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자서전 2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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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은 20세기를 지나 새 천 년으로 이어졌지만 돌아보면 한줄기 섬광 같은 것이었다. 내가 꿈꾸었던 것들, 사랑한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이름을 연호하던 군중들은 어디에 있고 나를 협박하고 욕하던 무리들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인가. 거짓과 증오가 닳아 없어진 세상에서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나는 많이 흘러왔으니 곧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한반도 남쪽 바다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지구촌을 떠돌았다. 온갖 무늬의 시간들이 주어졌지만, 위대한 신은 내게 용기와 지혜를 내려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일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내려 주셨다. 


  나는 민주주의, 정의, 평화, 민족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다. 중용의 철학 속에 일관된 인생을 살자고 늘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는 내게 닥친 다섯 번 죽음의 고비, 6년 동안의 옥중 생활, 수십 년간의 감시와 연금, 망명 생활을 극복했다. 나는 모든 고난의 순간마다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의 확인이었다. 그래도 어찌 흔들리지 않았겠는가. 내 고난에 동참하여 나를 일으켜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진정 고맙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목숨을 잃는 칼날 위에 섰고, 때로는 부귀영화의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매번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돌아 보면 아득하지만 들춰 보면 격정의 순간들이었다.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사의 심판이다. 우리들은 한때 세상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역사를 속일 수는 없다. 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 pp.60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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