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서 마리아의 오이지랑 자꾸자꾸 먹었다.

 오독오독하고 짭자름하니 싱싱하다. 

 마리아는 지금 하늘에서 그녀의 오이지로 밥을 먹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빙긋이 웃으며 바라볼 것 같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山에 갔던 사람. 그 산에서 첫 번째 투병에 회복을 하고, 이번 두 번째 투병에서 살고자 하는 불타는 의지의 끈을 놓고 이젠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다. 늘 그녀를 볼 때마다 온갖 생의 시련들을 끈질기게 이겨내며 항상 최선을 다해 살다 간 그 사람 앞에서  늘,  "나는 왜 저토록 열심히 살지 못하는가?" 부끄러웠던 사람. 그리고 그녀의 집에 가서 화분과 오이지를 가져와서 무침을 해 내게 가져다 준 H와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는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조금만 더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만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다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얘기를 했다. 그녀의 이 오이지에는 소금을 듬뿍 넣고 절여서 아직까지도 무르지도 낡지도 않은 그녀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삭아삭 오독오독. 이 오이지를 먹을 때마다 우리는 그녀를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아름다운 의지를 씹고 삼킬 것이다. 영혼의 오이지다. 마리아의 이 오이지는.

 문득, 顯彬을 임신하고 그해 여름에 신혼집에 오이지를 한가득 무쳐오신 엄마의 기막히게 맛있던 오이지도 생각 나고.  그리고 엄마도 이제 신입으로 이사 온 마리아와 하늘에서 편히 계시리라.

 마리아에게 선물 받았던 '제주난꽃향 그린티'를 마신다.

 아, 사는 일은 이렇듯 사랑의 빚을 잔뜩 지고 가는 길이구나. 나는 나중에 어떤 사랑의 기억을 남길 것인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당신이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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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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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의 그림자`는 언어의 고요함이 충분히 좋았다. `파씨의 입문`에서도 실핏줄 같은, 삶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사유`에 감탄을 했으나 실험적인 기교(?)에 불편했음도 사실이다. 기대치가 큰 탓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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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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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1927년에서부터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된 후의 현재까지 삶을 휘감아낸 `이야기의 힘`이 침착하고 시퍼렇다. 블루 플라이를 빌어 애써 `희망`이란 이야기라 믿어본다. 얼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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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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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노고로 조선 지식인들의 명분과 욕망과 권세로 이루어진 맛깔진 음식 그득한 한 상 잘 받았다. 진정성 어린 글과 그림으로 배부르게 읽었다. 그리고 목은과 최서해 사이의 두부가 지금도 삶의 그림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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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퀵 서비스/ 장경린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빗소리에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를 담장위에

  덤으로 얹어 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의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 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장경린,<토종닭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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