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했던 브레첼의 생김새. 간판에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보면 리본 같아 보이기도 하고, 숫자 8을 늘려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빵에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다. 짭짤하고 쫀득한 맛도 좋았지만, 나는 그 특별한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다.
브라첼(brezel)의 기원은 라틴어 브라치움(braccium)에서 나왔다고 한다. 현대 영어로 '팔(arm)'과 '가지(branch)'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할 때 가슴에 손을 포개 얹거나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빵이 가질 수 있는 한없이 경건한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함부로 빵을 뜯으려 했던 손이 움찔할 때가 있다. 나는 브레첼을 거칠게 대하지 않기로 했다. 하루에 몇번 씩 만나더라도 말이다.
브레첼이 있는 풍경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엄마와 아기가 브레첼을 나눠 먹는 장면이었다. 참 흔했지만 그 모습이 예뻐서 늘 쳐다보곤 했다. (P.18)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새 잠옷, 모직 양말 두 켤레, 위에
초코릿을 끼얹은 렙쿠혼 한 봉지, 남태평양에 관한 흥미진진
한 이야기 책 한 권, 스케치북,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고급 색연필 한 상자가.
마르틴은 너무나 감격해서 부모님께 입을 맞추었다.
-에리히 캐스트너 <하늘을 나는 교실> 중에서 (P.215)
울름 빵문화 박물관에서
3층은 '빵과 사람'이라는 주제. 이곳에서는 종교에 나타난 빵의 의미, 기근의 시대에 빵에 투영된 고통의 모습들, 예술작품에 보이는 빵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전시들을 통해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빵은 언제나 감성적이고 풍요로운 대상이었다. 먹음직스럽고 예쁜 빵을 고르고, 먹고 싶은 만큼 먹었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나누는 데에서 나는 충만함과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빵은 달랐다. 빵이 이렇게 기술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그곳에는 빈 빵상자를 들고 우는 아이들과 그 옆에서 비쩍 마른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는 엄마. 퀭한 눈으로 빈 그릇을 들고 빵을 달라는 기아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아래 '평화와 빵'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들은 같은 공간에서 본 살바도르 달리와 피카소가 그린 빵의 풍요로운 모습들보다 강하게 각인되었다 (P.270)
다행인 건 이 박물관의 아이젤렌 재단이 세계의 기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빵과 관련된 학문적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얀 식빵처럼 착한 박물관을 나오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올름을 떠나며 언젠가 빵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다려 봐요. 버터향으로 마음을 달래 주고 상처에는 초콜릿 크림을 발라 줄께요. (P.271)
밖은 여전히 추웠던 일요일, 따뜻한 집안에 앉아
<유럽, 빵의 위로>를 읽었다. 정말 폭폭한 일상을 달달하게 해 주는 이 책은, 빵같다.
꼬마였을 때 한때의 꿈이 '빵집 마누라'였던 것처럼 빵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이제는 밥을 더 많이 먹는 탓인지 밥벌이의 고단함을 알아 버려서인지 아니면 입맛이 바뀐 탓인지 그리 즐겨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빵'은 여전히 아련한 꿈같다.
저자를 따라 간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 예쁘고 아기자기한 모양의 빵들의 사진과 따스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성냥팔이 소녀(성냥팔이 아줌마도 아니지만은)가 들여다 본 유리창 안의 따뜻한 불빛과 정다운 사람들과 갖가지 맛있는 빵들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그런 느낌으로, 즐거운 책읽기의 기쁨을 만끽하였다고나 할까..그런 책이다.
그리고 더 즐거웠던 것은, 저자가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서 푸른 불빛이 흐르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아래서 먹었던 바로 구워낸 '뜨레들로' 이야기를 할 때, 문득 보슬비님도 프라하에 사신 적이 있으셨다는데 이 뜨레들로를 드셨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밥'과 '빵'은 어느 곳에선가의 주식이다.
문득, 밥과 빵을 소리내어 발음해 본다. "밥"은 입이 벌어지다가 다시 안으로 오물어지고 "빵'은 그대로 커다랗게 벌어진다. 어쩌면 각자의 주식을 먹는 삶의 모습도 그럴 것 같다.
요즘은 빵이 어딜가나 다 맛이 비슷비슷하다.
문득, 어렸을 때 먹었던' 태극당'의 빵맛이 그리운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나이 값을 하고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하는데...괜히 또 부끄럽다.
삶도, 여행도, 음식도, 빵도 결국은 사람 때문에 맛이 더해지는 것 같다. (P.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