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 김대건 사제의 생가터가 있는 솔뫼 성지에 갔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왔더니 며칠 후 그곳을 방문한 지인이 내 이름을 보고 직접 만난 듯 반가웠다며 글을 보내왔다. 누가 적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성지나 기념관을 방문해 방명록이 있으면 나는 비교적 충실하게 간단한 소감과 이름을 남기고 오는 편이다.

 1997년 여름에 문을 연 나의 글방엔 수시로 손님들이 오시어 나는 방명록을 준비해 두었는데, 어느새 11권의 노트가 쌓여 있다. 몇 마디 남기고 가라면 사람들은 무슨 말을 쓸지 부담스럽다고 툴툴대면서도 각자 의미 있고 재밌는 말을 적어 놓곤 한다. 종종 시간이 날 때 들여다보면 어린이, 학생, 교수, 군인, 성직자, 수도자, 배우, 음악인, 사진작가, 미용사, 꽃 연구가 등등 직업도 다양한 이들이 남기고 간 마음의 향기를 읽을 수가 있는데 그중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이름들도 있어 눈시울을 적신다.

 

 내가 대형서점에서 공식적으로 첫 사인회를 할 적엔 어찌나 쑥스럽던지! 내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힘이 들었다. 독자들이 서명해 달라고 책을 사서 부산까지 부치는 수고를 서슴지 않는 걸 보고 나는 송구한 마음에 더욱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 보내곤 하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가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할 수 있도록 고운 메모지, 색연필, 앙증스런 스티커들을 가지고 다닌다. 책이나 메모지에 내 이름을 적는 동안은 비록 긴 시간이 아니라도 사인를 부탁한 사람과 나 사이에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짐을 느낀다. 잠시 그를 위해 기도하며 복을 빌어 주는 시간임을.... . 그래서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리지만 네 개의 꽃잎을 그리며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을 의미하는 꽃이라고 말한다. 또는 사랑, 기쁨, 평화라는 단어를 따로 적어 주며 '서명하는 일에도 기도의 지향과 정성이 있답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헌책방에 책을 사러 갔던 조카애가 [시간의 얼굴]이란 나의 시집을 사 왔는데, 이 책은 공교롭게도 나의 글을 좋아하던 어느 대학교수에게 내가 89년에 서명해서 보낸 것이었다. 책 주인은 수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마도 유족들이 정리하면서 헌책방으로 넘긴 것인지 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16년 만에 다시 돌아온 책 속의 내 글씨가 낯설고도 반가웠다.

 비단 이름난 사람들만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리라. 보 

 

통 사람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도 방명록을 잘 활용하면 한 가정, 한 공동체 단위로 역사에 남는 기록의 문화를 이어 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여행할 적에도 '만남의 기쁨'이라고 적힌 자그만 이동 방명록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작은 모임에서나 특별한 순간에 꺼내 "무어라도 좋으니 한마디 적어 주세요"하며 지인들에게 불쑥 내밀곤 한다. 여럿이 모여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의 어중간한 자투리 시간, 슬슬 남의 흉을 보는 대화가 시작될 무렵 노트를 꺼내 '오늘의 느낌'을 적는 숙제를 주면,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고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이라도 붙이려 한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내가 준비한 색연필과 스티커로 바쁘게 장식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방명록에 자신의 느낌과 이름을 남기는 것이 허영심의 산물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기록이 될 수 있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시간의 향기가 배어 있는 내 방의 방명록을 들춰 본다.  (P.61~64 )

 

 

 

 

                                                          -이해인, <풀꽃 단상>-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도 오고, 다음주에는 추석도 있고 이래저래 다정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운 시간.  책장에서 어떤 책을 찾다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풀꽃 단상>,을 꺼내 펼치

    다가  '이름을 남기는 뜻은' 이란 단상에 눈이 멈춰 읽고는 마음이 참 즐거워졌다. 마음이

    뭉개뭉개...구름처럼, 뽀애졌다.

    나도 어디 가서 방명록,이 있으면 왠지 뭐라고 적어야 할지 막연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이런 건 뭐 좀 유명하거나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나 적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 물론

    장례식장에 가서는 꼭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정성껏 쓰지만...^^;;

    그런데 해인 수녀님의 이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갑자기 마구 방명록을 쓰고 싶은

    그런 충동까지.^^

    '방명록에 자신의 느낌과 이름을 남기는 것이 허영심의 산물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우리가 고운 님들의 서재를 이곳 저곳 나들이를 하면서 댓글을

    남기는 것도 또 하나의 방명록,이 아닐까 하는. 좋은 님들의 서재에 가서 즐겁게 지내다 나오며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기쁘고 감사합니다." 다정하게 '사랑의 인사'를 드리는 일.

    시와 산문이 함께 들어간 일종의 시문집인 이 글모음은 짧게 이어지는 단상들이 많아, 아무때나

    펼쳐봐도 마음이 순해지고 ,처럼 되는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풀꽃 단상'이다.

    내일은 고운 님께 나도 이 책을 감사하고 다정한 마음 담아 풀꽃 송이,처럼 보내리라.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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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12 17:52   좋아요 0 | URL
손글씨로 적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동무들한테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 달라 하면
참 재미있어요.

저는 아직도 이렇게 연락처를 받아서
차곡차곡 모읍니다~

appletreeje 2013-09-13 06:59   좋아요 0 | URL
저만해도 요즘은 전화번호나 이름등은 손전화에 저장해 두곤 하는데
손글씨 수첩에 직접 적어달라고 하신후 차곡차곡 모으신다니 더욱 즐거우시겠어요~ 저도 앞으론 함께살기님처럼 손글씨 수첩 가지고 다니며 직접 적어 달라 해야겠어요~*^^*

2013-09-12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3 0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2 1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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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2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3 0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연

 

 

 

 

                        자벌레도 아닌데

                        마른 나뭇잎을 나눠주었다

                        염소도 아닌데

                        마른 나뭇잎을 나눠주었다

 

                        나뭇잎 두 장을 이어붙인

                        나뭇잎 접시.

 

                        거기 흰 밥을 담아주었다

                        거기 찐콩을 담아주었다

                        거기 야채카레를 담아주었다

 

                        그걸 숟갈 대신 손으로

                        비비고 또 비비는데

 

                        거기 햇살도 듬뿍 얹어주었다

                        거기 맑은 공기도 섞어주었다

                        거기 청량한 새소리도 얹어주었다

 

                        나무 그늘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나뭇잎 접시를 다 비웠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설거지꾼들이 나타났다

 

                        나뭇잎 접시를 얼른 내주었더니

                        버석버석 단숨에 먹어치웠다

                        어린 염소 세 마리가!  (P.16 )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

                            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 부르려 할 때

                            창가에 새 한 마리 날아와 울자

                            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라오.

 

                            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

                            노래 부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도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P.29 )

 

 

 

 

 

                        꽃 먹는 소

 

 

 

 

 

                            인도의 소읍. 어느 성인의 탄신을 기리는 축제라던가?

                            떠들썩 떠들썩한 축제 행렬 막 지나간 길, 꽃으로 가

                         득한 트럭 위에서 사내들이 던진 꽃들 질펀하게 깔려

                         있네

 

                            흠! 흠!

                            붐비는 재스민 금잔화 향기 맡고 나타났을까. 난데없

                          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흑소 몇 마리.

                            더 넓을 수 없는 여물통, 뜨겁게 끓는 아스팔트에 깔

                          린 꽃들 우적우적 씹고 있네

 

                            갈비뼈 아른아른 비쩍 마른 흑소들, 야윈 신들.

                            꽃으로 주림을 채우고 있네 오. 공양(供養)? 맞네! 저

                         석조사원의 죽은 신들 보다 죽은 성인들보다

 

                            살아 있는 신들을 먹여야 하리

                            무엇보다 꽃으로 먹여야 하리

 

                            꽃으로!  (P.30 )

 

 

 

 

                                      -고진하 詩集, <꽃 먹는 소>-에서

 

 

 

 

 

 

 

 

 

 

 

 

한 잎 고통과 한 잎 황홀이 포개지는 방랑의 문장

자연 사물에 깃들인 신성(神聖)을 탐구하는 시세계를 펼쳐온 고진하 시인의 신작 시집 『꽃 먹는 소』(문예중앙시선 028)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인도 시편’이다. 고진하 시인은 지난 10년이란 세월 동안 매년 인도를 여행하며 길어 올린 “한 잎 고통과 또 한 잎 황홀이 포개지던 방랑의 긴 문장”(「시인의 말」)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냈다. 시인이면서 목사이기도 한 그는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신이 부재한 시대의 신성을 발견”하는 시세계를 펼쳐 보이며 “종교적 사유와 생태적 사유의 결합”(유성호 문학평론가)을 추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고진하 시인은 기독교, 불교, 도교 등을 아우르는 해박한 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대상과 사물의 내면과 깊이를 흡입하여 형이상학적 사유를 작품 곳곳에 부려놓는다. 인도에 대한 단편적인 관심이나 체험기가 아닌, ‘인도적인 것’을 넘어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사유를 ‘인도’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땡볕”과 “소나기”(「집시의 뜰」) 같은 시간 속, 일상의 견고한 질서에 금이 가버리는 어떤 한순간의 체험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어떤 심연을 발견하여, 이를 자각하고 성찰해나간다. 그는 그 방랑의 10년간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아열대의 태양 아래/삶과 죽음이 뜨겁게 끓어오르던/어느 날의 새벽 강/흐느끼는 강의 눈물샘에/저를 빠뜨린 채 울부짖던 신들린 어린 소리꾼이/왜 그토록 오래 잊히지 않는지//모르겠네!”
―「시인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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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9-10 17:42   좋아요 0 | URL
나뭇잎접시에 저도 야채카레 먹고 싶어요.^^

appletreeje 2013-09-10 22:16   좋아요 0 | URL
저도요~ 나뭇잎 접시에 야채카레도
찐콩도 먹고 싶습니다~

비로그인 2013-09-10 20:59   좋아요 0 | URL
인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먹고 난 그릇 설거지 안해도 된다니 그것 참 신통방통 부럽네요.ㅋ

appletreeje 2013-09-10 22:21   좋아요 0 | URL
아우...컨디션님과 저는 혹시, 이란성 쌍둥이? ㅋ

숲노래 2013-09-10 23:03   좋아요 0 | URL
새가 노래할 적에 새와 함께 노래하고
풀벌레가 노래할 때에 풀벌레와 함께 노래합니다.

그런데,
새도 풀벌레도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 노래를 멈추지 못해요...
새와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못 들으니까요...

appletreeje 2013-09-12 12:47   좋아요 0 | URL
정말 맞는 말씀이세요~
새와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못 듣는 사람들은
아무때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노래만 부를듯 해요...

후애(厚愛) 2013-09-11 21:30   좋아요 0 | URL
<자연> 시가 참 마음에 듭니다.^^
저도 찐콩 좋아하는데...ㅎㅎ

appletreeje 2013-09-12 12:53   좋아요 0 | URL
저도 <자연> 시가 괜히 막 좋았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뭇잎 접시나 흰밥, 찐콩, 야채카레, 그리고 염소들까지요~
자연이 주는 그것을 순하고 즐겁게 받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고 나뭇잎,색깔같은 그런 詩같아서요~*^^*
 

 

 

 

 

 

 

 글쓰는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어머니는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글솜씨만큼은 기가 막히다. 화려한 비유나 미문은 없지만 가끔 사람의 마음을 '탁' 내려치는 문장을 쓰신다. 어머니의 편지나 일기를 보고 울컥했던 적이 많다. 힘든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문장들이다. 나도 그렇게 무심하고 서툴게 사람 마음을 후려치고 싶다. 나는 멀었다.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걸 또 하나 발견했다. 어머니는 요즘 취미 삼아 노래 교실에 다니는데, 무척 즐거우신 모양이다. 전화를 드리면 이번 주에는 어떤 노래를 배웠는지 알려주신다.

 

 지난 명절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노래를 넣어드리다가 어떤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여쭈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류계영(몰라요), 박진석(박진영과 양현석을 합한 이름인가요), 강진(지역이 아니라 가수 이름인 거죠?). 그 후에도 모르는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현철이나 송대관이나 태진아는 안 좋아해요?" "난 별로야.' 어머니가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이런 트로트 인디 정신을 보았나. 나의 인디 음악 사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로군. 물론 류계영이나 박진석, 강진 같은 트로트 가수들은 어머니 친구들 사이에선 아이돌과 맞먹는 인기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인디 뮤지션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의 '페이보릿 가수 리스트'에 딱 한 명 내가 아는 이름이 있었다. 김연자.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바로 그 김연자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연자의 노래 제목은 <10분 내로>. 제목만 듣고 이것은 마치 이효리의 <10 Minutes)에 대한 트로트계의 대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가사를 보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10분 안에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게 효리의 능동적 세계라면, 김연자의 세계는 수동적이다. "내가 전화할 때 / 늦어도 10분 내로 내게로 달려와요 / 꾸물대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 옆길로 새지도 말고 / 여자는 꽃이랍니다

 

 / 혼자 두지 말아요 / 당신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 꽃이 될래요 10분 내로."

 어머니는 노래 교실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노래를 직접 들려주셨다. 듣고 있는데 어머니의 글과 비슷했다. 10분 내로 꽃이 되겠다는(응? 이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되는 가사지만, 그 서툰 표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여자고, 어머니가 꽃이란 거다. 혼자 두지 말라는 거다. 노래 교실에 모여 앉아 <10분 내로>를 합창했을 수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울컥한다. 밤에 가끔 아이폰으로 녹음해 저장해둔 어머니의 <10분 내로>를 듣는다. 눈물이 핑 돈다. (P.23~25 )

 

 

 

 

노래 교실 선생님에게 최근에 출간된 내 소설책 한 권을 선물했다. 어머니가 선물하고 싶어하셨다. 재미없어하실지도 모르지만 뭐,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선생님에게 책을 선물한 뒤로 어머니에게 별명이 생겼다. "소설가! 나와서 노래 한 번 불러봐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들이 소설가라서 어머니가 소설가가 되셨다. '소설가의 어머니'의 줄임말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좋아하셨다. 아들이 소설가라서 당신도 소설가라고 불리는 게 기분 좋으신 모양이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소설가가 되어서 어머니를 소설가로 만든 것 같아서 좋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를 소설가라고 불렀던 노래 선생님 대신에 새 선생님이 왔는데, 어머니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전에 계셨던 여자 선생님은 '조곤조곤'노래 잘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가끔(냄새나는 화장실 변기에다 콜라를 부으면 좋다는 등의)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곤 했는데, 새로 온 남자 선생님은 썰렁한 농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며 '자고로 노래는 무조건 힘차게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래를 가르친다고 한다. '눈치 보지 말고 힘차게 노래를 부르라'며 어찌나 호통을 쳐대는 지 열심히 소리를 지르긴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몸살이 났다고 했다. (어머니를 닮은) 나 역시 선생님을 몹시 가리는 편이라서, 한 번 선생님이 눈 밖에 나면 배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스타일이므로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선생님을, 상대방을 위한다는 구실로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들어 보지 않는 선생님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매주 노래를 배우면서 재미있게 노셨는데 앞으로 그 재미가 반감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P.25~26 )

 

 

 

 

                                                                  -김중혁 산문, <모든 게 노래>-에서

 

 

 

 

 

    김중혁 작가의 산문 <모든 게 노래>중,  '어머니를 닮았네'를 읽다가 문득

    우리 엄마는 어떤 노래를 좋아했었나, 생각하다 문득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무슨 노래를 좋아했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내가 생전의 엄마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성당에 가서 성가를 부르신 그 기억밖에

    안 나서이다.

    뭐, 이런 자식이 있는가 말이다. 엄마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어느 행사에 가서도 그저 수줍게 웃을 뿐, 그 웃음마저도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며 웃었던

    적이 없는 분이다. 아...그러고 보니 아주 어렸을 때, 부처님 오신날인가 불자이신

    고모할머니를 따라 도봉산 어느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해가 저무는 때인가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란 노래를 부르신적이 있었나 아닌가.. 확실치 않은 그 기억만이

    지금도 꿈을 꾼듯 아렴풋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엄마를 닮아서인지 어디 가서 노래나

    춤등은 젬병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노래부르는 것을 듣는 건 좋아해서 노래방 같은 곳

    도 모임이 있을 때 가끔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즐겁게 듣는다.

    아이들이 꼬마였을 때, 한번은 우리 식구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노래방에서 녹음된 테이프를 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사랑으로'를 부른 내 노래를

    들려 주니 "아이고, 너도 노래를 잘 하는구나!" 웃으시던 기억도 난다.

    생각해보니 참 내가 무심한 딸이었다는 만시지탄이 나온다.

    엄마를 억지로라도 노래방이라도 모시고 가서 처음에는 웃으며 손사레를 치며 거부를 하시더

    라도 거듭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노래라도 한자락 부르셨을 것을...그러면 지금 내가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아...이 노래, 우리 엄마가 불렀던 노래였지. 기쁘게 웃음 지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엄마가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그 모든 사랑의 말과 몸짓이 다 '노래'였음

    을 잘 알고 있기에 아주 많이는 서운하지 않다. 다만 내가 좀더 살갑고 다정한 딸이 못되었음

    이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리고 퍼뜩... 지금,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 물었더니

    "모르겠는데!" ...ㅠㅠ  지금이라도 자주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나중에라도 그 노래를 들을때면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라는 추억을 안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의 일요일 오후,

    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 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왔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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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8 17:21   좋아요 0 | URL
어머니는 소설가, 아들은 가수로군요.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마주하면
늘 아름다운 빛이 감돌면서
즐거운 이야기가 샘솟는구나 싶어요.

이 힘이 밑바탕 되어 한 사람은 소설가 되고
한 사람은 가수로 늘그막을 누리겠지요.

appletreeje 2013-09-10 01:58   좋아요 0 | URL
예~정말 서로서로 사랑으로 마주하며
사랑의 마음 나누며 살면 참 사는 일이 모두 즐겁겠지요~

2013-09-08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0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9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0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9-10 17:47   좋아요 0 | URL
가족중에 유일하게 노래방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저예요. ㅎㅎ 친정이고 시댁이고 모두 노래부르기 좋아하는데, 전 노래를 잘 못 부르겠더라고요.^^

나무늘보님 글을 읽으니 예전 오스트리아 놀러갈때 거리의 성악가 노래를 부르는것을 엄마도 따라 부르면서 너무 즐거워하시며 수줍게 동전을 담아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인기가요 들으시는 엄마는 저보다 아이돌을 더 많이 아세요. ㅎㅎ

appletreeje 2013-09-11 10:31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께서는 즐겁고 멋지게 사시는 어머니가 옆에 계셔서
저까지 참 좋고 행복합니다~~
저는 아이돌도 몇몇뿐이 잘 몰라요...^^;;
 

 

 

 

 

 

 

 

 

 

 나는 사십 세에 처음으로 문단이란 데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 나이에 등단을 한다는 게 희귀한 예에 속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나이에 소설을 쓸 엄두를 냈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어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심심해서 글을 썼노라고 대답했다. 그게 그냥 기사화되자 뜻하지 않은 야단을 맞게 되었다. 문학이라는,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엄숙한 작업을 어떻게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느냐는 준엄한 전화 설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직 신인인 나는 말 한마디의 잘못으로 세상에 밉보이는 게 두려워 덮어놓고 사과부터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잘못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전쟁 중에 결혼해서 두 살 터울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난 여편네가 언제 심심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을 위해 24시간 봉사해야 하는 생활로부터 어느 정도 놓여나 비로소 자기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생긴 걸 그렇게 말한 거였다. 그때까지 나는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심심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유년의 시간이 칠십 평생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의 넉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심해서 베개를 업고 자장가를 불렀고, 게딱지로 솥을 걸고, 모래로 밥을 짓고, 솔잎으로 국수를 말았다. 할아버지가 송도 나들이를 가신 날의 해질 무렵처럼 심심한 시간이 또 있을까. 그때 나는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재촉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사랑 툇마루 가운데 기둥을 한 팔로 감고 동구 밖 산모롱이에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밤이면 승냥이가 떼를 지어 나온다는 긴등고개를 넘을 때면 무서움과 할아버지의 무사를 비는 마음으로 가슴이 오그라져 붙는 것 같다. 할아버지를 따라 동구 밖까지 다 왔는데도 산모롱이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소리개

 

고개 쯤으로 할아버지를 후퇴시킨다. 이렇듯 내 어린 날의 심심한 시간은 내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초중고등학교 때도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은 넘치게 많았다. 심심한 시간이 넉넉해서 소설이나 시집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읽을거리까지 넉넉한 건 아니어서 정 심심할 때는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요즘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더러 들리는데, 심심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학교 성적과 무관한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건 괜히 한번 해보는 걱정일 뿐 어른의 진심도 아니다.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은 커녕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돌아가는 팽이와 다름없다. 자의로 도는 팽이는 없다. 자식이 행여 한눈이라도 팔세라 온종일 미친 듯이 채찍질 해대면서 책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P.214~217 )

 

 

 

                                                                   -박완서, <노란집>-에서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솔솔 부는 이 가을, '엄마의 휘모리장단'이라  제목을

    붙인 따님 호원숙님의 서문처럼, 박완서 선생님께서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들을 모은 책, <노란집>을 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친 미사어구도, 유난한 기교도 없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박완서 선생님

    다운 "내가 겪고 깊이 느낀 것 밖에는 잘 쓰지 못한다. 내가 죽도록 현역작가이고 싶은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신 말씀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 책을 읽으며 참으로 즐거웠다.

    박완서 선생님의 육신은 비록 이곳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히...우리가 어떻게 잘 살아야 할 것 인가,를 마치 곁에 앉아 조근조근 말씀해주시는 듯

    하다. 그리고 더불어 이철원 화백의, 글과 꼭 어울리는 아름다운 삽화도 참 좋다.

    유난히 지독한  여름을 견디고 지낸...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추석선물로 주고 싶은

    차분하게 마음을 놓게 하는 그런 책이다. 초가을의 어느 좋은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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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7 14:25   좋아요 0 | URL
느긋하게 지낼 적에는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은
보드라운 맛을 즐겨요.
곧, '심심한' 맛이 되겠지요.

일본영화 <녹차의 맛>처럼 '심심하'면서
차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바란
박완서 님 늘그막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appletreeje 2013-09-08 06:45   좋아요 1 | URL
예~그러셨으리라 생각되요.
<녹차의 맛> 참 좋은 영화지요. ^^

비로그인 2013-09-07 15:50   좋아요 0 | URL
<노란집>에서 박완서 님은 '심심함'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트리제님은 노란 종잇장(옐로우 페이퍼?ㅋㅋ)에 그 말씀을 아주 삼삼하게 적어놓으셨고...

심심하면 좋겠습니다,정말로요. 어디 무인도에서 굶어죽게 되더라도..
아니 아니 다시 말 바꿀게요. 그런 데 혼자 떨궈놓으면 무서워서 단 1초도 심심하지 않겠단 생각이..ㅎㅎ

appletreeje 2013-09-08 06:51   좋아요 1 | URL
옐로우 페이퍼...ㅋㅋ
정말 요즘 세상은 좀처럼 '심심하기'가 어려운 듯 해요.
심심할 수 있다는 것은 느긋할 수 있다는 의미일텐데...
저도 무인도에 혼자 가는 것은 무서워요~~ㅎㅎ

안녕미미앤 2013-09-07 22:51   좋아요 0 | URL
에이요! ^^ 잘 있었어요? 헤헤~~ 박완서님의 이 이야기는 다 아는 글이었는데 또 읽으니 또 좋네요 헤헤 나 약속했던 거 얼마나 기다렸어요? 많이 기다려줬음 좋겠다 생각도 했었는데 나 넘 이기적이라고 싫어할거에요? 실은 기다려줬음해서 늦은 건 아니구(나 그렇게까진 안 나빠요^^;) 좀 바빴어요 아프기도 했고.. 그런데 그날 날씨가 뭐 날릴만한 날씨가 아니었던것 알아요? 헤헤 그냥 패키지만 했어요^^ 그래도 뿌듯했답니다^^ 어느 탈북하신 분 간증도 듣고.. 완전 기적적이더라구요, 정말.. 놀라움^^ 음음~~ 다음에 또 소식 전할께요^^ 뿅~^^*

appletreeje 2013-09-08 06:57   좋아요 0 | URL
왕~~안녕미미앤님! 잘 지내셨지요~?^^
그럼요, 8월 24일 거사. 많이 기다렸지요~날씨도 그랬던 것도 알구요.^^
패키지만 하셨어도 참 잘 하셨어요!! 어떤 마음인지 다 잘 아니까요.
이궁..아프셨구나...바쁜 건 좋은 일이지만, 아프지는 마시길 바래요...
언제나 착하고 예쁜 안녕미미앤님!
늘 즐겁고 행복한 날들 되시길 바라며, 빨리 또 만나요~*^^*

안녕미미앤 2013-09-12 00:32   좋아요 0 | URL
왕~~ 감사해요!ㅠㅠ
 

 

 

 

 

   오늘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서울시에서 '헌책방 지도'를 만들었다고 서울 도서관 누리집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가 나와 있다는 글을 읽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헌책방 '책 백화점'엘

   다녀왔다. 상계역 1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눈앞의 약국 지하라 찾기가 너무 쉬웠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빽빽하게 책이 쌓인 좁은 통로를 지나 비닐막이 쳐진 입구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어서 오세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 한 사람이 겨우 지날만큼의 통로 사이에서

   주인장의 얼굴은 여전히 안보이다, 또 서가를 하나 돌아가니 50대 후반의 주인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니 "어떤 책 찾으세요?" 하신다.

  " 예~구경좀 해보고요~" 여쭙고 또 좁은 서가를 돌아가 보았다.

 

 

 

 

    

 

 

 

    가장 먼저 관심있게 눈에 띄인 미술서가에서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와 화집들을 열심히 펼쳐보

   고, 그 다음으론 바로 앞 서가에 있는 그림책들을 반갑게 이 책 저 책 펼쳐보다 몇 권을 고르고

   시집들이 꽂힌 서가도 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그래도 요 몇년 전의 눈에 띠는 소설이나 산문집

   도 보였다.

 

 

 

 

 

 

 

   헌책방은 어렸을 때, 을지로 평화시장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들을 다니고는 그후론 아주 드물게

   가보곤 정말 실로 오랫만이라...느낌도 새롭고 헌책들이 솔솔 풍기는 헌책냄새도 기분좋게 맡으

   며 책들을 고르는데 오늘은 첫날이라 그런지 너무 많은 책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골라야할지

   도 막연했고, 아주 좁은 통로에 의자 하나 없어 한 시간 쯤 고르려니 다리도 좀 아파오고, 그리고

   책정가를 알 수 없었는지라. 오늘은 그냥 그림책만 다섯 권 고르고, <느림보 2011>이라는 느림보

   에서 나온 4호 크기의 180쪽 짜리 책도록을 한 권 사 가지고 나왔다.

 

 

 

 

 

 

 

 

 

 

 

 

 

 

   참, 도날드 달의 '맛'이 입구에 있길래 값을 물어보니 6000원이라 해서 왠지 좀 센듯하여 그냥

   두고.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이 이 헌책방은 19년이 되었는데 교통이 편하고 찾기 좋은 곳은

   책방 임대료가 높아 점점 헌책방들이 줄어가고 있다 하시며, 자주 놀러오라 하셨다.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젠 '헌책방'의 '아름다운 진정한 의미'를 하나 둘 알아가고, 즐거운 나들이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덕분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에 대한 글을 올려주셔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다녀왔다.  

 

   역시 '헌책방'에 가서 오래된 책들을 펼쳐보고 고르는 일은

   '새책방'에서 새로 나온 빠릿한 책들을 고르는 맛과는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헌책방'도 '새책방'도 '알라딘 중고서점'도 다 좋다.

   그곳이 어디든 책이 있는 곳이라면~ㅎㅎ

 

 

 

   오늘 우선 맛보기로 사온 그림책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오래된 안경 속에 숨어 있는 핏줄간의 따뜻함과 손때가 묻은 물건이 풍기는 정겨운 향기를 맡게끔 하는 그림동화이다. 어떤 강요나 직접적인 설교보다는 조그만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쓰여졌고,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사실적인 삽화들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개구쟁이 해리-바다 괴물이 되었어요》는 해리가 가족과 놀러 간 바닷가에서 한바탕 벌이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려 내고 있다. 해리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가족의 파라솔과 아이들이 만든 모래성에 들어가지만 금방 쫓겨난다. 그래서 뚱보 아줌마의 널찍한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지만, 결국엔 그마저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더위에 지친 해리는 몰아친 파도에 휩쓸려 온 바닷말을 뒤집어쓰고 바다 괴물로 변신하게 된다!
바닷말을 뒤집어쓴 해리가 귀여운 강아지가 아닌 바다 괴물로 오해를 받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물이나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싫어하는 해리를 위해, 그리고 또다시 길을 잃을 경우 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리를 닮은 파라솔을 준비한 해리의 가족. 다음 해에 바닷가로 놀러간 온가족이 해리와 함께 커다란 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함께 기뻐할 것이다. 가족 간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시인 백석이 시와 동화를 하나의 틀 속에 조화시켜 낸 동화시.'귀머거리 너구리', '개구리네 한솥밥', '집게네 네 형제'등 4편이 실렸다. 평등하고 올바른 세상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시인이 쓴 글답게 우리말의 리듬과 운율이 아름답다.

한국 어린이 문학의 대표 작가들의 동화를 모아 놓은 '빛나는 어린이 문학' 시리즈로, 지난 2000년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100년 전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그 때도 학원이나 학교가 있었을까? 요즘처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오락기는 없었을텐데, 지겹지 않았을까? 그 때 아이들은 간식으로 무엇을 먹었을까?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아니 어린이날이 있긴 했었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길어진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과자, 빵, 케이크 같은 새로운 음식이 유행하게 되고, 양말, 석유 램프, 양잿물 같은 새로운 생활품도 등장하게 되었다. 전화와 전기, 전차도 이때 들어왔다. 이런 눈부신 변화 속에서 조선은 암흑의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변화와 쇠퇴하는 국운이라는 서로 상반된 요소가 급격히 뒤섞이던 100년 전, 변화와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은 밝게 자라났다. 사극 속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어린이의 생활이나, 교육, 놀이 문화에 대해 다룬 책. 10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책표지에는 4-4 오수민, 이라고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다~)

 

 

 

 

 

 

 

 

쌍둥이 남매는 도시 생활을 하며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쌍둥이 남매를 따라 농장을 지나 늪으로 가면서, 마치 생태 현장학습을 하듯 자연스럽게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쌍둥이가 메뚜기를 잡으려다 흠칫 놀라는 장면이나, 조랑말이 물까 봐 먹이를 주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 등에서는, 실생활 속에서 자연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낯설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비가 왜 오는지, 비가 오면 동물은 어떻게 피하는지, 무지개는 어떻게 생기는지 등 어린이들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호기심을 그림과 이야기, 정보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서 풀어 주는 그림책이다.

 

 

 

 

 총 5권을 15,500원에 샀다.

 손글씨 영수증도 받았고, 다음에는 상봉역의 '좋은책 많은데'를 다녀와야겠다.~

 새로운 이번 가을은 내게 아마 서울의' 헌책방 나들이'로

 더욱 한층 풍성하고 즐거운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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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7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9-05 20:09   좋아요 0 | URL
품절되거나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찾는 즐거움에다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잊고 지나간 책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또 여러 가지 아름다운 웃음을 베풀어 주는 헌책방 나들이
틈틈이 즐겨 보셔요.

저는 서울 시내 헌책방을 머릿속에 다 담아 놓았기에
어디를 가든 꼭 들르는데,
약속이 있어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그곳 둘레에도 헌책방 있나?' 하고 살피면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돌아보면,
동무한테 선물할 재미난 책도 만나곤 한답니다~

appletreeje 2013-09-07 08:15   좋아요 0 | URL
예~그래야겠습니다~
벌써부터 함께살기님께서 일러주신
헌책방 나들이에 무척 설레고 즐겁습니다~
감사드려요. ^^

블루데이지 2013-09-06 09:23   좋아요 0 | URL
아~너무 멋스러운 나들이를 하셨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14   좋아요 0 | URL
즐거운 나들이였어요~
책들의 또 다른 세계!
블루데이지님께서도 기회되시면
인근의 헌책방 함 나들이 해보셔요~*^^*

보슬비 2013-09-06 17:04   좋아요 0 | URL
가까운곳에 헌책방이 있었네요. 서울에서 헌책방하면 청계천 헌책방만 떠올랐는데, 헌책방이 근처에 있다는것이 무척 신기해요.

'개구쟁이 해리'는 나무늘보님이 올려주신거 말고 다른 책으로 제가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할때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어요. 귀여운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시리즈였었나보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막연하게 언제 헌책방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헌책방이 있어서 신기하고 좋았답니다~
이제 첫나들이를 했으니까 차례차례..즐거운 나들이 하려구요~^^

저도 '개구장이 해리'는 한참 전에 '목욕은 정말 싫어요'를 즐겁게 읽었는데
이번에 또 이 '바다괴물이 되었어요'를 보고 반가워서 얼른 집어왔어요.
언제 기회되면 '해리: 꽃무늬 옷은 싫어요'도 꼭 읽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