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어머니는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글솜씨만큼은 기가 막히다. 화려한 비유나 미문은 없지만 가끔 사람의 마음을 '탁' 내려치는 문장을 쓰신다. 어머니의 편지나 일기를 보고 울컥했던 적이 많다. 힘든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문장들이다. 나도 그렇게 무심하고 서툴게 사람 마음을 후려치고 싶다. 나는 멀었다.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걸 또 하나 발견했다. 어머니는 요즘 취미 삼아 노래 교실에 다니는데, 무척 즐거우신 모양이다. 전화를 드리면 이번 주에는 어떤 노래를 배웠는지 알려주신다.

 

 지난 명절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노래를 넣어드리다가 어떤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여쭈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류계영(몰라요), 박진석(박진영과 양현석을 합한 이름인가요), 강진(지역이 아니라 가수 이름인 거죠?). 그 후에도 모르는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현철이나 송대관이나 태진아는 안 좋아해요?" "난 별로야.' 어머니가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이런 트로트 인디 정신을 보았나. 나의 인디 음악 사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로군. 물론 류계영이나 박진석, 강진 같은 트로트 가수들은 어머니 친구들 사이에선 아이돌과 맞먹는 인기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인디 뮤지션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의 '페이보릿 가수 리스트'에 딱 한 명 내가 아는 이름이 있었다. 김연자.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바로 그 김연자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연자의 노래 제목은 <10분 내로>. 제목만 듣고 이것은 마치 이효리의 <10 Minutes)에 대한 트로트계의 대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가사를 보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10분 안에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게 효리의 능동적 세계라면, 김연자의 세계는 수동적이다. "내가 전화할 때 / 늦어도 10분 내로 내게로 달려와요 / 꾸물대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 옆길로 새지도 말고 / 여자는 꽃이랍니다

 

 / 혼자 두지 말아요 / 당신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 꽃이 될래요 10분 내로."

 어머니는 노래 교실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노래를 직접 들려주셨다. 듣고 있는데 어머니의 글과 비슷했다. 10분 내로 꽃이 되겠다는(응? 이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되는 가사지만, 그 서툰 표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여자고, 어머니가 꽃이란 거다. 혼자 두지 말라는 거다. 노래 교실에 모여 앉아 <10분 내로>를 합창했을 수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울컥한다. 밤에 가끔 아이폰으로 녹음해 저장해둔 어머니의 <10분 내로>를 듣는다. 눈물이 핑 돈다. (P.23~25 )

 

 

 

 

노래 교실 선생님에게 최근에 출간된 내 소설책 한 권을 선물했다. 어머니가 선물하고 싶어하셨다. 재미없어하실지도 모르지만 뭐,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선생님에게 책을 선물한 뒤로 어머니에게 별명이 생겼다. "소설가! 나와서 노래 한 번 불러봐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들이 소설가라서 어머니가 소설가가 되셨다. '소설가의 어머니'의 줄임말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좋아하셨다. 아들이 소설가라서 당신도 소설가라고 불리는 게 기분 좋으신 모양이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소설가가 되어서 어머니를 소설가로 만든 것 같아서 좋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를 소설가라고 불렀던 노래 선생님 대신에 새 선생님이 왔는데, 어머니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전에 계셨던 여자 선생님은 '조곤조곤'노래 잘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가끔(냄새나는 화장실 변기에다 콜라를 부으면 좋다는 등의)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곤 했는데, 새로 온 남자 선생님은 썰렁한 농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며 '자고로 노래는 무조건 힘차게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래를 가르친다고 한다. '눈치 보지 말고 힘차게 노래를 부르라'며 어찌나 호통을 쳐대는 지 열심히 소리를 지르긴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몸살이 났다고 했다. (어머니를 닮은) 나 역시 선생님을 몹시 가리는 편이라서, 한 번 선생님이 눈 밖에 나면 배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스타일이므로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선생님을, 상대방을 위한다는 구실로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들어 보지 않는 선생님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매주 노래를 배우면서 재미있게 노셨는데 앞으로 그 재미가 반감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P.25~26 )

 

 

 

 

                                                                  -김중혁 산문, <모든 게 노래>-에서

 

 

 

 

 

    김중혁 작가의 산문 <모든 게 노래>중,  '어머니를 닮았네'를 읽다가 문득

    우리 엄마는 어떤 노래를 좋아했었나, 생각하다 문득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무슨 노래를 좋아했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내가 생전의 엄마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성당에 가서 성가를 부르신 그 기억밖에

    안 나서이다.

    뭐, 이런 자식이 있는가 말이다. 엄마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어느 행사에 가서도 그저 수줍게 웃을 뿐, 그 웃음마저도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며 웃었던

    적이 없는 분이다. 아...그러고 보니 아주 어렸을 때, 부처님 오신날인가 불자이신

    고모할머니를 따라 도봉산 어느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해가 저무는 때인가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란 노래를 부르신적이 있었나 아닌가.. 확실치 않은 그 기억만이

    지금도 꿈을 꾼듯 아렴풋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엄마를 닮아서인지 어디 가서 노래나

    춤등은 젬병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노래부르는 것을 듣는 건 좋아해서 노래방 같은 곳

    도 모임이 있을 때 가끔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즐겁게 듣는다.

    아이들이 꼬마였을 때, 한번은 우리 식구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노래방에서 녹음된 테이프를 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사랑으로'를 부른 내 노래를

    들려 주니 "아이고, 너도 노래를 잘 하는구나!" 웃으시던 기억도 난다.

    생각해보니 참 내가 무심한 딸이었다는 만시지탄이 나온다.

    엄마를 억지로라도 노래방이라도 모시고 가서 처음에는 웃으며 손사레를 치며 거부를 하시더

    라도 거듭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노래라도 한자락 부르셨을 것을...그러면 지금 내가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아...이 노래, 우리 엄마가 불렀던 노래였지. 기쁘게 웃음 지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엄마가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그 모든 사랑의 말과 몸짓이 다 '노래'였음

    을 잘 알고 있기에 아주 많이는 서운하지 않다. 다만 내가 좀더 살갑고 다정한 딸이 못되었음

    이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리고 퍼뜩... 지금,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 물었더니

    "모르겠는데!" ...ㅠㅠ  지금이라도 자주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나중에라도 그 노래를 들을때면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라는 추억을 안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의 일요일 오후,

    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 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왔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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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8 17:21   좋아요 0 | URL
어머니는 소설가, 아들은 가수로군요.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마주하면
늘 아름다운 빛이 감돌면서
즐거운 이야기가 샘솟는구나 싶어요.

이 힘이 밑바탕 되어 한 사람은 소설가 되고
한 사람은 가수로 늘그막을 누리겠지요.

appletreeje 2013-09-10 01:58   좋아요 0 | URL
예~정말 서로서로 사랑으로 마주하며
사랑의 마음 나누며 살면 참 사는 일이 모두 즐겁겠지요~

2013-09-08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0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9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0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9-10 17:47   좋아요 0 | URL
가족중에 유일하게 노래방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저예요. ㅎㅎ 친정이고 시댁이고 모두 노래부르기 좋아하는데, 전 노래를 잘 못 부르겠더라고요.^^

나무늘보님 글을 읽으니 예전 오스트리아 놀러갈때 거리의 성악가 노래를 부르는것을 엄마도 따라 부르면서 너무 즐거워하시며 수줍게 동전을 담아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인기가요 들으시는 엄마는 저보다 아이돌을 더 많이 아세요. ㅎㅎ

appletreeje 2013-09-11 10:31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께서는 즐겁고 멋지게 사시는 어머니가 옆에 계셔서
저까지 참 좋고 행복합니다~~
저는 아이돌도 몇몇뿐이 잘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