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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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은 자신의 자유를 자각하고 있다. 그러면 이 자유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정초된 것이다. 단적인 시원始原(Anfang)이다. 이 시원은 자연사적 맥락에서 추상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자신의 상황에서 도출해 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매개적인 것이다. 헤겔이 이것을 기독교에서 이끌어 내고 있기는 하다. 그는 예수가 단적으로 인간의 자유, 세계의 자유를 천명하였다는 통찰을 청년기에 설파한 바 있다.

 그러나 철학사적인 문맥에서 고찰한다면 이는 데카르트의 '자립적 자기의식'에서 기원한 개념이다. 데카르트는 일체의 외면적 사태로부터 철저하게 내면으로 퇴각한(소극적 부정적 계기), 그리하여 단독적 자기로써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적극적 긍정적 계기) 〈이 정신··· 나 자신〉을 정립하였다. 이로써 유한자인 '나 자신'은 바로 그 유한성을 계기로 무한자인 신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무한자인 신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던 유한자인 인간은 무한자인 신의 인식에 이르는 필연적 계기로서 성립하였다. 인간이 자기의식으로써 신을 인식할 때에만, 바로 그때에만, 인간이 초월론적인 만큼, 인간이 스스로 초월적인 것을 관조할 수 있는 존재하고 이론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만큼, 꼭 그만큼만 인간은 초월적일 수 있는 것이요, 바로 그러할 때에만 신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이 자신의 자유를 자각하고 있다는 것에는, 바로 그렇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바로 그것과 함께 또는 바로 그런 까닭에) 정신의 자유 일반을 세계에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자신의 자유에 대한 자각이 정신의 온전한 자기 실현의 가능태라면 그러한 가능태는 이 세계 안에 자신의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는, 가능태를 현실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자연사가 아닌 인간사의 시작이다. 인간사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정신화精神化(Begeisterung)된다.

 인간사에서는 정신적 세계가 실체이고, 물리적 자연적 세계는 그것에 종속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정신의 자유가 세계에 실현되어야 함을 자각하여 온 과정이므로 물리적 세계에 매몰된 것은 선행하는 단계요, 정신적 세계의 건립은 〈사변적으로 표현하면〉, 이 선행하는 단계의 〈진리〉이다. 진리의 성립은 목적을 실현하려는 운동, 즉 활동이 있음으로써 가능해진다.

 가능태의 실현은 활동 또는 운동을 요구한다. 물론 물리적 자연적 세계에도 운동이 있다. 식물은, 가능태인 씨앗이 현실태인 나무로 성장하려면 환경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식물은 이 환경을 자신의 활동으로써 조성할 수 없다. 자연의 우연적 여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가능태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실현의 활동, 즉 노동(Arbeit)은 인간 개인의 활동이면서 동시에 세계사적 노고이기도 하다. 이 노동이 '근대'라는 시대를 이끌어 간 추동력이다.

-제3부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 1. 세계의 궁극목적과 역사 中에서, p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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