를 자기 쪽으로 기울게 하는 외교적 결탁)에 힘입어 세(勢, 상황에 따른 성공의 조건)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법들은 오직 군주 고유의 몫이다. 〈기법(術)은 군주가 쥐고 있는 고삐요, 법령(法)은 관리의 규칙이다.〉 이렇듯 법가는 법과 통치술을 완연히 구별한다."(471)


2장 공익책(公益策)


"공자는 이익의 추구뿐만 아니라 일체의 비속한 경쟁을 배격한다. 수양이 된 사람은 오롯이 극기(克)를 추구한다.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는 의연한 경구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의 귀족정신윤리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공자는 군주의 효능성인 도-덕을 세습적 자질에 한정하는 관점에서 탈피한다. 그러나 공자는 이 효능성은 일체의 비루한 집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자인 군주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귀족만이 도와 덕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귀족은 '농토에서 자유로우니' 저급한 세사와 걱정거리를 벗어나 생활하며, 예법을 실천해 자신을 문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와 덕의 체득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좌우되는 문제로 항구적인 집중과 매순간의 집요함을 요구한다." "유가사상에서 도-덕은, 인간의 덕목으로서 문명사회에서 타인과 교섭해서만 배양되는 인(仁)과 의(義)의 실천으로 도달하는 이상적인 자기완성과 동일시된다."(488-9)


"자기수양(수기修己 또는 수신修身)은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의무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생활을 통해 형성되니 현자들이 도달한 자기수양은 사회를 유익하게 한다." "사람을 아는 것이나 자신을 수양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앎은 단순한 성찰이나 단순한 교분을 통한 앎이 아니다. 현자가 행동을 향도하기 위해 알고자 하는 개인의 행동들은 결코 독자적인 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자신의 생활공간이자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을 형성해주는 공간인 위계집단과 결고 관념적으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인간에 대한 관념적인 학문이 아닌 심리학과 윤리 그리고 정치를 포함하는 생활기예의 정립을 도모했다. 이 기예는 선대로부터의 앎과 체험 그리고 상호관계적인 삶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제반 관찰을 통해 형성된다. 인문주의는 이 기예나 앎에 적실한 이름이다."(492-4)


"묵자는 염세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다. 그의 태도를 규정짓기는 쉬우나 그의 사상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이 설교자는 증명보다는 설득에 집착하여 논증방식에 선동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묵가의 핵심은 통치의 기원에 관한 고유의 시각에 있다. 인간의 사회성(仁)보다는 내 것과 남의 것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차이를 중시한 묵가는 인간이 무질서(亂)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결정을 군주에 일임하고 그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묵자의 사상은 법가와는 또 다른 유형의 과격성을 지닌다. 묵자는 어떠한 이완도 용납하지 않는 이상적인 통일성(同)을 내세운다. 왜냐하면 총체적이고 항구적인 통일성이 없으면 무질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왕이 법을 명령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법가와는 달리, 묵자는 군왕이 생각을 하명해야 한다는 사상을 펼친다. 이것이 묵자가 으뜸과 성현과 군주의 의미를 지닌 인(仁)과는 구별하여, 의(義)에 부여한 의미다."(497-9)


3장 신선술(神仙術)


"도가의 현자들은 타인이나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의도나 바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롯이 선(仙)을 추구했다. 그들은 금욕주의자이면서도 고행을 거부했으며, 신앙인들이면서도 신과 교리와 윤리와 신념 등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신비주의자들이면서도 기도나 감정의 분출은 극히 냉정했고 비개인적이었다. 나아가 오직 자신들만이 인간의 진정한 친구임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선행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경멸을 표하면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진정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했다. 그들은 사회적 의무에 관련되는 모든 언급을 신랄하게 야유했다. 중국역사에서 도가의 현자들은 강력한 권위의 교주들, 탁월한 정론가들, 변증에 뛰어났던 변론가들, 심오한 사상의 철학가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가들로서 위상을 누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로지 겸허와 초연과 은둔 같은 태도에 중요성을 부여하여, 자취를 남기는 자는 어느 누구도 성인이 아님을 암시했다."(507-8)


"도가의 기본적인 논지는 공평하고 불변하는 하늘이 사계절을 관장하면서도 언제나 본래 그대로라는 사상에서 파생되었다. 즉, 도는 보편적 자발성의 내재적 원리로 제시된다. 도는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공정하고 무차별적이다. 도는 '비어 있다'(虛). 도에는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도 있지 않아 어떠한 자발적인 행동도 방해받지 않는다. 도는 일체의 특수성도 지닐 수 없는 총체이자 명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개별화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독립적이고 비편파적이기에 도(하늘 자연)는 개입과는 달리 오직 작용밖에 머물면서 작용에 활기를 불어넣을 뿐이다. 도는 무위, 즉 무간섭을 유일한 원칙으로 삼는다. 만약 우리가 도의 활동성과 행동성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도가 연속적인 공허 속에서 무한히 빛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총괄적인 공존의 원리로서 도는 하나의 중립지대를 형성하여 자발적인 상관작용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이 상관작용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한다."(529)


"도가의 대가들이 양자(楊子)의 절대적 개인주의와 변별될 수 있었던 것은 주관주의를 극복하게 해준 우주의 통일성을 인식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전혀 염세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인간적인 오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만물의 평등성에 대한 신념에 기인한다." "도가의 정치사상에서 경건과 공익의 개념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장자는 묵자가 제시한 상부상조 개념을 조롱한다. 묵자의 이 개념을 따르면,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부류의 궤변들은 잔혹한 전제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구원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전제군주 하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미봉책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따라서 유일한 선택의 여지는 정치 너머의 커다란 정치에 있을 뿐이다. 즉 스스로 구원하는 자만이 남을 구원할 수 있으니 자신을 구원하는 것만으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550-1)


4장 정통유가(正統儒家)


"공자의 불충한 제자들은 인간의 언행을 관찰하여 인격의 의미를 정제하려 하기보다는 관례적 전통에 관한 연구에 모든 앎을 예속시키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훗날 주된 개념으로 정립될 한 개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것이 성(誠)의 개념이다. 군자는 모든 점에서 주의 깊고 세심하게 의례를 따라야 한다. 매순간 가장 중요한 행동이나 사소한 거동 하나에도 '성심(誠心)을 다해' 의례준칙을 따르는 자만이 성실한 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렇듯 마음 됨됨이를 관건으로 삼는 윤리가 보수주의의 저변을 이루었다. 도가에서 '마음'이라는 용어는 전생(前生)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공자를 내세운 예법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정통유가의 승리에 기여한 통합주의 성향이 한결 진척되었음을 나타낸다. 여기에 맹자는 고결한 마음에 관한 그의 양심론(良心論)을 통해 유가에 새로운 도약을 가져왔다."(560-1)


"사실 맹자에게 영예를 가져다준 것은 그의 논변과 논지가 아니라 그의 태도였다. 맹자는 정통유가 최초의 대변인이자 민주주의적 색조 아래 귀족정신의 윤리를 제시한 최초의 논변가였다. 나아가 그는 옛 원칙들을 선양하여, 전제군주들의 입을 막아버릴 목적으로 궤변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몸으로 일하는 자들은 심성으로 일하는 자들을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초의 문사로서, 문사의 전형을 정착시킨 인물이었다. 문사는 용기 있는 비난을 가할 자세를 항상 갖추되 결코 알현을 간청하지 아니하며, 먼저 부탁은 아니하되 언제나 격식에 따라 초빙을 받아야 하며, 또한 직책은 기꺼이 받아들이되 뇌물은 거절해야 한다. 문사는 자긍심 속에서 이해관계에 초연하고 자신의 명예와 독립성을 지켜야 하며, 군주일지언정 그 누구도 현자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신의 모든 태도를 통해 모두에게 주입해야 한다."(568)


"순자가 보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지고한 위상을 부여하는 원천이다. 사회적 삶의 조건은 직분(分), 즉 직위와 직무와 부와 권위의 분배에 있다. 사회적 삶의 이러한 기본조건은 사회 목적을 규정한다. 사회 목적은 결코 법가가 시사하는 것처럼 단순히 사물들에 대한 통제력이나 인간집단으로서 권능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오로지 윤리적인 활동체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무질서한 집단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회가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을 인정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갖춰 공정성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의 본성만을 따른다면 공정성은 실천될 수 없으니, 그 실천은 오직 일체의 관습, 즉 예(禮)의 지배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사회의 힘과 인간의 윤리적 가치는 하나의 동일한 토대에 의거한다. 이 토대는 다름 아닌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자연에 덧붙은 것으로서 사회적 삶의 필요에 따라 인간, 즉 현자들이 일구어낸 문명이다. 선(善)은 자연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다."(571)


"동중서는 선정 통치론의 지지자로서, 인간의 본성은 향상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수용했다. 그리고 음악도 인간 본성의 향상에 기여하지만 예는 더욱 크게 기여한다는 주장을 통해 통치의 기본임무가 백성의 교화에 있음을 역설한다." "이처럼 철저한 정통론자였던 동중서는 올바른 생각과 행동교육을 담당할 관리들을 문사들에서 뽑을 것을 교육정책으로 제안했으며 (한조漢朝는 그의 제안을 채택했다) 교육가의 자세로서 공평문사를 요구했다. 교육관료는 출세를 지향해서는 안 되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재산을 소인배들처럼 금고에 보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부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의 순환은 봉건시대에 귀족들의 의무이기도 했다. 동중서는 관료들의 의무가 평상인들의 의무와 같을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한대에 정통유가의 전파가 사회적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관료계층의 형성에 전력한 인물들 속에 포함될 수 있다."(582)


결론


"중국인들은 질서를, 추상적 명령체계나 추상적 추론체계에 의해 확립될 수 없는 크나큰 평화(太平)의 양상으로 생각한다. 이 평화가 도처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범절, 자발적인 연대감, 자유로운 위계질서에 대한 첨예한 의식(意識)을 요구하는 상호수용의 추구가 필수적이다. 중국의 논리는 엄격한 종속논리가 아니라 유연한 위계질서의 논리다. 중국인은 질서개념에 이 개념의 출원지인 여러 형상들과 감정들이 구체적으로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보지하려 했다. 중국인이 질서개념에 도를 상징으로 부여하여 도를 모든 독립성과 일체 조화의 원리로 간주하든, 또는 질서개념에 이(理)를 상징으로 부여하여 이를 공평한 모든 위계질서나 분배의 원리로 간주하든지 간에, 질서개념에는 이해와 화합이야말로 자신의 내면과 주위의 평화를 구현하는 길이라는 생각─물론 아주 치밀하면서도 그 토대인 향촌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생각─이 담겨 있다."(5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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