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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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청년장군


"협의과정에서 북측이 취하는 전형성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회의의 공식성을 중시해서 격식을 갖춰 웃으며 악수하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상대방의 설명을 먼저 잘 듣고 메모하다가 실무적인 내용보다 원칙적인 문제를 찾아서 거론한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비판하고 꾸짖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위축시킨다. 자기편 주장을 강하게 말하면서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을 고조시키고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상태로 회의를 끝내기도 하고, 다시 만나서 논의하기로도 한다. 다시 회의가 시작되면 다시 웃고 덕담하고 원칙과 도덕으로 비판하고···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기 주장을 관철하거나, 상대방의 제안을 조정하도록 해서 최대한 자신들의 입장과 체면을 지킨다. 결국은 받을 것이었는데 자존심 하나를 지키려고 그 어려운 과정을 반복한 것이다. 그동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북 협상 과정에서 겪었던 일이고, 앞으로의 협상에서도 패턴은 비슷할 것이다."(22)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의 원리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기는 국제사회의 동정이나 연민으로 얻을 수 있는 지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국제 구호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실제로 어떤 지원을 받았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방식으로 국제사회의 동정을 구하는 가난한 나라 취급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개인적 자선과 마찬가지로 국제원조도 대상국의 상태와 실력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참혹한 모습으로 도움을 청해도 가난한 걸인에게는 동전을 던져줄 뿐이다. 입성이 반듯하고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단위나 지원방식이 달라진다. 실력과 배짱이 있는 상대가 '나'를 해칠 수 있는 힘까지 가지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대기근상황에서 발사한 미사일 광명성은 바로 그런 길을 가기로 했다는 선언으로 들렸다."(24)


2장 행복을 교시하는 나라


"〈행복 넘쳐요〉라고 노래하는 유치원 아이들의 '행복'과 '장군님'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장군님'을 왜 '아버지'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주체사상의 논리에서 보면 이들은 스스로를 항일 유격대의 전통을 이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민족을 해방시키려는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령을 중심으로 굳게 뭉쳐 고난을 견디며 바른 편에 서서 바른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압도적인 외세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가난하고 괴롭지만, 올바른 길을 가는 자신들이 언젠가는 승리해서 통일을 이루고 민족을 해방시킬 영광스러운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의 노래하는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듯 물질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나 〈우리식대로 살자〉든가 〈조선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라는 표어도 남한식으로 해석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들 나름의 도덕원리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적 표현이기 때문이다."(62-3)


"남아프리카 부시맨 문화에서는 선물을 받고 감사하거나 칭찬하는 법이 없다. 평등사회의 문화원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예를 들어 사냥꾼이 큰 짐승을 잡아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모두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면서 고기가 질기다고 불평을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냥꾼의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고마움'은 선물을 주고받는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그와 같거나 더 큰 선물로 확실하게 갚는다." "북한 당국도 소떼를 몰고 온 정주영 회장에게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개발권으로, 감귤을 보내온 제주도민들은 전세기편으로 직접 평양에 오게 하는 식으로 그때의 고마움을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계산'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나누어 주고, 아이들이 먹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면 줄 수 없다〉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런 꼬리표가 붙는 '선물'은 안 받겠다는 것이 북쪽의 일관된 입장이다. '선물'은 장군님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69-70)


"대기근 발생 초기에 국제사회의 구호를 기대하며 공개한 육아원과 아동병원에서 외부 사람들이 찍은 아이들의 참혹한 영양실조 사진은 모금 활동에 일부 활용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폭넓게 북한정권의 실패와 인권상황을 고발하는 이미지로 확산되었다. 그후 북한 당국은 그런 현장에 더이상 외부의 눈길이 닿지 않도록 관리했지만, 이미 널리 퍼진 이미지들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아직도 수많은 반북 정치집회에 동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후에도 여러차례 평양에 갔었지만 다시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아프리카의 비아프라,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전쟁과 자연재해로 수많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그 아이들의 참혹한 사진들은 오늘날까지 지워지지 않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많은 끔찍한 사진들을 돌려 보면서 국제사회는 그 아이들을 얼마나 구했을까? 깡마른 북쪽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도왔을까?"(79-80)


3장 아버지 나라의 교육


"혁명투쟁 중에 희생된 동지의 자식들을 자기 자식처럼 거두어 키워주는 수령의 '어버이'로서의 이미지는 국가 전체로 확대된 가족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혁명학원과 정치적 양부모 관계의 의미에 대해서는 탁아소와 유치원부터 모든 교육기관에서 반복학습을 통해 가르친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혁명학원은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국가'의 확대종가로서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서는 혁명을 (기득권 세력에 맞선) 사회 내부의 평등보다는 외세로부터의 해방으로 개념화했다. 외부와의 혁명투쟁이 길어지다보니 '대를 이어' 혁명을 해야 한다. 그 혁명의 효율을 위해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고, 선택의 기준은 개인의 능력보다 신뢰를 우선한다는 논리다. 특별히 신뢰받는 혁명가족의 아이들은 국가적으로 특별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장기화된 혁명의 현실은 처음에 추구하던 혁명의 이념과는 달리 특권 의식으로 나타났다."(107-8)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총 4천 명 이상이 교육받았다. 중국이 가장 많은 수를 돌보았고, 몽골과 소련으로 보낸 고아들까지 포함하면 최소 2만 5천명 이상을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이 돌봐주었다고 한다."(110-1) "동구권 국가에서 교육받은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1960년대 초중반까지 모두 북한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한 동구권 사회의 영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귀국 직후 이들은 집중적인 사상 재교육을 받았다. 심각한 문화충격으로 재적응에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귀국 전쟁고아들은 '어버이 수령'의 특별한 사랑을 증명하는 존재들로서 외교 및 통역 분야는 물론,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고 지도적 역할을 했다. 평양과 해외에서 그들과 교류해본 전 루마니아 대사는 전쟁고아들처럼 '어버이 수령'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집단들이 국제적 고립과 위기상황에서도 체제의 전복을 막아주는 '평형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114-5)


4장 태양민족의 탄생


"김일성의 삶 이야기는 대부분의 신화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문화영웅'의 통과의례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즉, 평범한 출생배경을 가진 어린 영웅은 소년기에 집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훌륭하게 성장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물聖物, 두자루 권총'을 물려받고, 성스러운 산(백두산) 속으로 들어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시련을 겪으며 민족을 노예로 삼은 외적을 물리치고, 마침내 고향(만경대)에 돌아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만든 '해방조국(지상낙원)'의 태양이 되어 영생한다는 서사구조다." "영웅의 '통과의례'처럼 소년 김일성은 두 번의 천리길 여행을 통해 청년이 된다.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돌아오는 개선장군으로서의 '귀국',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수령으로서의 '건국'이 장년이 되는 과정이다. 그의 노년은 '민족의 태양'으로 추앙받으며 사랑과 이적을 보여주는 삶이었고, 그는 죽어서도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조상신'으로서 '영생'한다."(150-1)


"김정일의 탄생으로 북한의 신화는 세 명의 대성인(김일성, 김정숙, 김정일), 성스러운 삼위三位의 신격을 갖게 되었다." "김정일의 탄생설화는 예수 탄생을 둘러싼 다양한 전설과 성서적 표현을 번안한 형태로 전개된다. 그의 탄생은 성스러운 백두산의 겨울밤, 눈덮인 소나무 가지 사이로 이상한 별이 빛날 때, '정일봉' 아래 통나무집에서 〈룡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가 태어났다는 전설적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늘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이 노래하고,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 동방박사들이 찾아온 것처럼, 김정일의 탄생은 먼저 민족의 향도성인 〈광명성〉이란 새 별이 솟아나는 것으로 예시되었다고 한다. 땅에서는 마구간에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동방박사들이 선물을 바친 것처럼, 백두산 밀영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어리신 장군님〉에게 충성스러운 빨치산 '경위대원(호위대원)'들이 소박한 장난감을 바쳤다고 한다."(169-70)


"극장국가의 권력은 영토나 물리적 강제력을 확대하는 것보다 주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일에 주력했다. 또한 극장국가의 정치와 행정체계는 국가의례의 준비와 집행을 다른 어떤 복지적, 경제적 심지어 군사적 이해보다도 앞세웠다. 그렇다면 (아직 기근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에게 '악의 축'으로 낙인 찍힌 2002년에 처음 개최된) 「아리랑공연」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국가적 장중함과 긍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국가가 초라하게 위축된 상황일 때 더욱 스스로의 존재감을 안팎 모두에게 과시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문화적으로 익숙한 예술창작 방식을 총동원하여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리랑공연」이다. 즉, 김일성으로 상징화되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정치적 정통성을 재확인하고, 주체적 삶을 지키기 위한 김정일의 선군정치의 힘을 보여주고, 미래의 유토피아 통일조국에서 〈태양민족〉, 〈김일성민족〉이 세계적으로 영원히 중심에 선다는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다."(177-8)


5장 빨치산과 고난의 행군


"'유격대국가'로서의 역사는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강요한 자기중심적 권력서사만은 아니다. 주체적 해방서사에 목마른 탈식민국가의 여러 집단들이 이런 이야기를 서로 만들고 유통하면서 스스로 하나의 문화적 논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만든 이야기에서 구체적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교훈적 이야기의 설득력 있는 의미구성이 중요하다.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사회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가치관 교욱으로서의 효과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수령과 국가권력에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교육 효과가 있는 다양한 영웅적 미담들도 꼭 사실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황당할 정도로 많은 신화나 영웅담 형식의 과장된 이야기가 항상 보급된다. 통제된 정보매체 속에서 '이야기'에 굶주린 어른들과 아이들은 같은 주제지만 늘 새롭게 창작되고 있는 변주곡들을 반복해서 소비하고 있다."(195)


"외부세계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려서 경제적 파탄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를 앞세운 선군정치의 힘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자주성'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군대가 〈총 한번 쏴보지 못하는 무력한 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주의 제도가 붕괴되고 인민들은 전쟁과 약탈, 민족분쟁으로 인하여 자기의 정든 보금자리마저 빼앗기고 다른 나라로 류랑의 길을 떠나고 있지만〉, 조선은 그런 파국을 막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택한 '군사우선 사회주의', 즉 '선군정치'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고, 이웃한 사회주의 패권국 중국의 변질된 '경제우선 사회주의'와 대비되는 정통성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국가운영 원리이 '당'과 '군'의 서열관계를 역전시킨 것이다. 합당한 물적 토대를 혁명의 원동력으로 강조하는 정통 맑스주의의 전제도 뒤집은 것이다."(204-5)


"흔히 북한을 '벼랑끝 외교'를 펼치는 나라라고 한다. 늘 외부세계의 예상과는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정말 벼랑끝에서 몸을 던질 각오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정책결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극장국가 내부에서 그들 자신이 스스로 연기를 멈추도록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문화적 '연기'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계기만 있으면 한순간에 대본이 바뀐 듯이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있다. 실제로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은 하루아침에 모든 전선의 일본 군인들이 무기를 놓게 하였다. 마지막 한사람까지 죽창을 들고 싸우고자 했던 일본 국민들도 그의 한마디에 주술에서 풀린 듯 개인적 복수심까지 접고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군을 환영했다. 천황이란 상징체계의 중심이 움직임으로써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210-1)


"북한 기근피해가 가장 혹심했던 1995~98년간에 남한사회가 당시의 경제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배경에는 기근으로 인해 북한체제가 조기에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참혹한 기근이 진행되고 있다 해도 그 기근을 발생시킨 체제가 있는 한 구호활동은 그 비극을 연장시킬 뿐이니, 그 체제가 붕괴하기를 기다려(혹은 적극적으로 붕괴시켜) 일거에 구원하자는 논리였다. 돌이켜보면 이는 '기근'현상에 대한 무지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혹독한 기근이라도 기근 자체는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들은 권력에 저항할 힘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사회에서 발생한 '기근'에 대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에 비로소 피해규모가 드러난 중국의 대약진운동 시기 대기근의 경우 사망자만 약 3천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정치체제는 물론이고 권력구조에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220-1)


"당시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좀더 잘살아보겠다는 행위가 아니었다. 자살만큼이나 극단적인 저항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미 반세기 이상 북한은 국민들을 극도로 군사적인 빨치산국가의 구성원으로 사회화시켰다. 그 국가공동체를 이탈하는 것은 비겁한 배반이고 반역적인 범죄로까지 여기도록 했다. 발각되면 그 처벌은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탈북난민들은 항상 붙잡혀서 송환되는 것에 대해 극단적인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송환된 후 자기 자신의 운명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종류의 공포심은 극단적인 죄책감과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겨서 일단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잘 먹으면 곧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북한에 남기고 온 가족 때문이었다. 국경을 넘은 자신의 행동이 비겁한 배반이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지우지 못했다."(228)


# 기근의 3단계 진행과정

1. 경계 : 기근 초기에는 공동체적 이타성이 높지만 결핍이 심각해지고 사회적 통제가 이완되면서 점차 유대감이 사라진다.

2. 저항 : 심한 결핍으로 활동이 감소하고 사회관계도 침식되면서 공공재 파괴현상이 나타나고 가족단위의 유대만이 남는다.

3. 탈진 : 가족마저 붕괴되어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식량자원을 통제하는 권력에 복종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6장 차별과 처벌


"평양과 지방은 확실히 달랐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현격한 질적 차이가 느껴졌다. 도로와 건물 상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복장, 표정, 걸음걸이와 자세까지 차이가 있었다. 물질적 생활수준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복지수준도 격차가 큰 듯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평양으로 들어와 살고 싶어 한다." "평양은 도시 슬럼 같은 문제도 없다. 경계관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양시민들은 지방민들이 소지한 '공민증(남한의 주민등록증)'과 다른 '평양시민증'을 소지한다. 평양시민증은 1997년 기근이 한참 심해질 때 새로 만들었다. 식량배급이 먼저 끊긴 지방에서 마지막까지 식량이 배급되고 있던 평양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평양 이주는 물론 방문까지 철저하게 관리했다. 평양 방문허가증은 국경을 넘는 비자와 같은 기능을 했다. 국가 안에 또 하나의 국경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기근시기의 끝자락에 내가 본 평양 경계선에는 메마르고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256-7)


"탈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출신성분이 나빴거나 가족과 친척 중에 정치적 과오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했다. 상당수는 바로 그 반대의 이유로 우대받고 당당하게 살았다. 그때 나오는 표현이 〈깨끗하다〉 〈더럽다〉 〈썩었다〉 〈순수하다〉 〈오점〉 〈전염〉 같은 말이다." "이런 문화체제에서는 '오염되었다'고 지목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도 혈연적 친밀도에 따라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위험시한다. 그들은 남들보다 낮은 위치에서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 "출신성분이나 과오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다시 '깨끗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수령뿐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덕성실화는 각 곳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위험시되던 오염된 성분의 인재들을 바로 현장에서 사면하고 구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차별제도 자체를 없애는 조치는 결코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별적인 그의 '은사'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이 된다."(270-1)


# 사회적 낙인stigma의 세 가지 유형(어빙 고프먼)

1. 신체적 흠이나 장애로 인한 낙인

2. 반역적인 믿음, 부자연스러운 감정, 정신질환, 의지박약 같은 성격적 결함에 따른 낙인

3. 인종, 민족, 종교처럼 가계에 따라 전달되면서 가족 모두를 오염시킬 수 있는 부족적(집단적) 낙인


"북한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여성을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라고 하면서 전통가족을 〈붉은 가정〉으로 바꿨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실제 가족관계를 비롯한 일상생활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요즘 북한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부장적 가족생활 문화는 1972년 수령 중심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관계가 있다. '조선식 사회주의'는 서구식 사회주의와 다르다는 주장과 함께 전통적인 가정생활 방식이 되살아났다." "1980년대 이후 북한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고 김정일 후계체제가 공식화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 대가정'이란 개념이 나타났다. 생물학적 혈연관계인 부모자식 관계처럼 정치적 생명을 준 수령을 아버지로 당을 어머니로 '섬기는' 인민이 되라는 것이다. 이런 이념을 가정에서도 매일 생활의례를 통해서 되새기도록 했다.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가 다시 강화됐다."(278-80)


7장 저변의 흐름


"(대기근의 여파로 공식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식량과 에너지를 포함한) 국내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필요한 물자를 외부에서 확보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중국은 생존의 열쇠였다.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돌아와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장마당에서 팔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중국에서 팔릴 만한 물건(또는 사람)을 모아 다시 그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해서 점점 그 길을 넓혀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사 올 돈을 처음 마련한 사람들은 주로 중국이나 다른 외국(일본과 한국)에 있는 가족을 통해서 외화를 모으거나, 외부세계와의 연줄을 통해서 그쪽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들고 나가 목돈을 만들었다. 그렇게 초기 교역자금을 마련하고 이윤증식 기술을 익힌 사람들을 '돈주'라고 했다. 초기 돈주들 중에는 골동품으로 큰돈을 쥔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305)


"초기 돈주 중에서 중국과 한국 '대방'과 연줄이 있고, 또 당간부나 고위 관료들과도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었던 사람들은 직접 '와쿠(교역허가권)'를 받아서 무역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중 능력 있는 사람들은 국가기관(당, 군, 정) 소속 기업이나 무역회사의 이름을 빌려서 공식적으로 교역하고 비공식적으로 상납하면서 이윤을 챙겼다." "진짜 돈주의 출현과 소비재의 유행을 보고 자본주의의 맹아라거나 체제붕괴의 조짐이라고 여기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스스로 생산수단을 갖지 못하고, 임금고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돈주들을 자본가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오히려 기존 권력체제를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고, 스스로의 안전과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다. 즉, 시장을 통해서 관료층과 상호의존관계를 맺은 돈주들이 혼인과 신분세탁을 통해서 기존의 계급체제에 새롭게 편입되는 구조다. 이런 방식의 변화는 사회계급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사회구조 자체는 유지되게 한다."(310-1)


# 대방 : 북한에서 국경을 넘어온 물건들을 받아서 팔고, 식량이나 생필품을 준비해서 보내주는 중국 쪽 교역 상대방


"이동성이 높은 남한사회와 달리 거주이전이 자유롭지 않은 북한에서는 이웃과 동네, 즉 지역사회가 정치적 기능면에서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생활면에서도 중요한 거점이다. 대개는 평생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민반 등 기초 지역조직들은 상부의 명령을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보고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적인 상호감시체제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일상생활면에서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들을 협동해서 해결하는 기능과 주민들 간의 상부상조 네트워크 역할도 했다. 특히 공식적 배급체제가 무너진 위기상황에서는 지역단위 주민들이 전통적인 '계'나 '두레' 방식으로 비공식적인 자원과 기술을 모아서 대응했다. 실제로 장마당에 진출한 사람들 중에는 이웃들을 통해 장사기술을 배우고, 동네에서 '모음돈(모아먹기, 계)' 또는 '다니모시(모음쌀, 십시일반)' 방식으로 씨앗자금을 마련한 사례들이 많았다고 한다."(328-30)


"대기근 초기에 김정일은 역설적으로 '웃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가장 극적인 '지도자의 웃음'은 김일성의 영정사진으로 등장했다. 모든 가정과 공공장소에 근엄한 표정의 수령 초상을 모시고 살던 인민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난 거대한 초상화에 어리둥절했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 낙관적 미래를 과시하기 위해 김일성의 영정을 더욱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그리도록 김정일이 직접 지시했다. 그 이후 계속된 비극과 고난의 시대에 김정일 자신도 파안대소하며 현지지도를 했다. 체제의 한계를 웃음을 통해 극복하려 한 것이다. 그 아들 김정은도 위기감을 높이는 미사일 발사 현장에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낙관적 정서를 퍼트리기 위해 국가권력이 선도한 웃음은 '관제' 영화와 TV드라마 속에서 '웃음과잉'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이렇게 공식 미디어에 나타난 웃음은 비공식 통로로 국경을 넘어서 들어온 새로운 오락문화의 강한 침투력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이기도 했다."(339-40)


"생활의례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매주 한 번 하는 '생활총화'다." "생활총화는 대기근으로 사회제도가 흔들린 상황에서 뚜렷하게 형식적인 집단의례로 변질되어갔다. 생계문제로 바쁜 사람들은 생활총화가 있는 날 빠지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몇 사람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참가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딴짓을 하면서 의례의 권위와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의 저항도 자주 나타났다. 여러가지 전술로 변질되고 있기는 해도 생활총화는 북한 사람들의 심성과 행동패턴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고백, 비판, 반성, 교정, 새 출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활총화 과정은 본질적으로 종교성이 강한 생활의례다.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먼저 드러내 보이고, 용서받아서, 다시 깨끗해진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정화의례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와 비슷한 일종의 '고백의 문화'라 할 수 있다."(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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