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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론 - 일반상대성이론 100년사
페드루 G. 페레이라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문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명백해졌듯이, 만일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면, 우주의 대부분은 빛을 내지 않는다. 우주는 빛을 방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사하거나 흡수하지도 않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관찰 증거는 압도적이다. 우주 전체의 거의 3분의 1이 마치 성난 벌떼처럼 은하들 주위에 모여 있는 비가시적이며 무거운 물질, 곧 암흑물질(dark matter)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3분의 2는 공간을 팽창시키는 기묘한 존재인 암흑 에너지(dark energy)가 차지한다. 겨우 우주의 4퍼센트만이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 곧 원자(atom)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미미한 존재인 셈이다. 단,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다는 전제 아래에서 말이다. 우리가 일반상대성이론의 한계에 접근하는 중이고, 그 이론에 금기 가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16)
1 사람이 자유낙하한다면
"물리학과 역학의 법칙들은 물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힘을 받으면 어떻게 가속하거나 감속하는지에 관한 규칙들이다." "관성 기준틀이란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기준틀을 말한다. 당신이 멈추어 있는 장소에서, 이를테면 서재나 카페에서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관성 기준틀 안에 있는 것이다. 또다른 고전적인 예는 아무 진동 없이 매끄럽게 전진하는 창 없는 열차의 내부이다. 당신이 그런 열차 안에 앉아 있다면, 열차가 전진하는지 여부를 알아낼 길이 없다. 원리적으로, 한 관성 기준틀이 빠르게 운동하고 다른 관성 기준틀이 멈추어 있을 때, 두 관성 기준틀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야 한다. 당신이 한 관성 기준틀에서 실험을 하여 어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한다면, 그 결과는 임의의 다른 관성 기준틀에서 얻은 측정 결과와 동일해야 한다. 물리학 법칙은 어느 관성 기준틀을 기준으로 삼든지 상관없이 동일하다."(23)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관련짓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다." "가령, 막대자석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자기력을 느끼고 전기력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막대자석 옆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사람은 자기력뿐 아니라 약간의 전기력도 느낀다. 맥스웰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관찰자의 위치나 속력과 상관없이 일정한 하나의 힘으로 통합했다. 그런데 뉴턴의 운동 법칙들과 맥스웰의 전자기 법칙들을 조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세계가 정말로 양쪽 법칙들을 모두 따른다면, 한 관성 기준틀에서는 아무 힘도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관성 기준틀에서는 힘을 느끼는 장치를 자석과 전선과 도르래 등으로 제작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 즉, 관성 기준틀들을 구별할 수 없어야 한다는 규칙이 깨진다. 따라서 뉴턴의 법칙들과 맥스웰의 법칙들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법칙들에 존재하는 이 '비대칭성(asymmetry)'을 수정하고 싶었다."(23-4)
"뉴턴이 설명한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아름답고 간결한 상대성이론의 두 전제 모두를 위반했다. 우선 뉴턴의 이론에서 중력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만일 두 물체가 갑자기 서로의 곁에 놓인다면,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그 즉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력이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상대성원리에 따라서 어떤 신호, 어떤 효과도 광속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없다면, 그런 즉각적인 효과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에 못지않게 난처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역학과 전자기학을 조화시켰지만 뉴턴의 중력 법칙을 도외시했다는 사실이었다. 뉴턴의 중력은 서로 다른 관성 기준틀에서 다르게 보였다." "여러 해 뒤에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중력 이론의 단초를 떠올렸다. 〈만일 사람이 자유낙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28-9)
"당신이 토끼 구멍으로 들어가 자유낙하는 앨리스라고 상상해보자. 중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당신의 낙하속력은 일정한 비율로 증가할 것이다. 그 증가 비율, 곧 가속도는 중력의 효과와 정확히 일치할 것이고, 따라서 당신은 당신을 끌어당기거나 미는 힘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물론 쏜살같이 공간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기분은 틀림없이 끔찍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여러 물체들이 당신과 함께 떨어진다고 상상해보자. 책, 찻잔, 당신과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하얀 토끼 따위가 말이다. 그 모든 물체들도 중력의 효과와 일치하는 비율로 가속할 것이고, 따라서 함께 떨어지는 당신 주위에 둥둥 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 물체들은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은 가속도 운동과 중력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우리가 상상한 자유낙하에서는 중력과 가속도 운동이 정확히 상쇄된다."(29)
"그렇게 낙하하는 사람을 상상한 1907년의 그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도 사이에 틀림없이 심층적인 관련성이 있으며 그 관련성이 자신의 상대성이론으로 중력을 기술하기 위한 열쇠임을 깨달았다. 만일 상대성원리를 수정하여 물리학 법칙이 서로에 대해서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여러 기준틀에서뿐 아니라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기준틀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중력이론과 전자기학과 역학을 융합할 수 있을 법했다. 비록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지만, 아인슈타인의 이 찬란한 통찰은 상대성이론을 더 일반화하는 과정의 첫걸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과 거기에서 도출한 귀결들에 관하여」라는 보고서에서, 중력이 있으면 광속이 달라지고 시계가 더 느리게 작동할 것임을 지적했다. 그렇게 상대성원리를 일반화하면 어쩌면 수성 궤도의 미세한 일그러짐도 설명할 수 있을 법했다."(30-1)
2 가장 값진 발견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도출되는 예측 하나는 먼 별들에서 방출된 빛이 태양처럼 크고 무거운 천체를 가까이 스쳐지나면, 그 빛의 진로가 휘어진다는 것이었다. 에딩턴은 그런 먼 별의 무리인 히아데스 성단을 연중 두 시점에 관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먼저 아무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고 히아데스 성단에서 오는 빛을 중간에서 구부릴 천체도 없을 때 그 성단에 속한 별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는 태양이 히아데스 성단 앞에 놓였을 때 다시 한번 그 별들의 위치를 측정할 것이었다. 이 측정은 태양의 밝은 빛이 달에 거의 다 가려지는 개기일식 중에 실시해야 할 것이었다. 1919년 5월 29일이 되면, 히아데스 성단이 태양의 바로 뒤에 놓여 측정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치 변화가 약 1,000분의 4도, 곧 1.7초라면,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정확히 옳음이 입증될 것이었다. 이것이 에딩턴이 품은 간단명료한 목표였다."(48)
"에딩턴의 도박은 보람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하고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물리학의 예언자로 우뚝 섰다. 이때 이후 에딩턴은 새로운 상대성이론을 논할 때는 누구나 조언을 구하는 극소수의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견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해석하거나 발전시킬 방향에 관한 지침으로서 누구의 견해보다 더 높은 권위를 누렸다. 또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에딩턴의 극적인 탐사는 아인슈타인을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에딩턴의 발견은 아인슈타인의 인생을 바꾸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의 인기와 명성을 과학이론으로서는 누리기 힘든 수준으로, 적어도 한동안은 올려놓았다. 아인슈타인은 수백 년 동안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온 뉴턴을 몰아낸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비록 난해하고 극소수만 이해하는 수학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었지만, 에딩턴의 검증을 멋지게 통과했다."(52)
3 옳은 수학, 형편없는 물리학
"1917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들을 푸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몇 가지 전제를 채택했다. 그의 이론에서는 물질과 에너지의 분포가 시공의 행동을 결정했다. 따라서 우주 전체를 모형화하려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은 첫 시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논리적인 전제를 채택했는데, 그것은 물질과 에너지가 시공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는 전제였다." "이 전제 하에서 장방정식들은 훨씬 단순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주 기이한 결론이 나왔다. 즉, 아인슈타인의 방정식들은 그런 우주가 진화한다고 예측했다. 어느 시점에서인가, 고르게 퍼진 에너지와 물질의 조각들 모두가 조직화된 방식으로 서로에 대해서 운동하기 시작할 것이었다. 가장 큰 규모에서는 그 무엇도 멈추어 있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에는 만물이 쪼그라들면서 시공을 끌어당겨 우주 전체가 붕괴하여 사라질 것이었다."(54-5)
"우리 은하 바깥의 모습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당시의 천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도 하늘이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결국 자신의 물리학적 직관과 선입견을 따르기로 한 아인슈타인은 진화하는 우주를 자신의 이론에서 배제하기 위해서 한 가지 수정을 제안했다. 그는 장방정식들에 새로운 상수항을 추가했다.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로 불리는 그 항의 역할은 우주의 내용물 전체가 발휘하는 중력을 정확히 상쇄함으로써 우주를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온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다고 전제한 에너지와 물질, 곧 평범한 내용물 전체는 시공을 끌어당기는 반면, 우주상수는 시공을 밀어내 우주의 수축을 막는다. 이 밀어냄과 끌어당김이 우주를 미묘한 균형상태로 유지한다. 아인슈타인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은 정적인 상태로 말이다."(55-6)
"1922년, 「공간의 곡률에 관하여」라는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소련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은 아인슈타인이 얻은 결과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물질과 우주상수가 우주의 기하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하나의 수, 곧 공간의 전반적 곡률이 시간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사실이었다. 우주 속의 평범한 물질, 즉 곳곳에 흩뿌려진 별들과 은하들은 공간을 끌어당기고 수축시킬 것이었다. 만일 우주상수가 양수라면, 우주상수는 공간을 밀쳐내고 팽창시킬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두 효과가 균형을 이루어 공간이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프리드만은 이 정적인 해가 한 가지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해는 우주가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질의 영향이 우세한가 우주상수의 영향이 우세한가에 따라서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60)
# 수학적으로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제시한 학자들 : 드 지터 - 프리드만 - 르메트르 /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관찰로 입증한 학자들 : 허블 & 휴메이슨
4 수축하는 별
"1939년,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지도학생 하틀랜드 스나이더와 함께 무거운 별이 일생을 마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해햐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이하고 이해하기 힘든 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거의 25년 동안 어두운 배경에 웅크리고 있던 해였다. 오펜하이머는 충분히 크고 조밀한 별은 일생을 마치면서 수축하여 보이지 않게 될 것임을 발견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잠시 후 〈그 별은 멀리 떨어진 관찰자와의 소통을 단절하기에 이르고 오직 그 별의 중력장만 존속한다.〉 마치 빛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수축하는 공 주위에 신비로운 장막이 드리워 그 공을 외부세계로부터 감추는 듯할 것이며, 시공은 휘어져 탄탄하기 그지없는 매듭을 이룰 것이었다. 아무것도, 심지어 빛도 그 장막 바깥으로 탈출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펜하이머가 얻은 결과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에서 나온 또 하나의 수학적 괴짜였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79-80)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가 이 결과에 도달하기 거의 25년 전에 독일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행성이나 별 같은 구형 질량 주위의 시공을 연구했다." "당신이 별에 접근하면,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만일 별이 작지만 충분히 무겁다면, 별은 어떤 구형 곡면에 의해서 가려져 그 곡면 너머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 여러 해 뒤에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가 발견하게 될 장막이 바로 이 곡면이다. 이 곡면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려는 모든 것을 좌절시킨다. 무엇이든 별에 너무 접근하다가 그 구형 경계면 안으로 떨어지면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 경계면은 귀환불능 지점이다. 슈바르츠실트의 이상한 구면 밖으로 나가려면, 광속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슈바르츠실트는 반세기도 더 지나서 '블랙홀(black hole)'로 명명될 대상을 발견한 것이었다."(81-2)
5 완전히 돌았어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들을 연구해 도출한 괴델의 해는 한 가지 기이한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모든 우주와 극적으로 달랐다.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우주에 사는 관찰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공의 다양한 구역을 탐사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과거를 뒤에 남기고 점점 더 늙어간다. 그 우주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명확히 구분된다. 그러나 괴델의 우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만일 관찰자가 충분히 빠르게 움직인다면, 그는 회전하는 시공을 가로질러 원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심지어 정확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시공여행을 통해서 그 여행을 떠나기 전의 자기 자신에게로 가서 여행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괴델의 우주에서는 과거로 여행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정말로 자연을 반영한다면, 우리의 세계 경험과 크게 어긋나는 괴델의 부조리한 우주는 실재하는 물리적 가능성이다."(121-2)
6 라디오 데이스
"프리드만의 모형이나 르메트르의 모형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때 도달하는 우주의 시작은 공간 전체가 단일한 점에 무한히 집중된 순간에 해당했다. 다시 말해서 공간, 시간, 물질이 바로 그 최초 순간에 생겨났다. 호일과 그의 친구들이 보기에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소리였다. 훗날 호일이 말했듯이, 〈그것은 과학적으로 서술할 길이 없는 비합리적 과정이었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창조를 어떤 물리학 법칙들로 서술할 수 있겠는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고, 호일이 보기에는 〈기본 전제를 빼돌려서 직접적인 관찰의 도전을 결코 받을 수 없는 곳에 놓은 명백하게 미흡한 생각〉이었다. 이들의 반발은 에딩턴이 르메트르의 〈태초의 알〉을 소스라치며 폄하했던 일을 연상시켰다." "본디와 골드는 최초 순간─또는 나중에 호일이 붙인 이름으로는 '빅뱅'─을 거의 추상적이고 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즉, 시작은 없을 테고, 항상 (한결같은) 정상상태에 머무는 영원한 우주만 있을 터였다."(134-5)
"전파는 빛 파동과 유사하게 행동하지만, 파장이 가시광선보다 10억 배 길다. 우리 눈에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햇빛의 대부분을 이룬다)의 파장은 100만 분의 1미터 미만이다. 대조적으로 전파의 파장은 1밀리미터에서 수백 미터까지 다양하다. 칼 잰스키는 우리 은하가 대단히 많은 전파를 밤낮으로 방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보기에 태양은 우리 은하 전체보다 훨씬 더 밝지만 그렇게 많은 전파를 방출하지 않았다. 1933년에 발표한 논문 「우주에서 기원하는 듯한 전기적 교란」에서 잰스키는 모든 전파 방해의 원인을 세계적으로 분류하고 전파가 날아오는 방향을 보여주는 지도를 제시했다. 그의 논문은 우주를 관찰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사했다. 렌즈가 장착된 거대한 망원경을 산꼭대기에 설치하는 대신에, 이 새로운 관찰은 철조망, 강철 막대기, 접시를 가지고 탁 트인 평원에서 할 수 있었다. 먼 천체의 희미한 빛을 관찰하는 대신에, 천문학자들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포착할 수 있었다."(139-40)
"정상우주론을 살펴보던 마틴 라일에게 어두운 전파원의 개수와 밝은 전파원의 개수 사이의 비율은 우리가 사는 우주의 유형을 알려주는 좋은 단서이다. 먼 전파원에서 오는 전파는 오랫동안 이동하여 우리에게 도달하므로, 먼 전파원을 관찰할 때 우리는 과거의 우주를 관찰하는 셈이다. 만일 우리가 호일, 골드, 본디의 정상상태 우주에서 산다면, 전파원들의 밀도는 시간에 따라서 변함없이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 부피 안에 있는 전파원의 총 개수는 그 부피에 정비례해야 한다. 반면에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제안한 것과 같은 진화하는 우주 모형에서는, 우주의 밀도가 지금보다 과거에 더 높다. 따라서 멀고 어두운 전파원이 가깝고 밝은 전파원보다 더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두운 전파원의 개수와 밝은 전파원의 개수를 세서 비교하면, 우리 우주가 빅뱅 모형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정상상태 우주 모형에 부합하는지 판정할 수 있을 것이다."(143)
7 휠러리즘
"존 아치볼드 휠러가 유능한 제자 찰스 미스너와 함께 개발한 아이디어는 일반상대성이론에 전하(electric charge)를 추가하되, 어떤 전하도 도입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휠러가 이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서 고안한 휠러리즘은 〈전하 없는 전하(charge without charge)〉였다. 이들은 사고실험에서 여러 수학 기법을 이용하여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시공 구역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들을 '웜홀(wormhole)'이라는 관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터널과 유사한 그 웜홀로 전기장선들(electric field lines)을 꿰는 데에 성공했다. 웜홀의 한쪽 끝에서 빠져나오는 장선들은 그 끝이 마치 양전하를 띤 것처럼 음전하를 끌어당기게 만들 것이었다. 웜홀의 반대쪽 끝으로 들어가는 장선들은 그 끝이 마치 음전하를 띤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 것이었다. 요컨대 웜홀은 서로 멀리 떨어진 양전하와 음전하의 쌍처럼 행동할 텐데, 실제로 이 상황은 전하를 띤 입자들과 전혀 무관하다."(151-2)
"〈질량 없는 질량(mass without mass)〉이라는 휠러리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질량을 가진 대상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지만, 휠러는 아인슈타인이 얻은 결과들을 질량과 전혀 상관없이 도출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빛은 질량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광선 다발을 압축하여 그 다발이 공간과 시간을 충분히 많이 휘게 만들 수 있다면, 광선 다발이 질량 덩어리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휠러는 제안했다. 그런 빛 뭉치, 즉 휠러가 '지온(geon)'으로 명명한 대상은 무게를 가질 것이고 다른 지온들을 끌어당길 것이었다. 이때 광선들은 휘어져서 도넛 모양의 코일을 이루어야 하고 또한 쉽게 해체될 수 있지만 실제 질량 없이 질량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었다. 휠러는 또다른 학생 킵 손과 함께 지온이 즉각 블안정해지지 않으면서 자연에 존재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작업에 착수했다."(152)
"그리고 당연히 양자와 일반상대성이론을 조화시키는 문제도 있었다. 이 문제는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휠러로서는 해결을 시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휠러는 만일 당신이 아주 작은 규모의 시공을 관찰할 수 있다면, 기이한 효과들의 발생을 보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큰 규모에서 시공은 질량을 가진 대상들(휠러가 고안한 지온과 웜홀도 포함된다)에 의해서 완만하게 휘어지기는 했어도 매끄럽게 보이겠지만, 작은 규모에서 당신은 있는 줄 몰랐던 울퉁불퉁함을 보게 될 것이었다. 정말로 성능이 좋은 현미경으로 관찰한다면, 시공이 마구 요동하는 상태임을 발견할 것이다. 실제로 양자 불확정성 때문에 시공은 아주 작은 규모에서는 부글거리는 거품더미처럼 보여야 한다. 우리가 시공의 근본적인 울퉁불퉁함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흐릿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152-3)
8 특이점
"일찍이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는 단순한 근사(approximation)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해를 구성했다. 즉, 완벽한 구형의 물질 덩어리가 쪼그라드는 상황을 전제했다. 휠러는 그것이 너무 심한 이상화(理想化)라고 보았다. 실제로 수축하는 별이 지구처럼 울퉁불퉁하다면, 수축과정이 심하게 왜곡되어 특이점이 아예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저 펜로즈가 〈구형 대칭성을 깨는 불규칙성들이 시공 특이점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는 증명을 담은 논문을 내놓았다." "그는 임의의 시공을 대상으로 삼고 그 시공의 가장 기초적인 속성 몇 가지와 그 시공에 들어 있는 물질의 유형을 살펴봄으로써 그 시공이 어떤 일을 겪을지를, 즉 한 점으로 수축할 것인지 아니면 무한히 팽창할 것인지를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규칙들을 휠러가 〈최종상태 문제〉라고 부른 중력 붕괴 문제에 적용하여 특이점이라는 결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179-81)
"마틴 라일은 케임브리지의 정상우주론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에서 처음에는 실패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는 향상되고 있었다." "마틴 리스는 적색편이가 측정된 퀘이사 35개를 표본으로 삼고 이들을 세 무리로 분류했다. 한 무리는 낮은 적색편이를 나타냈다. 즉, 이 무리는 시간 공간적으로 지구에서 가까운 퀘이사들이었다. 둘째 무리는 중간 수준의 적색편이를 나타내는 퀘이사들이었고, 마지막 무리는 높은 적색편이를 나타내는 먼 과거의 퀘이사들이었다. 우주가 시간에 따라서 진화하지 않는다고 보는 정상우주론이 옳다면, 위의 세 무리에 대략 같은 개수의 퀘이사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리스는 첫째 무리에 속하는 최근의 퀘이사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퀘이사가 셋째 무리에 속했다. 그래프를 그려보니 모든 것이 명백했다. 다시 말해서, 퀘이사의 개수가 시간에 따라서 변화했고(과거에 더 많았고), 따라서 정상우주론은 옳지 않았다."(182-3)
"1968년 2월, 벨과 휴이시를 비롯한 공동 저자들은 〈맥동하는 전파원들에서 나오는 이례적인 신호가 멀라드 전파천문대에서 포착되었다〉면서, 〈그 복사[신호]는 우리 은하 내부의 국지적 천체들에서 나오는 듯하며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의 진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차트 용지에 기록된 스파이크들이 밀도가 높은 전파원인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의 진동 혹은 맥동을 보여준다고 추측했다." "펄서(pulsar)는 중성자별의 존재를 보여주는 최초의 실질적인 증거였다. 펄서는 실은 맥동하지 않고 회전한다. 회전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신호를 방출하는 것이다. 아무튼 펄서는 중력 붕괴의 과정을 완전히 규명하려면 채워넣어야 할 단계로서, 란다우가 상정하고 오펜하이머가 연구하고 휠러와 그의 제자들이 아주 꼼꼼하게 탐구한 가상의 천체였다. 펄서는 펜로즈의 불가피한 특이점이 형성되기 직전의 마지막 단계였다."(187-9)
9 통합의 슬픔
"(중력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강한핵력, 약한핵력, 전자기력을 설명하는) 양자물리학과 양립할 수 없는 유일한 이론으로 남아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와 양자물리학의 토대를 조화시키는 통일을 향한 첫걸음은 폴 디랙 자신이 전자를 기술하기 위해서 개발한 근본 방정식─이른바 디랙 방정식─이었다. 양자물리학 방정식들은 시스템(예컨대 수소 원자에서 양성자에 속박된 전자)의 양자상태가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진화하는지 알려준다. 양자물리학은 공간과 시간을 아주 명확하게 구분한다. 반면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을 합쳐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시공으로 만든다. 또 역학 법칙들과 빛에 관한 법칙들을 합쳐서 일관된 틀에 맞추어 넣는다. 폴 디랙은 이 틀에 양자물리학 법칙들도 맞추어 넣는 데에 성공했다. 디랙의 방정식 덕분에 양자물리학까지 포함해서 물리학 전체가 특수상대성원리에 따를 수 있게 되었다."(197-9)
"디렉이 발견한 방정식은 페르미온인 전자의 양자물리학적 행동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도 부합하게 기술한다. 구체적으로 이 방정식이 기술하는 것은 공간상의 특정 위치에 있거나 특정 속력을 가진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다. 디랙은 공간을 따로 떼어내지 않았다. 대신에 디랙의 방정식은 특수상대성이론이 요구하는 대로 시공 전체에서 하나의 일관된 방식으로 정의된다. 이 방정식에는 자연세계와 기본 입자들에 관한 통찰과 정보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디랙 자신도 놀랐지만, 또한 그의 방정식은 반입자(antiparticle)의 존재를 예측했다. 반입자는 짝을 이루는 입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량이 반대이다.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자(positron)라고 한다. 양전자는 다른 모든 면에서 전자와 똑같지만 음전하가 아니라 양전하를 띤다. 디랙의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와 양전자가 둘 다 자연에 존재해야 한다." "실제로 1932년에 우주선(cosmic ray)에서 양전자가 발견되었다."(200)
"1974년 2월에 열린 옥스퍼드 심포지엄에서 호킹은 양자물리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결합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블랙홀이 실은 검지 않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빛을 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후 40년 동안 양자중력이론을 바꾸게 될 희한한 주장이었다." "1970년대 초에 스티븐 호킹은 이미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의 소속은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DAMTP)였다. 데니스 시아마의 지도를 받은 호킹은 로저 펜로즈와 함께 연구하여 시간의 시초에 특이점이 존재했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970년대 초에 그는 우주론에서 블랙홀로 관심을 돌려서 브랜던 카터, 베르너 이스라엘과 함께 블랙홀은 털이 없음을 최종적으로 증명했다. 이 증명에 따르면, 블랙홀은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상실한다. 그리고 질량과 회전과 전하량이 같은 블랙홀들은 모두 똑같은 모습이다."(208)
"사건지평 근처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호킹은 거기에서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양자물리학은 진공에서 입자와 반입자의 쌍이 생겨나는 것을 허용한다. 평범한 조건에서는 입자와 반입자가 생겨나자마자 곧바로 충돌하여 소멸한다. 그러나 호킹이 발견했듯이 사건지평 근처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즉, 반입자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입자는 남는 경우가 일부 발생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반입자들은 블랙홀로 빨려들고, 블랙홀은 고에너지 입자들의 흐름을 느리지만 확실하게 방출할 것이다. 호킹은 방출되는 입자들이 광자처럼 질량이 없을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상세히 계산한 끝에, 멀리 떨어진 관찰자는 블랙홀이 흡사 희미한 별처럼 믿기 힘들 정도로 약한 빛을 내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우리의 태양을 비롯한 별들처럼 블랙홀에도 온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었다."(212)
"요컨대 호킹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이 양자물리학 때문에 빛을 방출하고 온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단히 명료한 수학적 결론이었던 이 발견에서, 호킹은 블랙홀이 방출하는 복사의 온도가 블랙홀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계산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예컨대 질량이 태양과 같은 블랙홀은 온도가 10억 분이 1 켈빈일 것이고, 질량이 달과 같은 블랙홀의 온도는 약 6켈빈일 것이었다. 블랙홀이 빛을 냄에 따라서, 블랙홀의 질량은 조금씩 줄어든다. 이 과정은 엄청나게 느리게 진행된다. 태양 질량의 블랙홀이 질량을 모두 잃으려면(호킹의 표현으로는, 〈증발하려면〉),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훨씬 더 작은 블랙홀들은 훨씬 더 빨리 증발할 수 있다. 예컨대 질량이 약 1조 킬로그램인 (천체물리학의 기준에서는 작은) 블랙홀은 우주의 수명보다 짧은 시간 안에 증발할 것이며 마지막 10분의 1초 동안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할 것이다."(213)
10 중력을 보았다
"중력파와 중력의 관계는 전자기파와 전자기력의 관계와 같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파동은 시공 자체의 잔물결일 것이다. 시공은 말하자면, 물웅덩이처럼 행동한다. 당신이 웅덩이에 돌멩이를 던지면, 잔물결이 일어나서 웅덩이의 가장자리까지 퍼져나간다. 전자기파나 물웅덩이의 잔물결과 마찬가지로, 중력파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에너지를 운반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기파와 달리, 중력파는 포착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력파는 중력 시스템에서 그 외부로 에너지를 운반하기는 하는데, 이 운반의 효율이 아주 낮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도는데, 이 과정에서 지구는 중력파를 방출하면서 천천히 에너지를 잃고 태양에 접근한다. 그러나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아주 천천히, 대략 하루에 양성자의 지름만큼 줄어든다. 즉, 지구가 존속하는 기간 내내 지구는 태양에 겨우 1밀리미터쯤 접근할 것이다."(218)
"1974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와 러셀 헐스는 중성자별 두 개가 아주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주위를 도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 중성자별은 1,000분의 몇 초마다 폭발적으로 빛을 내뿜는 펄서여서, 이 별이 고요한 짝별 주위를 도는 모습은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테일러와 헐스는 서로의 주위를 도는 이 중성자별들의 위치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측정했다. 이 성취는 일반상대성이론 연구를 위한 새롭고 완벽한 실험실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 아인슈타인은 (비록 말년에 이 주장을 철회하긴 했지만) 서로의 주위를 도는 두 천체는 에너지를 주위 시공으로 방출하면서 서로에게 점점 더 접근하여 결국 충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중성자별은 서로의 주위를 돌면서 중력파를 방출하여 에너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이 천체들은 중력파의 존재를 비록 간접적이지만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측정 결과는 명확했으며 이론과 멋지게 일치했다."(228)
11 암흑 우주
"1979년에 로버트 디키와 짐 피블스는 「빅뱅 우주론─수수께끼들과 묘안들」이라는 논문에서 성공적인 빅뱅 이론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몇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우주는 빅뱅 이론에 부합하기에는 너무 균질적인 듯하다. 그 균질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이미 있었지만, 디키와 피블스는 만족스러운 설명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왜 시공의 기하학과 대조적으로 공간의 기하학은 이토록 단순한 듯할까? 공간은 전반적으로 곡률이 0이고 고등학교 수준의 유클리드 기하학 법칙들을 따르는 듯하다. 예컨대 평행선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법칙이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법칙은 예외 없이 참인 듯하다." "현재 우주 공간의 곡률이 거의 0인 듯하다면, 과거에 우주 공간의 곡률은 지금보다 더 0에 가까웠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가 사는 우주는 개연성이 극도로 낮은 우주이다. 과연 태초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253-4)
"겨우 1년 후, 우주론은 초기 우주의 진화에 관한 단순한 제안 하나 때문에 완전히 뒤집혔다. 그 제안의 요점은 우주의 인플레이션(cosmic inflation)이었다. 관련 아이디어는 일찍부터 불명료한 형태로 떠돌았지만, 스탠퍼드 선형가속기 센터의 박사후연구원 앨런 구스에 이르러 처음으로 우주 인플레이션의 핵심이 제시되었다. 구스는 몇몇 대통일이론─전자기력, 약한핵력, 강한핵력을 단일한 힘으로 통합하려고 애쓰는 이론─에서 여러 장들 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모든 장들을 압도하는 상태에 우주가 갇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상태에서 우주는 급팽창할 것이었다. 혹은 구스의 표현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겪을 것이었다. 비록 구스의 원래 아이디어는 결함이 있는 것─만일 우주가 그런 상태에 갇힌다면, 그런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다─으로 판명되었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새로운 인플레이션 방식들을 신속하게 제안했다."(255)
"인플레이션은 공간의 곡률을 거의 한순간에 0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신의 손 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풍선을 거대한 펌프로 부풀려 거의 한순간에 지구만큼 크게 만든다고 상상해보라. 이제 당신의 눈앞에 놓인 풍선의 일부는 완전히 평평하게 보일 것이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우주를 엄청나게 균질한 상태로 만들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아주 이른 시기의 우주에서 구조의 성장이 시작될 길도 열어준다. 우주가 인플레이션을 겪는 동안, 시공 구조의 미시적 양자요동이 급격히 확대되어 거대한 규모가 되었을 것이다. 시카고 천체물리학자들이 간결하게 설명한 대로 인플레이션은 〈내부 우주와 외부 우주〉를 연결했다. 내부 우주(inner space)란 양자와 근본적인 힘들의 세계였고, 외부 우주(outer space)란 일반상대성이론이 진가를 발휘하는 장소, 곧 상식적인 의미의 우주였다. 이제 우주론의 새로운 목표는 내부 우주와 외부 우주 간의 연결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255-6)
"피블스는 은하를 나선형으로 배열된 채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회전하는 입자들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가 모형에 회전을 부여하면 어김없이 은하가 해체되었다. 은하 중심의 별 집단이 은하의 팔들로 분산되고 결국 은하 전체가 흩어졌다. 오스트리커와 피블스는 회전하는 입자들을 보이지 않는 질량으로 이루어진 공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모형을 안정화하려고 했다. 이 질량 공─이른바 '무리(halo)'─의 중력을 추가하여 은하의 해체를 막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무리는 어두워서(비가시적이어서) 망원경에 포착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안정적인 모형을 구성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이 어두운 물질, 곧 암흑물질이 별들을 이루는 물질보다 훨씬 더 많아야 했다." "1982년, 새로운 우주 모형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피블스는 원자들과 더불어 암흑물질을 모형에 집어넣기로 결정했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우주가 거의 온통 정체불명의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전제했다."(258)
"여러 가지 기본적인 관찰 데이터와 상충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대다수가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을 받아들였다. 그 모형은 개념적으로 단순한 데다가 인플레이션 모형과 잘 어울리고 은하들에 암흑물질이 있다는 증거에도 부합했다. CDM(Cold Dark Matter, 차가운 암흑 물질) 모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모형을 더 발전시키고 어떻게든 수정하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러나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가능한 해결책의 하나로 번번이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튀어나왔다." "우주의 조성, 나이, 기하학, 기본 요소들은 여러 해, 심지어 몇십 년 동안 불확실했다. 다양한 제안들이 예외 없이 찬반양론에 부딪혔고, 우주론에서는 과학 못지않게 미학이 중요했다. 우주론 연구자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서 마음에 드는 이론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이론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우주상수이론이 승자가 된 것이었다."(260-7)
12 시공의 끝
"물리적 정보가 항상 보존된다는 것은 양자물리학 법칙들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블랙홀들이 존재한다면, 블랙홀들은 복사를 방출하고 증발할 텐데, 이는 우주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 곧 뉴턴의 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기본 전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호킹의 강연은 동료 물리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무턱대고 거부했다. 만일 정보가 사라진다면, 예측력을 가진 과학으로서 물리학은 미래가 없었다. 물리학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블랙홀이 기존의 생각보다 훨씬 더 풍부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즉, 블랙홀이 새로운 유형의 미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수명을 마칠 때 그 정보를 다시 외부세계로 방출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 증명은 오직 양자중력이론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274-5)
"끈이론(string theory)은 1960년대 후반에, 말하자면 가내공업 수준으로 출발하여 입자가속기 실험들에서 출현하던 이색적인 새 입자들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기본 아이디어는 점과 같은 대상으로 여겨진 그 입자들을 출렁거리는 끈으로 간주하면 더 잘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끈이론에 따르면, 입자들의 질량 차이는 공간에 떠다니는 미세한 끈이 진동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이 접근법의 특별한 장점은 단 하나의 끈으로 모든 입자들을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끈이 더 많이 출렁거릴수록, 끈의 에너지가 높아지고 끈에 대응하는 입자의 질량이 증가한다. 이것도 일종의 통일이기는 했지만, 기존에 제안된 어떤 통일과도 전혀 달랐다. 근본적인 끈의 개념은 매혹적이지만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다. 끈이론을 이용하여 물리적 예측을 시도할 때마다 무한대 값들이 튀어나왔고, 그 값들을 양자전기역학이나 표준 모형에서처럼 재규격화할 수 없었다."(277-8)
"1984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머리 겔만의 보호를 받던 끈이론가 존 슈워츠가 런던에서 온 젊은 영국인 물리학자 마이클 그린과 팀을 꾸렸다. 두 사람은 끈이론이 실은 양자중력이론으로서 더 유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양자중력이론이 몇몇 조건들을 충족하고 몇몇 대칭성들을 가진다면, 10차원 우주를 기술하는 끈이론이 양자중력이론을 포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세기 막바지에 이르러 끈이론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환호도 뜨거웠지만, 끈이론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고 할 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가용한 끈이론의 버전이 너무 많은 듯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설령 한 버전을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세계와 대응할 가능성이 있는 해들이 어마어마하게─각각의 버전에 10^500개씩─ 많았다. 끈이론가들은 이 무수히 많은 가능한 우주들을 통틀어 '풍경(landscape)'이라고 불렀다. 요컨대 끈이론은 여전히 특정 사안에 대해서 유일한 예측을 내놓을 수 없었다."(278-80)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 정보 역설을 제안한 후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합의된 앙자중력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중력이론을 추구하는 두 진영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기반이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새롭고 거의 공유된, 시공의 본성에 대한 견해가 등장하는 중이다. 끈이론부터 고리 양자중력이론, 더 나아가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화하려는 기타 모든 틈새의 시도들까지, 거의 모든 접근법들은 시공을 진정으로 근본적인 대상으로 보는 견해를 포기한다. 이 통찰은 호킹의 블랙홀 복사 발견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으며 블랙홀에서 정보가 소멸하고 물리학의 예측 가능성이 종말을 맺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블랙홀의 표면에 정말로 정보가 깃들어 있다면, 그 정보는 블랙홀 복사(호킹 복사)에 실려 점차 외부로 방출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 블랙홀은 애초에 삼킨 정보를 모두 방출할 것이며, 정보의 소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287-9)
13 화려한 추정
"1965년부터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우주론과 중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대세와 상관없이 나름의 속도로 연구했다." "짧고 명쾌한 한 논문에서 사하로프는 시공을 지배하는 법칙들이 환상에 불과하며 실재의 복잡한 양자적 본성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공을 보고 시공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것은 물, 결정(結晶), 기타 복잡한 시스템을 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본다고 생각하는 바는 실은 더 근본적인 실재를 대충 그린 그림일 뿐이다. 물의 모습은 물 분자들의 양자적 속성들과 물 분자들이 서로 느슨하게 결합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 속성들과 결합 방식 때문에 물은 투명한 액체로서 출렁거리며 물답게 행동한다. 물론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사하로프의 전반적인 견해는 오늘날 우리가 시공을 보는 방식을 선취했다. 양자중력이론이 40여 년 동안 발전하여 도달한 지점을 사하로프는 이미 그때 내다보고 있었던 셈이다."(297)
"사하로프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연구했고, 물의 점성이나 결정의 탄성이 근본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공의 기하학이 실은 근본적이지 않다고 추측했다. 점성이나 탄성은 실재에 관한 더 기초적인 기술(記述)에서 창발(創發)하는 속성들이다. 마찬가지로 중력은 물질의 양자적 본성에서 창발한다. 사하로프의 짧은 세 쪽짜리 논문의 놀라운 결론은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들이 그런 전제에서 자연스럽게 창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자세계가 시공의 기하학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는 것이다. 사하로프의 중력유발이론(induced theory of gravity)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어느 정도 유사했지만, 알고 보면 더 복잡한 방정식들로 이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사하로프의 이론 사이의 차이는 블랙홀 근처나 모든 것이 뜨겁고 조밀했던 최초의 우주에서 시공이 심하게 휠 때, 또는 휠러의 양자 거품더미가 중요해지는 미시 규모에서만 드러날 것이었다."(297-8)
14 엄청난 일이 곧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