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전쟁의 원인과 평화의 확산
아자 가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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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왜 전쟁을 하는가?


제1부 불완전한 과거 : 선사와 역사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수렵채집인에게 초점을 맞춘 1960년대에는 인류학과 대중문화에서 (고전적) 루소주의가 흥기했다. 예컨대 칼라하리 부시먼족이 '무해한 사람들'로 찬양받았다. 부시먼족 연구를 선도한 인류학자 리처드 리가 퍼뜨린 이 견해는 '원시적 공산주의'라는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개념, 그리고 수렵채집인을 가리키는 새로운 표어 '원시적 풍요사회'와 잘 어울렸다. 그렇지만 지구의 평화로운 자식들에게 열광하는 초기의 흥분이 지나간 뒤, 국가 당국이 강압하기 이전에 부시먼족의 살인율이 같은 시기 선진 세계에서 단연 최고치였던 미국 살인율의 네 배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리 본인이 발견했다. 부시먼족과 비슷하게 캐나다 북극권 중부의 이누이트족도 '결코 화내지 않는' 같은 평화로운 호칭으로 찬양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의 폭력에 의한 사망률이 1990년 미국 수치의 열 배 이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21-2)


"그렇지만 고전적 루소주의에 대한 도전의 의의를 충분히 인식하기도 전에, 확장된 루소주의라고 부를 더 급진적인 루소주의적 견해가 1980년대 초에 유행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심각한 싸움은 더욱 나중 단계에, 실은 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되었다. 확장된 루소주의는 이른바 '부족 영역' 이론과 연관되었다.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침입하는 국가─국가의 물품, 군사력, 정착민─와 접촉하고 그에 대응한 이후에야 부족 구조가 갑자기 생겨나고 부족 간 전쟁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 현상은 세계에서 유럽인의 탐험과 팽창에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그 이전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족 영역' 이론의 옹호자들은 국가사회와의 접촉을 계기로 그때까지 평화롭게 살던 토착 부족들 사이에 전쟁이 도입된─'발명된'─것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있었던 전쟁 패턴이 그저 강화된 것인지에 대해 줄곧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22)


그러나 루소주의의 희망과 달리 국가 이전 사회들 간에는 치명적인 폭력이나 전쟁이 만연했다. "어느 한 사례에서 발견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미심쩍을 수는 있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수행한 인류학 사례 연구들이 되풀이해 내놓은 일관된 정보들은 틀림없이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국가 이전 사회들에서 성인 남성의 약 25퍼센트(성인 인구 전체의 약 15퍼센트)는 폭력에 의한 죽음을 맞았으며, 나머지 모든 남성도 상처투성이였다. 이렇게 극히 높은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은 집단 내 살해와 집단 간 살해의 모든 형태를 망라한 수치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비율은 야생 침팬지의 군집 내 살해와 군집 간 살해를 기록해 얻은 비율과 얼추 같다." "이처럼 수렵채집인의 평균 살해율은 역사적 국가사회들의 평균 살해율보다 훨씬, 수십 배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사회들은 가장 치명적인 국가 간 전쟁을 치르며 절정으로 치달은 경우에만 국가 이전의 평균에 그나마 근접했다."(26-7)


"고전적 루소주의와 달리 유사 루소주의자들은 민족지학 방법으로 기록한, 이동성 단순 수렵채집인들 사이에 나타난 높은 폭력에 의한 사망비율을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높은 살해율이 개인적·사적 분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 살해를 집단 간 싸움인 '전쟁'이 아닌 '살인'과 '혈수'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 조상의 과거를 대부분 차지하는─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기간 중 90퍼센트 이상─구석기시대 동안 이동성 단순 수렵채집인은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인류 발전의 훨씬 나중 단계에 이르러서야 전쟁이 출현했다." "이들의 주장은 원시적 인간 폭력에 대한 아주 중요한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규정(경험적 근거가 없는)이라는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채로 관심의 초점을 수렵채집인의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원시적 인간 상태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다른 데로 돌리고 있다."(31-3)


"혼란의 근원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하는 가정에 있다. 그 가정이란 광범하고 치명적인 폭력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다면, 그것은 억누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1차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결론에서 인간의 싸움이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생각에 반대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 결론을 전쟁의 불가피성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로 여긴다. 양편 모두 틀렸다. 죽음 충동 또는 본능에 관한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화 작업까지 거슬러올라가는, 1960년대에 유행했던 견해와 달리, 폭력은 식욕이나 성욕처럼 해소해야 하는 1차적 충동이 아니다." "그렇지만 폭력이 1차적 충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폭력이 내장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특정한 환경에서 각자 최선이라고 판단하나는 대로 협력할 수도 있고, 평화롭게 경쟁할 수도 있고,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60-1)


"협력, 경쟁, 폭력적 분쟁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세 가지 근본적인 형태다(이 밖에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 고립 또는 회피 선택지가 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선택지를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상황을 평가해 어떤 선택지 또는 선택지들의 조합이 가장 유망해 보이는지 결정했다. 행동 전략으로서의 폭력적 분쟁은 인류 역사에서 후대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세 가지 사회적 전략 중 어느 것이든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분쟁은 비록 주요 도구─망치─이기는 해도 우리의 다양한 행동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집단 싸움은 후대의 발명품도 아니고, 조건과 관계없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태도 아니다. 집단 싸움은 진화를 통해 형성된 우리의 행동 메뉴의 일부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과 평화 둘 다 '우리 유전자 안에' 있으며,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평화와 전쟁의 균형이 크게 요동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61-2)


# 진화적 자연 상태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들

1. 생존자원 :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자연에서 공격성과 치명적 폭력의 제1원인이다.

2. 번식 : 수컷의 성적性的 성공을 제약하는 주된 요인은 다른 수컷들과의 경쟁이다.

3. 우세 : 서열·명예·지위·위신이 높을수록 자원과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4. 복수 : 보복은 서로 득이 되는 협력을 강제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권위가 없을 때 일어난다.

5. 힘과 안보 딜레마 : 경쟁자들 간에 군비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 누구도 우세를 점하지 못한다.

6. (초자연적) 세계관 : 석기시대에도 인간 공동체의 정신적 삶은 초자연적 믿음, 성스러운 숭배와 의례에 젖어 있었다.

7. 호전성 : 그저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 없는 놀이이자 사디즘 혹은 황홀경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사에 진화론을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틀림없이 인간의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주제에서 진화론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고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그릇된 이분법이다. 자연과 문화 둘 다, 그리고 둘의 상호작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래 진화를 통해 형성된 인간의 선천적인 필요, 욕구, 근사적 행동·감정 메커니즘은 오늘날 근본적으로 달라진 '인공적' 조건에서 표출된다. 그 과정에서 그것들은 크게 변형되어 새롭고 다양한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문화적 진화는 '빈 서판' 위에서 작용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무엇이든' 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문화적 진화의 다채롭고 다양한 형태들은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선천적 성향들이라는 중핵 위에 건설되어왔다. 문화적 도약은 워낙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 인간의 생물학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유전자-문화 상호작용은 싸움의 역사를 포함해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재료다."(99-100)


"(농경사회 출현 이후) 권력 투쟁과 권력이 수반하는 이익을 차지하려는 투쟁은 국가들 내부와 사이에서 동시에, 그리고 불가분하게 일어났다. 국가란 기본적이고 일관된 전쟁 단위라는 인식이 그간 너무 만연했다. 그러나 국가는 구갠의 폭력적인 권력 경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경쟁을 얼마간 한정하고 억압한 쪽에 더 가까웠다." "리바이어던 주변과 내부에는 수많은 정어리만 있었던 게 아니라 많은 상어와 꼬치고기, 즉 강력한 귀족, 지방 총독, 장군, 비적, 해적도 있었다. 그들 모두 국가 권력을 제한하거나 도전장을 내밀거나 찬탈하려 했다. 요컨대 국가의 내부 권력정치와 외부 권력정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예를 들어 국가 통치자는 '안보 결집 효과'를 일으켜 자신의 국내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쟁을 개시할 수 있었으며, 장군은 권력 찬탈에 필요한 자원과 위신을 얻기 위해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이른바 양면 게임은 대개 국가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폭력을 동반했다."(103-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전쟁을 밀접히 연관 짓는 주된 이유인 폭력에 의한 죽음의 비율은 사실 국가 치하에서 감소했다. 제일 많이 감소한 것은 내집단의 치명적 폭력이었으며, 이는 국가가 내부 평화를 강요하는 데 성공한 결과였다. 홉스는 무정부 상태가 폭력에 의한 죽음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많은 경우 나쁜 정부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옳게 주장했다. 그렇지만 통설에 완전히 반하지는 않더라도 덜 인식된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외집단 폭력─국가 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 역시, 국제 체제의 고질적인 무정부 상태에도 불구하고, 국가 이전 시대와 비교해 감소했다는 것이다." "(절대적 사상자 수치는 대규모이지만) 상대적 사상자 수는 실제로 국가 치하에서 감소했는데, 바로 국가들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큰 국가─따라서 원거리와 복잡한 병참─는 부족 집단의 경우와 비교해 동원율이 더 낮고 민간인 인구가 전쟁에 덜 노출된다는 뜻이었다."(106)


"국가가 착취적인 엘리트층이 위로부터 사회에 국가를 강요함으로써 생겨났는지 아니면 복잡한 사회에서 사회적 규제와 여타 서비스를 원하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부응하여 출현했는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두 과정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세력은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영토 또는 사회에 대한 권위를 확립하고, 그리하여 내부 평화를 증진하고 집단 노력─적어도 그중 일부는 '무임승차'를 줄이는, 공동선을 위한 노력이었다─을 조정할 수 있었다. 큰 국가들은 규모의 경제를 도입했고, 독점적으로 큰 국가가 되어 간접비를 과도하게 짊어지지 않는 한 혁신을 이루어내고 촉진했다. 이언 모리스는 『전쟁! 무엇에 이로운가?』에서 이 논점을 훌륭하게 전개하는 가운데, 전쟁에서 태어나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장수長壽, 발전, 안녕을 점차 증진함으로써 겉보기에 역설적인 막대한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입증했다."(111)


"싸움의 잠재적 이익이 사람들을 싸우도록 유인한 것 못지않게 싸움의 잠재적 위험과 비용은 그들을 싸우지 않도록 억지했다. 그 결과 싸움은 두 가지 상충하는 감정 메커니즘─싸움 스위치를 켜는 메커니즘과 끄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가장 양극화된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131) "호전성을 좀먹은 것은 금욕주의의 엄격함이 아니라 국가가 수립한 내부 평화와 문명의 편의였다. 부족 사회나 여타 질서가 덜 잡힌 사회들과 비교해 국가 치하 사람들은 일상의 폭력을 훨씬 자제하는 방향으로 사회화되었다─그들은 '길들여졌고', 이 변화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호전적인 기질에 반영되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근대 서구와 관련하여 이 과정을 문헌으로 뒷받침하고 '문명화 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이유로 역사 내내 크고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국가들과 제국들이 가난하고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경계지역에서 야심 찬 벼락출세자가 이끄는 작은 무장집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곤 했다."(135)


제2부 분과별 거대이론들의 결함과 오해


"인류학에서 문화적 진화에 관한 가장 야심찬 이론은 마빈 해리스와 그의 제자들이 주창한 '문화유물론'이다. '문화유물론'은 진화론적 논리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해리스는 자신이 '생산'이라 부르는 생계유지를 위한 투쟁을 인류의 문화적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분별력 있게 가정했다. 그리고 맬서스를 인용하면서 생산 다음으로 번식, 출산,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인구와 한정된 자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런 근간 위에 더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형태들로 이루어진 '상부구조'가 세워진다고 주장했다." "앞서 얘기한 신체·번식 투쟁과 해리스의 주된 차이점은 해리스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를 뚜렷이 구별하고, 생물학적 진화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견해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해리스는 번식, 성, 가족, 친족 연대를 따로따로 논하고, 이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153)


"기능주의는 진화론과 거의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거의 똑같은 답을 내놓는다. 그렇지만 기능주의는 사회적 현상의 기능을 환기시키면서도 그 기능이 무엇에서 생겨나는지 밝히지 않는다." "기능주의는 사태를 뒤집어 생각하거나 잘못된 방향에서 접근한다. 일반적인 사회적 현상과 관계를 설명할 때 기능주의는 살아 있는 동인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 아래로부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관념들로, 특히 '안정성'이라는 관념으로 개별 행동을 설명하려 한다. 가령 인류학자 앤드루 바이다는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싸움이란 자원 압박으로 인해 촉발되는 인구통계학적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은 기능주의적 답이 아닌 추론이다. 싸움은 과잉인구와 씨름하기 위한 자연 또는 사회의 규제 메커니즘 중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싸움은 인간과 여타 유기체들이 개체수 증가로 인해 심화된 경쟁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다."(158-9)


"국제관계학 분야를 살펴보면, 우선 대표적인 현실주의자인 모겐소는 국가들은 권력을 추구하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권력을 얻고자 하며, 그 까닭은 권력과 우세 추구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비판자들은 오래전부터 현실주의자들이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무엇보다 현실주의자들은 권력 추구에 초점을 맞추는, 전반적으로 옳은 입장으로 인해 권력 투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해주는 근원적인 현실을 간과해왔다." "모겐소는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익 개념"을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 모두의 특징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재한된 의미의 정치적 이익을 권력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정당화하면서 그 내용만이 아니라 방법론까지 근거로 들었다. 그는 정치학에서의 권력은 경제학에서의 부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권력과 부는 권력이 부의 획득에 이바지하고 부가 권력으로 바뀌는 식으로 서로 교환되었다. 두 '독자적 영역'은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163-5)


"월츠는 국내 정치와 달리 국제 체제를 규정하는 특징은 무정부 상태, 즉 국가들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상위의 권위가 없는 상태이며, 그 결과로 국가들 간에 고질적인 불안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 환경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생존을 걱정하고, 타국이 공격해올 수 있으므로 다른 모든 국가를 우려하며, 자국에만 의존할 수 있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비롯한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모겐소와 달리 월츠는 권력을 주로 목표 자체가 아닌 안보의 수단으로 여긴다." "결정적인 문제는, 월츠가 전쟁의 다른 원인들─'국가 수준'의 원인들─을 인정하면서도 오로지 '체제 수준'의 안보 딜레마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국가의 목표들과 안보 딜레마의 출현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이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전쟁이 되풀이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체제' 수준이 아닌 '단위' 수준의 가정, 즉 국가들이 안보 외에 폭력적으로 추구할 수도 있는 다른 동기들을 갖고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169-71)


"존 미어샤이머는 월츠의 '방어적 현실주의' 이론을 바로잡고 현실주의에 없는 엔진을 더할 의도로, 구조현실주의의 변형인 '공격적' 현실주의를 제시했고, 무정부적 국제 체제의 안보 압력 자체 때문에 생존을 추구하는 국가들로서는 단순히 자국의 권력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국을 정복하고 종속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공세적으로 증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어샤이머의 입장이 구조적이라는 데 주목하라. 이 얼개 안에서는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전쟁의 다른 동기들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불안과 분쟁, 전쟁이 무정부적 국제 체제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어샤이머는 무정부적 체제 자체를 전쟁의 원인으로 상정하고, 순전히 방어적인 국가들이 각국 지도부와 국민의 진짜 바람과 무관하게, 그리고 그들의 다른 목표들이 무엇이든 간에, 무정부적 체제 때문에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기에 '강대국들의 비극'이라는 딱지를 붙였다."(173-4)


"현실주의자들이 현실의 주된 특징과 추동력의 가장 가까운 근사물 또는 가장 유용한 추상물로서의 권력/안보 추구에 집중하는 동안, 비판자들은 현실주의자들이 도외시하는 현실이 그냥 무시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이유로 국제관계학 내에서 '구성주의' 학파가 출현하여 행위자들의 정체성, 가치관, 이념, 인식─모두 대체로 사회와 집단이 속한 특정한 역사적 국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자유주의는 현실주의에 더 실질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구성주의는 역사가 중요하다고 보는 반면, 자유주의는 역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역사적 발전이 어떻게 행위자들의 선택 방침을 바꾸고 따라서 국제 체제의 논리까지 바꾸는가 하는 물음에 이제까지 구성주의측에서 내놓은 가장 중요한 논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변화 관념은 현실주의자들의 추상적인 도식과 사고방식에 반하거나 그것을 역사전 전환에 맞추어 변경하려고 시도한다.(184-5)


제3부 근대화 평화


"1945년 이후 강대국 전쟁을 겪지 않은 세월이 길어짐에 따라 여기에 '긴 평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일한 부분적 예외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관여한 제한전쟁(1950~1953)이었다." "그렇지만 강대국들 사이 긴 평화가 특별하지 않다는 점은 좀처럼 지적되지 않는다. 이미 1871년부터 1914년까지 강대국들 사이에 43년간 지속된 평화기가 있었다(1904~05년 러일 전쟁은 부분적인 예외다). 그리고 이 둘째로 긴 평화에 앞서 1815년부터 1854년까지 강대국들 사이에 39년간 지속된 셋째로 긴 평화가 있었다. 강대국 전쟁은 특히 중요한데, 역사적으로 이 유형의 전쟁이 언제나 가장 결정적인 동시에 가장 파괴적인 국가 간 전쟁, 가장 강력하고 단연코 가장 호전적인 국가들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둘째로 긴 평화와 셋째로 긴 평화 둘 다 핵무기 등장 이전에, 경쟁이 치열한 강대국 다극 체제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194-5)


"강대국들 사이 세 번의 긴 평화기는 사실 그 이전 역사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근대 강대국 체제에서 이제까지 가장 긴 세 번의 평화기는 모두 1815년 이후 나타났고, 뒤로 갈수록 그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1945년 이후 가장 긴 평화의 내구성에 핵 요인이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어리석은 주장일 것이다. 상호확증파괴의 전망─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전망─이 핵 홀로코스트로 악화될 수도 있는 전쟁을 궁극적으로 억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마치 교수형 밧줄처럼 모든 관련자의 이목을 놀라우리만치 집중시켰다. 그럼에도 핵시대가 도래하기 한참 전부터 뚜렷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는 1815년부터 현재까지 기간을 통틀어 전체 추세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같은 이유로, 이 추세에서 벗어난 엄청난 예외인 양차 대전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쟁 감소 현상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은 동전의 양면을 모두 해명해야 한다."(198)


"양차 대전, 특히 제2차세계대전은 분명 전쟁 사망자 수(제1차세계대전 1600만 명 이상, 제2차세계대전 6000만 명 이상)에서 상위권에 들었고, 경악스러운 물질적 지출을 수반했다. 그렇지만 이 절대치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첫째, 근대 국가들은 전근대 국가들보다 인구가 더 많고 훨씬 더 부유하므로 진짜 문제는 국민 중 몇 퍼센트가 전시에 사망했고 전쟁이 얼마나 큰 경제적 곤경을 수반했느냐는 것이다. 둘째, 명칭이 시사하듯이 세계대전, 특히 제2차세계대전은 여러 대륙에서 많은 국가가 관여한 전쟁이었다. 이것이 양차 대전의 사망자 수가 그토록 많은 또다른 이유다." "사실 양차 대전은 역사에서 예외적인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소로킨과 레비 둘 다 유럽에서 20세기(사실상 전반기)가 지난 500년 간 가장 치명적인 세기이기는 했지만 예외적으로 치명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몇몇 지표를 보면 〈17세기가 가장 호전적이었다〉."(201)


"상대적인 부를 고려할 때 지난 두 세기 동안의 전쟁이 그 이전 역사의 전쟁보다 경제적으로 비용을 더 많이 잡아먹었던 것도 아니다. 전쟁은 언제나 엄청난 경제적 노력을 수반했고 국가의 지출에서 단연 비용이 많이 드는 항목이었다." "몽골족이 북중국과 남중국, 중앙아시아, 이라크, 러시아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들을 정복하면서 얼마나 극심하게 파괴했던지, 이들 문명이 회복되는 데 수 세대, 때로는 수 세기가 걸렸고, 일부는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30년 전쟁이 독일에 끼친 영향도 마찬가지다. 16세기와 17세기 에스파냐와 18세기 프랑스는 전쟁 수행과 경악스러운 전쟁 부채 때문에 경제가 파탄 났고, 프랑스의 경우 결국 대혁명을 맞았다. 더욱이 산업화 이전 사회의 사람들은 최저 생계 수준 근처에서 살았으므로 전쟁으로 인한 지출과 황폐화는 거의 문자 그대로 그들의 입에서 빵을 빼앗는 원인이었다. 전근대 전쟁에서는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죽는 일이 그야말로 다반사였다."(207)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덜 호전적이고 더 평화적이라는 생각은 계몽주의 시대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회의론자들은 민주주의 평화가 개인과 집단이 자기네 것이라고 편향되게 주장하는 미덕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실제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평화롭다는 주장을 더 엄격한 정량적 방법으로 검토했을 때,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덜 싸웠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후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일부 학자들은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민주주의 국가들이 얼마나 많이 싸웠느냐고 묻지 않고 '서로' 얼마나 많이 싸웠느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수많은 정성적·정량적 조사로 입증된 놀라운 결과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매우 드물게 싸웠거나 거의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 간) 평화 명제는 국제관계학에서 발견한 가장 견고한 '법칙'이라고 정당하게 선언되었다."(213)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영토가 가장 중요했던 농업 시대와 반대로 산업 시대와 정보화 시대에 정복 자체의 수익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전쟁이 본질적으로 수익성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와 비교해 전쟁의 수익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첫번째 명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선진 국가나 영토를 정복하여 이익을 남길 수 있었거나 실제로 남긴 것으로 확인된 사례들이 있다. 전쟁과 정복의 수익성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두번째 명제는 수량화하기가 어려우며, 요점에서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한다. 수익성 방정식에서 결정적인 변화는 전쟁이 아닌 평화 쪽에서 일어났다. 전쟁과 정복의 수익성이 낮아지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 활동은 수익성이 높아지고 부를 얻는 유망한 길이 된 반면 정복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활동으로 머무르고 경제성장에 쓰일 자원을 끌어다 쓰는 덜 매력적인 길이 된 것이다."(226-7)


"민주주의 평화와 더불어 상호 의존하는 상업을 통한 평화는 근대화 평화의 가장 익숙한 요소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시장의 중요성과 군사력 사이 균형 및 관계가 크게 바뀌는 추세와 맞물려 자유무역은 엄청난 속도로 현실이 되어갔다. 시장의 중요성과 군사력 모두 극적으로 바뀌었다. 경제적으로 약한 국가들은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고 따라서 체제를 강요할 수 없었다. 오히려 경제에서 무역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중요해졌는데, 산업생산과 대규모 분업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무역이었기 때문이다. 상품 흐름을 가로막는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한층 높아졌다. 산업 시대에 무역 자유의 증진은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이 되었는데, 산업화 이전 경제에서는 가족 생산자들이 자기네 생산물을 직접 소비했지만 이제 빠르게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생산물 중 압도적인 비율을 시장에 내다팔았기 때문이다."(232-5)


# 전쟁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들

1. 상호 의존성 : 주요 무역 파트너들 간 전쟁은 생산과 무역의 연쇄고리를 깨뜨려 단기적인 결핍과 비효율을 초래한다.

2. 상호 번영 : 세계 시장에서 외국의 번영운 국내의 번영과 연관되며, 외국의 황폐화는 체제 전체를 위협한다.

3. 높아진 경제의 취약성 : 전쟁 관여국들은 외국 자본이 떠나거나, 국제금융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있다.

4. 열린 접근 : 세계화된 경제 체제에서는 어떤 영토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꼭 그곳을 정치적으로 소유할 필요가 없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적한 '비공식 제국주의'에도 불구하고, '팍스 브리타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는 근대 체제에서 경제개발, 상호 번영, 평화의 주요 촉매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과정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순전히 이타주의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마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체제 내에서 행위자들의 이기적인 행위는 전반적인 번영의 증대로 귀결된다. 나치 독일과 제정 일본이 이 체제를 파탄 내려 했을 때 민주주의 국가들이 유화와 봉쇄로 대응하고 결국 두 나라를 파괴한 것─아울러 전후에 승전국들이 두 나라를 재건하여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평화적인 세계 질서에 편입시킨 것─은 그 이중 과정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사적 사례다. 전쟁을 평화화한다는 것은 과장된 생각이라고 비판자들이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독일과 일본에 맞선 전쟁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확립했다."(255-6)


# 그 외 전쟁 가능성을 낮춘 요인들 : 성적 자유화, 인구 고령화, 여성의 태도와 선거권 등


"이와 달리 자본주의적 비민주주의 강대국들은 비효율성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양차 대전 시기에 독일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적어도 경쟁자들만큼 앞서 있었으며, 일본은 1913년부터 1939년까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들의 문제는 우연찮게도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 모두 제한된 자원과 인력 기반을 가진 중간 크기 국가였다. 대국들, 그중에서도 대륙 크기 국가인 미국과 겨룰 만한 형편이 아니었던 양국은 그들에 맞서 결집한 연합의 중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몰락한 것은 대체로 우연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20세기 내내 미국의 권력은 세계에서 둘째와 셋째로 강한 국가들의 권력을 합한 수준을 능가했다. (국제 세계의 세력 균형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 경쟁 우위를 선사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어떤 내재적 강점보다도 미국의 현존과 대륙 규모 크기였다."(281)


"중국의 굴기가 국제 체제, 미국의 우위, 자유주의적 패권, 근대화 평화에 끼치는 영향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2014년 시민들이 대규모 친민주주의 시위를 벌인 홍콩은 정치적 주장들을 검토할 사례를 제공한다. 폭넓은 지지를 받는 주장 중 하나는 경제·사회 발전이 민주화에 이로운 압력을 만들어내고 권위주의적 국가 구조로는 그 압력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자체가 자본주의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압도적인 평등주의적 견인력 사이에서 줄곧 갈피를 잡지 못한 결합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전까지만 그렇다. 이 긴장이 얼마나 극명했던지, 사회주의자들은 이 양립 불가능한 모순 때문에 필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파멸을 맞고 사회주의─경제적 민주화─가 미래의 물결이 되리라 믿었다. 그때 이후로 복지국가 제도를 통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이 긴장은 여전히 대부분 남아 있다."(284-6)


"비판자들은 자본주의적 권위주의에는 세계에 제시할 보편적인 메시지, 사람들이 납득하고 열망할 만한 매력적인 메시지가 없고 따라서 마음을 사로잡는 '연성 권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편주의라는 동전에는 뒷면이 있다.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교조적이고 간섭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여긴다. '단극單極' 세계에 대한 저항은 미국의 권력만이 아니라 인권 자유주의의 패권과도 관련이 있다. 비서구 사회들에는 서구로부터 훈계를 받는 데 대한 깊고도 넓은 반감이 존재한다. 서구의 인식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는 그저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는 데 필요한 중립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여러 사회와 문화의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가치들과 충돌하는 일군의 가치들이 포함된다." "문화와 사회적 가치는 불변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상부구조'인 것도 아니다."(287)


"미국의 권력 우위가 쇠퇴하고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을지라도, 전 세계 세력균형의 변화는 훨씬 덜 극적일 수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미국이 아주 많은 일을 해서 만들어낸 오늘날 세계의 중심축은 민주주의-자본주의 국가들의 동맹이다. 이 동맹은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다른 주요 맹방들, 그리고 점차 합류할 것으로 보이는 인도 등 세계의 강국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해보면, 이 블록의 세계 경제-군사 잠재력 점유율은 20세기에 미국이 중심에 있었던 그 어떤 연합체 못지않게 우세하고, 앞으로도 계속 우세할 것이다. 민주주의-자본주의 동맹은 미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태와는 거리가 멀고 또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야만 군사적으로 협력할 테지만, 어쨌거나 세계 군사 잠재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을 무너뜨린 연합국의 경제-군사력과 엇비슷한 수준이다."(301-2)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것 같은 "비재래식 테러의 당혹스러운 문제는 테러리스트 집단을 상대할 경우 국가를 상대할 경우와 비교해 억지의 효과가 한없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그런 집단은 극단주의적인 열성자들, 즉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하고 심지어 전 세계의 종말을 적극 바라기까지 하는 이들로 이루어질 공산이 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미꾸라지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억지 개념 전체의 토대인 보복 대상을 여간해서는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국가는 대량살상무기에 접근하는 능력에서 단연 월등하다. 그렇지만 테러리스트는 상호확증파괴에 기반하는 억지력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최종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테러리스트 쪽이 더 높다. 핵시대를 줄곧 지배해온 사고방식과 반대로, 테러리스트가 획득한 비재래식 능력은 사용 가능하다." "이와 비슷하게 사이버테러리즘의 위협은 급속도로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어, 전 세계에서 각국 정부와 민간 부문의 조치를 재촉하고 있다."(328-9)


결론 / 전쟁과 평화의 논리


"사실 집단 싸움은 여러 종의 사회적 동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집단 싸움에 인간 고유의 측면은 없다. '전쟁'을 관습적으로 대규모 조직 폭력으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 종의 사회 집단들이 언제나 더 크고 더 복잡하고 더 협력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특히 농업과 국가로 이행한 이래 사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더 조직화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전쟁'은 국가 및 국가정치와 함께 비로소 출현했다고 역설하는 것은 곧 인류 역사의 살아 있는 과정을 개념적 인공물로 대체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국가 치하에서 사회의 크기, 따라서 군대의 크기가 극적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인간 싸움으로 인한 인구 대비 사망자 수는 실제로 줄어들었다." "홉스가 지적했듯이, 리바이어던이 질 낮은 서비스라도 제공하는 편이 무너지는 편보다 대체로 안보 전망에 더 나았다.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는 대개 국가 간 전쟁보다 더 심각한 파괴와 죽음을 불러왔기 때문이다."(348)


"이제껏 이 책에서 주장한 대로, 전쟁은 인간 동기체계 일반의 밑바탕에 놓인 인간 욕구의 대상들과 동일한 대상들을 얻기 위해 수행해온 것이다. 다만 폭력적 수단으로, 물리력을 사용해 수행해왔을 뿐이다." "전쟁의 '문제'는 인간의 이런저런 욕구─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드는 욕구, 삶을 채우는 욕구─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해 폭력과 전쟁은 평화적 경쟁과 협력보다 분쟁 행동 전략이 인간 욕구의 어떤 대상을 얻는 데 더 유망하다고 판단할 때 일어난다.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려면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와 이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분쟁 경로 쪽으로 몰아가는 조건, 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요컨대 인간의 욕구는 전쟁의 동기를 이루고 따라서 전쟁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폭력 선택지의 기대효용, 분쟁 가능성에서 생겨나 확대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 같은 요인들이 전쟁으로 귀결되는 인과적 배열을 완성한다."(3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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