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모네, 유채, Garden at Sainte-Adresse, 유채, 1867>      

 

오늘도 모네의 정원에는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미술관은 애송이 화가에게 ‘오픈 북’ 같은 장소다. 선대의 화가는 무덤 속에서도 말을 하고 눈짓을 보내며 우리를 경청하게 만든다. 그것은 언어가 없는 언어, 전언 이전의 전언, 그리고 깨달음이다.

 

늙은 경비원은 오래된 석고상처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관람객들은 전시실 통로를 따라 공기처럼 부유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서로의 간격을 좁히며 지나간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저기 전시실에서 이곳 전시실로. 그리고


바라본다. 나 여기 앉아서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팔걸이의자의 남자는 파라솔을 든 여자와 신사복의 남자를 바라보고, 허공에 걸린 두 개의 깃발은 파리 인상파의 빛과 색채를 바라보고, 출렁대는 바다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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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2012-11-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지내다 오길~

김미진 2012-11-2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어제 오전 모습> (2012)

 

아침에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많아도 너무 많다. 바로 쓰레기들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쏟아낸 흔적들. 어제도 이렇게 버렸는데, 오늘은 더 큰 쓰레기 봉지가 거리 곳곳에 쌓여 있다. 최대한 많이 벌고 많이 쓰자! 이런 모토로 살는 현대인들이라 해도, 이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미국인들이 마구 소비하고 내다 버린 쓰레기들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이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팽창을 멈추지 않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미국을 통째로 깔고 앉아 숨통을 조이는 듯하다.

 

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오늘 오전 모습> (2012)

 

아침마다 거리의 그늘진 모습을 연출하는 쓰레기 더미들은 뉴욕 도시의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쓰레기의 부정적 면만 부각하는 것도 낯선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쓰레기는 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 모습, 삶의 흔적들이 모여 결국 시대의 화석대를 이루고 역사의 타임캡슐이 되기도 한다. ‘History comes to life’, 이 도시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상이 역사가 되는 순간들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어제는 소호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소규모 갤러리에서 샤갈 그림을 직접 판매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유화로 그린 작품의 크기는 50호쯤 되어 보였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마치 화랑의 주인공처럼 정면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작년 겨울 서울 시립미술관 샤갈 전에서 전시된 그림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 작품이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거리 풍경, 마을 사람들, 세로로 긴 화면 구성. 그때 그 그림의 주인공은 십자가를 멘 예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호의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샤갈 그림은 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던 그림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작품성과 예술적 성취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저거 진짜 샤갈이죠?"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백인 여자에게 물었다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이렇게 작은 화랑에서 샤갈의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그럼요. 샤갈 맞아요.”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진짜로 파는 거예요? 샤갈 그림을?”


맞아요. 정말로 파는 거예요.”


여자의 대답에 내 눈은 더욱 동그래졌다.


혹시 가격은 얼마나 돼요?”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에요.”


밀리언이란 단어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거래되는 액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갤러리 밖으로 나온 뒤에야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포인트는 뭐지?’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라는 말에서 중간의 포인트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백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파이브 포인트 파이브를 줄여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 그 샤갈 그림이 5.5밀리언 달러에 거래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5? 50? 500? 숫자 감각에 둔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 당시 환율로 치면 대략 60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소호에 있는 다른 화랑에 들어갔더니 남자 큐레이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전시 작품에 관해 이리저리 설명해 주었다. 필요하면 작품 가격이 적힌 리스트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나를 미술품 컬렉터로 여긴 모양이었다.


젊어서는 이런 데 오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고가의 그림 한 점쯤은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있는 연배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만큼 내가 늙어 보인다는 뜻일까. 어쩌면 경제력이 높아진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예전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바뀐 탓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곳 화랑을 찾아와 직접 작품을 구매해 가는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도 들렸다.


사진 <뉴욕의 어느 화랑에서, 작품 목록 안의 로스코와 수틴을 만나다> (2012)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술관 순례에 나섰다메디슨 에비뉴 76번가를 지날 무렵쇼윈도에 근사한 미로 그림을 걸어 놓은 갤러리를 발견하고는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뉴욕에서는 길거리 화랑에 들어가려면 대부분 밖에 달린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그러면 안에서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는 찌잉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딸깍 열린다이내 문이 다시 잠겨 버리는 시스템이라 타이밍을 잘 맞추어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문을 안으로 밀어야 한다.


화랑 안에 들어가면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말한다괜히 쭈뼛거릴 필요는 없다물론 예의 차원에서 옷은 조금 깨끗하게 입는 편이 좋을 것이다하지만 여행 중에 옷차림에까지 큰 신경을 쓸 여유는 없다청바지에 패딩 점퍼운동화어깨에 둘러멘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그런 차림의 나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뉴욕 화랑가의 경기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어쨌거나 어제도 소호에서 몇 번 비슷한 대접을 받은 터라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내 표정 또한 한결 느긋해졌다.

 

76번가 그 고급스러운 화랑에서는 Pablo Picasso 그림을 다섯 점이나 소장하고 있었다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레제 Fernand Léger, 마그리트 René Magritte, 후안 미로 Joan Miró, 웨인 띠버드 Wayne Thiebaud 등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작가들의 작품이 벽에 주르륵 걸려 있었다.


이층에도 작품이 있다고 해서 올라갔더니, 2층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전시 작품들의 가격 정보가 들어 있는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나는 한쪽 소파에 앉아 그것을 들여다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미술책에 나오는 유명 작가들의 리얼한 진면목(?)을 그대로 지나칠 수야 없었다그런데 베껴 써야 할 내용이 꽤 많았다이걸 무슨 수로 한 번에 옮겨 적나 난감해하던 차에마침 데스크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아마도 나는 전생에 스파이거나 첩보 공작원이었을지 모른다보통 때는 버걱거리던 머리가 그 순간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으니까.


지체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조금 손이 떨렸다약간의 흥분결코 나쁘지 않았다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나를 밀어붙였다그다지 두꺼운 카탈로그는 아니었지만그 안에 들어 있는 작품 정보를 한꺼번에 카피하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다.


카탈로그는 활짝 펼칠 수 없게 제본된 것이었다나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는 이쪽 페이지를 누르고오른쪽 발끝으로는 다른 쪽 페이지를 눌러 고정한 다음 한 장씩 넘겨가며 디카로 펑펑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다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동안 1층에서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찻잔 부딪치는 소리복사기가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것도 들린 듯했다여직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가까워졌다아무래도 곧 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어쩌면 이미 층계참까지 올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아직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 남아 있었다여기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한순간 스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중요한 것들은 늘 가장 평범한 얼굴로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은가단 하나의 키워드 같은 것생의 어떤 암시 같은 것이대로 지나치면 끝내 섭섭해질 것이 분명한 바로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다만 직감이었고나는 그걸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었다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목격자이자 수행자였고동시에 사악한 염탐꾼이기도 했다그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이었지만어쩐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임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욱 속도를 올리며 셔터를 눌러댔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카메라까지 통째로 빼앗기지는 않겠지오로지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것 하나뿐이었다찰칵한 장 넘기고 찰칵또 한 장 넘기고또 넘기고또 넘기고


마침내 임무 완성!


사진 <파블로 피카소 작품 목록이 들어 있는 또 다른 페이지> (2012)

 

피카소 작품에는 확실히 ‘0’이 많이 붙어 있었다. , 이게 몇 개야? 하나, , , 그런데 내가 뭐 한 거지! 겨우 이런 걸 찍으려고 그랬단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뉴욕 화랑의 심장부에 들어가 이런 희귀한 사진을 찍어 올 수 있었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뉴욕 거리의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다.

아침마다 길모퉁이에 쌓이는 쓰레기 더미는 이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해내는 이미지의 잉여, 즉 과잉의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뉴욕 거리의 쓰레기 더미와 현대 미술 작품 사이에는 어쩌면 어떤 은밀한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메디슨 에비뉴의 갤러리를 나온 뒤, 나는 곧장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했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곳에서는 마침 웨이트 가이튼 Wade Guyton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티스트는 보통 무언가를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웨이드 가이튼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작가처럼 보였다.


웨이드 가이튼은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테네시에서 성장했고, 뉴욕 헌터 대학에서 로버트 모리스 밑에서 수학했다. 지금 그의 나이는 마흔. 그를 과연 청년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미술사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여든셋까지 작업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역시 노년에 이르기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이라면 가이튼 역시 앞으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더 작업실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마흔의 나이에 휘트니 미술관에 입성한 작가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부러움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 그는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고독한 내면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작품과의 끝없는 씨름. 끝을 알 수 없는 긴 노동의 흔적들. 긴 수명은 때때로 축복이 아니라 또 다른 숙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그의 작품은 대개 ‘X’라는 단순한 부호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과거의 화가들은 손과 붓으로 세상을 묘사했다그러나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화가들은 점차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카메라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을 앞세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인상주의의 색채 실험입체파의 공간 해체초현실주의의 상상력 등 20세기 현대 미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웨이드 가이튼은 그 흐름을 다시 뒤집는다그는 붓 대신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한다잡지나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 위에 기계적으로 ‘X’를 찍어 캔버스에 출력한다때로는 프린터의 오류나 잉크 번짐까지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현대인은 컴퓨터와 프린터를 통해 하루 종일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광고뉴스사진화면 속 데이터들그 양은 이미 인간의 감각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난다가이튼은 그 과잉 이미지를 끌어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 배열한다일종의 이미지 재활용이자 해체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어딘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나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도 닮아 있다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끌어와 새로운 맥락 속에 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가이튼의 관심은 소비문화의 화려함보다는이미지가 과잉 생산되는 시대의 공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의 ‘X’는 단순한 삭제 표시가 아니다어쩌면 그것은 현대 사회의 과잉 이미지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표시혹은 지워진 자리 위에 남겨진 흔적일지도 모른다기계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면이지만그 안에는 묘한 고독과 공허가 담겨 있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생각해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풍요롭지만 동시에 공허한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문득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우연의 음악의 남자는 끝없이 차를 타고 달리고, 달의 궁전의 젊은이는 정처 없이 뉴욕 거리를 떠돈다.

 

그림 <잭슨 폴락>]

 

회화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잭슨 폴락의 화면에는 우주적 규모의 고독이 담겨 있고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거대한 도시 속 인간의 왜소함과 고립이 스며 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마주한 웨이드 가이튼의 시리즈 속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지워버린 뒤 남겨진 자리텅 빈 흔적그 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표시.

나는 그 이미지 위에 조심스럽게 한 단어를 올려놓는다.


실종.


그림< 에드워드 하퍼, 유채, Office in a Small City, 1953>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작 인간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거 뭐야? 누가 그린 거야?” 친구가 묻는다.

, 그 드로잉? 피카소 거지. 사인을 보고도 모르겠어?” 내가 대답한다.

피카소? 진짜 피카소?” 친구가 눈을 크게 뜬다.

그럼. 가짜 피카소도 있니? 난 뭐든 가짜는 안 키워.”


토마토 주스를 홀짝이며 턱을 높이 들어 올린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그러나 예술이 본업인 사람들의 일상은 엄혹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는 눈이 먼 돈들이 넘쳐나지만, 현실의 민낯은 불공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구조 안에서 이름 없는 예술가들 역시 사회 구성원이자 생산의 주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기억한다.


나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어. 내 능력이 그들만 못할까? 노력하면 보여줄 수 있어복수할 거야!”


이런 생각을 곱씹으며 오늘도 작업에 몰두하는 무명 작가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마음 하나로, 배가 고파도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X’라는 기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플랫폼과 자본의 언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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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12-11-1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60억 쯤?
 

사진 <라일락> 유채, 1914, 마티스 (2012)


1113일 화요일.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 아침, 서울에서 가져온 음식들은 이미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미술관 가는 길에 42번가에서 내려 주위를 한참 돌며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밖에 없군.’ 하며 맥도널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여행 중에는 맥도날드가 나에게 일종의 응급 대피소 같은 장소다. 여행기 로마에서 길을 잃다를 쓰기 위해 로마에서 한동안 머물렀을 때도, 나는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시내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었다. 결코 맥도널드에 열광하는 맹신자는 아니다. 다만, 음식이나 분위기에 다소 까다로운 내게 최선의 선책은 아닐지 몰라도 확실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맥도널드 메뉴판은 어느 나라를 가나 거의 비슷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은 모두 같지 않다. 오늘 아침은 가장 푸짐한 빅 브렉퍼스트를 시켰다. 팬케이크 세 장의 크기를 보고, 한국 맥도널드가 조금 야박했던 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커피는 모든 사이즈가 1달러라 제일 큰 걸 시켰다. 위층 테이블로 올라가 한참 먹다 보니, 혼자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가 자책이 들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맙소사, 조만큼밖에 안 먹으면서 어떻게 저토록 살이 찔 수 있지?’


기름에 바싹 튀긴 포테이토 케이크, 달걀 두 개와 비프 페리가 들어간 머핀, 달콤한 시럽까지 끼얹은 팬케이크를 단숨에 절반가량 먹었다. 남은 반은 남들 눈치도 보이고, 솔직히 소화할 자신도 없어서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끼니를 놓칠 때가 많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오르며 마지막 식사라 생각하고 잔뜩 먹어두는 것처럼, 나도 아침을 든든히 챙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하루 두 끼가 딱 적당하다. 몸 상태가 그러니 아침에 많이 먹어도 체중에는 큰 영향이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잔병도 없는 상태다. 그렇지만 이제 뼈에 바람이 숭숭 드는 나이를 생각하면, 커피는 조금 줄여야 할 것 같다.


요즘에는 블랙커피보다 우유나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려 한다. 나이 듦이란 결국 이런 의미다. 음식을 먹을 때 점점 조심하게 되고, 매일 챙겨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늘어난다. 젊을 땐 여행 중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밤늦게까지 쌩쌩했는데, 이제는 숙소에 겨우 들어와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여행도, 노는 것도, 공부도, 무엇이든 가능한 젊음일 때 마음껏 누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며 만보기나 차고 다니라는 건가. 아이고, 그런 성경 말씀 같은 소리는 사양이다. 현실의 이중성은 전혀 다른 설정과 적응 능력을 요구한다. 갱년기가 오고, 2의 사춘기 같은 증세가 겹치면 삶의 중심축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지난 시절을 반추하며 젊었을 때 나는 어쩌구저쩌구같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그 시절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오만을 지금 또 다른 젊음의 오만 속에서 발견하고 진저리나 쳐야 한단 말인가. 아니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여행하고,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온몸에 오만의 향기를 친친 감고 다니는 것이 가장 성스러운 생활 태도다.


, 정신 건강을 위한 비타민 하나 꿀꺽 삼키고,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으로 출발!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2012)

 

산을 위한 산이 있고, 미술관을 위한 미술관이 따로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은 정말 산만을 위한 산이다. 정해진 시간까지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고, 몇 시간 안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등산객 수칙을 보고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히말라야도 몇 번씩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빌빌대는 거죠?"


아침 일찍 산행길에 나섰던 사람이 타박하듯 말했다.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덧붙였다.


"히말라야는 올라가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가도 되는 산이거든요. 중간에 음료수 파는 곳도 있고 잠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요. 여긴 거의 극기 훈련이 따로 없군요."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듯한, 한반도 최고봉 중 하나인 순상화산이다. 아래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위로 갈수록 지형이 가팔라진다. 정상 부근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을 보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설악산 숲길에 작은 식당이나 휴게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체력이 부실한 나는 험한 산행 중 자연 경관을 즐기고 관조할 여유를 거의 누릴 수 없었다. 그때는 운좋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죽을 때까지 다시 백록담 꼭대기까지 못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미술관만을 위한 미술관은 또 뭐란 말인가.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사실 구겐하임은 내게 꽤 불편한 장소였다. 그새 메트 미술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출근 도장 찍듯 메트에 다녔으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구겐하임에는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외 볼거리가 거의 없고, 편히 앉아 작품을 볼 벤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나선형 건물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경사로가 어지러웠다. 겨우 어른 허리 높이 난간 밖으로 사람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하루 종일 두 눈 부릅뜨고 경비를 서야 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딱해 보였다.


사진 촬영도 금지였다. 1층에서 건물 외관을 찍는 정도만 허용되었다. 로비에 피카소 조각품이 한 점 있었지만, 그마저 카메라에 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깐깐하게 자기 챙길 것만 다 챙기는, 그런 깍쟁이 미술관이었다.


전시장에는 피카소 외에 선심 쓰듯 칸딘스키 작품 3점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바로 카페테리아가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도 남녀공용 유니섹스라 안에 들어가 문을 꼭 잠갔지만 불안했다. 피카소 작품이 많았느냐 하면, 그것도 약간 아리송했다. 백화점 명품관처럼 넓은 공간에 귀한 물건 몇 개만 놓인 느낌? 위축되고, 춥고, 어지럽고, 다리도 아프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계속 불평만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번 구겐하임 전시는 의외로 나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별로 볼 게 없으니, 머리라도 열심히 굴려야 했던 모양이다.


한번 빗장이 풀리기 시작하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매듭이 풀리고, 분합문이 열리고, 열쇠 구멍이 하나씩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여행 노트에 스치는 생각을 빠르게 적었다.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 작업에 대한 깨달음과 아이디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하늘이 열린 듯한 자각이었다. 글쓰기에 몰두하면 가끔 엉뚱한 상상이 떠오를 때도 있으니, 널뛰는 생각들을 다스리듯 펜 끝을 단속하며 계속 메모를 이어갔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실에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 여행에서 피카소는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생각은 벌써 다른 데로 가 있으니, 피카소의 장식적 큐비즘이나 신고전주의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사진 <센트럴 파크89번가에서 바라본 맞은편 스카이라인> (2012)

 

사진 <센트럴 파크, 조깅하는 사람들> (2012)


뉴욕 거리에는 사시사철, 낮이든 밤이든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꽁꽁 언 한겨울에도 짧은 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내 몸이 절로 떨린다. 20051231, 새해맞이 축제를 보러 나갔을 때였다. 불꽃놀이 직후 센트럴 파크에서 거의 옷을 다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새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쩌지. 나이 많은 노인, 뚱뚱한 중년 부부, 변호사처럼 생긴 젊은 남자, 깡마른 아가씨들까지 쉼 없이 달린다. 뉴욕은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건강 걱정 증후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도시다. 하지만 동시에 러너스 하이가 어떤 느낌일지 어느 정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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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에서 나와 센트럴 파크로 건너가 83번가까지 걸었다. 도착하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거리에 투명한 햇살이 가득했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센트럴 파크 풍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형형색색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한참 전에 개봉했던 리차드 기어와 위노아 라이더 주연 뉴욕의 가을속으로 빨려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와 현실을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뉴욕 거리의 가을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사진 <메트 미술관 이집트 관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가을 풍경> (2012)

 

구겐하임에서 메트까지는 6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미술관 앞 층계에는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며 오후를 보내고, 계단 아래에서는 재즈 싱어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모두 나이 지긋한 흑인 남자들이었다. 주축 멤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화음을 넣었다. 더블베이스 반주가 깔린 비밥 스타일의 노래는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없는 흥을 돋우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거리의 소음조차 자연스럽게 배경음으로 녹아들었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숙제도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층계 한쪽에 주저앉았다. 살갗을 간질이는 가을 햇볕을 만끽하며, 음악에 잠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 <메트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가수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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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2012-1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사진 <뉴욕의 명물, 플랫 아이언 빌딩>

 

오늘도 자다가 일찍 깼다. 시차 때문도, 낯선 환경 때문도 아니다. 다만 어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잤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진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는 찍어온 사진이 많지 않다. 미술관 대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책방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진이 여러 장 있다. 미술관에서 그림 사진만 찍다가 카메라 렌즈로 거리 풍경을 스케치하니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가득이다.


우선 뉴욕 날씨가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는 소식부터 전한다. 얇은 외투 하나면 충분할 정도다. 롱부츠를 신은 여자들, 두꺼운 노스페이스를 입고 나온 남자들은 어제 꽤 고생했을 것이다. 주말에는 미술관이 많이 붐빌 테니 오늘은 그냥 하루 젖히기로 했다. 그리고 예전에 살던 23번가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뉴욕 지하철은 아주 간단하다.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 좌우로 가고 싶으면 버스를 타면 된다. 한 번만 타보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심한 길치다. 어느 날 파주 출판단지에 간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어느새 저 위 국방 한계선 같은 곳까지 와 버린 적이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그곳,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었다. 철책과 가림막이 겹겹이 길을 막고 있었고, ‘돌아가시오라는 사인만이 크게 눈에 띄었다. 분단선을 실제로 마주하는 느낌은 왠지 썸뜩했다. 잔뜩 몸이 위축되면서, 기이한 불안이 가슴을 억눌렀다. 결국 차를 돌려 출판사에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길치도 뉴욕에서는 전혀 헤맬 이유가 없다. 동쪽과 서쪽, 업타운과 다운타운.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23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니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플랫 아이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뉴욕 마천루 역사에서 초기 작품이라 하는데, 얼핏 다리미처럼 생긴 모습이 언제 봐도 신기하다.


옛날에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간 기분은 묘하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고, 예전의 내 모습 또한 저기 어딘가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런 사연과 장면들이 아직도 이곳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오면 내가 머물렀던 장소를 한 번쯤 다시 기웃거리게 된다.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많이 내 모습을 지워버렸는지, 그로 인해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23번가 거리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다. 새로 개축한 빌딩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이 거리에 흐르는 냄새와 공기, 사람과 소리의 흐름은 7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가끔 아침마다 가던 베이글 코너 가게가 현대식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뉴욕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았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식당이었다. 가게 안에서 베이글도 직접 굽고 나이든 아저씨 서너 명이 투박한 말투로 장사를 하던 베이커리였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사진 <23번가, 옛집 아파트 입구에서> 2012

 

사보이 호텔 바로 옆, 예전에 우리가 살던 빌딩을 바라보는 심정은 남달랐다. 건물 앞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 더 낡고 초라해진 모습, 폐허 속 쇠락한 기둥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주변이 그만큼 산뜻하게 정비된 탓일 것이다. 근처에는 새로 생긴 콘도미니엄과 비주얼 스쿨 간판이 보였고, 길 건너에는 던킨 도넛 가게와 타이 식당, 편의점 같은 것들이 새로 문을 연 듯했다그래서 우리가 살던 그 빌딩만이 세월의 잔재에 파묻힌 듯 더 어둡고 그늘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살던 집은 사람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옛집은 옛날의 내 모습이며 내 기억이다. 옛집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사실은 나로부터 분리된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이곳 언저리를 맴돌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하이 라인, 첼시> 2012

 

첼시 화랑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육교처럼 생긴 구조물이 나타났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공원이라고 했다.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라니. 터키인지 스페인인지에서 공중정원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콘셉트인가 싶어 철제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이 라인이라 부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정보가 정확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이 라인은 11번가와 12번가 사이에 있고 12번 스트리트에서 34번 스트리트까지 이어져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건물 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육교다.


뉴요커들은 육교라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곳이 새로운 명소인지 카메라를 메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도시의 지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과 중간중간 에 전시된 설치 조각들, 그리고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와 잔디밭 풍경은 아직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를 풍겼다.


그래도 허공에 떠 있는 이 산책로에는 센트럴 파크와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붕 위와 건물 틈새들, 오랜 세월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의 그림자들이 새삼 드러난다.


아무리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라 해도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정체들이 존재한다. 그 뒷모습의 표정과 흔적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각도와 높이와 깊이가 필요하다.


하이 라인은 그런 곳이다.


사람들에게 도시 지붕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고, 사람들은 다시 하이 라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진 <뉴욕 ,하이 라인 내 산책로 풍경> 2012

 

사진<하이 라인에서 내려다 본 23번가 도로 모습> 2012


사진 <하이 라인에서 바라본 건물과 건물들 사이의 모습>

  

오후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유니언 광장으로 향했다. 토요일마다 프리마켓이 열리던 광장은 마침 공사 중이라 사방이 막혀 있었지만 공원 안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벤치마다 가득했다.


어딜 가나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옆에 앉아 있는 백인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가 무시를 당했는지 그 나이 든 백인 남자는 자신의 과거사와 그 백인 아줌마의 야박함에 대해 한참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남자가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은 어떤 침묵의 벽도 뚫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외면했고 민망해했으며 심지어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백인 아줌마도 손에 들고 있는 아이팟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백인 남자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계속 떠벌려대는 그의 말들은 허공의 벽에 부딪혀 고스란히 그 자리로, 자신의 침묵 속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어린 화가들> 2012

 

공원 한쪽에서 길거리 화가들을 보았다. 어린 소녀들이었다. 붓을 들고 쓱쓱 재미있게 그어대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이 든 백인 여자가 붓을 하나 달라고 하더니 꽃이 핀 풀잎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림에 몰두한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느라 발길을 멈춘 사람들.


11월의 맑은 햇살이 부서지는 한쪽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걸까. 색채 때문일까. 도구 때문일까. 예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일까.


자신의 벽 안에서 맴돌고 있는 언어들, 생각과 소통이 필요한 사연들을 토해내기 위해 사람들은 붓을 들고 물감을 섞고 화폭을 펼친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린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유니언 광장의 반스 엔드 노블 서점> 2012

  

유니언 광장 근처에 있는 푸드 마켓에 들어가 뜨거운 클램 차우더 수프와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반스 앤 노블 서점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뉴욕에서 가장 큰 책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층부터 4층까지 수많은 책들로 빼곡한 곳이다.


예전에는 소설 섹션이 2층이나 3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4층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4층에 있던 어린이 북 섹션이, 소설이 꽂혀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설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어,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소설은 죽었다, 그림은 죽었다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래도 한겨울 히말라야 꼭대기의 로지에서, 난롯가에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책의 소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7년 전 뉴욕 거리에서도 여기저기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내심 기뻤다.

 

그런데 이제는 이 도시 어딜 가나 직사각형의 작은 액정 화면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하다못해 무가지 신문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손바닥만 한 화면이 사람들의 시간은 물론 영혼까지 삼켜버릴 기세다.


몇 년 전만 해도 길을 가다 혼자 웃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실성했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에 대고 혼자 말하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덕분에 소설책은 대형 서점의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조금씩 밀려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소설이 고귀해 보이는 이유는, 이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멀리 있고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더 신비해 보이는 법이니까.


이러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 그 액정 화면만 덩그러니 남아 떠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이브 탕기 Yves Tanguy의 초현실주의 그림에서처럼, 모두가 사라진 회색 공간에 액정 화면들만 살아 있는 미생물처럼 증식해 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반스 앤 노블에서 4층으로 밀려난 소설 섹션을 보자 어쩐지 가슴이 답답했다.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돌이켜보니 교보문고에서도 참고서들이 예전에 있던 소설 자리를 조금씩 잠식해 오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소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사진 <이브 탕기의 작품>

*그다지 본문에 꼭 들어맞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메트에서 찍은 사진을 대신 사용했다.

 

밤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유니언 광장 한가운데 높이 서 있던 동상이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 위에 이미지를 비추고 연설 내용을 크게 틀어놓은 듯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진 일루전 효과 때문에 정말로 동상이 손을 움직이고 표정을 지으며 연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의 음유 시인이 다시 환생한 듯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어쩌면 반스 앤 노블 4층으로 밀려난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나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책의 또 다른 변신이라고 할까. 종이 문명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새로운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당도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동상1, 한낮의 모습>

 

사진 <유니언 광장의 말하는 동상2, 밤에 촬영한 모습>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사 안에서 길거리 가수와 악사들을 보았다. 그녀는 도나 서머 Donna Summer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노래 가운데 빠른 템포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바로 그 곡이었다.


여가수는 몹시 피곤해 보였고 옷차림도 남루했다. 목청에도 이미 무리가 간 듯했지만 얼굴에는 어딘가 만족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매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 인생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한 가지쯤 자신에게 소박한 선물이라도 허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모든 이의 하루에 작은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사진 <33번가 헤럴드 광장 지하철역 구내에서 공연 중인 흑인 여가수와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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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2012-11-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or Hot stuff?
 

사진 <모마 미술관의 어느 대머리 아저씨> 2012

 

새벽에 문득 깨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앉았다. 지금 나는 맨해튼 안에 머물고 있다. 메이시 백화점 바로 앞, 럭셔리 렌탈 빌딩 안에 있는 한국인 숙소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름처럼 그렇게 럭셔리한 장소는 아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던 다른 게스트들이 모두 나간 뒤라 거의 혼자서 내 집처럼 지내는 중이다. 여자 관리인이 함께 있는데 한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 날씨 때문인지 여행객이 뜸한 모양이다. 하루 45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아니, 환상적인 조건이다.


뉴욕에 온 뒤로 거의 매일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도 찍고(요즘에는 디카와 휴대폰을 사용해서인지 사진 촬영이 허용된 곳이 많다), 무작정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 연필이나 펜으로 모사를 하기도 한다. 확실히 손으로 직접 따라 그리다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의 깨달음과 의문들이 잇따라 떠오른다.


금요일 오후에는 4시부터 모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아침 내내 메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곧장 모마로 향했다. 관람객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한극장 앞에서 <벤허>를 보기 위해 끝도 없던 사람들 꽁무니에 매달려 서 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금요일 밤 행사에는 나름의 요령이 있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금세 티켓을 받아들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은 역시 시내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뉴욕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미술계의 변방 노릇을 해왔다.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저변에서부터 쌓이고 숙성되어야 한다. 건물만 지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이 조직적으로 미술계에 투자하고 활성화에 나선 것은 1930년대부터다. 당시 유럽은 전쟁 중이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덕분에 유럽의 많은 뛰어난 문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부 차원의 지원과 미술 비평가들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미술관들의 영악하다 할 만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모마의 소장품 목록은 아주 화려하다. 얼마 전 내가 4. 죽음에 대한 응시- 쌍둥이 그림들에서 소개했던 뭉크의 작품도 그중 하나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절규앞에 사람들이 빼곡하다.


맨 위에 올려놓은 사진은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겨우 촬영한 것이다. 오일도 아닌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런데 그림 앞을 막고 서 있던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다음 사진을 보기 바란다.

 

사진 <뭉크의 절규> 모마 미술관에서, 2012

 

뭉크의 그림 속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연치고는 꽤 묘한 우연이다. 참고로, 나는 대머리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예술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우연성의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뒤에 서 있던 누군가 내 카메라 액정에 비친 이 장면을 보고는 자기도 한 장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위의 장면은 대머리 아저씨가 비켜선 바로 그 직후, 0.2~0.3초 사이에 찍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빼곡히 둘러서 있을 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순간이 제한적이다. 그때를 놓치면 영영 찍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디카 촬영이니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디카는 화가들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다. 작품 사진도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풍경도 순간적으로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마의 절규는 두꺼운 플라스틱 액자로 보호되어 있다. 흑인 여자 경비원이 옆에 서서 조금이라도 그림의 최후 방어선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큰 소리로 주의를 준다. 절규를 보며 파리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방이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그 작품 하나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장벽 말이다. 모마가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해 뭉크의 파스텔화를 구입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명품 좋아한다고 여자들의 허세만 욕할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모마가 절규를 구입한 것과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미국은 늘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을 느껴왔다. 프랑스식 발음이나 영국식 억양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모마에도 이제 모나리자급 작품이 등장했으니 어느 정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자세히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그림 테두리가 약간 특이하지 않은가. 나무 프레임을 둘러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장자들의 센스 있는 안목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파스텔 작품을 다른 드로잉이나 수채화처럼 종이 테를 두른 유리 액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처럼 정식 왁구를 짤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뭉크 작품에 대한 설명은 4. 죽음에 대한 응시-쌍둥이 그림들에 얼마간 적어두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

 

눈이 와요! 눈입니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1> 2012


아무래도 뉴욕이 미친 것 같다. 11월의 뉴욕에서 이런 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한다. 메트 폐장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오니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예고도 없이 펑펑 쏟아진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가자마자 폭설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9·11 테러 이후 뉴요커들은 아예 인생에 달관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비행기 공격도 받았는데 이까짓 눈보라쯤이야, 하는 분위기다. 지하철 안은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꽉 찼지만, 거리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2> 2012

 

바로 하루 전에는 대선 투표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타임스퀘어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사진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마련된 대선 관중석> 2012

 

어떤 사람은 뉴 이어스 이브 이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거리 전체에 눈발이 몰아치며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전날 찍은 타임스퀘어 사진도 함께 올린다.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1> 2012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2> 2012


대선 당일 밤 930분경에 찍은 사진이다. 전광판만 보고는 롬니가 이기는 줄 알았다. 빨간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알 수 없다. 한국도 곧 대통령을 뽑게 된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 있는 정부가 앞장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정치는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그 시대를 포장해 후세에 남긴다. 인류사는 늘 그렇게 작동해 왔다. 오래전 백 년 동안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했던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헬레니즘 문명은 지금까지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 모마 미술관에서 운 좋게 건진 사진 한 장이다.


사진 <연인, 모마의 계단에서> 2012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조차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 유명한 모마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떠오른다. 이 여성은 실제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마 이쪽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편에는 뒷모습만 보면 어쩐지 리키 마틴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서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른 끝에 겨우 한 장 건진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에 연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연인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이다. 그렇게 마주 보는 관계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게 된다. 흔히들 부부는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로를 마주 볼 때 더 강한 생의 스파크가 튀는 것은 아닐까.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희생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짧고 아깝다.


뉴욕은 젊음의 도시이고 연인들의 도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한국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적어도 맨해튼 안에서는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만난다. 오래전에 미국 동부에만 살다가 LA에 갔을 때 수많은 한국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뉴욕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32번가 한인타운도 계속 팽창 중이다. 사방에서 드릴 소리가 요란하다. 곧 한국식 바비큐 와인바가 새로 문을 열 모양이다. 사우나도 있고 때도 밀어준다고 한다한국 책방도 있고 한식만 파는 푸드코트도 있다.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뉴욕이다. 손님의 절반쯤은 미국인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인구 구성 변화 때문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뉴욕에 있으니 그 말이 실감난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에서 여러 나라 언어가 들려온다. 여기서는 백인이 오히려 소수 민족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지구상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고대 로마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 것은 아닐까, 너무 뻔한 생각이지만 그런 상상도 떠오른다.

 

이 글을 알라딘에 무사히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아 불안하다. 마우스도 없고 한글 프로그램도 깔려 있지 않다. 가끔 화면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맞춤법까지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다. 여기 도착한 다음 날 한 번 시도했다가 써놓은 글을 전부 날려버린 적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글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우주 어딘가에 사라진 글의 행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적막한 행성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어깨가 구부정한 늙은 사서 한 명이 책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도 중간에 한 번 글을 날리고 다시 작업해서 여기에 올리는 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서울의 일은 모두 잊고 이곳의 시간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욕심이 생겨 이렇게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행 노트에 먼저 적은 뒤 워드패드로 옮기고, 다시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사진도 올려야 하는데 중간에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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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012-11-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바가 머리 쥐어짜면 뭉크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일텐데...

김미진 2012-11-16 10:02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이 올라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