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36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 / 길(도서출판)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해제 


1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의 발전 


"아테네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죽기 직전에 안티파트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상황(외국인 거주자)에 대해 불편을 느끼던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피력하고 있다. 〈아테네에서는 동일한 일들이 시민에게서만큼 이방인에게도 적당하지 않다. 아테네에서 지내는 것은 어렵다〉라고.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다른 시민들과 더불어 살며 폴리스에 [공동으로] 참여하는(koinonein) 삶 혹은 오히려 정치적 공동체(koinonia)로부터 차단된 외국인과 같은 삶, 이 둘 가운데 어떤 삶이 더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하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점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학문 연구 활동에 전심전력으로 몰입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출신이 아테네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로서 아테네의 현실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그는 『정치학』에서 중립적 관점에서 당시의 정치 상황을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620) 


"『정치학』 제1권에서 자연적 노예제를 옹호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에게도 친절함을 베풀며, 자신을 돌봐준 노예들을 적절한 시점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되게 해주라고 유언을 남긴 점은 조금은 당혹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언장에 남긴 대로 노예를 해방시켜준 점에 비추어보면, '주인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자유라는 보상(athlon)을 얻을 수 있다'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자연에 의해 그들 양자에게 부여된 상응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노예와 주인 서로에게 어떤 유익함과 친애(philia)가 있게〉 된다(1255b12-13)라고 말하는 점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노예인 한에 있어서는 그를 향한 친애가 없지만,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그를 향한 친애가 존재한다. ······ 인간인 한에서 친애 또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1161b2-8)라고 말하는 점을 고려하게 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사항이다."(625-6)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곳곳에 플라톤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들을 도입한 사람들이 우리의 벗들〉이라고 표명하면서 자신이 플라톤의 추종자에 속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가 스승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때조차도 그는 늘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채로 애정을 표명하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두고 〈사악한 사람은 찬양할 자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 죽어야만 하는 인간들 중에서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플라톤만이 그 자신의 삶과 자신의 저술 탐구를 통해 인간이 동시에 행복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줬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리학 작품을 가리키는 『오르가논』이 아카데미아 시절에 쓰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플라톤의 학생으로서 스승의 철학에 도전하는 일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643-4) 


"『정치학』 제1권 제2장에서 피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자연주의에 기초하는 세 가지 기본 테제는 이렇다. 첫째, 인간은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폴리스적 동물이다. 둘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폴리스는 자연적으로 개인에 앞선다. 다음으로 그가 냉정하고도 중립적인 태도로 정치체제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아테네에서 거류 외국인(metoikos)으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옹호하는 정치체제는 다수가 번갈아 지배하는 민주정(인민정, 제3권 제11장 〈다중이 소수인 가장 좋은 사람들[tous aristous oligous]보다도 더 최고의 권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견해가 ······ 어쩌면 어떤 진리마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장될 수 있다고 여겨질 수 있겠다〉)과 가장 우월한 자가 지배하는 왕정(제3권 제17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경험한 아테네의 민주정과 마케도니아 왕 필립포스의 절대적 왕권의 영향으로 추정할 수 있다."(655-6) 


# 제4권에서는 귀족정과 폴리테이아가 혼합된 '혼합정'이 최선의 정치체제라고 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상 제작학에 속하는 수사학을 '오르가논'(논리학)이나 정치학에 포함하는 것이 그 목적에 더 적합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변증술이나 수사학적 방법이 논증을 만들기 위한 기술(dunameis tines tou porisai logous)임은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변증술에 대한 '짝패'(antistrophos)로 보았다. 하지만 수사학은 그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설득적 논증을 고안하는 것 이외에도 연설가는 청중의 심리와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 즉, 연설가의 앎은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를 향한다. 그래서 수사학은 인간의 감정을 해부해야 하며, 설득을 목표로 하는 정치 연설가들은 경제적 문제, 군사적인 사항과 제도적인 정보를 포함한 앎을 소유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변증론』의 하나의 곁가지이자, 정당하게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덕적 성품에 대한 탐구〉라고 말한다(『수사학』 1356a25-27)."(662-3)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은 페리파토스의 지도자였던 안드로니코스가 헬레니즘 시기의 학문 분류 방식을 좇아 편집했다는 것이 일반적 정설이다. 이에 앞서 플라톤 아카데미아의 크세노크라테스가 처음으로 학문을 삼분(三分)해서 분류했다고 하는데, 헬레니즘 시기의 스토아 철학의 주요 부분도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으로 분류된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벡커판의 편집 순서도 논리학에 해당하는 『오르가논』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이어서 자연에 대한 탐구에 해당하는 『자연학』을 비롯하여 생물학에 관련된 작품들, 그 뒤를 잇는 문자 그대로 '자연학 다음에 오는 것들'을 의미하는 『형이상학』이 자리하며, 다음으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비롯한 실천 영역에 적용되는 윤리학 저작과 『정치학』이 그 뒤를 잇는다. 맨 끝자리에서는 제작에 관련된 탐구에 해당하는 『수사학』과 『시학』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편집 순서는 그의 학문 분류 방식과도 얼추 맞아떨어진다."(671-2)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제6권 제1장에서 인간의 활동을 '안다(본다)', '행한다', '만든다'로 삼분하고 각각 이에 해당하는 앎을 이론지, 실천지, 제작지로 크게 구별한다. 이론지에는 자연학, 수학, 제일철학(혹은 신학), 영혼에 대한 탐구 등의 학문이 귀속되고, 실천지에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그리고 제작지에는 시학과 수사학 등이 포함된다. 이론학(epistemai)은 그 자체적인 앎을 추구하고, 실천학은 개인과 폴리스에서의 행위의 좋음과 관련되며, 제작학은 아름답고 유용한 대상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가령 선박 건조, 신발, 시(詩), 건강이나 힘과 같은 좋은 성질들이 실천학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오르가논'으로 총칭되는 논리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모든 학문을 위한 예비학이자 도구였지 결코 독립된 지위를 갖는 학문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며, 이런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논리학은 이론철학과 자연철학을 탐구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될 수 있다."(672-3)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결하게 저 높은 세계에 있는 것들에서만 아름다움(kalos)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생물학 탐구자로서 아무리 비천한 생명체들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가 언급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철학자로 좋은 평판을 받던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나기 위해 그를 방문한 사람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부엌의 화덕 가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멈칫거렸다. 그러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두려워 말라는 듯이 〈들어오시오. 여기에도 또한 신들이 있소이다〉(einai gar kai entautha thous)라고 말을 건넸다. 이 일화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현상세계에서도 진리가 찾아질 수 있음을 보이면서 현상세계에 대한 탐구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든 동물에도 무언가 본성적이고 아름다운 것〉(tinos phusikou kai kalou)이 있음을 알기 위해 우리는 주저 없이 동물에 대한 탐구에 다가서야만 한다는 것이다."(678-9)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방법(윌리엄 키스 C. 거스리) 


1.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목표를 독단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의 명료화와 문제 자체들이 포괄하고 있는 난점(아포리아)들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에 두었다. 

2. 직접 관찰한 경험과 상식을 기반으로 학적 탐구를 수행─플라톤과 비교하여 강력한 경험론적 측면─하고 있으며, 관찰과 이론이 일치하는 경우에 그 이론을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정초하는 일반적인 전제를 찾는 방법이 바로 논리학이라고 보았기에, 자기의 학적 인식의 기반을 이루는 논리학을 독립적인 포괄적 체계로 논구했다. 

4. 아리스토텔레스를 특징 짓는 사유 형식은 목적론적인 사유 방식이며, 그에 따르면 한 사물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은 사물의 목적인을 제시하는 것과 동일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방법(김재홍) 


1. 해당하는 주제에 대한 일련의 엔독사(통념, ta endoxa)를 수집하여 하나의 부류로 분류한다. 여기에 속하는 엔독사는 인간이 함께 공유하는 삶의 방식과 관련한 것들이다. 

2. 이것들 중에 적절한 것과 부적절한 것을 탐지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 작업은 해당 학문의 원리와 사실에 부합하는가와 관찰에 부합하는가라는 '논리적 정합성'에 따라 행해진다. 

3. 부적절한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부류의 엔독사를 만들어낸다. 가장 유력한 것들을 포함하는 최적의 부류를 선택하기 위해 매듭을 풀고, 왜 그것들이 그런지를 밝혀낸다. 

4. 경험적으로 수집된 '현상'을 개념 분석하여 정교하게 해석한 엔독사는 충분하게 증명된 것들이다. 최종적으로 남겨진 엔독사는 한 주제의 탐구를 위한 참된 후보가 될 수 있다. 


"『변증론』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탐구의 중요한 도구가 되는 변증술적 방법(dialektike)을 논하는 저작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인 분야와 경험적 탐구에 적용될 수 있는 학문 방법의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는 학적 탐구에서 잠정적이고 단계적인 절차를 밟는 접근 방법을 취한다. 그 방법과 절차는 우선, 다루어질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정보를 수집하여 그 문제를 적절하게 형식화하여 진술한 다음, 그 진술들이 문제의 핵심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질문으로 정립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어서 그 논쟁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따라 자신의 원래 사유 방향에 부적합한 것들은 폐기하며 새롭게 문제를 정립해나가는 길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적인 탐구의 태도로만 일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체계는 독단적이지 않으며, 그의 철학 방법은 진리 탐구 모형의 전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704) 


"인간의 행위와 감정과 관련된 실천철학의 목적은 원칙적으로 〈앎이 아니라 행위〉이다. 앎(gnosis)은 수학과 같은 정확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행위(praxis)를 목적으로 하는 윤리학은 개연성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3장에서는 윤리학의 주제와 물음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윤리학적 주제들은 늘 어떤 가변성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대강에서 또 개략적으로(pachulos kai tupo) 참을 밝히는 데 만족헤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 논의하고 또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런 전제'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런 것'(결론)들을 추론하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윤리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그 주제의 본성(phusis)이 허용하는 한, 그만큼의 정확성을 추구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자에게는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며, 수사학자에게는 설득적 논의만을 요구한다."(705)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의 임무가 아포리아의 해소에 있음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철학에 대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규정을 떠올리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곳에서 〈아포리아를 해소한다는 것은 철학적 문제에 대한 해법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그에게서 난점을 푸는 일(euporean)은 먼저 난점이 왜 일어나는지를 상세하게 밝혀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diaporean', 즉 난점을 상세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를(aporean)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중에 가서 아포리아를 해소한다는 것은 애초의 아포리아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diaporean'의 과정과 'aporean'의 과정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양자가 동의어로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diaporean'은 난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어진 난제에 얽혀 있는 사항을 상세히 들춰내는' 작업을 의미한다."(71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