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지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엮음, 황선애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 / 푸른역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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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서문


"시간 그 자체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표현들은 은유적으로 역사와 그 〈움직임〉에까지 확대되는 자연적이고 공간적인 배후 의미에 의지하게 된다. '진보' 개념 역시 그런 표현들 가운데 하나다. '걸어가다Schreiten'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물리적·공간적 구성 요소를 지니며, 걷는 행위가 이루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간적 구성 요소가 첨가된다. 왜냐하면 마우트너가 강조한 것처럼 걸어간다는 것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 즉 진보하기Fortschreiten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Fortschritt'는 공간적으로 여기와 저기, 시간적으로 지금과 나중 및 이전을 서로 연관시키는,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길'이라는 공간에는 시간적 흐름이 상응하기 마련이다. 일반적 관계 범주로서 '진보' 개념은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역사적 움직임을 호명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중립적이다."(12-3)


# 근대에 형성된 '진보' 개념의 함의

1. 역사철학의 보편적 개념으로 쓰인다.

2. 개별 영역이나 구체적 행위와 관련된다. 옛것은 언제나 뒤처짐을 의미한다.

3. 역사적 운동이 스스로를 진보의 주체로 생각할 때 진보 개념이 이념화된다.

4.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의미하며, 거의 종교적 색채를 띤 희망의 개념이다.

5. 고대와 달리 비순환적인, 직선적인 진행을 가리키며, 후퇴는 항상 진보보다 짧게 지속된다.

6.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다.

7. '진보'는 종종 가속화를 가리키며 역사적 동력에 의해 촉발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2.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진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넓은 의미에서 '진보Fortschitt' 혹은 '나아가기Fortschreiten'를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은 특정한 관점에서 어떤 것이 증가하고 개선되거나 혹은 악화되는 상황도 나타냈다. 특히 개개인의 교양이나 덕성이 완벽해지는 것을 종종 의미했다. 하지만 도시나 제국의 권력과 부가 증가하는 것을 나타내거나 학문의 발전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때 진보의 주체나 영역은 대체로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시간적으로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진보 개념이 아직 형성된 건 아니다. 적어도 이교도적인 고대 사람들은 사회적·도덕적 조건들이 순차적으로 개선된다는, 다시 말해 역사가 전반적으로 변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물들이 변화해도 변화 자체는 감지하지 못했고 시간의 흐름이 개선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진보에 대한 어떤 생각을 몰락에 대한 또 다른 생각과 나란히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모순된다는 의식을 하지 못했다."(18-9)


"현재와 이어지는 다리인 동시에 (동양 문화권은 완전히 배제한 상황에서) 그리스인들의 진보성을 서술하는 유일한 자료는 투키디데스의 고고학이다. 거기에서는 문명의 기본 요소들이 생성되는 것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술, 경제 및 권력의 진보였고,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필요한 유일무이한 잠재력은 이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때 그리스인들은 야만인들에 비해 진보적으로 묘사되었다." "이 외에도 기원전 5세기에는 인간이 이제까지의 모든 발전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정치적 계획을 수립하고 관철함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능력을 획득했다고 생각했다." "예술가와 철학자, 심지어 소피스트의 경우 현대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 거의 지배적이었다. 오래된 것들은 이제 우습게 생각되었고, 새로운 것은 더욱 새로워지기를 원했다. 자신들의 상황을 크로노스가 실각한 후 〈젊은 제우스〉가 지배한 상황과 유사하게 생각했다."(20-1)


"이러한 인식은 시종일관 계속되거나 지속적이진 않더라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일련의 성공 사례들로 인해 더욱 힘을 얻었다. 그것이 증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인식은 기껏해야 그리스인에게만 퍼져 있었고, 순진한 자기중심적 태도였으며, 단지 막연하게 원시시대와 고대 선사시대에 견주는 것이었다 진보에 대한 확신은 새로운 행위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에서 부산물로 생겨난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의 그 유명한 합창에서 인간의 영민함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 새로운 발명의 증가에 대해 말하고 있진 않다. 섬뜩할 정도로 놀라운 인간의 능력에 대해 말하지만 인간의 진보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상응해서 아마도 정치를 개선한다는 생각은 대규모의 제도적 변화를 감행하는 능력과 관련 있을 뿐이지, 가령 사회와 도덕성이 개선되는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23)


"스토아 학파는 개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진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시민국가가 역사적 흐름의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달랐다. 루크레티우스는 발명의 역사가 현재를 넘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는 그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과학과 기술에서 예기치 못한 것들을 기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개별적 진보들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별다른 결과 없이 그 자체로 끝나고 말았다. 학문은 학문으로만 머물렀고 학문 바깥으로부터의 흥미나 지원을 거의 얻지 못했다. 연구자가 받는 보상은 지식 그 자체였고, 실제적 응용은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학문적 정신 활동이 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 기술뿐이었다. 경제적 변화 과정이 그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다. 생산을 강화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확산되어 새로운 것을 생산하도록 자극하지도, 습관의 벽을 깨뜨리지도 못했다."(28-9)


"인류가 전반적으로 진보한다는 인식은 마침내 로마제국의 성립과 로마제국 내에서의 기독교 옹호론과 관련해서 형성되었다."(30) "사람들은 일찍이 예수의 탄생과 아우구스투스가 지배하는 제국의 공고화 사이에 신이 의도한 관계가 있다고 봤었다. 로마제국에 와서야 선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통체계가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과거에 제국들이 있어온 것을 신이 원한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무엇보다 정치와 관습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 그러했다. 동시에 제국의 평화와 복지는 기독교 신의 영향이라 보고 싶어했고, 이 영향으로 인해 그것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제 미래로 생각을 돌려 제국을 옹호하는 논거를 선교를 위한 논거로 확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리기네스에 따르면 제국의 권력과 안전 유지는 예수를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로마 시대에 처음으로 미래의 보편적 진보에 대한 강렬한 기대가 생겨났다."(32-3)


3. 중세 시대의 '진보Profectus'와 근대 종교 영역에서 사용된 '진보Fortschritt'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시로 바뀌는 정치적 권력 상황이 교회나 신앙과 동일시되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고 따라서 기독교화된 로마제국을 신의 계획에 따른 진보적 요소의 하나로 해석하려는 에우세비오스의 섣부른 낙관에 일침을 놓았다. 서로 다른 목표를 지향하는 두 제국, 즉 '신의 도시civitas Dei'와 '지상의 도시civitas terrena'가 진행하는 방향은 '앞으로 나아가기procursus, procurrere' 혹은 '돌아가기excursus, excurrere'로 묘사되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건 진행에 대한 시간적 규정이 이중적 의미를 띠는 것이었고,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돌아가기'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접두사 'pro'에 내재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 '인류의 전진과 번영'에서조차도 비하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는 두 제국이 혼용되어 오해가 확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7)


"하지만 신앙적 경험의 '나아감proficere'에 대해 얘기할 때는 신앙적으로 다시 태어난 인간이 지상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선택된 부류의 인간이 나아가는 길은 부차적으로 역사적 진행이지 일차적으로는 신을 향한 도정이다. 〈한 개인을 교육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는 자들에 의해 대표되는 인류의 교육은 시대를 지나면서 진보되었고 따라서 인류는 점차적으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으로, 그리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승할 것이다.〉 교육도 시간적 단계를 거치면서 '역사'를 목표로 하는 대신 선택된 자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에 이르도록 도와야 한다. 따라서 '진보profectus'는 역사적 개념이 아니었다. 진보의 목표는─나중에 파울리누스의 명언에 요악된 것처럼─시간 바깥에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완성은 시간 속에 있지 않고 영혼 속에 있다.〉"(37-8)


"(진정한 진보는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초역사적 진보 개념은 당연히 현세적 삶의 태도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역사 자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신의 완벽성을 향한 긴장은 역동성을 불러왔고 이는 기독교인들이 〈진보적〉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인식하도록 압박했다." "이러한 태도가 미친 영향은 인간의 행위와 이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초역사적 진보는 처음에는 신앙에 편입되어 있었지만 현세의 여러 영역에까지 침투하게 된다. 따라서 늦어도 스콜라 철학 이후에는 종교적, 정신적 인식 행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장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점차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은 근원이 변함없이 동일하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 "물론 예수를 따른 사도들의 견해를 결코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순차적 시간의 흐름은 인식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41-2)


"근대 초기의 과학 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종교적 기대 지평을 줄이고 밀어내는 주도 영역들이 생겨났다."(44) "종말론적 역사 해석도 이제 보편적인 역사 원리로 이해되는 진보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계획이 점차적으로 이행될 것이라는 전통적 믿음이 기독교적 진보뿐만 아니라 일반적 진보 개념에 맞춘 논리로 무장한 신학에 의해 지탱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신의 계획이 종교를 윤리로 만드는 것에서 발전되었든 또는 그것이 계시라는 역사적 근거에서 도출되었든 상관없었다. 처음에 초역사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기독교의 '진보' 개념은 미래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었고, 세속적으로 해석된 후에 다시 거꾸로 신교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전혀 단절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지속성 속에서 진보가 증명되었다. 1897년에 트뢸취가 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진보 개념을 이 일회적이고 불변하는 원래 의미와 다시 연결했기 때문이다."(48)


4. 근대적 진보 개념의 형성


"근대의 진보 개념과 이전의 종교적 진보 개념의 차이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기대가 이제 열린 미래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용어상으로는 종교적인 '진보profectus'가 세속적인 '진보progressus'에 의해 밀려났다고 혹은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 초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했지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진보 의식은 아직 가져다주지 못했다. 특히 중세가 어두운 중간 시기로 인식되고 이를 뛰어넘어 저 멀리 고대가 여전히 모범적 전형이 되는 동안은 그러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의 증가로 인해 고대의 권위가 독립적인 이성에 의해 물러나고서야 비로소 역사적 시간이 진보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자연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지만, 방법론적 발전을 통해 그것을 새롭게 발견하여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삶의 개선이라는 현세적 목표가 생겨났고, 이는 종말에 대한 이론을 열린 미래를 향한 도전으로 대체하는 것을 허용했다."(50)


"(근대적) 진보 개념을 관철시키는 척도는 이성과 현세적 시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지양이었다. 이성의 사용이나 이성을 통한 발견과 새로운 고안들은 시간과 함께 증가되었다. 결국은 이성 자체가 시간성을 띠게 되었다." "베이컨은 현재가 경험이나 판단에서 고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숙한 어른과 젊은이를 비교할 때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고대〉는 이제 그가 살고 있는 시대 이전에 있었던 역사로 저평가되었다. 베이컨의 비유가 이전의 자연 비유와 다른 새로운 점은 그가 소멸의 과정인 자연적 노화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대신 그는 첫째, 〈고대는 세상의 젊은 시절이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와 현재를 역으로 보는 시간적 관점을 취했다. 둘째, 그는 시간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영원한 진리와 더 이상 분리하지 않았다. 모든 권위는 고대가 아니라 시간에 근거를 두며,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그는 말한다."(51-2)


"파스칼은 1647년 《진공에 대한 연구》의 서문에서 이 같은 비유를 더욱 확장한다. 그는 이성의 무한한 진보를 위해 성장 메타포를 퇴출시킨다. 그는 고대인들의 역사적 권위를 손상하지 않고─사실 이들이야말로 젊은이들이다─이성이 무한하게 새로운 것을 고안함으로써 자신만의 규칙을 따른다고 말한다. 제한된 완전성을 보이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파스칼의 확신은 이제 인간이 초역사적으로 신의 영원성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가 노화함에 따라 인간이 지속적으로 진보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은 〈영원을 위해 만들어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단계에서 시작하지만, 〈진보 속에서 끊임없이 배운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선인들의 그것과 함께 축적하여 학문을 발전시킨다고 보았다." "무한한 진보는 이제 자연의 노화 메타포에서 벗어난 미래를 개척하게 되었다."(52-3)


"(신적 완벽성에 비해 상대적인) 완벽성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대의는 18세기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전환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즉 하강이 따를 거라는 순환론적인 생각 역시 널리 퍼져 있었다. 볼테르, 디드로, 루소와 같은 위대한 계몽주의자들도 이런 하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모든 것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개선될 거라는 순수한 진보 개념은 해당 세기를 규정할 때 아직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진보는 자연의 항구적인 법칙에 의해 한계를 갖게 되는데, 학문은 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야 하고, 도덕은 이를 성취해야 하며, 예술은 이를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반면 콩도르세는 인류의 개선은 무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진보 자체가 갖는 한계 외에 다른 한계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콩도르세는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진보성Fortschrittlichkeit의 원칙을 표현했다."(58-60)


"칸트는 개선을 향한 진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도, 신이 의도한 계획도 아니며, 인간에게 영원히 주어진 하나의 과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목적론적 관점은 도덕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안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칸트는 미래를 도덕적인 방향으로 끌어갈 실천적 윤리계명을 내세워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독립적인 이성을 통해 중재한다. 칸트는 실천이성을 통해 좀 더 결정적인 답을 제공한다." "인간은 시간의 변화에 예속되지 않는 도덕적 존재로서 스스로 진보의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일단 한 번 그렇게 하고 나면 언제나 역사가 진보를 가져온다고 보게 된다. 또한 〈실천이성의 힘을 통해〉 그렇게 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진보'는 선험적 논증 맥락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덕적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인식 조건이 동시에 그것의 실현 조건이 된 것이다. 또한 진보는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67-9)


"'진보'는 완벽이라는 이상에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역사적 개념이 되었고, 또한 기대 지평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까지 초월적 목표로 설정되었던 것이 이제 역사적 실천 안으로 편입된 것이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이러한 기대 지평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의 왕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욕구야말로 진보적 발전의 탄력적 요소이며 현대 역사의 시작이다.〉 역사적 흐름 안으로 편입된 기대 지평이 역사를 역동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역사의 〈근대〉 시기와 역사의 진보는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었다. '진보'로 개념화된 것은 달라진 미래와 개선의 미래만이 아니었다. '진보'는 또한 새롭게 바뀐 경험 세계를 표시했다. 일단 일회적이지만 추월이 가능해진 현실 경험이 이 개념에 각인되었다. 1800년 무렵에야 비로소 단수형 집합 개념 '진보'는 이미 뒤로 물러난 '나아가기Fortschreiten'의 여러 가지 방식을 자체 내에 내포하게 되었다."(82-3)


"역사적 경험으로서 서서히 형성되는 진보 경험의 특징들은 슐레겔이 콩도르세를 비판하면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공통된 분모를 갖고 있다. 〈역사의 근본적 문제점은 인간이 성취한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가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지적인 발전과 도덕적 발전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슐레겔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s Ungleichzeitigen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이 어긋남의 긴장이 '진보'를 경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역행〉과 〈정체〉, 특히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도달한 모든 교양의 대대적이고 전면적인 역행〉을 언급할 수 있다. 슐레겔은 콩도르세가 역사를 직선으로 구상하면서 이러한 역행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고 말한다." "(역사의 흐름에 불규칙성이 있다는) 슐레겔의 언급은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흐름과 그 속도의 차이가 '진보' 현상을 가져옴을 설명해준다."(83-4)


"시간적 관점은 언제나 지리적으로 규정되었고, 그런 다음 종교적, 민족적, 인종적 관점에서 보완되었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제한하는 이러한 논지는 '식민주의'에서 시작해 '제국주의'를 거쳐 '공존'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되풀이되었다." "진보의 단계적 차이와 괴리에 근거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명제는 그것이 임의로 해석되는 것과 상관없이 정치적 지도층에게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앞서가고 뒤좇아 가도록 만드는 괴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진보의 주체이거나 수혜자이며 따라서 인간 종족은 그렇게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쪽의 인류가 진보를 추구할 때 이러한 논지는 이데올로기적인 요구의 성격을 띠고, 요구의 이행이 미래로 연기됨으로써 진보는 무한하게 재생산된다. 이 경우 역시 진보 개념의 이 같은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처음으로 꿰뚫어 본 사람은 다름 아닌 헤겔이었다."(96-7)


"헤겔은 이제까지 나란히 사용된 진보의 의미들, 즉 진행, 행위 범주, 역사 흐름의 특징 그리고 인식 개념으로서의 의미를 모두 종합해서 사고했다. 헤겔은 《철학의 역사》, 《세계사의 철학》 같은 저서에서 동일한 사건의 내면과 외면을 보여주었다.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구체적인 역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정신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정신의 삶은 행위 그 자체다.〉 이렇게 해서 헤겔은 이제까지 초역사적으로 규정된 목적을 온전히 역사적 실현의 장으로 옮겨놓았다. 〈목적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그것을 성취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차이로 인해 균열된 구조들은 구체적 상황의 변증법 속에 묶이고, 이 변증법이 시간 속에서 실현되면서 현실과 법을 이끄는 기능을 갖게 된다. 진보와 역사는 이후 진행의 범주 안에서 서로 수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헤겔은 이제까지 진보 개념을 가능하게 한 세 가지 입장들이 개념의 시간성을 온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106)


"우선 헤겔은 기독교의 완성 이론을 비판한다. 이는 내세적 성취만을 이야기할 뿐이며, 따라서 모든 현세적 행위는 준비이자 수단으로 격하된다고 본다. 오히려 스스로를 창조하는 절대 정신은 역사 속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 즉 절대 정신이 〈실제로 세계 역사를 다스려왔고 다스리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사항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두 번째로 헤겔은 완성 가능성에 대한 모든 해석을 문제 삼는다. 〈완성 가능성이란 사실 가변성처럼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목적도 목표도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이것이 헤겔의 세 번째 비판이다─헤겔은 괴리에 대한 온갖 형태의 해석 역시 거부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누구나 자기 시대의 자식이다. 마찬가지로 철학도 그 사상 속에 당대를 반영한다. 개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철학적 사상이 당대를 넘어선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106-7)


5. 19세기의 중심 개념 '진보'


"'진보'가 특정한 주체나 객체와 뚜렷하게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용되자 곧 표어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830년대 이후로 이러한 표어 사용이 확산된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의 사회 문제를 헌법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다. 시대에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거나 요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은 이미 프로이센의 개혁파 관리들의 입에 박힌 어법이었으며, 나중에 이들의 비판자들─예를 들어 한제만─역시 같은 어법을 사용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843년에 역사적 흐름을 조종하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진보 그 자체가 헌법이다.〉" "'진보 자체'가 삶의 모든 영역을─마인홀트는 이를 종교적, 도덕적, 학문적, 예술적, 사회적, 정치적 진보로 구분한다─ 포괄함으로써 '진보'라는 말의 의미는 희석되었고 상투어가 되었다. 이제 동시대인 누구도 세상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116-7)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진보주의적 경험 체계와 해석의 패턴을 더욱 세분화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역사적 진보가 남다른 것은 경제를 이론의 기초로 삼고 연속적인 계급투쟁을 진보의 역동적 형태로 본 점이었다. 〈반대가 없으면 진보도 없다. 그것이 문명이 오늘까지 밟아온 법칙이다.〉 마르크스의 이 일반적 명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역사에서 진보는 현재 상태의 부정으로서 나타난다는 헤겔의 아류가 사용하는 문구도 새롭지 않다. 혁명이 진보를 향해 간다는 원칙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게 아니다. 독일에서 새롭게 영향을 끼친 것은 정치의 중심이 된 역사철학적 명제였다. 즉 헤겔이 세계정신에서 상정한 변증법적 운동이 계급투쟁에서 단계적으로 실행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사회적 진보에 대한 명제로부터 자유주의 진보 개념에서보다 더 직접적인 행동강령을 유도해낼 수 있었다. 이때 모토는 항상 다른 이들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135-6)


6. 전망


"승리를 확신하던 진보에 대한 믿음은 19세기 후반부에 다윈의 진화론Entwicklungslehre이 대중화되면서 또 한 번 추가로 지원병을 얻게 된다. 자연이 역사성을 띤 이후에는 자연도 진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따라서 문명의 진보를 자연사를 통해 확인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하지만 내재된 비판을 넘어서 진보에 대한 신념을 원칙적으로 비판하는 소리가 점점 확산되었다. 시대정신에 맞서 외톨이로 소리친 자는 키르케고르와 보들레르였다." "독일에서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니체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데카당스 현상으로 폭로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적 공격과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개념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때 진보는 권력에의 의지, 과감한 삶을 향한 의지를 달리 표현한 경우다. 〈진정한 진보는 더 큰 권력을 향한 의지와 방법 그 자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니체의 언설은 사회진화론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140-2)


"모두는 아니지만 시민 계층의 많은 이들이 진보 개념을 혐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적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진보를 강조하면서 이 개념을 독차지하려는 것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니체의 영향이 컸고, 특히 생철학 진영에서 이런 경향이 강했다." "두 번이나 치른 세계대전의 결과로 혹은 두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좌파 지식인들도 주도적 개념인 진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벤야민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에 이렇게 대응한다. 〈진보 개념은 파국의 개념에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계속' 가면 파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호르크하이머는 1947년 절망적인 심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기술적 수단의 진보가 비인간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진보는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 즉 인간 이념을 파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처럼 어떤 관점이든 관계없이 진보 개념에는 예측의 잠재력이 내재하고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입장을 띌 수밖에 없다."(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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