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형대磔刑臺*에 걸린 시
-인간 해방의 경종을 울려라
4.26 전까지의 나의 작품 생활을 더듬어볼 때 시는
어떻게 어벌쩡하게 써 왔지만 산문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감히 써볼 생각조차도 먹어보지를 못했다.
말하자면 시를 쓸 때에 통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캄푸라쥬'가 산문에 있어서는 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문의 자유뿐이 아니다. 태도의 자유조차도 있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차럼 6.25 때에 포로생활까지 하고 나온 이 사람은 슬프게도 문학단체 같은 데서 떨어져서 초연하게 살 수 있는 자유가 도저히 없었다.
이를테면 같은 시인끼리라도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서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그런 감정을 하여서는 아니되고 그런 태도를 극력 보이어서는 아니 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작품이 무슨 신통한 것이 있겠는가. 저주가 아니면 비명이 아니면
* 磔刑臺: 몸을 찔러 죽이는 형구刑具를 말한다. (P.32 )
죽음의 시가 고작이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앞으로 이에 대한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실 요사이는 시를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 4.26이 전취戰取한 자유는 나의 두 손 아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나는 이런 벅찬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눈이 부시다. 너무나 휘황輝煌하다. 그리고 이 빛에 눈과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잠시 시를 쓸 생각을 버려야겠다.
지난날의 낡은 시단의 과오나 폐습을 나는 여기서 새삼 뇌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렇듯 숨막힐 듯 한 괴로운 시대 속에서 과감하게 자기의 세계를 지켜가면서 싸워온 시인이 현現 시단의 기성인 중에서도 몇 사람은 있다는 것을 나는 여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어느나라 시단이고 진짜 시인보다는 가짜 시인이 훨씬 더 많은 법이고 요즈음 세간의 여론의 규탄을 받고 있는 소위 어용시인이나 아부시인들은 이미 그들이 권력의 편에 서서 나팔을 불기 전에 먼저 시인으로서는 완전히 자격을 상실한 자들뿐이다. (아니 애당초 시인이 되어보지도 못한 자들뿐이다.) 그러니까 그까짓 것은 하등 문제꺼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4.26 이전의 우리나라의 시단의 작품들이 대체로 낡은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시로서 합격된 작물作物 중에 특히 더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새로운 (P.33 )
시대의 이념을 반영할 수 있는 제작 상의 모험적 기도를 용납할 수 있는 시대적 혹은 사회적 여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데 이와 같은 고민을 처절히 체득한 시인이라면 4. 26은 그에게 황금의 해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시인들만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4. 26의 역사적 분수령을 지조를 굽히지 않고 넘어온 기성시인 중에서 과연 몇 사람이 새 시대의 선수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힘든다.
'책임은 꿈에서 시작된다.'는 유명한 서구의 고언古言이 있는데 이 말은 4. 26을 계기로 해서 새로운 출발의 자세를 갖추고자 하는 젊은 시인들이 필必히 느꼈어야 할 기본인식이다. 이 인식의 감득感得이 없이는 새 시대의 출발은 불가능하다. 4.26의 해방은 꿈의 해방이다.
이제야말로 꿈을 가지라. 구김살 없는 원대한 꿈을 가지라고 나는 외치고 싶다. 이와 같은 꿈은 여지까지는 맛볼 수 없었던 태도의 자유와 감정의 자유를 투박하게 요구한다. 여기에 과실즙이나 솥뚜껑 위에 여린 밥풀 같은 달콤하고도 거룩한 시인의 책임이 있다. 시인들이여
새로운 시인들이여 이제야말로 인간해방의 경종을 울려라.
나는 4.19 전에 어느 날 조지훈趙芝薰 형하고 술을
마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시인이 되기 전에는 (P.34 )
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휫트맨'인가의 말을 차용借用하여가면서 기염을 토한 일이 있었는데 요 일전에 윤돈倫敦*에 있는 박태진朴泰鎭 형한테서 온 4.26 해방을 축하하는 편지 속에 '새로운 정부가 선율시旋律詩를 모르는 녀석들이 거만하게 구는 한은 구제가 없겠지요.'라는 같은 말이 또 있어서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중이 염불하듯이 이 말을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시인이면 반드시 시작품을 신문이나 잡지에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사람만을 말하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소위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번 4.19나 4.26을 냉담하게 보고 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는데(어울리지 않게 날뛰는 친구도 보기 싫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이런 위인들을 보면 분이 터져서 따귀라도 붙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나는 극언極言하건대 이번 4.26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洞察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시인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소위 시인들 속에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나의 친척에 모 국민학교 교감이 있는데 이 작자가 4.19날의 데모를 보고 집에 와서 여편네한테 '학생들도 이제 불쌍타 봤어. 그런 폭도暴徒들이 어디 있어... .'하며 밤새도록 부부싸움을 했다나. 그런 시인이나 이런 교감은 모두 다 (P.35 )
* 런던
모름지기 이승만李承晩의 뒤나 따라가 죽든지 양자택일 하여라.
4.26후 나의 성품이 사뭇 고약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 흥분한 탓이려니 해서 도봉산 밑에 있는 아우 집에 가서 한 이틀 동안을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왔는데 서울에 와보니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정 고약해져서 시를 쓰지 못할 만큼 거칠어진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윤리의 명령은 시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거센 혁명의 마멸磨滅속에서 나는 나의 시를 다시 한 번 책형대磔刑臺 위에 걸어놓았다. (P.36 )
<경향신문京響新聞> 1960년 5월 20일
그것을 위하여는
실낱 같이 잘디 잔 버드나무 가 지붕 위 산 밑으로
보이는 객사客舍에서 등잔을 등에 지고 누우니 무엇을 또
생각하여야 할 것이냐.
나이는 늙을수록 생각만이 싸이는 듯
그렇지 않으면 며칠 만에 한가한 시간을
얻은 것이 고마워서 그러는지
나는 조용히 들어 누워
하나 원시적인 일로 흘러가는 마음을 자찬自讚하고싶다
불같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밤만은 그러한 소리가
귀에 젖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있다면 저 등불이라도 마시라면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혹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잠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이 집 둘째 아들처럼
[돈은 암만 벌어도 ㅁㅁ 하여지지 않는다]
는 상인商人을 업수히 여기는 나의 마음도
사실은 오지 않을 기적을 기다리는 염려의 상인
만나야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가야할 곳도 가지 못하고
나의 천직도 이제 아주 잊어버렸다
이렇게 불빛을 등지고
한 발의 관객들 조차
무시하고
홀로 생각 아닌 생각에 젖어있으면
언덕을 넘어오다
무의미하게 보고 온
눈 위로 나오고 눈 속에 파 무친 도랑나무 많이 심은
공원까지 생각이 나서
내 자신이 원시적인 사람처럼
원시적인 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설움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도 자연히
알아지는 것인가 보다.
그러니까
내 앞에 누운 나의 그림자조차 저렇게 금방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제 마음대로
나중에는
채색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보아라.
만나야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가야할 곳도 가지
못하고
이제는, 나의 천직도 잊어버리고
날만 새면 차디찬 곳을 찾아
차디찬 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밤이 되면
객사를 찾아
등잔을 등에 지고 들어 누워
있어야할 게 아니냐.
그러하니까
재미있는 생각이
굶주린 마음에서
폭수爆水같이
폭수같이
쏟아져 나올게 아닐까보냐.
그것을 위하여는
일부러 바보라도 되어보게 싶구나. (P.18 )
< 연합신문聯合新聞> 1953년 10월 3일
-詩人 金洙瑛 作品集, <책형대에 걸린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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