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 이토록 곡해된 사상가가 일찍이 있었던가?
테리 이글턴 지음, 황정아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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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체제에 대한 견해를 수정한 대다수 급진주의자들이 단순히 주변의 면화공장 수가 줄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구레나룻이나 머리띠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를 던져 버린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맞섰던 체제가 너무 강고해서 깨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가능성에 대한 환멸이 결정적이었다."(17) 이처럼 자본주의는 놀랄 만한 진보를 성취했지만, "단지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만도 엄청나게 달려야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한계가 자본 그 자체이며 자본의 끊임없는 재생산이 자본주의의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20) "마르크스주의의 의미는 그것이 엄밀히 한시적이라는 데 있으며, 따라서 자기 정체성의 전부를 그것에 투여하는 사람은 핵심을 놓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후에도 삶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그 자체이다."(14)


2.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적으로만 괜찮다?


"사회주의가 되려면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넉넉해야 한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부터 레닌과 트로츠키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이와 다르게 생각한 적이 없다."(28) 물질적인 기반이 결여된 상태에서 끔찍한 희생을 강요한 스탈린주의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마르크스 작업의 평판을 떨어뜨린다기보다 오히려 그 타당성을 증언해준다."(31) 사회주의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없다는 이들은 "풍족한 조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 해도 복잡한 현대 경제를 시장 없이 어떻게 운영할 수 있는가"라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점점 더 많은 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내놓는 대답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시장은 사회주의 경제의 빠뜨릴 수 없는 일부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른바 시장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소유되지만 자치적인 협동조합들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32-3)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다?


"생산력-생산관계 모델의 명백한 결함 가운데 하나는 결정론적인 측면이다. 여기서는 어떤 것도 생산력의 전진에 저항할 수 없는 듯하다. 역사는 불가피한 내적 논리에 의해 작동한다. 역사를 관통하여 뻗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여러 다른 정치적 장치들을 무너뜨리는 단 하나의 역사적 '주체'(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생산력)가 있다. 이는 복수심을 가진 형이상학적 관점이다."(51) 그러나 마르크스의 작업에는 생산력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를 낳는다는 생각 말고 다른 방향의 사유도 있다. 여기서는 "사회적 생산관계가 생산력보다 선차적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 사유에서는 사회적 관계와 계급투쟁을 만들어내는 인간이야말로 역사의 명실상부한 창조자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역사는 인간이 자기 목적을 추구하는 활동에 불과하다"고 쓰고 있다.(56)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마르크스가 (푸리에나 생시몽, 오언을) 반대했던 것은 무엇보다 순전히 논변의 힘을 통해 반대파를 이길 수 있다는 이 유토피아주의자들의 믿음이었다. 그들에게 사회란 사상의 전쟁터이지 물질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었다."(72) "<고타 강령 비판>(Kritik des Gothaer Programms, 1875)에서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에는 그것이 태어난 자궁인 낡은 질서가 남긴 선천성 반점이 찍혀 있으리라고 쓰고 있다. 그러니 '순수한' 출발 지점이란 없다."(75)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란 "우리가 집단적으로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대체로) 정치적 제스처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을 말한다." "진정으로 다른 미래는 현재의 단순한 연장도 그것과의 절대적 단절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해방 개념은 평탄한 연속성과 철저한 단절 둘 다를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매우 희귀한 존재, 즉 냉철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한 몽상가였다."(79)


5 .마르크스주의는 만사를 경제로 환원한다?


"경제환원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야말로 '생산'이란 단어의 가장 좁은 의미에서 생산을 위한 생산을 믿는다. 반면 마르크스는 더 폭넓은 의미에서 생산을 위한 생산을 믿는다. 그는 인간의 자기실현 자체가 목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다른 어떤 목표의 도구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112) 계급은 "경제적 실체인 만큼이나 사회적 구성체이자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것은 관습과 전통, 사회적 제도, 가치와 사유 습관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정치적 현상이다." "생산은 삶의 특정한 형식들 안에서 수행되고 따라서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노동은 언제나 의미를 띠며 인간은 의미 있는 (문자 그대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동물이므로, 노동은 결코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물질적인 사건일 수 없다. 신에게 기도하거나 조국을 찬양하거나 아니면 비상금 주머니를 채우는 방법으로 볼 수도 있다. 요컨대, 경제적인 것은 언제나 그 자체보다 더 많은 것을 전제한다."(116-7)


6. 마르크스에게 세계는 물질 덩어리였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은 "역사나 물질이나 정신의 노리개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만들 능력을 지닌 적극적이고 자기결정적인 존재이다."(125) 유물론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애초에 그런 질문을 제기하지도 못한다고 답할 것이다. 사회적 협동이 없었다면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는 물질적 생산도 없었을 것이며,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상당 부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의식은 어떤 유령 같은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물질 덩어리지만 독특하게 창조적이고 표현적인 덩어리이며 우리가 '정신'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창조성이다."(127) 따라서 "이 현실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현실을 우리 자신의 활동과는 별개의, 자연적이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르크스가 소외라 칭한 것이다."(129)


7.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사라진 노동계급에만 집착한다?


"구분을 복잡하게 만들고 위계를 무너뜨리고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형태들을 잡다하게 섞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성이다. 어떤 삶의 형태도 이보다 더 혼종적이고 다원적이지는 않다. 정확히 누가 착취받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되면 이 체제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평등하다. 자본주의는 가장 독실한 포스트모더니스트만큼이나 반反위계적이며 가장 열렬한 국교회 목사만큼이나 관대한 포용주의자이다."(153)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노동계급이 점유하는 위치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커다란 망치를 다루는 근육질 남성만이 아니라 "노동력을 자본에 팔 수밖에 없고 자본의 억압적 규율 아래 신음하며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한다."(159)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제 기능을 다하면서도 박탈당하고, 특정하면서 또한 보편적이며, 시민사회의 불가결한 일부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156)


8.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폭력적인 정치 행동을 선호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조직된 노동계급이 다양한 동맹 세력과 더불어 부르주아 혹은 자본주의적 중간계급을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소규모 반란 집단이 아닌 대다수의 행동이다. 사회주의는 대중적 자치에 관한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전문 포커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혁명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174) 혁명주의자들 역시 개혁을 옹호한다. 하지만 이들이 개혁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그와 같은 개혁을 더 장기적이고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데 있다.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조만간에 체제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지점에 이를 것이며, 마르크스주의에서 이 지점은 사회적 생산관계로 알려져 있다. 혹은, 좀 거친 기술적 용어로는, 물적 자원의 통제권을 절대 내놓지 않으려고 작정한 지배계급이다. 오직 그 지점에서만 개혁과 혁명 사이의 결정적인 선택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른다."(176)


9. 마르크스주의는 전권을 가진 국가를 믿는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시들어 소멸하리라 희망한 것은 중앙 행정부라는 의미의 국가가 아니었다. 복잡한 근대 문화에서는 어디서든 그런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자본> 제3권에서 "모든 공동체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공동의 활동들"에 관해 썼다. 행정체로서의 국가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끝을 보고자 희망했던 것은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였다."(181-2) "국가는 스스로를 위로부터 사회를 형성하는 존재로 보지만, 실상은 사회가 낳은 산물이다. 사회가 국가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국가가 사회에 기생한다. 전체 구조가 뒤집힌 것이다." "마르크스의 목표는 국가와 사회, 정치와 일상생활의 이런 간극을 전자를 후자에 녹임으로써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가 민주주의라 부른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현존하는 국가는 그저 "현 체제가 입힌 인간적 손상의 일부를 닦아낼 수 있을 뿐이다."(185-6)


10. 마르크스주의는 최근의 급진적 운동에 기여한 바 없다?


로버트 J. C. 영에 따르면 1960년대 이전에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문제와 더불어 젠더라는 이슈를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논의한 것은 공산주의 운동이 유일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의 권리를 확고히 옹호했을 뿐 아니라 세계 반식민주의 운동에도 가장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실제로 20세기 전반부에 걸쳐 그 운동에 가장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는 근대의 세 가지 가장 위대한 정치투쟁, 즉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여성해방, 파시즘에 대항하는 싸움의 선두에 섰다. 반식민주의 전쟁의 위대한 1세대 이론가 대다수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없어서는 안 될 출발점을 제공했다."(196-7) 또한 마르크스는 "자연 자원에 대한 단기적인 자본주의적 착취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 사이의 갈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독일 이데올로기>를 쓸 때부터 이미 "사회 분석에 지리학적이고 환경적인 요인들을 포함"시킨 현대적 환경주의자이기도 했다.(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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