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벚꽃>
oil on canvas, 55×46cm, 2012

 

온종일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춥고 힘들었을까. 어느새 겨울이다. 지난여름 양평으로 야외 스케치를 나갔던 일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두 계절이 흘러갔다. 그리고 12.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한 해가 너무 짧은 것 같고, 어쩌면 우리 인생은 그보다 더 짧은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착잡해진다.

 

뉴욕을 다녀온 뒤, 죽어 있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자극이 워낙 강해서 한동안 혼미한 상태로 미로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림 몇 장을 망치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물화에 매달렸다. 문 밖에 내놓았던 탁자를 끌어다 놓고, 전에 한 번 다뤘던 벚꽃 화병을 올려놓았다. 특별한 배경이나 장식 없이 화병 하나에만 집중했다.

 

오늘 올린 벚꽃은 완성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미완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완성이 무엇인지 묻게 되어, 그 지점에서 작업을 멈췄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상황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소설도 초고를 쓴 뒤 석 달쯤 서랍에 넣어두라고 조언한다. 그림도 다르지 않다. 너무 오래 방치하면 곰팡이가 슬겠지만, 열기를 식히는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객관적인 시선이 생긴다.

 

뉴욕에서는 블로그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을 때, 그 안의 작은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처음으로 내 글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무척 기뻤다. 예전 작가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홀로 작업하며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이들에 비하면 지금은 송구할 만큼 여건이 좋아졌다. 물론 작업에 따른 고충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하겠지만, 이렇게 컴퓨터 안에 가상의 갤러리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오늘 하루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일은 무엇을 그릴지, 캔버스 사이즈를 더 키워야 할지 그런 궁리를 한다. 과거의 화가들은 여러 면에서 현실의 제도에 묶여 있었다. 후원자의 눈치를 봐야 했고, 주문자의 취향과 요구를 세세히 파악해야 했다.


반면 오늘의 작가들은 훨씬 넓은 자유를 누린다. 어떤 이들은 그 자유 자체를 주제로 삼기도 한다. 그런 작업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자유란 무엇일까. 새로운 도전을 부추기고, 심장을 뛰게 만들며, 무언가를 밀어붙이게 하는 힘. 그러나 때로는 그 자유가 두렵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예전의 화가들은 선택의 폭이 좁았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지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었다. 교회 벽화를 그릴 때는 성경을 따르면 되었고, 초상화를 의뢰받으면 인물의 이목구비와 옷감의 질감, 장신구의 반짝임에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작가들에게는 끝없는 자유와 함께, 어디로든 떨어질 수 있는 추락의 자유까지 주어진다.


스스로 후원자이자 고객이 되어 자신에게 주문을 내리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계몽주의가 남긴 자유라는 선물은 지나치게 달콤해서 때로는 치명적이다. 기준점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길을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방이 안개처럼 흐릿하다. 이 공백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저 어딘가에서 내 얼굴만 노려보는 그 존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방법은 하나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한 주먹씩. 그러다 보면, 어느 쪽이든 먼저 쓰러질지 모른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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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장 배지> (2012)


어느새 뉴욕을 떠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 오후 7시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 자정을 넘긴 시각에 비행기에 오르게 되니, 계산해 보면 오늘 밤과 내일 하루를 더 머무는 셈이다. 내일 낮 12시까지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1517일 동안의 뉴욕 체류는 길었다고도, 짧았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는 일기를 쓰고, 이것저것을 담아 두기 위한 작은 크로키북을 들고 다닌다. 이번에도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한 권을 거의 채워가고 있다.


인천공항을 떠난 순간부터 이 작은 노트는 나의 유일한 말벗이자 친구였고, 때로는 동반자였다. 이런 여행일기조차 끄적거리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그 긴 시간을 거리에서 혼자 보낼 수 있었겠는가. 생각할수록 대견한 크로키북이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적거나 그리거나 오려 붙인 것들은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사진이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겉모습의 구도와 윤곽만 비슷할 뿐, 색채나 분위기는 전혀 다를 때가 많고 중요한 디테일도 사라지기 쉽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사진을 찍는 횟수는 늘어났지만, 그만큼 희소가치도 줄어들었다. 예전에 필름으로 찍을 때는 사진을 현상해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잘 나온 사진을 골라 벽에 걸어 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파일이나 폴더 속에 담아 두고 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여행일기란 들고 다니기도 버거운 구식 카메라로 흑백 필름을 찍어, 기억을 현상하고 인화해 오래 간직하는 일과 비슷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다. 친구나 아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실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였고, 정말로 줄기차게 미술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짐가방을 꾸리다 보니 그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갈 때마다 받았던 입장 배지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옷깃에 달고 다니는 얇은 금속 배지들이다. 세어 보니 모두 아홉 개였다. 그러니까 아홉 번이나 메트에 다녀왔다는 뜻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동선이 길어져 메트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나름 뿌듯한 하루하루였다.


메트에는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현대의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 에드워드 호퍼, 보나르, 마티스, 모네, 르누아르, 마네, 척 클로즈, 클레, 피카소, 베르메르, 드가, 고흐, 로트렉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어 더욱 기뻤다.


그림을 보다가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잠깐씩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손으로 그려보는 경험은 전혀 다르다. 내가 언제 또 뉴욕에 와서 이렇게 혼자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을 따라 그려 보겠는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림 앞에서 펜을 쓱쓱 움직였다.

  

펜 드로잉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 자화상 모사>

크로키북 중, 2012

 

어제는 스태튼아일랜드에 다녀왔다.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작은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마주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은 조금 뜻밖이었다. 고야는 아마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아닐까 싶다. 아래 스케치는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였는데,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장면이라 나중에 자료가 필요할지도 몰라 어설프게나마 비슷하게 그려 보았다. 

 

드로잉 <여행 일기 중 고야의 판화와 스태튼 출신 화가 콜맨 루킨의 판화 모사>

크로키북 중에서, 2012


중앙에 있는 악마처럼 생긴 폭군의 하반신 묘사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아 조금 난감했다. 이렇게 작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면 작업 과정에서 생긴 실수나 고민, 갈등과 다시 시도한 흔적 등을 그대로 집어낼 수 있다. 물론 그림의 외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경비원은 백인 중년 여성이었는데,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때때로 친절한 말벗이 되어 주었다. 스태튼 출신 화가 콜먼 루킨의 판화와 모노톤 추상이 강조된 유화 작품들도 무척 신선했다.


스태튼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많이 정착해서일까. 도로와 건물에서 어딘가 시칠리아 섬 같은 인상이 풍겼다. 여러 면에서 아직 소박한 구석이 많이 남은 섬이었다. 오가는 선상에서 자유의 여신상도 덤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박물관만 둘러본 것은 아니다. 시청 건물 안의 프레스코화도 감상하고, 히스토릭 리치먼드 타운에서는 오래된 저택들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도 춥고 허리케인 센디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그곳에서도 여행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뜻깊은 시간이었다. 마치 1980년대 초반의 미국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진짜 미국의 모습을 그 섬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오전에는 메트에 가기 전에 77번가의 아쿠아벨라 화랑에 잠깐 들렀다. 거기서 웨인 티보의 작품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 넣으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간단한 스케치로 그림을 따라 그려 보기도 했다.


드로잉 <웨인 띠보 ‘Boston Cremes’ 모사>

크로키북 중, 2012

 

캘리포니아 화가 띠보의 파이 그림은 인간의 식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반복해서 진열된 음식의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하나의 기호로 환원시킨다. 그는 현재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팝 아트 계열의 그림들, 여자 구두나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먹거리, 도시 풍경 등을 주로 그려 왔는데, 아흔이 넘어 추상 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의 1960~70년대 작품이 더 끌린다.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띠보의 여든 번째 생일을 휘트니 미술관에서 직접 축하해 드렸다고 한다. 노구의 화가는 여전히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분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오늘은 또 다른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전시를 보러 온 어느 강사가 띠보의 요즘 근황을 들려주었다. 젊고 활동적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고, 다섯 살쯤 된 쌍둥이 아이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띠보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수영복 차림이나 가운 차림의 여자가 혹시 지금의 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뉴욕 사람들은 띠보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작품 전시회 역시 연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술관 같은 데서는 더 이상 현대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를 열기 어렵다고 한다. 소장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데다, 이동은 물론 보험 문제 등도 까다롭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렇게 화랑에서만 전시를 열 수 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실컷 그림을 구경하고 이렇게 작품 모사도 할 수 있었다. 

 

크로키북 중에서 <웨인 띠보 ‘Hot Dog Stand’, ‘Pastel Scatter’ 모사>

숙소의 작업대 모습 일부, 2012

 

짐을 정리하다 보니 크로키북 속에 그동안 그려 놓은 모사 스케치들이 제법 쌓여 있었다.
오늘은 계속 펜 스케치만 하다가 색을 한번 얹어 보고 싶어 수채 물감을 꺼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펜으로만 그렸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위에 물감을 얹으니 밑그림이 뭉개져 버렸다. 갤러리에서 다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이라 더욱 아쉬웠다.

막상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뉴욕에 머무는 동안 센트럴파크에 나가 하루쯤 사생 스케치를 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밤이 깊었다. 잠깐 나가 숙소 근처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오탈자나 문장 정리는 시간이 날 때 다시 살펴볼 생각이다. 그런 것까지 꼼꼼히 챙기다 보면 오늘 밤 안에 이 글을 끝내지 못할 것 같다서울에 돌아가 이 기록을 올리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이곳에서 글을 마무리한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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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모네, 유채, Garden at Sainte-Adresse, 유채, 1867>      

 

오늘도 모네의 정원에는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미술관은 애송이 화가에게 ‘오픈 북’ 같은 장소다. 선대의 화가는 무덤 속에서도 말을 하고 눈짓을 보내며 우리를 경청하게 만든다. 그것은 언어가 없는 언어, 전언 이전의 전언, 그리고 깨달음이다.

 

늙은 경비원은 오래된 석고상처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관람객들은 전시실 통로를 따라 공기처럼 부유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서로의 간격을 좁히며 지나간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저기 전시실에서 이곳 전시실로. 그리고


바라본다. 나 여기 앉아서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팔걸이의자의 남자는 파라솔을 든 여자와 신사복의 남자를 바라보고, 허공에 걸린 두 개의 깃발은 파리 인상파의 빛과 색채를 바라보고, 출렁대는 바다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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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2012-11-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지내다 오길~

김미진 2012-11-2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어제 오전 모습> (2012)

 

아침에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많아도 너무 많다. 바로 쓰레기들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쏟아낸 흔적들. 어제도 이렇게 버렸는데, 오늘은 더 큰 쓰레기 봉지가 거리 곳곳에 쌓여 있다. 최대한 많이 벌고 많이 쓰자! 이런 모토로 살는 현대인들이라 해도, 이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미국인들이 마구 소비하고 내다 버린 쓰레기들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이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팽창을 멈추지 않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미국을 통째로 깔고 앉아 숨통을 조이는 듯하다.

 

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오늘 오전 모습> (2012)

 

아침마다 거리의 그늘진 모습을 연출하는 쓰레기 더미들은 뉴욕 도시의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쓰레기의 부정적 면만 부각하는 것도 낯선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쓰레기는 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 모습, 삶의 흔적들이 모여 결국 시대의 화석대를 이루고 역사의 타임캡슐이 되기도 한다. ‘History comes to life’, 이 도시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상이 역사가 되는 순간들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어제는 소호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소규모 갤러리에서 샤갈 그림을 직접 판매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유화로 그린 작품의 크기는 50호쯤 되어 보였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마치 화랑의 주인공처럼 정면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작년 겨울 서울 시립미술관 샤갈 전에서 전시된 그림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 작품이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거리 풍경, 마을 사람들, 세로로 긴 화면 구성. 그때 그 그림의 주인공은 십자가를 멘 예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호의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샤갈 그림은 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던 그림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작품성과 예술적 성취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저거 진짜 샤갈이죠?"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백인 여자에게 물었다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이렇게 작은 화랑에서 샤갈의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그럼요. 샤갈 맞아요.”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진짜로 파는 거예요? 샤갈 그림을?”


맞아요. 정말로 파는 거예요.”


여자의 대답에 내 눈은 더욱 동그래졌다.


혹시 가격은 얼마나 돼요?”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에요.”


밀리언이란 단어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거래되는 액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갤러리 밖으로 나온 뒤에야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포인트는 뭐지?’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라는 말에서 중간의 포인트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백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파이브 포인트 파이브를 줄여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 그 샤갈 그림이 5.5밀리언 달러에 거래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5? 50? 500? 숫자 감각에 둔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 당시 환율로 치면 대략 60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소호에 있는 다른 화랑에 들어갔더니 남자 큐레이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전시 작품에 관해 이리저리 설명해 주었다. 필요하면 작품 가격이 적힌 리스트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나를 미술품 컬렉터로 여긴 모양이었다.


젊어서는 이런 데 오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고가의 그림 한 점쯤은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있는 연배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만큼 내가 늙어 보인다는 뜻일까. 어쩌면 경제력이 높아진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예전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바뀐 탓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곳 화랑을 찾아와 직접 작품을 구매해 가는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도 들렸다.


사진 <뉴욕의 어느 화랑에서, 작품 목록 안의 로스코와 수틴을 만나다> (2012)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술관 순례에 나섰다메디슨 에비뉴 76번가를 지날 무렵쇼윈도에 근사한 미로 그림을 걸어 놓은 갤러리를 발견하고는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뉴욕에서는 길거리 화랑에 들어가려면 대부분 밖에 달린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그러면 안에서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는 찌잉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딸깍 열린다이내 문이 다시 잠겨 버리는 시스템이라 타이밍을 잘 맞추어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문을 안으로 밀어야 한다.


화랑 안에 들어가면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말한다괜히 쭈뼛거릴 필요는 없다물론 예의 차원에서 옷은 조금 깨끗하게 입는 편이 좋을 것이다하지만 여행 중에 옷차림에까지 큰 신경을 쓸 여유는 없다청바지에 패딩 점퍼운동화어깨에 둘러멘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그런 차림의 나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뉴욕 화랑가의 경기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어쨌거나 어제도 소호에서 몇 번 비슷한 대접을 받은 터라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내 표정 또한 한결 느긋해졌다.

 

76번가 그 고급스러운 화랑에서는 Pablo Picasso 그림을 다섯 점이나 소장하고 있었다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레제 Fernand Léger, 마그리트 René Magritte, 후안 미로 Joan Miró, 웨인 띠버드 Wayne Thiebaud 등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작가들의 작품이 벽에 주르륵 걸려 있었다.


이층에도 작품이 있다고 해서 올라갔더니, 2층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전시 작품들의 가격 정보가 들어 있는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나는 한쪽 소파에 앉아 그것을 들여다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미술책에 나오는 유명 작가들의 리얼한 진면목(?)을 그대로 지나칠 수야 없었다그런데 베껴 써야 할 내용이 꽤 많았다이걸 무슨 수로 한 번에 옮겨 적나 난감해하던 차에마침 데스크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아마도 나는 전생에 스파이거나 첩보 공작원이었을지 모른다보통 때는 버걱거리던 머리가 그 순간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으니까.


지체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조금 손이 떨렸다약간의 흥분결코 나쁘지 않았다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나를 밀어붙였다그다지 두꺼운 카탈로그는 아니었지만그 안에 들어 있는 작품 정보를 한꺼번에 카피하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다.


카탈로그는 활짝 펼칠 수 없게 제본된 것이었다나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는 이쪽 페이지를 누르고오른쪽 발끝으로는 다른 쪽 페이지를 눌러 고정한 다음 한 장씩 넘겨가며 디카로 펑펑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다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동안 1층에서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찻잔 부딪치는 소리복사기가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것도 들린 듯했다여직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가까워졌다아무래도 곧 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어쩌면 이미 층계참까지 올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아직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 남아 있었다여기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한순간 스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중요한 것들은 늘 가장 평범한 얼굴로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은가단 하나의 키워드 같은 것생의 어떤 암시 같은 것이대로 지나치면 끝내 섭섭해질 것이 분명한 바로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다만 직감이었고나는 그걸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었다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목격자이자 수행자였고동시에 사악한 염탐꾼이기도 했다그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이었지만어쩐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임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욱 속도를 올리며 셔터를 눌러댔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카메라까지 통째로 빼앗기지는 않겠지오로지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것 하나뿐이었다찰칵한 장 넘기고 찰칵또 한 장 넘기고또 넘기고또 넘기고


마침내 임무 완성!


사진 <파블로 피카소 작품 목록이 들어 있는 또 다른 페이지> (2012)

 

피카소 작품에는 확실히 ‘0’이 많이 붙어 있었다. , 이게 몇 개야? 하나, , , 그런데 내가 뭐 한 거지! 겨우 이런 걸 찍으려고 그랬단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뉴욕 화랑의 심장부에 들어가 이런 희귀한 사진을 찍어 올 수 있었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뉴욕 거리의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다.

아침마다 길모퉁이에 쌓이는 쓰레기 더미는 이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해내는 이미지의 잉여, 즉 과잉의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뉴욕 거리의 쓰레기 더미와 현대 미술 작품 사이에는 어쩌면 어떤 은밀한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메디슨 에비뉴의 갤러리를 나온 뒤, 나는 곧장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했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곳에서는 마침 웨이트 가이튼 Wade Guyton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티스트는 보통 무언가를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웨이드 가이튼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작가처럼 보였다.


웨이드 가이튼은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테네시에서 성장했고, 뉴욕 헌터 대학에서 로버트 모리스 밑에서 수학했다. 지금 그의 나이는 마흔. 그를 과연 청년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미술사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여든셋까지 작업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역시 노년에 이르기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이라면 가이튼 역시 앞으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더 작업실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마흔의 나이에 휘트니 미술관에 입성한 작가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부러움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 그는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고독한 내면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작품과의 끝없는 씨름. 끝을 알 수 없는 긴 노동의 흔적들. 긴 수명은 때때로 축복이 아니라 또 다른 숙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그의 작품은 대개 ‘X’라는 단순한 부호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과거의 화가들은 손과 붓으로 세상을 묘사했다그러나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화가들은 점차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카메라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을 앞세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인상주의의 색채 실험입체파의 공간 해체초현실주의의 상상력 등 20세기 현대 미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웨이드 가이튼은 그 흐름을 다시 뒤집는다그는 붓 대신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한다잡지나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 위에 기계적으로 ‘X’를 찍어 캔버스에 출력한다때로는 프린터의 오류나 잉크 번짐까지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현대인은 컴퓨터와 프린터를 통해 하루 종일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광고뉴스사진화면 속 데이터들그 양은 이미 인간의 감각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난다가이튼은 그 과잉 이미지를 끌어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 배열한다일종의 이미지 재활용이자 해체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어딘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나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도 닮아 있다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끌어와 새로운 맥락 속에 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가이튼의 관심은 소비문화의 화려함보다는이미지가 과잉 생산되는 시대의 공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의 ‘X’는 단순한 삭제 표시가 아니다어쩌면 그것은 현대 사회의 과잉 이미지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표시혹은 지워진 자리 위에 남겨진 흔적일지도 모른다기계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면이지만그 안에는 묘한 고독과 공허가 담겨 있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생각해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풍요롭지만 동시에 공허한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문득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우연의 음악의 남자는 끝없이 차를 타고 달리고, 달의 궁전의 젊은이는 정처 없이 뉴욕 거리를 떠돈다.

 

그림 <잭슨 폴락>]

 

회화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잭슨 폴락의 화면에는 우주적 규모의 고독이 담겨 있고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거대한 도시 속 인간의 왜소함과 고립이 스며 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마주한 웨이드 가이튼의 시리즈 속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지워버린 뒤 남겨진 자리텅 빈 흔적그 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표시.

나는 그 이미지 위에 조심스럽게 한 단어를 올려놓는다.


실종.


그림< 에드워드 하퍼, 유채, Office in a Small City, 1953>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작 인간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거 뭐야? 누가 그린 거야?” 친구가 묻는다.

, 그 드로잉? 피카소 거지. 사인을 보고도 모르겠어?” 내가 대답한다.

피카소? 진짜 피카소?” 친구가 눈을 크게 뜬다.

그럼. 가짜 피카소도 있니? 난 뭐든 가짜는 안 키워.”


토마토 주스를 홀짝이며 턱을 높이 들어 올린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그러나 예술이 본업인 사람들의 일상은 엄혹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는 눈이 먼 돈들이 넘쳐나지만, 현실의 민낯은 불공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구조 안에서 이름 없는 예술가들 역시 사회 구성원이자 생산의 주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기억한다.


나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어. 내 능력이 그들만 못할까? 노력하면 보여줄 수 있어복수할 거야!”


이런 생각을 곱씹으며 오늘도 작업에 몰두하는 무명 작가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마음 하나로, 배가 고파도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X’라는 기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플랫폼과 자본의 언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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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12-11-1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60억 쯤?
 

사진 <라일락> 유채, 1914, 마티스 (2012)


1113일 화요일.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 아침, 서울에서 가져온 음식들은 이미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미술관 가는 길에 42번가에서 내려 주위를 한참 돌며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밖에 없군.’ 하며 맥도널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여행 중에는 맥도날드가 나에게 일종의 응급 대피소 같은 장소다. 여행기 로마에서 길을 잃다를 쓰기 위해 로마에서 한동안 머물렀을 때도, 나는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시내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었다. 결코 맥도널드에 열광하는 맹신자는 아니다. 다만, 음식이나 분위기에 다소 까다로운 내게 최선의 선책은 아닐지 몰라도 확실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맥도널드 메뉴판은 어느 나라를 가나 거의 비슷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은 모두 같지 않다. 오늘 아침은 가장 푸짐한 빅 브렉퍼스트를 시켰다. 팬케이크 세 장의 크기를 보고, 한국 맥도널드가 조금 야박했던 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커피는 모든 사이즈가 1달러라 제일 큰 걸 시켰다. 위층 테이블로 올라가 한참 먹다 보니, 혼자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가 자책이 들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맙소사, 조만큼밖에 안 먹으면서 어떻게 저토록 살이 찔 수 있지?’


기름에 바싹 튀긴 포테이토 케이크, 달걀 두 개와 비프 페리가 들어간 머핀, 달콤한 시럽까지 끼얹은 팬케이크를 단숨에 절반가량 먹었다. 남은 반은 남들 눈치도 보이고, 솔직히 소화할 자신도 없어서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끼니를 놓칠 때가 많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오르며 마지막 식사라 생각하고 잔뜩 먹어두는 것처럼, 나도 아침을 든든히 챙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하루 두 끼가 딱 적당하다. 몸 상태가 그러니 아침에 많이 먹어도 체중에는 큰 영향이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잔병도 없는 상태다. 그렇지만 이제 뼈에 바람이 숭숭 드는 나이를 생각하면, 커피는 조금 줄여야 할 것 같다.


요즘에는 블랙커피보다 우유나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려 한다. 나이 듦이란 결국 이런 의미다. 음식을 먹을 때 점점 조심하게 되고, 매일 챙겨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늘어난다. 젊을 땐 여행 중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밤늦게까지 쌩쌩했는데, 이제는 숙소에 겨우 들어와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여행도, 노는 것도, 공부도, 무엇이든 가능한 젊음일 때 마음껏 누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며 만보기나 차고 다니라는 건가. 아이고, 그런 성경 말씀 같은 소리는 사양이다. 현실의 이중성은 전혀 다른 설정과 적응 능력을 요구한다. 갱년기가 오고, 2의 사춘기 같은 증세가 겹치면 삶의 중심축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지난 시절을 반추하며 젊었을 때 나는 어쩌구저쩌구같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그 시절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오만을 지금 또 다른 젊음의 오만 속에서 발견하고 진저리나 쳐야 한단 말인가. 아니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여행하고,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온몸에 오만의 향기를 친친 감고 다니는 것이 가장 성스러운 생활 태도다.


, 정신 건강을 위한 비타민 하나 꿀꺽 삼키고,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으로 출발!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2012)

 

산을 위한 산이 있고, 미술관을 위한 미술관이 따로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은 정말 산만을 위한 산이다. 정해진 시간까지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고, 몇 시간 안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등산객 수칙을 보고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히말라야도 몇 번씩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빌빌대는 거죠?"


아침 일찍 산행길에 나섰던 사람이 타박하듯 말했다.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덧붙였다.


"히말라야는 올라가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가도 되는 산이거든요. 중간에 음료수 파는 곳도 있고 잠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요. 여긴 거의 극기 훈련이 따로 없군요."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듯한, 한반도 최고봉 중 하나인 순상화산이다. 아래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위로 갈수록 지형이 가팔라진다. 정상 부근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을 보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설악산 숲길에 작은 식당이나 휴게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체력이 부실한 나는 험한 산행 중 자연 경관을 즐기고 관조할 여유를 거의 누릴 수 없었다. 그때는 운좋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죽을 때까지 다시 백록담 꼭대기까지 못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미술관만을 위한 미술관은 또 뭐란 말인가.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사실 구겐하임은 내게 꽤 불편한 장소였다. 그새 메트 미술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출근 도장 찍듯 메트에 다녔으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구겐하임에는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외 볼거리가 거의 없고, 편히 앉아 작품을 볼 벤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나선형 건물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경사로가 어지러웠다. 겨우 어른 허리 높이 난간 밖으로 사람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하루 종일 두 눈 부릅뜨고 경비를 서야 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딱해 보였다.


사진 촬영도 금지였다. 1층에서 건물 외관을 찍는 정도만 허용되었다. 로비에 피카소 조각품이 한 점 있었지만, 그마저 카메라에 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깐깐하게 자기 챙길 것만 다 챙기는, 그런 깍쟁이 미술관이었다.


전시장에는 피카소 외에 선심 쓰듯 칸딘스키 작품 3점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바로 카페테리아가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도 남녀공용 유니섹스라 안에 들어가 문을 꼭 잠갔지만 불안했다. 피카소 작품이 많았느냐 하면, 그것도 약간 아리송했다. 백화점 명품관처럼 넓은 공간에 귀한 물건 몇 개만 놓인 느낌? 위축되고, 춥고, 어지럽고, 다리도 아프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계속 불평만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번 구겐하임 전시는 의외로 나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별로 볼 게 없으니, 머리라도 열심히 굴려야 했던 모양이다.


한번 빗장이 풀리기 시작하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매듭이 풀리고, 분합문이 열리고, 열쇠 구멍이 하나씩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여행 노트에 스치는 생각을 빠르게 적었다.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 작업에 대한 깨달음과 아이디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하늘이 열린 듯한 자각이었다. 글쓰기에 몰두하면 가끔 엉뚱한 상상이 떠오를 때도 있으니, 널뛰는 생각들을 다스리듯 펜 끝을 단속하며 계속 메모를 이어갔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실에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 여행에서 피카소는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생각은 벌써 다른 데로 가 있으니, 피카소의 장식적 큐비즘이나 신고전주의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사진 <센트럴 파크89번가에서 바라본 맞은편 스카이라인> (2012)

 

사진 <센트럴 파크, 조깅하는 사람들> (2012)


뉴욕 거리에는 사시사철, 낮이든 밤이든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꽁꽁 언 한겨울에도 짧은 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내 몸이 절로 떨린다. 20051231, 새해맞이 축제를 보러 나갔을 때였다. 불꽃놀이 직후 센트럴 파크에서 거의 옷을 다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새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쩌지. 나이 많은 노인, 뚱뚱한 중년 부부, 변호사처럼 생긴 젊은 남자, 깡마른 아가씨들까지 쉼 없이 달린다. 뉴욕은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건강 걱정 증후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도시다. 하지만 동시에 러너스 하이가 어떤 느낌일지 어느 정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 , .


구겐하임에서 나와 센트럴 파크로 건너가 83번가까지 걸었다. 도착하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거리에 투명한 햇살이 가득했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센트럴 파크 풍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형형색색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한참 전에 개봉했던 리차드 기어와 위노아 라이더 주연 뉴욕의 가을속으로 빨려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와 현실을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뉴욕 거리의 가을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사진 <메트 미술관 이집트 관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가을 풍경> (2012)

 

구겐하임에서 메트까지는 6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미술관 앞 층계에는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며 오후를 보내고, 계단 아래에서는 재즈 싱어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모두 나이 지긋한 흑인 남자들이었다. 주축 멤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화음을 넣었다. 더블베이스 반주가 깔린 비밥 스타일의 노래는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없는 흥을 돋우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거리의 소음조차 자연스럽게 배경음으로 녹아들었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숙제도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층계 한쪽에 주저앉았다. 살갗을 간질이는 가을 햇볕을 만끽하며, 음악에 잠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 <메트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가수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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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2012-1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