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 김대건 사제의 생가터가 있는 솔뫼 성지에 갔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왔더니 며칠 후 그곳을 방문한 지인이 내 이름을 보고 직접 만난 듯 반가웠다며 글을 보내왔다. 누가 적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성지나 기념관을 방문해 방명록이 있으면 나는 비교적 충실하게 간단한 소감과 이름을 남기고 오는 편이다.

 1997년 여름에 문을 연 나의 글방엔 수시로 손님들이 오시어 나는 방명록을 준비해 두었는데, 어느새 11권의 노트가 쌓여 있다. 몇 마디 남기고 가라면 사람들은 무슨 말을 쓸지 부담스럽다고 툴툴대면서도 각자 의미 있고 재밌는 말을 적어 놓곤 한다. 종종 시간이 날 때 들여다보면 어린이, 학생, 교수, 군인, 성직자, 수도자, 배우, 음악인, 사진작가, 미용사, 꽃 연구가 등등 직업도 다양한 이들이 남기고 간 마음의 향기를 읽을 수가 있는데 그중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이름들도 있어 눈시울을 적신다.

 

 내가 대형서점에서 공식적으로 첫 사인회를 할 적엔 어찌나 쑥스럽던지! 내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힘이 들었다. 독자들이 서명해 달라고 책을 사서 부산까지 부치는 수고를 서슴지 않는 걸 보고 나는 송구한 마음에 더욱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 보내곤 하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가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할 수 있도록 고운 메모지, 색연필, 앙증스런 스티커들을 가지고 다닌다. 책이나 메모지에 내 이름을 적는 동안은 비록 긴 시간이 아니라도 사인를 부탁한 사람과 나 사이에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짐을 느낀다. 잠시 그를 위해 기도하며 복을 빌어 주는 시간임을.... . 그래서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리지만 네 개의 꽃잎을 그리며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을 의미하는 꽃이라고 말한다. 또는 사랑, 기쁨, 평화라는 단어를 따로 적어 주며 '서명하는 일에도 기도의 지향과 정성이 있답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헌책방에 책을 사러 갔던 조카애가 [시간의 얼굴]이란 나의 시집을 사 왔는데, 이 책은 공교롭게도 나의 글을 좋아하던 어느 대학교수에게 내가 89년에 서명해서 보낸 것이었다. 책 주인은 수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마도 유족들이 정리하면서 헌책방으로 넘긴 것인지 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16년 만에 다시 돌아온 책 속의 내 글씨가 낯설고도 반가웠다.

 비단 이름난 사람들만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리라. 보 

 

통 사람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도 방명록을 잘 활용하면 한 가정, 한 공동체 단위로 역사에 남는 기록의 문화를 이어 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여행할 적에도 '만남의 기쁨'이라고 적힌 자그만 이동 방명록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작은 모임에서나 특별한 순간에 꺼내 "무어라도 좋으니 한마디 적어 주세요"하며 지인들에게 불쑥 내밀곤 한다. 여럿이 모여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의 어중간한 자투리 시간, 슬슬 남의 흉을 보는 대화가 시작될 무렵 노트를 꺼내 '오늘의 느낌'을 적는 숙제를 주면,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고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이라도 붙이려 한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내가 준비한 색연필과 스티커로 바쁘게 장식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방명록에 자신의 느낌과 이름을 남기는 것이 허영심의 산물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기록이 될 수 있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시간의 향기가 배어 있는 내 방의 방명록을 들춰 본다.  (P.61~64 )

 

 

 

 

                                                          -이해인, <풀꽃 단상>-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도 오고, 다음주에는 추석도 있고 이래저래 다정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운 시간.  책장에서 어떤 책을 찾다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풀꽃 단상>,을 꺼내 펼치

    다가  '이름을 남기는 뜻은' 이란 단상에 눈이 멈춰 읽고는 마음이 참 즐거워졌다. 마음이

    뭉개뭉개...구름처럼, 뽀애졌다.

    나도 어디 가서 방명록,이 있으면 왠지 뭐라고 적어야 할지 막연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이런 건 뭐 좀 유명하거나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나 적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 물론

    장례식장에 가서는 꼭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정성껏 쓰지만...^^;;

    그런데 해인 수녀님의 이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갑자기 마구 방명록을 쓰고 싶은

    그런 충동까지.^^

    '방명록에 자신의 느낌과 이름을 남기는 것이 허영심의 산물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우리가 고운 님들의 서재를 이곳 저곳 나들이를 하면서 댓글을

    남기는 것도 또 하나의 방명록,이 아닐까 하는. 좋은 님들의 서재에 가서 즐겁게 지내다 나오며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기쁘고 감사합니다." 다정하게 '사랑의 인사'를 드리는 일.

    시와 산문이 함께 들어간 일종의 시문집인 이 글모음은 짧게 이어지는 단상들이 많아, 아무때나

    펼쳐봐도 마음이 순해지고 ,처럼 되는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풀꽃 단상'이다.

    내일은 고운 님께 나도 이 책을 감사하고 다정한 마음 담아 풀꽃 송이,처럼 보내리라.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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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12 17:52   좋아요 0 | URL
손글씨로 적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동무들한테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 달라 하면
참 재미있어요.

저는 아직도 이렇게 연락처를 받아서
차곡차곡 모읍니다~

appletreeje 2013-09-13 06:59   좋아요 0 | URL
저만해도 요즘은 전화번호나 이름등은 손전화에 저장해 두곤 하는데
손글씨 수첩에 직접 적어달라고 하신후 차곡차곡 모으신다니 더욱 즐거우시겠어요~ 저도 앞으론 함께살기님처럼 손글씨 수첩 가지고 다니며 직접 적어 달라 해야겠어요~*^^*

2013-09-12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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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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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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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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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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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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