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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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소재를 통한 우회적이고도 통렬한 소설. 예전에도 겪었고 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어찌보면 거의 모든 천재(天災)는 인재 (人災)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가녀린 구원의 상징을 숨겨놓은, 거대한 서사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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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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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누구나 지나온 시간. 나도 그 속에 있었지만 숨이 턱,막히는 삶을 지나온 세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동선이 내게도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 더욱 실감이 났다. 예측치 못한 결말에 심장,이 드라이이이스처럼 시렸다. 안녕, 내 모든 것. 그들을 비롯해 누구라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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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번 국도를 가다보면

 

 

 

 

              고향에 가면 아는 사람들이 있다.

              평촌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내 고향 용인으로 한 시간쯤 가다보면

              신작로 길가에서 맞이하는 쑥부쟁이가 보인다

 

              가겟집 낮은 지붕 아래

              먼지 묻은 막과자 몇 봉지가 흐릿한 등불 아래 졸고

              쪽마루에 걸터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순분이 할아버지의 밭은 기침이 있다

 

              해 질 녘이면

              상여의 요령을 흔들던 사서방 아저씨의

              육자배기 구성진 소리가락과 비틀거리는 귀가가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걸려 있는 삼거리이발소를 지나

              엄마 아빠가 젊었던 고향집에 들어서면,

              씨를 뿌리지 않아도 피어나던 채송화 꽃밭에서

              쏟아진 햇살에 눈부셨을까,

              상을 찡그리며 찍은 흑백사진 속에

              단발머리 예닐곱 수줍은 내가 있다.

 

              고향에 가면

              어린날의 단편을 기억해주는 옆집 살던 붙들이 엄마와

              추억 묻은 풍경들이 살픗살픗 모여 있다.  (P.132 )

 

 

 

 

 

                  포도 브로치

 

 

 

 

               셋째 작은 어머니가 꽂고 있는 포도송이 브로치를 보고

               예쁘다고 하니 선뜻 주셨다.

               치자빛 스웨터에 여밈 핀으로 꽂으니

               작은 어머니의 단아한 모습이 다가왔다.

 

               어느 날, 브로치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슈퍼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는데

               직원 앞치마에 브로치가 있었다.

              "이 브로치 어디서 사셨어요?"

              "주운 지 오래되었어요.

               잃어버린 분이 보고 찾아가라고 앞치마에

               매일 꽂고 있었어요. "

 

               그날, 잃어버린 브로치는 사연을 가지고

               다시 내게로 왔다.  (P.164 )

 

 

 

 

 

                  1호선 지하철안에서

 

 

 

 

                꽃들이 화사한 봄날에

                중년의 남자가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밀며 들어왔다.

                남자는 2천 원짜리 각질 제거기를 설명하다가

                지하철이 정차하면 내리는 손님을 아쉬워했다.

                그는 어떤 남자 앞에서

                멈칫,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을 풀며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인사를 했다.

                아, 자네 영업부에 근무했던 김 과장 아닌가, 애들은?

                큰놈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붉어진 얼굴로 다른 칸으로 옮기려는 그에게

                어떤 사람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여기저기서 각질 제거기를 달라고 했다  (P.165 )

 

 

 

 

                                                       -신채원 詩集, <분꽃이 피는 시간>-에서

 

 

 

 

 

 

 

 

 

 

 

엄마와 딸이 만들어낸 한 권의 하모니

엄마가 글을 쓰고 딸이 그림을 그려 완성한 책 『분꽃이 피는 시간』.

저자 신채원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다양한 역할 안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매일매일을 특별하게 느끼는 섬세한 감성으로 자칫 지나치기 쉬운 나날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저자는 늘 감사하며 의미를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남편이 군인이었을 때 군부대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쓴 글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군부대’라는 특수한 장소와 평온한 한 가족의 일상이 색다르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많은 사병들과 함께 생활하며 엄마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들을 챙겨주고 그들 또한 감사하며 인연을 맺어온, 저자에게는 삶에서 아주 특별한 곳임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군부대 안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끊임없이 소개하며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소녀 같은 감수성을 관찰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볼거리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그녀의 소박함이 우리의 일상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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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7-08 11:17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마당 한구석에 분꽃이 있었어요. 여름날 저녁만 되면 피기 시작하는 완전 분홍색꽃..

엄마와 딸이 만들어낸 시집이라니, 더 따뜻하고 아련하게 느껴지네요.

appletreeje 2013-07-08 13:54   좋아요 0 | URL
저희집에는 분꽃은 없었지만 어릴때 퇴계로 동물병원 많은 곳에 가서 유리너머로
얼굴을 맞대고 강아지들 구경하다 오는 길에 꼭 들렸던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또
땡볕아래서도 신나게 놀다 저녁이 되면 운동장 한켠에 붉은 맨드라미와 채송화, 분꽃이 있었지요..^^

이 시집에는 딸 최신혜님이 꼬마때 엄마의 시가 적힌 공책옆에 그린 크레파스 그림과 더불어 지금의 아름다운 일러스트 그림들이 정답게 엄마의 시 옆에 함께 있어 더욱 좋아요~ 그러고보니 제가 지난번 서점에서 사온 일러스트 엽서를 그린 분이라 더 반가웠어요. ^^

숲노래 2013-07-08 12:02   좋아요 0 | URL
날마다 작은 삶
알뜰히 여겨
그러모으다 보니
어느새 예쁜 시집이 되었군요

appletreeje 2013-07-08 13:58   좋아요 0 | URL
예~날마다의 예쁘고 소중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모아져
이렇게 고운 시집이 나왔네요. ^^
엄마의 시와 따님의 알콩달콩한 그림이
함께하여 더욱 예쁜 시집이에요~.

보슬비 2013-07-08 19:46   좋아요 0 | URL
오늘의 시는 마음을 참 설레게하네요.

모든 사람들이 나무늘보님께서 올려주신 시를 마음에 품고 다닌다면, 얼굴 찡그릴일 없을것 같아요.

appletreeje 2013-07-08 22:5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오늘의 시들은 참으로 일상을 알뜰하고 귀하게 여긴 시라서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안녕미미앤 2013-07-08 23:18   좋아요 0 | URL
저도 포도송이 브로치.. 갖고 싶어요! 하하하

appletreeje 2013-07-08 23:00   좋아요 0 | URL
히히히...저도요, 아참, 저는 사과 브로치요..ㅎㅎㅎ

안녕미미앤 2013-07-08 23:18   좋아요 0 | URL
사과 브로치도 예쁘겠다요^^ 치자빛 스웨터에 둘다 꼽아입고 싶네요 히히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너희들이 좋구나 너무 좋아 쓰다듬어도 보고, 끌어안아

                      도 보고, 그러다가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나, 너희들 들쳐 업는구나 너희들, 나 들쳐 업는구나

                        우거진 잎사귀들 속, 흐벅진 저고리 속

                        으흐흐 젖가슴 뭉개지는구나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그렇구나 네 따뜻한 입김,

                        부드러운 온기 속으로

                        나, 스며들고 있구나 찬찬히

                        울려 퍼지고 있구나

                        너희들 숨결, 오래오래 은은하구나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껍질들아

                        껍질 두툼한 네 몸속에서 작은 풍뎅이들, 속날개 파닥

                     이고 있구나 어린 집게벌레들, 잠꼬대하고 있구나

                        그것들, 그렇게 제 몸 키우고 있구나

                        내 몸에서도 상수리나무 냄새가 나는구나

                        쌉쌀하구나 아득하구나 까마득히 흘러넘치는구나.  (P.24 )

 

 

 

 

 

                            낮달

 

 

 

 

 

                          낮달은 한 무더기 찔레꽃이다

                          나비 떼 뽀얗게 날아올라

                          초여름 햇살, 꽃잎 꽃잎 떨어져 내린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쉬어보는 숲길

                          찔레 순 꺾어 먹다 보면

                          저무는 어스름 저녁별

                          삼베빛 솜병아리로 짹짹거린다

 

                          해 지기 전 서녘 하늘가

                          밀가루 반죽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낮달

                          어디선가 국수 삶는 냄새가 난다

 

                          걸음걸음 탱자빛 노을이 흔들리고

                          새뽀얀 나비 떼가 흔들리고

                          숲길 깨우는 북소리, 둥둥둥 구수하게 익는다.   (P.27 )

 

 

 

 

 

 

                            빗방울들

 

 

 

 

 

                            먹구름들, 그만 뭐 찔끔 쌌나보다

                            물비린내, 허공 가득 번져온다

 

                            제석산 입구, 허물어진 집터 아래

                            빗방울들, 투덕투덕 걸어간다

 

                            나뒹구는 후박나무 젖은 잎사귀들

                            훅 하니, 빗방울들의 귓밥 물어뜯는다

 

                            두근대는 후박나무의 숨소리들

                            빗방울들의 엉덩이 찬찬히 휘감는다

 

                            후두둑, 솟구쳐 오르는 물비린내들

                            입속의 석류알만큼이나 시고 떫다

 

                            슬픔들, 동그랗게 몸을 말아

                            흐르는 도랑물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제석산 입구, 허물어진 집터 아래

                            빗방울들, 느린 발걸음 퍼뜩 치켜든다   (P. 49 )

 

 

 

 

 

 

                                구름묘지

 

 

 

 

 

                           바람이 제 작은 부리로 물어다 놓은 깃털이다

                           바람의 부푼 자궁이 오밀조밀 낳은 자식들이다

 

                           산비탈 절개지, 붉게 상처난 사타구니 한 구석

                           오조조, 씨앗털들 모여 구름 묘지 만들고 있다

 

                           반짝이는 햇살들, 은쟁반 두드리며 딸랑대는 시간들

                           밤꽃 향기 밀려와 그것들의 가슴 후끈 달아오른다

 

                           바람이 제 작은 부리로 쪼아 쌓은 깃털들이다 

                           바람의 잘 익은 젖을 먹고 자란 솜사탕 어린 아기들이다.  (P.114 )

 

 

 

 

 

 

                                                        -이은봉 詩集, <걸레옷을 입은 구름>-에서

 

 

 

 

 

 

 

 

 

 

 

 

 

 

인간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자연을 노래하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한 공동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해 등단한 이은봉 시인의 등단 3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을 통해 시인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애정을 변함없이 보여주면서도 꽃, 나무, 돌과 같은 생명과 무생물에서 세상의 근원적인 가치를 발견한다. 한편으로 이미 중년을 넘어서버린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하는 내면의 목소리 또한 들려주고 있다.

잃어버린 신의 목소리를 찾아서

시인은 신이 인간에게 전해주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현대와 같이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유린된 세상에서 신의 음성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문명의 방자하고 잔혹한 마수를 보면서 이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오늘 구름은 고름 덩어리, 걸레옷을 입은 구름은 제 뱃속 가득 납과 수은과 카드뮴을 감추고 있다
이제 내 숨결은 달에게로 가지 못한다 달의 숨결도 내게로 오지 못한다

(중략)

기름때에 찌든 걸레옷을 입은 채 나와 달 사이에 철판 세우고 있는 저 구름을 어쩌지
끝내 바람이 구름의 걸레옷을 벗기지 못하면 누구도 잠들지 못한다
하느님조차도 눈 부릅뜬 채 몇 날 몇 밤을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지 못하면 어떤 영혼도 바로 숨을 쉬지 못한다 그렇게 죽는다.
_ 시 「걸레옷을 입은 구름」 부분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을 원한다. 불안한 불면의 밤을 지내며 달과의 교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구름은 고름덩어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걸레옷을 입고 온갖 중금속을 내장에 감추고 있을 뿐이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오염된 구름의 걸레옷을 벗겨주면 좋겠는데 바람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잠들지 못하면 어떤 영혼도 바로 숨을 쉬지 못한다 그렇게 죽는다”라는 시인의 말은 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차갑게 반영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새만금이나 4대강과 같이 개발 논리 아래 수많은 목숨을 잃어간 자연 파괴의 모습을 목도해왔다. 자연의 다른 이름은 생명일 것인데, 우리가 목격하는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지 못할 만큼 파괴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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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6 11:23   좋아요 0 | URL
찔레순이란, 찔레나무에 새로 돋는 가지예요.
여느 '순', 곧 여느 '싹'하고는 사뭇 달라요.
찔레가시 있는 채 꺾어서
그대로 씹어서 먹는답니다.
그래서 찔레순만 먹어도
배가 어느 만큼 부를 수 있어요.

사람들이 가게에서 사다 먹지만 말고,
두릅이든 찔레이든
스스로 들과 숲에서 꺾어서
그날그날 한 끼니만큼만 먹으면
온누리가 참 달라지지 않으랴 싶어요..

appletreeje 2013-07-06 14:22   좋아요 0 | URL
찔레순...아, 그렇군요.
찔레나무에 새로 돋는 가지.
저도 두릅은 올 봄에도 먹어봤는데
찔레순은 못 먹어 보았어요..
왠지 싱그러운 나무 기운이 온몸에 퍼질것 같아요. ^^

2013-07-06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7-07 17:03   좋아요 0 | URL
'천 년을 산 상수리나무'를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나무늘보님 서재에 '상수리나무'에 관한 시를 만나니 더 반가웠어요. ㅎㅎ

appletreeje 2013-07-07 18:30   좋아요 0 | URL
앗, <천년을 산 상수리나무>!!
보슬비님과 함께 상수리나무를 만날 수 있기에 더욱 기뻐요~^^

후애(厚愛) 2013-07-07 20:23   좋아요 0 | URL
시들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appletreeje 2013-07-08 09:57   좋아요 0 | URL
이 시집도 나중에 후애님께 보내드릴께요~^^
후애님! 오늘은 이곳도 조용하게 비님이 오시네요.
그래서 차분하니 좋은 월요일입니다. ^^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7-08 10:55   좋아요 0 | URL
시들이 정말 좋은데요 ㅎㅎ
시인은 신이 인간에게 전해주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시를 읽는 기분이 딱 그런 듯 합니다.
시를 읽을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전에 시를 잘 읽지 않았는데
그 기분 때문에 시를 자주 하게 되네요 ㅎㅎ
물론 나무늘보님 때문에 ㅋㅋ 힝 ~ 책임져요 ㅎ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appletreeje 2013-07-08 14:04   좋아요 0 | URL
힝~책임지고 싶습니당...어떻게~?....글쒜요..^^;;
드림님 지금 이곳은 비가 겁나게 막 쏟아지고 있어요.
덕분에 외출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씨원하니 무지 좋으네요~.
드림님께 박혜경님의 노래, 'Rain'을 마음의 퀵 서비스로 보냅니당..ㅎㅎㅎ
 

 

 

 

 

 

                        기억 저편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뒤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P.12 )

 

 

 

 

 

                          여행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다 아무도 그

                            서사의 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 번 펼친 면의 첫 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이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P.18 )

 

 

 

 

 

 

                         비에게 듣다

 

 

 

 

 

                             귀를 대보아도 추억은 난청일 때가 많다

                             몰아쳤다가 흩어지는 점들의 외곽

                             가로등은 불빛을 뿌리며 척박한 거리를 키웠다

                             몇몇 약속은 필라멘트처럼 새벽이 되곤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온기를 잊지 못한다

                             흐르는 얼룩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유리창은 인상파처럼 집착을 뭉갠다는 사실,

                             두고 온 날들이 비를 흠뻑 맞고 여전히

                             가는 빗소리로 턴테이블을 돈다

                             나는 지하 카페 뒷좌석이거나 눅눅하게 젖어버린 노트,

                             그러다 뒤집힌 우산이 버티는 후미진 방치

                             불행하게도 오늘은 스피커만큼 현현하다

                             바닥 곳곳 둥근 테두리 생겨나고

                             손잡이를 움직이자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완전한 소음이 될 때까지

                             시간은 리시버를 구름에 꽂는다   (P.34 )

 

 

 

 

 

 

 

                          감(感)에 대한 사담들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진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의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서 붉어지는 봉분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부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P.36 )

 

 

 

 

 

 

                               해후

 

 

 

 

 

                              꼭 한번은 누구도 모르게 자신의 일생을 만나고 간

                              사람에게 타인을 입힌다 다시 만난 듯

                              인상이 호감을 조금씩 떼어내며 서로의 구면이 된다

                              폭우처럼 밀려오는 말(言)의 기압골에 표류하는 소리 소리들

                              금을 새기듯 번쩍번쩍 의미가 얼굴을 바꾸는 중이다

                              이때 가장 빠르게 눈동자로 옮긴 둥긂에서 빛이 스러진다

                              기억의 뒷면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다

                              그곳으로 여행 온 사람이 지금 태연하게 웃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안은 그대로 독하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되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눈을 부릅뜨는 것보다 때론

                              그 사람의 눈에서 처음 보는 나를 쓸쓸하게

                              떠나보내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P.42 )

 

 

 

 

 

                                                    -윤성택 詩集, <감(感)에 관한 사담들>-에서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

   어디에도 있는 나를 /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   [로그인]中

 

 

   [로그인]의 시인, 윤성택을 만난 것은 2006년 詩集,

   <리트머스>이다.

   그리고 또 윤성택 시인의 새 詩集을 아침에 읽었다.

   한층 더 미려함과 두터운 물감같은 질감을 입고

   불면의 광속들속에서 경계,의 꽃가지들로

   접속되고 반짝이고 명멸하고 또 재생되는 이 시대의 외로움을

   보다 깊은 심해와 심야의 言語로 로그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택의 우울과 외로움은 바깥에서 수없이 재조직

   되는 거짓자아의 중심을 벗어나 본래적 자아에게로 귀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념의 끈이라 할 수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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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0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7-05 14:52   좋아요 0 | URL
마음을 열어 소리를 듣기에
시 하나 태어나는군요

appletreeje 2013-07-06 06:45   좋아요 0 | URL
^^
지금 이곳 흐린 아침에는
창밖에서 새소리가 짹짹~들리고 있습니다. ^^

2013-07-05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7-05 20:55   좋아요 0 | URL
듀마키 읽으면서 주인공이 시를 읽어주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 장면 읽으면서 나무늘보님 생각이 많이 났답니다.

매일 매일 좋은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appletreeje 2013-07-06 06:53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보슬비님께 더 감사드려요~^^
오늘은 비님이 오시려 보네요, 날씨가..


보슬비님! 주말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7-08 11:01   좋아요 0 | URL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시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유의 은유가 느껴져요..
언제 한 번 윤상택님의 시를 깊이있게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
나무늘보님 덕에 늘 좋은 시를 알게 되네요 *^^*
늘 감사드립니다 ^^

appletreeje 2013-07-08 14:09   좋아요 0 | URL
윤성택님의 시는, 주로 삶의 로그인과 로그아웃에 대한 깊은 은유,지요.
드림님께서는 언제나 굉장히 핵심적으로 시의 중심을 잘 느끼시는 것 같아요. ^^
특히 이번 시집은, 더욱 미학적이고 깊은 응시로 써내려가 참 좋았어요..

드림님! 오늘도 좋은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