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 개정판 게리 윌스의 기독교 3부작 2
게리 윌스 지음, 김창락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는 말 〈나쁜 소식 전달자〉


"독일의 위대한 학자 하르낙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란 무엇인가?》에서, 바울이 〈복음이야말로 유대교라는 율법 종교를 폐지하는 하나의 새로운 힘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바울은 어떻게 예수의 메시지를 그렇게도 일찍이 또 그렇게도 철저하게 전복시킬 수 있었을까?" "사실 바울의 서신들에는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들이나 말씀들에 관한 명시적인 언급이 별로 없다. 그는 조국 유대에 대해 아는 바가 변변치 못했으므로 디아스포라에서 그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께 온 관심을 집중한다. 바울 비평가들에 따르면, 바로 이 디아스포라 지역이 바울이 자신의 신학 사상의 구성 요소들을 수집하여 하나의 새로운 종교 속으로 엮어 넣는 작업을 한 곳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적으로 받은 계시 외에는 예수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도 없었지만, 대담하게 원래의 열두 제자들과 의견을 달리하고 그들을 비판했다."(11-3)


"자기 자신의 종교를 창설하는 사람에게 걸맞게 바울은, 초기 비평가들의 눈에는 '이단들의 원조'가 되었다." "무엇이 바울을 이같은 불화의 사과가 되도록 만들었을까? 바울 자신의 말 속에 그 문제의 기원起源이 있다." "바울 서신들은 특정한 지방의 위기를 처리하기 위하여 써 보낸 임기적臨機的인 글들이다. 바울은 여러 가지 투쟁의 한복판에서 수신인들 편에서 제기한 물음에 답변을 하거나 적대자들을 반박하기 위하여 이 편지들을 구술하고 받아쓰게 했다. 그의 답변 속에 적대자들의 모습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바울이 상대쪽이 무엇을 외치는지 알지 못하면서 바울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는다. 바울이 사용하는 매정한 말들 중 일부는 그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보이지 않는 그의 비평가들에게 부딪쳐서 울리는 반향이었다." "즉, 바울은 냉정하고 담담한 철학자가 아니라 전투태세를 갖춘 사자使者였다."(13-7)


# 바울의 서신 분류

1. 바울이 쓴 서신 :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2. 바울의 추종자들이 쓴 서신 : 골로새서, 에베소서

3. 바울의 서신을 재진술한 서신 : 데살로니가후서

4. 바울과 다른 관점에서 쓴 서신 : 디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1장 바울과 부활하신 예수


"예수와의 교제를 시작한 초기의 바울은 유대교 율법에 헌신했던 이전의 삶과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본 경험을 화해시켜야 했다. 바울은 예수(의 역사)를 유대교 율법의 성취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다〉(롬 10:4)." "그리스어로 Khristos(그리스도)는 Kyrios(주님)처럼 하나의 칭호이다. 이것은 히브리어 'Messiah'(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두 낱말─Messiah와 Khristos─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바울은 때때로 예수를 가리켜 '그 메시아'로, 혹은 단순히 '메시아', 또는 '예수 메시아', '메시아 예수'로 칭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예수의 칭호이다. 칭호는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의 유대적 운명과 연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바울에게 믿음의 기본적 계시는 언제나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다(고전 15:3-4)."(48)


2장 바울과 부활 이전의 예수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예수의 삶에 대해 조금밖에 이야기하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서신은 예수의 삶의 의미에 대한 해설이 아니다. 바울이 자기가 손수 세운 교회 공동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러한 일─예수 삶의 의미를 해설하는─에 종사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서신들은 특수한 당면 문제들을 놓고 쓴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문제들을 말하는 데 필요한 경우에만 예수의 삶에서 끌어낸 자료를 사용했다.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바울은 그 말씀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예를 든다면 주님의 만찬(Kyriakon Deipon, '성만찬'을 가리킴), 이혼 문제, 음식 규례의 준수, 전도자가 재정적 원조를 받는 문제에 관해 그렇게 적용했다. 이러한 직접적인 인용을 통해 바울이 제시한 것이 복음서들에 제시되어 있는 후대의 기록들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아마도 더 가까울 것이라는 사실이 논증되었다."(71)


"예수께서는 자기의 몸이 성전을 대치할 것이라고 주장하셨는데, 바울은 이 주장을 되받아 예수의 몸 안으로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을 대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기(oikei, 거처를 정하다, 거처하다) 때문이다. 성령은 더 이상 하나의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oikei)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17, 비교: 고전 6:9, 고후 6:16)." "바울의 말은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만남의 장소를 대치하는 (새로운 참된) 성전이다'라는, 예수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 사실은 (기원후 70년)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더 정확히는 복음서들이 씌여지기 전에─이 전승이 신도들 가운데 유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80-1)


"바울은 율법의 정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갈 5:14).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8-10).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 7:12)." "이것이 진정한 핵심이다. 바울의 사상은 사랑이 넘치는 예수의 사상에 덧씌운 이질적인 사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동일한 사랑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셈이다."(83-4)


3장 여행자 바울


"바울은 어느 면으로 보나 영웅적인 여행자였다. 그는 어림잡아 적어도 13,000km나 되는 거리를 여행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도보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항상 쉽거나 전적으로 안전하지 않았다. 육지의 산적들, 바다의 해적들, 오만한 관리들, 거친 날씨, 시시때때로 부닥치는 위험, 언제나 뒤따라오는 적개심은 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된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바울은 항상 여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동역자들 또는 그가 세운 교회 공동체의 신도들과 오직 편지로만 의사 전달을 했다는 오해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 달 동안 끈기 있게 자기가 아는 각 공동체들과 함께 지냈다." "바울이 여러 교회 공동체들과 맺는 관계는 너무나 밀접해서, 이러한 관계를 표현하는 데 가장 친밀한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는 신도들을 형제자매들이라 부르며 언제나 형제처럼 느꼈다."(90-5)


4장 바울과 베드로


"베드로와 바울이 안디옥에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야고보로부터 경고가 내려왔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음식 규정에 어긋나는 음식을 먹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리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내린 이 지시에 순응했다─이것이 바울을 격노하게 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주님의 식사(=성찬식의 음식)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형제들을 위한 통합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바울에게 단순히 주님의 성찬에서 부여되는 통합이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안디옥 교회 안에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 속에 임재하셔서 그들이 그의 신비한 몸을 이루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의 임재에서 물러난 것은 예수를 배격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장벽을 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모든 민족에게 연장하는 것을 거부한 그 장벽과 관련이 있다."(128-30)


5장 바울과 여인들


"형제자매들의 처음 공동체들은 그 시대에 가장 평등한 집단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의 자매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보호를 받았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시키려는 노력을 수세기에 걸쳐서 협력할 터였다. 그 예로 사람들이 (바울의 여성 동역자인) 유니아에게 한 것─역사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보다 더 극적인 것은 없다. 유니아는 배경상으로 바울의 친구이며, 감옥 동료이며, 동료 사도이며,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사람이었다(롬 16:7)." "처음 공동체들에는 직제는 없이 단지 직능들만 있었고, 바울은 성령의 갖가지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의 동일한 위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세 개의 큰' 은사─사도, 예언자, 교사(고전 12:28)─중에서 사도들(apostoloi)을 목록의 첫번째로 넣었다. 유니아가 단지 사도들 가운데 포함된 것이 아니라, 뛰어난(episemoi) 사도들 가운데 포함된다는 것은 아주 높은 명예이다."(138-40)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쓰기를 그곳의 예배 모임에서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전 11:5), 바울은 예배 모임에 입고 올 옷을 두고 일어난 싸움을 말하고 있다." "남자는 하나님의 직접적 형상이기 때문에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도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남자─의 형상이고, 남자 다음에 창조되었으며 남자의 조력자가 되도록 예정되었다(고전 11:7-9). 남자가 이러한 문화, 즉 유대 사회와 로마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차별주의의 갖가지 찌꺼기들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울이 자기와 함께 일하는 여자들에게 사도, 예언자, 봉사자(diakonoi)라는 여러 유형의 영예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그 여자들은 그가 관여하는 공동체들 속에서 혹은 그녀들을 위해 제시하는 이상 사회에서 2등 시민이 아니다."(148-50)


6장 바울과 문제투성이 공동체들


# 바울의 서신 중재

1. 데살로니가전서 :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자신들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훈계함

2. 갈라디아서 : 할례 받은 신도들과 할례 받지 않은 신도들 사이의 갈등을 훈계함

3. 빌립보서 :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훈계함

4. 빌레몬서 : 빌레몬에게 그의 노예 오네시모가 행한 잘못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주기를 요청함

5. 고린도서 : 교리, 훈육, 환상, 계급, 성, 인품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대응함

6. 로마서 : 로마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베풀 것을 요청함


7장 바울과 유대인들


"바울의 시대에는 그리스도 교회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었다. 예수를 유대인들이 약속된 메시아로 보는 유대 사람들과 이에 더해서 예수를 유대인들이 약속된 메시아로 보는 이방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바울은 이 이방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끌어들이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이었다. 바울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아무것도 없이 가르친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성서로부터 가르쳤으며 그 메시아를 유대교 계약의 성취로 제시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집단 사이에 하나의 연속체를 발견할 수 있다: 1.예수를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 2.예수를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 3.예수를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비유대인들. 여기에는 유대교적 맥락 밖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즉 전체 유대인에게 대적하는 집단은 하나도 없다. 여호화에 대한 유대인의 이해와 분열이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하나의 가족 싸움을 보고 있는 것이다."(187-8)


"바울을 읽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 중 하나는 그가 '유대인들'을 언급할 때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는 매번 바울을 오해한다. 즉 바울이 위에서 제시한 2번 집단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1번 집단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한다. 2번 집단의 유대인들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을 부과하려고 해서, 바울과 계속 부딪히면서 갈등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따라서 바울이 유대인들이 〈우리가 이방 민족들에게 구원받는 방법을 말해주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말할 때에, 그는 〈할례주의자들〉 같은 사람들 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교의 음식 규례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보기에 신도들의 단체 안에 임재해 계시는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을 죽이려 했던 것과 같다(과거에 바울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189-90)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교 율법의 모든 의식적 요구사항을 준수할 의무는 없다 하더라도, 유대교의 율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방계 형제들에게, 예수가 성취하신 약속들은 유대교의 약속들이고 그 약속은 율법의 보호 아래 전해 내려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했다. 〈그러면 유대 사람의 특권은 무엇이며,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입니까?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롬 3:1-2).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이 예수가 성취한 복음의 보관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줄기에 접붙임 받은 것이다. 그 줄기가 없다면, 이방인들은 세계와 그것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허공에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스텐달이 적절히 지적하듯이, 이방인 형제들에게 내리는 (바울의) 이러한 주의사항은 그리스도교가 반셈주의가 되는 것에 대항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선의 경고이다."(197-8)


"어떤 이들은 바울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 유대인들의 회개가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줄기를 가지에다 접붙이는 것이다. 바울은 형제들이 유대인의 약속, 역사, 운명에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그 반대로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바울은 하나님이 유대교의 율법을 폐하신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인류의 〈두 노선〉의 구원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이방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될 것이고 유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율법을 가지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이방 사람들만이 예수를 의지해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예수를 유대교의 계약 그리고 그 성취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좀 후대 세대들은 예수에게 귀의하는 것을 하나의 분리된 종교, 즉 '신약성서'의 종교에 귀의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신약성서라는 것과, 유대 백성이 받은 약속 안에 들어 있는 구원 외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202-3)


8장 바울과 예루살렘


"예루살렘 교회를 상대로 한 바울의 지속적 투쟁은 예루살렘 교회와 일으킨 첫번째 충돌 때 합의한 것을 이행하려는 그의 열의 속에 명백히 드러난다─그때의 합의사항은 그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편지들의 상당 부분은 예루살렘을 위한 큰 자금을 모으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 이 일은 바울에게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었다. 바울은 그 모금을 유대에 있는 유대인 형제들에게 연결되는 하나의 가교로 보았다. 그것은 더 나아가서 유대인 전체에 연결되는 가교일 것이다. 그는 그 모금을 거대한 규모로 조직하고 있었는데, 매년 예루살렘으로 유입되는 수백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막대한 성전세 납부와 견줄 만한 그러한 규모였다." "바울에게는 공동체들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이러한 거래가 예수의 몸에 속한 각 지체의 상호성에 대한 물질적 표현, 바로 그것이었다."(207-11)


"왜 예루살렘 형제들은 자신들을 위해 모금한 막대한 헌금을 불쾌하게 여겼을까? 슈미탈스는 야고보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과─그들의 적개심은 머지않아 야고보 자신의 목숨까지 요구하게 될 것이었다─대별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울 일행은 대부분 할례 받지 않은 형제들인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야고보가 이들이 가지고 온 물질적 자금을 받는 것은 그의 처지를 훨씬 더 어렵게, 심지어는 변호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내에 선교 사업을 펼칠 마지막 기회를 얻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때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기부금을 받는다면, 유대인들이 눈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과의 연대성을 천명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 자체의 선교 가능성을 파괴하게 하는 위협이었다.〉"(216)


9장 바울과 로마제국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후로, 우리는 바울이 한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다. 그의 예루살렘 여행과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로마 여행에 대해서는 누가의 사도행전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제국의 시민이었다는 누가의 주장을 의심할 이유는 많이 있다. 바울은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다섯 번 매를 맞은 것 말고도, 로마 관리들에게 세 번 채찍질 당했다고 했다(고후 11:25)─그러나 로마 시민을 채찍질 하는 것은 위법이었다. 키케로가 베레스의 2차 공판에 부쳐 말했다: 〈로마 시민을 사슬로 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로마 시민을 채찍질하는 것은 범죄다. 로마 시민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실지로 일종의 존속살해 행위이다.〉 이러한 보호장치에 몇몇 예외사항이 있었던 게 발견된다. 그렇지만 그런 예외를 바울의 경우에 적용하려면 여덟 가지 서로 다른 계기에(아마도 여덟 군데의 다른 지역에서) 예외적 상황이 발견되었다고 상상해야 할 것이다."(228-30)


"바울은 유대인 형제자매들을 위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었다. 바울은 야고보가 그 헌금을 기꺼이 혹은 고맙게 받아주지 않을까봐 걱정했다─누가는 그들을 만나게 했으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야고보가 기꺼이 받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분명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그 일은 누가의 의도를 난처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기록에서 그것을 삭제해야 했다. 그 대신 야고보가 유대인들의 적개심에 대해 바울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고보는 유대인들의 적의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바울이 성전에 가서 몸을 정화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이 조언 역시 역효과를 낸다.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고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체포당한 것은 성전 안에 있는 동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신문하고 사형 선고를 받도록 로마인들에게 넘긴다."(232-3)


"로마 공동체의 불명예스러운 내부 분열과 거기서 생긴 가장 위대한 두 사도의 죽음에 대해 신도들 측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 유일한 직접적 증거는 이교도 타키투스의 증언이다. 클레멘트와 이그나티우스는 단지 간접적인 (신중한) 증거를 제공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처리하게 위해 돌아온 바울이 밀고자들과 네로의 더러운 거래의 희생자가 되어 죽임을 당했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마지막 한 가지 점에서 자신의 거룩하신 스승을 따른 셈이 된다. 그 두 사람을 죽인 것은 종교였다." "두 사람이 네로 치하에서 죽었다면, 베드로는 거꾸로든 똑바로든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으며, 누가가 바울에게 씌운 로마 시민 신분은 그의 죽음과 아무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갈기갈기 찢기거나 네로의 정원에 장식용 횃불로 사용되는 끔찍한 방식으로 죽었을 것이다."(242-3)


맺는 말 바울 잘못 읽기


"종교는 예수의 유산을 접수하여 입맛대로 주무른 것처럼 바울의 유산을 접수하여 입맛대로 주물렀다─왜냐하면 예수와 바울은 둘 다 종교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율법의 외형적 준수나, 성전이나 교회, 성직계급 또는 성직자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내면적 사랑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들은 둘 다, '종교'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그 짐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사람들과 반목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비록 관습적인 정치의 밑바닥을 파고들거나, 관습적인 정치를 뛰어넘는 방법을 취하긴 했지만,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들은 부자들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오직 두 가지 기본적인 도덕적 의무,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 보았다. 그들은 둘 다 풀어주는 자였지, 가두는 자가 아니었다─그래서 그들은 갇혔다. 그래서 그들은 죽임을 당했다."(25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