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장
이
아
프
다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 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P.18 )
배
고
픔
그
이
야
기
가난한 수도원에
네 배쯤 음식을 먹는 사람 있어
다른 이는 더욱 굶주렸다
훗날 저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람도 와 있었다
하느님 말씀이
그는 먹어야 할 음식량의
사분지 삼을 양보했기에
측은하고 가상하여
천국에 불렀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저마다 누군가를 향한 맹렬한 배고픔과
무엇인가에 대한 불치의 허기
그 낭떠러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P.33 )
말
의
포
만
넓디 넓은
할 말의 바다에
내 말의 몇 방울을 보내고
울창한 숲의
허구많은 할 말들의 잎새에
내 할 말의 몇 잎을 보탠 후
반은 세상의 고요
반은 스스로의 침묵
이 갈피에 잠입해 들어왔다
말의 포만에 지쳐서이다 ( P.134 )
-김남조 詩集, <심장이 아프다>-에서
김남조 시인의 제 17시집.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히는 김남조의 이번 시집은, 첫 시집 <목숨>(1953)이후 60년 만에 출간되어 시인의 오랜 시력을 오롯이 기념하는 미학적 결실이다. 사람의 삶에 있어 60주년은 '환력還曆'이라고 하며 특별히 여기는데, 김남조 시인의 시집이 2013년 올해 환력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김남조 시인은 초기 시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가톨릭적인 구원의 메시지가 하나 된 순결의 언어를 통해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가슴을 달랬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문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건조하고 차가운 도시 문명에 의해 상처 받는 이들을 위해 웅숭깊고 나직한 목소리로 기도의 시들을 써왔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자 대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심장이 아프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별자들의 아픔을 시적 언어들로 승화시킨 시인의 진심 어린 전언이다. 16권의 시집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목소리와 긍정적인 삶의 시적 정신을 순백의 언어로 구해온 김남조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긴 시간 동안 시와 함께하며 경험했을 다양한 성찰과 감정들을 잔잔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