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평전 - 고난의 길, 신념의 길
고명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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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가 김대중과 함께한 세월의 태반은 핍박과 죽음의 불길이 어른거리는 환난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내내 신념과 의지를 지키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이 신앙이었다. (···) 이희호의 신앙 안에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하나로 만났다.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의 기복에만 매달리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다. 이희호에게 신앙은 자유, 정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싸움의 보이지 않는, 최후의 무기였다. 이희호가 남편의 목숨을 지켜달라고 하늘에 간구했던 것은 남편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하느님의 사업에 일꾼으로 동참하는 것이 남편이 할 일이었다. 그 신앙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김대중은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희호가 낸 용기야말로 '진리에 대한 헌신', 곧 이희호 자신이 믿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희호의 용기는 용서로도 나타났다. 자신의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이희호는 원수조차 용서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1977년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이희호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고 선으로만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다 같이 알아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고 가르친 이런 사랑을 생각하고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원수까지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것은 남편이 유신정권의 폭압에 저항하다 5년형을 받고 서울에서 가장 먼 진주교도소 독방에 갇혀 있을 때였다. 수난의 한가운데서 용서를 이야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희호는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남편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을 받은 직후에도 똑같이 기도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사랑해주시고 축복해주시옵소서." 

  이희호가 보여준 이 용서의 정신은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했던 유언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때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다. "머지않아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희호와 김대중이 공유한 용서는 신앙적 차원의 결단이고 신념이었다. pp.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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