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민주주의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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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언어와 문자는 해당 공동체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생활의 도구이기에 언어와 문자의 선택과 유지에는 구성원의 합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어정책과 국어 인식에서 민주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한글이 공용 문자로 쓰인 뒤에도 한글은 여러 번 그 모습을 바꾸었다. 모아쓴 글자(한)를 풀어쓴 적(ㅎㅏㄴ)도 있었고,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쓴 적(ㅇㅍ)도 있었고, 소리 나는 대로 쓴 적(사람이 → 사라미)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 현재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했다면 한글 표기가 간편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관습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한 개혁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문자의 선택이 역사적 선택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관습의 힘과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원칙이다."(16)


"동경어를 표준으로 삼은 표준어 정책은 지방분권적 봉건국가였던 일본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이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민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근대 일본의 열망이 표준어 정책에 투영되면서 표준어 정책은 국민정신의 함양을 목적으로 강력하게 진행되었고, 이는 곧 새로운 국어를 정립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조선의 표준어 정립 과정은 이미 유일하게 존재하는 공통어를 공식화하는 일에 가까웠다. 따라서 서울말을 표준어로 공식화하는 일은 설득과 투쟁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과 보급의 문제였다." "이처럼 표준을 정하는 일이 막연한 상황에서 '대체로 쓰이는 말'과 '중류 사회의 말'이라는 기준은 '규칙에 맞는 표현' 혹은 '바른 본'이 대신하게 되었다. 언어의 표준화 사업이 바람직한 말을 찾아 중류 계층에게 걸맞은 말을 건설한다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바람직한 말을 익힌다는 것은 표준어를 권리로 인식하기보다는 의무로 인식하게 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44-5)


"조선어사전 편찬회가 결성되던 1929년 민족문화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에게 조선어의 표준을 정하는 것은 조선 문화의 사활을 결정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조선의 문화가 향상되지 못한 것이 모두 언어의 표준을 마련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조선어의 표준화가 얼마나 절박한 일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표준어 사정안은 민족어사전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의 한 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1936년 10월 28일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한 시점을 계기로 조선어학회의 대중 집회가 금지되었고, 조선총독부의 국어 상용화 정책이 더욱 강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표준어 제정의 역사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용어로서의 표준어를 정립하고자 한 노력은 더 큰 억압을 불러왔지만, 억압 속에서 강화된 절박감은 우리말 사전을 완성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찬된 사전은 해방 후 우리의 국어생활을 이끄는 기준이 되었다."(53-4)


"대부분의 근대 민족국가는 순수한 모국어를 국어로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언어 정화 운동을 국가사업으로 진행하였다. 방언을 제약하면서 표준어를 확립하였고, 이와 함께 철자와 문법을 정비하면서 이상적인 언어 모델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규범에 어긋나는 표현은 국어의 순수성을 해치는 옳지 못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순수한 국어를 지향하는 것은 언어 규범의 통일성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풍조와 맞물려 외래어를 배척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래어를 배척하는 언어 정화 운동이 시작되고 국가주의 교육이 등장하면서, 언어는 교섭과 변화를 통해 발전해가는 것이고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이 소홀히 인식되었다. 그리고 언어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을 국가 정체성 유지와 관련지으면서 외래어 문제는 언어 규범의 문제라기보다 도덕과 이념의 문제가 되었다."(98)


"한국적 어문민족주의는 식민지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어문민족주의는 해방 이후 국어정책과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외래어가 폭넓게 쓰이는 현실과 별도로 우리의 외래어관이 서구나 일본에 비해 더 폐쇄적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외래어 의식의 특이성은 외래어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나타난다. 가장 특이한 점은 외래어의 기원에 따라 이를 대하는 의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어 표현과 일본 한자어는 사용하는 이의 무지를 질타하거나 고루함을 비판하는 예시로 사용되곤 하지만, 서구 외래어는 현학적인 또는 과시적인 표현 태도를 비판하는 예시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언어순혈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국어 속 한자어를 외래어로 보고, 한자어의 존재를 중국 문화에 대한 종속으로 판단하기도 한다."(102)


"우리의 근대의식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탈중화(脫中華)'를 모토로 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였는데, 동아시아 중세 질서가 중화주의를 근간으로 했기 때문이다. 근대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문화적으로는 한자 문화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우게 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정치·문화적 독립에 대한 열망은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문화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문화운동은 다른 어떤 문화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고유의 것을 찾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새롭게 우리 문화를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근대 국어 운동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러한 흐름에서는 서구 외래어보다 한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외래어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국어 순화의 결과를 왜곡시키기도 한다."(111)


"관례를 떠나 현지 발음대로 외래어를 표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러한 주장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실용성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효율성과 실용성 면에서 뒤떨어져 있음에도 관습이나 전통에 매달려 필요한 변화를 과감히 실천 못하면 퇴보나 제자리걸음밖에 안 된다"(이익훈, <어륀지 발음 옳다>)라는 일갈에 '오렌지는 국어, 어륀지는 영어', '국어정책의 주체성' 따위의 말은 초라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효율성과 실용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이들의 '실용주의'는 특정 계층의 편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말하는 '실용'과 '효율'은 '관습'을 부정하고 '경쟁'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실용주의자들은 대중들의 낯설어함과 곤혹스러움을 개의치 않는다. '일반인들이 낯설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선점한다는 것은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는 토대가 된다."(153-4)


"근대의 특징 중 하나는 민족어가 생활의 언어에서 정치, 경제, 학술의 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민족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이어진 것은 민족어의 역할을 생활 언어로 국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 민족어의 탄생은 민족어의 역할 확대를 의미했다. 따라서 민족어를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민족어가 정치, 경제, 학술의 언어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는 일본어 상용 정책에 맞서 민족어 운동을 전개한 선조들도 뻐저리게 느꼈던 문제다." "규범을 강조하고, 표준어를 완고하게 고수하려는 조선어학회의 태도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융통성이 없는 근대주의자의 모습이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어를 국어인 일본어와 같은 반열에 올리려는 의욕적인 민족주의자의 모습이다. 일제의 일본어 상용 정책이 심화되면서 조선어의 위상이 추락하는 현실에서 조선어의 규범화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은 이런 점에서 선각자였다."(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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