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가을 그리고 풍경, 석탄리>

Watercolor on paper, 36×23.5cm, 2012

 

가을 풍경을 난생 처음 그려 보았다. 요즘에는 정말이지 처음 해보는 일들이 참 많다. ‘난생 처음이라는 말, 생각해 보니 참 우습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늘 난생 처음인 하루를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한 아마도 나는 매일 그런 하루를 살게 될 것 같다.


전시회 참여 작품을 마무리하고(부족한 게 너무 많아 처음부터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이래서 쌍둥이 그림들이 자꾸만 태어나는가 보다), 모처럼 밖에 나가 가을을 맘껏 호흡했다. 이렇게 가을이 지나가다니... 모든 가을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가을과 같은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가을 풍경을 그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눈에 비치는 풍경과 그림으로 담아내는 풍경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그건 아마도 지구와 목성만큼의 거리 차일 것이다. 아니면 지옥과 천당 사이쯤 될까. 사람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칭송하기를 아끼지 않지만, 햇살에 비친 은행잎과 단풍의 색채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기술, 실력, 재능아마도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다. 살짝 엇나갔다가는 금세 알록달록한 이발소 그림이 되기 십상이다. , 대충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꼭 정말로 근사한 가을 풍경을 그리고야 말겠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결심만 가슴 깊이 새겨 넣을 따름이다.


, 최근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했다.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아직까지 2G, 011 번호다. 나에게 사진 파일 같은 것을 가끔씩 전송해 주는 언니와 동생들은 제발 스마트폰으로 좀 바꾸라고 투덜거리곤 하지만


문자 보낼 때 언니한테만 따로 보내야 한단 말이야!!”


아이쿠, 미안! 그렇지만 나는 별로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휴대폰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아예 파워가 꺼져 버린 것이다. 3일쯤 그대로 두고 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동네에 있는 대리점에 갔는데 점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군요. 이참에 스마트 폰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011 번호와 중간 번호가 바뀌긴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1년 동안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리거든요.”


공짜라는 단어가 때로는 매력적으로 들릴 때도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아냐, 난 끝까지 고수할 거야!’ 이상한 반발심, 오기 같은 것.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011을 지워 버리기로 한 거야!!

결국 더 큰 대리점에 가서 단말기만 바꿔 가지고 돌아왔다. 요즘에는 011을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도 구하기가 참 어렵다고 한다. 덕분에 스마트폰보다 비싼 값을 지불했다


2018년에는 아예 011 번호가 사라진다고 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단말기 또한 올해 말부터는 거의 생산이 중단될 것 같다는 불길한 소식이다. 다시 대리점에 가서 배터리만이라도 더 사 와야 하는 건지.


도와줘, 수호천사!

011, 물어,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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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늘 하루도 벚꽃> 

Oil on canvas, 45.5×38.0cm, 2012

 

그룹전에 참가하기 위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에 있을 전시회에 풍경화 두 점을 걸어야 하는데 아무리 작업해도 뭔가 늘 부족하다.


여기 올린 정물화는 벚꽃과 다기 세트가 있는 유화 작품이다. 유리 병에 꽂은 엷은 핑크색 꽃을 중심으로 오렌지색과 초록색의 대비에 중점을 두었다. 물감을 얇게 펴 바르며 겹겹이 쌓아 올린 다음 레드 계열의 진한 바이올렛 색채로 마무리했다.


오늘 오후에 잠깐 외출했는데, 어느새 낙엽이 우수수 날리는 풍경이다. 올해의 가을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다. 이대로 가을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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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장암동에 가을이 오면>

Watercolor on paper, 34×25cm, 2012

 

지난 주말에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다. 숲 언저리에 터를 내린 오래된 마을이었는데 함께 간 분들이 일 년 사이에 확 바꿔버린 마을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저 완성하려고 가져왔는데, 내가 그리던 집이랑 돌담이랑 죄다 없어져 버렸네.”


일행 중 한 분이 휑한 집터 앞에서 작년에 그리다 만 그림을 꺼내 보이며 몹시 허탈한 표정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누군가 이 마을 땅을 몽땅 사 버리는 바람에 여기 사는 주민들에게 법원으로부터 철거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었지만 성냥갑처럼 부서진 가옥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현실 감각이 둔한 나는, 이것도 그냥 하나의 풍경이겠거니 했는데 전셋돈도 못 받고 강제로 이삿짐이 실려나간 마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나중에 이웃 주민에게서 전해 들었다.


언제 집달리가 들이닥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분들의 심정도 모른 채 나는 그저 한가롭게 앉아 화구통을 펼치고 마을 모습이나 그리고 있었으니이거야 원, 가을 햇살이 참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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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행마을 방앗간> watercolor on paper, 2012-14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수영장인지 연못인지 모를 물속에 한 타래의 머리카락이 떠 있고, 그것은 검은 그림자처럼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겨우 도망쳐 나와 풀밭을 지난 다음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나는 기를 쓰며 그것을 건너간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기는 하지만 결코 물에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는 버스 정거장에서 달팽이 도사님을 만났다. 몸집은 작고 왜소했지만 수염만큼은 무척 풍성한 도사님이었다. 우연히 서로 말문을 트게 되었는데정말이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던 날이었다. 이 근처에 괜찮은 찜질방이 있느냐면서 도사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여기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찜질방 한 군데를 소개해 주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깨끗할 거예요.”


고맙구려. 이 나이가 되면 뜨끈뜨끈한 데 가서 한참 지지고 싶거든. 그런데 시설도 어지간하겠지?”


그럭저럭요. 숯방, 황토방, 가마솥방, 게르마늄방 그런 것들도 있고 참, 사우나에는 초록색 물로 된 허브탕도 있어요. 어른이 들어가면 애들이 좀 싫어하긴 하지만.”


허브탕이라! 초록색? 이거 이거, 오늘이라도 당장 가봐야겠는걸.”


나는 벌써부터 달팽이 도사님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말투나 눈빛, 은연중에 떠오르는 표정 같은 것들이 결코 범상치 않았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 약간 4차원적이면서도 현실과 비현실을 관통하는 어떤 기미였다.


무슨 말 끝에 달팽이 도사님이 꿈 해몽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짝 호기심이 당겼다.나는 그 즉시 요즘에도 종종 꾸는 그 물귀신 같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한 달팽이 도사님이 갑자기 푸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안 좋은 꿈인가요?”


이거 참, 물과 머리카락과 징검다리라니! 당장 이사를 가는 게 좋겠어.”


난데없이 집을 옮기라니. 낯선 사람 앞에서 내가 괜한 소리를 꺼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거의 10년 가까이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꿈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꿈이 상징하는 암시나 숨겨진 의미를 풀기 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이사라뇨? 그건 좀 곤란한데당장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니라서요.”


이사는 안 된다! 그럼, 하는 수 없지!”


하는 수 없다니, , 뭐가요?”


땅을 파는 수밖에 없어.”


땅이요? 무슨 땅?”


아무 땅이나 괜찮아. 이왕이면 아주 깊이 파는 게 좋을 거야. 그쪽 키 정도면 충분하겠어.”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갑자기 땅을 파라니


“10년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서? 그냥 내 말만 믿고 삽 들고 가서 무조건 아무 땅이나 파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을 몽땅 쓸어 넣고는 다시 흙으로 덮으란 말이요.”


도사님은 열심히 땅 파는 시늉을 하더니 그 위에 흙을 덮고는 발로 꾹꾹 다지기까지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뭔가 의미심장한 충고 같은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거라니!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들? 안 입는 옷? 혹시, 안 읽고 쌓아 놓기만 한 책들은 아닐까? 솔직히 나한테는 안 읽은 책들이 많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껴안고 있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그런 책들어떻게 아신 거지? 아무래도 진짜 도사 같은걸!


그때 달팽이 도사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기 내 버스 온다! 먼저 가야겠소. 그럼, 여기서 이만.”


달팽이 도사님은 손까지 살짝 들어 보이고는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나도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목청을 높여 물었다.


잠깐만요! 쓸데없는 것들이라니 그게 뭔데요?”


달팽이 도사님은 한 발은 앞으로, 다른 한 발은 뒤로 한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머플러를 뗀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은색 철제 가방을 실은 총알 탄 오토바이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요란하고도 극성스러운 오토바이였다.


달팽이 도사님이 뭔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 건 바로 그때였다. 내 인생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한마디였는지 아니면 그냥 장난기어린 황당무계한 발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귀청을 울리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길쭉한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달팽이 도사님이 타고 갈 버스는 공항을 지나 시내 쪽으로 나가는 직행버스였다버스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요즘 버스 기사님들은 정말로 칼 같은 운전 솜씨를 발휘하는 것 같다. 1mm의 오차도 없었다.


달팽이 도사님은 다시 한번 손을 살짝 들어 보이더니 진짜 달팽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는 아주 천천히 버스에 올라탔다. 거대한 버스 안으로 작은 달팽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림 <안행마을 방앗간> oil on canvas, 2014


그날 밤, 나는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 그런 일을 겪고 어찌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길쭉한다음에 과연 어떤 말이 와서 달라붙었던 것일까.


단어 맞추기 퍼즐게임이라도 하듯 온갖 단어에 길쭉한이라는 형용사를 대응해 보았다. 길쭉한 소파, 길쭉한 스피커. 길쭉한 빵. 길쭉한 버터, 길쭉한 젓가락, 길쭉한 다리, 길쭉한 가래떡. 길쭉한 촛대


이 세상에는 의외로 길쭉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나는 결국 멀미를 느낄 지경이 되어 두 손을 번쩍 들어 항복하고야 말았다.


이런 호랑말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도대체 땅에 뭘 파묻으라는 거야! 길쭉한 거 뭐? ?”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다 말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벽을 향해 돌아누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 나를 파묻으라고?


새겨들을 말이 따로 있지.

하면서도 왠지 가슴이 서늘했다


나로 말하면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대한민국 여성 평균 사이즈의 아담한 체구다. ‘길쭉한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일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도 파악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길쭉한길쭉한 그 무엇

속이 미식미식하니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길쭉한 뭔가가 암흑 속에서 까만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세찬 파도가 한 번, 두 번, 세 번 연거푸 밀려오더니 거짓말처럼 빠져나갔다. 뙤약볕이 시리게 반짝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양의 연병장 같은 백사장 주위로 삐죽빼죽한 바위 덩어리들만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불면증이 그해 가을 내내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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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과수원>

pen and watercolor on paper, 25.1×18.3cm, 2012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농촌은 가깝고도 먼 이국의 영토다. 어쩌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 풍광이 좋아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고 한다면 어쩐지 무례한 발언이 될 것도 같다. 지난 주말에는 김포에 있는 덕포리에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는데, 그림을 그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국의 농촌 모습이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덕포리 과수원>이다. 지난주에 찍어온 사진들을 살펴보다, 이런 구도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펜을 들고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딘가 이국적으로 보이는 덕포리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시골 동네의 일상, 외갓집이자 나의 생가였던 충청남도 전의 심방리 뱀골 풍경이 옛 기억 속에 아른거렸다.


우리 외갓집은 천안에서도 한참 들어간 시골 촌구석이었다. 뒷마당 외양간에는 소와 돼지들이 있었는데, 가끔 집채만 한 돼지가 울타리를 뚫고 뛰어나오곤 했다. 그러면 큰 대문으로 나갔다가 뒷마당 작은 대문으로 다시 들어와 마당을 가로질러 달리고, 또다시 큰 대문으로 빠져나갔다가 작은 대문으로 되돌아오는 통에, 조용하던 집안은 금세 일대 격랑에 휩싸였다. 어른들은 작대기를 들고 마당 곳곳에 진을 치며 돼지를 뒤쫓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는 자연의 찬가게나 다름없는 집 근처 텃밭으로 나가 직접 찬거리를 뜯어오고, 새로 시집 온 외숙모는 장작불을 지펴 무쇠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외가 친척들도 많았는데, 서로 앙숙이 된 사람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난데없이 똥지게며 똥바가지들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펼쳐졌다.


도시 생활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검은 색조를 구경할 수 있었던 곳도 바로 그 시골 마을에서다. 외갓집 곳곳에 놓여 있던 거무추레한 고가구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신던 검은색 고무신, 할머니가 모처럼 내려온 손녀딸을 위해 군것질거리로 만들어주던 조청, 잿물을 받아 집에서 직접 만든 까만색 빨랫비누. 그 모두가 내게는 생소하기만 한 까만색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검은색은 깊은 밤 들판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어둠의 장벽이었다. 당시 외갓집에는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기차 통학을 다니던 막내 이모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외조부를 따라 이모를 마중하러 나갔는데,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내 손가락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이러다 텅 빈 들녘에 홀로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연거푸 불러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딨어? 어딨어, 할아버지!”

왜 그러니? 가만히 좀 있거라. 이제 곧 네 이모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곧이어 할아버지가 이모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정숙아! 정숙아! 거기 있니?”


근엄하기만 했던 외조부가 내게 보여주었던 아버지로서의 또 다른 면모였다. 어둠만이 가득한 들판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이 떠올랐다가 메아리처럼 번져갔고, 저기 어딘가에서 화답하듯 할아버지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외갓집에 대한 나의 추억들은 주로 겨울과 한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의 일이다. 그때 그 농촌의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자연과 흙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채 반쪽짜리 콘크리트 인생만 살았을지도 모른다. 글이든 그림이든 평생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업해야 할 사람에게 그것은 결코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수박 서리를 한 적도 있다. 원두막에는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혼자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축축한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엉금엉금 기어야만 했다.


거기에 같이 있던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 낄낄 웃으며 이제 콩서리를 하러 가자고 한 걸 보면 그날 밤 범행이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던 모양이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야! 어떤 놈들이야!”


벼락같이 내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친척 아저씨가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꼼짝 못 하고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그날 밤의 최대 재앙은 우리가 하필이면 죄다 설익은 수박들만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이 잘 익었는지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쿡쿡 찔러본 것이 화근이었다.


친척 아저씨는 우리가 따놓은 수박이며 여기저기 쑤셔놓은 것들까지 한데 모아놓고는 다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니들이 다 먹어! 힘들게 농사지은 걸 그냥 버릴 수는 없잖아! 여기, 내가 보는 앞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먹어 치우란 말이야!”


친척 아저씨는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충청도 특유의 느릿한 사투리로 우리를 압박했다. 아이들은 주눅든 얼굴로 하나씩 수박을 집어 들었다. 돌에 대고 툭툭 깨트린 수박 한 덩이를 손에 들자 끈적이는 과즙이 손목과 팔꿈치를 타고 흘렀다.


먹어도 먹어도 수박은 끝이 없었다. 한 입 한 입 삼킬 때마다 뱃속이 빵빵하게 불러오고,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옆에는 아직도 씨앗까지 허연 물컹한 수박들이 쌓여 있었다살짝만 눈을 돌려도 수박 더미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다 정말 배가 풍선처럼 터지는 건 아닐까


그때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그 여름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먹는다는 행위의 고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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