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유유 서양고전강의 5
양자오 지음, 조필 옮김 / 유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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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권과 분권 사이에서 계속된 실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하고 배치한 정치 제도 가운데 핵심 내용 하나는 '각 주 분권제'입니다." "영국의 상하원은 귀족 제도의 유산으로, 국왕의 지위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원은 국민이 투표해 선출하지만 상원은 명예직으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미국의 상원과 하원은 연방 정부와 각 주의 권력을 나누기 위해 안배된 것입니다. 하원은 인구수에 따라 선출하는데, 전 미국 3억 인구를 400여 개 선거구로 나누고 선거구마다 하원 의원을 한 명씩 뽑습니다. 모든 하원 의원은 동등하게 국민의 뜻을 대표합니다. 그렇다면 상원은 어떨까요? 상원에는 모두 100개의 자리가 있습니다. 50개 주에서 각 주마다 두 자리씩 할당됩니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고 경제가 발달한 큰 주를 위해 작은 주가 자기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도록 한 거지요. 연방법은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법률이 됩니다. 따라서 큰 주는 작은 주의 반대를 무시하고 법을 만들 수 없습니다."(36-8)


# 선거인단 제도 역시 각 주 분권의 원칙 아래 유지되고 있다.


"민주주의 원칙을 가진 연방제에 기반하고 있는 미국은 또 다른 방향에서 국가의 정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국가를 조직할 때 변화를 가함으로써 (아래층이 위층에 예속되어 있던) 일반적인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충격을 준 겁니다." "미국의 제도는 다른 종류의 조직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조직 원리도 철저하게 뒤집어 놓았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를 이루는 형식을 결정합니다. 권력의 분배와 지배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이루어집니다. 각 지방의 주민 회의에서 어떠한 형태의 주 정부가 필요한지, 어떤 사무를 주 정부가 관할하도록 할지, 또 어떤 사무는 주 정부에서 개입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지를 결정합니다. 각 주의 주 의회와 주 정부는 연방정부의 권력 범위와 권력 집행 방식을 결정합니다. 이러한 국가는 미국 이전에는 이론으로만 있었지 현실 세계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45-6)


"대통령제는 미국 민주주의의 특수한 발명품입니다." "연방 정부는 직접 미국 시민을 통치하지 않고, 또 시민이 선출한 대표가 연방의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연방 대통령의 역할을 기본적으로 각 주 정부 사이의 조정자이고, 연방 정부의 역할은 각 주 정부에 봉사하는 것이지 미국 시민을 통할統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방 대통령의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대표이고 연방군을 지도할 책임이 있는 데다 주 사이의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각 주가 여러 가지 사정상 쉽게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연방의 조직력을 이용해 그 결정이 관철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설계가 어찌 됐든, 대통령이 된 사람의 태도가 어떻든, 미국 연방이 존재하고 운영되며 발전하려면 대통령의 권력을 갈수록 강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48-9)


"연방에는 연방 헌법이 있고, 각 주에는 각 주의 헌법이 있습니다. 또한 각 주의 독립적 권력 범위에 속하는 수많은 법률과 제도가 규정되어 있어서 연방은 이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각 주를 독립된 단위로 보는 분권제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역할을 했고, 미국이라는 방대한 규모의 나라에 민주주의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연방과 각 주 사이에는 복잡하게 밀고 당기는 집권集權과 분권 관계가 존재합니다. 상대적으로 주 정부와 그 아래 있는 시나 카운티 정부 사이에도 비슷한 집권과 분권의 변증 관계가 있습니다. 분권 덕분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모든 시민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집권 덕분에 국가는 그 방대한 규모를 유지하면서 붕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0여 년간 미국은 집권과 분권 사이에서 실험을 지속해 왔습니다. 실험의 성패는 미국의 성쇠뿐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의 효과와 타당성을 결정했습니다."(55-8)


2 미국에 온 두 프랑스인


"미국이 발흥하기 전 유럽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역사성을 띠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뇌리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어떤 현실의 국가나 정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로마 초기의 공화 제도였습니다. 역사에서 얻은 지식에 따라 유럽인은 민주주의가 작은 정치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보편적으로 믿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어서 미국 헌법도 나타나지요. 북미 신대륙에서는 유럽의 상식에 어긋나는, 상대적으로 방대한 토지와 많은 인구를 민주적 방식으로 조직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정치 실험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토크빌이 책을 쓴 1830년대에는 대규모 민주 공화제가 가능하다는 미국 정치 실험의 성과가 기본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류는 정치 문제를 두고 반드시 미국의 경험을 철저히 새롭게 생각해 봐야만 했습니다."(63-6)


"토크빌이 보기에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은 이미 흘러간 역사가 됐습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민주주의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혼란으로 점철되고 폭력과 비이성이 충돌하는 민주주의냐, 아니면 조금이나마 질서와 도덕이 있고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안배할 수 있는 민주주의냐." "토크빌이 쓰고자 한 것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인에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미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기본으로 삼아 프랑스인이 거기에서 배우도록 돕고 미래에 반드시 가야만 하는 민주주의의 길을 준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토크빌이 책을 쓴 진정한 의도이고, 우리가 200여 년 뒤인 지금 이 책을 읽을 때도 여전히 기억해야 하는 전제입니다."(88-90)


3 미국의 두 가지 키워드 이해하기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쓰고 출판한 시기는 19세기 초이므로 당시 주류였던 '진보 사관'을 반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토크빌 또한 인간이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가장 뚜렷한 진보의 표지는 평등이었습니다. 인간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진 것은 그도 당시 절대다수 유럽인과 마찬가지였는데, 진보의 초점을 평등에 맞춘 것이 그만의 독특성이었습니다. 사실 토크빌은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가치관을 제시한 것입니다. 불평등은 좋지 않다, 불평등은 원시적이고 낙후한 것이다, 평등만이 진보다, 이로 인해 인류는 끊임없이 원시적이고 낙후한 불평등한 상태에서 진보한 평등의 상태로 점차 나아가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행한 진보 사관이 없었다면 토크빌의 논증은 발 딛고 설 수 없었을 테고, 의심받고 논파되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토크빌의 책이 당시 진보 사관을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96-9)


"토크빌의 기본 관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귀족은 기본적으로 토지가 희소해 발생한 경쟁 상황에서 나타난, 토지를 확보하고 장악하는 자였습니다. 귀족의 토대는 토지에서 나온 이익이었지요. 토지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충분히 많은 토지를 확보하고 장악하는 사람은 땅이 없는 사람에게 땅을 빌려주고 그가 농사지어 얻은 성과를 앉아서 편히 받아먹습니다. 이렇게 부를 모은 사람은 그 부를 권력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까지 얻습니다. 귀족의 권력은 그 뿌리를 파헤쳐 보면 토지, 정확히는 토지 부족에서 온 것입니다. 신대륙에서는 이렇게 토지로 인한 귀족이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토지가 너무 많고 컸으니까요." "미국은 토지 귀족이 없는 상황에서 세워진 나라이고 건국 후에도 일정 시간 동안,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쓰고 있을 때까지도 토지가 부족하다거나 토지를 빼앗는다거나 토지 자원을 독점한다든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108-9)


"두 번째 키워드는 청교도입니다. 청교도의 종교 신앙과 교육적 태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이 정확한 행동, 그러니까 규칙을 잘 따르고, 교리문답을 암송하며, 예배법을 익히도록 하는 데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내면의 진실한 신앙을 더욱 중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겉으로 꾸민 행위나 의식에 극도로 민감했습니다. 그들은 교육이 내면에 파고들어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근본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지 불과 16년 만에) 신학교를 세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북미 대륙에 온 사람들이 청교도가 아니라 생활이나 경제적 동기로 온, 남미 대륙의 식민 침략자 같은 이들이었다면 그들은 신대륙에 머물려고 고집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울러 청교도들이 그토록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자신들의 무리를 유지하고, 자신들만의 강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117-8)


4 현실 속의 민주주의


"은근함, 실용성, 과장하지 않음, 뽐내지 않음 같은 청교도의 기본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토크빌이 말한 (미국의) 민주주의의 특색입니다. 종교 이민자가 세운 뉴잉글랜드에서는 큰 교회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규모가 큰 교회 자체가 소수인데, 그마저도 훗날 가톨릭교나 영국 국교회에서 지은 교회입니다." "북미 식민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토크빌은 이렇게 일깨웁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채가 사라지면 그와 함께 비참한 생활도 사라진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채를 지닌 프랑스 사회에는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이 공존한다.〉 광채와 비참은 서로 손을 잡고 함께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사회를 프랑스의 귀족주의 사회와 비교하면 광채가 줄어든 만큼 비참도 줄어듭니다. 귀족의 영광은 없지만 귀족의 발아래 밟힌 비참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도 없습니다."(127-9)


"토크빌은 일방적으로 민주주의를 찬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상반된 양쪽 관점의 균형을 맞춥니다. 그가 비교하는 내용을 보면 우리는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중간의 좋음과 선량을 만들어 내면서 가장 탁월한 부분과 가장 사악한 부분을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는 토크빌 자신이 귀족 가문 출신이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귀족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즐거움을 누린 사람이었고, 이 신분을 지니고 반세기나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사회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들이 누렸던 화려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없앨 테지만 상대적으로 평등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비교적 정확하고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본 거지요. 민주주의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섭리적 사실'이라고 생각한 겁니다."(133)


5 두 가지 자유를 구분하다


"프랑스 대혁명은 악독한 징세인의 폐단과 정부의 불가사의할 정도로 엄청난 무능에서 비롯됐지만 그러한 혁명의 열정 속에는 또 하나의 갈망, 곧 유능한 정부, 그럴듯한 정부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갈망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의 구호로 수용되지 않고 무시됐지만, 당시 현실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와 똑같이 중요했습니다. 혁명의 충동, 집단적 열정이 격앙되는 와중에 사람들은 자유, 특히 고도의 개인적 자유와 유능한 정부라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기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유능한 정부는 먼저 공공질서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 행위를 구속함으로써 개인 행위가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에 합치되도록 요구합니다. 집단에 유리한 일이 반드시 개인에게도 유리하리라는 법은 없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149-50)


"토크빌은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 다른 하나는 시민적 자유civil liberty, 또는 공민적 자유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까닭에 프랑스인은 그들의 구호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혁명 전의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토크빌은 미국은 자유로운 국가이지만 미국인이 자기 국가에서 누리는 자유는 결코 자연적 자유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인의 자유는 처음부터 영국인에게서 쟁취한 것, 곧 시민적 자유, 공민적 자유라고 본 것입니다." 청교도 윤리를 내면화한 미국인들은 자기 멋대로 하는 자연적 자유가 아니라 엄격한 도덕의식의 제한과 관리를 받는 자유를 원했습니다.(154-5)


6 섬세한 삼권 배치


"미국이 독립전쟁에 이긴 걸 두고 감탄할 필요는 없다고 토크빌은 말합니다. 핵심을 놓쳐선 안 된다는 거지요. 미국인에게 감탄할 대목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라고 말합니다. 영국인에게 맞서 독립전쟁을 치를 때 13개 주는 임시로 합쳐서 외교와 군사 영역에서 함께 행동합니다. 전쟁에서 이겼고, 적은 사라졌습니다. 이젠 더 이상 뭉쳐야 할 이유가 없었지요. 그러나 지혜롭고 용기 있는 미국인은 국가를 세운 지 10년 후 국가 성립의 기본 원칙을 전면적으로 재고하기로 결정합니다. 국가의 대강령과 가장 중요한 법을 다시금 설계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2년이라는 시간을 씁니다. 당시 북미에서 가장 똑똑한 두뇌, 가장 정직한 인격을 모아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마련합니다. 그 내용을 13개 주에 전달하고 일일이 투표를 거쳐 통과시킵니다. 이 작업의 의미는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능가한다고 토크빌은 주장합니다."(181)


"삼권의 구조를 다루며, 토크빌은 책에서 가장 먼저 헌법에 대해 말한 후 삼권을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논하는 것은 사법이고 그 다음은 입법이며 마지막으로 행정을 다루는데 이 순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간단하고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미국에 가서 조사하려 한 것이 사법에 속하는 감옥 행정이므로 당연히 미국 사법에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심층적인 이유는 토크빌이 삼권 가운데 사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가장 특수한 정신은 법에 의해 통치하고 관리한다는 정신이므로, 위계 또한 법률이 가장 높고 모든 법률 중에서도 헌법이 으뜸이라는 것이지요. 주의할 것은 헌법은 진리가 아니므로 수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수정하기 전까지 헌법은 국가 정치상의 진리입니다. 이는 또한 매우 중요한 자리매김으로, 예전의 인류 정치사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다."(185-6)


"이론상 의회는 언제든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희롱하듯이 불시에 대통령을 희롱하면서 '엄중한 행위'에 걸릴 만한 온갖 이유를 대 대통령을 번거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사이에서 움직이는 핵심 요인이 바로 정당입니다. 미국 헌법은 숱한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상 규정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 중 큰 부분을 정당이 처리합니다. 예컨대 행정권과 입법권은 헌법상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수많은 충돌 가능성을 품고 있지요. 그러나 미국의 실제 민주주의 운용에서는 그렇게 많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정당이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재하고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밀접한 이익 관계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현시에서 권력 분배에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192-3)


"미국의 민주주의는 청교도 전통에서 발원했습니다. 하지만 민주 제도가 건설된 후에는 점차 한 걸음씩 청교도 전통 외의 것으로 독립해 발전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세워진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 우연에 기대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다른 제도와 차별되는 지점은 바로 이 민주주의가 모든 인류가 설계한 정치 제도 중 자기 수정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원래 고도로 동질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에서 생겨났지만, 민주주의는 다원적인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고, 다원적인 사회에 맞추어 변화합니다. 사회가 다원화할수록 직접 민주주의는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민주 제도는 점차 대의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대의를 통한 정책 결정의 범위도 갈수록 넓어졌지요. 이러한 내재적인 수정은 민주주의의 일부입니다. 미국에서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그 범위를 넓혔고, 넓힐 때마다 민주주의 내부의 시스템도 조정됐습니다. 이것은 미국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입니다."(194-5)


7 사회학적 시각


"『미국의 민주주의』 2권에서 토크빌은 평등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를 설정하고 분석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평등과 민주주의에 어떠한 사회 기초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폭과 둘레는 바로 사회 전체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에는 특정한 사회 기초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좀 더 큽니다. 정치에서 민주 제도를 채택하면 사회에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 낼까요? 어떤 사회가 생겨날까요? 토크빌의 분석은 여전히 미국과 프랑스를 대조하며 진행됩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관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곧 '민주주의는 혁명에서 온다'는 관점입니다. 말하자면 혁명이라는 수단으로 원래 있던 비민주적인 정치 구조를 깨뜨린 후에야 그 공간을 민주주의로 대체할 수 있고,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관점이지요." "반면 토크빌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사회가 된 것은 미국에서 혁명이 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08-10)


"미국은 프랑스 식의 대파괴, 대소동을 거친 후 민주주의를 이룩한 게 아닙니다. 미국이 건국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겪은 의혹과 전복은 영국 식민지와 관련된 사항이었습니다. 영국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미국인 자신이 갖고 있던 이념과 신앙은 동요하거나 파괴되지 않았고, 되레 강화됐습니다. 공동의 적과 맞서면서 단결 의식이 더 강해졌고, 이 강화된 공동 이념과 신앙에 의지해서 힘을 모아 승리를 얻어 냈습니다." "이처럼 미국인의 표면적인 자유 뒤에는 더 깊고 강력한 공동의 신앙이라는 제약이 있습니다." "단순히 기원을 살펴보면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조건은 모두가 상당히 공감하는 공통된 신념을 갖는 겁니다. 개신교는 당시 미국인이 논쟁할 수도, 논쟁할 필요도 없는 공통의 기반이었습니다. 그 사회의 공감대의 범위가 넓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실험을 할 유한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210-1)


"토크빌은 이미 언어가 사고의 도구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가 직접적으로 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머릿속에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생각을 하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사람은 언어가 없으면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1830년대에 토크빌은 이미 언어와 사고의 긴밀한 관계를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인의 다른 생각과 논리, 사고방식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영어가 미국에 건너간 뒤 변화가 늘어나고 그중 '비기능성'을 띤 변화가 많다는 점을 알아챘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환경에 처해 새로운 현상을 묘사하고 새로운 사물에 대해 논의하려다 보니 언어에 새로운 부분이 추가됐다는 것입니다. '비기능성'의 변화는 변화를 위한 변화입니다. 곧 변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변화한 것이지요."(228-30)


"언어와 문자는 집단 규율이 있고 규율을 세우고 양성하는 기제도 있습니다. 평등과 민주의 효과 중 하나는 고정된 전범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원래 모든 사람이 꼭 읽어야 하거나 학습해야 하는 언어와 문자의 본보기가 없어지거나 또는 원래 본보기가 존재한다 해도 그 규범의 강도가 크게 약화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100여 년 전 미국에서 나타났습니다. 토크빌의 말을 빌리면 이런 상황이 됐습니다. 〈모든 세대의 미국인은 새로운 사람이고 새로운 종의 사람이다. 그들은 옛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 전범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므로 진정한 구속력을 가진 정전正典, canon이란 것은 사라졌다. 정전이 없으니 내면화되고 일치된 언어 규율이 없어지고, 언어와 문자를 운용하기 위한 연구도 없어지며, 과거 유럽의 정확하고 연구된 언어, 문자와 문학도 없다.〉"(232-3)


8 모든 곳에 미치게 된 '평등'의 효과


"『미국의 민주주의』  2권에서 토크빌은 평등이 왜 자유보다 중요하며 어째서 평등이 사람 마음 속에 자유보다 더 높은 열정을 자극하는지 설명합니다. 이 장에서 대혁명 때 그토록 유명하고 그토록 쩌렁쩌렁 울렸던 구호를 회상하는 내용을 읽노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큰 문제가 떠오릅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구호 중에 '박애'는 어디로 갔는가?" "박애의 문제는 인간의 마음을 위반하는 고답적인 평등의 이상을 가정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행인을 형제로 여기는 것은 선하고 고귀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은 행인을 형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형제를 행인처럼 보는 겁니다." "대혁명의 교훈은 보편적인 사랑인 '박애'를 보편적인 잔혹, 평등한 잔혹으로 왜곡하고 변형시켰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현실적 능력을 뛰어넘는 부분을 없애고 고고한 이상을 평지로 끌어내리면 평등만이 남아 모든 사람이 같아집니다."(244-6)


"토크빌은 200여 년 전에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기 다른 모든 영역을 평준화하면 원래 있던 높고 낮음의 구분이 사라져, 구사회에서 볼 때는 높은 곳에 있던 정치 영역이 추락하고 상업, 제조업, 교육 등의 업무와 뚜렷한 차별이 없어지면서 정치 영역이 우수한 인재를 얻을 수 없게 된다고요. 한 사회에서 특별한 재능이 있고 높은 성과를 거둔 사람은 우선적으로 정치 영역에 들어가서 재능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데, 민주주의 상황 아래의 정치 분야는 이러한 유인 요소가 사라져 좋은 인재를 흡수할 수 없습니다. 토크빌은 200여 년 전에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경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재능과 품격 면에서 정치 영역의 사람을 신속하게 추월한다고요. 그의 화법은 실로 악독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보통 자기 재산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야 국가의 재산을 처리할 수 있다.〉"(256)


"토크빌은 특히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는 현상을 중시했습니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기회를 제한하는 어떤 구조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재산을 늘리고 쌓을 권리와 기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등한 사회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은 사라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귀족, 평민, 승려, 장인, 농부 등이 모두 같아집니다. 그래서 사회의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르게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부러움을 받고 존경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평등한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불평등이 됩니다. 민주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의 신분은 여전히 다릅니다." "형식적인 평등 아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위 고하의 구분, 온갖 시기와 부러움, 차별 대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신분을 대신해 사회에서 지위 고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259-60)


"평등은 고정된 범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정치권력상 평등한 대우를 획득하면 이러한 평등의 경험은 반드시 다른 생활 영역까지 확장되므로 평등은 고정된 범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평등은 그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평등의 확장력은 일단 긍정적 가치가 되고 나면 모든 불평등에 설명과 해설을 요구하게 합니다. 더 이상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는 거지요. 이것이 평등이 담고 있는 개조와 진보의 운동 에너지입니다. 평등은 과거에는 평등하지 않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기던 수많은 일에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평등의 보편성은 갈수록 높아집니다. 토크빌은 보지 못했지만 우리 시대에는 이미 전 인류의 범주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워졌습니다. 바로 '인권'입니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 권리이며, '사람'이라는 사실 말고는 어떠한 자격 제한도 없습니다. 인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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