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새벽 푸른 공기를 가르며 걷던 삼베 적삼 치마의 여인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가는 소년의 영상이면 족하다. 나의, 우리의 생에 다시 없을 아름답고 간명한 피서였다.
추억이 곧 피서지다. 우리 아이들은 내 나이에 뭘 추억할까.
- P24
사춘기가 막 시작되면서 서울로 내 주거가 옮겨졌다. 서울이라고는해도 최남단에 위치한 동네, 곧 변두리 동네의 대명사인 가리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고 구로공단의 배후지로서 가리봉동의 형제와 다름없는 독산동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다닐 중학교에 대해 가지게 된 첫인상은 주변의 공장과 구별되지 않는 삭막함이었다. 학교가 공장과 다른 점은 노골적으로 연기를 뿜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