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문 르페브르의 구상


"르페브르는 1965년 저서 『코뮌 선언』에서 혁명운동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자주 도시적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1967년에 펴낸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마르크스의 『자본』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라고 했으나, 그 이면에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사고에 문제제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사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역사의 핵심 사건으로 신화화하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혁명 전략의 차원에서 도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변혁의 주체임을 환기시켰지만, 혁명적 노동자계급에 도시 노동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했다. 훗날 자신이 말한 대로 이는 통념과는 갈래가 전혀 다른 혁명적 계급 편성 방식이었다. 도시 노동자는 파편화되고 분열이 심하며 목적과 요구가 다양하다. 또한 한곳에 고정적으로 정착하기보다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기 일쑤고 조직화 수준이 무척 낮다."(14-5)


제1장 도시에 대한 권리


"여기서 내가 말하는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도시 공간의 형성 과정에 행사하는 권력, 즉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고 뜯어고치는 방법을 지배하는 권력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는 본래 잉여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현상이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이런 일반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나 이전 시대와는 다소 다른 역동성이 존재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듯 잉여가치(이윤)의 영속적 추구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자본가는 잉여생산물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가 도시 공간의 형성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반대의 관계도 성립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는 도시 공간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28-9)


"1800년대 중반, 오스만은 파리의 기반시설을 전면적으로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형 생활양식을 창조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도시형 인격을 구축했다. 파리는 '빛의 도시'가 되었고, 소비, 관광, 쾌락의 일대 중심지로 변모했다. 카페, 백화점, 패션산업, 대형 박람회 등은 조야한 소비주의를 자극해 잉여를 흡수했고 생활양식을 확연히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후 파리 대개조를 뒷받침했던 금융 시스템과 신용구조는 점차 투기적 성격을 띠었고 결국 1868년 파탄 나고 말았다." "오스만이 파리를 근대적 도시로 바꿔놓은 것처럼 모제스도 제2차 세계대전 후 뉴욕 대도시권을 전부 뜯어고쳤다. 뉴욕 개조 사업에서 모제스는 도시 형성 과정에 관한 사고의 규모와 기준을 다시 한 번 바꿔놓았다. 부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고속도로망과 도시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시스템으로, 적극적인 교외화로 그리고 도시만이 아닌 대도시권 전체의 재개발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고 과잉자본을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이다."(33-5)


"군사화와 더불어 교외화가 1950~60년대 잉여를 빨아들인 양대 저수지였다. 그러나 교외화는 도심 공동화를 초래했다. 도심은 지속가능한 경제기반을 상실한 채 그대로 방치되었고, 1960년대 이른바 '도시 위기'를 불러왔다. 번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이너시티(황폐화된 도심 빈곤 지대)로 몰려든 다양한 소수자(주로 흑인)가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스만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가 파리 코뮌의 역동성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요인이었다면, 1968년 미국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여러 운동의 결정적 요인은 삭막한 교외생활이었다. 불만을 품은 중산층 백인학생은 반란을 일으켰고 소외된 다양한 사회집단을 규합했다. 그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한편 전과는 다른 도시 생활을 꿈꾸며 또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이때에도 아나키즘과 리버테리어니즘을 지향한 세력은 위계적, 중앙집권적 대안을 내세운 세력과 맞서 싸웠다)."(36-7)


"2000년대 들어 도시 형성 과정은 또 한 차례 대규모 변화를 겪었다. 간단히 말해 글로벌화되었다. 따라서 미국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부동산시장 붐은 미국 부동산시장 붐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더욱 커지는 데 힘을 보탰다." "중국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하나의 중심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두바이, 상파울루, 마드리드, 뭄바이에서 홍콩과 런던에 이르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세계화의 일환으로 긴밀하게 통합되는 중이다. 이때 부채로 조달한 자금을 도시 개발 사업에 유연하게 투입하는 방법이 주로 애용된다. 이를테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미국의 2차 주택 담보대출 시장에서 대활약했다. 골드만삭스는 뭄바이의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는 데 한몫했고, 홍콩 자본은 미국 볼티모어에 투자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시에서 부자(세계 어디서나 부자는 습성이 비슷하다)를 위한 건설 붐이 한창이다."(39-40)


"현재의 도시 개발 붐은 새로운 금융기관과 금융제도를 구축해 신용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유지되었다. 여기서 1980년대에 발동이 걸린 금융혁신, 특히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판매하기 위한 지역 모기지의 증권화와 패키지화, 2차 주택 담보대출 시장을 촉진하고 부채담보부증권을 보유할 새로운 금융기관의 설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의 이점은 무척 컸다. 무엇보다 위험 분산이 가능했다. 고여 있던 잉여 저축이 주택수요 쪽으로 쉽게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을 분산한다 해도 위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위험을 넓게 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역 차원의 위험한 행동을 부추긴다. 위험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이 적절하게 평가되고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은 통제권을 벗어났다. 결국 1867~68년 페레르 형제 사태나 1970년대 전반에 벌어진 뉴욕 시 파산 사태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주택자산 가치 폭락 사태에서도 되풀이되었다."(41)


"과거에도 그랬듯 최근 도시 형성 과정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생활 양식도 엄청나게 변화했다. 이제 돈 많은 부자에게 도시생활의 질은 일개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주의, 관광, 문화·지식산업뿐만 아니라 스펙타클형 경제에 대한 끝없는 의존이 도시 정치경제의 주요 측면으로 자리 잡은 세계에서는 도시도 하나의 상품이다. 도시형 생활양식과 소비습관의 틈새를 파고든 시장과 다양한 문화 형태 개발을 부추기는 포스트모던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도시 경험은 시장을 통한 선택의 자유 일색으로 물들었다." "이런 세계에서는 극심한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윤리가 인격을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규범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인류가 역사 속에서 마음속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 창조해낸 (적어도 그 엄청난 스케일과 모든 것을 포괄하는 특성 측면에서 판단할 때) 가장 위대한 사회적 성과 중 하나인 대도시에서는 개인주의적 고립감, 불안, 신경증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43-4)


"에르난도 데 소토는 남반구에서 저소득층이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명확한 사적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 있다(명확한 사적 소유권이 정립된 사회도 빈곤문제가 눈에 띈다는 사실은 무시한 주장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리마 빈민가 주민에게 사적 소유권을 인정해준 덕분에 개인들이 넘치는 의욕으로 기업가적 노력을 기울여 개인적 지위 향상을 이룬 사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윤 극대화를 지향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와 상호부조에 바탕을 둔 집단적 생활양식이 빈번하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사적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일정한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안정적이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성과가 무색해지곤 했다. 예를 들어 줄리어 엘리어차가 분석한 카이로의 사례를 보면, '약탈 시장'은 상호존중과 호혜성에 기초한 도덕경제에서 가치를 효과적으로 빨아들여 자본주의적 기관에 갖다 준다."(53)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세계은행과 IMF 같은 워싱턴 금융기관이 지구적인 빈곤문제 해결책이라며 제시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마이크로 파이낸스에도 적용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집단적으로 부채상환 책임을 져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부채에서 해방시키기는커녕 부채에 더 옭아매는 기능을 한다. 더구나 워싱턴 금융기관이 밝힌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세계는 글로벌 금융기관을 위한 고이율 수입원을 만들어낼 소지가 다분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다국적기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 20억 명을 새로운 시장으로 여기며 접근할 길도 열어주었다. 다국적기업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 시장'에 여성 중심의 마케팅 네트워크로 뚫고 들어가 다국적 창고와 노점상을 연결하는 치밀한 마케팅 사슬을 만들어놓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서 더 생산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 어떤 '도시권'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53-5)


제2장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 도시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려고 노동자의 '야성적 충동'을 동원할 때 마주하는 여러 난관은 생산과정의 중심부에 노동과정이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건설 산업 이상으로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산업 부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마르크스의 이론적 장치를 갖고 현실의 사건을 분석하려 할 때 신용 시스템은 물론 이자율과 이윤율 사이의 관계를 자본의 생산·유통·실현의 일반법칙 속에 집어넣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적 통찰을 유지하려면, 신중한 자세로 신용을 일반이론에 통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용 시스템 자체를 하나의 실체로 다뤄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월스트리트나 런던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금융 활동을 메인 스트리트(산업계)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활동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용에 기반을 둔 많은 활동은 투기적 거품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자본이 기능하는 데 근본적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80-1)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의제자본'의 범주로 분류한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제자본과 토지시장 및 부동산시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또한 괴츠만과 뉴먼이 말했던 것처럼 증권화가 투기자본과 모험적 건설사업자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토지가격 및 건물가격, 지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투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 요인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끼리 서로 대출해주거나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대출해준 덕분에 시중에 흘러 다니는 자금이 풍부해져 지대를 획득하고자 하는 부동산 투기업자가 쉽게 투기자금을 확보한다면, 한 의제자본 위에 다른 의제자본이 더해지는 식으로 의제자본이 무한히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레버리징의 고도화(현재 보유한 현금예탁금 총액의 3배가 아니라 30배, 아니 그 이상의 대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제자본의 형성과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흐름에 의해 실물자산은 가공자산으로 바뀐다."(81-3)


"생산에서 창출된 가치와 잉여가치 상당수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의제자본의 회로로 흡수된다. 은행이 다른 은행에 대출을 해주면서 서로에게 레버리지로 작용하면 자산가치가 끊임없이 변동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온갖 부대지출과 투기적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 자산가치는 '자본화'라는 위태로운 과정에 따라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의제자본이 형성되는 하나의 형태로 여긴다. 〈정기적으로 확보되는 그 어떤 소득도 자본을 대출할 때 적용되는 평균이자율에 따라 계산된다. ······ 이것의 소유권을 구입한 사람이 보기에 1년 동안 거둔 소득은 자기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자이다. 이리하여 자본의 실제 가치증식 과정과의 연관은 모두 사라져 자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저절로 가치증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요점은, 지불된 이자는 어디선가 생산된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84-3)


"부동산의 생산과 유통 기간은 어떤 상품과 견주어도 장기적이기 때문에 부동산 공급은 아주 비탄력적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광풍 당시 막대한 양의 의제자본이 주택금융으로 유입되어 주택 수요를 부추겼지만, 그 중 일부만이 신규주택 건설에 투입되었다.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대출 시장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약 300억 달러였으나, 2000년에 이르러 1,300억 달러로 늘어났고 2005년에는 6,250억 달러에 달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수요가 이렇게 급속도로 증가하면, 제아무리 건설업자라도 공급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격은 상승했고, 그 추세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은 의제자본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자본은 〈자동적으로 가치를 증식할 수 있다〉는 물신적 신념이 온전히 유지되어야만 가능했다. 마르크스는 생산을 통한 가치 창조가 불충분하면 물신적 신념이 유지될 것이라는 환상은 반드시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92)


"이 이야기는 또 하나의 상황과도 맥이 닿는다. 미국의 경우 주택가격의 상승은 유효수요를 늘렸다. 2003년 한 해만 봐도 1,360만 건의 주택 담보대출이 발생했고(10년 전 주택 담보대출 발생건수는 그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총액은 3조 7,000억 달러였다. 그 중 2조 8,000억 달러는 차환 목적의 주택 담보대출이었다(비교를 위해 말해두자면, 2003년 기준 미국 총 GDP는 15조 달러에 약간 못 미쳤다). 소유한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이득을 거둔 가구가 많았다. 임금은 제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득은 꼭 필요한 경비(의료비 등)나 소비재 구입비(신차나 휴가)로 쓸 추가 현금을 입수하는 유력한 방법이었다. 주택은 편리한 캐시 카우, 개인 ATM이 되었고, 덕분에 주택수요는 말할 것도 없고 총 수요도 더욱 늘어났다." "문제는 이들 금융기관은 기차가 탈선하기 전까지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를 증식할 수 있다'는 망상은 저절로 유지된다."(94-5)


제3장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미국 생태학자 개럿 하딘의 고전적 논문 「공유지의 비극」은 사유재산권이 확립되면 토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반박 불가능한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소를 기르는 사람은 공유 목초지에 방목하는 소의 마릿수를 늘려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목초지의 지력이 쇠퇴하면, 이는 공유 목초지 이용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소를 기르는 사람은 서로 앞다퉈 소의 마릿수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간다. 공유 목초지가 지력을 상실해 황무지로 변할 때까지 이런 일이 지속된다. 여기서 목초지가 아닌 소가 공유된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원의 공유적 성격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소를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개인적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공유재에 관한 사고는 사적 재산권을 강화하자는 해결책과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을 강화하자는 해결책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기만 한다."(128-9)


"공교롭게도 전통적 사고에서는 '위계'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특히 좌파에게 더욱 인기가 없다. 사실 비국가적·비위계적 수평 조직을 정치적으로 유일하게 올바른 조직으로 여기는 급진파 연구자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중층적, 위계적 조직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귀결될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대규모 공유재(지역 차원의 소규모 공유재와는 전혀 다르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의 문제(예컨대 하딘이 관심을 기울였던 지구적 차원의 인구문제)는 가급적 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한정된 규모에서 공유자원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은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 아니 심지어 화력발전소로 인해 발생한 산성비가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는 문제에는 적용이 안 될 뿐더러 불가능하다. '규모를 뛰어넘으면'(지리학자는 이렇게 말하기 좋아한다) 공유재 문제의 전반적 성격은 물론 공유재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할 전망까지 판이하게 바뀌고 만다."(131)


"흔히 악으로 치부되는 인클로저와 공유재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많은 혼란이 있다. 하지만 큰 규모의 사회질서(특히 지구적 차원의 사회질서)에서 모종의 인클로저는 때로 귀중한 공유재를 보호하는 최상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모순된 말처럼 들릴 것이다. 아니 모순된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현실의 모순된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가령, 아마존 열대우림 지대의 생물다양성과 원주민 고유문화를 지구 전체의 자연·문화 공유재로 정하고 보호하려면 인클로저를 강제하는 엄격한 법이 필요하다." "즉, 공유재 문제는 모순적 성격이 다분하고,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런 논쟁의 배후에는 서로 충돌하는 사회적·정치적 이해관계가 가로놓여 있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했듯이 〈정치라는 것은 끊임없이 다툼이 벌어지는 공동의 활동영역이다.〉 결국 공유재를 분석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물음에 종종 직면하게 된다. 즉, 어느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어떤 이들의 공동이익을 어떤 수단으로 옹호해야 하는가?"(132-4)


"하딘이 거론한 사례에서 진정한 문제는 공유지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근본문제는 소를 소유할 개인적 권리와 개인의 효용 극대화 행동이지 공동 목초지는 아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사적 소유권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교환 제도를 통해 사회 속에 자리 잡을 때 공동이익이 극대화된다는 주장으로 사적 소유권을 정당화한다. 토머스 홉스에 따르면 강력한 국가권력의 틀 안에서 사적 이익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공동의 부가 생산된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같은 자유주의 이론가도 명확하게 밝힌 이런 견해는 이후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신화는 널리 퍼져 있다. 빈곤층 내면에서 잠자는 기업가정신을 일깨우면 만성적 빈곤문제가 해결되고 공동의 부가 늘어나는 등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중세 후기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인클로저 운동을 옹호하기 위해 나온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릇된 것이다."(140-1)


"마르크스가 노동력이 어떻게 개별 상품이 되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에서 매매되는지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면 로크의 허구적 이론은 그 정체가 폭로되고 만다. 교환가치의 평등에 토대를 둔 시스템은 (부르주아적 권리와 합법성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 영역에서 살아 있는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장에서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조직된다. 이런 노동형태에서 파생되는 소유권은 집단적, 협동적 소유권일 수밖에 없다." "가치, 즉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은 자본주의적 공유재로 화폐, 즉 공동의 부를 측정하는 보편적 등가물을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이 가치라는 공유재는 과거에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사라진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 공유재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집단적 노동이 쉬지 않고 생산하는 가치를 자본가가 상품화되고 화폐화된 형태로 인클로저하고 영유한다는 것이다."(142-4)


"자본은 예전부터 사회적 재생산 비용을 외부성으로 여기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 책임질 필요가 없는 비용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공산주의라는 대안이 현실적 위협으로 대두하자 자본은 1970년대에 이르러 환경 악화에서 비롯되는 외부비용의 일부와 함께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일부도 내부화해야 했다. 1980년경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렇게 내부화한 비용을 사회적 재생산의 글로벌 공유재와 환경에 전가해 이른바 '부정적 공유재'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세계의 거의 모든 주민은 부정적 공유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과 환경 개선을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급을 줄여 그 질을 더욱 떨어뜨렸다. 자본은 또 이 위기를 이용해 더욱 극성스럽게 약탈 활동에 나섰고,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공유재를 사적으로 영유하는 데 힘썼다."(156-7)


제4장 지대의 기법


"시장 프로세스는 자본가가 자금과 토지를 포함해 생산수단의 소유를 사적으로 독점하는 것에 좌우된다. 자유로운 경쟁은 결국 엄청난 규모의 자본 집중을 촉발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지대는 토지와 특허 등 생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산을 자본가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해 독점력을 행사하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는 독점력은 모든 자본주의적 활동의 처음이자 끝이다. 모든 자본주의적 거래의 바탕에는 매매하지 않을 법적 권리도 있는데, 매매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를테면 돈을 쌓아놓는 구두쇠 행동)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중요한 문젯거리이다. 따라서 순수한 시장 경쟁, 자유로운 상품교환, 완전한 시장 합리성은 오히려 드물 뿐더러 생산과 소비 결정을 내릴 때 믿고 의지하기에는 고질적으로 불안정한 장치이다. 문제는 자본가가 정치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사적 소유에 대한 개인적·계급적 독점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경제관계의 경쟁적 성격을 유지하려고 하는 데 있다."(170-1)


"교통과 통신 환경의 변화로 공간의 장벽이 얇아지면서 지역의 독점 특권이 침식되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독점력을 유지하는 첫 번째 경로는 거대기업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것, 혹은 시장을 지배하는 느슨한 계열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항공산업과 자동차산업 등). 두 번째 경로는 글로벌 거래를 규율하는 국제상법을 무기로 사적 소유권의 독점권을 한층 확고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허 그리고 이른바 '지적 재산권'은 독점력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고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자본 집중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특허와 사용권 계약으로 보기 드문 독점력을 행사하는 제약 산업이 전형적 사례이다. 제약산업은 온갖 종류의 유전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확립해 한층 더 강고한 독점력을 누리려고 발버둥 친다.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는 독점 특권이 줄어들면서, 다른 방법으로 특권을 유지, 집적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173)


"독특함과 특수함, 진정성과 특별함을 주장하는 것이 독점지대를 획득하는 능력의 토대를 이룬다면, 역사적으로 구성된 문화적 산물과 관습, 특별한 환경적 특징(건조환경, 사회환경, 문화환경 등)만큼 내세우기 좋은 것이 있을까? 와인 거래에서 알 수 있듯 이런 모든 주장은 물질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럴듯한 설명과 표현을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이자 이를 깎아내리려는 외부의 시도에 맞서 싸운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주장의 많은 것들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집단적 기억을 해석해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문화적 실천을 하는 것 등에 좌우된다. 독점지대를 뽑아내기 위한 명분을 쌓을 때는 언제나 강력한 사회적·담론적 요소가 작동한다." "가장 명백한 사례는 관광업일 테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합적 상징자본의 힘, 즉 어떤 장소에 특별한 차별성을 부여하는 행동이 갖는 힘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말해 자본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유의미한 힘이다."(183-4)


"독점지대의 바탕이 되는 탁월성을 상실할 정도의 상업주의로 방향을 바꾸느냐, 아니면 상업적으로 거래되기 힘든 특수한 탁월성을 더욱 쌓아올리느냐 하는 딜레마는 끊임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생산물, 장소, 문화 형태, 전통, 건축유산과 관련하여 무엇이 특별하고 무엇이 특별하지 않은지를 정의하는 문제를 놓고 치열한 담론 전략이 항상 맞붙는다. 담론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게임의 일부가 되고, 여기서 독점지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이를테면 언론과 학계) 이런 담론 과정에 끼어들어 재정 지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사람도 얻게된다. 이때 유행에 호소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흥미롭게도 유행의 중심에 서는 것은 도시가 집합적 상징자본을 축적하는 한 가지 수단이다). 자본가는 이 점을 잘 안다. 이에 다문화주의, 유행, 미학 같은 복잡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더 나아가 문화전쟁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만 독점지대를 잠시라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191)


"하지만 독점지대는 모순적이다. 독점지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은 지역의 독특함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독특할수록, 또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일탈적 성격이 강할수록 더 좋다. 독특함과 특수함, 진정성과 독창성뿐만 아니라 상품생산의 전제인 균질성과 어울리지 않는 사회생활의 모든 차원이 가치평가 된다. 아울러 만약 자본이 독점지대를 영유하는 토대인 독특함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다면(실제로는 그런 사례나 그랬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 사례가 많다), 차라리 일정한 방식의 차별화를 지원한다. 또 너무 다양해서 완전히 제어하기 힘든 지역 문화가 자본 자신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된다 해도 어느 정도 발전할 여지를 인정하기도 한다." "자본의 과제는 독점지대를 영유하기에 충분한 문화적 차이와 문화 공유재를 통합하고, 포섭하며, 상품화하고, 화폐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문화생산자 사이에서 광범위한 소외와 분노를 자아낸다."(193-4)


"대항운동의 과제는 문화 공유재가 광범위하게 영유되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또 특수함과 독특함, 진정성, 문화, 미적 의미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대항운동은 최소한 진정성과 창의성, 독창성이 노동자계급과 농민 등 비자본가계급의 역사 지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부르주아가 배타적으로 생산한 것이라는 사고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고 문화적 특수성의 미학과 진정성, 독창성의 '순수한' 가치에 애착을 보이는 것이 진보적 대항정치의 적절한 토대라는 뜻은 아니다. 그럴 경우 자칫 지역주의적, 지방주의적, 국수주의적 네오파시스트형 정체성 정치로 쉽게 방향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전역은 물론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런 골치 아픈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좌파가 붙잡고 해결해야만 하는 중심 모순이다. 바로 거기에 자본이 폐쇄할 수 없는 변혁의 정치를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194-5)


제5장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


"전통적 좌파(내가 염두에 둔 것은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이다)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전술적 선험 전제를 깔고 도시 기반 정치운동의 역사 지리를 해석하는 습성이 있다. 이 때문에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불을 지피는 도시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오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시 도시 사회운동은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뿌리를 둔 반자본주의 계급투쟁과는 분리된 것 혹은 그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설령 도시 사회운동을 고찰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의 단순한 파생물이나 대체물로 해석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도시 투쟁은 혁명적 잠재력과 혁명적 의의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경향이 있다. 도시 투쟁을 생산 문제보다는 재생산 문제, 또는 권리와 주장, 주권, 시민권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뿐 계급과 관련 있는 것을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208-9)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이론적 결론은 분명하다. 생산에서 계급관계를 철폐하려면 자유무역과 세계시장을 통해 생산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힘부터 철폐해야 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노동과정 내부의 조직화 및 재조직화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 세계시장 전반에 작용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을 대신하는 정치적·사회적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 좌파는 국가권력의 획득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자본과 화폐의 흐름을 규제 및 통제하고, 합리적 계획화로 비시장적(그리고 비상품화된) 교환 시스템을 구축하며, 국제적 노동 분업을 조직적,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재구축하면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먹히지 않자, 공산주의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최대한 고립되는 쪽을 선택했다."(213-4)


"역사상 현시점에서 볼 때 저항과 대중운동이 주기적으로 터져나오고 (다양한 갈래의 대안운동을 포함한) '흰개미 정치'가 자본의 물질적, 제도적 기둥을 갉아먹으려고 위협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가치법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 조건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인 창조적 파괴라는 혼란스러운 과정은 좌파집단을 활기찬 상태에서 응집성이 없고 파편화된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이 모든 것들 한가운데에는 구조적 딜레마가 놓여 있다. 말하자면 좌파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그 대안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협동적 노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이때 좌파에게 이 두 가지 과제를 융합할 능력이 있는가가 딜레마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자본주의 대안운동을 더 큰 틀에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한 핵심적인 변증법적 긴장관계다."(217-8)


"지금까지 대안적 좌파의 정치적 사고를 지배한 노동자관리 개념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투쟁의 초점은 잉여가치 생산의 장인 직장과 공장에 맞춰져 있었다. 산업노동자계급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혁명의 주체로서 우대받았다. 하지만 파리 코뮌을 주도한 것은 공장노동자가 아니었다." "계급적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만 한정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영향은 공장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주로 감지된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자본축적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계급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다." "'약탈에 의한 축적', 지대와 임대료 갈취, 화폐와 이익의 부당한 착취 등은 일상생활의 질을 둘러싸고 대다수 주민들이 느끼는 수많은 불만의 핵심을 이룬다. 도시의 사회운동은 보통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또한 노동은 물론 생활을 둘러싸고 계급권력의 영속화가 조직되는 데서 도시 사회 운동이 발생한다. 따라서 도시 사회운동에는 항상 계급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220-2)


"도시 공간은 그 자체가 생산물이다. 도시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한다. 노동자의 노동은 가치와 잉여가치를 새산하는 생산적 노동이다. 따라서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주된 장소는 공장이 아니라 도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파리 코뮌은 도시를 생산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소유하고 관리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개념이 재정립될 수 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트는 전통적 좌파 대다수가 전위적 역할을 부여한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분명히 다른 프롤레타리아트이다(파리 코뮌의 경우 실제로 그랬다). 이들 프롤레타리아트는 불안정한 처지에 있다는 것,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며, 공간적으로 흩어져 고용된다는 것, 공장을 기반으로 조직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제는 수많은 미조직 도시생산자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을 바꿔 그들 고유의 혁명 능력과 역량을 탐구해야 한다."(222-3)


제6장 2011년 런던, 야만적 자본주의가 도시를 강타하다


제7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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