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3 - 근대적 / 근대성, 근대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3
한스 울리히 굼브레히트 지음, 원석영 옮김 / 푸른역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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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술어 '근대적modernus'의 의미

1. 현재(↔ 이전) : 바로 지금 다른 것들로 대체될 수 있는 제도나 생각, 대상들

2. 새로운(↔ 오래된) : 과거의 시대들과 구분되는 한 시대

3. 일시적인(↔ 영원한) : 영원을 축으로 대비시킨 '미래의 과거로서의 현재'


2.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근대적modernus' 개념


"13세기 이후에는 (서론에서 구분한) 첫 번째 의미에 따른 '옛날 사람들/현대인들antiqui/moderni' 패러다임이 일정 기간 동안 경쟁하고 이후 해체되는 철학 학파들을 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렇게 사용됨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논쟁을 넘어서까지 적용할 수 있는 명칭이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여전히 '현대철학moderne Philosophie'으로 간주되었다. '현대적 방식via moderna'은 14세기에 통상적으로 오캄의 유명론의 명칭이었다. 그러나 중세에서 '옛날 사람들'과 '현대인들'이라는 대비는 훨씬 더 광범위한, 시대의 자기 이해를 규정하는 구분에 사용되었다. 중세신학자들은 '현대인들'로서의 자신들을 사제들과 차별화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과 대비해서 '옛날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이와 달리 고대라는 과거를 지향하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형용사 '근대적modern'이 현재를 칭하는 데 사용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22-3)


3.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의 '근대적modern' 개념


"1678년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어 20년 이상 지속된 〈신구 문학 논쟁〉은 페로가 '근대인'이 고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새로운 우월감을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촉발되었다. 그 우월감은 현대Gegenwart가 데카르트와 코페르니쿠스 이래로 학문의 완전성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명백한 우위가 현대 예술의 보다 높은 완전성 속에 그 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중세의 유형학적 관점을 대체한 르네상스의 순환적 역사관 자리를 진보적 역사 모델이 새롭게 차지했다." "논쟁을 유발하는 페로의 명제 〈우리가 바로 고대인이다〉에서 '고대인'이라는 말은 분명히 현재라는 장소를 특징짓는다. 아울러 새로운 역사 모델의 시대 순에서 '근대인'의 장소를 특징짓는 동시에 지금까지 〈고대의 고대인〉에게 인정된 우위가 이제는 현대의 대변자로서 〈근대의 고대인〉에게로, 역사적인 발전의 끝과 그럼으로써 완성을 재현한 〈근대의 고대인〉에게로 옮겨져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친다."(29-30)


"《백과전서》가 다시금 고대를 현대 미적 감각의 훌륭한 기준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은 18세기에 지배적이었던 고전주의에 직면하여 〈논쟁Querelle〉에서 제시된 가능성, 즉 각각의 시대 예술을 모든 이전 시대들의 예술과 동등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형용사 '근대적modern'이 고전주의 맥락 속에서 현재가 독립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과거와 분리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고대에서 받아들인) 〈예술〉이라는 제도를 '근대적'이 지닌 첫 번째 의미로 특징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중세 봉건지배 체제 원리를 '근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 체제에서 전파된 인류사의 데카당스 모델의 틀 안에서 현재를 앞선 시대로서 고대와 비교하면서 현재의 열등함을 입증한다." "그러나 당시 고전주의 예술 이론들과 대조적으로, 루소는 고대를 모범적인 패러다임이라고 하지 않았다. 고대 사회들 또한 분업과 소외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3-5)


"고대 작가들은 자연적인 교육을 통해 인위적인 교육에 의해 자연과 단절된 현대 작가가 따라갈 수 없는 완전성에 도달했다. 현대 작가는 오로지 이상을 통해서만 잃어버린 통일성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이란 그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요원한 것이기 때문에, 문명화된 인간은 결코 자연적인 인간처럼 예술에서 완전해질 수 없다.〉 이처럼 현대 예술이 다시금 고대 예술보다 낙후된 것처럼 보이던 18~19세기 전환기의 독일에서, 실러는 감상적인 예술과 소박한 예술이 추구한 혹은 이미 이룬 목표들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를 다음과 같이 뒤집는다. 〈인간이 예술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는 자연을 통해 도달한 것보다 무한히 더 선호되어야 한다.〉 실러를 현대 문학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로 간주한 훔볼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인들은 단순히 그들이 있던 그대로였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며 그 이상을 쳐다본다. 우리는 반성을 통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이중적인 인간을 형성했다.〉"(41)


"1830년 이후 '근대적modern'이라는 말의 의미 변천의 방향을 지시해주는 것은 낭만주의와 '근대적'인 현재의 차이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그 차이를 실용정신에 의해 특징지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증거들이다. 휴브너의 《신문과 회화사전》(1826)에는 〈북미의 자유국가들〉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는데, 거기에서는 이미 현대적인 것Das Moderne이 일반적으로 〈유용함〉이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전의 항목이 이미 통용되고 있는 근대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셸링의 문장, 즉 〈아카데미적인 연구 방법에 대한 강의〉와 같은 인용문들이 잘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실용정신을 역사에서 가장 최고인 것으로 간주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개탄하고 있다." "이로써 19세기 첫 10년 동안 〈신구 문학 논쟁〉에서 제시된 현재에 대한 이해와 고대라는 모범과의 분리가 완수되었고 이는 언어규범으로 유입되었다. 1830년 이후에 일어난 시대 감정의 근본적인 변환이 그 언어규범에 상응한다."(46-7)


4. 19세기의 '근대적modern' 개념


"1859년에 보들레르는 《근대적 삶의 화가》에서 〈자기자신을 추월하는 가속에 대한 경험〉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시대 감정을 근대성에 대한 미학이론으로 탈바꿈시켰다." "즉 '근대적modern'과 '근대성'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낭만주의자들이 전제했듯이 가장 최근의 시대라는 특수성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다양한, 그러나 여전히 무상한 인간의 이념들을 특징짓는 것이라는 결론에 말이다. 〈근대성은 이행, 순간적인 것, 그리고 우연성이다.〉 일시적인 다양한 이상들에 대한 구상을 담지하고 있는 근대성 개념에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본질로서 '고대'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불멸적인 것만이 대립된다. 근대적인 것과 영원이라는 두 원리는 〈아름다움의 이중적인 본성〉 속에서 서로를 보완한다. 문학의 과제는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문학적인 것에 담겨있는 것을 분리하는 데 있다. 이로써 영원이 근대적인 것과 대립 축을 이룰 수 있다. 〈유행이 내포하는 연대기적 시학과 일시적인 것의 영원함을 추출하다.〉"(51-2)


"보들레르의 근대성 이론은 또한 시간의 역사화의 결과, 특히 보들레르의 경우 과거 시대들 그 자체가 현재였다는 통찰의 결과로, 어떻게 세 번째 의미로서의 '근대적' 개념 사용이 '영원한'이라는 말의 반대말이 되는지를 인식하게 해준다. 유럽 3월혁명 전 기간에도 시간의 역사화는 역사 기술에 있어서 어려운 과제였다. 현재가 더 이상 그것을 기점으로 과거를 과거로 판단하게 해주는 기준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49년 라마르틴은 현대사가 〈더 이상 역사 기술의 한 장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을 보다 더 자세한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적인 체험과 기억 사이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커다란 사건들의 결과가 아주 급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예전에는 현재로 간주된 자신의 삶의 기억들이 부단히 먼 과거로 나타날 정도로 말이다. 〈어제는 이미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 시간의 역사화는 삶에서 체험된 사건들이 과거로 나타날 수 있는 사유 모델에 의해 경험이 되었다."(53-4)


"독일청년운동에서 이와 유사한 의식의 출발점은 인접한 과거를 명시적으로 종결된, 현재와 질적으로 다른 시대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그 대변자 중 하나인 하이네는 1828년에 이미 〈괴테 시대의 원리와 예술 이념〉이 의미를 잃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헤겔이 죽은 후인 1834년에 〈철학 혁명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미 1831년에 이제 〈괴테의 요람에서 시작해서 그의 관에서 끝날 것이라는 예술시대의 종말에 대한〉 자신의 〈예언이 곧 실현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헤겔 또한 예술의 종말이 자신이 속해있는 현재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슐레겔과 헤겔처럼 하이네는 낭만주의 시대와 자신이 속해있는 현재 사이의 단절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처럼 현재의 예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거나 옛 예술에 필연적으로 뒤쳐져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이와는 반대로 이 시대의 운동이 예술에 유익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54-5)


5. 세기의 전환기 프로그램으로서의 근대


"19세기의 역사적 틀 안에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에 대한 글들에서 발견되는 미래에 맞추어진 현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련된 의견 일치는 전환기를, 즉 넓은 지평에서 인간 행위의 모범으로서 〈전통의 강요〉가 〈선택의 강요〉에 의해 대체되는 전환기를 강조한다. 이러한 전환은 보수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서도 설명된, 근본적 변화의 결과이다. 즉 그 변화의 다양한 발현에 대한 시대 체험과 수렴점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의 결과이다. 가속화되고 연속적인 역사의 변화에 대한 고려와 동시적이지 않은 역사 진행의 다양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과거에서 그 시작을 확정한 시대로서 현재의 구분은 이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재는 그것의 지속에서 시간 진행의 한 점으로 환원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과거로, 그럼으로써 이 미래를 설계하는 기회로 체험되었다. 따라서 이제 현재는 프로그램으로 표현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행위를 계획하는 데 열려있는 활동 공간으로 이해되었다."(70-1)


"20세기 미학의 실현과 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은 1859년에 보들레르가 구체화한 근대성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구상의 이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들은 근대적인 예술작품들의 과도기적 특징을 더 이상 치명적인 운명으로 느끼지 않고, 소외된 사회에 대한 저항의 기회와 의도된 부정성으로 느꼈다. 〈현 사회의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피를 앞세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미 40년 전에 브르통은 그동안 색이 불명료해진 피카소의 1913년의 콜라주들을, 그것들이 속한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서 의식 속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로 경탄했다. 〈환희와 예술적 자만심의 소재가 되는 모든 것에 반대되는 소멸과 단명 그 자체를 찾으려 했다.〉 이러한 부정성의 미학은 기껏해야 사회가 야기한 소외를 모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미학은 스스로 자기자신에게 부가한 의무, 즉 그때그때마다 최신 예술 추세가 구체화되는 순간에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무로 인해 많은 대중들로부터 멀어졌다."(82-3)


6. 사회역사적인 귀결의 단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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