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9 - 해방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9
카를 마르틴 그라스 &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음, 오토 브루너 & 베르너 콘체 & 라인하르트 / 푸른역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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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해방Emanzipation'은 1960년대 이후 보편적인 요구를 획득하게 된 표어로, 예전에는 로마법의 전문 용어였다. 그것은 부권父權으로부터 민법상 보장되는 자립적 지위[부권 면제]로의 이행을 가리켰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 단어는 집정관을 통한 권리 지정으로부터 자기 해방으로 의미가 거의 완전히 바뀐다. 처음에는 단지 도덕-신학적이고 사회심리적인 의미만을 가졌던 단어가 반신분제적인 개념으로 전환되고, 이 반신분제적인 개념은 각 집단 특유의 모든 법률적 차이의 폐지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이 단어는 18세기 말에는 정치적인 개념이 된다." "마지막으로 해방의 성취는 '역사'의 몫이 된다. 이 표현은 역사철학적인 가치를 얻고, 자연적인 전제들과 결합되어 있던 개개의 법률적인 행위는 극복된다." "여기에서 이 표현은 단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근대의 해방 투쟁의 지표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해방을 목표로 하는 언어와 언어정치의 유효한 요소가 된다."(12-3)


2. '해방'의 의미 확장 단계들


"'에만치파티오Emancipatio(해방)'는 라틴어 에만치파레emancipare(해방하다)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은 '에 마누 카파레'로 구성된 동사이며, [독일어로는] 〈누구의 손으로부터 빼앗다/취하다aus der Hand nehmen, 내보내다/석방하다Herauslassen, 자유롭게 놓아주다freilassen, 자유롭게 되다/해방시키다befreien〉를 지칭한다. 이 단어는 로마 공화정에서 한 가족의 가장이 자신의 아이를 부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법률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 법률적인 행위를 통해서] 아이는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고, 민법상 의미에서 자율적인 인간이 되었다. 해방되지 못한 아이들은 정치적인 시민권, 상행위권, 혼인권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결코 재산에 대한 처분권은 그들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해방의 외적인 형태는 [기원전 450년경의] 12동판법의 조항, 즉 〈아버지가 [아들을] 세 번 판다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데 의거한다."(16-7)


"동사 '에만치파레emancipare'는 라틴어에서 우선 타동사로 사용되었고, 또한 체들러가 번역하듯 〈팔다〉, 〈양도하다〉의 뜻이었는데, 특히 경작지를 팔거나 양도하는 것을 일컬었다. 이 동사와 명사형이 서유럽의 민족 언어로, 14세기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17세기에는 영국 그리고 그 후 독일로 유입된 후에 재귀적인 사용이 대두됐는데, 이는 성년이 됨/성숙하게 됨이 지니는 관습법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전의 법률 용어에서 배제되었던 '자기 전권 위임'을 지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분제와 연관되면서 이러한 언어 사용은 프랑스 귀족들과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전적으로 경멸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강조되었다. 그것은 사회적 제한의 경계를 넘어서고 위반하는 것으로 비난받는 뻔뻔스러움의 자유를 의미했다. 그래서 1636년 《은둔자 트리스탄》에서 '해방하다'라는 표현은 못된 비방이나 비열한 책임 전가를 의미했다."(22-4)


"영국에서는 이 단어 사용이 이미 17세기에 법률 영역에서 벗어났으며, 학문 영역과 사회 영역으로, 마침내는 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계몽 과정에 부속된 수많은 의미들을 획득했다." "1626년에 존 던은 설교 중 한 대목에서 요절夭折을 은총으로, 말하자면 〈현세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해방deliverance, 해방manumission, 해방emancipation〉으로 지칭했을 때, 이 명사적인 표현을 탈-법률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영국에서의 이 언어 사용이 계몽이 지닌 전제들의 사회화와 정치화에 대한 장기적인 척도의 역할을 한 데 반해, '해방'이라는 표현이 드물지만 아메리카 식민지에서의 해방/독립전쟁에 적용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통치권만을 가지면서 [식민지 모국과의] 종속 관계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소극적인 해방/독립인데, 이것이 지니는 법률적인 의미는 해방/독립 개념의 의미가 아메리카 혁명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차단했으리라는 점이다." "그 후 19세기에는 실질적으로 노예해방까지 확장되었다."(26-9)


"샤이들러는 헤르더에 의거해서 인류학적인 근본 유형을 묘사했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에게 완성을 지향하는 능력을 알려주고, 그 결과 이성적인 자유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그런 결함이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3중적인 의존성, 말하자면 외적인 자연의 의존성, 다른 인간들의 자유의지 그리고 권위에 맹종하거나 감성에 얽매인 패거리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전체 삶〉은 〈3중적인 해방 투쟁으로〉 나타나고, 〈마찬가지로 세계사에 고유한 모든 중요한 시기들〉은 〈해방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투쟁에 의해서만 인간은 역사를 실제적인 의미에서 가질 수 있다(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다)." "이처럼 샤이들러는 자유주의자로서 최초로 '해방'을 시대의 정치적인 모든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상위 개념으로, 또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영원하면서도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인류의 과제라는 목표 개념으로 정의했다."(48-9)


"마르크스가 보기에 '봉건제'의 낡은 사회를 일소한 정치적인 해방은 사적인 것으로 소외된 인간을 영속화하고, 유적類的 존재는 단지 국가에 의해 추상적으로만 표현된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해방'을 사회 비판적이고 사회 진단적인 기본 개념으로 사용한다. 동시에 이는 선행자들을 넘어서는 유토피아적인 목표 개념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우선 가능한 한 종교의 제반 조건들이 제거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실질적으로 해방된다. 인간 해방은 국가와 사회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고, 개인들은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적 존재로서의 재발견에 필연적으로 이른다. 〈모든 해방은 인간 세계의 회복이며, 인간 자체와의 관계들의 회복이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 〈인간 해방은 완성된다.〉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에 의거하고 이 개념을 다가올 역사의 주체로서 설정하면서, '해방'은 역사철학적으로 연역된, 모든 소외의 궁극적인 지양을 약속하는 구원의 개념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55-6)


3. 18세기 이후 집단 및 계층에 특유한 적용 영역들


"'해방'이라는 표어는 개개의 법률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간적인 운동을 의미하는데, 이 이중적인 의미에 힘입어서 '해방'은 스스로를 해소하는 신분제 역사의 핵심적인 개념에 적합해졌다." "1848년 이후에도 이 표현[해방]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그것이 지닌 정서적인 아우라는 많은 언어 층위에서 사라졌고, 사회주의 진영을 제외한다면 법치국가에서 제기되는 여러 요구들을 표현하기 위한 정치적인 용어로 남아 있었다." "이 개념이 더욱 구체적으로 특정한 집단들과 관계될수록, 이 개념을 현실적으로 이행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가령 천주교인, 유대인, 여성, 노예, 노동자를 위해 동등한 권리가 요구되거나 이 집단들에 의해 동등한 권리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순전히 법률적으로는 폐지되지 않는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또는 〈자연적인〉 장애물들이 쌓이곤 했다. 그러므로 표어로서 해방 개념은 국가적으로 실행 가능한 법률적인 요구들과 사회정치적인 미래 계획들 사이에서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었다."(62-3)


"여성해방에 대한 호소는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진영들을 분리시켰다.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 호소에 따랐으나, 자유주의자들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가족과 국가가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경계를 그었다. 이 자유주의자들은 자연/본성에 의해 주어진 구별에 의존했다. 〈철저한 사회적인 고찰로부터 이끌어낸 현재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자연/본성에 의해 세워진 경계석을 전복시키려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감성의 자유로운 표출로 인해 모든 정치적인 사건들에서 여성의 평등과 함께 또한 감성의 동등한 권리가 도출되는데, 여성의 평등과 감성의 동등한 권리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또한 이로 인해 서로 반대될 수도 있다. 〈자신의 본성을 부인하고 탈여성화된 여성을 여성의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개념 혼동〉이다. 그래서 로젠크란츠도 1836년에 해방이 여성들과 남성들의 절대적인 동등성을 요구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전환이라고 여겼다."(84-5)


"해방은 자유주의 노동시장이라는 틀 내에서는 경제적인 자립성을 목표로 하는데, 이러한 목표 정립과 함께 이 개념은 제한적이지만 더 면밀하게 규정되었다. 시민이 지닐 수 있는 자립적 지위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요구가 여성들의 관심도 끌었는데, 〈스스로를 위해 자유롭게 직업을 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은 노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요구는 여성 노동이 초기 산업화 과정 이후로 일상생활의 비참함에 속해 있었던 소위 하위 신분들의 전형적인 상태와 관련이 있었다. 말하자면 〈생업을 위한 지속적인 노동을 결혼해서도 해야만 한다는 것〉은 하위 신분들의 남성과 여성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동일한 것[생업을 위한 지속적인 노동]을 상위의 신분에서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방' 개념의 면밀한 규정은 거의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말하자면 여성 중산 계층들을 위해서는 노동에로의 해방이, 하위 계층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부당한 노동의 경감이 요구되었다."(87)


"18세기 말경에 해방된 집단이나 사회 제도를 노예화된, 또는 예속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흔한 일이었지만, '해방'이라는 표현은 노예들에게는 그 자체로, 특히 해외의 흑인 노예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뒤늦고 상대적으로 드물게 연관되었다. 이것은 우선 자기해방이라는 의미가 '해방' 개념의 표현 영역을 점증적으로 차지했고, 그 결과 [노예들의 해방과 같이] 다른 심급들을 통한 해방, 말하자면 국가나 의회를 통한 해방이 사고의 비약 없이는 동일한 단어로 표현될 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가령, 미국 남북전쟁 중 1862년 링컨의 유명한 〈예비 독립 선언문Preliminary Emancipation Proclamation〉은 법조문에서 '해방Emanzip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 표현은 수미일관되게 남부에서 투항한 사람들에게 사용되었고, 마지막으로 반대자들을 동요시키기 위해 1863년에 이 반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노예들에게 적용되었다."(97-8)


4. 전망


"'해방'에 대한 현대의 언어 사용에서 개념적인 입장은 [독일] 내각이 '해방'을 〈교육 목표들과 이 목표들을 선택하는 수단들을 판단하는 기준치〉로 규정하든, '성性'이 〈해방을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잠재력〉으로 간주되든,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이 해방과 나란히 진행되는 남성의 해방과 더불어서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든, 한 지배 체계의 틀 내에서 각각의 해방이 부분적인 해방으로만 이해되고 그 결과 [다시] 억압적인 것으로 이해되든, 지난 세기의 역사철학적인 틀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행위와 인식을 유도하는 개념으로서 '해방' 개념이 계획과 성과, 자유와 사회제도 사이의 역사적인 긴장 관계들을 고려하는 통찰과 행위 방식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물론 이로 인해 해방에 대한 모든 요구에 포함된 정당성이라는 주제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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