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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ㅣ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라인하르트 코젤렉.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 엮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원석영 옮 / 푸른역사 / 2019년 5월
평점 :
1. 서론
2. 고대 그리스어에서의 사용
"그리스어에서 '위기' 개념은 중요한 정치적 개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분열〉과 〈불화〉를 의미했다." "한편 '위기'라는 말은 확정판결과 유죄판결이라는 뜻의 〈결정〉도 의미했는데, 이 의미는 오늘날 '비판Kritik'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어에서는 동일한 개념이 나중에 분리된 〈주관적인〉 비판과 〈객관적인〉 위기라는 두 의미 영역을 담당한 셈이다." "법률상의 청구권으로서, 그리고 권리설정으로서의 '위기'는 시민공동체의 질서를 규정했다. 이 개념은 무엇보다도 권리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인 무게감을 획득한다. 이 개념은 선거를 통한 결정, 정부의 결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 사형제도와 형벌의 결정, 해명에 대한 검토, 단적으로 말해서, 정부 정책에 대한 결정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것에 대해 유익한 동시에 올바른 '위기'이다. 따라서 '위기'는 상황에 따라 내려지는 올바른 결정들을 거쳐 올바름과 통치질서를 조율하는 중요한 개념이었다."(16-7)
"기독교인들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와 날짜는 일려져 있지 않았지만, 최후의 심판에 대한 확신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경건한 자들이건, 믿음이 없는 자들이건, 살아있는 자들이건 죽은 자들이건 말이다. 그 심판은 재판으로 이어진다. 요한은 신자들에게 그들이 신의 말씀에 따른다면 이미 구원된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대한 확신 이상으로 나아갔다. 다가오는 위기Krisis가 우주적인 사건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삶으로의 해방을 보장하는 은혜의 확신 속에서 선취된다. 신의 심판이 예수의 고지告知를 통해 이미 저기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긴장 속에서 기대지평이, 즉 다가올 역사적인 순간을 신학적으로 특징짓는 기대지평이 그려진다. 묵시록은 믿음을 통해 선취되어 현재적인 것으로 겅혐된다. 위기가 우주적인 사건으로 아직은 미결인 상태로 남아있지만, 양심 속에서는 이미 실행된다."(18)
"법률 개념으로서의 위기 개념의 영향사史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신학적인 가르침을 통해서만 진행된 반면, 그리스어에서의 보다 광범위한 사용은 근대 위기 개념의 의미 지평을 적잖이 밝혀준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전서》에서 유래하고 갈렌에 의해 대략 1,500년 동안 고착된 의학적인 위기 이론이 그러하다. 병이 위기Krisis일 때는 관찰 가능한 증세뿐만 아니라 그 진행에 대한 판단, 즉 환자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시기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이때 병의 진행에서 규칙성을 진단하려면, 발병일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위기Krise가 완치로 귀결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들은 완전한 위기와 재발을 배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위기를 구분했다." "라틴어에 수용된 이 개념은 사회 정치 영역에서 은유적인 의미의 확장을 용인했다. 그것은 법률적 재판과 마찬가지로 결정으로 인도하는 과정의 개념이다. 그것은 결정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내려지지 않은 기간을 의미했다."(18-9)
3. 각국어로 수용
4. 사전 분야
5. 정치학적 개념에서 역사철학적 개념으로 : 18세기와 프랑스혁명
"'위기Krise' 개념의 외교 군사적 사용에 대한 초기 증거들은 프리드리히 대제에게서 발견된다. 유럽 국가들이 1740년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 전혀 대비하진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를 결정하고 마음을 굳혔을 때, 왕은 〈그의 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위기〉를 슐레지엔으로 진입하는 계기로 삼았다." "'위기' 개념은 구체적인 내전 상태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내전 상태는 시민들의 충성심을 찢어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기' 개념이 사용되는 정치적 영역이 넓어졌다. 이 개념은 결정적인 시기로 몰아가는 외교 혹은 군사적 상황들을 특징지었으며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가리켰다. 이 경우 정치적 집단 행위와 헌법 시스템의 유지나 몰락이 대안을 이루지만, 단순한 정권 교체도 그렇게 표현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개념은 정치 혹은 군사적 행위를 진단하는 기준으로도, 또한 기술記述 범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34-6)
"역사적인 시간과 관련된 위기 개념에 대한 의미론은 전형화된 4가지 가능성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1) 의학-정치-군사적 사용에 의거해서, '위기'는 결정적인 시점으로 향해가는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한 사건의 연속을 의미할 수 있다. 2) 다가올 〈최후의 날〉이라는 약속에 의거하여, '위기'는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최종적인 역사적 결정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반복될 수 없다. 3) 신조어들은 이미 의학 혹은 신학적인 의미와는 많이 분리되었다. 지속 혹은 상태 범주로서의 '위기', 이는 과정, 즉 부단히 재생산되는 위험한 상황들이나 결정이 충만한 상황을 의미한다. 4) '위기'는 역사에 내재하는 과도기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이때 과도기가 더 나은 상태에 이르게 될지 아니면 더 나쁜 상태에 이르게 될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게 될지는 진단에 달려 있다. 어떤 경우에든, 시대를 특징짓는 표현을 얻고자하는 시행착오적인 시도가 문제다. '위기'는 새로운 시대의 구조적인 징표이다."(39-40)
"루소는 '위기' 개념을 1762년에 처음 근대적인 의미로, 즉 역사철학적인 동시에 예측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동적인 순환이론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방향성에 힘입어, '위기'는 새로운 개념이 된 듯하다. 《에밀》에서 주인과 종의 위상을 자연적 욕구를 지닌 인간임을 근거로 동일한 것으로 환원시킨 후, 루소는 시사적으로 이렇게 외친다. 〈사람들은 현재 존재하는 계급사회가 존속할 것이라고 덧없이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견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불가피한 혁명에 노출되어 있다. 유럽의 거대한 왕정들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다.〉 루소는 자신이 받아들인 지배 형태의 계승을 다루는 순환 모델에서 자신의 예측을 이끌어냈다. 왕들이 몰락한 후에, 사회 전반에 미치는 극단적인 변혁에 대한 비전이 나타난다. 〈우리는 위기 상황과 혁명의 시기에 다가가고 있다.〉" "반은 예언으로, 반은 예측으로 미래의 역사가 선취되었다."(40-1)
"미국의 독립운동과 함께 위기 개념은 시대의 경제 개념 차원을 획득한 동시에 세계사적인 최후의 결정을 고지했다. 이 때문에 토마스 페인은 '위기The Crisis'라는 표현을 자신의 잡지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1776부터 1783년에 일어난 사건들에 도덕을 강제하는 도전을, 즉 덕과 부덕, 자연법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부패한 전제정치 사이에 필요한 도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했다.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추세들이다.〉 그는, 젊은 루소로서, 자신의 비전이 구세계의 몰락과 새로운 세계의 등장과 함께 실현되었다는 것을 믿었다. 식민지의 붕괴는 그에게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심판이 실현된 것이었다. 독재의 몰락이자 생지옥에 대한 승리인 것이다." "이것이 개념사적으로 가능한 이유는 정치학적 위기 개념에 최후의 심판이라는 신학적 의미가 많이 더해져서 역사철학적 시대 개념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43-4)
"버크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페인이 주문呪文한 동일한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지만 위기 개념이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상황을 개념화하는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에게는 마치 내가 거대한 위기 속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 혹은 유럽을 넘어서는 거대한 위기 속에 놓여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모든 상황들을 고려해볼 때, 프랑스혁명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이다.〉" "'위기'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진단과 예측적 기능은 페인과 버크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진단 내용과 기대와 관련해서 그 둘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버크는 의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페인은 신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세계사적인 대안들을 해석 내지 제시할 수 있는 '위기'의 새로운 의미론적 특성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그 개념은 공통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서로 대립적으로 적용된 투쟁 개념Kampfbegriff이 된다."(44-6)
6. '위기'와 위기들 : 19세기
"로렌츠 폰 슈타인은 1850년에 독일 관념론의 전제들을 가지고 역사를 체제 내재적으로 해석하면서, 유럽 역사가 〈두 개의 커다란 시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고대에는 소유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부자유가 동시에 지배적이었다. 게르만 왕국의 시대는 〈자유로운 직업과 자유로운 소유 사이의 반복된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이러한 투쟁의 마지막 단계에 불과하다. 유럽에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고 유지될 수 없다는 느낌이 퍼지고 있다. 강력하고 두려운 운동들이 눈앞에 놓여있다. 그 누구도 이것들이 어디에 이를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래의 한 개인에 불과한 그 누구도 실제로 그 구호를 제시할 권리가 없다.〉" "위기 개념은 생시몽에서처럼 전全 역사에서 도출되었고, 장기적으로 이 세기 모든 혁명들의 기초에 놓여있는 산업사회로의 과도기를 특징짓는다. 그럼에도 슈타인은 단지 두 가지 가능성만을 예측한다. 파멸 혹은 공정한 사회조직이 바로 그것이다."(60-1)
"유럽 정신의 위기를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격 속에 개념화하고자 하는 철학의 고삐들이 니체의 진단과 도발적인 대답 속에 모두 묶여 있다. 〈언젠가 나의 이름에 괴물의 기억이 붙여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믿어온, 요구된, 신성시된 모든 것에 대항하여 불러내어진 지구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위기와 가장 강렬한 양심의 알력과 결정에 대한 기억이.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이다. ····· 그러나 나의 진리는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거짓을 진리라고 했다. 모든 가치의 전도, 이것이 인류의 최고의 자각 행위에 대한 나의 공식인데, 그 행위는 나의 살과 천재성이 되었다.〉 도덕 혹은 형이상학 혹은 기독교로 포장되어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삶의 거짓이 드러나게 되면, 정치는 정신들의 전쟁이 될 것이다. 이 전쟁은 〈옛 사회의 모든 권력구조를 허공에 날려버릴 것이며, 지구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65)
"1840년대 이후 경제학적으로 채색된 위기 개념은 모든 사회 비판적인 글들에 스며든다. 당시에 모든 정치사회 진영들로부터 나온 그런 글들이 시장에 넘쳤다. 위기 개념은 헌법이나 계급에 의해 야기된 난관들과 산업과 기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해 야기된 난관들을 총체적으로, 병이나 균형 장애의 증상으로,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 적절했다." "무역 정치망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조건의 국제화는 새로운 종류의 위기에 속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모든 위기들은─그 모든 고난과 낙담에도 불구하고─역사철학적으로 과도기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위기Krise가 자유주의 낙관론자들에게는 진보라는 사다리의 디딤돌이 되었다." "사회주의 해석가들 역시 이 점에 동의한다. 위기에 대한 일상 경험의 비참함이 기대지평을 보다 더 많은 종말론적인 요소들로 채우더라도 말이다. 혁명의 기대와 경제학적인 분석 사이를 오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위기 개념이 이를 증언한다."(69-71)
7. 전망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기원전 1세기와 르네상스를 비교하면서 자기 소외와 냉소주의와 거짓 영웅주의와 흔들리는 확신, 수박 겉핥기식의 교육과 야만화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세기의 위기를 해석하고자 했다. 근대 인간의 종말은 대중의 봉기와 함께 이루어졌다. 이에 반해 후이징가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로의 길을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어떤 상태이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위기Krisis가 진보적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한 단계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이전에 우리의 위기 의식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다.〉 후설은 '위기'라는 주제를 역사철학적으로 확장했고, 〈유럽 학문의 위기〉를 점점 더 드러나는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했다. 이성의 계시를 따르는 그리스어 '목적Telos'은 데카르트 이후 주체-대상 간의 분리에 의해 점점 더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사실을 추구하는 학문과 일상 세계 간의 틈을 다시 메우려는 것이 현상학의 과제이다."(79)
"물론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이미 위기 개념이 지난 세기에 확장시킨 역사철학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위기'는 과도기로 해석되는 우리 시대의 새로움을 계속 입증해준다." "'위기'는 연관을 필요로 하듯이 연관을 지을 능력이 있으며, 의미를 추구하듯이 의미를 규정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 말의 모든 사용을 특징짓는다. '위기'라는 말은 그 의미가 상대적으로 애매해서 격앙된 분위기나 문제 상황들을 에둘러 표현할 수 있듯이 '소요', '갈등', '혁명' 등과 교체 사용이 가능하다. 〈불명확하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만약의 대안적 해석을 위해 내용의 진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개념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추월될 수 없고, 강력하고, 교체 불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하는 힘은 임의의 대안들의 불확실성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그 말의 사용 자체가 정확한 규정을 회피하는 역사적인 '위기'의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