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이,는 우리집 마리안느 화분에 살고 있는 민달팽이,이다.
지난 겨울, 우연히 마리안느 화분에 있는 민달팽이를 발견하고 놀랍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대때, 안동 도산서원의 답사길에 만난 찌는듯한 여름 흙바닥을 기어가는 민달팽이들을 보았던 그때의 그 막막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우리집 식구들은 민달팽이는 해충이므로, 창밖으로 버리라는 무지막지한 여론을 수렴했지만, 간단히 일축했다.
어떻게 엄동설한에 살아있는 생명,을 밖으로 버릴 수 있는가, 하고.
어쨌든 민달이는 나의 급식(오이를 얇게 저며, 밤마다 마리안느 화분의 흙에 살며시 놓아둠.)을
받으며, 자웅동체의 몸으로 민달2, 민달3까지 낳으며 지금까지...고요히 잘 지내왔다.
민달이는 야행성이라, 모두가 잠든 밤에는 자신의 집을 나와 옆집인 애플민트나 쟈스민, 그리고 벽도 타며 조용한 산책도 즐기는 눈치이다. 가끔 심야에 포착되는 바에 의하면.
그런데..!! 요 며칠 뭐가 바쁜지 내가 정신을 소풍 보내는 날들, 깜빡하고 우리 민달이의 오이를
깜빡하고 못 주었다. 그리고 민달이는 오이가 떨어진 날, 대신 양상추나 당근을 놓으면 안 먹음을
그 다음날의 현장으로 확인했던 바이다.
어쨌든, 오이도 떨어지고 이래저래 한 이틀 오이를 못 주다가 아까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려
오이를 발견하고 급 민달이 밥이 떠올라 사서, 마리안느 화분에 놓아 둔 것이 아까 저녁.
좀전에 거실을 가로지르다 문득, 불을 켜고 보니...오이의 가운데가 커다랗게 뻥 뚫려 있더라..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니 나뭇잎 한 켠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민달이.
아이고..., 그동안 배가 몹시 고팠구나...미안하다. 민달아,
며칠 전 읽은, 박제영 시인의 '식구'가 떠오르는 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집에 깃든 생명들과 서로의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이 식구,임을..
달팽이
집을 등에 지고 가는 그를 밟지 마시라
살짝만 밟아도 으깨지는 그를 그대로 두시라
그는 집을 별이라 생각하고
별을 가볍다고 생각할 때가 있으므로
서울역 대합실이든 지하철 통로이든
기어가거나 걸어가거나
누구나 가는 길의 끝은 다 눈물의 끝이므로
봄비가 오고 진달래가 피어도 그냥 두시라
그는 배가 고파도 배가 부를 뿐
이미 진 꽃을 다시 지게 할 뿐
기어간 길을 또 기어갈 뿐
그래도 어머니는 그에게 기어가는 자유와
가끔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셨으니
비록 여름에 밭을 갈고
가을에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밟지 마시라
봄비에 젖은 집을 등에 지고 술 취해
비틀비틀 기어간다 할지라도 (P. 75 )
-정호승 詩集, <여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