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폭탄 만들기 1
리처드 로즈 지음, 문신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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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헛소리


"가벼운 원자핵들을 이용하여 무거운 원자핵들을 깨뜨려 버릴 수가 있다. 이것은 영국의 실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이미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이 원자핵들은 모두 강한 양전기를 띠므로 날아가는 원자핵은 충돌을 당하는 원자핵을 비껴가게 된다. 그러므로 물리학자들은 원자핵이 전기적 척력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갖도로 가속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1932년 제임스 채드윅이 발견한 중성자(Neutron)는 양전기를 가진 양자와 거의 같은 질량을 갖고 있으며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핵 주위의 전기적 장애를 통과하여 핵에 도달할 수 있는 입자이다." "중성자가 핵의 전기적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헝가리 출신의 이론 물리학자인 레오 실라르드가 최초로 알아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성자를 핵과 충돌시켜, 중성자가 공급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것은 실라르드가 처음이었다."(24-31)


2 / 원자와 빈 공간


"열역학 제2법칙은 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없이는 열이 차가운 물체로부터 뜨거운 물체로 저절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플랑크 자신이 1897년 뮌헨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일반화했듯이 열전도 과정은 결코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완전히 가역화될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은 영구기관의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도 플랑크의 선배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엔트로피라고 명명한 것을 정의하기도 한다. 일을 할 때마다 에너지는 다시 유용한 형태로 수집될 수 없는 열로 소모되므로 우주는 서서히 무작위의 불규칙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 점증하는 혼란은 우주가 일상적인 것이지 가역적인 것이 아님을 뜻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물리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기계적인 원자론을 설명하는) 고전 물리학의 방정식들은 우주의 전진과 후진을 동등하게 허용하고 있다."(35)


"알파 입자의 산란 실험을 하던 러더퍼드는 알파 입자가 곧바로 되돌아 튕겨져 나온다는 것은 단 한 차례의 충돌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다." "러더퍼드는 원자의 핵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전자들의 위치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1911년, 맨체스터 발표에서 그는 한 점에 집중되어 있는 전하가 균일하게 구 모양의 분포를 갖는 반대 전하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계산을 하기 위하여 이상화한 것일 뿐, 반대 전하가 전자 속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는 물리적 사실을 간과한 결과였다. 원자가 고전 물리학의 운동 법칙들, 즉 행성들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뉴턴의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면, 러더퍼드의 모델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원자는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설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수행된 물리학적 실험의 결과였다." "누군가가 고전 역학과 러더퍼드가 실험적으로 시험한 원자 사이의 모순을 해결해야 했다."(64-6)


3 / 보어의 원자


"고전 이론에 의하면 가마솥과 같이 가열된 공동 내에는 무한대의 에너지가 존재해야 한다. 고전 이론에서는 가열된 가마솥의 벽에 있는 입자들이 진동에 의하여 주파수가 무한대에 걸쳐 빛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런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동 속에 있는 에너지가 원자외선으로 제한 없이 바뀌는 것을 막는 것일까?" "플랑크는 진동하는 입자는 어떤 특정한 에너지에서만 복사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고질적인 문제를 풀었다. 복사가 허용된 에너지는 새로운 수, 〈하나의 우주 상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나는 이 수를 h라고 불렀다. 이것은 작용(에너지X시간)의 차원을 가지므로, 나는 그것을 기본 작용 양자(quantum은 라틴어 quantus의 중성명사이며 '얼마나 큰가'를 뜻한다)라고 불렀다.〉 h의 정수배(플랑크의 hX주파수 v)가 되는 유한한 에너지만이 나타날 수 있다. 우주 상수 h는 곧 플랑크 상수 불리기 시작했다."(86)


"이런 지식으로 무장한 보어는 러더퍼드의 원자 모델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러더퍼드 원자의 어려움은 안정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데 있다. 단 한 개의 전자를 갖고 있는 수소 원자라 할지라도 고전 이론에 따르면 전자는 핵의 주위를 돌며 운동 방향을 바꾸어 빛을 방출하게 되므로 에너지를 잃고 궤도의 반경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핵과 충돌하게 된다. 뉴턴 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러더퍼드 원자는 태양계의 축소형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크거나 작아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보어는 원자의 '정상 또는 불변 상태'가 존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전자가 불안정하지도 않고, 빛을 복사하지도 않으며 핵과 충돌하지 않는 궤도를 갖고 있어야 된다." "보어에게 명백한 것은 그의 궤도를 도는 전자들과 스펙트럼 선들 사이의 관계였다. 보어는 핵에 묶여 있는 전자는 정상적으로 안정한 바닥 상태라고 불리는 기본 궤도를 돌고 있다고 제안했다."(87-91)


4 / 이미 파기 시작한 무덤


"표면상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제1차 세계대전의 결말은 시체의 양산이었다. 본질적으로 산업적이었던 조직의 운용은 장군들에 의하여 소모 전술로 바뀌었다. 영국인은 독일인을 죽이려 했고, 독일인은 영국인과 프랑스인을 죽이려 했으며 그리고·····. 이 전술은 이제는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해져서 정상적으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14년 이전 유럽에서는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국 남북전쟁의 교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변해 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참호 진지가 구축되면 긴 무덤은 이미 파진 것이며, 전쟁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고 죽음을 만드는 일이 어떤 합리적인 반응도 압도해 버린다. 법, 조직, 생산, 이동, 과학, 기술적 천재성에 뿌리를 두고, 1,500일에 걸쳐 매일 6,000명의 주검을 생산해 낸 전쟁 기계는 영구적이고 현실적인 요소였으며 인간의 변화에 의해 약간 변경될 뿐이다."(126)


5 / 화성에서 온 방문자들


"1926년 초 교양 있는 비엔나의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원자 규모의 물질은 마치 파동으로 구성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물질의 파동 이론을 발표했다. 슈뢰딩거의 이론은 간결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며 그리고 완벽하게 모순점 없이 앞뒤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에 동감하는 슈뢰딩거는 그의 파동역학이 원자 내부의 실체를 나타낸다고 지나친 주장을 했다. 원자의 내부에 입자가 아니라 정지한 물질파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연속적인 과정과 절대적인 결정이 가능한 고전물리학 속으로 다시 원자를 끌어들여왔다. 보어의 원자에서는 정상 상태에서 항해하는 전자들의 양자 도약에 의하여 광자가 방출된다. 대신에 슈뢰딩거는 건설적인 간섭이라고 알려진 과정에 의하여 파동들의 크기가 서로 합쳐져 빛을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가정이 진실이기에는 너무 훌륭하다고 말했다."(156-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물리학에서 엄밀한 결정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만일 원자적 사건이 원래부터 불분명하고 개개의 입자에 대하여 시간과 공간에서의 완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그들의 미래의 행동에 대한 예측은 통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라플라스의 꿈은 만일 그가 어떤 순간 우주의 모든 입자들의 시간과 공간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면 그는 영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그날 밤 코펜하겐에서 해답을 얻었다. 자연은 신의 특권에 대한 비밀을 인간에게 나누어주지 않는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원자 내부의 평등화라는 구상을 좋아하면서도, 불확정성 원리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에 기초를 두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보어는 전에 슈뢰딩거에게 향했던 그의 집요함으로 이번에는 하이젠베르크를 겨냥했다."(160)


6 / 기계


"당시 러더퍼드의 선구자적인 연구 때문에 실험물리학자들에게는 원자핵물리학이 첨단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러더퍼드의 실험 방법은 본질적으로 매우 지루한 것이어서 전망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쉽게 뛰어들지 못했다. 간단한 계산에 의하면, 전기적으로 전기적으로 가속된 가벼운 원자들 1마이크로 암페어는 세계의 라듐 총공급량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다. 방전관에서 나오는 알파 입자와 양자는 전기적으로 밀고 당김으로 가속시킬 수 있다. 무거운 핵의 전기적 장벽을 통과하는 데는 100만 볼트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아무도 일정 시간 동안 스파크나 과열에 의한 전기 방전 없이 한 군데에 입자를 모아둘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못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계적인 것이고 실험적인 것이었다. 이 문제가 작은 마을의 농가에서 라디오를 가지고 실험을 하며 성장한 미국 실험물리학자들의 젊은 세대를 매혹시켰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179)


"중성자는 양자와 질량은 거의 같으나 전하가 없으므로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에 의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또한 핵의 전기적 장벽이 진로를 막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뛰어난 투과력은 핵을 조사하는 새로운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필립 모리슨은 〈음속으로 운동하는 열중성자들은 40분의 1전자볼트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수백만 전자볼트의 에너지로 수천 배나 더 빠르게 운동하는 양자보다 훨씬 쉽게 많은 물질들과 핵반응을 일으킨다〉라고 했다. 채드윅이 그의 운명적인 중성자를 발견한 2월에 로렌스의 사이클로트론은 처음으로 양자를 100만 볼트 에너지로 가속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채드윅의 중성자는 핵을 자세하게 조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한스 베테는 1932년 이전의 모든 것은 〈핵물리학의 유사 이전의 것이고 1932년부터는 핵물리학의 역사〉라고 말했다. 이 차이는 중성자의 발견이었다."(201-2)


7 / 대이동


"1933년 1월 30일, 독일 총통직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는 얼마 있지 않아 반유대운동을 합법화시키고 독일계 유대인의 민권을 정지시켰다." "공직 회복을 위한 법률은 나치가 앞으로 발표하게 될 400여 가지의 반유대주의 법률과 명령의 전조였으며 텔러, 파울리, 프리슈 그리고 이들의 유대인 동료들의 생애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비(非)아리아 계통의 공직자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비아리안을 정의하는 명령은 4월 11일에 발표됐다. 누구든 부모나 조부모가 비아리아인 후손, 특히 유대인은 모두 아리아 계통이 아니다. 대학교는 국가기관이었으므로 교수들은 공직자에 속했다. 새로운 법률은 이미 노벨상을 받았거나 받게 될 11명을 포함하여 독일 물리학자들의 사분의 일의 지위와 생계를 박탈해 버렸다. 그것은 즉각적으로 총 1,600명에 달하는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이민을 떠나야 했다."(218-9)


8 / 고무적인 연구


"실라르드는 중성자가 인공적으로 방사선 붕괴를 일으킬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필요한 실험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졸리오-퀴리 부부만이 알파 입자를 이용하여 이런 실험을 했다. 실라르드는 인공 방사능 물질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는 연쇄 반응에 의하여 핵에너지를 방출시켜 원자탄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원소들이 한 개의 중성자를 포획하고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중성자를 방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에는 92가지의 원소들이 있다." "그러나 실라르드는 이런 실험을 하기 위한 실험실, 헌신적인 일꾼 그리고 충분한 재정적 지원 등 모두가 결핍되어 있었다." "대신에 그 기회는 로마에 있는 엔리코 페르미와 그의 젊은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페르미는 실라르드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242)


"실라르드가 '산업 목적을 위한 에너지'를 넘어서서 전쟁 무기의 가능성까지 내다보았다는 사실은 1934년 6월 28일과 7월 4일에 제출한 특허 출원서의 수정안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먼젓번에는 '화학 원소의 변환'이라고 기술했던 것을 이번에는 '핵변환을 통한 전력 생산과 다른 목적을 위한 핵에너지의 방출'이란 표현을 추가했다. 그는 최초로 중성자에 의한 연쇄 반응을 제안했다. 그리고 '임계 질량'이라고 알려지게 된 연쇄 반응이 스스로 유지되는 데 필요한 반응 물질의 체적에 관한 중요한 특성들을 기술했다. 구 모양의 연쇄 반응 물질을 무거운 금속, 예를 들면 납으로 둘러싸면 임계 질량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또한 임계 질량이 형성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그의 출원서 4쪽에 적어놓았다. 〈만일 두께가 임계치보다 크면······ 나는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254-5)


9 / 우라늄의 파열


"핵 속에서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 두 힘─강력과 전기적 척력─은 서로를 상쇄한다. 프리슈와 마이트너는 액체 방울같이 헐렁하게 결합되어 흔들흔들 출렁거리는 우라늄 원자핵이 약하긴 하지만 우라늄 원자핵을 교란시키는 데에는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저속 중성자와 충돌하는 그림을 얻게 됐다. 중성자는 우라늄 원자핵에 에너지를 전해 준다. 핵은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느 한 방향으로 길쭉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강력은 극히 짧은 거리 내에서만 작용하므로 한쪽으로 길쭉이 늘어난 핵에는 전기적 척력이 우세해지게 된다. 양쪽으로 불룩하게 된 부분은 서로 더 멀리 밀어내고, 그 사이에는 허리 부분이 생기게 된다. 양 끝쪽의 각각의 구내에서는 강력이 다시 우세해진다. 마치 표면장력이 액체 방울을 구형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동시에 전기적 척력은 두 개의 구를 더 멀리 떼어놓도록 작용한다."(307)


"마침내 허리 부분이 잘라진다. 두 개의 작은 핵, 예를 들면, 바륨과 크립톤이 나타난다. 마이트너는 두 개의 파편이 형성된다면 그들은 큰 에너지로 서로 밀어낼 것이라고 했다. 각각의 구 속에 있는 양자들의 양전하가 이 구들을 빛의 속도의 삼십분의 일의 속도로 서로 밀어낸다. 이 에너지가 약 200MeV(2억 전자볼트)가 된다고 계산했다. 1전자볼트는 전자가 1볼트의 전위차 사이에서 가속될 때 얻는 에너지이다. 2억 전자볼트는 많은 에너지는 아니지만, 한 개의 원자에서 나오는 에너지로는 매우 큰 양이다. 가장 강력한 화학 반응은 원자당 5eV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프리슈는 나중에 우라늄 원자핵이 부서질 때 나오는 에너지가 눈에 보일 수 있는 모래알이 식별할 수 있게 튀어오르게 하는 데 충분한 에너지라고 계산했다. 우라늄 1그램에는 약 2.5X10^21개의 원자가 있다. 25 뒤에 0이 20개 붙은,  2,500,000,000,000,000,000,000! 어마어마한 수이다."(307-8)


"1909년, 마이트너가 서른한 살 때, 그녀는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과학 학술 회의에서 처음으로 아인슈타인을 만났다. 그는 복사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점의 발전에 대한 강연을 했다. 강의 중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에너지로 환산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1938년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머릿 속에 채우기 비율(packing fraction)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프리슈는 말했다. 그녀는 핵의 질량 결손에 대한 에스턴의 숫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만일 커다란 우라늄 원자핵이 두 개의 작은 원자핵으로 쪼개진다면 두 개의 작은 원자핵들의 질량의 합은 우라늄 원자핵의 질량보다 적다. 얼마나 적은가? 그녀는 쉽게 이 계산을 해낼 수 있었다. 양자 질량의 5분의 1정도가 적었다. E=MC^2을 이용하여 계산하면 양자 질량의 5분의 1을 약 200MeV이다. 이것이 에너지의 공급원이다.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308-9)


10 / 중성자를 쫓아서


"보어는 몇 가지 반응의 난해한 에너지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토륨 232는 우라늄 235보다 가볍고, 우라늄 235는 우라늄 238보다 가볍다. 그러나 우라늄 235는 또 다른 중요한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토륨 232가 한 개의 중성자를 흡수하면 질량 번호가 기수인 원자핵 토륨 233이 된다. 우라늄 238이 한 개의 중성자를 흡수하면 역시 질량 번호가 기수인 우라늄 239 핵이 된다. 그러나 우라늄 235가 한 개의 중성자를 흡수하면 질량 번호가 우수인 우라늄 236이 된다. 페르미가 어느 날 강의에서 설명하게 되지만, 핵의 재조정에 의한 변화는 기수의 중성자들이 우수의 중성자들로 바뀔 때 1 내지 2Me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것은 우라늄 235가 다른 두 경쟁자보다 에너지 측면에서 내재적인 유리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순히 질량의 변화만으로도 분열에 가용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다른 두 원소는 그렇지 못하다."(344)


"실라르드는 중성자로 유도된 분열에서 적어도 두 개의 이차 중성자가 나온다고─즉, 연쇄 반응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말하면서, 〈분열연구는 계속하되, 실험 결과는 발표하지 않고 비밀로 해야 한다. 우리는 나치가 먼저 핵폭발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다." "보어의 회의론은 '필요한 양의 우라늄 235를 분리해 내는 어마어마한 어려움'과 관계된 것이었다고 윌러는 기억했다." "보어는 프린스턴 모임에서 〈미국을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바꾸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완수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보어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비밀 문제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물리학을 하나의 국제적인 공동 사회의 것으로 만드는 데 노력을 경주해 왔다. 민주주의에 언론의 자유가 필수적인 것처럼, 본질적 특권인 공개성이 과학자의 사회를 운용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다. 완전한 공개는 절대적 정직성을 요구한다."(354-5)


"해당 내용의 공개 여부를 놓고 실라르드와 페르미 사이에 논쟁이 오가던 중에, 졸리오, 할반 그리고 코왈스키가 1939년 3월 18일자 《네이처》에 하나의 논문을 발표했다." "다음 달인 4월 22일, 세 사람은 이차 중성자에 대한 두 번째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논문의 제목은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방출된 중성자의 수」였다. 먼저 발표된 실험을 근거로 계산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 팀은 평균 3.5개의 이차 중성자들을 발견했다. 〈연쇄 핵반응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여기에서 토의한 현상에 대한 관심은 이미 우리의 지난번 논문에서 언급됐다〉라고 썼다. 이제 그들은 충분한 양의 우라늄을 적절한 감속제 속에 넣는다면 〈연쇄 분열은 스스로 계속되어 물질이 모두 소진된 뒤에나 끝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실험 결과는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결론지었다. 우라늄이 연쇄 반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356-7)


11 / 플루토늄의 등장


"1940년 7월, 하이젠베르크와 바이츠재커는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생물학과 세균연구소의 운동장에 목조실험실 건물을 지었다. 그들은 임계상태에 도달하지 않는 우라늄 연소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독일은 세계의 유일한 중수공장과 벨기에 및 벨기에령 콩고에서 확보한 수천 톤의 우라늄 광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화학공장과 유능한 물리학자들, 화학자와 엔지니어들을 갖고 있었다. 독일은 핵의 상수를 측정할 사이클로트론만 갖고 있지 못했다. 프랑스가 무너지고, 6월 14일 파리를 점령하고 6월 22일 휴전이 조인되자 이 필요가 충족됐다. 독일 육군성의 핵물리학 전문가 쿠르트 디프너가 파리로 달려갔다. 페랭, 할반 그리고 코왈스키는 중수가 들어 있는 26개의 깡통을 가지고 영국으로 도망갔다. 졸리오는 프랑스에 남아 있었다(이 노벨상 수상자는 가장 큰 레지스탕스 조직의 운영위원회 의장이 됐다)."(421)


"1940년 10월, 스즈키 중령은 야수다 중장에게 핵개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그의 보고서를 기본적인 문제에만 한정시켰다. 즉, 사용 가능한 우라늄 광석에 대한 보고였다. 그는 일본, 조선 그리고 버마 등지를 조사하고 충분한 우라늄광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폭탄은 가능한 것이다. 야수다는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와 접촉하여 일본의 물리학 권위자 니시나 요시오와 협의했다. 니시나는 메이지시대 말기에 태어나 1940년에 50세였으며 콤프턴 효과에 대한 이론연구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같이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세계주의자이며 보통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는 버클리에서 훈련 받은 조수의 도움을 받으며 작은 사이클로트론을 제작하고 있었다." "1941년 4월, 공식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제국 육군의 항공대는 원자 폭탄의 개발을 위한 연구를 승인했다."(425)


"세그레와 페르미는 원소 94에 대해 생각해 왔다. 〈우리는 원소 94가 저속 중성자에 의하여 분열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라늄 235 대신 원자 폭탄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보통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로를 이용하여 이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핵폭탄 개발에 전적으로 새로운 전망을 가져왔다. 당시에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던 우라늄 동위원소의 분리도 필요 없게 된다.〉" "1941년에 시보그 팀이 마침내 알파 입자를 방출하는 원소 94를 분리,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1942년에 새로운 원소의 이름을 제안했다. 마틴 클라프로스가 1789년 새로 발견된 원소를 우라누스(Uranus, 천왕성)와 연계시켰듯이 그리고 넵튠(Neptune, 해왕성)까지 확장시킨 맥밀런의 제안을 본따서 시보그는 원소 94를 1930년에 발견된 아홉 번째 행성 플루토(Pluto, 명왕성)를 따라 플루토늄(Plutonium)이라고 이름지었다."(433-7)


12 / 영국에서 온 소식


"한 과학자는 원자무기를 만드는 일을 돕든지 또는 돕지 않든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단 한 가지 길이다. 이제 별도의 분리된 주권을 갖는 조직에 속하는 대가로 그는 자기의 정책에 관한 주장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 별도의 조직은 대통령과 그가 승인하는 단 한 사람을 통하여 공개된 주권국가인 미국에 연결될 것이다. 애국심이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에게는, 그들의 발언을 통하여 볼 때, 독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깊은 동기였다. 그러나 두려움보다도 더 깊은 동기는 숙명론이다. 어떤 국가든지 그것을 만들어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단지 독일과의 경쟁만이 아니다. 루스벨트는 경쟁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루스벨트는 새로운 파괴 무기가 개발됐을 때 가져올 영향, 즉 세계의 정치적인 조직을 바꾸어 놓을 것이 분명한 군사적 개발의 장기적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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