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장암동에 가을이 오면>

Watercolor on paper, 34×25cm, 2012

 

지난 주말에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다. 숲 언저리에 터를 내린 오래된 마을이었는데 함께 간 분들이 일 년 사이에 확 바꿔버린 마을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저 완성하려고 가져왔는데, 내가 그리던 집이랑 돌담이랑 죄다 없어져 버렸네.”


일행 중 한 분이 휑한 집터 앞에서 작년에 그리다 만 그림을 꺼내 보이며 몹시 허탈한 표정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누군가 이 마을 땅을 몽땅 사 버리는 바람에 여기 사는 주민들에게 법원으로부터 철거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었지만 성냥갑처럼 부서진 가옥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현실 감각이 둔한 나는, 이것도 그냥 하나의 풍경이겠거니 했는데 전셋돈도 못 받고 강제로 이삿짐이 실려나간 마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나중에 이웃 주민에게서 전해 들었다.


언제 집달리가 들이닥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분들의 심정도 모른 채 나는 그저 한가롭게 앉아 화구통을 펼치고 마을 모습이나 그리고 있었으니이거야 원, 가을 햇살이 참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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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행마을 방앗간> watercolor on paper, 2012-14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수영장인지 연못인지 모를 물속에 한 타래의 머리카락이 떠 있고, 그것은 검은 그림자처럼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겨우 도망쳐 나와 풀밭을 지난 다음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나는 기를 쓰며 그것을 건너간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기는 하지만 결코 물에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는 버스 정거장에서 달팽이 도사님을 만났다. 몸집은 작고 왜소했지만 수염만큼은 무척 풍성한 도사님이었다. 우연히 서로 말문을 트게 되었는데정말이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던 날이었다. 이 근처에 괜찮은 찜질방이 있느냐면서 도사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여기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찜질방 한 군데를 소개해 주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깨끗할 거예요.”


고맙구려. 이 나이가 되면 뜨끈뜨끈한 데 가서 한참 지지고 싶거든. 그런데 시설도 어지간하겠지?”


그럭저럭요. 숯방, 황토방, 가마솥방, 게르마늄방 그런 것들도 있고 참, 사우나에는 초록색 물로 된 허브탕도 있어요. 어른이 들어가면 애들이 좀 싫어하긴 하지만.”


허브탕이라! 초록색? 이거 이거, 오늘이라도 당장 가봐야겠는걸.”


나는 벌써부터 달팽이 도사님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말투나 눈빛, 은연중에 떠오르는 표정 같은 것들이 결코 범상치 않았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 약간 4차원적이면서도 현실과 비현실을 관통하는 어떤 기미였다.


무슨 말 끝에 달팽이 도사님이 꿈 해몽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짝 호기심이 당겼다.나는 그 즉시 요즘에도 종종 꾸는 그 물귀신 같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한 달팽이 도사님이 갑자기 푸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안 좋은 꿈인가요?”


이거 참, 물과 머리카락과 징검다리라니! 당장 이사를 가는 게 좋겠어.”


난데없이 집을 옮기라니. 낯선 사람 앞에서 내가 괜한 소리를 꺼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거의 10년 가까이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꿈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꿈이 상징하는 암시나 숨겨진 의미를 풀기 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이사라뇨? 그건 좀 곤란한데당장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니라서요.”


이사는 안 된다! 그럼, 하는 수 없지!”


하는 수 없다니, , 뭐가요?”


땅을 파는 수밖에 없어.”


땅이요? 무슨 땅?”


아무 땅이나 괜찮아. 이왕이면 아주 깊이 파는 게 좋을 거야. 그쪽 키 정도면 충분하겠어.”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갑자기 땅을 파라니


“10년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서? 그냥 내 말만 믿고 삽 들고 가서 무조건 아무 땅이나 파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을 몽땅 쓸어 넣고는 다시 흙으로 덮으란 말이요.”


도사님은 열심히 땅 파는 시늉을 하더니 그 위에 흙을 덮고는 발로 꾹꾹 다지기까지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뭔가 의미심장한 충고 같은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거라니!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들? 안 입는 옷? 혹시, 안 읽고 쌓아 놓기만 한 책들은 아닐까? 솔직히 나한테는 안 읽은 책들이 많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껴안고 있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그런 책들어떻게 아신 거지? 아무래도 진짜 도사 같은걸!


그때 달팽이 도사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기 내 버스 온다! 먼저 가야겠소. 그럼, 여기서 이만.”


달팽이 도사님은 손까지 살짝 들어 보이고는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나도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목청을 높여 물었다.


잠깐만요! 쓸데없는 것들이라니 그게 뭔데요?”


달팽이 도사님은 한 발은 앞으로, 다른 한 발은 뒤로 한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머플러를 뗀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은색 철제 가방을 실은 총알 탄 오토바이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요란하고도 극성스러운 오토바이였다.


달팽이 도사님이 뭔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 건 바로 그때였다. 내 인생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한마디였는지 아니면 그냥 장난기어린 황당무계한 발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귀청을 울리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길쭉한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달팽이 도사님이 타고 갈 버스는 공항을 지나 시내 쪽으로 나가는 직행버스였다버스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요즘 버스 기사님들은 정말로 칼 같은 운전 솜씨를 발휘하는 것 같다. 1mm의 오차도 없었다.


달팽이 도사님은 다시 한번 손을 살짝 들어 보이더니 진짜 달팽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는 아주 천천히 버스에 올라탔다. 거대한 버스 안으로 작은 달팽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림 <안행마을 방앗간> oil on canvas, 2014


그날 밤, 나는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 그런 일을 겪고 어찌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길쭉한다음에 과연 어떤 말이 와서 달라붙었던 것일까.


단어 맞추기 퍼즐게임이라도 하듯 온갖 단어에 길쭉한이라는 형용사를 대응해 보았다. 길쭉한 소파, 길쭉한 스피커. 길쭉한 빵. 길쭉한 버터, 길쭉한 젓가락, 길쭉한 다리, 길쭉한 가래떡. 길쭉한 촛대


이 세상에는 의외로 길쭉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나는 결국 멀미를 느낄 지경이 되어 두 손을 번쩍 들어 항복하고야 말았다.


이런 호랑말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도대체 땅에 뭘 파묻으라는 거야! 길쭉한 거 뭐? ?”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다 말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벽을 향해 돌아누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 나를 파묻으라고?


새겨들을 말이 따로 있지.

하면서도 왠지 가슴이 서늘했다


나로 말하면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대한민국 여성 평균 사이즈의 아담한 체구다. ‘길쭉한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일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도 파악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길쭉한길쭉한 그 무엇

속이 미식미식하니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길쭉한 뭔가가 암흑 속에서 까만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세찬 파도가 한 번, 두 번, 세 번 연거푸 밀려오더니 거짓말처럼 빠져나갔다. 뙤약볕이 시리게 반짝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양의 연병장 같은 백사장 주위로 삐죽빼죽한 바위 덩어리들만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불면증이 그해 가을 내내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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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과수원>

pen and watercolor on paper, 25.1×18.3cm, 2012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농촌은 가깝고도 먼 이국의 영토다. 어쩌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 풍광이 좋아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고 한다면 어쩐지 무례한 발언이 될 것도 같다. 지난 주말에는 김포에 있는 덕포리에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는데, 그림을 그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국의 농촌 모습이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덕포리 과수원>이다. 지난주에 찍어온 사진들을 살펴보다, 이런 구도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펜을 들고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딘가 이국적으로 보이는 덕포리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시골 동네의 일상, 외갓집이자 나의 생가였던 충청남도 전의 심방리 뱀골 풍경이 옛 기억 속에 아른거렸다.


우리 외갓집은 천안에서도 한참 들어간 시골 촌구석이었다. 뒷마당 외양간에는 소와 돼지들이 있었는데, 가끔 집채만 한 돼지가 울타리를 뚫고 뛰어나오곤 했다. 그러면 큰 대문으로 나갔다가 뒷마당 작은 대문으로 다시 들어와 마당을 가로질러 달리고, 또다시 큰 대문으로 빠져나갔다가 작은 대문으로 되돌아오는 통에, 조용하던 집안은 금세 일대 격랑에 휩싸였다. 어른들은 작대기를 들고 마당 곳곳에 진을 치며 돼지를 뒤쫓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는 자연의 찬가게나 다름없는 집 근처 텃밭으로 나가 직접 찬거리를 뜯어오고, 새로 시집 온 외숙모는 장작불을 지펴 무쇠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외가 친척들도 많았는데, 서로 앙숙이 된 사람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난데없이 똥지게며 똥바가지들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펼쳐졌다.


도시 생활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검은 색조를 구경할 수 있었던 곳도 바로 그 시골 마을에서다. 외갓집 곳곳에 놓여 있던 거무추레한 고가구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신던 검은색 고무신, 할머니가 모처럼 내려온 손녀딸을 위해 군것질거리로 만들어주던 조청, 잿물을 받아 집에서 직접 만든 까만색 빨랫비누. 그 모두가 내게는 생소하기만 한 까만색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검은색은 깊은 밤 들판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어둠의 장벽이었다. 당시 외갓집에는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기차 통학을 다니던 막내 이모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외조부를 따라 이모를 마중하러 나갔는데,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내 손가락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이러다 텅 빈 들녘에 홀로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연거푸 불러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딨어? 어딨어, 할아버지!”

왜 그러니? 가만히 좀 있거라. 이제 곧 네 이모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곧이어 할아버지가 이모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정숙아! 정숙아! 거기 있니?”


근엄하기만 했던 외조부가 내게 보여주었던 아버지로서의 또 다른 면모였다. 어둠만이 가득한 들판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이 떠올랐다가 메아리처럼 번져갔고, 저기 어딘가에서 화답하듯 할아버지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외갓집에 대한 나의 추억들은 주로 겨울과 한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의 일이다. 그때 그 농촌의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자연과 흙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채 반쪽짜리 콘크리트 인생만 살았을지도 모른다. 글이든 그림이든 평생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업해야 할 사람에게 그것은 결코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수박 서리를 한 적도 있다. 원두막에는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혼자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축축한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엉금엉금 기어야만 했다.


거기에 같이 있던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 낄낄 웃으며 이제 콩서리를 하러 가자고 한 걸 보면 그날 밤 범행이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던 모양이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야! 어떤 놈들이야!”


벼락같이 내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친척 아저씨가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꼼짝 못 하고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그날 밤의 최대 재앙은 우리가 하필이면 죄다 설익은 수박들만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이 잘 익었는지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쿡쿡 찔러본 것이 화근이었다.


친척 아저씨는 우리가 따놓은 수박이며 여기저기 쑤셔놓은 것들까지 한데 모아놓고는 다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니들이 다 먹어! 힘들게 농사지은 걸 그냥 버릴 수는 없잖아! 여기, 내가 보는 앞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먹어 치우란 말이야!”


친척 아저씨는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충청도 특유의 느릿한 사투리로 우리를 압박했다. 아이들은 주눅든 얼굴로 하나씩 수박을 집어 들었다. 돌에 대고 툭툭 깨트린 수박 한 덩이를 손에 들자 끈적이는 과즙이 손목과 팔꿈치를 타고 흘렀다.


먹어도 먹어도 수박은 끝이 없었다. 한 입 한 입 삼킬 때마다 뱃속이 빵빵하게 불러오고,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옆에는 아직도 씨앗까지 허연 물컹한 수박들이 쌓여 있었다살짝만 눈을 돌려도 수박 더미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다 정말 배가 풍선처럼 터지는 건 아닐까


그때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그 여름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먹는다는 행위의 고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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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다리>

watercolor on paper, 34×23.7cm, 2012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그대의 슬픈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지나온 날에 그리운 그대의 맑은 사랑이 향기로워요

노래 부르면 떠나온 날에 그 추억이 아직도 나를 슬프게 하네

잊을 수 없는 님의 부드러운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이것은 이문세 씨가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부르는 가을이 오면의 가사이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 한쪽에 있던 주춧돌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 빈자리에서는 아슴아슴 뭔가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초록의 뽀얀 물빛이 하염없이 번져가는 그런 순간이다.


모두들 자신만의 가을 이야기와 추억의 장면이 있을 것이다. 내게 가을은 클래식 음악과도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이 배경 음악처럼 깔리고 가을 언저리의 눈부신 풍경들이 마음에 사무치면 나도 모르게 아득하기만 했던 옛 시절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된다.


오래전 어느 가을날, 나는 차를 몰고 볼티모어 로열라 칼리지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주위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후였지만 내 마음은 청춘의 열병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그때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과 한적한 도로 위를 굴러다니던 은행잎들이 한순간 압도적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살다 보면 인생의 퍼즐 조각들이 한순간에 맞춰질 때가 있다. 내게는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가을날들이 거기 그 자리에서 하나로 압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짧아서 늘 아쉬운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 오후에는 슬며시 집을 빠져나와 근처 도서관 같은 곳에 가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무슨 책을 읽을지는 그 순간의 예감과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책들은 항상 운명처럼 그 자리에 꽂혀 있다가 손끝에 이끌려 나오곤 한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낡은 시집도 좋고 낭만파 시대의 고전 문학도 좋다. 자연식 요리법 책이나 고생대 생물학에 관한 최신 신간 서적이라도 상관없다.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요란한 화보 책만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


그러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가을 숲길의 낙엽 냄새와 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떠올리며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리라.


가을 허공에는 외로움의 향기가 감돈다. 말간 햇살이 어른거리는 도서실 창가에는 침묵이 흐른다. 발음과 형태 분석이 모호한 시곗바늘은 세월의 눈금을 새기고 있다. 한 권의 책은 빈 도화지처럼 하나의 우주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의식하고자 하는 세계의 의식과 의식할 수 없는 세계의 무의식 속으로 더욱 깊숙이 잠입한다.


텅 빈 오후를 가르며 천천히 책장이 넘어가는 차락차락 소리. 도서관 한쪽 끝에서 들려오는 지나간 청춘의 나지막한 기침소리.


그러나 가장 완벽한 가을날 풍경 어디에도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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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행마을

watercolor on paper 33.8×23.3cm, 2012

 

밤이 깊었다. 너무 졸려서 자꾸 하품이 난다. 오늘 오후에는 어제부터 계속 그리던 작품 하나를 망치고 말았다. 더 이상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태라 결국 입술을 깨물며 꽉꽉 구겨 휴지통에 쑤셔 넣었다.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는 망친 작품들만의 무덤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망쳐버린 작품들이 한꺼번에 응어리진 표정으로 내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간담이 서늘해진다.


뭐든 쉬운 일은 없다. 수채화도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좀 풀리는 듯하다가 다음 날에는 완전히 감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있다. 무엇보다 빠르고 단호한 붓질이 중요한데 붓을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그림에 뽕기가 들어가기 쉽다. 그런 식으로 습관이 붙으면 더더욱 헤어나오기 어렵다. ‘뽕기라는 단어가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쓰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수채화는 오미희 씨 방송이 시작된 얼마 후부터 다시 그리고 있던 것이다. 중간에 잠깐 쉬고 있었다. 남편이 출장 중이라 모처럼 싱글 시절의 자유를 만끽하며 혼자 저녁도 먹고(비록, 달랑 김밥 한 줄이지만), ‘착한 남자시청도 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꽂혀 있는 드라마이다. 송중기, 화이팅.

그러다가 내일을 위해 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화실로 들어갔다. 심기일전 붓을 집어 들고 결국 새벽까지 작업을 했다. 그 다음에는 사진을 찍고 알씨로 용량을 줄여 사이트에 올리고 있었다. 휴우. 정말 긴 하루였다. 게다가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이렇게 쓸데없이 주절거리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사용한 수채화 용지는 100% 코튼으로 된 파브리아노 황목 제품이다. 그동안은 주제나 기법에만 신경을 썼지 재료는 부차적인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진작부터 이 종이를 쓰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요리사가 좋은 요리를 하려면 우선 재료부터 잘 골라야 한다.


주로 유화 작업을 하다 보니 수채화 재료에는 무엇이든 대충 대충이었다. 대학 시절 이후 본격적으로 수채화 작업에 매달렸던 적이 없었다. 뭐랄까, 일종의 보조 수단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종이 하나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붓 터치가 그대로 살아 있고 물감이 번져가는 느낌도 자연스럽다. 질감은 거칠면서도 단단해서 수채화 물감을 잘 받아주고 있다. 물이 묻어도 종이가 쉽게 우그러지지 않는다. 약간 안쪽으로 우묵하게 들어갔다가 금세 빳빳하게 마르며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그동안 나는 너무 엉성한 요리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재료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 신중함,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것부터 챙겨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새삼 되새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일도 비슷하다. 기초적인 매뉴얼을 놓쳐버려서 어그러지는 일이 많다. 뭔가 이상하게 풀리지 않을 때는 인생 매뉴얼 11항부터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사진을 곁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직접 밖에 나가 그리면 좋겠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다. 사진을 찍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색채와 분위기를 조율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주말에는 야외 스케치를 하는 분들과 함께 덕포리 안행마을에 가기로 되어 있다. 덕포진과 덕포리를 자꾸 혼동하고 있다. 지난번에 다녀온 곳은 덕포진이었고 이번에 가는 곳이 덕포리이다.


아무튼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날씨도 좋을 것이라 한다. 멋진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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