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의 고고학 (양장) - 사회조사로 본 한국 사회의 변화, 1965~2015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장덕진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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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한국인의 삶, 그 반세기의 변화


1965년과 1974년, 그리고 2005년의 자료를 비교 분석한 김현식의 분석을 살펴보자. "초혼에서 이혼으로의 이행을 보면 1965년과 1974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2005년에는 이혼하지 않고 초혼으로 남을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1974년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 이혼의 위험이 지금보다 더 컸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과거에는 일단 초혼이 소멸되고 나면 빠른 시간 안에 재혼을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관찰되지만, 2005년에는 재혼 시기가 현격하게 늦어지고 있다. 과거의 여성들이 이혼도 더 많이 경험하고 재혼도 더 빨리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역시 반드시 이혼이나 재혼에 대한 여성들의 가치관과 직접 맞닿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의 여성들이 재혼을 선택으로 생각하는 반면, 과거의 여성들은 초혼 소멸 이후 '혼자된 여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압력(가령 경제적 부담)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재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을 가능성이 있다."(17)


"가장 놀라운 것은 태아 사망의 변화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는 기대 수명의 증가이다." GDP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태아 사망도 당연히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을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1965년 기혼 여성 중 태아 사망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가 80.4%에 달했던 반면, 2005년이 되면 이것이 48.7%로 절반 가까이 낮아진다. 즉, 현대의 여성들이 과거 여성들보다 훨씬 많은 태아 사망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는 태아 사망을 사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인공유산으로 분해해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 비해 사산은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자연유산은 늘어났고, 특히 인공유산은 거의 네 배로 크게 늘어났다. 2005년이 되면 여성 두 명 중 한 명 꼴로 인공유산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식은 2005년 인공유산으로 사라진 출산율을 0.21에서 0.27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18-9)


"지난 50년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국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혼 연령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초혼을 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몇 세에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결혼 시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혼의 위험이 줄어든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전쟁 같은 급격한 사회 변화로 뜻하지 않게 혼인이 해소될 위험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는' 일도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혼인의 유지도 과거에 비해 여성 본인의 선택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이혼하게 될 경우 재혼이 줄어들거나 늦어지고 있는 것도 역시 규범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자녀 출산이 줄고 특정 시기 몇 년간 집중적으로 출산한 후 중단하는 경향, 그리고 인공유산이 늘어난 것도 역시 출산에서 여성의 선택이 과거에 비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20)


"김두환은 전통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모두가 가난하지만 평등해진' 1950년대가 (학력주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교육투자의 원인을 교육열보다는 집단적 상승 이동의 기회가 사라진 구조적 조건에서 찾는 선행 연구들에 주목한다. 미군정하에서 노동운동 같은 집단적 상승 이동의 계기가 탄압의 대상이 되면서 개인적으로 계층 상승의 활로를 모색하려면 교육에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두환은 한국의 평등주의가 평등한 개인들 간의 연대라기보다는 '지위 상승 평등주의' 혹은 '비도덕적 가족주의'에 가까웠다고 보고 있다. 우리의 교육열은 사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진 사회에서 나도 경쟁에서 이겨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지위 상승의 열병'이었고(따라서 그 과정에서 연대의 자원을 파괴하는 것이었고) 그 경쟁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변형된 형태의 근대적 가족이었다는 것이다."(21-2)


"고령화를 추동하는 힘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이를 낳지 않아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이 된 이후에 더 긴 시간 동안 살게 되는 것이다." 1970년 대비 2015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무려 19.8세가 늘어나면서 "그에 수반되는 문제들도 생겨났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생애 전체에 걸쳐 총소득과 총지출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아동 시기와 노인 시기에는 소득이 없거나 매우 적은 상태에서 지출만 하는 상황이 된다. 경제활동 기간에 지출보다 많은 소득을 올리고 이때 남은 소득을 아동기와 노인기에 분배해서 전 생애에 걸친 총소득과 총지출이 어느 정도 균형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노인으로 지내는 기간이 19.8년이나 늘어난 지금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으로서는 노인 빈곤의 문제가 되고 국가 전체로는 재정 부담이 된다."(27-8)


"임채윤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보면 이웃 공동체는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압축성장의 핵심 지역인 수도권에서는 유의미하게 사라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고소득 고학력자들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이웃 연결망에 대한 참여가 낮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웃도 아니고 친족도 아닌 연고형 조직(예를 들어 동창회)과 결사체에 대한 참여가 두드러지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임채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동창회와 같은 배타적 연고 집단을 중심으로 연결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학벌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사회적 자본으로부터 배제하는 효과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점에 대해서도 한국의 도시화가 전반적인 사회적·시민적 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는 도시사회학의 고전적 가설에 한층 더 부합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34-5)


"권현지는 1987년 이전 체제가 일체의 조직 운동과 집단적 움직임에 대한 억압을 통해 테일러적 대량생산에 복무할 수 있는 순종적 저임금 공장노동자들을 형성하고 동원하는 데 초점을 둔 노동 체제라고 규정한다. 평생직장과 근속 연수에 따른 승진과 보상 등 내부 노동시장은 관리사무직과 고급 기술직에 배타적으로 주어졌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분절적 노동시장 정책이 비시장적이고 위계적인 가부장제 규범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차별의 당사자들에게도 상당 부분 내면화 되었다는 점이다. 분절의 갈림길은 성별 격차와 학력별 격차, 그리고 관리직과 사무직의 격차, 대기업과 소기업의 격차 같은 것들이었다." "학력과 성별을 매개로 한 노동시장에서의 임금격차가 그나마 지금의 수준으로 축소된 것은 1987년부터 외환위기까지의 10년 동안의 변화 때문이다. 1980년 대졸자의 임금 총액은 고졸자의 231.6%에 달했고(지금은 약 150%),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44.2%에 지나지 않았다(지금은 약 63%)."(37-9)


"87년 체제 노동운동은 실질임금 인상, 생산직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된 내부 노동시장, 고용평등법 등 주요한 제도 변화의 촉진, 지니계수의 가파른 하락 등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전은 주로 대기업 및 중화학공업 남성 노동자에게 집중됨으로써 여성 노동을 포용하는 데 실패했고 기업 규모 간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87년 체제는 노동자 전반을 포괄하는 노동조합운동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노동조건 개선 위주의 운동으로 머물렀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1997년 외환위기는 노사 간 균형을 완전히 깨버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권현지의 진단이다. 그는 포스트 97년 체제를 탈규제, 집단적 노사 관계의 전반적 약화, 노동시장 유연화 및 개별화, 불평등의 심화로 요약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이들은 광범위한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형성함으로써 사회적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40)


"2000년대 이후 나타나는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은 조직 내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졌고 특히 비정규직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노동자들 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개인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연대를 잃어버린) 노동자들의 개인화는 2007년 조사에서 나타나는 사회의식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07년 조사에서 임금노동자만을 골라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77%의 노동자가 빈부격차가 늘었으며, 53%의 노동자가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다수의 임금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한국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오직 28%만 그렇다고 답한 데서 드러나듯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합리적 기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부정적이거나 부재했다."(41)


"두 시점(1968년과 2012년) 사이에 가구주는 점차 고령화, 여성화, 고학력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 계층이 낮을수록 여성 가구주, 저학력 가구주, 미취업 가구주의 구성비는 높고 상용직에 종사하는 가구주의 비율은 낮아졌으며 이는 두 시기 모두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십분위분배율은 6.31%에서 12.9%로 증가해 소득 양극화는 다소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불균등 분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사회적 위험의 수준은 비교 시점 사이에 약 다섯 배 이상 증가해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따라 사회적 위험이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시기에 관계없이 사회적 위험은 경제 계층이 낮을수록 증가했으며 경제 계층 간 사회적 위험의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1968년의 경우 사회적 위험은 근로소득이나 재산소득과 유의미한 관계를 갖지 않았으나, 2012년이 되면 사회적 위험의 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근로소득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다."(43-4)


# 사회적 위험 : 가장의 사망, 장애, 질병, 실직, 노령뿐만 아니라 저숙련 일자리 감소와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의 확대, 민간 보험의 오용 등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슬로건으로 기억되는 1990년대에 정보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정치활동 영역, 경제활동 영역, 사회활동 및 개인 심리 모두에서 정보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조사 시점이 인터넷의 상용화가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본격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정보화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넘쳐났다고 할 수 있다." "2003년이 되면 비로소 정보화의 효과에 대한 태도가 집단별로 유의미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변수들에서 전통 미디어를 선택한 집단과 인터넷을 선택한 집단이 양극에 위치하고 주변 사람을 선택한 집단이 그 중간에 위치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오늘날 SNS에 젊은 세대가 편중되고 보수 성향 종편에 고령 세대가 편중되는 것과 같은 미디어의 분화 현상이 이때 이미 그 단초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47-8)


"일곱 개의 하위 분야와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추세 가운데 하나는 개인화 경향이다.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경제적 강요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그들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떠맡겨지는 삶의 조건들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산 자체가 줄어들 뿐 아니라 출산 시기 또한 갈수록 엄격하게 제한되는 양상 등이 그러하다. 교육은 경쟁에서 이겨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는 비도덕적 가족주의가 그 주된 동력이고, 그 결과 사회적 연대의 자원을 파괴하고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고령화의 과정은 지역별로 양극화되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중심의 고령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진행되어온 대부분 지역의 고령화를 외면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인 세대 내부의 양극화가 또 다시 진행된다."(52-3)


"도시화의 과정에서 한국의 이웃 공동체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상층의 이탈이었다. 그들은 지위 경쟁의 대상이자 사회적 교류의 보상이 그리 크지 않은 이웃 공동체에 참여하기보다는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동창회와 같은 연고형 조직들에 참여한다. 50년에 걸친 노동 레짐의 변화 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연대를 잃어버린 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에게 〈남은 생존 방식은 개인의 도구주의를 힘껏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적 위험은 현저하게 늘었고, 그 위험은 계층화되었다. 이러한 위험의 계층화 사다리에서 아래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연대에 기초한 위험 분산의 기회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정보화는 짧은 시간 안에 빠른 사회 변화를 가져왔는데, 사회의 균형추를 회복하는 네트워크된 개인의 역량은 아직 그 단초를 보이고 있을 뿐 본격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은 개인화라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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