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뒤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P.12 )
여행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다 아무도 그
서사의 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 번 펼친 면의 첫 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이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P.18 )
비에게 듣다
귀를 대보아도 추억은 난청일 때가 많다
몰아쳤다가 흩어지는 점들의 외곽
가로등은 불빛을 뿌리며 척박한 거리를 키웠다
몇몇 약속은 필라멘트처럼 새벽이 되곤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온기를 잊지 못한다
흐르는 얼룩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유리창은 인상파처럼 집착을 뭉갠다는 사실,
두고 온 날들이 비를 흠뻑 맞고 여전히
가는 빗소리로 턴테이블을 돈다
나는 지하 카페 뒷좌석이거나 눅눅하게 젖어버린 노트,
그러다 뒤집힌 우산이 버티는 후미진 방치
불행하게도 오늘은 스피커만큼 현현하다
바닥 곳곳 둥근 테두리 생겨나고
손잡이를 움직이자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완전한 소음이 될 때까지
시간은 리시버를 구름에 꽂는다 (P.34 )
감(感)에 대한 사담들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진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의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서 붉어지는 봉분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부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P.36 )
해후
꼭 한번은 누구도 모르게 자신의 일생을 만나고 간
사람에게 타인을 입힌다 다시 만난 듯
인상이 호감을 조금씩 떼어내며 서로의 구면이 된다
폭우처럼 밀려오는 말(言)의 기압골에 표류하는 소리 소리들
금을 새기듯 번쩍번쩍 의미가 얼굴을 바꾸는 중이다
이때 가장 빠르게 눈동자로 옮긴 둥긂에서 빛이 스러진다
기억의 뒷면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다
그곳으로 여행 온 사람이 지금 태연하게 웃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안은 그대로 독하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되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눈을 부릅뜨는 것보다 때론
그 사람의 눈에서 처음 보는 나를 쓸쓸하게
떠나보내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P.42 )
-윤성택 詩集, <감(感)에 관한 사담들>-에서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
어디에도 있는 나를 /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 [로그인]中
[로그인]의 시인, 윤성택을 만난 것은 2006년 詩集,
<리트머스>이다.
그리고 또 윤성택 시인의 새 詩集을 아침에 읽었다.
한층 더 미려함과 두터운 물감같은 질감을 입고
불면의 광속들속에서 경계,의 꽃가지들로
접속되고 반짝이고 명멸하고 또 재생되는 이 시대의 외로움을
보다 깊은 심해와 심야의 言語로 로그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택의 우울과 외로움은 바깥에서 수없이 재조직
되는 거짓자아의 중심을 벗어나 본래적 자아에게로 귀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념의 끈이라 할 수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